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한 고비들을 넘겨왔으니
살아오면서 앞이 캄캄했던 적이 여러 번 된다. 앞날이 막막했던 적도 수 차례 된다. 어떤 순간엔 이게 현실이 아니지 싶어 내 뺨을 꼬집어본 적도 두어 번 있다. 애를 끓이며 하얗게 밤을 지새운 적도 무수히 많고 그러다 보면 아침녘 쓴 입안을 부시려고 연거푸 칫솔질을 한 적도 어디 한 두 번이 아니다.
나중에 자연운명순환의 법칙을 발견한 뒤 알게 되었지만 나 호호당의 운세 흐름은 1997년이 입춘 바닥이었다. 그 바람에 그를 전후한 10년, 즉 1992년부터 2002년까지의 10년은 나 호호당에게 있어 그야말로 黑歷史(흑역사)였던 것이다.
(흑역사, 일본 애니메이션 ‘건담 시리즈’에서 만들어진 신조어라 하는데 나름 재치가 있다.)
자랑거리도 아닌 이런 얘기를 글머리에 꺼낸 것은 이유가 있다.
애를 너무 끓이면 명을 단축하나니
애를 심하게 끓이면 액면 그대로 명줄 단축한다는 얘기를 하기 위함이다.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은 흔히 ‘내 이렇게 애를 태우니 이러다가 명대로 못 살겠네’, 이런 말을 내뱉곤 한다. 그런데 이게 그냥 푸념이 아니라 정말 그렇다는 말을 한다.
중년에 몹쓸 병인 난치성의 癌(암)에 걸려서 세상을 등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물론 유전적인 것이 크겠지만 죽고 사는 문제는 그보다도 그 사람의 운세와 큰 연관, 거의 결정적인 관련이 있다는 것을 그간의 연구와 사례 검증을 통해 나 호호당은 알고 있다.
내 생각에 암이란 난치의 질병에 걸린 것 자체가 지속적인 스트레스, 애를 태우고 속을 끓인 일이 너무 과도했던 결과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암과 같은 질병을 떠나 중년에 사망하는 것 자체가 운세와 관련이 결정적이고 결국 어려운 고비에서 지나치게 애를 태우고 속을 끓인 것이 원인이라 여긴다.
대학 동기 송년회에서의 일
어제 저녁 대학 학과 동기 송년회가 있었다.
사회를 맡은 이가 하는 말인 즉 동기 모임을 하다 보면 남자들의 경우 65-70세 사이가 생존자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구간이란 얘기였다. 그 구간을 지나면 사망하는 사람이 크게 줄어서 대충 80세 전반까진 이어진다는 말이었다.
그런 얘기를 듣다보니 절로 그간에 세상을 등진 친구들에 대해 새삼 헤아려보게 되었고 확률을 뽑아보니 대학 졸업 후 15% 정도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계산이 나왔다. 대략 1/6.
그 중에 한 친구는 각별했던 터라 생년월일시를 알고 있었다. 동갑인 1955년생인데 2009년이 입춘 바닥이었고 2014년에 췌장암이 발병해서 2015년에 사망했다.
그 친구는 한때 이른바 갑부집의 맏아들이었다. 1980년대 초반 그 친구의 부친은 서울 중심가에 소유하고 있는 대형 빌딩만 80채가 넘을 정도의 부자였다. 그런 부자가 어느 날 빚에 내몰려 졸지에 몰락하고 말았다.
부친이 남긴 국세체납액이 너무나도 많아서 그 친구는 도저히 어떻게 재기해볼 수도 없었다. 이에 서울 은마 아파트 상가에서 구멍가게를 하면서 지내오던 중 췌장암이 발병한 것이다.
