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강, 서리의 계절에 雷雨(뇌우)가 들이치니  



오늘은 10월 23일, 저녁 8시 22분으로서 霜降(상강)이었다. 지금 시각은 밤 10시 21분. 상강은 서리 霜(상)에 내릴 降(강)이니 서리가 내릴 때란 뜻이다. 가을이 참으로 깊었으니 深秋(심추)의 계절이다.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이건만 오늘 점심 무렵엔 제법 거센 雷雨(뇌우)가 한 바탕 지나갔다. 거리는 삽시간에 젖은 낙엽 천지가 되었다. 그야말로 스산한 罷場(파장) 분위기. 


가을 추수는 상강 무렵이면 절정을 이룬다. 옛 사람들은 이 무렵에 국화주를 빚고 국화전을 부쳐 먹었다고 한다. 가을의 대표과일인 감도 이 무렵에 본격 출하가 된다. 


이제 보름 동안은 낙엽의 때이고 풀벌레들은 겨울잠을 자기 위해 어디론가 들어갈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죽고 風化(풍화)되어 가루로 바스라지고 날릴 것이니 그러면 죽음 혹은 주검의 계절인 겨울로 접어든다.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복닥거리는 대도시에 살아가는 이유



서울을 비롯하여 대도시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이유가 뭘까?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이야말로 벌어먹고 살기 좋아서 그렇다. 교환이 빈번하고 시장이 크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인구 밀도가 높은 곳에 살려면 그에 따른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한다. 오만 가지 스트레스. 서울과 같이 천만의 대도시에서 한 개인의 존재는 참으로 미미하다, 스스로 보기에도 보잘 것이 없다. 


하지만 대도시를 떠나긴 정말 어렵다, 열심히 벌어서 먹고 살아야 하니. 서울 인근의 아파트촌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이들의 삶은 정말로 고달프다. 


그러다 보면 이런 생각을 한다, 훗날 돈 좀 모아서 은퇴하면 조용한 전원에 나가 아담한 집을 짓고 유유하게 살아보리라 하는 생각, 사실 이런 생각 누구나 한 번쯤은 다 해보게 된다.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싸우면서 살다 보면 우리 누구나 가끔씩 쉬고 싶어진다. 아쉽기만 한 휴가 정도가 아니라 몇 년 정도 푹 쉬고 싶어진다. 하지만 정작 실행에 옮기는 이는 거의 없다. 몇 년 쉬고 나면 여간해선 되돌아오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에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아갈 뿐 대부분의 경우 여전히 현장을 지키면서 떠나지 않는다. 


이처럼 現役(현역)의 삶은 치열하고 피곤하고 힘들지만 그럼에도 섣불리 현역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못한다. 


왜 그럴까? 



은퇴는 일종의 사회적 죽음인 것이니



현역을 그만 두는 것, 이를 은퇴라고 한다. 그런데 은퇴란 것은 한 개인에게 있어 일종의 ‘사회적’ 죽음이란 사실이다. 은퇴란 그 사람이 머물던 세계 혹은 그 바닥에서 사라지는 것을 뜻한다. 사라진 거나 죽은 거나 무슨 차이가 있는가? 


그렇기에 사람들은 좀처럼 현역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게 죽음이란 것을 은연중에라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나 호호당이 하고자 요지는 사람이 죽으면 무덤에 들어가 묻히거나 납골당에 안치되듯이 은퇴 시점을 고려해서 마련한 전원의 아담한 주택은 사실 그 사람의 무덤이나 납골당과 같다는 얘기이다. 


줄여 말하자면 사회적 죽음을 맞이한 자가 사는 집이 그런 전원주택일 때가 많다는 사실이다. (물론 은퇴한 뒤에도 작은 전원주택 한 채도 마련하지 못하는 딱한 경우도 허다하지만 말이다.)


은퇴하면 죽음이라니 다소 과격하고 지나친 주장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정말로 그러하다. 은퇴 후의 전원주택 또한 제 아무리 아담하고 살기 좋아도 그곳은 결국 무덤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친지나 손님들을 초대해서 집과 주변의 좋은 환경을 구경시켜주면 정말 좋네요! 하는 부러움을 잠시 살 순 있겠으나 잠시 들렀던 그들이 떠나고 나면 역시 무덤에 불과하다. 



가장 화려한 때 직후에 바로 죽음의 계절이 시작되나니



대목에서 잠깐 60년 순환에 대해 얘기할 까 한다. 60년 순환은 사계절로 나눌 수 있으니 순환의 시작점인 입춘으로부터 42.5년이 경과한 때가 상강이고 45년이 경과하면 입동이고 그로서 15년의 겨울이 시작된다. 


오늘의 주제인 霜降(상강)은 입동이 오기 전, 겨울이 시작되기 전의 마지막 가을의 때이다. 상강의 산과 들에는 울긋불긋한 단풍이 한창이다. 자연이 죽음의 계절인 겨울 직전에 마지막으로 최고의 ‘꽃단장’을 하는 때인 것이다. 그러고 나면 모든 것이 잿빛으로 물들어가는 겨울이 시작된다. 


그렇기에 상강 무렵의 화려한 단풍은 하루로 치면 해가 서산에 지기 직전에 보여주는 황홀한 저녁놀과 그 의미가 정확하게 일치한다. 



절정의 때는 죽음 직전에 온다.



이담에 멋진 전원주택을 짓고 편히 살겠다는 생각, 절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정작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때가 되었다면 그 자는 60년 순환에 있어 상강을 맞이한 자라고 봐도 절대 무방하다. 


예를 하나 들겠다. 이젠 벌써 꽤나 오래 된 일이지만 현대 그룹의 창건자이자 한국 경제의 거인이자 영웅이었던 고 정주영 회장의 얘기이다. 


정주영 회장은 1970년이 60년 순환에 있어 입추였고 1983년은 상강의 운이었다. 이때 정회장이 지은 건물이 서울 종로구의 계동 사옥이다. 겉멋보다는 실익을 중시하던 정주영 회장이 나름 최대한 멋을 부린 사옥이었다. 왜냐? 본인의 무덤이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이 계동 사옥에 들어가 집무실에 앉는 순간 정주영 회장의 운은 사실상 끝이 났던 것이다. 더 이상 현역이 아니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정주영 회장은 그런 다음 1992년 난데없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가 실패한 뒤 많은 곤욕을 치렀는데, 왜 그런 실수를 했을까? 세간에 한때 설이 분분했지만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무덤 속에서 너무나도 적막했기에 상실감을 견디지 못했던 까닭이다. 


정주영 회장만 그런 것인 아니다. 기업인들이 성공한 뒤에 멋진 사옥이나 저택을 짓는 일이 많다, 경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은 그 기업인의 운이 상강 무렵 즉 이제 사실상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기에 몇 년이 지나면 모 기업이 흔들리거나 고난을 겪는다. 


기업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일반 보통의 사람도 마찬가지여서 가령 여유가 있어서 도심에서 벗어난 교외나 전원에 나름 좋은 집을 마련하거나 특히 집을 짓게 되면 그건 그 사람의 운세 순환에 있어 상강이나 입동 근처라 보면 된다. 나름 성취하고 성공한 사람의 마무리 작업이라 봐도 좋겠다. 



나라의 운세 흐름도 그렇다.



과거 일본이 1991년 거품 붕괴 직전에 도쿄나 오사카 도심에 멋진 디자인의 초고층 건물들을 많이 지었다. 1987년은 일본 국운의 상강이었고 1990년이 입동이었던 까닭이다. 


우리나라 역시 2006년이 상강, 2009년이 입동이었는데 그 때를 전후해서 서울 도심이나 외곽, 부산의 경우엔 해운대 센텀 시티 같은 멋진 단지와 건물들이 많이 들어섰다. 국운의 상강을 맞이한 단풍놀이였던 것이다. 오세훈 시장의 서울 꾸미기 프로젝트 역시 마찬가지. 


흔히 기념비적인 건물이란 말을 쓴다. 한 시대를 기념할 만한 건물이란 뜻이니 그건 보통 그 시대의 운세 순환에 있어 마무리 단계인 상강과 입동 무렵에 건축된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증권계에선 높은 건물이 많이 올라가면 경제가 조만간 어려워질 하나의 지표로 삼는다는 말도 있는 것이다.

이제 글을 정리할 때가 되었다. 



상강의 逆說(역설)



10월 그리고 霜降(상강) 무렵은 자연이 가장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는 때이다. 그러니 참으로 逆說(역설)이다. 곧 잿빛의 겨울, 죽음의 겨울이 다가올 것이니 말이다. 


마지막 직전에 가장 아름다운 것, 한편으론 맞다, 행사 중에선 피날레가 가장 화려한 것과 같으니. 하지만 또 한편으론 슬프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지나면 바로 끝이고 죽음이라니 말이다. 


오늘도 치열한 경쟁의 마당에서 하루하루 힘들지만 열심히 살고 있는 그대가 언젠가 돈을 많이 벌어서 우아하게 은퇴한 다음 아름다운 전원에 나가 느긋하고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삶을 보내야지 하는 생각을 한다면 그건 좋다. 일종의 목표로 삼은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당신이 現役(현역)이기에 해보는 생각이란 사실이다. 정작 은퇴하고 나서 한가롭게 되면 사실 좋은 것이 별로 없다는 점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화려한 상강의 때가 지나면 바로 잿빛의 겨울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열심히 싸우고 있을 때가 실은 전성기란 사실



한 마디 더 첨가한다, 더 벌어 보겠다고 또는 더 성취해보겠다고 욕심내고 씩씩대면서 열심히 싸우고 있는 현역의 세월이야말로 실은 인생의 가장 좋은 시절이고 전성기란 점이다. 


글을 마치고 나니 새벽 2시,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글을 쓰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제 잠에 들 시간이 되었다. 굿 나잇!




흐르지 않는 강의 세월이 있으니



갖은 용을 쓰고 애를 끓여도 눈앞의 상황은 별 진척이 없고 그나마 현상 유지라도 되면 다행인 시간 혹은 세월이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이거야말로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구나 싶어 때론 그 자리에 그냥 털썩 주저앉고 싶지만 눈앞의 현실 때문에 그럴 수도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 또 다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물론 그 사이에도 때론 작으나마 좋은 일도 있고 또 아슬아슬하게 고비를 넘기기도 한다. 숨이 턱에 차서 헐떡대고 있을 때 때마침 쉬어갈 만한 휴식처를 발견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런 세월을 두고 ‘흐르지 않는 강’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은 적응을 한다. 흐르지 않는 강과 같은 세월 또한 익숙해지다 보면 나중엔 으레 그렇거니 하면서 엄살이나 투정 따윈 아예 부리지 않게 된다. 


길의 끝에 도달한다는 생각도 버리게 되고 그냥 끝이 없는 길로 받아들인다. 나그네 고생은 끝이 없으니 그를 宿命(숙명)으로 받아들인다. 



누구나 예외가 없이 맞이하는 세월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모든 이가 이런 세월을 겪는다. 60년의 순환 속에서 흐르지 않는 강과도 같은 세월은 15년을 차지한다. 그렇기에 어떤 이는 이미 지나왔을 것이고 또 어떤 이는 장차 그런 세월을 겪어야 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맞이하게 되어 있다. 


한 개인의 삶만이 그런 게 아니라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운의 순환엔 그 어느 것도 예외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잠깐 예로 들면 1971년 여름부터 1986년 여름에 이르는 15년의 세월이 흐르지 않는 강과도 같은 시기였다. 이젠 먼 과거의 일이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 상당수는 그 시절의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당시 우리 사회는 어떻게 해서든 좀 더 나은 사회와 생활을 위해 엄청난 악전고투를 겪었다.


 1972년의 유신헌법으로 시작된 그 시절, 외화를 벌기 위한 필사의 노력으로 달려간 중동 건설 현장, 조세 확보를 위한 부가세와 유류세, 교육세 등등의 각종 간접세의 연이은 신설과 강행과 그로 인한 서민경제의 부담, 엄청난 비난과 반대 속에 추진된 중화학 공업 정책 등등. 


