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이미 잘 사는 부국이 되었다.



미국 CIA가 해마다 작성 발표하는 월드 팩트 북(World Fact Book)에 근거해서 뽑아보면 2017년 우리나라의 1인당 명목 GDP는 30,000 달러로 나와 있다. 하지만 실질소득을 반영하는 구매력평가(PPP)에 의하면 39,400 달러로 되어있다. 


여전히 잘 사는 나라로 알려진 일본을 보자. 구매력평가로는 1인당 42,800 달러로 나온다. 실질소득 면에서 우리가 일본의 92% 수준이니 사실 별반 차이가 없다. 말이 나온 김에 좀 더 얘기하면 한 때 세계를 호령했던 영국의 구매력평가 기준 1인당 소득 역시 44,100 달러라는 사실이다. 


우리의 1인당 실질소득이 일본이나 영국에 비해 사실 크게 차이가 나지도 않는다. 그러니 우리 대한민국은 어느새 세계적으로 잘 사는 나라가 된 셈이다. 전체 경제규모에 있어서도 우리는 GDP 1조5380억 달러로서 세계15위의 경제 강국이다. 



참으로 엄청난 발전과 성장이었다.



1960년대 세계 최빈곤국의 처지에서 오늘날 이렇게 놀라운 성장과 발전을 이룩한 우리 대한민국이다. (1955년생인 나 호호당이 기억하기로 어린 시절 ‘필리핀’이라 하면 바나나가 많아서 먹을 것 풍부하고 생활도 우리보다 훨씬 잘 사는 나라로 여겼을 정도로 우리 처지가 어려웠다.)


지금까지의 얘기인 즉 우리나라가 50년 만에 최빈곤국의 처지에서 글로벌 전체적으로 상당히 부유한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다.


 

런데 행복하지 않은 대한민국



그런데 참 이상하다, 정말 이상하기만 하다. 잘 사는 나라가 되었으니 만족하고 행복해하게 살아야 할 것 같은데 우리 국민이면 누구나 알다시피 전혀 그렇지가 않다. 사회의 분위기로 친다면 1990년대가 훨씬 활력이 있고 희망도 많았다. 



촌티가 났음에도 활기에 찼던 1990년대



이 대목에서 생각나는 게 있다. 1994년 평균 시청률 40%대를 기록했던 인기 드라마 “서울의 달”이 그것이다. 나 호호당 역시 당시 그 드라마를 열심히 시청했다. 그런데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우연히 그 드라마를 다시 볼 수 있었는데, 보면서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달동네는 물론이고 서울의 번화가 풍경이 너무나 초라해서 충격을 받았다. 기억하기론 괜찮았던 것 같은데 저렇게 초라했던가 싶었다. 


그런데 더 생소했던 것은 소시민의 애환을 그리고 있었음에도 활력이 넘치고 있었다는 점이다. 촌스럽기도 했지만 모두가 나름의 꿈과 희망을 안고 열심히 살고 있었다. 정말이지 에너지가 느껴졌다. 젊고 건강한 대한민국의 모습이 그 드라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러고 나서 생각해보니 2000년 중반 이후 우리의 텔레비전 드라마는 소위 ‘막장 드라마’가 축을 이뤘다. 그리고 2010년대 들어선 다시 조금 달라졌다. 막장 보다는 환타지가 중심에 놓이기 시작했다. 시크릿 가든, 별에서 온 그대와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그 이후 과거를 되돌아보는 ‘응답하라’ 시리즈가 풍미했다. 



올드보이 대한민국



현실이 괴로우니 환타지인 것이고 회고풍의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는 것은 이제 우리 대한민국도 나이가 들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늙은 대한민국이 된 것이다. 올드 보이 코리아!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의 선전문구가 ‘다이나믹 코리아’였건만 이제 그 역동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나라가 늙은 것이다. 나라가 노화되다 보니 젊은이들에게서도 열정의 패기보다는 시닉(cynic)한 모습을 더 많이 느낀다. 


가끔 젊은이들이 텔레비전에 나와 인터뷰 할 적엔 주먹을 불끈 쥐고 패기 찬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건 카메라 앞이라서 그런 것 같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유행하기 시작한 말들은 N포 세대, 문송, 헬 조선, 이생망, 주로 이런 말들이 아닌가. 


푸념이나 엄살도 사라진 최근의 분위기



그런데 더 기분이 께름칙한 게 있다. 최근 들어 젊은이들 사이에서 새로운 신조어가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헬 조선이란 말이 유행할 적만 해도 그래 현실이 힘드니 저런 푸념이라도 해야지 했는데 최근 들어선 젊은이들의 엄살이나 푸념이 귓전에 들려오지 않는다. 


원래 힘들어지면 엄살도 피우고 푸념도 하기 마련인데, 진짜 어려워져서 어떤 임계치를 넘어서면 오히려 조용해지는 것이 사람의 일반적인 심리이다.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自嘲(자조)적인 유행어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 젊은이들이 침묵하고 있다는 것, 이게 영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러고 보니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소리 높던 反美(반미)의 목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는다. 그 역시 하나의 시대적 유행이자 風潮(풍조)였던 셈이다. 


왜 그럴까?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우리 국민들의 자긍심과 자신감이 넘쳐났기에 우리 주변의 강국들은 죄다 ‘놈’자를 붙여 불렀었다. 미국 놈, 일본 놈, 중국 놈, 러시아 놈,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최근엔 그런 소리마저 드문 것을 보니 우리 대한민국도 기력이 쇠한 모양이다. 요란했던 반미 역시 우리가 급성장하고 국력이 강해지면서 생겨난 자신감의 반영이었던 것이고 이젠 그 자신감이 많이 약해진 것 같다. 


젊은이들이 힘들어도 이젠 불평을 하지 않고 반미의 목소리 역시 사라졌다. 젊은이들의 목소리, 경륜이 부족해도 그들의 주장엔 귀담아 들을 것이 있는 법이고 진보 좌파의 주장 역시 때론 지나치게 도덕적이고 현실엔 맞지 않아도 그 역시 미래의 지향점을 보여준다. 


그런데 최근엔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조용하다. 



늙고 지친 대한민국



사람들 사이에서 피로감이 느껴진다. 뭔가 이젠 많이 피곤해진 감이 든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피로사회’란 제목의 책이 제법 화제가 되었다. 읽어보니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다. 간단히 내용을 애기하면 오늘날 세상은 누군가의 강제가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갈구고 착취하고 소진시키는 사회란 것이었다. 


꼭 책의 내용과 같은 의미는 아니라 해도 우리 대한민국은 그간 너무 열심히 달려왔고 서로 간에도 치열하게 경쟁해왔다. 너무 전투적인 시간들로 채워졌다. 그러니 피곤을 느끼는 정도가 아니라 어떤 한계점을 넘어선 것도 같다. 


이 대목에서 얘기를 잠깐 비틀어간다. 


나 호호당은 운명이란 것이 뭔지 궁금해서 연구해온 사람이다. (언어학과 역사에 대한 취미도 상당하지만 아무튼 블로그를 통해선 주로 운명을 주제로 얘기하고 있다.)


그러다가 자연순환운명학이라 것을 정립하게 되었다. 그 바람에 늘 사이클, 주기, 순환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평소 순환이란 자연의 四季節(사계절)과 같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순환을 달리 표현하면 삶의 순환, 즉 생노병사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만이 아니라 조직이나 단체, 나아가서 나라도 그런 과정을 밟는다고 여긴다. 


수시로 우리 대한민국의 國運(국운)에 대한 얘기도 한다, 60년 순환을 주로 자연의 계절에 비유해서 얘기하지만 이를 사람의 과정으로 얘기하면 우리 대한민국은 이미 늙고 병이 들어 얼마 안 있으면 죽게 될 단계에까지 와있다는 생각을 한다. 


다만 오해하지 마시길. 우리나라는 2024년으로서 1964년부터 이어온 60년의 삶을 마치고 또 다시 새롭게 태어날 것이란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현생은 앞으로 6년밖에 남지 않은 것이고 그 이후론 새로운 대한민국이 태동할 것이란 얘기이다. 


1964년에 출발해서 지금까지의 54년은 정말 대단한 세월이었다. 전체적으로 대단히 역동적인 세월이었다. 



이제 좀 쉬면서 리빌딩이 필요해



그러니 이제 많이 지친 것이 사실이다. 지쳤으니 활력이 떨어지는 것 또한 당연한 얘기이다. 이에 우리 대한민국은 내년 2019년부터 10년에 걸쳐 쉬게 될 것이다. 


쉬는 동안 많은 것들이 부진의 늪에 빠지고 어려운 일들이 닥칠 것이다. 늘 역경을 헤치고 나온 대한민국이었지만 그런 역동성을 당분간은 보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 쉬어야 하기 때문이다. 


프로 야구를 보면 부진에 빠진 팀은 당장의 성적보다도 시간을 갖고 리빌딩을 한다. 그처럼 우리 대한민국도 리빌딩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앞의 글, “금융위기 이후 10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에서 우리의 상황에 대한 글을 이어서 쓰겠다는 말을 했다. 


오늘 글은 그에 앞서 우리가 장차 어려워질 터인데 왜 그런가에 대해 이제 우리 대한민국이 쉬어야 할 때가 되었다는 말을 하고자 함이었다.

다음 글에서 장차 우리가 겪을 수도 있는 여러 어려운 난제들에 좀 더 구체적인 얘기를 하고자 한다.


 

미국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10년이 흘렀으니



추석 연휴가 이어지고 있다. 한가롭다 보니 오늘은 시간을 갖고 천천히 생각해가면서 글을 써보고자 한다. 


오늘의 주제는 다소 묵직하다. 지금이 2018년 9월이니 미국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정확하게 만 10년이 된 시점이다.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살펴보고 아울러 향후의 일에 대해 전망해보는 글을 준비해보고자 한다. 


미국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이제 만 10년이 흘렀다고 하는 것은 2008년 9월을 미국 금융위기의 발발 시점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미국 재무부가 모기지 대출 손실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양대 모기지 업체에 대한 국유화 조치를 단행하고 동시에 초대형 투자은행인 리먼 브라더스를 파산 처리했던 때이다. 



양적완화란 과연 무엇이었는가?



그 후 11월부터 미국 연준(Fed)은 세계 중앙은행 역사상 초유의 조치,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초극단의 실험적 방식인 양적완화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일반인들은 ‘양적완화’라고 하는 것이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이 그저 막대한 돈, 3조6천억 달러를 5년간에 걸쳐 찍어내어 시중에 공급한 대단한 일로만 알고 있다. 하지만 이는 그저 막연한 이해에 불과하다. 


이게 얼마나 엄청나고 심지어 무모하다고까지 볼 수 있는가 하면, 기존의 경제이론대로라면 미국 연준의 양적완화를 통한 돈 뿌리기는 미국 경제에 대해 5년에 걸쳐 무려 600%의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도 있는 극단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600%의 인플레이션을 의도적으로 발생시켰다면 그 경제가 어떻게 될 것인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하겠다. 가령 당신이 가진 자산가치가 5년 만에 1/6로 떨어진다고 생각해보라, 그게 감당이 되겠는가 말이다. 


미국 연준이 취한 양적완화는 그처럼 무지막지한 일이었다. 그만큼 시국이 비상상황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2008년 9월 미국 금융위기 발생에 대해 연준이 수행한 역할은 마치 사람이 큰 사고로 인해 과다출혈로 곧 죽을 것만 같을 때 그 사람의 평소 혈액량의 무려 5배를 연속적으로 줄곧 수혈한 것과 같은 조치였던 셈이다. 


그렇기에 연준의 양적완화 정책이란 한마디로 말해서 극단적인 인플레이션 유발 정책이었다. 


미국이 양적완화를 하자 유로존과 영국 그리고 일본 역시 사실상 같은 조치를 취했다. 



그럼에도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데 글로벌 경제가 워낙 비상시국이었기에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았고 시중에서 본원통화 공급에 따른 신용창조도 기대만큼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새로운 화폐금융이론이 나타나야 할 것이다.) 