병에 걸리기 전, 그 친구를 만날 때마다 속 비워, 이런들 저런들 한 세상이야, 너무 애 끓이지는 마, 늘 이런 충고를 해주던 터였다. 한편 속으로 저 친구 저러다가 결국 2014-2016년의 험한 구간을 넘기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늘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런 병에 걸렸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야, 나 살 수 있겠니? 내 팔자 좀 잘 살펴봐 하고 물어 보는 바람에 선뜻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췌장암은 사망률이 지극히 높은 병이고 게다가 그 친구의 운세를 잘 알고 있던 터라 빈 말일지언정 쉽사리 해줄 수가 없었다. 그냥 얼버무렸던 기억만 난다.
그 친구를 장지에 묻고 나서 ‘자네, 그렇게나 속을 끓였으니 빨리 간 거야,’ 하면서 술을 부어 주었다. 송년회 모임 내내 나는 그 친구 생각에 잠겨있었다. 박수치면 박수 치는 시늉을 하면서도 말이다.
살면서 깨달은 것들
그때 깨달은 것이 하나 있으니 여린 사람이 큰 성공을 하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자리에 오르면 명 재촉한다는 점이었다. 덤덤한 자는 성공을 해도 덤덤할 것이고 따라서 망해도 덤덤할 것이지만, 여린 자는 그게 어렵기 때문이란 생각이었다.
아끼던 고등학교 후배, 전설의 투수 최동원이 생각난다. 1986년 코리언 시리즈 4승의 투수였던 그가 몰락한 2000년대 중반 나와 친하게 지냈는데 볼 때마다 너무 속상해하고 애를 끓이는 것이었다.
술에 취한 나머지 추태까지 부리는 바람에 야 이놈아, 너 그러다가 암 걸린다, 네 체질로 볼 때 대장암이야, 하고 겁을 주었는데 말이 씨가 된다고 그만 나중에 대장암으로 2011년에 사망했다. 겨우 52세의 나이였으니 그야말로 비통한 일이었다.
살면서 또 깨달은 것이 있으니 名利(명리)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명예와 이득에 너무 집착하다가 그것을 정작 잃게 되면 뒷감당이 어렵다. 그 결과 몸을 다치게 해서 암에 걸리거나 여타 다른 병으로 인해 짧은 삶으로 마친다는 얘기이다.
명예와 이익이란 萬人(만인)이 다투는 물건이다. 만인이 다투다 보니 차지했다고 해서 영원히 내 것으로 온전히 차지하기도 어렵다. 사는 동안 잠시 얻었다가 되돌려주는 물건이 名利(명리)가 아닌가 싶다. 그것도 어쩌다가 얻게 되는 것에 불과하니 기본적으로 헛것이나 같은 물건이라 여긴다.
말로서 의미를 전달하기란 참으로 어려워서
상담을 하다 보면 말의 의미를 이해시킨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가령 운세가 이제 한창 내리막인 사람이 찾아왔다고 하자.
그 경우 특히 60년 순환에 있어 52.5년이 경과하는 때, 즉 冬至(동지)의 운에 무리한 일이나 새로운 일을 펼치지 말라는 주의 또는 당부를 하게 된다.
그런데 상대는 다시 물어본다. 제 수명은 얼마나 될까요? 하고.
그러면 그게 다 하나로 연결된 것이란 말을 해준다. 동지 운에 무리하다가 일이 잘못 되면 명이 줄어들 것이고, 그 때를 무난하게 넘길 것 같으면 장수를 할 수 있다는 말.
가령 동지 운에 무리한 일에 착수하면 모든 것을 그르치게 되고 그 결과 애를 태우고 속을 끓이다 보면 명을 재촉할 것이란 얘기를 다시 한 번 들려준다.
모든 것은 因果(인과)의 사슬로 이어진다. 실패하면 돈만 날리는 것이 아니라 목숨까지 송두리째 통째로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시킨다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다. 겪지 않은 일을 전달하기란 어렵다.
사람들은 돈과 이익, 명예 같은 것이 잃게 될 경우 사람의 목숨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자명한 이치를 모른다. 관념적으론 알 수 있어도 그게 진짜로 그렇다는 것을 아는 이는 드물다.
