35년 전에 시작된 旅程(여정)

 

 

워낙 오래 전의 일이다. 1982년 12월 또는 1983년 1월의 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니 35년 전의 일이었다. 한창 추울 때였는데 그 날은 아주 포근해서 아파트 주변을 따라 산책을 하던 나는 약간 땀이 나서 벤치에 앉아 잠깐 쉬기로 했다.

 

산책을 하다 보면 으레 사색에 잠기게 되는데 그때 나는 이른바 운명학이란 것의 진위 여부를 놓고 생각에 몰두해 있었다.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해서 쉽사리 결론을 얻을 수 없었다.

 

사실 그 문제는 그날따라 생각이 났던 것이 아니었다. 나 호호당은 고등학교 1학년 시절, 1971년이었다, 사주보는 책을 한 권 구입해서 읽은 것이 인연이 되어 이미 10년 이상 운명학에 대해 나름 많은 공부와 연구를 해오고 있었다.

 

게다가 직장에 들어간 뒤 책을 사볼 여력이 생긴 나는 중국에서 나온 운명학 방면의 原典(원전)들을 전부 사서 읽어본 터였다. 중국 청나라 시절 건륭제의 명으로 편찬된 四庫全書(사고전서)에 포함된 이 방면의 방대한 서적들이 影印本(영인본)으로 출판되어 있었기에 거금을 들여 그 책 전부를 통으로 구입해서 읽기도 했다.

 

출처를 정확히 말할 것 같으면 사고전서 子部(자부) 術數類(술수류)에 속한 수백 권의 책들이다. 구입처는 당시 인사동 거리에 있던 동문선 출판사가 운영하던 동양학 서점이었다. (그 책방은 장사가 지지리도 되지 않아서 얼마 되지 않아 문을 닫았다. 하기야 옛 한문으로 된 책들이 잘 팔릴 까닭이 없었다.)

 

 

긴가민가, 마치 鷄肋(계륵)과도 같았던 운명학

 

 

책을 모조리 열심히 읽어보았지만 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여전히 긴가민가했다. 거짓이라고 하기엔 나름 상당한 신빙성이 있다는 생각, 그렇다고 전적으로 신뢰하기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즉 耳懸鈴鼻懸鈴(이현령비현령)격이었다. 다시 말해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되었기에 아리송할 따름이었다.

 

버리자니 아쉽고 가지자니 미심쩍은 바가 많아서 몇 달에 걸쳐 시간이 날 때마다 숙고를 했으나 여전히 단안을 내릴 수가 없던 문제였다.

 

그렇기에 그 겨울의 포근했던 날 산책을 하면서도 그 문제 아니 숙제를 머릿속으로 열심히 궁리하고 있었던 나였다.

 

운명학에 대해 사람들은 흔히 이런 말을 한다. 사주를 보러 갔었는데 지난 과거의 일은 잘 맞히는데 다가올 미래에 대해선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면 틀린 경우가 많더라는 말이 그것이다.

 

나 호호당 역시 그런 불만을 갖고 있었다. 그럴 바엔 그건 믿을 수 없는 것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미 운명학의 전 방면에 걸쳐 소상하게 구석구석 잘 숙지하고 있던 내 생각에도 그렇다면 그건 아니다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전적으로 믿을 수 없어서 버리기엔 그건 또 아니었다.

 

그런데 그 날 벤치에 앉아있던 나는 문제를 새롭게 관점에서 생각하게 되었다. 운명학의 기본 전제는 틀린 것이 아니라 해도 오랜 세월 속에서 여전히 이론적으로 검증이 충분치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나아가서 아직 미처 밝혀내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모든 학문과 이론은 꾸준히 발전하는 것이니 말이다.

 

생각에 잠겼다가 문득 심한 오한을 느낀 나머지 벤치에서 벌떡 일어난 나는 집에까지 몸을 덥히기 위해 뛰어갔다. 아차, 이거 이러다가 감기 걸린 거 아닐까 하는 걱정과 함께.

 

다행히도 감기에 걸리진 않았다. 그 날 밤 나는 그게 그렇다면 여태껏 누구도 밝혀내지 못한 운명의 이치에 대해 내 스스로 한 번 밝혀보리라 하는 마음을 굳혔다.

 

 

가보지 않은 여정에 나서다

 

 

1982년 말인지 1983년 초인지 모르겠지만 그 날 이후로 나는 새로운 접근법을 시도하게 되었다.

 

원래 이런 術數(술수)에 관한 학문은 고대 천문학에 뿌리를 두고 있으니 동서양의 천문학이 발전해온 경로에 대해 일단 연구하고 고찰해 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전혀 다른 방면의 책을 읽던 중에 묘한 단어를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당시 은행에 다니던 나는 아르바이트로 외국 서적 번역 일을 좀 하고 있었다. (그 결과 내 이름으로 번역된 책이 네 권이고 유명교수의 이름으로 번역된 책은 좀 더 된다.)

 

 

프톨레마이오스와의 만남

 

 

모 출판사를 통해 책 한 권의 번역을 검토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터라 우선 그 책을 읽고 있던 중 그 단어를 발견했다.

 

'에피사이클'이란 단어였다. 영어로 epicycle. 처음 접한 단어라 이게 뭔가 싶어서 사전을 찾아보니 周轉圓(주전원)이라고만 나와 있었다. 한자를 통해 대충의 의미는 알 수 있었으나 충분히 이해하긴 어려웠다.