아직 양적완화 정책이 장차 어떤 부작용을 가져올 것인지에 대해 종합적으로 알고 있는 경제학자는 없지만 그래도 일부 파악되고 있는 부작용에 대해 얘기해보자. 



10년 만에 미증유의 속도로 불어난 글로벌 부채



금융위기 이후 분명한 사실은 글로벌 전체 부채가 2007년 4/4분기의 142조 달러에서 현재 247조 달러로서 사이에 무려 95조 달러나 늘어났다는 점이다. 나아가서 2000년 4/4분기의 87조 달러에 비하면 근 3배로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금융 위기 이후 글로벌 성장을 주도한 것은 단연 중국이라 하겠는바, 동시에 부채 증가액도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점이다. 결국 부채증가를 통한 성장, 즉 거품성장을 유지해온 중국이라 하겠다. (이는 중국 정부보다도 공사와 같은 국영기업들과 지방정부가 주도했다.)



성장률을 앞서는 부채증가율, 근본적인 문제점



금융위기 이후의 글로벌 경제성장과 부채 증가세를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2000년에서 올 해 2018년까지 글로벌 총생산은 2.1배 정도 늘어난 반면 부채는 3배로 늘어났다. 따라서 글로벌 부채증가율이 글로벌 경제성장률을 훨씬 앞서고 있는 형국이다. 


이처럼 글로벌 전체적으로 경제성장률보다 부채증가율이 앞선다는 것은 결국 자본의 생산성, 즉 일정한 자본을 투입했을 때의 생산성이 금융위기 이후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부채가 많이 증가한 곳은 중국이 으뜸이지만 미국 역시 만만치 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미국 연준이 찍어낸 돈이 시중 경제로 투입되기 보다는 그 대부분이 대기업의 차입을 통한 자사주 매입과 같은 비정상적인 곳에 흘러들었기 때문이다. 반면 기업의 연구개발이나 신규투자는 대단히 적었다. 


그 바람에 미국 다우존스의 경우 금융위기 발발 이전의 13000 포인트에서 현재 26000까지 정확하게 2배 상승했다. S&P나 나스닥과 같은 것들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는 분명히 비정상적인 상승이고 지속가능하지 않은 상승이다. 



전혀 새로운 난국에 봉착할 수도 있는 글로벌 경제



이것으로 볼 때 2008년 금융위기에서 지금까지 10년 사이 위기를 극복하긴 했지만 새로운 문제점, 아직 파악되지 않은 문제점과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볼 때, 글로벌 경제는 장차 전혀 새로운 문제점에 봉착할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다시 말해서 글로벌 경제가 어쩌면 또 다른 위기의 입구에 서있는지도 모른다는 얘기이다. 



이제 水門(수문)을 조여가고 있으니



더욱이 미국 연준이 이제 서서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금리를 인상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간 한껏 풀려나간 돈들을 다시 빨아들이는 과정에서 어떤 돌발변수가 튀어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간단히 말해서 미국 연준은 글로벌 경제 전체에 물을 공급하는 글로벌 수도국 혹은 상수원이라 봐도 무방하다. 물론 여기에서 물은 돈을 뜻한다. 미국 연준이 물의 공급을 조절하는 키가 바로 금리, 즉 Fed Rate 이다. 


금리가 높으면 水門(수문)을 조이는 것이고 금리가 낮으면 수문을 개방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금리를 올린다는 것은 현재 수문을 조인다는 말이 된다. 


벌써 터키라든가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와 같은 나라들은 물 부족 사태, 글로벌 유동성인 달러 부족 사태에 직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연준의 지속적인 금리 인상에 따라 최근엔 비교적 건실한 것으로 알려졌던 인도 경제에도 문제가 생기고 있다. 이에 인도의 통화인 루피가 사상 최저치에 근접할 정도로 추락하고 있고 고공 행진을 이어가던 인도 증시도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미국의 트럼프는 당장은 중국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긴 해도 사실상 모든 교역국을 상대로 전 방위로 무역전쟁을 이어갈 참이다. 일본은 물론이고 독일 역시 주요 타깃이 되고 있다는 말이다. 



독일의 지나친 수출은 또 다른 문제



사실 유로존 지역은 그 리더 격인 독일 스스로가 문제가 되고 있다. 독일의 무역흑자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경제규모와 비교해도 가장 크다. 2017년의 경우 독일의 수출은 1조4천억 달러였고 수입은 1조1천억 달러로서 흑자가 무려 3천억 달러에 달하고 있는 바, 이는 독일 GDP 3조6천8백5십억 달러의 8%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이란 점이다. 


참고로 얘기하면 무역흑자가 많아서 미국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중국의 경우 GDP 대비 무역흑자규모가 3.5% 정도라는 사실이다. 독일에 비하면 그 절반도 되지 않는다.


그 바람에 나머지 유로존 국가들, 막대한 구제 금융을 받은 그리스만이 아니라 경제규모가 큰 이탈리아까지도 상당한 부담을 안고 시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독일과 이탈리아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 차이 즉 금리 스프레드가 무려 3%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는 사실 대단한 위험 신호라고 하겠다. 최근 이탈리아에서 포퓰리즘 정권이 들어서고 이탈렉시트란 말까지 나오고 있는 배경이라 하겠다.


일본 역시 1990년 버블 붕괴 이후 무려 수십년간 제로금리를 유지해오고 있지만 인플레이션 목표인 2%가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정상적인 나라가 없을 지경이니



지금까지의 얘기들을 압축할 것 같으면 현 2018년 9월의 시점에서 경제가 금융위기 이전처럼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나라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 얘기이다. 


중국, 엄청난 부채 증가와 투자의 비효율성, 미국, 자사주 매입에 치중하고 있는 카지노 경제와 양극화, 일본, 지독한 저성장과 인구 감소, 독일, 사실상의 제로금리와 너무나 큰 무역흑자 부담, 이탈리아, 부채를 감당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경제, 영국 역시 저성장 국가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는 와중에 글로벌 전체 부채는 무지막지하게 늘어난 마당이다. 부채 증가, 즉 통화량의 증가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성장이 이루어졌다면 모를까, 앞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성장속도보다 부채 증가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점이 그나마 우리가 알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라 하겠다. (양적완화의 또 다른 후유증이 나타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겨울이 오고 있다고 한다.



미국 연준이 최근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자 미국 금융시장 사람들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분명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지나치게 풀려나간 돈들을 회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고 결국 금융긴축이란 얘기인데 다른 것을 떠나서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글로벌 경제에 겨울을 몰고 올 것이니 말이다. 


대개의 경우 어려운 문제는 한 번에 말끔하게 해결되지 않는다, 형태를 바꿔서 또 다른 문제점으로 옮겨간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 면에서 2008년 미국 금융위기로 인해 촉발된 글로벌 경제 위기는 아직 해결이 되지 않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오늘 글은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향후 우리 경제가 짊어져야 할 부담에 대해서 다음 글에서 얘기해보기로 한다.


며칠 사이 글을 올리지 못한 이유

 

 

며칠 사이 글쓰기에 실패하고 있다. 생각이 너무 많으면 글을 쓰다가도 정리가 되질 않는다. 최근의 부동산 상승과 초저금리 문제에 관해 글을 썼는데 그냥 다섯 개의 원고가 미완성으로 남아있다.

 

금리에 관한 것은 전문적인 것이 많아서 줄여 쓰면 부족한 감이 들고 조금 자세히 쓰다 보면 독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쓰다만 원고로 남게 된다. 뿐만 아니라 현 정부가 44년 만에 한은 총재를 연임시킨 이례적인 일에 대해서도 자칫 민감한 내용이 될 까봐 그만 쓰게 된다.

 

 

2015년 3월, 우리 경제의 활력 상실이 확인된 시점

 

 

2015년 3월 우리나라 기준금리가 1.75%로 내렸다. 그간 2.00% 이하는 없던 일이기에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무려 1.25%까지 내렸다가 다시 올렸지만 여전히 1.50%에 머물고 있다.

 

나라마다 기준금리의 적정 수준은 다를 수밖에 없지만 우리의 경우 2.00% 미만은 우리 경제에 있어 부작용만 낳을 뿐 좋을 까닭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처음부터 잘못 설정된 DTI 기준

 

 

우리 경제는 가계부채 1500 조를 돌파하면서 소비여력을 소진한 바람에 경기가 날로 부진해져가고 있다. 사실 이런 게 된 배경에는 처음부터 정부가 설정한 부채상환비율 즉 DTI가 지나치게 느슨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외국의 경우 금융회사들이 자발적으로 적용하는 DTI 기준은 28-36% 수준인데, 우리는 2005년 도입 당시 부동산투기억제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제도화되었는데 그 비율이 무려 60%로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문제가 되고 말았다.

 

소득의 무려 60%를 부채 상환에 쓴다는 것이 사실 말이 되지 않는 얘기인 까닭이다. 가령 당신이 월 5백만원을 버는데 3백만원을 부채 상환할 것 같으면 그게 생활이 되겠는가.

 

DTI를 60%로 설정했다는 것은 사실 대출이 거절되는 일이 전혀 없도록 하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이다. 그 결과 오늘날 가계부채 1500 조라고 하는 막대한 부담으로 인해 우리 경제가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대출이 편해지면 돈 쓸려는 사람은 당장 좋았을 것이고 금융회사들은 수익이 늘어서 좋았으며 정부 입장에서도 시중에 돈이 잘 공급되니 경제가 잘 돌아간다, 당장은 모두가 좋았다. 이에 노무현 정부부터 이명박, 그러다가 박근혜 정부까지 금리를 낮추어서 돈을 푸는 바람에 지금처럼 내수경기가 얼어붙고 말았다.

 

현 정부는 조만간 신DTI 그리고 DSR 방식을 도입하겠다고 했지만 그 역시 느슨하다는 점에선 마찬가지이다. 물론 이해는 간다, 갑자기 세게 조일 경우 부동산 시세 급락을 유발하면서 우리 경제 전체가 휘청거릴 수 있기 때문이다.

 

2005년에 도입된 DTI 제도가 우리 경제의 근본적인 활력을 다 망쳐먹은 셈이라 하면 너무 심한 말이 되는 걸까.

 

 

초저금리로 인해 생겨난 과다한 시중 부동자금의 부작용

 

 

총통화(M2) 대비 시중 유동성의 비율이 실로 엄청난 오늘의 현실이다. 금년 3월 자료에 의하면 총통화량(M2) 2천4백조의 40%에 달하고 있으니 이 또한 이례적인 일이다.

 

유동성 또는 부동자금이란 실업자 처지의 돈을 말한다. 노는 돈이다. 그 비율이 저렇게 높으니 돈이 갈 곳이 없다는 말이고 이는 돈이 취업할 데가 없다는 말이 된다.

 

이는 우리 경제가 초저금리 상태에 있음을 말해준다. (적정 금리는 나마마다 다르기에 외국과의 단순 비교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우리 금리가 미국보다 더 낮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아니겠는가.)

 

우리나라 기준금리가 2.00% 미만으로 추락한 것이 2015년 3월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만 3년이 더 지났다.

 

 

뭐든지 3년이 넘으면 변화가 생기는 자연순환의 이치

 

 

이 대목에서 나 호호당이 정립한 '자연순환의 이치'를 빌려 얘기를 좀 하겠다.

 

세상의 일은 으레 만 3년 즉 36개월이 지나면 크건 작건 간에 어떤 변화가 생긴다. 좋은 일도 반대로 나쁜 일도 모두 그렇다. 이번 부동산 급등 바람은 7월부터 현저해지기 시작했는데 이는 2015년 3월부터 2.00% 미만의 비정상적인 초저금리가 3년을 넘어 지속되었기 때문이란 생각을 한다. 즉 올 해 3월까진 기준금리가 2.00% 위로 회복되었어야 했다는 생각이다.

 

출발부터 무리하게 설정된 DTI 제도로 인해 생겨난 가계부채 문제, 그러다보니 부진한 내수를 살리기 위해 또 다시 장기간의 초저금리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생겨나고 있는 각종 부작용.

 

 

우리 경제는 전형적인 성인병을 앓고 있으니

 

 

우리 경제를 사람의 건강에 비유하면 전형적인 대사질환 즉 이른바 성인병 증세라 할 수 있는 비만, 당뇨, 고혈압, 심장병을 앓고 있는 셈이라 본다.