하지만 무역은 늘 적자를 면치 못했으며 거기에 두 번에 걸친 오일 쇼크가 우리 경제의 숨통을 짓눌렀고 마침내 국가 부도 일보 직전에까지 갔다. 


이에 미국은 당시 최고의 글로벌 은행인 시티 은행을 내세워 보증을 해주는 한편으로 일본에게 압력을 넘어 당시 40억 달러라고 하는 천문학적인 돈을 우리에게 장기 저리로 빌려주도록 주선했다. 정말 그 때는 국가의 명운이 경각에 달려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부마사태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의 급작스런 사망, 또 광주에서의 엄청난 비극이 있었다. 민주화를 외치는 사람들은 독재를 규탄했고 또 절망했다. 



그 어떤 길도 종착역에 도달하기 마련이니



그런데 1987년이 되자 갑자기 거짓말처럼 그토록 염원하던 많은 것들이 순식간에 이루어졌고 현실의 일이 되었다. 만년 적자의 중화학 기업들이 엄청난 수출을 통해 단숨에 우리는 무역 흑자의 건강한 나라가 되었고 그 소중하던 달러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증시는 엄청난 상승세를 보여주었고 절로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다. 아연 윤기가 돌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확장에 바빠서 신입 직원들을 정신없이 거의 무조건적으로 채용했다. 대학만 나왔다 하면 성적에 관계없이 취업은 ‘자동 빵’이었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1987년 헌법이 만들어졌고 그로서 우리는 민주화의 길로 들어섰다. 


사실 기적과도 같은 일들이 순식간에 현실이 되었다. 과거 15년간의 가도 가도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힘든 길, 그저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던 그 길고 지루한 세월이 갑작스럽게 어떤 종착역에 도달했던 것이다. 


당시의 감격은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 참으로 먼 과거의 일이다. 벌써 30년 하고도 1년이 더 지났으니. 


이에 오늘의 젊은이들은 길고 긴 인고의 세월 끝에 우리 대한민국이 맞이했던 당시의 기적에 대해 별다른 추억이나 기억이 없을 것이다. 말로 전하고 듣는 것에는 엄연한 한계가 있을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너무 섭섭할 것 없다, 오늘의 젊은이들 역시 장차 29년이 지나 2047년이 되면 또 다시 어김없이 경험하게 될 것이니 말이다. 



우리 주변에도 흐르지 않는 강의 세월을 보내는 이가 실로 많다.



우리 대한민국을 예로 들었지만 지금 현재 가도 가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길을 숙명처럼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을 무수한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 숫자를 말하면 우리나라의 인구가 최근 5,180만 명이라고 하니 그 1/4인 1,295만 명은 그런 ‘흐르지 않는 강’과도 같은 세월의 길을 걸어가고 있을 것이다. 



흐르지 않는 강의 세월이야말로 위대한 창조의 때



그런데 말이다, 가도 가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세월의 길이야말로 실은 위대한 창조의 시기란 사실이다. 


글의 머리에서 얘기했다. 갖은 용을 쓰고 애를 끓인다고 말이다. 실력이 늘고 내공이 쌓이려면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선 불가능하다. 어떻게 해서든 해보고자 하고 살아남고자 한다면 있는 힘, 없는 힘을 다 짜내고 부어야 한다. 


그럼에도 부족해서 실패하고 좌절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또 다시 도전해간다. 그러니 스스로는 몰라서 그렇지 그 사이에 엄청난 발전이 있을 것은 물론이다. 


쉽게 되면 실력이나 내공은 거기까지로 그친다.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힘들고 버거워야만 지속해서 힘이 세지고 내공이 단련된다. 되지가 않으니 도저히 넘어설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넘어서야만 할 때 사람은 극도로 창조적으로 변한다. 


창조란 본시 극복하기 어려운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 


따라서 흐르지 않는 강과도 같은 세월 속에서 사람의 잠재된 위대한 창조성이 발휘된다. 


그렇기에 1971년 여름에서 1987년 여름에 이르는 15년간의 세월 동안 우리 대한민국은 최고의 창조성을 발휘했던 것이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 1975년에 대한민국 최초의 고유모델인 ‘포니’가 생산되었고 반도체 역시 1983년 삼성전자가 시작했다. 조선의 경우 1972년 울산의 미포만에 현대 조선소가 설립되면서 조선강국의 길을 열기 시작했으며 석유화학 역시 그 무렵에 시작되었다. 포항제철 역시 1976년부터 본격 확장에 들어섰다. 


기술도 없고 돈도 없던 우리가 이런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그냥 된 것이 아니다. 죽어라 악을 쓰면서 현실에서 눈을 떼지 않고 끝까지 될 때까지 들러붙었던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의 그런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니 그 모든 것은 결국 창조였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세계 어디를 가도 선진국 대접을 받는다. 세계 유수의 강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대한민국 여권은 글로벌 암시장에서 대단히 고가로 거래되고 있을 정도이다.


이 모든 것이 어디에서 왔는가? 하면 그 출발은 바로 흐르지 않는 강과도 같았던 1971-1986년이 이르는 15년간의 힘든 세월 속에서 만들어졌다. 그 이후 우리는 궤도에 올랐고 탄력을 받아 비록 여러 어려움을 겪긴 했어도 무너지지 않고 줄곧 성장을 거듭해올 수 있었다. 



창조는 악조건 속에서



창조란 것은 좋은 환경과는 거리가 멀다. 창조의 바탕은 오히려 갖은 惡條件(악조건)이라 하겠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비빌 언덕이 없는 소가 등이 가렵고 답답한 나머지 스스로 흙을 모아서 언덕을 만든다면 바로 그것이 창조인 까닭이다. 


그러나 세상 모든 것 또한 때가 있어서 창조의 때가 있는가 하면 나태와 태만의 때도 있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1년 가을부터 2016년 가을까지 15년간 실로 풍족과 번영을 만끽했다. 그러자 정치는 날선 이념 공방에 빠지거나 아니면 스스로 연예인처럼 변해갔다. 사람들은 이제 국가와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놓고 고민하는 게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나를 위해 무얼 해줄 수 있는지를 따지기 시작했다. 


국가에선 열심히 복지 항목을 챙기고 예산을 편성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 주변엔 힘든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는 이상한 현실, 이게 바로 국가적 나태와 태만의 세월이다. 



이제 어려워지겠지만 그 또한 꼭 나쁜 것만은 아니어서



이제 우리 대한민국도 어려워질 것이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고 본다. 그 또한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하여 저 바닥에 도달하고 나면 어느새 또 다시 일어서려는 탄력이 되살아나고 다시 한 번 힘겹지만 위대한 창조의 세월을 맞이할 것이니 말이다. 


한 개인의 삶도 그렇다. 어려운 창조의 때가 있는가 하면 나태와 태만으로 보내는 세월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다가 몰락하면 또 다시 일어서는 법이니 그게 바로 순환이다. 


흐르지 않는 강과도 같은 세월,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 세월이야말로 실은 위대한 창조의 기간이란 사실. 그리고 그 세월은 운명의 사계절로 말하면 봄의 春分(춘분)에서 여름의 夏至(하지)에 이르는 기간이란 점도 밝혀둔다.


노래에 얽힌 사연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하는 노래, 전인권 씨가 부른 이후로 거의 국민가요라 할 정도로 모르는 이가 드물다. 내일의 희망을 노래하는 가사가 늘 감동을 준다. 물론 이젠 나이가 든 나도 무척이나 좋아하는 노래이다, 가끔 유튜브를 통해 듣곤 한다. 째째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하는 대목을 특히 좋아한다. 


이 노래의 오리지널은 ‘쟈니 리’란 가수였다. 지금은 작고한 길옥윤 선생이 작곡한 노래로서 1966년에 음반으로 나왔다. 그런데 당시는 제3공화국 시절, 가사 내용이 어둡다는 이유로 다음 해인 1967년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다.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노래는 대중의 심금을 흔드는 매력이 있었던 터라 1980년대 초 운동권 학생들 사이에서 널리 불리게 되면서 ‘운동가요집’에 ‘사노라면’이라는 제목으로 기록되었다. 


세월이 흘러 그저 작자 미상, 혹은 구전 가요 등으로만 알려졌던 이 노래는 1987년 들국화의 전인권 씨가 새롭게 취입하면서 크게 히트를 쳤다. 1987년 민주화 바람과 함께 새롭게 되살아난 것이다. 그 이후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하면서 더욱 더 알려졌다. 


국민 애창곡이 되었으나 여전히 작자 미상의 곡으로만 전해지던 이 노래는 결국 2004년에 이르러 오리지널이 밝혀졌다. 모 가요 평론가가 소장한 원래의 음반이 공개하면서 노래의 원작자와 가수가 명백하게 밝혀진 것이다. 



36년이라고 하는 시간의 試金石(시금석)



운명학적 관점에서 이 사연은 정말 흥미가 있다. 


세상 모든 일은 36년이 흐르면 어떤 결말에 이르게 된다. 가려졌던 것이 밝혀지기도 하고 아닌 것이 결국 탄로 나기도 하고 사실이지만 묻혔던 것이 드러나기도 한다. 


36년이란 시간 간격은 사물의 커다란 試金石(시금석)인 까닭이다. 


노래가 금지곡이 된 것은 1967년이었다. 사실 금지될 노래가 아니었다. 내일의 희망을 노래하는 지극히 건전한 노래였으니. 그런데 그 시절 우리나라는 너무나도 빈곤하고 우울했던 탓인지 심사하는 양반들은 그 노래를 부정적으로 느꼈던 모양이다. 아니면 권력을 휘두르는 맛에 우쭐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래는 죽지 않고 살아서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던 학생들 사이에서 희망의 노래로 자리를 잡았다.

 

이에 36년이 흐른 시점은 2003년이었다. 이제 묻혔던 진실이 밖으로 나올 시점이 되었던 것이다. 다음 해인 2004년 드디어 원 작자와 노래의 사연이 밝혀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결정적인 가교 역할을 한 것은 전인권 씨의 리메이크였다. 그 또한 시간의 비밀이 숨겨져 있으니 20년이다. 그 어떤 것이든 18년이 넘어가면 변화가 생기기 마련이고 20년이면 급기야 결정적인 무언가가 생겨난다. 


1967년 금지곡에서 20년이 흘러 전인권 씨가 기가 막히게 불렀고 그로서 전 국민애창가요가 되었다. 


전인권이란 시대의 絶唱(절창)을 통해 20년 만에 다시 각광을 받게 되고 36년이 흘러 원 작자와 사연이 밝혀졌으니 이 노래 ‘사노라면’은 이로서 추가로 36년 즉 72년간을 이어가는 생명력을 가지게 되었다. 연장에 들어간 것이다. 


72년은 36년이 두 번 흐른 시점으로서 그 때가 되면 또 하나의 커다란 시간의 관문을 만나게 된다. 따라서 이 노래는 2039년까지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즐겨 부르는 노래로 남아있을 것이다. 2039년에 가야만 좋은 옛 노래 정도로 남을 지 아니면 역사의 망각 속으로 묻히게 될 지 결정 날 것이란 얘기이다. 


일제가 우리를 강점하고 통치한 것도 결국 36년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사실. 이는 결국 유구한 역사 전통을 지닌 우리 대한민국이 일본과 합쳐질 운명이 아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세상은 60년을 하나의 주기로 하기에



36년이면 기존에 존재하던 어떤 흐름에 큰 변화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런 근본적인 이유는 이 세상이 60년을 하나의 주기로 해서 변화해가기 때문이다. 60년에서 30년이면 그 절반으로서 전환점이 되고 그 전환이 확실해지는 시점은 36년인 까닭이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은 최근 수년 사이 엄청난 호황국면이다. 그런데 내년이면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을 시작한 지 36년이 된다. 1983년에 시작했으니 2019년은 36년이 경과한 시점이다. 


물론 삼성의 반도체 사업이 앞으로도 지속되고 더욱 변화와 발전을 이어가겠지만 일단은 어떤 反轉(반전)이 시작될 것이다. 일종의 調整期(조정기)로 접어든다는 말이다. 