 

그래서 공공도서관에까지 찾아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뒤졌더니 제법 내용이 실려 있었다. 그 뜻인 즉 어떤 큰 원의 圓周(원주)위를 따라서 굴러가는 圓(원)이며 고대 천문학과 지리학의 대가였던 프톨레마이오스가 天動說(천동설)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개념이라 되어 있었다.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 코페르니쿠스가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하기 이전 시절의 최고 천문학자였던 그 양반 말이지! 생전 처음 접한 단어이자 개념이며 동시에 천재 천문학자가 태양이 지구를 돌고 있다는 것을 주장할 때 사용한 것이라니 나로선 정말 참신하게만 느껴졌다.

 

사람들은 천동설이 틀렸다는 것만 알고 있지 프톨레마이오스가 정말 얼마나 대단한 천재였는지는 잘 모른다. 이데아를 주장한 플라톤이나 서양 학문의 시조인 아리스토텔레스 급의 천재였던 프톨레마이오스이다.

 

알아보니 에피사이클이란 개념이 들어가 있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책은 그 제목이 ‘알마게스트’라고 하는 것이었다. 저 건 또 무슨 뜻이지 싶어 알아보니 ‘위대한 논문’이란 뜻의 그리스어 명칭에 대해 이슬람 학자들이 붙인 이름이었다.

 

(참고로 얘기하면 중세 시절 이슬람은 고대 그리스 철학과 학문을 가져가서 더 발전시켰고 그것이 다시 서양으로 유입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고대 그리스 철학과 사상 그리고 그 서적들은 서양의 경우 중세 암흑기를 거치면서 거의 멸실했다가 그 이후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를 통해 이슬람 세계로부터 역수입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 역시 그랬었다.)

 

더 알아보니 알마게스트란 책의 영문판이 미국 프린스턴 대학 출판부에서 얼마 전에 발간되었다는 소식도 알게 되었고 이에 교보문고 외국서적 구매 서비스를 통해 입수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지금은 너무나 편한 세상이다. 인터넷에 가서 구글이나 아마존, 위키 등을 검색하면 불과 몇 분 안에 거의 모든 정보를 알아볼 수 있고 책 역시 주문하면 1-2주면 입수할 수 있는 세상이다. 1980년대 초반 당시 내가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에피사이클이란 단어를 만난 뒤 알마게스트란 책이 있으며 그 책을 주문해서 손에 넣을 때까지 무려 몇 달이 걸렸던 것과 비교하면 정말 좋은 세상이다.

 

아무튼 나는 우연히 알게 된 ‘에피사이클’이란 개념을 통해 여태껏 밝혀지지 않은 운명학의 이치를 탐구하는데 있어 하나의 돌파구를 얻을 수 있었다.

 

 

본의 아닌 생고생을 하게 되다.

 

 

하지만 고생 좀 많이 했다. 알마게스트를 읽다 보니 히파르코스라고 하는 생전 들어보지 못한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 지리학자, 수학자가 남긴 기하학 이론과 접하게 되었고 또 그게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워서 결국엔 흔히 유클리드의 기학학 원론, 정확히는 ‘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까지 생고생하며 읽고 또 공부해야 했다.

 

에우클레이데스는 사실 고대 이집트의 수학자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에 나는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의 철학자와 수학자, 기하학자들에 대해 엄청난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은 정말 천재였다!

 

지금 나는 1971년에 운명학과 인연이 닿는 바람에 1983-1984년 무렵부터 시작된 나 호호당의 탐구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정말이지 그건 참으로 여행이자 旅程(여정)이었다. 직장에선 남들처럼 충실히 일을 하고 있었지만 퇴근하고 나면 내 영혼은 자유롭게 고대 학자들의 세계는 물론이고 앞 사람이 밟아보지 못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가고 있었으니 그건 진정 여행이자 여정이었다.

 

다시 돌아가서 얘기이다.

 

 

주식투자의 세계와 연이 닿는 바람에

 

 

1983년 후반기였다. 당시 나는 또 하나의 세계를 만나게 되었는데 바로 주식투자 또는 투기였다.

 

이에 어떤 고수 선생으로부터 한 수 배우게 되었는데 매일 매일 주식 시가 변동을 그래프로 직접 그려보면 실력이 크게 발전한다는 것이었다. (1980년 초반만 해도 개인용 컴퓨터가 거의 없던 시절이라 클릭하면 볼 수 있는 주식 차트 따윈 아예 없던 시절이었다.)

 

이에 나는 그 가르침을 충실히 따라서 매일 밤 방안지에 시세변동을 연필로 그려보고 있다가 갑자기 하나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어쩌면 주가변동이야말로 운세의 변화가 수치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어쩌면 이 역시 에피사이클로서 설명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었다.

 

갑자기 신이 났다. 잘 하면 운명의 이치도 알아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주식 시세를 잘 예측할 수 있게 된다면 돈도 잘 벌 것이고 그러면 직장 때려치우고 연구에 전적으로 몰두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달콤한 생각이었다. 당시 내 나이 서른이었으니 능히 그런 욕심이 들 법도 했지 않겠는가 말이다.

 

나 호호당의 자연순환운명학이 어떤 경로를 밟아서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는가를 간단히 써볼 생각으로 시작한 글이었는데 정작 쓰다 보니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래서 어쩌면 몇 번에 걸쳐 써야할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글의 제목을 글을 다 쓰고 나서 붙이는데 이번 글엔 제목을 ‘굽이굽이 걸어온 호호당의 탐구 여정“이라 붙인다. 진정으로 그건 나 호호당의 평생에 걸친 여정이었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서 이어가기로 한다. 지금 시각은 8월 6일 새벽 4시 28분, 날이 밝아오고 있다.

 

(알리는 말씀: 오는 토요일 11일 자연순환운명학 기초반 강좌가 시작된다. 아직 기한이 남았기에 지적 호기심이 있으신 분들의 많은 신청 기다린다. 구체적인 내용은 강좌안내 란에 있으니 참조하시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