 

비만은 경제성장률이 떨어져서 신진대사에 이상이 생긴 것과 같고, 당뇨의 경우 금리를 낮추어서 통화 공급을 늘려도 그 돈이 제 갈 곳으로 가지 않고 유동성 즉 혈중의 포도당이 많은 상태로 머물고 있는 상황과 같다.

 

고혈압은 지나친 저금리로 돈을 과하게 공급하는 것과 같고, 또 혈관 속에 생긴 이물질은 우리 경제의 효율이 떨어지는 현상과 같다. 마지막으로 심장질환은 펌프질을 과다하게 한 것, 즉 재정 지출과 확대에 의존하다보니 혈액을 공급하는 심장 자체가 서서히 피폐해지는 것과 같다.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아서

 

 

흔히 성인병을 고치려고 할 때 얘기되는 것이 생활습관의 개선이다. 하지만 말이 쉽지 습관을 바꾼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적절한 수면 시간, 규칙적인 생활, 맛이 있는 기름진 음식 회피, 금연과 금주, 적절한 운동시간 확보, 어느 한 가지라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어지간한 위기가 아니면 사람은 해오던 대로 즉 습관대로 살아가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서 생활습관 개선을 우리 스스로 자발적으로 하기란 정말 어렵다는 말이다.

 

한 개인의 경우에도 자발적으로 생활습관을 바꾸기 어려운데 그것이 나라 전체라고 한다면 그게 참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예전부터 참으로 많이 생각해왔다. 자연순환의 이치에 따르면 우리 대한민국의 경우 2019년부터 2028년에 이르기까지 10년간 대단히 어려운 시기를 지내도록 예정되어 있는데 왜 그래야 할까에 대해 무수히 생각해왔고 또 생각해보았다.

 

그런데 올 해 2018년이 되어서야 그게 그럴 수 있겠다는 점에 대해 수긍이 갔다.

 

 

정말로 다급해지면 생활습관을 바꿀 수 있게 될 것이니

 

 

개인으로 치면 생활습관을 여간해선 바꾸지 못하다가 정작 병이 생기거나 목숨에 위협을 느끼게 되면 담배도 끊고 술도 끊고 등등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게 되듯이 거대한 나라 또한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2019년부터 10년간, 우리 전체가 여러 어려운 일을 겪다 보면 더 이상 안 되겠다, 이대론 안 되겠다는 생각이 전체 국민들 사이에서 공감대가 형성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2029년에 가서 생활습관을 바꾸는 일, 진정한 개혁이 이루어질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2029년이 되면 또 다시 건강한 우리 경제가 만들어져가기 시작할 것이란 생각을 한다.

금융위기 때보다 더 많은 시중 부동자금



작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시중 유동성 또는 부동자금이 1000조를 넘어섰다. 산업은행 경제연구소의 금년 3월 보고서에 의하면 국내 총생산(GDP)대비 시중 부동자금의 비율이 가장 높았던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의 57%보다 더 높은 63%라 한다. 


부동 자금 또는 유동성이란 현금을 포함해서 단기금융상품에 머물고 있는 돈을 말한다. 그런데 부동 자금이 많다는 말은 돈이 갈 곳을 찾지 못한다는 것, 즉 투자할 곳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시중 유동성이 글로벌 쇼크 상태였던 2009년의 금융위기 직후보다 더 많다는 것은 우리 경제가 대단히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음을 의미한다. 이에 산은연구소에선 이른바 ‘유동성 함정’을 우려하고 있다. 



유동성 함정에 빠져들고 있는 우리 경제



시중에 자금은 많으나 그것이 기업의 투자나 가계 소비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 바로 유동성 함정인데, 이는 우리 경제가 이미 불황 또는 침체로 들어서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렇게 되면 사실 한은이 금리를 더 낮추어서 시중에 자금을 풀어도 효과를 볼 수가 없다. 한은의 통화정책 기능이 극도로 취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은이 반대로 금리를 올리기란 더 어렵다. 금리를 올려서 시중 자금을 흡수해가기 시작하면 쇼크가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중 유동성은 풍부하나 그 돈들이 갈 곳을 찾지 못하는 현상, 이는 경제 침체의 초기 국면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돈도 일을 해야 제 역할을 한다. 돈이 일을 한다는 것은 계속해서 손바뀜을 통해 손에서 손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 결과 투자가 이루어지고 소비가 늘어난다. 그런데 지금 시중에는 엄청나게 많은 돈들이 이자도 몇 푼 되지 않는 단기금융상품, 사실상 돈의 여관방에 틀어 박혀서 빈둥거리고 있다, 어디 갈 데 없나? 하면서 말이다. 


앞에서 현재 시중 유동성의 GDP 대비 비율이 2009년 금융위기 때의 57%보다 더 많은 63%라고 했는데 이를 다른 각도에서 봐도 된다. 


현재 시중 유동성이 1천조를 넘었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시중 통화량(M2) 2천4백조의 40%에 해당되는 비율이다. 전체 돈 중에서 놀고 있는 돈, 즉 실업자 신세인 돈이 그렇게나 많다는 말이다. (착각하지 마시길, 사람 실업자가 아니라 돈이 그렇다는 말이다.)


자금에 여유가 있는 기업의 경우 마땅한 투자처가 없다는 얘기이고 퇴직금을 받은 은퇴자들 역시 함부로 돈을 굴릴 엄두가 나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부동산 상승, 부동자금들의 필사적인 출구전략



이토록 시중 부동자금이 들끓고 있던 마당이니 작은 핑계거리만 생겨도 즉각 그 쪽으로 돈이 쏠리고 몰려들 판국이었지 않겠는가. 그런데 정부나 서울시장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구도심재생이라든가 여의도 용산 통개발론과 같은 빌미를 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얼마 전부터 부동산 시장엔 ‘똘똘한 한 채’라는 심상치 않은 말이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결국 그 말이 먹혀들었다. 그래 맞는 말이야! 하면서 동조심리가 늘어나더니 시장이 한 방에 훅 하고 움직이고 있다. 주식으로 치면 ‘주식은 역시 블루칩이다’ 하는 것과 같은 어법이다. 


게다가 서울 강남의 경우 자사고 폐지로 인해 더더욱 똘똘한 한 채로서 각광을 받은 셈이다. 이에 용산과 여의도 그리고 강남이 합세하면서 부동산 시세가 들먹이기 시작했고 그 바람에 나름 출구를 찾았다 싶은 부동자금들이 덩달아 움직이면서 서울 전역은 물론 일부 경기도 지역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번 부동산 문제는 경기 불황으로 인해 유례가 없을 정도로 누적된 시중의 엄청난 유동성이 필요조건이었다면 여기에 정부와 서울시의 안일한 인식이 계기가 되어 돌연 부동산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디고 봐도 무방하다. 


그 바람에 자가 주택이 없는 사람들은 우울해할 것이고 이제라도 집을 사려는 사람은 매물이 없어서 당황스럽고, 대출을 받아볼 까 하는 사람은 대출 규제 때문에 불만이 쌓이고 있다. 



너무 성급하고 강력 일변도의 정부 대응책 또한 걱정



그 바람에 정부는 황급히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이번 주 안에 초강력 대책을 발표하겠다는 것이다. 그린벨트 해제라든가 종부세 인상 등등의 내용이 들려오고 있다. 


그런데 정부의 신속한 대책 마련 또한 사실 걱정이 된다. 정부의 대책이란 것이 장기적으로 심리적 안정을 도모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면 모를까 당장 부동산 상승세를 꺾어보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 또 다시 연이어 대책을 발표해야 하는 악순환이 염려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부동산 대책이 무려 17 차례나 이어졌음에도 시장의 흐름을 바꿔놓지 못 했던 쓰라린 기억이 다시 되풀이되어서야 되겠는가. 당시 정부는 시장을 이겨보겠다는 생각에 몰두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유롭게 이동하는 돈을 강제로 묶어놓을 순 없는 노릇, 시장을 이겨보겠다는 생각보다는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돈들이 부동산 쪽으로 흘러가는 것이 결코 이롭지 않다는 것, 수익성을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게끔 유도하는 방식이 더 좋지 않겠는가 싶다. 


아무튼 현 시점에선 많은 국민들이 우려하고 우울하고 걱정을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한 가지 하고픈 말이 있다. 



이번 상승은 예전 상승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번 부동산 상승이 예전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과거의 부동산 상승은 어쨌거나 우리 경제의 활력이 아직 살아있을 때에 나타난 일종의 가수요 현상이었다면 이번 상승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당시와는 달리 돈의 기대수익률이 지극히 떨어진 시점에서 그나마 부동산 투자가 조금은 더 좋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부동산 시세 상승이란 점이다. 


그렇기에 이번 상승은 전국적인 시세 상승과는 거리가 멀다. 서울 강남과 여의도 용산을 중심으로 해서 생겨난 부동자금의 유입이 기세를 타면서 서울시 전역으로 번지고 있을 뿐이다. 서울 전역으로 퍼질 수 있는 요인으론 역시 여전히 정부의 구도심재생 사업에 대한 기대 때문이라 본다. 


그렇기에 지금의 서울 부동산 시세 상승은 최근 기세가 워낙 강하다보니 강렬한 인상을 주고 있을 뿐, 장차의 경제 성장이나 활황에 대한 기대 수요 혹은 가수요가 아니란 점이다. 



‘똘똘한 한 채’란 말에 담긴 의미를 새겨볼 것 같으면



‘똘똘한 한 채’란 말부터가 그렇다. 전체적으로 여기저기 아무 집이나 돈이 되는 것이 아니란 얘기가 아닌가. 혹시 경제가 어려워져도 부동산 시세가 여간해선 잘 내리지 않을 수 있는 지역의 한 채, 여차해도 부채를 감당할 여력이 있는 강남과 같은 부촌 지역의 집 한 채에 대한 투자가 안전하고 동시에 수익성도 바라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담고 있다. 


따라서 ‘똘똘한 한 채’라는 말부터가 무차별적인 상승과는 거리가 있다. 증시에 비유하면 블루칩을 사라는 것이기도 하고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불황이 닥치더라도 주가가 크게 내리지 않을 ‘경기방어주’를 사라는 주문과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에겐 눈앞의 일이 걱정되고 불만이겠지만 냉정히 보면 이번 상승이 전국적인 부동산 가격 상승이 아니란 얘기이다. 우리 경제의 현 여건, 경제침체를 걱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국적인 부동산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하기 때문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얘기하고자 한다. 



결국 부동자금의 잘못된 일탈로 마무리될 공산



우리 경제의 현 여건 상 전국적인 부동산 상승으로 이어지긴 어렵다고 할 때 이번 서울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부동산 상승세는 갈 곳 없이 여관방에서 빈둥거리며 놀고 있는 부동자금들의 잘못된 선택지로 귀결될 가능성이 아주 농후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유동성 함정에 빠져들고 있는 우리 경제 상황에서 누적된 부동자금의 일부가 펼치고 있는 마지막 ‘불꽃놀이’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불꽃놀이, 10월 여의도와 한강 공원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불꽃놀이 축제마당이 아니라 유동성 함정에서 벗어나려는 부동자금들의 마지막 분출일 수도 있다는 애기이다. 



다른 선진국 부동산 상승과의 차이점



미국의 양적완화로 인해 거의 모든 나라들이 돈을 엄청나게 풀었다. 지금 글로벌 전체적으로 부동자금이 넘쳐나고 있고 그 바람에 전 세계 주요도시들의 부동산 가격도 많이 올랐다. 특히 차이나머니의 유입이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도 오를 것이란 생각 또는 기대심리도 없진 않겠지만 그들과 우리는 차이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미국이나 영국 유럽 등지의 나라들은 경제가 그런대로 호황 또는 호조인데 반하여 우리 경제는 침체로 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이제 정리한다. 



장기 저금리와 유동성 함정으로 인한 잘못된 탈출구



지금의 서울 지역 부동산 상승은 그 원인이 결국은 장기에 걸쳐 지속되고 있는 저금리 기조와 경제 활력의 상실에서 비롯된 유동성 함정에 있다고 본다. 이에 놀고 있는 돈들이 많다 보니 이번에 어쩌다가 부동산 쪽으로 출구를 찾아 돈이 몰리고 쏠리고 있는 현상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생각이다. 


