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이미 잘 사는 부국이 되었다.
미국 CIA가 해마다 작성 발표하는 월드 팩트 북(World Fact Book)에 근거해서 뽑아보면 2017년 우리나라의 1인당 명목 GDP는 30,000 달러로 나와 있다. 하지만 실질소득을 반영하는 구매력평가(PPP)에 의하면 39,400 달러로 되어있다.
여전히 잘 사는 나라로 알려진 일본을 보자. 구매력평가로는 1인당 42,800 달러로 나온다. 실질소득 면에서 우리가 일본의 92% 수준이니 사실 별반 차이가 없다. 말이 나온 김에 좀 더 얘기하면 한 때 세계를 호령했던 영국의 구매력평가 기준 1인당 소득 역시 44,100 달러라는 사실이다.
우리의 1인당 실질소득이 일본이나 영국에 비해 사실 크게 차이가 나지도 않는다. 그러니 우리 대한민국은 어느새 세계적으로 잘 사는 나라가 된 셈이다. 전체 경제규모에 있어서도 우리는 GDP 1조5380억 달러로서 세계15위의 경제 강국이다.
참으로 엄청난 발전과 성장이었다.
1960년대 세계 최빈곤국의 처지에서 오늘날 이렇게 놀라운 성장과 발전을 이룩한 우리 대한민국이다. (1955년생인 나 호호당이 기억하기로 어린 시절 ‘필리핀’이라 하면 바나나가 많아서 먹을 것 풍부하고 생활도 우리보다 훨씬 잘 사는 나라로 여겼을 정도로 우리 처지가 어려웠다.)
지금까지의 얘기인 즉 우리나라가 50년 만에 최빈곤국의 처지에서 글로벌 전체적으로 상당히 부유한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행복하지 않은 대한민국
그런데 참 이상하다, 정말 이상하기만 하다. 잘 사는 나라가 되었으니 만족하고 행복해하게 살아야 할 것 같은데 우리 국민이면 누구나 알다시피 전혀 그렇지가 않다. 사회의 분위기로 친다면 1990년대가 훨씬 활력이 있고 희망도 많았다.
촌티가 났음에도 활기에 찼던 1990년대
이 대목에서 생각나는 게 있다. 1994년 평균 시청률 40%대를 기록했던 인기 드라마 “서울의 달”이 그것이다. 나 호호당 역시 당시 그 드라마를 열심히 시청했다. 그런데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우연히 그 드라마를 다시 볼 수 있었는데, 보면서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달동네는 물론이고 서울의 번화가 풍경이 너무나 초라해서 충격을 받았다. 기억하기론 괜찮았던 것 같은데 저렇게 초라했던가 싶었다.
그런데 더 생소했던 것은 소시민의 애환을 그리고 있었음에도 활력이 넘치고 있었다는 점이다. 촌스럽기도 했지만 모두가 나름의 꿈과 희망을 안고 열심히 살고 있었다. 정말이지 에너지가 느껴졌다. 젊고 건강한 대한민국의 모습이 그 드라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러고 나서 생각해보니 2000년 중반 이후 우리의 텔레비전 드라마는 소위 ‘막장 드라마’가 축을 이뤘다. 그리고 2010년대 들어선 다시 조금 달라졌다. 막장 보다는 환타지가 중심에 놓이기 시작했다. 시크릿 가든, 별에서 온 그대와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그 이후 과거를 되돌아보는 ‘응답하라’ 시리즈가 풍미했다.
올드보이 대한민국
현실이 괴로우니 환타지인 것이고 회고풍의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는 것은 이제 우리 대한민국도 나이가 들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늙은 대한민국이 된 것이다. 올드 보이 코리아!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의 선전문구가 ‘다이나믹 코리아’였건만 이제 그 역동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나라가 늙은 것이다. 나라가 노화되다 보니 젊은이들에게서도 열정의 패기보다는 시닉(cynic)한 모습을 더 많이 느낀다.
가끔 젊은이들이 텔레비전에 나와 인터뷰 할 적엔 주먹을 불끈 쥐고 패기 찬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건 카메라 앞이라서 그런 것 같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유행하기 시작한 말들은 N포 세대, 문송, 헬 조선, 이생망, 주로 이런 말들이 아닌가.
푸념이나 엄살도 사라진 최근의 분위기
그런데 더 기분이 께름칙한 게 있다. 최근 들어 젊은이들 사이에서 새로운 신조어가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헬 조선이란 말이 유행할 적만 해도 그래 현실이 힘드니 저런 푸념이라도 해야지 했는데 최근 들어선 젊은이들의 엄살이나 푸념이 귓전에 들려오지 않는다.