36개월 역시 강도가 다를 뿐 마찬가지



앞에서 36년이라 했지만 36개월도 사실은 그렇다. 다만 그 강도와 무게가 다를 뿐이다. 36개월은 3년이다. 따라서 어떤 일을 하든지 또는 시작하든 36개월이면 어떤 전환점을 확인하게 된다. 


작은 사업을 시작했다고 할 때 3년, 즉 36개월이면 성패가 확연히 드러난다. 창업 후 3년의 고비가 그것이다. 창업한 지 3년이면 절반 정도가 도태되거나 문을 닫는다. 절반이 남는 것이다. 


1년 만에 사업을 접는 경우도 많다. 이는 준비가 태부족인 까닭이다. 기본에서부터 틀려먹었던 셈이다. 3년도 버티지 못할 것 같으면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고 달리 말하면 3년은 버틸 힘이 있어야 무얼 해도 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사실 연애나 결혼도 마찬가지이다. 3년을 함께 지내봐야 일생을 함께 할 수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법이다. 물론 최근 젊은이들은 결혼을 꿈꾸지도 못하고 이 연애에서 저 연애를 전전하며 지내고 있지만 말이다. 젊은이들의 현실은 감히 일생을 설계할 정도의 여유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라 하겠다. 



끊임없이 변해가지만 다시 돌아오는 自然(자연)



이처럼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그 어떤 흐름도 또 어떤 물결도 곧이곧대로 이어져가는 법은 없다. 


끊임없이 변해가고 또 끊임없이 되돌아오는 것이 바로 自然(자연)이다. 멀리 떠나가는 것 같지만 다시 돌아오고 돌아왔다 싶으면 다시 떠나가는 자연이다. 그렇기에 사계절의 변화가 곧 자연이다. 


바닥에서 안간힘을 쓰고 용을 쓰면서 또 다시 올라가는 것이 봄이고 열을 받고 탄력을 받아 거침없이 오르는 계절이 여름이다. 그런가 하면 어느덧 열이 식어들고 마르면서 수확을 보는 가을이고 그러고 나면 차갑고 드라이하게 식어드는 겨울이다. 


사계절은 한 해를 통해 우리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지만 60년의 순환 역시 15년씩 한 계절로 해서 四季(사계)를 지나간다. 


36년은 60년의 6/10 즉 6할이고 한 해로 치면 7.2개월이 경과했다는 뜻이 된다. 그렇기에 어떤 일이 4월 초에 시작되었다면 11월 10일 경이 되는 것과 같다. 이에 4월 초의 밝은 봄기운은 간 곳이 없고 이제 가을도 아니라 초겨울의 풍경을 마주하게 되는 것과 같다. 


계절이 변해도 아주 많이 변한 것이다. 그렇기에 36년의 試金石(시금석)은 누구에게나 확연하게 변한 모습을 보여준다. 


점심 무렵 아내가 모는 차를 타고 작업실에 나오는데 뚜껑 없는 무개차, 외제차를 마구 거칠게 모는 젊은이를 보았다. 아내가 한 마디 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이가 30대 후반 정도로 보였는데 그저 속으로 생각하길 저 친구 인생 말년에 고생 좀 하겠지만 아무튼 지금이 당신의 헤이데이(heyday), 많이 즐기시게나, 했다. 



세월이 흘러 得道(득도)한 홍콩 배우 주윤발



영화 ‘영웅본색’의 주인공이었던 주윤발이가 자신의 전 재산 8000억 중에서 1%만 남기고 모두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발언을 했다. 


생일을 검색해서 운세를 확인해보니 2019년 내년이 입춘 바닥이었다. 이에 금방 이해가 갔다, 운세가 바닥에 이르니 돈이란 것이 그다지 쓸모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구나 싶다. 이제 주윤발은 道人(도인)이 되었다. 서포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의 性眞(성진)처럼 도를 깨친 것이다. 오래 살고 행복하게 살다가겠지. 


1986년 ‘영웅본색’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으면서 성공 가도를 달려왔는데 30년을 넘기고 나니 그 또한 싫증이 나서 보통 사람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1986년에 36년을 더하면 2022년, 아마도 그 무렵에 가서 생각을 실행에 옮기지 않을까 싶다. 



가진 게 없어도 새파랗게 젊다면 그게 바로 진정한 한 밑천이다.



그렇기에 가진 것 없어도 나이가 아직 젊다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오게끔 되어있는 세상이다. 30년이 흐르면 성공해있을 것이고 36년이 지나면 힘겨웠던 젊은 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무조건 그렇다. 그러니 새파랗게 젊다는 것은 그야말로 밑천 중에 밑천이다. 그러니 가진 것 없는 젊은이들이여, 가슴을 쫙 펴고 살아도 된다.


2012년부터 글로벌 평균 성장률에 미치지 못한 우리 경제



우리나라도 한 때 고속 성장하던 때가 있었다. 신흥 경제국이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략 2002년 무렵부터 글로벌 평균 성장률과 거의 동일한 수준의 성장률을 보여주었다. 이런 현상에 대해 경제 전문가들은 글로벌 경제와의 동조화라고 하면서 그 이유는 우리가 수출 주도형 경제라서 그렇다는 해설을 했다. 


그런데 글로벌 성장세와의 동조현상은 2012년부터 깨어지고 말았으며 그 이후로 지금까지는 줄곧 글로벌 성장률을 밑돌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15년부터는 그 괴리가 더 확대되고 있다. 격차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작년 2017년의 경우 글로벌 성장률은 3.4%였는데 우리는 2.8%에 그쳤다. 몇 년간 거의 0.6%의 차이가 유지되고 있다. 



빗나가버린 연초의 낙관적인 전망



그런데 나로선 정말 뜻밖의 일로서 올해 1월엔 금년 우리 경제에 대해 대단히 낙관적인 전망이 많았었다. 


미국 경제가 호황일 것으로 전망되면서 우리 경제의 성장률은 북핵 문제라고 하는 돌발 변수만 없다면 3~3.5%의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낙관하는 국내 전문가도 있었고, 골드만삭스와 JP모건과 같은 외국은행들도 우리 경제가 3% 정도는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연초의 낙관은 올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최근 IMF라든가 OECD 역시 우리의 성장률 예상치를 낮추었다. 뿐만 아니라 내년엔 더 떨어질 것이란 전망을 내고 있다. 


그러자 세계경제 호황에도 한국 경제 ‘역주행’, 세계경제 ‘훨훨’ 나는데, 끝없이 추락하는 한국 경제…, 이런 제목의 기사들이 속속 눈에 들어온다. 내수가 쪼그라들면서 투자, 소비, 고용 등에서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다. 


이제 나 호호당의 설명을 제시해보자.


 

글로벌 성장세에 미치지 못하게 된 이유



2002년부터 10년간의 동조화 현상은 사실 과소비를 통한 성장,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아파트 붐으로 인한 가계대출 급증으로 인한 성장이었을 뿐 그렇지 않았다면 글로벌 동조화가 불가능했을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결국 2012년에 이르러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더 이상의 소비여력이 없어지면서 글로벌 평균성장률에 미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2012년부터였는가? 하면 묻는다면 그 대답은 이렇다. 2012년은 우리 대한민국의 國運(국운)으로 말하자면 60년 순환에 있어 小雪(소설)이었기 때문이다. 한 해로 말하면 양력 11월 20일 경에 찾아드는 節氣(절기)로서 그때부터 우리 국운이 사실상 겨울로 접어들었던 것이다. 


이에 올 해 초 3% 이상 성장이란 낙관적인 전망이 나왔을 때 나 호호당은 그저 피식-하고 웃고 넘겼다. 올 2018년의 경우 정부가 최대한 재정지출을 늘려야만 겨우 2.6% 대의 성장률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지금도 2.8%대를 얘기하고 있지만 연말까지 시일이 좀 남았다는 점에서 장담하긴 어렵다 본다. 



내년 2019년부터는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국면이 전개될 것이니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바로 내년이다. 


내년 2019년은 우리 국운의 小寒(소한), 한 해로 말하면 엄동설한의 때인 양력 1월 초와 같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년 성장률은 2012년부터 지금까지의 흐름과는 또 달라질 것이라 본다. 2012년부터 초겨울이었다 한다면 내년부터는 늦겨울, 본격 추위가 찾아드는 때가 시작된다는 말이다. 


이에 성장률이 2.5% 밑으로 내려갈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돌발 변수가 없을 때의 이야기이다. 내년 5월경이면 우리 경제에 어떤 쇼크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솔직히 어떤 문제가 터져 나올지는 모르겠다. 


첫째, 터키나 아르헨티나, 브라질과 같은 나라의 문제가 글로벌 전체적으로 전이될 가능성, 둘째, 우리 경제 자체의 문제, 셋째, 예상 밖으로 현재 잘 나가고 있는 미국 경제가 급격한 침체로 빠져들 가능성도 실은 꽤 높다는 점이다. 



미국이 잘 나가도 문제, 그렇지 않아도 문제



사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미국 변수이다. 미국 경제가 호황을 유지해도 우리에겐 문제가 되고 불황으로 들어가도 역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가령 미국이 당분간 호황을 유지하게 될 경우 연준은 별 무리 없이 기준금리를 높여가게 될 것이니 그로 인한 글로벌 금리 상승이 불가피할 것이고 우리 역시 금리 격차를 줄여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니 그 결과 우리 경제에는 급격한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반대로 미국 경제가 부진 또는 침체로 간다 해도 우리에겐 큰 문제가 된다. 미국 경기의 부진은 우리 수출에 상당한 부담을 줄 것이고 경쟁국과의 치열한 수출경쟁이 불가피하게 되니 그렇다. 


따라서 현 시점 이후로 미국 경제가 호황을 이어가도 문제인 것이고 부진으로 들어서도 문제인 것이다. 이는 우리가 저금리 기조를 너무 오랫동안 이어왔기 때문이다. 환율이나 금리와 같은 거시적인 대응 수단이 사실상 없어졌다는 말이다. 


이처럼 어디에서 어려움이 닥쳐올는지 그건 모르겠으나 중요한 것은 경우에 따라선 우리 경제가 경우에 다라 내년부터 10년에 걸쳐 사실상 제로성장 내지는 마이너스 성장세를 유지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본다. 



우리 내부의 어려움



우리 내부의 문제를 얘기할 것 같으면 1500조의 가계부채도 문제지만 그보다 최근 수 년 사이 가파르게 늘어난 자영업자 부채가 더 위험하다. 가계부채와 자영업자 부채는 사실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아무튼 최근 자영업자들의 부채 규모는 600조원에서 7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자영업자의 대출 중에는 약 30% 정도가 제2금융권의 대출이기에 사실 고금리 대출에 속한다는 점에서 더욱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물론 한국은행 관계자는 자영업자 대출 건전성은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비교적 양호한 수준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현재와 같은 1.5%의 저금리 수준에서의 얘기인 것이고 기준금리를 지속적으로 올려가야 할 땐 상황이 전혀 달라진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금리 상승이 어느 선을 넘어서면 자영업자들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할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율은 근 30%에 달할 정도로 높다. 우리보다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나라는 터키, 브라질, 멕시코, 그리스 등이니 솔직히 우리 역시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자영업자끼리의 치킨 게임이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당연히 수익성이 괜찮을 까닭이 없다.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정책이 최근 크게 문제가 된 까닭 역시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거의 한계선까지 내몰리고 있는 자영업자들에 대해 또 하나의 부담을 가중시켰기 때문이다. 알바를 두지 않은 자영업자와 가게가 크게 늘어나면서 고용에도 큰 부담을 주고 있다. 


더불어 주52시간 근무로 인한 문제는 올 연말부터 더 커질 것으로 본다. 결국 기업 특히 중소기업의 비용 상승을 유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의 투자 부진과 해외 이전, 그리고 국내 고용 부진이란 역효과는 비교적 빨리 나타나는 반면 당장 생산성을 높일 방도는 없기 때문이다. 



향후 수출 전망 또한 어둠이 밀려오고 있으니



우리 대한민국 경제는 여전히 수출을 통해 돌아가는 경제인 점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 수출이 되어야 그만큼의 수입을 해올 수 있고 그로서 내수가 돌아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향후 수출 전망에 대해서도 간단히 언급하겠다. 