그렇기에 정부 역시 너무 급작스럽고 강한 대응책으로 시장과 싸우기보다는 한 걸음 물러서서 심리를 진정시킬 수 있는 대책을 내놓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금리인상은 당장의 해답으로선 너무 위험하다.



일부에선 금리인상이 해답이란 지적도 있지만 안 그래도 어려운 우리 상황에서 성급한 금리인상은 큰 충격과 쇼크를 불어올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을 기하는 것이 일단은 더 나을 것으로 여겨진다. 



경제 침체로 들어서는 국면에서



기업들의 94%가 우리 경제가 침체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한다. 절대 다수가 그렇게 여기고 있으니 틀린 생각이 아닐 것이다. 


이처럼 경제가 침체로 들어설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가운데 부동산 상승이 지속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솔직히 얼마나 되겠는가 말이다. 늦어도 내년 봄이면 전반적인 경제 침체와 더불어 부동산 시장 또한 그렇게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부동산에서 계속 답을 찾는 것은 한계가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부동산 때문에 가계부채가 오늘날 1500조가 되었고 그 바람에 소비여력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또 부동산이 오른다? 부동자금이 많다 보니 일부가 일탈한 정도일 뿐, 지속적인 수익성을 기대할 수 없는 이상 대세를 이루긴 어렵다는 얘기이다. 부동자금이란 놈들이 너무 오래 놀다 보니 잠시 일탈한 것이고 역시 시간이 흐르면 제 정신을 찾기 마련이니 그렇다. 


짧지 않은 글이었다. 이 글이 아무쪼록 지금의 현상에 너무 초조해하거나 불안해하지 말고 생각을 진정시키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분배동맹이란 장애물

 

 

최근 소득주도성장의 타당성을 놓고 말이 무성하다. 이에 나는 작년 여름쯤이었나, 당시에 읽은 기사 내용이 문득 생각이 났다. 경향신문에 글을 기고하는 젊은 경제학자 홍기빈 씨의 글인데 다시 검색해보았다. 보니 작년 6월의 기사였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설령 정부가 나서서 큰돈을 푼다고 해봐야 기존의 분배 구조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한 분배 동맹의 배만 불릴 뿐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존의 분배 동맹 자체를 바꾸는 작업이 함께 이루어지지 않는 한 ‘소득주도성장’이 실현될 리는 없다.”는 말이 그것이다.”

 

분배동맹이란 말은 영어로 ‘distributional coaltion’ 인 바, 지금은 작고한 미국의 정치경제학자 멘서 올슨이 창안해낸 용어이다. 좀 더 쉬운 말로는 ‘기득권 집단’이라 하겠다.

 

올슨은 1982년에 출간된 The Rise and Decline of Nations 이란 제목의 책을 통해 ‘다수를 희생하고 자신의 이익을 좇는 이익집단이 많아질수록 국가는 쇠퇴하게 될 것’이라 말했는데, 지금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정말 그렇다.

 

 

소득주도성장정책의 가장 큰 장애물

 

 

분배동맹의 문제는 지금의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논란의 핵심에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작년에 읽었던 홍기빈 씨의 기사가 생각이 났다.

 

아시다시피 우리 사회에서 자영업자들은 기득권 집단이 아니다. 그렇기에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나 주52시간 근무로 인한 부담은 고스란히 그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반면에 우리 사회의 노동계층 중에서 특권적 지위를 누리는 대기업 노조, 즉 강력한 분배동맹을 구축한 집단에게 더 이익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홍기빈 씨의 우려였던 것이다.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된 정부는 한시적으로 자영업자의 세무조사를 면제 또는 유예를 포함해서 각종 보완 지원책을 부랴부랴 쏟아내고 있다.

 

 

들먹이는 부동산 시장, 원인제공은 정부

 

 

게다가 부동산 시장이 다시 움직이고 있는데 이 역시 현 정부의 정책과 무곤하지 않다. 작년 정부 출범과 함께 도심재생 사업이 발표되었을 때 나 호호당은 즉각적으로 저 역시 문제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결국 뉴 타운이나 도심 재생이나 같은 말이지 싶었다.

 

무엇보다 수년간 지속된 저금리로 인해 시중엔 엄청난 양의 부동자금이 갈 곳을 찾고 있는 판국이 아닌가 말이다. 정작 불씨가 된 것은 박원순 시장의 ‘여의도 용산 통개발론’이었지만 그 이전에 도심재생이란 부동산 부양의 명분을 바탕에 깔아놓은 것은 정부였던 것이다.

 

 

펭귄이나 사람이나 집을 구하기가 어려우니

 

 

집값이 오르면 청년들이 결혼을 하지 못한다. 둥지를 틀 돈이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가끔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에서 남극의 펭귄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하게 모여서 알을 낳고 새끼들을 부양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또 너른 바다 바위섬 벼랑에 무수히 많은 새들이 작은 둥지에 알을 낳고 키우느라 서로 다툼을 하는 장면도 보곤 한다.

 

보면서 쓴 웃음을 짓곤 한다. 남극이나 대양의 외딴 섬이나 대한민국의 서울이나 집을 구하기 어렵긴 마찬가지구나.

 

 

출발부터 잘못된 우리의 DTI 규제

 

 

애당초 2005년 DTI라는 제도가 도입될 당시부터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비율만 적용했더라도 오늘날 가계부채 1500조는 없었을 것이고 그로 인한 소비여력 고갈도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직접 나서서 부동산 가격 상승을 잡겠다고 했는데, 당시 나는 저 분의 뜻이야 알겠으나 높은 DTI 가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일반 선진국들의 DTI는 통상적으로 28-36% 선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간 50-60% 대를 유지해왔다. 대출 원리금 상환이 소득의 50-60%까지

되어도 크게 문제가 없다는 발상이었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없을 까닭이 없다. 오로지 대출을 많이 받게 하고 편하게 받게 하기 위해 비율을 엄청나게 높게 잡아놓은 것이다.

 

몇 년 전인가 IMF 가 우리나라의 DTI가 너무 높다는 경고를 보내왔지만 당시 금융위원장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답한 기억이 난다.

 

하지만 높은 DTI 비율로 인해 가계대출이 폭증했고 그만큼의 통화량이 늘어났으며 여기에 지속된 저금리로 인해 시중엔 무지막지한 유동자금이 꿈틀대고 있는 현실이다.

 

그 결과 청년들은 남극의 펭귄들 마냥 둥지를 틀지 못하고 있다. 그 바람에 저출산이 대세로 정착이 되었고 그러다 보니 인구절벽을 맞이하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이다.

 

 

오늘날의 문제는 2000년대의 과소비가 원인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10년에 걸쳐 우리 사회는 감당할 수 없는 소비를 해온 셈이고 오늘에 이르러 모든 지표들이 악화되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인 것이다.

 

사람들은 박근혜 정부가 한 것이 없고 무능했다는 인식을 하고 있지만 사실 처음엔 경제혁신3개년 계획을 통해 우리 경제의 문제점을 구조 조정하려는 계획을 추진했었다. 어려운 작업을 시도했던 박 정부였다.

 

하지만 기득권 노조의 반발로 무산되고 말았다. 이에 궁지에 몰린 박 정권은 부동산 부양으로 경제 수치들을 만들어내는 악수를 두고 말았다.

 

이번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들고 나와 분배 구조의 개선을 도모하고자 한다. 하지만 앞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현 정권의 지지기반이 대기업 노조라고 하는 강력한 분배 동맹 세력이란 점에서 한계를 안고 있다.

 

 

대통령 지지율에 대한 걱정

 

 

최근 경향신문에서 재미난 글을 읽었다. ‘촛불 다중의 균열’이란 제목의 글이다. 임현백 교수가 기고한 글이다.

 

(어쩌다 보니 자꾸 경향신문에 대해 두 번이나 언급하게 되는데, 나 호호당은 두루두루 신문을 읽어보는 편이다. 다만 경향신문의 오피니언 칼럼은 다양한 생각이 골고루 반영되고 있는 좋은 코너란 생각을 한다.)

 

직접 옮긴다.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키고 지탱해온 다중연대는 왜 정점의 순간에서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가? 다중연대는 정체성이 다른 이질적 집단이기 때문이다. (중략) 문재인 정부는 이질적인 다중들의 다양한 요구를 맞춤형으로 수용하고 실현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다중연대를 구성하고 있는 집단들의 분리주의적 이탈을 초래하고 있다.”

 

약간 달리 설명해보면 현 정부가 처음에 지지율이 대단히 높았으나 그 지지층의 성격이 다양한 탓에 시간이 지날수록 지지층이 이탈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편하게 얘기해보면 지지층 상호간의 이해가 일치하지 않고 서로 상충되는 경우도 많다는 얘기가 되겠고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기득권인 민노총의 이해와 20-30대 청년들의 이해가 상충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런 걱정을 했었다. 처음에 대통령 지지율이 무려 80%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실 소름이 끼쳤다. 지나치게 높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지한다는 것은 크건 작건 뭔가를 바란다는 얘기인데, 나중에 그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면 저건 더 문제인 데 하는 걱정이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말처럼 지나친 지지율은 지나친 非(비)지지율로 바뀌거나 아니면 냉소적으로 변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대중에 대한 ‘감성적인 접근법’이 현 정부의 나름 큰 강점이지만 그게 나중엔 더 큰 부담이 될 수도 있으리란 우려가 들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서 이번 개각에 대한 이종철 바른미래당 대변인의 논평, “여성가족부 장관은 '페미 대통령'을 부각하지 못한 책임을 지운 것이거나 탁현민 행정관을 지키기 위해 경질한 것은 아닌가?” 하는 지적이 바로 그런 대목이다.

 

정권과 정책을 좌우 성향에 따라 바라보는 것은 선입견에 매몰될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을 늘 해오고 있다. 그건 미리부터 답을 정해놓고 바라보게 되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역대 정권들은 물론 정권을 유지하고 창출해야 하는 것이 우선적이긴 했으나 주어진 한계 안에서 나라를 발전시키고 민생을 안정시키려는 강한 의지도 갖고 있었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모든 정권들이 잘 해보려고 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2012년부터 우리 사회는 내부의 이익 갈등이 엄청나게 첨예화되고 증폭된 반면 성장동력은 상실 일로를 걷게 되면서 정부가 운신할 수 있는 여지가 급속도로 축소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은 어렵지만 아무튼 잘 되어야 할 터인데

 

 

8월 초에 나온 KDI 경제동향 보고서의 전체적인 내용은 투자 감소, 건설경기 하락, 실업률 상승이었다. 며칠 후면 9월 동향이 나올 터인데 그 역시 궁금하다.

 

정부는 이번 개각으로 보완할 것은 보완해가면서 소득주도성장정책을 더욱 신속 과감하게 집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정말이지 나름 성과가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간 들어보지 못한 정책, 하지만 나름 개성이 있고 의미가 있는 정부의 이번 소득주도성장정책이 만일 실패로 돌아간다면 그야말로 감당하기 어려운 국면이 우리 전체를 짓눌러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를 둘러싼 모든 상황이 더욱 어려워지면서 자꾸만 걱정이 앞선다. 그 바람에 이런 글을 쓰게 된다. 당분간 자제할 생각을 해본다.

기준금리는 곧 국가의 경제 활력을 대표한다.



한국은행이 정하는 기준금리는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 경제의 활력이라 봐도 무방하다. 지금의 기준금리 1.50%는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그야말로 초저금리인 바 이는 현재 우리 경제의 활력이 그간에 엄청나게 떨어져왔음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기준금리 변화 추이


1978년 우리나라의 기준금리는 무려 34%였다. 급격하게 발전하는 개발도상국들의 일반적인 현상이다. (당시 시중금리는 50%를 상회했다.) 


그러다가 우리 경제가 도약하기 시작하던 1980년대 중반의 경우 17%였다. 금리가 높다는 것은 돈이 흘러갈 곳이 많다는 얘기이고 투자에 따른 기대수익이 그만큼 높다는 얘기이다. 이른바 투자만 하면 돈이 되던 시절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니라의 기준금리는 4-5% 대를 오르내리게 되었다. 사실상 우리 경제의 활력이 위축된 것이다. 


