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밤의 뒷산 산책
추운 밤, 아파트 뒷산에 올랐다. 강아지들 데리고 아들과 함께. 고양이 사료도 주고 겨울새 모이도 주고 강아지들 응가도 시키고, 근 9년째 지속되고 있는 우리 父子(부자)의 생활 루틴이다. 밤 시각 아들과의 뒷산 산책이야말로 하루 중에서 가장 즐거운 때가 아닐 수 없다.
처음엔 세 마리의 강아지였는데 그 사이에 두 마리는 죽어서 뒷산 경사면에 묻혔고 남은 놈도 이젠 올드 독, 하지만 2년 전 갓 태어난 신참 흰둥이가 합세했다.
흰둥이는 한창 나이라서 팔팔하고 달리기를 즐겨서 매일 밤 뒷산 고양이들과 풀숲을 쑤셔놓으면서 술래잡기를 펼친다. 고양이들도 밥 주는 아저씨의 강아지인 줄 알아서 그저 피하기만 할 뿐 사납게 맞서는 경우는 없다. 한 수 접어주는 것이다.
뒷산 공터에 오르니 동남쪽 높지 않은 하늘에 겨울철의 왕별인 시리우스가 밝고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산에 잘 올랐다고 환영해주는 느낌. 기온은 영하 8도이지만 며칠 사이 추위에 적응이 된 탓인지 그다지 춥지 않았다.
아들에게 물어보곤 한다, 저 별은 뭐지? 그러면 아들은 스마트폰 앱을 가동시켜 내게 알려준다. 밤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 불빛이 깜빡깜빡 비치면 나는 또 아들에게 물어본다, 그러면 아들은 또 스마트폰 앱으로 저건 어디에서 어디로 날아가는 무슨 항공 소속 화물기라고 알려준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 시각은 2018년 12월 31일 새벽 1시 11분이다. 해의 마지막 날, 즉 歲暮(세모)이고 세밑의 마지막 날이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송년인사를 드릴 참 해서 자판을 탁탁탁 두드린다.
類似(유사) 자연인의 삶을 살고 있는 호호당
어떤 면에서 나 호호당은 도심에 살고 있는 自然人(자연인)이다. “나는 자연인이다”의 그 자연인 말이다.
새벽 또는 아침녘이 되어야 잠에 들고 점심 무렵에 일어나 간단하게 아점을 먹고 오후 3시나 되어야 작업실로 나간다. 찾아오는 이와 상담을 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책을 보거나 생각에 빠져있다. 무료하면 근처의 강남 교보타워 지하 책방에 들러 책 구경을 하거나 책을 사기도 한다. 문구점에 가서 그림 종이나 재료를 사기도 하고.
며칠 전엔 일본 추리작가 교고쿠 나쓰히코의 소설 ‘우부메의 여름’을 사서 잠자리에서 읽었다. 추리소설을 잠자리에서 읽는 것은 사실 좋지가 않다. 흥미가 돋기 시작하면 결국 잠에 들지 못하고 끝장을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잠들기 전에 읽는 책은 역시 딱딱한 학술서적이나 아니면 차라리 순수문학 소설이 좋다. 그런데 토마스 만의 ‘마의 산’과 같은 소설은 절대 피하는 것이 좋다. 그런 책은 잠을 부르기는커녕 2천년 서양 역사와 철학, 기타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일깨우는 웅장한 교향악과도 같아서 한동안 불면증에 빠질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러니 차라리 시집 같은 것이 좋을 것 같다.
아무튼 궁금증을 유발하는 추리물이나 또 흥미진진한 역사책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는 얘기.
저녁 식사는 약속이 없는 한 작업실 근처의 식당에서 해결한다. 마땅한 생각이 나지 않을 때 찾는 곳은 가까운 버거킹 그리고 할머니가 하는 허름한 분식점의 치즈 라면이다. 치즈 라면만 먹은 날은 아무래도 금방 출출해지는 탓에 작업실 구석에 놓인 크래커로 해결한다. 아이비는 아이비대로, 참이나 에이스 역시 나름의 맛이 있다. 달달한 믹스 커피와 함께 먹으면 요기가 된다.
인상에 남는 相談(상담)
오늘 일요일 상담 한 건을 했다. 나름 독특한 상담이어서 인상에 남는다.
40대 남자 엘리트 직장인이었고 마침 솔로라서 기왕이면 고생길을 가보라고 얘기해주었다. 아울러 그 친구 역시도 험한 길을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운이 하강하면 마침내 바닥에 도달하게 되고 그러면 또 다시 되살아나게 된다. 그 친구는 현재 운이 서서히 기울고 있는 터라 장차 크게 보면 두 가지 코스가 있는데 당신이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을 해주었다. 물론 선택은 그대의 몫이란 말도 해주었다.
한 가지 길은 험난한 길인데 도중에 엄청 후회되는 때도 있겠지만 길게 보면 그로 인한 보상도 큰 길이고 또 한 가지 길은 나름 연착륙하는 길인데 나중에 보면 재미도 보람도 별로 없다.