뭣이 소중한 가?
나 호호당 보기에 우리가 가진 가장 중요한 재산 혹은 자산은 다름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잠정적으로 머무를 수 있는 권리’라 말할 수 있는 생명 혹은 수명이다. 돈이나 재산, 명예 같은 것은 목숨 자체에 비하면 사실 별 것이 아니다. 또 그런 면에서 이 세상에 태어난 이는 근본적으로 거의 평등하다는 생각도 해본다.
너나 나나 한 세상 살다가는 것에 큰 차이는 없다는 얘기이다. 다만 긴 인생 충분하게 누리다 가느냐 아니면 운세가 바닥을 길 때 속을 끓이고 애를 태우는 바람에 고비를 넘지 못하고 그만 숨을 멈추게 되느냐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 여긴다.
나 호호당의 경우 1997년이 바닥이었기에 2005년 무렵엔 내가 이러다간 얼마 살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그만 살고픈 생각도 들었다.
이에 조금씩 생각을 바꿔 먹었다. 우선 들숨과 날숨을 편안하게 길게 가져가는 연습부터 시작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과거지사 실수한 일 따윈 최대한 잊어버리고 지워버리고자 노력했다. 모든 이가 바보이고 멍청한 데가 있는 법이니 나라고 예외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현명해져보자, 이런 생각을 했다.
아마도 나 호호당이 조선 시대 사람이었다면 그 무렵에 죽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50세의 나이로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엔 좋은 점이 있으니 영양이 충분해서 기초체력이 좋다는 점이다. 세상을 잘 만난 것이다. 이에 그런대로 영양 섭취가 되는 바람에 서서히 천천히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2007년부턴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했고 그 이후 지금까지 무난하게 잘 살아오고 있다. 나름 성공한 셈이다.
이제 歷戰(역전)의 인생 용사로서
지난날 눈앞이 캄캄할 정도의 고비가 어디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좋게 말하면 열정이고 달리 말하면 욕심이 많은 탓에 고생을 자초했다는 생각을 한다. 이에 그 많은 어려운 고비와 위기를 견디고 참으면서 살아오다 보니 이제 환갑도 넘겼고 기왕지사 아흔까지 살아보고자 하는 의욕을 부린다.
모친이 아흔에 돌아가셨다. 그러니 아들인 나 호호당 역시 가능한 일 아니겠는가 말이다. 물론 이 또한 욕심이지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 조심해가면서 잘 살겠다는 의욕일 뿐, 실은 언제 저 세상에서 불러도 놀라지 않고 담담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기본은 채웠지 않은가. 어제 저녁 동창회에서 나눈 말이 바로 ‘우리가 기본은 했다’ 그런 얘기였다.
잘 산다는 것
사람들은 잘 살아야 한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잘 산다는 것에 대한 저마다의 생각은 참으로 다른 것 같다. 나이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것 같다. 언어는 같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용은 각인각색이다.
길게 살려면 영광의 때도 있지만 굴욕 또한 피할 수가 없다. 이에 그 榮辱(영욕)이 사람을 피폐하게 한다. 하지만 너무 피폐해져서 넘길 수 있는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길게 살 수가 없다.
나로선 뭐니 해도 길게 사는 삶이 잘 사는 것이란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현재를 살펴보면 세월의 傷痕(상흔)은 남았다. 아직도 쉬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나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것 모두 일종의 상흔이다. 가급적 단출하고 조촐히 살려는 노력 역시 실은 과거 상처로부터 받은 영향일 것이다.
시인 워즈워드가 읊은 시 중에 ‘초원의 빛’이 있다.
시에서 언급되는 초원의 빛과 꽃의 영광이란 살다보면 어차피 잃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길게 살아야만’ 빛나는 그 순간을 다시 맞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연말이다. 세밑이 며칠 남지도 않았다. 독자 여러분과 그 가정의 안녕과 행복을 진심을 다해 기원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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