그리고 다시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 금리가 2%대까지 내렸다가 2011년 3월 글로벌 경제 회복의 기대감으로 인해 잠시 3.25%까지 올랐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는 심한 불경기와 디플레이션 압력에 시달렸다. 비록 미국을 필두로 양적완화라고 하는 유례가 없는 돈풀기 정책으로 그런대로 견뎌왔지만 1980-2000년대 사이의 글로벌 호황은 이제 추억 속의 일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2014년에 들어와 종전과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일이 우리 경제 내부로부터 발생했다. 글로벌 경제라는 외생 변수가 아니라 우리 자체의 성장 탄력이 죽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에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종전 최저였던 2.00% 이하로 인하해야만 했다. 



2014년부터 정착된 초저금리 흐름



2014년 이후로는 이제 2.00%대의 기준금리를 감히 생각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초저금리 시대가 정착되었다. 


그간 한은은 글로벌 불황을 이유로 초저금리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그 이유를 들먹일 수 있었지만 2017년 이후로는 더 이상 그런 핑계를 댈 수 없게 되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경기가 회복세를 나타내었기 때문이다. 



2014년부터는 외부변수가 아니라 우리 자체의 문제



아시다시피 미국은 이미 금리 인상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 바람에 미국 연준 금리가 우리 기준금리보다 더 높은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그렇기에 2014년부터의 초저금리 기조는 더 이상 글로벌 불황에서 오는 외생 변수라기보다는 우리 자체의 요인, 다시 말해서 우리 경제의 탄력이 급속도로 죽기 시작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작년부터 미국 경제가 살아나기 시작하면서 글로벌 전체가 회복세를 보이자 한은은 작년 2017년 11월 기준금리를 1.25%에서 1.50%으로 한 번 올렸다. 글로벌 경기 회복에 따른 기대감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 한은은 금리인상을 시도하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는 분명 회복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는 여전히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한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글로벌 경제의 기준 역할을 하는 미국 연준의 금리는 이미 단계적 인상의 길을 밟고 있는데 우리 경제는 전혀 살아날 기미가 없으니 올릴 수도 없고 그대로 유지하자니 부작용이 걱정된다. 


이는 2014년부터 우리 경제 자체의 탄력이 크게 떨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작년 말에서 올해 초에 이르러 우리 경제가 장기 침체의 초입으로 들어서고 있음을 말해준다. 



난데없는 부동산 상승과 그 원인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경기가 부진하거만 최근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난데없이 일부 부분적이긴 하지만 서울의 부동산이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정부는 즉각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국세청이 나서서 자금출처 조사에 진력하겠다는 것이다. 


부동산이 오르기 시작한 것은 일단 박원순 서울시장의 발언이 발단이었다. 싱가포르 선언인가 뭔가 하면서 용산과 여의도를 통으로 개발하겠다는 발표가 그것이었다. 이제 슬슬 차기 대권을 준비하기 위해 뭔가 가시적인 사업을 한 번 해보겠다는 것으로 이해가 되는데 결과적으로 부동산 시장에 불을 붙였다. 


박 시장의 발언이 부동산 상승의 빌미를 제공하긴 했지만 그 바탕에는 그럴만한 요인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게 뭐였을까? 


이번 부동산 시세가 들먹이게 된 근본 요인은 다름 아니라 한은이 지속적으로 초저금리를 유지해오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자 한은은 초저금리를 통해 시중에 지속적으로 돈을 풀고 있지만, 문제는 통화의 유통속도가 종전에 비해 엄청나게 떨어졌다는 점이다. 


돈이란 것은 여러 사람의 손을 많이 거쳐야만 제 몫을 한다. 돈의 주인이 자주 바뀌면 그 과정에서 상품과 서비스의 교환이 활발해지고 그로서 경제가 활발하게 성장하게 된다. 


그런데 지금은 한은이 지속적으로 시중에 돈을 많이 풀고 있어도 그 풀려난 돈들이 마땅하게 갈 곳이 없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를 두고 시중에선 ‘돈맥경화’라고 한다. 돈이 원활하게 돌지 않는다는 뜻이다. 


돈이 돌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경제 전체적으로 투자가 부진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소비는 막대한 가계부채 부담으로 인해 소비할 여력이 없어졌고 기업의 투자마저 부진하니 사실상 현 우리 경제는 정부의 재정지출에 의존하고 있는 형국이다. 


돈이 갈 곳이 마땅하지 않다는 말은 수익성이 없다는 말과 동의어이다. 돈은 돈이 되는 곳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지금은 돈이 될 곳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통화의 유통속도가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그러자 투자처를 찾는 돈들이 박 시장의 발언을 빌미로 해서 부동산 시장 쪽으로 몰려들었고 그 결과 부동산 시세 상승을 불렀다. 박시장도 많이 놀랐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 역시 처음엔 경제혁신3개년 계획을 통해 우리 경제의 구조개혁을 시도했다. 하지만 원래 그런 정책은 인기를 얻기 어렵다. 노조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치면서 좌절했다. 그러자 최경환 부총리를 내세워 결국은 통화 공급을 통해 본의든 본의 아니든 부동산 시세만 올려놓는 식으로 경기부양을 했다. 



결국은 부동산일 것이란 시장의 왜곡된 기대



역대 정권을 거치면서 경험이 쌓인 부동산 시장이다. 이번 정부 역시 지금은 소득주도성장이다 뭐다 하고 있지만 어차피 안 될 것이다, 그러면 이번 정부 역시 나중에 가선 SOC 사업의 확대라든가 부동산 부양 쪽을 택하게 될 것이란 판단을 하는 모양이다.

 

갈 곳을 찾고 있는 시중의 유동자금들이 부동산 쪽으로 몰리게 된 것에는 정부의 잘못도 없지 않다. 박 시장의 발언만이 아니라 현 정부의 정책인 구도심 재개발 사업이라든가 최근 대통령이 복지형 SOC 확대를 주문한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저금리로 인해 쌓인 돈들이 갈 곳을 모색하던 차, 나름 길을 그 방면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정책이란 이래서 참으로 어렵다. 이번 부동산 가격 상승의 빌미는 사실 서울시장 그리고 정부가 제공한 셈인데 박시장이나 정부는 당연히 그런 결과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다. 이에 부랴부랴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까지 선포하고 나섰다. 


구도심을 재개발할지언정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안 되는 것이고 여의도와 용산을 통으로 개발해도 부동산 시세가 오르면 안 된다는 것이니 사실 참 어렵다. 이에 박 시장은 발언을 철회했다, 그런 것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고 하면서. 


정부가 조기에 적극 진화에 나선 것은 잘한 일이라 본다. 하지만 이미 탄력이 붙은 부동산 시장의 상승세가 진정되려면 약간의 시일이 걸릴 것이라 본다. 



참으로 어려운 정부의 입장과 정책 시행



어쨌거나 정부의 입장이 실로 어렵다. 


최저임금인상 역시 시행해놓고 보니 자영업자들은 죽겠다고 아우성이고, 더불어 주52시간까지 더해지자 기업들은 부담이 너무 커져서 못해먹겠다고 울상이다. 이에 정부는 열심히 재정 지출을 통한 보완책 마련에 급급하다. 내년엔 무지막지한 규모의 재정지출을 단행하겠다는 정부이다. (사실 재정지출 확대는 나중에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란 점에서 그렇다.) 


정부는 대기업 재벌 위주의 경제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소기업과 스타트업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쏟고 있다. 다양한 지원정책과 예산 편성을 통해 신규창업을 지원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은 참으로 어렵다. 이게 꼭 돈이나 정부 지원만으로 해결되기엔 현실의 두꺼운 벽 앞에서 역부족인 감이 든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중국으로부터 왔다.



우리가 이렇게 어렵게 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보면 결국은 글로벌 경제에 있어 중국의 비중이 커진 결과라고 본다. 


그 바람에 우리 경제는 여러 방면에서 탄력을 잃기 시작했다. 모든 방면에서 우리의 주력상품과 중국의 그것이 본격적으로 충돌하기 시작했다는 점으로 인해 다양한 경로로 대두되기 시작한 부정적인 영향이라 여긴다.



존 매케인, 미국의 전쟁영웅 세상을 뜨다.



존 매케인 미국 상원의원이 세상을 떴다. 평소 베트남전의 전쟁 영웅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별세했다는 뉴스를 듣고 생년월일을 검색해보았다. 그랬더니 운명학적으로 흥미로운 것이 눈에 띄었고 이에 글로 쓰게 되었다. 


매체인 상원의원은 미국의 귀족이었다. 미국은 신분이나 계급이 없는 나라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노블 클래스(Noble Class)는 엄연히 존재한다. 


우리나라는 돈만 많으면 귀족 행세를 할 수 있는 나라지만 미국은 그렇지가 않다. 적어도 3대에 걸쳐 국가와 사회에 공헌한 공로를 인정받지 못하면 귀족 대우를 받지 못한다. 



매케인은 미국 노블 클래스의 일원이었다.



매케인의 경우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해군에서 4성 장군을 지낸 군인 명문 집안이었다는 점, 더불어 매케인 역시 월남전에 해군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도중에 격추되어 5년 반 동안 전쟁포로가 되었으며 1973년 파리 협정으로 풀려난 후에야 비로소 귀족으로 인정을 받았다. 3대가 국가에 공헌을 한 것이다. 


귀족이냐 아니냐의 여부를 판별하는 명시적인 룰은 없지만 미국 사회는 귀족이 존재하는 사회이다. 이는 서구 문명의 원형인 로마제국으로부터 유래된 오랜 문화의 뿌리에서 비롯되었다. 


존 매케인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국가와 사회에 공헌한 바가 컸기에 1973년 귀국한 뒤 9년 뒤인 1982년 하원 의원이 되었고 다시 경험을 쌓은 뒤 1986년엔 무난하게 상원 의원에 당선되었다. 그 뒤로 매케인은 이번에 사망할 때까지 32년 동안 줄곧 상원 의원직을 지켰다. 



미국에서 상원 의원은 미국 사회의 제1시민이다.



잠깐 얘기하면 우리는 국회가 단원제이지만 미국은 양원제의 나라이다. 上院(상원)과 下院(하원)이 있다. 상원을 영어로 세너트, senate 라 하는데 이 용어는 고대 로마의 원로원을 뜻하는 라틴어 세나투스(senatus)에 비롯되었다. 


다시 말해서 미국의 상원은 고대 로마의 원로원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로마 제국의 원로원이란 사회의 지배계급 중에서 나이가 많고 현명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협의체인 바, 미국 상원 역시 그런 역할을 맡고 있는 셈이다. 


고대 로마의 원로원에 해당되는 역할을 맡고 있는 상원 의원이기에 선출직이고 때가 되면 선거를 하지만 한 번 상원이 되고 나면 유권자들이 계속해서 찍어주기에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사실상 종신직이다. 


따라서 미국의 상원 의원은 미국이란 나라와 사회의 제1등 시민인 것이고 국가의 정치적 안정성과 통합성을 유지함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존 매케인의 命運(명운)



그러면 이제 매케인의 명과 운에 관해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 드리겠다. 


이름이 John Sidney McCain 3세이다. 줄여서 그냥 매케인이라 하겠다. 


1936년 8월 29일 저녁 6시25분생이다. 사주로 변환하면 이렇다. 


丙子(병자)년 丙申(병신)월 癸未(계미)일 辛酉(신유)시. 


사주만 봐도 부귀를 타고 났는데 운세 순환을 보면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운세 순환의 시작점인 立春(입춘)은 癸卯(계묘)이고 氣(기)의 절정인 立秋(입추)는 癸酉(계유)의 해가 된다. 



존 매케인의 운세 순환 차트



이에 매케인의 운세순환 차트를 작성하면 다음과 같다.

 

1936-1948: 운명의 가을

1948-1963: 운명의 겨울

1963-1978: 운명의 봄

1978-1993: 운명의 여름

1993-2008: 운명의 가을

2008-2023: 운명의 겨울 (올 해 2018년 운명 절기상으로 추위가 본격화되는 사망했다.)