몇 년 안에 중국이 문제가 될 것이니



내년이 아니라 조금 더 장기적으로 내다보면 중국 경제가 조만간 어려워질 것이란 점이다. 지금도 말이 무성하지만 공산당 통제력이 살아있다는 점에서 여느 시장경제 국가와는 다르다 하겠다. 하지만 결국 합리적이지 않은 결정과 선택이 누적될 경우 문제가 생기면 더욱 더 파괴적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중국의 경우 국운의 흐름이 우리보다 4년이 늦다. 중국의 2018년은 우리의 2014년과 같다고 보면 된다. 우리가 내년 2019년으로서 국운의 小寒(소한), 본격 추위가 찾아온다고 지금 말하고 있으니 중국의 경우 2023년이 된다. 


하지만 현 시진핑 체제는 과거 등소평이 만들어놓은 공산당 집단지도체제가 아니라 1인 독재란 점에서 중국의 붕괴가 더 빨라질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그렇기에 빠르면 2020년부터 중국이 붕괴 국면으로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글로벌 전체적인 어려움도 있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어쨌거나 중국에 문제가 생기면 그 또한 우리 경제에 엄청난 부담을 줄 것은 물론이다. 더 큰 국면에서 얘기하면 내년부터 향후 10년간은 글

로벌 전체가 어려운 국면을 다시 맞이할 가능성도 크다고 본다. 양적완화라고 하는 유례없던 정책이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긴 했지만 결국 그 부담이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문제가 있으니 바로 이탈리아이다. 그렇기에 최근 이탈리아는 급격한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는 2021년이 이탈리아에게 있어 국운의 입춘 바닥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유로존 전체가 무사할 까닭이 없다고 본다. 물론 우리에게 직접 미치는 파급력은 다소 약하다 하더라도 그 역시 부담이 된다는 점은 사실이다.



반도체 문제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얘기할 것은 반도체 문제이다. 반도체하면 삼성전자이다. 그런데 삼성전자가 반도체 메모리를 시작한 것은 1983년이었다. 그렇기에 내년이면 36년이 되는 해이고 이에 모종의 브레이크가 들어온다는 점이다. 모든 사물은 36이란 숫자가 지나가면 그간의 흐름과 반대되는 현상, 일종의 障碍(장애)를 만나기 때문이다. 


우리 수출에 있어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금년 들어 실로 절대적이라 하겠는데 그 또한 내년엔 부정적인 변수가 생길 것이란 점에서 걱정이다. 


앞의 글에 대해 제목을 “국운의 10년 엄동설한을 앞에 두고”라 붙였는데 몇몇 독자들이 너무 추상적이란 말과 함께 좀 더 구체적인 얘기를 해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반가운 내용이 아닌 터라 며칠 고민 좀 했다. 그 바람에 다른 글도 잘 손이 나가질 않았다. 그러다가 어차피 얼마 안 있으면 눈앞의 현실이 될 일들이라 싶어서 속내를 어느 정도 털어놓았다.


세상 이치는 참으로 아이러니.



세상의 이치는 참으로 놀라운 逆說(역설)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수 십 년에 걸쳐 자연의 순환과 운명의 이치를 연구해온 끝에 얻은 결론이다. 


‘고생 끝 행복 시작’, 이런 말이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다면 행복이 시작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또 다른 불행의 씨앗이 움튼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 대한민국은 전 국민이 열심히 일하고 고생한 끝에 정말이지 예기치 않은 큰 성공과 富(부)를 이룩했으니 그 때가 2002년이었다. 그 무렵 우리나라에도 이른바 ‘글로벌 1류 기업’이 등장하고 있었으니 삼성전자가 바로 그것이다. 그 이전까지의 우리 모든 기업은 도전자일 뿐이었다. 


2002년 삼성전자는 낸드 플래시 메모리에서 글로벌 1위, 반도체에서 2위를 차지했고 그로서 글로벌 삼성이 등장했다. 그 이후 철강의 포스코와 산업장비의 현대중공업 등 여러 기업들이 미국 포춘 지의 글로벌 5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2002년부터 시작된 우리 대한민국의 전성기



2002년부터 우리 대한민국의 전성기가 시작된 셈이었다. 


나 호호당이 창안해낸 자연순환운명학의 이치에 따르면 2002년은 우리 국운의 60년 순환에 있어 秋分(추분)의 때였다. 


추분이 어떤 때인가? 양력으로 9월 23일 경에 맞이하는 절기로서 이 무렵이면 들판의 곡식이 무르익고 또 출하되기 시작하는 때이다. 그렇기에 우리 대한민국은 2002년 국운의 추분을 맞이하여 풍성한 수확의 계절로 접어들었다. 


대한민국이란 명칭이 자리 잡은 것 역시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부터였다. 그 이전엔 우리 스스로도 ‘한국’이라 했지 대한민국이란 말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그 무렵 우리 스스로의 성취에 대해 자부심과 자존감을 느끼게 되었고 이에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이란 말을 쓰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2002년은 1964년부터 시작된 우리 국운의 60년 순환에 있어 추분의 때였음이 확실하다. 



고생 끝 행복 시작인 줄로만 알았는데



풍성한 수확을 보았으니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인 셈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무렵부터 또 다른 불행의 씨앗이 자라나고 있었으니 ‘양극화’였다. 동시에 비정규직이란 말이 자주 귓전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파트 역시 2002년을 경계로 차별화가 이루어졌다. 서울 강남의 타워 팰리스를 시작으로 종전의 수평 형 복도식 아파트는 하나 둘 씩 재건축을 통해 수직의 타워 형 고층 아파트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수평이 평등이라면 수직은 계층화였다. 이에 수십 층의 고층 럭셔리 아파트는 신분의 상징물이 되어갔다.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이 있는 차별의 시대 양극화의 시대가 시작된 셈이었다. 


그 이전엔 ‘갑질’이란 말 자체가 없었다, 그러나 2002년 이후 우리 사회는 ‘갑질’을 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갑의 신분이 되고자 했다. 


고생이 끝나고 나니 모두가 행복한 시대가 된 게 아니라 누구는 행복하고 누구는 불행한 시대가 활짝 열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갑과 을로 나뉜 것이 아니라 여기에 더하여 병과 정, 무와 기, 경과 신, 이런 식으로 무한 차별화와 양극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해를 같이 하는 무수한 조합이 만들어졌고 이익단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정치만 해도 예전에 영호남의 지역주의가 문제였다면 지금에 이르러선 온 세상이 무슨 조합 무슨 협회, 무슨 단체 식으로 무수히 분화된 오늘이다. 


대한민국은 2002년으로서 성공했고 또 그 때부터 분열되기 시작했다. 


경제가 흥기하려면 역시 산업이 일어나야 한다.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기업가들이 앞장을 서야 한다. 우리의 경우 2002년까진 산업가 기업가의 시대였다. 



2002년부터 시작된 소비를 통한 경제 성장



산업으로 기초를 다지고 나면 그 다음엔 소비의 시대가 온다. 소비에 동력을 공급하는 원동력은 역시 돈의 공급이다. 


이에 2002년부터 소비를 위한 돈의 공급이 커져가기 시작했다. 이른바 리테일 뱅킹, 소매 금융이 비중을 높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수요는 럭셔리 아파트의 공급과 교육열을 통해 만들어졌다. 비싼 럭셔리 아파트를 사려면 뭉칫돈이 필요했는데 은행들은 갑자기 싹싹하게 그 뭉칫돈을 빌려주기 시작했다. 일반인도 큰돈의 대출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도 없을 정도로 비대해진 1,500조의 가계대출은 이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돈은 대출을 통해 만들어지고 시중에 공급된다. 돈은 그 자체로서 누군가의 빚이고 누군가의 채권이다.)


대출이 늘어나니 은행의 수익이 늘었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에 금융업종은 신이 내린 직장이 되었다. 또 대출로 해서 만들어진 돈이 경제에 투입되자 경기는 더욱 흥청망청 잘 돌아갔다. 호황이 찾아왔다. 호황이 오자 사치성 소비가 급증했다. 


교육도 사치성 교육이 주류를 이뤘다. 영어 붐을 타고 해외 어학연수는 물론이고 거금을 필요로 하는 해외 유학이 성시를 이뤘다. 그리고 스펙 붐이 들끓었다. 


60년 운세 순환에 있어 좋은 시절, 즉 전성기는 추분부터 동지까지 15년의 세월이 된다. 우리 국운으로 치면 2002년부터 2006년까지의 15년이다. 


그 기간 동안 우리 경제는 돈이 기업 대출을 통해 투자 쪽으로 들어가기 보다는 가계 소비, 즉 가계대출을 통해 돌아갔다. 반면 수익을 내는 것이 목적인 기업들은 투자할 대상이 마땅치 않아졌고 그러다보니 사람 채용에 대해서도 보수적으로 변해왔다. 이에 비정규직과 외주, 아르바이트와 같은 임시직이 대세를 이루었다. 


다시 말해서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은 떨어져갔음에도 가계 대출의 급증으로 인해 시중에 돈이 늘어났기에 경기는 호황이었던 것이다. 


수출 대기업들이 수출을 통해 막대한 외화를 벌어왔고 그에 힘입어 수입 또한 경기 호황으로 그만큼 늘어났고 다양해졌으니 가계 소비 또한 선택이 다양해졌고 윤택해진 것은 물론이다. 


수출의 지속적인 성장, 가계대출을 통한 통화 창출, 이 두 가지가 2002년 이후 우리 경제를 끌어온 양대 버팀목이었다. 



과소비의 결과 생겨난 문제점들



그런데 그 결과 몇 가지 문제점이 생겨났다. 안정적인 고용직 일자리 창출의 부진으로 인한 청년 일자리 문제와 함께 자영업자의 지속적인 증가, 부동산 시세의 고공행진으로 인한 높은 임대료 부담과 청년들의 결혼 기피, 출산율 저하, 여기에 결정적으로 가계소비 여력의 소진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세수가 계속 증가하자 그간의 모든 정부들은 방만한 재정운용으로 시중 통화 공급에 크게 기여했다. 



가을 잔치가 끝나고 나니



그러다가 과소비로 일관되어온 이 모든 것이 2017년 국운의 冬至(동지)를 맞이하자 갑자기 어려워졌다. 순식간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간 사실상의 제로 금리를 유지하던 미국이 금리 인상을 시작해서 급기야 우리보다 높아지더니 최근의 인상을 통해 이제는 0.75%까지 차이가 벌어지고 말았다. 


미국 연준은 내년 말이나 내후년 초까지 3.50% 정도까지 올릴 생각인 것으로 추정이 된다. 아시다시피 미국 연준 금리는 글로벌 세계에 돈을 공급하는 水門(수문) 역할을 한다. 금리가 높아지면 수문을 조인다는 의미이고. 


이제 그간 풀려난 방만한 돈, 생산성 없는 돈을 회수하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 글로벌 세계는 기본이 各自圖生(각자도생)이다. 협력이나 협조를 통해 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치킨 게임의 양상이다. 무역전쟁과 환율 전쟁이 맹렬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에 대외교역환경은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여기에 중국이라는 강력한 라이벌이 등장했다. 


게다가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 기조로 인해 글로벌 전체적으로 돈은 회수될 것인 바, 개방 경제인 우리가 마냥 지금과 같은 저금리 기조를 이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환율을 조정하는 것 역시 예전과는 달리 쉽게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새로운 성장 동력은 보이지 않고 그간의 과소비로 인한 부담만 고스란히 남은 지금이다. 



잔치는 끝이 났고 이제 곧 청구서가 날아들 것이니



우리 국운으로 볼 때 2017년부터 2032년에 이르는 15년은 대단히 힘든 기간이 될 것이다. 국운의 엄동설한과 쌀쌀한 봄추위가 지배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히 내년 2019년부터 2028년까지의 10년은 어려운 15년 중에서도 그 가운데 토막에 해당되기에 더더욱 어려운 시기가 될 것이라 본다. 내년 2019년은 국운의 小寒(소한), 즉 양력 1월초에 해당되는 때이기에 嚴冬(엄동)이 찾아들 것이고 이는 2029년 국운의 驚蟄(경칩) 직전까지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2019년부터 10년, 참으로 어려운 세월이 될 것이다. 그 구체적인 신호는 내년 2019년 5월이면 보다 뚜렷해질 것이다. 2002년부터 15년간 이어져온 우리 국운의 가을잔치는 2016년 말로서 벌써 끝이 났다.