선택을 하라고 말은 했지만 나는 그 친구가 터프한 첫 번째 길을 택할 것이라는데 베팅을 했고 그 친구 역시 그쪽 길을 가겠다는 말을 했다. 띵동!
남자라고 하는 동물의 삶
물론 내 편견이겠으나 남자란 동물이 힘을 발휘하는 경우는 두 가지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 하나는 무거운 책임을 짊어졌을 경우 또 하나는 동기부여가 확실한 경우가 그것이다.
남자들을 보면 책임질 일도 없고 동기부여가 되지 않으면 참으로 쓸모가 없고 무능한 존재가 되고 만다는 것이 여태껏 살아오면서 가지게 된 생각 혹은 편견이다. (하기야 개인의 가치판단은 거의 99.99%의 확률로 편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러니 남자가 일찍 돈을 벌거나 성공하고 나면 사실 그게 더 문제가 된다. 자칫 타락의 길로 갈 수가 있다.
아무튼 그렇다 치고 얘기이다. 돈이 많고 적고, 환경이 좋고 나쁘고, 사실 이런 것들은 남자가 인생을 보람 있고 의미 있게 살아감에 있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대다수 젊은이들은 이런 점을 모른다.)
대상이 무엇이든 그것에 대한 동기가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어쩌다가 성급한 욕정 또는 무언가에 눈이 멀어 결혼을 하고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현실의 무게를 견딜 때만이 남자는 제 역할을 하고 능력을 발휘한다는 생각이다.
남자가 잘 산다는 것은
그간에 대다수의 남자들은 주로 두 번째 길, 결혼해서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투덜거리면서도 힘차게 살아왔고 또 그 바람에 나중에 가서 자신의 피곤하고 고단했던 삶을 돌아보며 긍정하면서 편히 숨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사실 그게 잘 사는 길인 것이다.
또 하나의 길은 동기부여가 된 바람에 희박한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고 죽을 둥 살 둥 정신없이 그것을 쫓아가는 삶이다. 물론 고생은 당연지사. 하지만 그 길 역시 잘사는 길이란 사실.
내 생각에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란 물건은 적극적인 삶을 유도하는 물질이기에 가령 지나치게 편안할 경우 고생을 일부러 사서라도 하게끔 만드는 물질이 아닌가 싶다.
앞에서 찾아온 그 40대 솔로의 경우 현실이 그런대로 나쁘지는 않지만 뭔가 강력한 존재감 혹은 의미를 갈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고생길이 바로 그 욕구를 채워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얘기해주었다.
쾌락의 길은 오히려 위험하나니
쾌락의 길은 치명적인 毒針(독침)을 내포하고 있다. 갈수록 그 강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져야 한다는 점이다.
기본적인 욕구나 욕망을 충족하는 것 역시 재미가 있고 즐거움이 있으며 쾌락이 주어진다. 식욕이나 성욕, 수면욕과 같은 기본적인 욕구가 그렇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욕구는 채워도 금방 비워지는 탓에 또 다시 욕구가 생기는 바람에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런 본능적인 욕구를 넘어서는 욕구는 충족하면 할수록 어려워진다. 그거야말로 칼자루를 아니라 칼날을 쥐고 하는 게임과도 같다. 이길 도리가 없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세 번 먹으면 질리기 마련이다. 맛이란 놈은 배에서 요구해야지 혀에서 요구하면 그건 골치 아프다는 얘기.
고생길, 험한 길을 권유한 까닭
따라서 사실 잘 사는 길은 더 많은 쾌락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로 고통과 역경 속에서 발견할 가능성이 더 크다.
특히 나이가 젊을수록 자신의 역량이 가진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어 한다. 남자가 여자보다 더 그런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선 역시 이른바 ‘빡센’ 길을 가야 한다.
역량의 한계를 넘는 바람에 좌절하고 고통 받을 지라도 그런 경험을 해보고 싶은 동물이 남자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남자의 경우 부양할 가족이 있다면 감히 그런 시도를 해보지 못한다. 책임감 때문이다. 시쳇말로 더러워도 참고 살아야 한다.
그렇기에 오늘 나를 찾아온 40대 솔로남의 경우 미적지근하게 이것저것 타협하다가 나중에 진짜 후회하지 말고 기왕이면 빡세게 가는 길이 끝에 가선 더 나을 것 같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사주를 보니 능히 그럴 법 하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작업실을 나가는 그 젊은 친구의 등 뒤로 축원을 했다. Good Journey!
이 늦은 시각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 젊은 친구 역시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빌보였다. 빌보 배긴스 말이다.
송년 인사
시각을 보니 오전 3시 25분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인다. 송년의 인사라고 해두자.
사람들은 좀 지쳤다 싶으면 소위 힐링(healing)을 생각한다. 푹 쉬면서 편안한 시간을 가지고 싶어 한다. 물론 그럴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진정한 힐링은 쉬는 것이 아니다, 지옥불 속에서 화끈하게 구워지고 나면 어느새 말끔하게 힐링이 되어 있고 더 건강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2019년에도 올해와 변함없이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힘들고 벅차고 고단한 나날들을 맞이해보자. 견뎌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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