운명의 가을에 태어나 겨울과 봄, 다시 여름과 가을을 지나 겨울이 깊어갈 무렵에 세상을 떠난 셈이다. 



존 매케인의 시련기



매케인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항공모함에서 전투기 조종사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1967년 작전 도중 격추되어 5년 반 동안 전쟁포로가 되었으며 이후 1973년 파리 협정으로 풀려났다. 


참고로 얘기하면 1973년 1월에 조인된 파리 협정 또는 베트남 평화협정은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그리고 미국 사이의 협정으로서 베트남 전쟁 종결을 약속한 협정을 말한다. (미국이 평화협정을 맺고 남베트남에서 철수한 뒤 북베트남 군대가 남쪽으로 밀고 내려와 1975년 4월 30일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의 대통령궁까지 점령하면서 베트남 전쟁이 끝났다.)


매케인은 북베트남 폭격 작전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던 중 1967년 10월 26일 소련제 대공미사일에 피격되었다. 간신히 낙하산으로 탈출했으나 두 팔이 골절되고 다리에 파편을 맞아 중상을 당한 상태에서 하노이 근처의 호수로 낙하한 후 기절했다. 


운이 좋게도 익사를 면했으나 포로로 체포된 다음 미국 전쟁 포로들 사이에서 악명 높기로 유명한 하노이 포로수용소에 감금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에서 심한 구타와 고문을 받았다. 체중은 물론이고 머리카락 전체가 하얗게 변할 정도였다.

 

이듬해 7월 매케인의 부친이자 해군 제독인 맥 매케인이 태평양 사령관이 되자 북베트남은 선전 목적으로 매케인의 조기 석방을 제안했다. 선심을 베풀 수 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부친이자 해군 사령관인 잭 매케인은 자신의 아들이라고 해서 특별대우를 받을 순 없다며 북베트남의 제안을 강직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이런 대목에서 미국이란 나라가 참 부러워진다.)


결국 매케인은 1973년 파리 협정이 체결된 직후인 1973년 3월 14일이 되어서야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5년 반의 모진 포로 생활을 견뎌야 했던 그였다. 


흥미롭다고 느끼는 대목은 여기까지이다. 



격추될 당시와 생환 당시의 운세 해설



그가 하노이 상공에서 피격되어 포로가 된 때부터 살펴보자. 


1967년 10월 26일인 바, 丁未(정미)년 庚戌(경술)월 癸亥(계해)일이다. 매케인의 경우 1963년이 입춘 바닥이니 1967년은 60년에 걸쳐 가장 재수가 없는 때, 나 호호당이 ‘재운 바닥’이라 부르는 때에 발생했다. 


달을 보면 庚戌(경술)월이니 60개월에 걸친 단기 운세 흐름이 최저점에 있을 때였고 날을 보면 癸亥(계해)일이니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나마 날이 좋아서 죽음을 모면할 수 있었던 것으로 해석한다. 


1967년 10월 26일 그가 격추되어 포로가 된 것은 그의 운세 흐름 상 평생에 걸쳐 가장 최악의 사건이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그가 석방되어 조국의 품에 안기게 된 날은 1973년 3월 14일의 일이었다. 癸丑(계축)년 乙卯(을묘)월 己酉(기유)일이었다. 이 대목에서 나 호호당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석방되어 살아 돌아온 해가 1973년이었다는 점이다. 


입춘에서 10년은 생불여사의 세월이 되는 것이니



내가 강의를 할 때 입춘 바닥에서 10년 동안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니고 존재해도 존재하는 것이 아닌 세월을 보내게 된다는 설명을 해주곤 한다. 그런데 매케인 역시 입춘 바닥이 1963년이었기에 1973년은 10년의 세월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그 역시 포로수용소에 ‘생불여사’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것이다. 


사람마다 입춘의 때를 맞이하는 시점이 다르다. 그리고 입춘을 지나 10년의 세월 사이에 그 사람은 사실상 재창조된다. 


매케인의 경우 1963-1973년의 10년 사이에 해군 전투기 조종사에서 미국의 전쟁 영웅으로 復活(부활)한 것이고 그로서 미국의 노블 클래스의 일원이 되는 길을 닦았다. 평생을 미국의 제1시민이라 할 수 있는 상원 의원이 될 수 있었던 발판은 바로 그가 평생에 걸쳐 재수가 없을 때, 운세가 가장 좋지 않을 때 마련되었다는 점이다. 


사람은 누구나 일생에 한 번은 가장 어렵고 험난한 시기를 보내기 마련이다. 


그 기간 동안 문자 그대로 죽지만 않고 목숨을 건져 살아나온다면 사실 그 기간이야말로 그 사람이 나머지 삶을 살아감에 있어 더 없이 귀중한 그 무엇인가를 얻게 되는 시기가 된다는 사실이다. 



시련은 사람을 단련시켜서 새로운 삶으로 재탄생시킨다.



큰 시련을 사람을 鍛鍊(단련)시킨다. 그 과정은 마치 원광을 불에 녹여서 불순물을 걸러내고 다시 맹렬한 담금질을 거쳐 보검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 


입춘 바닥에서 10년의 세월, 말이 쉽지 10년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태어난 자 누구나 어차피 이 시기를 한 번은 겪도록 되어있다. 


물론 어떤 이는 이 기간을 견디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떠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자신을 진정으로 아끼는 자라면 누구나 능히 이 시련의 세월을 견뎌낼 수 있다는 말도 드린다. 


하노이 포로수용소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마침내 살아서 귀국할 수 있었던 매케인이 아니었다면 훗날의 종신 상원 의원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란 얘기이다. 


運(운)이란 것은 참으로 만인에게 공평하다. 60년의 순환에 있어 최악의 세월이 10년이라면 최상의 세월 또한 10년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당장 눈앞의 일이 풀리지 않는다고 자신을 너무 심하게 책망하거나 세상을 탓할 일은 아니란 얘기이다. 어려움을 잘 극복하면 반드시 그에 합당하는 보상이 주어지도록 세상은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매케인의 일화는 운명학적으로도 대단히 흥미롭지만 동시에 오늘날 세계 최강국인 미국 사회를 이끌어가는 힘은 역시 명예로운 일을 한 자에게 명예가 돌아간다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날씨도 괴롭히고 경제도 부진하고



8월 하순에 밤 1시가 다 되도록 기온이 31도씩이나 되는 더위는 정말이지 머리털 나고 처음 겪는 일이다. 지금 시각은 8월 23일 새벽 1시이고 오늘로서 더위가 멈춘다는 절기인 處暑(처서)이건만 초열대야라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 올 해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열폭탄을 맞았다. 사람은 모두 곯았고 온 산천초목이 불에 그슬리고 데었다. 


7월 고용 발표를 접하고 나서 맥이 풀리고 기가 빠졌다.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걱정하고 우려하던 그 이상의 나쁜 수치가 나왔기 때문이다. 일자리 정부를 자처했던 현 정부 역시 크게 놀란 모양이다. 며칠 사이에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여러 대책과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다. 


8월 6일자 글에서 얘기했듯이 올 7월은 향후 45개월의 흐름과 방향을 처음으로 가늠해볼 수 있는 달이었다. 2017년 4월부터 2022년 3월에 이르는 60개월의 흐름을 예측할 수 있는 시점이었다는 말이다. 



그야말로 복잡한 심사



이에 일요일 새벽 블로그에 글을 올린 이래 지금 목요일 새벽 이 시각까지 머리가 복잡해서 도무지 글이 써지지 않을 정도이다. 공연한 얘기가 절대 아니다. 나 호호당의 아들 녀석 역시 작은 벤처 사업을 막 시작하고 있는 터라 나라 전체가 어려워지면 조금치도 좋을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글을 쓰다 보면 어느새 걱정 끼칠 내용이 되어버리니 지워버리고 다시 쓰고 이러기를 사흘째 여러 차례 반복하고 있다. 기분 전환을 위해 그림을 그려보기도 했지만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아 도중에 죄다 찢어버렸다. 



파이낸셜타임스의 지적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FT) 기사를 보니 우리 대한민국은 이제 경제 모델을 바꿀 때가 되었다는 지적을 하고 있었다. 일본 등을 통해 빠른 속도로 기술을 흡수하고 학습해서 성장 발전해온 방식이 중국의 등장으로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이었다. (이에 체, 그게 너만 알고 있는 줄 아니? 당사자인 우리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알고 있어 임마, 하고 대꾸한다.) 


물론 맞는 지적이다. 그 말이 틀리진 않다. 하지만 새로운 모델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에 대해선 그야말로 막막하기만 하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우리나라가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말 그리고 출산율 저하와 노령화로 2016년부터 노동가능인구가 줄기 시작했으니 글로벌화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어려운 구조개혁



구조개혁은 결국 생산성을 높이라는 얘기인데 이게 당장은 일자리 문제와 충돌하게 될 것이고 글로벌화란 해외로부터의 인력 유입과 산업시설의 해외이전을 의미하는 것 같긴 한데 그게 우리 입장에서 여러 모로 쉬울 까닭이 없다. 


사실 전 정권인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던 것이 바로 구조개혁이었으니 ‘경제혁신3개년 계획’이 그것이었다. 시장원리를 더 도입해서 사회 각 부문의 생산성을 높여보자는 것이었지만 이는 당연히 국민들의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고 특히 노조의 반발로 지지를 얻어내긴 어려운 정책이었다. 



양날의 칼과도 같은 소득주도성장론



탄핵 이후 들어선 현 문재인 정부는 사실 대단히 이례적이라고 말할 수 있고 또 참신하다고 평할 수도 있는 ‘소득주도성장론’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최저임금의 빠른 인상과 주52시간 근무가 주 내용이다. 물론 현 정부 역시 혁신성장을 얘기하고는 있지만 본질에 있어 主(주)가 아니라 副(부)일 수밖에 없다. 


나 호호당의 개인적인 견지에서 말을 하자면 ‘소득주도성장론’이란 것을 처음 접했을 때, 경제의 주류 이론이 아닌 것은 맞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 것이란 관점, 게다가 날로 탄력이 죽어가는 우리의 처지를 놓고 볼 때 다소 모험적이긴 하지만 한 번 시도해봄직도 하다는 생각을 했다. 


결과가 그다지 크게 부정적이지만 않다면 그리고 나아가서 잘 되기만 한다면 굳이 파이낸셜타임스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현재 우리 모두가 고민하고 있고 장차 어쨌거나 우리가 만들어내어야 할 숙제인 새로운 경제 모델의 한 原型(원형) 즉 프로토타입(prototype)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기대보다는 우려가 커져가는 소득주도성장론



물론 7월의 고용 수치가 저처럼 나쁘게 나온 것이 야당의 주장처럼 소득주도성장론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 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연 소득주도성장론이 먹혀들고 있는 것일까를 자문해보면 결코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다. 


다만 현 시점에서 볼 때 현재의 경제 흐름이 다소 완만할지언정 경기가 확장 국면이었다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인플레이션을 부르는 부작용이야 있을 수 있겠으나 그럼에도 경기의 선순환을 가져올 수도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달리 말하면 경기확장 국면에서 임금이 다소 빠르게 그리고 큰 폭으로 올라도 전체 경제가 그를 받아낼 수만 있다면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수출을 제외한 모든 지표가 하락하면서 장기 경제침체까지 우려되는 상황에선 오히려 충격만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가 없다.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은 옳고 그름을 떠나 우리 경제의 그간 운용 방식에 있어 대단히 극적인 변화였다. 그간에 역대 정부가 흔히 해오던 SOC 투자를 통한 일자리 유지 또는 확충을 지양하고 그로 인해 생겨나는 예산상의 여유를 복지와 일자리 확충을 위한 지원 자금으로 돌렸으니 말이다. 


일각에선 현 정부의 이런 정책을 좌파이념에서 비롯되었다는 지적을 하고 있지만 나 호호당이 보기엔 그런 것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고 여긴다. (더불어서 좌파든 우파든 국민이 잘 먹고 잘 살 수만 있다면 그게 무슨 문제이랴!) 