10년에 걸친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으니



나 호호당은 우리 대한민국이 내년 2019년부터 2028년까지 10년에 걸쳐 혹독한 시련을 맞이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운의 흐름을 살피기에 앞서 왜 그런 시련과 난국이 찾아올 것인지에 대해 먼저 살펴보자. 



各自圖生(각자도생)으로 들어선 글로벌 세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세계는 각자도생의 국면으로 전환되었다. 돈을 엄청 풀어대는 바람에 문제의 심각성을 가리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문제 자체가 해결된 것은 아닌 까닭이다. 


各自圖生(각자도생)이란 말을 썼다. 저마다 살 길을 도모하는 것을 말한다. 


제2차 대전 이후 글로벌 세계의 번영을 이끌어온 미국부터가 시쳇말로 ‘쌩까고’ 있다. 트럼프가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럴 필요가 생긴 바람에 트럼프와 같은 사람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기후협약, 달리 ‘2015 파리협정’이라 부르는 이 국제적 합의는 지구의 평균온도 상승 폭을 제한하겠다는 것이고 좀 더 구체적으론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런 약속은 실로 엄청난 것이어서 합의한 전 세계 국가들의 엄청난 협력과 참여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최근 정부가 안전벨트 의무화에 나서고 있는데, 이것만 해도 제대로 지켜지려면 국가의 강력하고도 지속적인 공권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런데 일개 시민이 아니라 협정에 찬성을 표한 전 세계 195개 국가를 상대로 이행을 강제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싶다. 


그런데 오늘날 글로벌 전체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갖는 미국부터가 작년 6월 협정에서 탈퇴했다. 국제법의 효력을 갖는 기후협약이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제2차 대전 이후 오늘날의 틀을 만든 미국이 아닌가, 그런데 이제 그런 건 나 모르겠오 하고 태도를 바꾼 것이다. 자유무역? 과거 대영제국에 이어 줄기차게 자유무역을 주장해온 미국이 이제 관세부과를 통한 무역전쟁에 나섰다. 당장은 중국이 타겟이지만 기본적으론 전 방위적이다.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TPP), 미국, 일본, 캐나다, 호주 등 태평양 연안의 12개국이 참여하는 광역 자유무역협정(FTA)이다. 2015년에 타결되었으나 2017년 1월 트럼프가 집무를 시작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 탈퇴 선언이었다. 사실상 깨졌다. 



글로벌 錢主(전주)가 사라졌으니



미국 우선주의, 아메리카 퍼스트는 간단히 말해서 글로벌 리더인 스스로가 제 살 길부터 찾겠다는 것이다. 돈 되지 않는 리더 따윈 할 마음이 없다는 말이다. 


그로서 사실상 글로벌 세계는 이제 더 이상 글로벌이 아니게 되었다. 그러니 각자도생의 길을 가기 시작한 것이다. 글로벌 세계의 物主(물주) 또는 錢主(전주)가 판을 팽개친 것이다. 


전주가 떠나면 협회나 모임은 깨진다. 만고의 법칙이다. 


일례로 최근 한국기원을 보면 자중지란에 빠졌다. 프로기사들이 한국기원의 행정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없던 일이다. 왜 그런 것일까? 하고 이유를 따져보면 간단하다. 스폰서가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돈의 문제이다. 


오늘날의 글로벌 역시 스폰서가 사라져가고 있다. 그러니 위축될 수밖에 없고 또 각자도생의 길에 나설 수밖에 없다. 


국제간의 협약이나 합의는 정치지도자들이 가장 즐기는 일이다. 거창할수록 지도력을 돋보일 수 있고 서명식 같은 것을 통해 집중적인 조명을 받으니 즐거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트럼프와 같은 이는 그런 멋진 쇼를 마다하는 정도가 아니라 기존의 것도 죄다 탈퇴하고 판을 깨고 있으니 옳고 그름을 떠나 그 배짱 하나만은 정말이지 인정해줄 수밖에 없다. 그러고도 지지율을 그럭저럭 유지하고 있으니 정말 대단하다. 


그런 트럼프라면 전통의 맹방이자 우방인 우리 대한민국에 대해서도 오로지 미국의 이익에 따라 주고 받을 뿐 무슨 의리 따위를 따질 인물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미국 연방준비위원회, 또 다른 惡役(악역)



게다가 이런 악역을 자처하고 나선 또 하나의 거물이 있으니 미국 연방준비위원회, 줄여서 연준(Fed)이다. 


얼마 전에도 얘기했지만 연준이 정하는 기준금리, Fed Rate 는 전 세계에 대해 돈의 수압을 조절하는 水門(수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연준은 금리를 올리는 추세이다. 말로는 인플레이션 조절이라 하지만 실상은 의도적인 불경기 또는 불황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 경제 전체에 대한 불황을 인위적으로 유발하겠다는 것이다. 


전 세계에 풀려나간 엄청난 돈 즉 부채, IMF 통계로 247조 달러의 돈(부채)를 대략 그것의 2/3 수준인 160조 달러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운 모양이다. 어느 정도의 기간에 걸쳐 줄이려 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런 목표를 세운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향후 10년간 전 세계 경제는 불황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대략 80조 달러의 돈(부채)를 흡수하겠다는 것이니 말이다. 80조 달러, 감이 잡히질 않는다. 다만 우리나라의 연간 GDP가 2조 달러이니 그 40배 정도 되는 돈(부채)를 흡수할 것 같으면 세계 경제가 무사하게 무난하게 넘어갈 턱이 없다고 본다. 


당연히 모든 나라가 감을 잡고 있다. 국제 사회가 하나의 정부 아래 있지 않은 이상 공평하게 부담을 나눌 가능성은 만무하다. 그런 국제협약은 가능하지도 않다. 그러니 네가 죽어라, 나는 살란다 하면서 펼치는 치킨 게임이고 그를 통해 각자도생의 길로 치달리고 있다. 그 결과 어디선가는 난리가 날 것이고 어디선가는 지옥이 연출될 것이 뻔하다. 


이것이 내년부터 우리 경제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보는 첫 번째 조건이다. 


한계에 봉착한 우리의 대응 역량



이제 두 번째 조건에 대해 얘기하겠다. 


우리 스스로의 대응 역량에 관한 것이다. 


앞에서 얘기한 바 국제환경은 이미 잔뜩 어려워져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를 극복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면 능히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 시점에 와서 우리의 대응 능력 역시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와는 다른 국면이다.



2008년 금융위기 발발 당시 우리는 모든 면에서 상당한 여유가 있었다. 그 바람에 거의 다른 나라들이 불황 국면에서 제로금리는 물론이고 양적완화를 통해 긴급 수혈에 나섰으나 우리는 그저 금리를 조금 낮추고 재정을 확대하는 선에서 견뎌나갈 수가 있었다. 그런 탓에 미국 금융위기는 우리에게 있어 그렇게 큰 시련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다르다. 



두 가지 수단인 금리와 환율 모두 어렵다.



3년 이상 초저금리를 이어온 터라 시중 유동자금이 늘어나는 부작용만 초래했을 뿐 경기회복의 효과는 대단히 미미했다. 그렇기에 현 시점에서 추가로 금리를 더 낮추는 것도 반대로 올리는 것도 모두 어려운 난국에 봉착하고 말았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은 여전히 수출이다. 그렇기에 우리 경제는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환율을 절하하는 것이 傳家(전가)의 寶刀(보도)였다. 그런데 이제 환율을 우리 뜻대로 설정하는 것이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대외 환경이 악화될 경우 쓸 수 있는 금리와 환율이라는 두 가지 수단이 모두 현재로선 어려워지고 말았다.



수출 경쟁력의 약화



또 하나 상황이 어려워진 점은 우리 수출 경쟁력의 약화이다. 


주력수출상품의 경쟁자인 중국의 역량이 10년 전과는 현저히 다르기 때문이다. 여전히 몇 개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긴 하지만 그 차이가 예전에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격차로 좁혀진 것 또한 사실인 것이고 이로서 수출경쟁력에도 상당한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고갈되어 버린 가계 소비여력



내수 분야는 사실 지극히 어려운 상황이다. 


저금리로 인한 가계부채의 지속적인 증가에 따라 작년 3월 말 자료에 의하면 우리 가계의 처분가능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비율(DSR)이 무려 26.6%였다는 점이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우리 경제는 이미 빠져나오기 힘든 깊은 수렁에 빠졌다고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니다. 미국을 보면 그 비율이 12-10%선을 오르내리는 정도였고 금융위기 발발 당시에 특히 높아서 13%를 넘겼다가 그 이후 다시 낮아져서 지금은 10% 초반 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결국 2000년대 중반에 시작된 모기지 대출 제도가 애당초 무리하고 방만하게 운영된 결과 오늘날 내수경제를 철저하게 얼붙게 만든 것이다. 금융당국의 실패였다. 


이에 현 정부 들어 가계소득을 높여보고자 실시된 소득주도성장정책이지만 오히려 악화된 우리 내수경제에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다. 10년 전에 실시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재정지출 확대가 늘 가능한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재정적 여력에 관해 얘기하면 당장은 세수증가로 인해 재정확대가 이어지곤 있지만 이제 곧 경기침체가 시작되면 그 역시 상황이 호전되기보다는 어려워질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이 어려워진 우리의 내부 역량



밖으로는 수출의 어려움이 예상되고 안으로는 심한 양극화와 소비여력의 상실, 완고한 분배동맹의 존재로 인해 우리 경제는 이미 구조적 저성장 또는 침체의 길을 피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이처럼 안팎으로 모든 것이 어려워진 것은 수 십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어려움이 닥칠 것은 사실 자명한 일이라 하겠다. 


다음의 마무리 글을 통해 자연순환의 이치에 근거하여 우리 국운의 향후 상황에 대해 밝히고자 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잘 사는 부국이 되었다.



미국 CIA가 해마다 작성 발표하는 월드 팩트 북(World Fact Book)에 근거해서 뽑아보면 2017년 우리나라의 1인당 명목 GDP는 30,000 달러로 나와 있다. 하지만 실질소득을 반영하는 구매력평가(PPP)에 의하면 39,400 달러로 되어있다. 


여전히 잘 사는 나라로 알려진 일본을 보자. 구매력평가로는 1인당 42,800 달러로 나온다. 실질소득 면에서 우리가 일본의 92% 수준이니 사실 별반 차이가 없다. 말이 나온 김에 좀 더 얘기하면 한 때 세계를 호령했던 영국의 구매력평가 기준 1인당 소득 역시 44,100 달러라는 사실이다. 


우리의 1인당 실질소득이 일본이나 영국에 비해 사실 크게 차이가 나지도 않는다. 그러니 우리 대한민국은 어느새 세계적으로 잘 사는 나라가 된 셈이다. 전체 경제규모에 있어서도 우리는 GDP 1조5380억 달러로서 세계15위의 경제 강국이다. 



참으로 엄청난 발전과 성장이었다.



1960년대 세계 최빈곤국의 처지에서 오늘날 이렇게 놀라운 성장과 발전을 이룩한 우리 대한민국이다. (1955년생인 나 호호당이 기억하기로 어린 시절 ‘필리핀’이라 하면 바나나가 많아서 먹을 것 풍부하고 생활도 우리보다 훨씬 잘 사는 나라로 여겼을 정도로 우리 처지가 어려웠다.)


지금까지의 얘기인 즉 우리나라가 50년 만에 최빈곤국의 처지에서 글로벌 전체적으로 상당히 부유한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다.


 

런데 행복하지 않은 대한민국



그런데 참 이상하다, 정말 이상하기만 하다. 잘 사는 나라가 되었으니 만족하고 행복해하게 살아야 할 것 같은데 우리 국민이면 누구나 알다시피 전혀 그렇지가 않다. 사회의 분위기로 친다면 1990년대가 훨씬 활력이 있고 희망도 많았다. 