원래 힘들어지면 엄살도 피우고 푸념도 하기 마련인데, 진짜 어려워져서 어떤 임계치를 넘어서면 오히려 조용해지는 것이 사람의 일반적인 심리이다.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自嘲(자조)적인 유행어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 젊은이들이 침묵하고 있다는 것, 이게 영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러고 보니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소리 높던 反美(반미)의 목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는다. 그 역시 하나의 시대적 유행이자 風潮(풍조)였던 셈이다.
왜 그럴까?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우리 국민들의 자긍심과 자신감이 넘쳐났기에 우리 주변의 강국들은 죄다 ‘놈’자를 붙여 불렀었다. 미국 놈, 일본 놈, 중국 놈, 러시아 놈,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최근엔 그런 소리마저 드문 것을 보니 우리 대한민국도 기력이 쇠한 모양이다. 요란했던 반미 역시 우리가 급성장하고 국력이 강해지면서 생겨난 자신감의 반영이었던 것이고 이젠 그 자신감이 많이 약해진 것 같다.
젊은이들이 힘들어도 이젠 불평을 하지 않고 반미의 목소리 역시 사라졌다. 젊은이들의 목소리, 경륜이 부족해도 그들의 주장엔 귀담아 들을 것이 있는 법이고 진보 좌파의 주장 역시 때론 지나치게 도덕적이고 현실엔 맞지 않아도 그 역시 미래의 지향점을 보여준다.
그런데 최근엔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조용하다.
늙고 지친 대한민국
사람들 사이에서 피로감이 느껴진다. 뭔가 이젠 많이 피곤해진 감이 든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피로사회’란 제목의 책이 제법 화제가 되었다. 읽어보니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다. 간단히 내용을 애기하면 오늘날 세상은 누군가의 강제가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갈구고 착취하고 소진시키는 사회란 것이었다.
꼭 책의 내용과 같은 의미는 아니라 해도 우리 대한민국은 그간 너무 열심히 달려왔고 서로 간에도 치열하게 경쟁해왔다. 너무 전투적인 시간들로 채워졌다. 그러니 피곤을 느끼는 정도가 아니라 어떤 한계점을 넘어선 것도 같다.
이 대목에서 얘기를 잠깐 비틀어간다.
나 호호당은 운명이란 것이 뭔지 궁금해서 연구해온 사람이다. (언어학과 역사에 대한 취미도 상당하지만 아무튼 블로그를 통해선 주로 운명을 주제로 얘기하고 있다.)
그러다가 자연순환운명학이라 것을 정립하게 되었다. 그 바람에 늘 사이클, 주기, 순환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평소 순환이란 자연의 四季節(사계절)과 같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순환을 달리 표현하면 삶의 순환, 즉 생노병사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만이 아니라 조직이나 단체, 나아가서 나라도 그런 과정을 밟는다고 여긴다.
수시로 우리 대한민국의 國運(국운)에 대한 얘기도 한다, 60년 순환을 주로 자연의 계절에 비유해서 얘기하지만 이를 사람의 과정으로 얘기하면 우리 대한민국은 이미 늙고 병이 들어 얼마 안 있으면 죽게 될 단계에까지 와있다는 생각을 한다.
다만 오해하지 마시길. 우리나라는 2024년으로서 1964년부터 이어온 60년의 삶을 마치고 또 다시 새롭게 태어날 것이란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현생은 앞으로 6년밖에 남지 않은 것이고 그 이후론 새로운 대한민국이 태동할 것이란 얘기이다.
1964년에 출발해서 지금까지의 54년은 정말 대단한 세월이었다. 전체적으로 대단히 역동적인 세월이었다.
이제 좀 쉬면서 리빌딩이 필요해
그러니 이제 많이 지친 것이 사실이다. 지쳤으니 활력이 떨어지는 것 또한 당연한 얘기이다. 이에 우리 대한민국은 내년 2019년부터 10년에 걸쳐 쉬게 될 것이다.
쉬는 동안 많은 것들이 부진의 늪에 빠지고 어려운 일들이 닥칠 것이다. 늘 역경을 헤치고 나온 대한민국이었지만 그런 역동성을 당분간은 보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 쉬어야 하기 때문이다.
프로 야구를 보면 부진에 빠진 팀은 당장의 성적보다도 시간을 갖고 리빌딩을 한다. 그처럼 우리 대한민국도 리빌딩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앞의 글, “금융위기 이후 10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에서 우리의 상황에 대한 글을 이어서 쓰겠다는 말을 했다.
오늘 글은 그에 앞서 우리가 장차 어려워질 터인데 왜 그런가에 대해 이제 우리 대한민국이 쉬어야 할 때가 되었다는 말을 하고자 함이었다.
다음 글에서 장차 우리가 겪을 수도 있는 여러 어려운 난제들에 좀 더 구체적인 얘기를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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