나 호호당이 진짜로 우려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기대하기도 하는 것은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그간에 시도해보지 않았고 따라서 꽤나 급진적인 정책조합(policy mix)이란 점이다. 시도해보지 않은 것이기에 우려가 되는 것이고 반대로 잘 먹혀들기만 하면 그거야말로 최상이란 점에서 기대를 했었다는 말이다. 


가보지 않은 길은 통하기만 하면 그야말로 대박인 것이고 반대로 통하지 않을 것 같으면 그건 무모한 도박이었다는 지적으로 마무리된다. 그렇기에 가보지 않은 길은 누구나 두려운 바가 있다. 



2000년대 초반에 시행했더라면 하는 아쉬움



한편으로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 정책을 우리가 만일 2000년대 초중반에 시도했었다면 충분히 먹혀들지 않았겠는가 하는 아쉬움도 든다. 


당시만 해도 우리 경제의 양극화가 막 시작되던 초기였고 경기 역시 글로벌 호황에 편승해서 순항하던 때였기에 최저임금인상을 통한 전체적인 인금상승이 경제에 대해 부작용을 주기 보다는 경제의 선순환을 자극하고 양극화 해소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참신한 정책이었을 것 같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그간 우리가 걸어온 길은



물론 역사에 있어 가정법은 쓸모가 없긴 하지만 그래도 한 번 되돌아보자. 


우리 경제는 2000년대 초반 외환위기를 벗어난 이후 시중으로 끊임없이 돈이 공급되었고 그 돈들은 오로지 대거 아파트와 부동산으로 흘러들었다. 여기에 자극받은 중산층까지 대거 빚을 내어 아파트 매수 대열에 동참했다. 


그 바람에 엄청난 유동성으로 인해 경기는 흥청망청 잘 돌아갔지만 그 대가로 오늘날 막대한 가계부채를 떠안게 되었고 또 그 결과 소비여력이 고갈되고 말았다. 


또 한 가지 측면은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에 나서는 과정에서 수지타산 즉 이른바 자산대비수익률(ROA)라든가 자본대비수익율(ROE)같은 것에만 매달린 결과 인력의 지속적인 정리와 구조조정에만 매진해왔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대기업들은 노조와 결탁해서 이익을 나누었고 그로 인한 부담은 협력업체 내지는 하청기업들에게 떠넘기는 과정에서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양극화를 엄청난 속도로 확대 심화시켰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가 터지긴 했으나 사실 그때만 해도 우리 경제는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이에 이명박 정부는 위기극복이란 명분을 내세워 시중에 대폭의 통화 공급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는 방식에 매달렸고 그 이후 박근혜 정부는 처음엔 구조개혁을 시도했으나 노조의 반대와 경기 침체로 인한 지지율 하락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대출 증가를 통한 부동산 부양으로 일관하고 말았다. 


이에 상황이 더욱 엄중해진 우리 경제의 해결사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 지금의 문재인 정부이고 방법론은 소득주도성장이다. 


나 호호당은 우리 국운의 흐름으로 볼 때 향후 지속적으로 더 어려워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어려워진다 해도 어느 정도냐의 문제가 있다. 이에 어쩌면 소득주도성장이란 새로운 시도가 그런 흐름을 다소 완화시켜주지 않겠느냐는 기대 또한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의 흐름 그리고 7월의 고용 동향을 접하고 나니 기대는 저리 가고 수많은 걱정과 우려가 일제히 몰려든다. 나 같은 보통사람도 그러니 모든 책임을 짊어진 대통령이야 얼마나 걱정이 되겠는가. 며칠 전 實事求是(실사구시)란 말을 강조했는데 이는 소득주도성장을 밀고 나가되 그로 인한 부작용 또한 잘 대처해야 하겠다는 뜻의 말일 것이다. 



어쨌거나 잘 되어야 할 텐데...



나 호호당의 나이도 이제 예순하고도 넷이다. 젊은 날의 稚氣(치기)나 客氣(객기)는 이제 많이 사라졌다. 그렇기에 보수 진보와 같은 단순구분법에 별 흥취가 없다. 그저 현실만 바라보게 된다. 


이런 말을 하는 까닭은 돌이켜 볼 때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책이 비록 일반적이지 않고 다소 모험적이긴 하지만 현 우리 상황을 볼 때 그렇다고 해서 구태의연한 정책만 답습할 순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전부터 결정적인 시기로 보고 있던 7월의 수치가 무척이나 부정적으로 나온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솔직히 말해서 현 시점에서 대통령이 그간의 정책을 접을 순 없을 것이라 본다. 다소 수정할지언정 포기하긴 어려울 것으로 본다.

 

그렇기에 어찌 되었건 잘 되어서 어려운 시기를 잘 넘길 수 있어야 할 터인데 하는 마음, 또 만일 현 정부의 정책이 실패로 돌아가면 그 데미지는 미처 감당하기 어려울 텐데 하는 생각 등등 대단히 복잡하고 착잡한 심사로 해서 이번 주 내내 울적하기만 한 나 호호당이다. 


어렵사리 글을 마치고 나니 새벽 3시 25분이다. 기온을 보니 여전히 30도, 그 사이에 겨우 1도 내렸다. 정말 욕이 나온다. 제발 원하건대 이번 태풍 솔릭이시여, 그간의 무더위를 한 방에 쓸어가소서! 비나이다.


15년의 榮華(영화)와 15년의 역경

 

 

앞글에서 60년에 걸친 순환이 있기에 그 중 길게는 15년, 짧게는 10년 정도는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가 있기 마련이란 말을 했다.

 

사실 이 말은 삶에 있어 길게는 15년, 짧게는 10년의 榮華(영화) 또한 있다는 말도 된다. 밤이 있으면 낮이 있듯이 말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우리 사회가 워낙 경쟁이 치열한 탓에 우리 모두 위만 바라보지 밑은 보지 않도록 길들여져 있는 게 문제, 이에 15년에서 10년에 이르는 영화의 때를 보내고 있어도 그게 그런 줄 알지 못하는 이가 대부분이란 점이다.

 

가령 당신이 ‘보통의 사람’이라면 중산층 정도의 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게 영화의 때이고 한 때인 것인데,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위 더 높은 곳만 바라보다가 나중엔 더 낮은 곳으로 쓸려들게 되니 안타깝다.

 

이제 주제로 돌아가자.

 

 

슈퍼스타 감사용

 

 

예전에 “슈퍼스타 감사용”이란 영화가 있었다. 2004년 영화로서 흥행엔 실패했으나 나름 의미가 있는 영화였다고 여긴다. 영화는 프로야구 초창기 삼미 슈퍼스타즈 시절의 감사용 투수를 소재로 한 영화였다.

 

(참고로 삼미 슈퍼스타즈는 모 기업의 해체로 인해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에 이어 오늘날 SK 와이번스로 변천해왔다.)

 

즉 감사용 투수는 실존 인물이란 얘기이고 지금도 진해 리틀야구단의 감독 일을 잘 하고 있다. 그 양반이 겪은 인생의 역경을 소재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1957년생인 감사용 씨는 1994년이 입춘 바닥이었다. 따라서 그를 전후한 15년의 세월이 역경의 기간이었다는 말이 된다.

 

아마추어 쪽에선 무척 뛰어난 투수였던 그는 1982년 삼미 슈퍼스타스의 투수로 발탁되었다. 입춘 바닥으로부터 12년 전이니 사실 그 때가 야구선수로선 최절정의 때였다. 입단 당시가 최고의 시절이었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열심히 던지고 많이 던졌으나 성적은 영 아니었다, 겨우 1승만을 거두었다. 물론 삼미 슈퍼스타스 자체가 약팀인 이유도 일부 있었다.

 

그 바람에 그는 1986년을 끝으로 5년간의 프로야구 투수 생활을 접어야 했다.

 

 

슈퍼스타의 흑역사

 

 

1994년이 입춘 바닥이니 그로부터 7.5년 전을 계산해보면 대략 그 무렵이 된다. 즉 감사용 씨는 그때부터 역경의 세월을 만난 셈이다. 그 이후 구체적인 것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런 그가 다시 야구에 복귀한 것은 2006년이었다. 즉 1986년 이후 근 20년의 세월 동안 과연 감사용 씨는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고 생계를 이어갔을까? 야구하던 사람이 야구를 떠났으니 힘들게 살았을 것은 당연하지만 말이다.

 

1994년을 전후한 15년의 삶은 그야말로 그에게 黑歷史(흑역사)였을 것이 분명하다. 본인과 가까운 이가 아니면 전혀 모른다, 어둠에 덮여있다. 그 15년의 기간은 1957년인 그 분에게 서른 살에서 마흔 중반까지의 세월이었을 것이니 좋은 세월 어둠 속에 모두 묻었다 하리라.

 

 

마침내 길을 열은 감사용

 

 

2006년에 그는 국제디지털대학교 야구팀의 감독을 맡았지만, 그 역시 현역 시절처럼 단 1승만 거두고 1년도 채 안 되어 팀이 해체되었다. 또 다시 얼마나 좌절했을까나!

 

하지만 그에겐 또 다시 좋은 기회가 주어졌으니 2007년부터 고향인 진해시의 리틀야구단 감독을 맡아서 지금까지 줄곧 야구의 길을 걸어오고 있다.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되살아난 것이다. 길고 긴 어둠의 세월을 보낸 뒤 또 다시 살아난 것이다. 또 다시 힘차게 야구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감사용 투수이고 감독이다.

 

야구를 지망했던 사람이 평생 야구를 하면서 살아간다. 이게 바로 성공이고 사실은 대성공이다. 그 분 스스로도 더 이상 바람이 없을 것이다. 좋아하는 야구를 하면서 밥을 먹고 살 수 있으니, 최근 젊은이들이 일컫는 바 德業一致(덕업일치)의 길을 걷고 있다, 대성공이다.

 

감사용 그 분의 命(명)은 야구였고 運(운)은 1986년부터 근 20년, 이면을 보면 정확하게 15년 동안 어둠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마침내 성공했다. 다시 살아났다.

 

1987년부터 추운 겨울을 보낸 셈이고 1994년 초봄을 맞아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삶’을 보낸 끝에 2006년엔 야구로 되돌아오는데 성공한 감사용 씨.

 

짐작컨대 그 사이에 이런저런 일을 해보았지만 모두 신통치 않았을 것이고 이에 마침내 어쨌거나 야구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고 노력한 결과 야구로 되돌아오는데 성공한 감사용이다.

 

 

살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역경의 세월에서 신속하게 벗어나는 신통한 방법은 없다고 앞글에서 얘기했다. 하지만 그 어려운 세월 속에서 열심히 길을 찾다 보면 이에 세월이 가서 연수가 채워지면, 겪을 것을 다 겪고 나면 희한하게도 살 길을 찾을 수 있는 것이 또한 삶과 운명의 이치라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이제 길은 찾았지만 더 이상 그 길을 갈 수 없게 되는 경우도 있다. 바로 우리 프로야구에 있어 영원한 전설의 투수 최동원의 경우이다.

 

 

한국 프로야구의 레전드 최동원

 

 

최동원은 나 호호당의 고등학교 3년 후배이고 훗날 그가 암흑의 약사를 쓰고 있을 시절인 2000년대 초중반 무렵 우연한 계기에 만나서 비록 짧은 기간이었으나 많은 정을 나누었다.

 

1958년생인 최동원은 1971년이 기의 절정인 立秋(입추)였고 1984년엔 코리언시리즈 4승의 성적으로 롯데 자이언츠가 우승하는데 있어 大功(대공)을 세웠다. 그는 현역인 류현진 투수와 함께 우리 프로야구 스타 중의 대스타였다.

 

 

최동원의 흑역사

 

 

그런 그가 1971년 입추의 운으로부터 30년이 흘러 2001년엔 입춘의 운을 맞이했다. 따라서 그 역시 2001년을 전후한 15년의 세월이 암흑기가 되었다.