촌티가 났음에도 활기에 찼던 1990년대



이 대목에서 생각나는 게 있다. 1994년 평균 시청률 40%대를 기록했던 인기 드라마 “서울의 달”이 그것이다. 나 호호당 역시 당시 그 드라마를 열심히 시청했다. 그런데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우연히 그 드라마를 다시 볼 수 있었는데, 보면서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달동네는 물론이고 서울의 번화가 풍경이 너무나 초라해서 충격을 받았다. 기억하기론 괜찮았던 것 같은데 저렇게 초라했던가 싶었다. 


그런데 더 생소했던 것은 소시민의 애환을 그리고 있었음에도 활력이 넘치고 있었다는 점이다. 촌스럽기도 했지만 모두가 나름의 꿈과 희망을 안고 열심히 살고 있었다. 정말이지 에너지가 느껴졌다. 젊고 건강한 대한민국의 모습이 그 드라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러고 나서 생각해보니 2000년 중반 이후 우리의 텔레비전 드라마는 소위 ‘막장 드라마’가 축을 이뤘다. 그리고 2010년대 들어선 다시 조금 달라졌다. 막장 보다는 환타지가 중심에 놓이기 시작했다. 시크릿 가든, 별에서 온 그대와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그 이후 과거를 되돌아보는 ‘응답하라’ 시리즈가 풍미했다. 



올드보이 대한민국



현실이 괴로우니 환타지인 것이고 회고풍의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는 것은 이제 우리 대한민국도 나이가 들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늙은 대한민국이 된 것이다. 올드 보이 코리아!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의 선전문구가 ‘다이나믹 코리아’였건만 이제 그 역동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나라가 늙은 것이다. 나라가 노화되다 보니 젊은이들에게서도 열정의 패기보다는 시닉(cynic)한 모습을 더 많이 느낀다. 


가끔 젊은이들이 텔레비전에 나와 인터뷰 할 적엔 주먹을 불끈 쥐고 패기 찬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건 카메라 앞이라서 그런 것 같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유행하기 시작한 말들은 N포 세대, 문송, 헬 조선, 이생망, 주로 이런 말들이 아닌가. 


푸념이나 엄살도 사라진 최근의 분위기



그런데 더 기분이 께름칙한 게 있다. 최근 들어 젊은이들 사이에서 새로운 신조어가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헬 조선이란 말이 유행할 적만 해도 그래 현실이 힘드니 저런 푸념이라도 해야지 했는데 최근 들어선 젊은이들의 엄살이나 푸념이 귓전에 들려오지 않는다. 


원래 힘들어지면 엄살도 피우고 푸념도 하기 마련인데, 진짜 어려워져서 어떤 임계치를 넘어서면 오히려 조용해지는 것이 사람의 일반적인 심리이다.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自嘲(자조)적인 유행어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 젊은이들이 침묵하고 있다는 것, 이게 영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러고 보니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소리 높던 反美(반미)의 목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는다. 그 역시 하나의 시대적 유행이자 風潮(풍조)였던 셈이다. 


왜 그럴까?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우리 국민들의 자긍심과 자신감이 넘쳐났기에 우리 주변의 강국들은 죄다 ‘놈’자를 붙여 불렀었다. 미국 놈, 일본 놈, 중국 놈, 러시아 놈,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최근엔 그런 소리마저 드문 것을 보니 우리 대한민국도 기력이 쇠한 모양이다. 요란했던 반미 역시 우리가 급성장하고 국력이 강해지면서 생겨난 자신감의 반영이었던 것이고 이젠 그 자신감이 많이 약해진 것 같다. 


젊은이들이 힘들어도 이젠 불평을 하지 않고 반미의 목소리 역시 사라졌다. 젊은이들의 목소리, 경륜이 부족해도 그들의 주장엔 귀담아 들을 것이 있는 법이고 진보 좌파의 주장 역시 때론 지나치게 도덕적이고 현실엔 맞지 않아도 그 역시 미래의 지향점을 보여준다. 


그런데 최근엔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조용하다. 



늙고 지친 대한민국



사람들 사이에서 피로감이 느껴진다. 뭔가 이젠 많이 피곤해진 감이 든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피로사회’란 제목의 책이 제법 화제가 되었다. 읽어보니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다. 간단히 내용을 애기하면 오늘날 세상은 누군가의 강제가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갈구고 착취하고 소진시키는 사회란 것이었다. 


꼭 책의 내용과 같은 의미는 아니라 해도 우리 대한민국은 그간 너무 열심히 달려왔고 서로 간에도 치열하게 경쟁해왔다. 너무 전투적인 시간들로 채워졌다. 그러니 피곤을 느끼는 정도가 아니라 어떤 한계점을 넘어선 것도 같다. 


이 대목에서 얘기를 잠깐 비틀어간다. 


나 호호당은 운명이란 것이 뭔지 궁금해서 연구해온 사람이다. (언어학과 역사에 대한 취미도 상당하지만 아무튼 블로그를 통해선 주로 운명을 주제로 얘기하고 있다.)


그러다가 자연순환운명학이라 것을 정립하게 되었다. 그 바람에 늘 사이클, 주기, 순환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평소 순환이란 자연의 四季節(사계절)과 같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순환을 달리 표현하면 삶의 순환, 즉 생노병사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만이 아니라 조직이나 단체, 나아가서 나라도 그런 과정을 밟는다고 여긴다. 


수시로 우리 대한민국의 國運(국운)에 대한 얘기도 한다, 60년 순환을 주로 자연의 계절에 비유해서 얘기하지만 이를 사람의 과정으로 얘기하면 우리 대한민국은 이미 늙고 병이 들어 얼마 안 있으면 죽게 될 단계에까지 와있다는 생각을 한다. 


다만 오해하지 마시길. 우리나라는 2024년으로서 1964년부터 이어온 60년의 삶을 마치고 또 다시 새롭게 태어날 것이란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현생은 앞으로 6년밖에 남지 않은 것이고 그 이후론 새로운 대한민국이 태동할 것이란 얘기이다. 


1964년에 출발해서 지금까지의 54년은 정말 대단한 세월이었다. 전체적으로 대단히 역동적인 세월이었다. 



이제 좀 쉬면서 리빌딩이 필요해



그러니 이제 많이 지친 것이 사실이다. 지쳤으니 활력이 떨어지는 것 또한 당연한 얘기이다. 이에 우리 대한민국은 내년 2019년부터 10년에 걸쳐 쉬게 될 것이다. 


쉬는 동안 많은 것들이 부진의 늪에 빠지고 어려운 일들이 닥칠 것이다. 늘 역경을 헤치고 나온 대한민국이었지만 그런 역동성을 당분간은 보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 쉬어야 하기 때문이다. 


프로 야구를 보면 부진에 빠진 팀은 당장의 성적보다도 시간을 갖고 리빌딩을 한다. 그처럼 우리 대한민국도 리빌딩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앞의 글, “금융위기 이후 10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에서 우리의 상황에 대한 글을 이어서 쓰겠다는 말을 했다. 


오늘 글은 그에 앞서 우리가 장차 어려워질 터인데 왜 그런가에 대해 이제 우리 대한민국이 쉬어야 할 때가 되었다는 말을 하고자 함이었다.

다음 글에서 장차 우리가 겪을 수도 있는 여러 어려운 난제들에 좀 더 구체적인 얘기를 하고자 한다.


 

미국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10년이 흘렀으니



추석 연휴가 이어지고 있다. 한가롭다 보니 오늘은 시간을 갖고 천천히 생각해가면서 글을 써보고자 한다. 


오늘의 주제는 다소 묵직하다. 지금이 2018년 9월이니 미국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정확하게 만 10년이 된 시점이다.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살펴보고 아울러 향후의 일에 대해 전망해보는 글을 준비해보고자 한다. 


미국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이제 만 10년이 흘렀다고 하는 것은 2008년 9월을 미국 금융위기의 발발 시점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미국 재무부가 모기지 대출 손실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양대 모기지 업체에 대한 국유화 조치를 단행하고 동시에 초대형 투자은행인 리먼 브라더스를 파산 처리했던 때이다. 



양적완화란 과연 무엇이었는가?



그 후 11월부터 미국 연준(Fed)은 세계 중앙은행 역사상 초유의 조치,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초극단의 실험적 방식인 양적완화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일반인들은 ‘양적완화’라고 하는 것이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이 그저 막대한 돈, 3조6천억 달러를 5년간에 걸쳐 찍어내어 시중에 공급한 대단한 일로만 알고 있다. 하지만 이는 그저 막연한 이해에 불과하다. 


이게 얼마나 엄청나고 심지어 무모하다고까지 볼 수 있는가 하면, 기존의 경제이론대로라면 미국 연준의 양적완화를 통한 돈 뿌리기는 미국 경제에 대해 5년에 걸쳐 무려 600%의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도 있는 극단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600%의 인플레이션을 의도적으로 발생시켰다면 그 경제가 어떻게 될 것인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하겠다. 가령 당신이 가진 자산가치가 5년 만에 1/6로 떨어진다고 생각해보라, 그게 감당이 되겠는가 말이다. 


미국 연준이 취한 양적완화는 그처럼 무지막지한 일이었다. 그만큼 시국이 비상상황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2008년 9월 미국 금융위기 발생에 대해 연준이 수행한 역할은 마치 사람이 큰 사고로 인해 과다출혈로 곧 죽을 것만 같을 때 그 사람의 평소 혈액량의 무려 5배를 연속적으로 줄곧 수혈한 것과 같은 조치였던 셈이다. 


그렇기에 연준의 양적완화 정책이란 한마디로 말해서 극단적인 인플레이션 유발 정책이었다. 


미국이 양적완화를 하자 유로존과 영국 그리고 일본 역시 사실상 같은 조치를 취했다. 



그럼에도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데 글로벌 경제가 워낙 비상시국이었기에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았고 시중에서 본원통화 공급에 따른 신용창조도 기대만큼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새로운 화폐금융이론이 나타나야 할 것이다.) 


아직 양적완화 정책이 장차 어떤 부작용을 가져올 것인지에 대해 종합적으로 알고 있는 경제학자는 없지만 그래도 일부 파악되고 있는 부작용에 대해 얘기해보자. 



10년 만에 미증유의 속도로 불어난 글로벌 부채



금융위기 이후 분명한 사실은 글로벌 전체 부채가 2007년 4/4분기의 142조 달러에서 현재 247조 달러로서 사이에 무려 95조 달러나 늘어났다는 점이다. 나아가서 2000년 4/4분기의 87조 달러에 비하면 근 3배로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금융 위기 이후 글로벌 성장을 주도한 것은 단연 중국이라 하겠는바, 동시에 부채 증가액도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점이다. 결국 부채증가를 통한 성장, 즉 거품성장을 유지해온 중국이라 하겠다. (이는 중국 정부보다도 공사와 같은 국영기업들과 지방정부가 주도했다.)



성장률을 앞서는 부채증가율, 근본적인 문제점



금융위기 이후의 글로벌 경제성장과 부채 증가세를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2000년에서 올 해 2018년까지 글로벌 총생산은 2.1배 정도 늘어난 반면 부채는 3배로 늘어났다. 따라서 글로벌 부채증가율이 글로벌 경제성장률을 훨씬 앞서고 있는 형국이다. 


이처럼 글로벌 전체적으로 경제성장률보다 부채증가율이 앞선다는 것은 결국 자본의 생산성, 즉 일정한 자본을 투입했을 때의 생산성이 금융위기 이후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부채가 많이 증가한 곳은 중국이 으뜸이지만 미국 역시 만만치 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미국 연준이 찍어낸 돈이 시중 경제로 투입되기 보다는 그 대부분이 대기업의 차입을 통한 자사주 매입과 같은 비정상적인 곳에 흘러들었기 때문이다. 반면 기업의 연구개발이나 신규투자는 대단히 적었다. 


그 바람에 미국 다우존스의 경우 금융위기 발발 이전의 13000 포인트에서 현재 26000까지 정확하게 2배 상승했다. S&P나 나스닥과 같은 것들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는 분명히 비정상적인 상승이고 지속가능하지 않은 상승이다. 



전혀 새로운 난국에 봉착할 수도 있는 글로벌 경제



이것으로 볼 때 2008년 금융위기에서 지금까지 10년 사이 위기를 극복하긴 했지만 새로운 문제점, 아직 파악되지 않은 문제점과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볼 때, 글로벌 경제는 장차 전혀 새로운 문제점에 봉착할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다시 말해서 글로벌 경제가 어쩌면 또 다른 위기의 입구에 서있는지도 모른다는 얘기이다. 



이제 水門(수문)을 조여가고 있으니



더욱이 미국 연준이 이제 서서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금리를 인상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간 한껏 풀려나간 돈들을 다시 빨아들이는 과정에서 어떤 돌발변수가 튀어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간단히 말해서 미국 연준은 글로벌 경제 전체에 물을 공급하는 글로벌 수도국 혹은 상수원이라 봐도 무방하다. 물론 여기에서 물은 돈을 뜻한다. 미국 연준이 물의 공급을 조절하는 키가 바로 금리, 즉 Fed Rate 이다. 


금리가 높으면 水門(수문)을 조이는 것이고 금리가 낮으면 수문을 개방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금리를 올린다는 것은 현재 수문을 조인다는 말이 된다. 


벌써 터키라든가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와 같은 나라들은 물 부족 사태, 글로벌 유동성인 달러 부족 사태에 직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연준의 지속적인 금리 인상에 따라 최근엔 비교적 건실한 것으로 알려졌던 인도 경제에도 문제가 생기고 있다. 이에 인도의 통화인 루피가 사상 최저치에 근접할 정도로 추락하고 있고 고공 행진을 이어가던 인도 증시도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미국의 트럼프는 당장은 중국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긴 해도 사실상 모든 교역국을 상대로 전 방위로 무역전쟁을 이어갈 참이다. 일본은 물론이고 독일 역시 주요 타깃이 되고 있다는 말이다. 



독일의 지나친 수출은 또 다른 문제



사실 유로존 지역은 그 리더 격인 독일 스스로가 문제가 되고 있다. 독일의 무역흑자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경제규모와 비교해도 가장 크다. 2017년의 경우 독일의 수출은 1조4천억 달러였고 수입은 1조1천억 달러로서 흑자가 무려 3천억 달러에 달하고 있는 바, 이는 독일 GDP 3조6천8백5십억 달러의 8%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이란 점이다. 


참고로 얘기하면 무역흑자가 많아서 미국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중국의 경우 GDP 대비 무역흑자규모가 3.5% 정도라는 사실이다. 독일에 비하면 그 절반도 되지 않는다.


그 바람에 나머지 유로존 국가들, 막대한 구제 금융을 받은 그리스만이 아니라 경제규모가 큰 이탈리아까지도 상당한 부담을 안고 시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독일과 이탈리아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 차이 즉 금리 스프레드가 무려 3%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는 사실 대단한 위험 신호라고 하겠다. 최근 이탈리아에서 포퓰리즘 정권이 들어서고 이탈렉시트란 말까지 나오고 있는 배경이라 하겠다.


일본 역시 1990년 버블 붕괴 이후 무려 수십년간 제로금리를 유지해오고 있지만 인플레이션 목표인 2%가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정상적인 나라가 없을 지경이니



지금까지의 얘기들을 압축할 것 같으면 현 2018년 9월의 시점에서 경제가 금융위기 이전처럼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나라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 얘기이다. 


중국, 엄청난 부채 증가와 투자의 비효율성, 미국, 자사주 매입에 치중하고 있는 카지노 경제와 양극화, 일본, 지독한 저성장과 인구 감소, 독일, 사실상의 제로금리와 너무나 큰 무역흑자 부담, 이탈리아, 부채를 감당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경제, 영국 역시 저성장 국가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는 와중에 글로벌 전체 부채는 무지막지하게 늘어난 마당이다. 부채 증가, 즉 통화량의 증가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성장이 이루어졌다면 모를까, 앞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성장속도보다 부채 증가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점이 그나마 우리가 알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라 하겠다. (양적완화의 또 다른 후유증이 나타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겨울이 오고 있다고 한다.



미국 연준이 최근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자 미국 금융시장 사람들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분명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지나치게 풀려나간 돈들을 회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고 결국 금융긴축이란 얘기인데 다른 것을 떠나서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글로벌 경제에 겨울을 몰고 올 것이니 말이다. 


대개의 경우 어려운 문제는 한 번에 말끔하게 해결되지 않는다, 형태를 바꿔서 또 다른 문제점으로 옮겨간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 면에서 2008년 미국 금융위기로 인해 촉발된 글로벌 경제 위기는 아직 해결이 되지 않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오늘 글은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향후 우리 경제가 짊어져야 할 부담에 대해서 다음 글에서 얘기해보기로 한다.


며칠 사이 글을 올리지 못한 이유

 

 

며칠 사이 글쓰기에 실패하고 있다. 생각이 너무 많으면 글을 쓰다가도 정리가 되질 않는다. 최근의 부동산 상승과 초저금리 문제에 관해 글을 썼는데 그냥 다섯 개의 원고가 미완성으로 남아있다.

 

금리에 관한 것은 전문적인 것이 많아서 줄여 쓰면 부족한 감이 들고 조금 자세히 쓰다 보면 독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쓰다만 원고로 남게 된다. 뿐만 아니라 현 정부가 44년 만에 한은 총재를 연임시킨 이례적인 일에 대해서도 자칫 민감한 내용이 될 까봐 그만 쓰게 된다.

 

 

2015년 3월, 우리 경제의 활력 상실이 확인된 시점

 

 

2015년 3월 우리나라 기준금리가 1.75%로 내렸다. 그간 2.00% 이하는 없던 일이기에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무려 1.25%까지 내렸다가 다시 올렸지만 여전히 1.50%에 머물고 있다.

 

나라마다 기준금리의 적정 수준은 다를 수밖에 없지만 우리의 경우 2.00% 미만은 우리 경제에 있어 부작용만 낳을 뿐 좋을 까닭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처음부터 잘못 설정된 DTI 기준

 

 

우리 경제는 가계부채 1500 조를 돌파하면서 소비여력을 소진한 바람에 경기가 날로 부진해져가고 있다. 사실 이런 게 된 배경에는 처음부터 정부가 설정한 부채상환비율 즉 DTI가 지나치게 느슨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외국의 경우 금융회사들이 자발적으로 적용하는 DTI 기준은 28-36% 수준인데, 우리는 2005년 도입 당시 부동산투기억제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제도화되었는데 그 비율이 무려 60%로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문제가 되고 말았다.

 

소득의 무려 60%를 부채 상환에 쓴다는 것이 사실 말이 되지 않는 얘기인 까닭이다. 가령 당신이 월 5백만원을 버는데 3백만원을 부채 상환할 것 같으면 그게 생활이 되겠는가.

 

DTI를 60%로 설정했다는 것은 사실 대출이 거절되는 일이 전혀 없도록 하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이다. 그 결과 오늘날 가계부채 1500 조라고 하는 막대한 부담으로 인해 우리 경제가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대출이 편해지면 돈 쓸려는 사람은 당장 좋았을 것이고 금융회사들은 수익이 늘어서 좋았으며 정부 입장에서도 시중에 돈이 잘 공급되니 경제가 잘 돌아간다, 당장은 모두가 좋았다. 이에 노무현 정부부터 이명박, 그러다가 박근혜 정부까지 금리를 낮추어서 돈을 푸는 바람에 지금처럼 내수경기가 얼어붙고 말았다.

 

현 정부는 조만간 신DTI 그리고 DSR 방식을 도입하겠다고 했지만 그 역시 느슨하다는 점에선 마찬가지이다. 물론 이해는 간다, 갑자기 세게 조일 경우 부동산 시세 급락을 유발하면서 우리 경제 전체가 휘청거릴 수 있기 때문이다.

 

2005년에 도입된 DTI 제도가 우리 경제의 근본적인 활력을 다 망쳐먹은 셈이라 하면 너무 심한 말이 되는 걸까.

 

 

초저금리로 인해 생겨난 과다한 시중 부동자금의 부작용

 

 

총통화(M2) 대비 시중 유동성의 비율이 실로 엄청난 오늘의 현실이다. 금년 3월 자료에 의하면 총통화량(M2) 2천4백조의 40%에 달하고 있으니 이 또한 이례적인 일이다.

 

유동성 또는 부동자금이란 실업자 처지의 돈을 말한다. 노는 돈이다. 그 비율이 저렇게 높으니 돈이 갈 곳이 없다는 말이고 이는 돈이 취업할 데가 없다는 말이 된다.

 

이는 우리 경제가 초저금리 상태에 있음을 말해준다. (적정 금리는 나마마다 다르기에 외국과의 단순 비교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우리 금리가 미국보다 더 낮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아니겠는가.)

 

우리나라 기준금리가 2.00% 미만으로 추락한 것이 2015년 3월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만 3년이 더 지났다.

 

 

뭐든지 3년이 넘으면 변화가 생기는 자연순환의 이치

 

 

이 대목에서 나 호호당이 정립한 '자연순환의 이치'를 빌려 얘기를 좀 하겠다.

 

세상의 일은 으레 만 3년 즉 36개월이 지나면 크건 작건 간에 어떤 변화가 생긴다. 좋은 일도 반대로 나쁜 일도 모두 그렇다. 이번 부동산 급등 바람은 7월부터 현저해지기 시작했는데 이는 2015년 3월부터 2.00% 미만의 비정상적인 초저금리가 3년을 넘어 지속되었기 때문이란 생각을 한다. 즉 올 해 3월까진 기준금리가 2.00% 위로 회복되었어야 했다는 생각이다.

 

출발부터 무리하게 설정된 DTI 제도로 인해 생겨난 가계부채 문제, 그러다보니 부진한 내수를 살리기 위해 또 다시 장기간의 초저금리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생겨나고 있는 각종 부작용.

 

 

우리 경제는 전형적인 성인병을 앓고 있으니

 

 

우리 경제를 사람의 건강에 비유하면 전형적인 대사질환 즉 이른바 성인병 증세라 할 수 있는 비만, 당뇨, 고혈압, 심장병을 앓고 있는 셈이라 본다.

 

비만은 경제성장률이 떨어져서 신진대사에 이상이 생긴 것과 같고, 당뇨의 경우 금리를 낮추어서 통화 공급을 늘려도 그 돈이 제 갈 곳으로 가지 않고 유동성 즉 혈중의 포도당이 많은 상태로 머물고 있는 상황과 같다.

 

고혈압은 지나친 저금리로 돈을 과하게 공급하는 것과 같고, 또 혈관 속에 생긴 이물질은 우리 경제의 효율이 떨어지는 현상과 같다. 마지막으로 심장질환은 펌프질을 과다하게 한 것, 즉 재정 지출과 확대에 의존하다보니 혈액을 공급하는 심장 자체가 서서히 피폐해지는 것과 같다.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아서

 

 

흔히 성인병을 고치려고 할 때 얘기되는 것이 생활습관의 개선이다. 하지만 말이 쉽지 습관을 바꾼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적절한 수면 시간, 규칙적인 생활, 맛이 있는 기름진 음식 회피, 금연과 금주, 적절한 운동시간 확보, 어느 한 가지라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어지간한 위기가 아니면 사람은 해오던 대로 즉 습관대로 살아가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서 생활습관 개선을 우리 스스로 자발적으로 하기란 정말 어렵다는 말이다.

 

한 개인의 경우에도 자발적으로 생활습관을 바꾸기 어려운데 그것이 나라 전체라고 한다면 그게 참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예전부터 참으로 많이 생각해왔다. 자연순환의 이치에 따르면 우리 대한민국의 경우 2019년부터 2028년에 이르기까지 10년간 대단히 어려운 시기를 지내도록 예정되어 있는데 왜 그래야 할까에 대해 무수히 생각해왔고 또 생각해보았다.

 

그런데 올 해 2018년이 되어서야 그게 그럴 수 있겠다는 점에 대해 수긍이 갔다.