 

1991년 자의반 타의반으로 은퇴를 한 그는 이후 그간에 모은 적지 않은 자금으로 의류사업가로 나섰다가 크게 털어 먹었으며 또 무리하게 정치에 입문하여 출마했지만 낙선하면서 바닥으로 떨어져갔다. 그러자 방송인으로 데뷔하기도 했으나 역시 실패하고 급기야 생활고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2001년 입춘 바닥의 해에 스타 출신을 인정받아 한화의 투수 코치를 맡게 되었으나 곧 그만 두게 된다. 나중에 내게 솔직히 털어놓길 후배 선수들이 영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에 그건 자네가 아직 스타 시절을 잊지 못한 탓이 크다고 지적하자 발끈-하고 화를 내는 최동원이었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어서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말처럼 최동원의 문제는 현역 시절 너무나도 대스타였다는 점이었다고 나는 판단한다. 과거의 엄청난 영광이 오히려 그의 발길을 묶어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동원은 너무나도 괴로워했다. 괴로울 땐 나를 찾아와 잘 먹지도 못하는 술을 연신 들이키곤 했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自虐(자학)의 시절을 보냈던 최동원이었다. 그러자 대장암에 걸렸다. 병을 부른 셈이고, 눈앞의 세월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라 여긴다.

 

2006년 이후 그를 보지 못했다. 그저 신문지상을 통해 그가 암투병 중이란 소식만 접했다. 그리고 2011년 그는 53세의 나이로 他界(타계)했다. 소식을 접한 나는 혼자서 그를 추억하고 또 추모하면서 많은 눈물을 쏟았다.

 

 

감사용과 최동원

 

 

프로야구 전적 ‘꼴랑’ 1승의 투수 감사용, 최고의 전설 최동원, 나는 늘 이 두 사람의 삶을 비교해본다.

 

야구가 좋아서 야구를 했지만 스타가 될 수 없었던 감사용, 프로야구 최고의 스타로서 승승장구했던 최동원, 좋아하는 야구를 하면서 오늘날에도 잘 살고 있는 감사용, 인생 중년에 세상을 떠나야 했던 최동원.

 

굳이 승자를 가리진 않겠다.

 

하지만 역경에 처했을 때 감사용은 살고자 애써 길을 찾았고 마침내 살 길을 열었다. 최동원은 역경을 견뎌내지 못했다, 이에 몸을 다치고 세상을 떠야 했다.

 

역경이란 것 긴 인생 살다 보면 으레 만나게끔 되어있다. 살고자 하는 의지만 확고하다면 살게 되어 있고 나중엔 잘 살 수 있는 인생이다. 하지만 스스로를 괴롭히고 자책만 하면 그 길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역경에 처해도 스스로를 소중히 여긴다면

 

 

정리하면 스스로를 아끼고 소중히 하는 자는 긴 역경의 세월을 보내고 더 단단하고 튼튼해져서 힘차게 좋은 인생을 열어가게 된다는 얘기이다.

 

우리 대한민국이 이제 逆境(역경)의 때로 들어서고 있다. 2024년이 입춘 바닥이니 이제 初入(초입)이고 시작인 셈이다. 나라가 어려우면 정도의 차이야 있겠으나 그 안에 몸을 담은 우리들 모두 어려워질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2024년을 전후한 15년의 힘든 세월,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휩쓸려가게 될 지. 그래서 이 글을 썼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충동적으로 나서거나 겁에 질려하지만 말고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면서 굳은 의지를 다져나간다면 또 다시 좋은 세월 맞이한다는 얘기를 하고파서였다.

긴 인생 살다보면 큰 역경도 있기 마련이니



우리가 살다보면 浮沈(부침)은 늘 있기 마련이다. 잘 되다가도 어려워지고 어려워졌다가도 의외로 잘 풀린다. 이는 운의 短期(단기) 사이클 즉 60개월에 걸쳐 순환하는 운의 작용이다. 


하지만 긴 인생 살아가다 보면 정말로 큰 逆境(역경)에 처해서 장기간에 걸쳐 힘든 시기를 보낼 때가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때를 겪게 된다. 물론 이 역시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야 있지만 말이다. 


이는 60년에 걸쳐 순환하는 운의 작용 때문이다. 


표층 해류와 심해 해류



바다에는 이른바 海流(해류)가 있는데 이는 주로 바람의 영향으로 생겨나는 흐름,즉 물의 윗부분으로 빠르게 흘러가는 표층 해류이다. 그런데 또 다른 해류도 존재한다. 대양의 해저 밑바닥엔 바닷물의 밀도에 의해 생겨나는 심층 해류가 있다. 심층 해류는 대단히 느리게 움직여 가는데 학자들은 이를 심층 순환이라 부른다. 


심층 순환은 표층 순환과 더불어 지구상의 저위도와 고위도 간의 열에너지 교류를 통해 전 지구 차원의 에너지 평형을 유지하고 있다.

5년 60개월에 걸친 단기 운세 순환을 표층 해류라 한다면 60년에 걸친 순환은 일종의 심층 순환이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심층 순환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이는 60년에 걸친 장기적 운의 순환이 존재한다는 것을 현대인들이 모르는 것과 같다. 



60년에 걸친 에너지의 유출과 유입



60년에 걸친 운의 순환이기에 운세가 상승한다는 것은 에너지가 30년에 걸쳐 유입되는 과정이라 하겠고 운세가 하강한다는 것은 반대로 30년에 걸쳐 에너지가 유출되는 과정이라 봐도 무방하다. 


진정한 역경은 에너지 유출의 마지막과 유입의 초기 부분이다.



그렇기에 늘 있기 마련인 단기적인 부침이나 호운 불운이 아니라 60년에 걸친 장기 운세 순환에 있어 에너지가 거의 다 빠져나간 마무리 시기, 그리고 에너지 레벨 바닥을 치고 다시 유입되기 시작하는 초입 부분의 시기가 바로 오늘 글의 주제라 하겠다. 바로 이때가 삶의 진정한 역경이라 부를 수 있는 시기인 것이다. 


그 시간은 사실 놀랍게도 엄격할 정도로 확정되어 있다. 에너지 유출의 마지막 시기는 7.5년이고 다시 유입이 시작되면 그로부터 다시 7.5년, 합하면 15년의 시기가 우리가 살아가면서 정도의 차이는 있다 해도 결국 누구나 겪게 되는 길고 험한 역경의 때를 이룬다. 



운세 순환은 한 해의 순환으로도 설명이 된다.



운세의 하강과 상승을 에너지의 유출과 유입으로 설명했지만 다른 방법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가장 직관적인 이해가 가능한 방법이며 나 호호당이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운세 순환을 한 해 사시사철에 비유하는 것이다. 


운세 하강의 마지막 국면은 양력으로 12월 20일경의 동지로부터 2월 4일경의 입춘에 이르는 1.5개월이고 상승의 초기 힘든 국면은 2월 4일의 입춘으로부터 3월 22일경의 춘분에 이르는 1.5개월이라 보면 되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나라의 60년 운세 주기를 예로 들 것 같으면 2017년 4월은 우리 국운의 동지였기에 그로부터 7.5년에 걸쳐 우리의 모든 상황은 날로 어려워질 것이고, 이에 2024년 10월부터 7.5년에 걸치는 기간은 바닥을 친 다음 또 다시 일어서기 위해 그야말로 악전고투의 시련을 겪게 된다는 말이다. 합치면 15년에 걸친 길고 긴 역경의 때가 된다. 


이처럼 역경의 기간은 15년이라 했지만 그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것 같으면 그 한 가운데에 존재하는 10년의 시기야말로 역경 중의 역경에 해당이 된다. 



10년의 암흑기 혹은 흑역사



그렇기에 긴 인생 살아가려면 누구나 최소한 10년의 기간은 암흑기, 이른바 黑歷史(흑역사)를 거치게끔 되어있다. 그 암흑기는 사람마다 정도가 다르다 하겠지만 어떤 이는 그 기간 중에 그만 몹쓸 병에 걸려서 세상을 등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나 호호당은 인생 중년에 암이나 여타 불치병에 걸려 세상을 등진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흑역사의 세월을 잘 극복한 결과 지금에 와선 만족할 수 있는 인생을 구가하고 있는 사람들 또한 정말 무수히 기억한다. 


나 호호당 역시 인생의 암흑기를 거쳤다. 그리고 그간 무수히 많은 간접 경험과 연구를 해왔다. 


호호당, 이젠 최고전문가가 된 셈이라



이에 어떻게 하면 逆境(역경)의 시기가 어떤 것이며 또 그로부터 어떻게 하면 잘 벗어나서 또 다시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이 방면의 최고 전문가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니 많이 민망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빈말은 절대 아니다.)


역경으로부터 헤쳐 나오는 것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다 자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만 하면 된다는 식의 무슨 특별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는 말 또한 절대 아니다. 



역경을 헤쳐 나오는 특별한 방법은 없다.



미리 얘기하는 바, 어려움에 처했을 때 신속하게 빠져나오는 방법은 없다. 오래된 책인 淮南子(회남자)에 이르길 ‘울창한 숲에서 빠져나옴에 있어 처음부터 가장 빠른 길을 알고 있는 이는 없다’는 말이 있는데 참으로 옮은 말이다. 出林者不得直道(출림자부득직도). 


어려움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처음엔 당연히 막연하지만 그냥 있을 순 없고 해서 이리저리 헤치다 보면 결과적으로 어떻게 용케 빠져나오는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역경에서 빠져나옴에 있어 비록 ‘좋은 원칙’은 있을 수 있겠으나 ‘절대의 방법론’은 없다는 말이다. 


그럼 이제부터 삶의 큰 역경에 처한 당신이 어떻게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 얘기해본다. 



역경이 장기 흐름인지 단기 흐름인지부터 분별해야



먼저 얘기할 것은 지금의 어려움이 단기적인 흐름인지 즉 60개월에 걸친 단기 사이클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장기적인 흐름 즉 60년에 걸친 장기 사이클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분별해야 한다는 점이다. 


가령 不振(부진) 혹은 不調(부조)의 기간이 40개월 이상 지속되고 있다고 한다면 당신의 운세는 장기 흐름이 꺾인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다시 말해서 이제 15년 짧게는 10년에 걸친 역경의 初入(초입)이라 봐도 된다는 말이다. 


증시로 말하면 그건 상승세 속에 나타나기 마련인 하락 조정이 아니라 기본 흐름이 하락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과 같다. 


증시하시는 분들은 장세가 오르다 꺾이면 그것이 단기 하락 조정인지 아니면 대세 하락인지를 판별하지 못해서 낭패를 볼 때가 있다. 한다. 사실 그게 쉽지 않은데 이처럼 운세 흐름 또한 이 글을 읽었다고 해도 쉽게 판별하기 어려울 것이라 본다. 


아무튼 이제 운명의 큰 흐름이 하강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하자. 이에 조급한 나머지 신속하게 벗어나고자 하는 억지 또는 무리수를 감행하는 수도 많다. 이 경우 오히려 더 나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이 역시 증시로 비유해보면 주가가 많이 하락했다고 해서 섣불리 바닥을 점치고 주식을 대거 매수하거나 ‘물타기’한 결과 상황을 최악으로 몰고 가는 경우가 일반 투자자들 사이에 허다한 경우와도 같다. 



장기적인 운세의 어려움은 증시가 바닥을 기는 것과 같다.



基調(기조)적으로 하락하는 주식이나 증시는 결국 매도할 사람이나 펀드가 다 털고 나간 다음에도 한참 동안 바닥을 긴 다음에야 서서히 새로운 재료가 생겨나고 그로서 또 다시 길고 긴 굽이굽이 상승세로 돌아선다. 


이처럼 한 번 장기 역경에 처한 사람의 경우도 그 과정이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 거칠 것은 다 거쳐야 하고 겪을 것이 있으면 다 겪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 이 글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그런데 어느덧 분량이 되었기에 다음 글에서 이어가기로 한다. 


그리고 오늘 이런 글을 마련하게 된 것은 최근의 우리 사회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최근 들어 급속하게 탄력이 죽어가는 우리 경제인 것이고 그 바람에 비록 당장은 일자리가 있고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해도 실로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장래 혹은 미래에 대해 많은 불안감을 가진 채 살아가는 현실이다. 이에 혹시나 최악의 경우를 당하면 어쩌나? 하는 그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고 싶은 마음에서 이 글을 준비했다. 


이어지는 글을 기대하셔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