 

 

정말로 다급해지면 생활습관을 바꿀 수 있게 될 것이니

 

 

개인으로 치면 생활습관을 여간해선 바꾸지 못하다가 정작 병이 생기거나 목숨에 위협을 느끼게 되면 담배도 끊고 술도 끊고 등등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게 되듯이 거대한 나라 또한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2019년부터 10년간, 우리 전체가 여러 어려운 일을 겪다 보면 더 이상 안 되겠다, 이대론 안 되겠다는 생각이 전체 국민들 사이에서 공감대가 형성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2029년에 가서 생활습관을 바꾸는 일, 진정한 개혁이 이루어질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2029년이 되면 또 다시 건강한 우리 경제가 만들어져가기 시작할 것이란 생각을 한다.

금융위기 때보다 더 많은 시중 부동자금



작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시중 유동성 또는 부동자금이 1000조를 넘어섰다. 산업은행 경제연구소의 금년 3월 보고서에 의하면 국내 총생산(GDP)대비 시중 부동자금의 비율이 가장 높았던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의 57%보다 더 높은 63%라 한다. 


부동 자금 또는 유동성이란 현금을 포함해서 단기금융상품에 머물고 있는 돈을 말한다. 그런데 부동 자금이 많다는 말은 돈이 갈 곳을 찾지 못한다는 것, 즉 투자할 곳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시중 유동성이 글로벌 쇼크 상태였던 2009년의 금융위기 직후보다 더 많다는 것은 우리 경제가 대단히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음을 의미한다. 이에 산은연구소에선 이른바 ‘유동성 함정’을 우려하고 있다. 



유동성 함정에 빠져들고 있는 우리 경제



시중에 자금은 많으나 그것이 기업의 투자나 가계 소비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 바로 유동성 함정인데, 이는 우리 경제가 이미 불황 또는 침체로 들어서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렇게 되면 사실 한은이 금리를 더 낮추어서 시중에 자금을 풀어도 효과를 볼 수가 없다. 한은의 통화정책 기능이 극도로 취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은이 반대로 금리를 올리기란 더 어렵다. 금리를 올려서 시중 자금을 흡수해가기 시작하면 쇼크가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중 유동성은 풍부하나 그 돈들이 갈 곳을 찾지 못하는 현상, 이는 경제 침체의 초기 국면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돈도 일을 해야 제 역할을 한다. 돈이 일을 한다는 것은 계속해서 손바뀜을 통해 손에서 손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 결과 투자가 이루어지고 소비가 늘어난다. 그런데 지금 시중에는 엄청나게 많은 돈들이 이자도 몇 푼 되지 않는 단기금융상품, 사실상 돈의 여관방에 틀어 박혀서 빈둥거리고 있다, 어디 갈 데 없나? 하면서 말이다. 


앞에서 현재 시중 유동성의 GDP 대비 비율이 2009년 금융위기 때의 57%보다 더 많은 63%라고 했는데 이를 다른 각도에서 봐도 된다. 


현재 시중 유동성이 1천조를 넘었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시중 통화량(M2) 2천4백조의 40%에 해당되는 비율이다. 전체 돈 중에서 놀고 있는 돈, 즉 실업자 신세인 돈이 그렇게나 많다는 말이다. (착각하지 마시길, 사람 실업자가 아니라 돈이 그렇다는 말이다.)


자금에 여유가 있는 기업의 경우 마땅한 투자처가 없다는 얘기이고 퇴직금을 받은 은퇴자들 역시 함부로 돈을 굴릴 엄두가 나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부동산 상승, 부동자금들의 필사적인 출구전략



이토록 시중 부동자금이 들끓고 있던 마당이니 작은 핑계거리만 생겨도 즉각 그 쪽으로 돈이 쏠리고 몰려들 판국이었지 않겠는가. 그런데 정부나 서울시장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구도심재생이라든가 여의도 용산 통개발론과 같은 빌미를 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얼마 전부터 부동산 시장엔 ‘똘똘한 한 채’라는 심상치 않은 말이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결국 그 말이 먹혀들었다. 그래 맞는 말이야! 하면서 동조심리가 늘어나더니 시장이 한 방에 훅 하고 움직이고 있다. 주식으로 치면 ‘주식은 역시 블루칩이다’ 하는 것과 같은 어법이다. 


게다가 서울 강남의 경우 자사고 폐지로 인해 더더욱 똘똘한 한 채로서 각광을 받은 셈이다. 이에 용산과 여의도 그리고 강남이 합세하면서 부동산 시세가 들먹이기 시작했고 그 바람에 나름 출구를 찾았다 싶은 부동자금들이 덩달아 움직이면서 서울 전역은 물론 일부 경기도 지역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번 부동산 문제는 경기 불황으로 인해 유례가 없을 정도로 누적된 시중의 엄청난 유동성이 필요조건이었다면 여기에 정부와 서울시의 안일한 인식이 계기가 되어 돌연 부동산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디고 봐도 무방하다. 


그 바람에 자가 주택이 없는 사람들은 우울해할 것이고 이제라도 집을 사려는 사람은 매물이 없어서 당황스럽고, 대출을 받아볼 까 하는 사람은 대출 규제 때문에 불만이 쌓이고 있다. 



너무 성급하고 강력 일변도의 정부 대응책 또한 걱정



그 바람에 정부는 황급히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이번 주 안에 초강력 대책을 발표하겠다는 것이다. 그린벨트 해제라든가 종부세 인상 등등의 내용이 들려오고 있다. 


그런데 정부의 신속한 대책 마련 또한 사실 걱정이 된다. 정부의 대책이란 것이 장기적으로 심리적 안정을 도모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면 모를까 당장 부동산 상승세를 꺾어보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 또 다시 연이어 대책을 발표해야 하는 악순환이 염려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부동산 대책이 무려 17 차례나 이어졌음에도 시장의 흐름을 바꿔놓지 못 했던 쓰라린 기억이 다시 되풀이되어서야 되겠는가. 당시 정부는 시장을 이겨보겠다는 생각에 몰두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유롭게 이동하는 돈을 강제로 묶어놓을 순 없는 노릇, 시장을 이겨보겠다는 생각보다는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돈들이 부동산 쪽으로 흘러가는 것이 결코 이롭지 않다는 것, 수익성을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게끔 유도하는 방식이 더 좋지 않겠는가 싶다. 


아무튼 현 시점에선 많은 국민들이 우려하고 우울하고 걱정을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한 가지 하고픈 말이 있다. 



이번 상승은 예전 상승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번 부동산 상승이 예전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과거의 부동산 상승은 어쨌거나 우리 경제의 활력이 아직 살아있을 때에 나타난 일종의 가수요 현상이었다면 이번 상승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당시와는 달리 돈의 기대수익률이 지극히 떨어진 시점에서 그나마 부동산 투자가 조금은 더 좋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부동산 시세 상승이란 점이다. 


그렇기에 이번 상승은 전국적인 시세 상승과는 거리가 멀다. 서울 강남과 여의도 용산을 중심으로 해서 생겨난 부동자금의 유입이 기세를 타면서 서울시 전역으로 번지고 있을 뿐이다. 서울 전역으로 퍼질 수 있는 요인으론 역시 여전히 정부의 구도심재생 사업에 대한 기대 때문이라 본다. 


그렇기에 지금의 서울 부동산 시세 상승은 최근 기세가 워낙 강하다보니 강렬한 인상을 주고 있을 뿐, 장차의 경제 성장이나 활황에 대한 기대 수요 혹은 가수요가 아니란 점이다. 



‘똘똘한 한 채’란 말에 담긴 의미를 새겨볼 것 같으면



‘똘똘한 한 채’란 말부터가 그렇다. 전체적으로 여기저기 아무 집이나 돈이 되는 것이 아니란 얘기가 아닌가. 혹시 경제가 어려워져도 부동산 시세가 여간해선 잘 내리지 않을 수 있는 지역의 한 채, 여차해도 부채를 감당할 여력이 있는 강남과 같은 부촌 지역의 집 한 채에 대한 투자가 안전하고 동시에 수익성도 바라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담고 있다. 


따라서 ‘똘똘한 한 채’라는 말부터가 무차별적인 상승과는 거리가 있다. 증시에 비유하면 블루칩을 사라는 것이기도 하고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불황이 닥치더라도 주가가 크게 내리지 않을 ‘경기방어주’를 사라는 주문과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에겐 눈앞의 일이 걱정되고 불만이겠지만 냉정히 보면 이번 상승이 전국적인 부동산 가격 상승이 아니란 얘기이다. 우리 경제의 현 여건, 경제침체를 걱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국적인 부동산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하기 때문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얘기하고자 한다. 



결국 부동자금의 잘못된 일탈로 마무리될 공산



우리 경제의 현 여건 상 전국적인 부동산 상승으로 이어지긴 어렵다고 할 때 이번 서울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부동산 상승세는 갈 곳 없이 여관방에서 빈둥거리며 놀고 있는 부동자금들의 잘못된 선택지로 귀결될 가능성이 아주 농후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유동성 함정에 빠져들고 있는 우리 경제 상황에서 누적된 부동자금의 일부가 펼치고 있는 마지막 ‘불꽃놀이’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불꽃놀이, 10월 여의도와 한강 공원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불꽃놀이 축제마당이 아니라 유동성 함정에서 벗어나려는 부동자금들의 마지막 분출일 수도 있다는 애기이다. 



다른 선진국 부동산 상승과의 차이점



미국의 양적완화로 인해 거의 모든 나라들이 돈을 엄청나게 풀었다. 지금 글로벌 전체적으로 부동자금이 넘쳐나고 있고 그 바람에 전 세계 주요도시들의 부동산 가격도 많이 올랐다. 특히 차이나머니의 유입이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도 오를 것이란 생각 또는 기대심리도 없진 않겠지만 그들과 우리는 차이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미국이나 영국 유럽 등지의 나라들은 경제가 그런대로 호황 또는 호조인데 반하여 우리 경제는 침체로 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이제 정리한다. 



장기 저금리와 유동성 함정으로 인한 잘못된 탈출구



지금의 서울 지역 부동산 상승은 그 원인이 결국은 장기에 걸쳐 지속되고 있는 저금리 기조와 경제 활력의 상실에서 비롯된 유동성 함정에 있다고 본다. 이에 놀고 있는 돈들이 많다 보니 이번에 어쩌다가 부동산 쪽으로 출구를 찾아 돈이 몰리고 쏠리고 있는 현상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생각이다. 


그렇기에 정부 역시 너무 급작스럽고 강한 대응책으로 시장과 싸우기보다는 한 걸음 물러서서 심리를 진정시킬 수 있는 대책을 내놓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금리인상은 당장의 해답으로선 너무 위험하다.



일부에선 금리인상이 해답이란 지적도 있지만 안 그래도 어려운 우리 상황에서 성급한 금리인상은 큰 충격과 쇼크를 불어올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을 기하는 것이 일단은 더 나을 것으로 여겨진다. 



경제 침체로 들어서는 국면에서



기업들의 94%가 우리 경제가 침체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한다. 절대 다수가 그렇게 여기고 있으니 틀린 생각이 아닐 것이다. 


이처럼 경제가 침체로 들어설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가운데 부동산 상승이 지속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솔직히 얼마나 되겠는가 말이다. 늦어도 내년 봄이면 전반적인 경제 침체와 더불어 부동산 시장 또한 그렇게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부동산에서 계속 답을 찾는 것은 한계가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부동산 때문에 가계부채가 오늘날 1500조가 되었고 그 바람에 소비여력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또 부동산이 오른다? 부동자금이 많다 보니 일부가 일탈한 정도일 뿐, 지속적인 수익성을 기대할 수 없는 이상 대세를 이루긴 어렵다는 얘기이다. 부동자금이란 놈들이 너무 오래 놀다 보니 잠시 일탈한 것이고 역시 시간이 흐르면 제 정신을 찾기 마련이니 그렇다. 


짧지 않은 글이었다. 이 글이 아무쪼록 지금의 현상에 너무 초조해하거나 불안해하지 말고 생각을 진정시키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