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프라이스, 공포의 표현



2000년대 초반 무렵 미국 산업계 전반을 공포로 몰고 갔던 표현이 있었으니 바로 ‘차이나 프라이스’였다. China Price, 중국 제품의 가격을 뜻하는 말이자 ‘저렴한 가격’이란 말의 동의어였다. 


“당신네 납품가격을 당장 30% 인하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거래할 수 없게 될 것이오, 우린 중국산 물건을 사게 될 것이니” 하는 최후통첩에 해당되는 말이 바로 차이나 프라이스였던 것이다. 


중국산 물건의 이른바 ‘가성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미국의 산업은 그 이후 완전하고도 철저하게 변모하고 말았다. 수없이 많은 제조업체들이 문을 닫거나 그렇지 않으면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 또는 중국 업체에 위탁생산을 맡겨야 했다. 대표적인 사례로서 가장 고가의 애플 아이폰 역시 생산은 중국에서 하고 있다. 


이처럼 2000년대 이후의 차이나 프라이스로 인해 글로벌 산업 구조 전체가 완전히 변모하고 말았다. 이에 미국을 포함한 선진경제국의 일자리, 특히 제조업 일자리가 심각하게 축소되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차이나 프라이스의 기본적인 힘은 저렴한 인건비



저가의 그런대로 쓸 만한 중국산 제품의 공세에 당황한 미국 산업계는 2005년 경 중국이 어떻게 해서 저토록 저렴한 가격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지 궁금해서 학자들에게 연구용역을 맡긴 적이 있다. 


연구 결과 보고서에 의하면 차이나 프라이스를 가능케 만든 가장 큰 요인은 39.41%의 비중을 차지한 인건비, 즉 중국 노동자들의 저렴한 인건비였다. 


그 내용을 볼 것 같으면 이렇다. 미국 노동자의 시간당 보수는 23.17 달러였는데 중국의 경우 0.57 달러, 미국 노동자들의 보수에 비하면 1/40 수준이었다. 


하지만 생산성 자체가 미국이 훨씬 높다. 생산성을 볼 것 같으면 미국을 100으로 할 때 중국은 13.7로 나왔다. 따라서 시간당 보수와 생산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서 비교해보면 시간당 보수가 미국의 23.17 달러에 비해 중국은 4.16 달러였다. 중국이 인건비 부문에 있어 미국의 18%에 불과하다. 


제품 생산에 있어 인건비만 놓고 보면 중국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얘기이다. 중국 노동자들의 생산성이 낮다 해도 보수 자체가 워낙 낮은 관계로 종합적으로 보면 중국에서 생산하는 것이 미국보다 훨씬 유리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 관계로 애플 역시 아이폰의 생산만큼은 중국 공장에 위탁하고 있다. 


물론 2000년대 초반에 비해 중국 역시 인건비가 대단히 높아졌다. 2000년 초반에 비해 지금까지 인건비가 4.5배 정도 상승했다고 한다. (물론 그 사이에 중국 노동자들의 생산성도 많이 향상되었다.) 


오늘에 이르러 공포의 표현이었던 ‘차이나 프라이스’가 예전만큼의 파괴력을 지닌 것은 아니라 하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국산 물건의 가격은 저렴한 것 또한 사실이다. 



철저하게 변모한 글로벌 산업구조와 줄어든 일자리



2000년대 이후 차이나 프라이스로 인해 미국을 포함한 선진경제권만 일자리, 특히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우리 대한민국 2000년대 중반부터 엄청난 일자리의 축소 그리고 일자리 질의 저하를 겪어왔다. 그 바람에 ‘정규직’이란 말은 일종의 사회적 신분이 되었다. 


삼성이나 엘지와 같은 대기업들만 중국에 공장을 세운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중소제조업체들 역시 과거의 국내생산을 멈추고 중국에서의 위탁 생산 또는 공장 가동을 통해 국내 시장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기에 일자리 축소와 질의 저하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 경제는 수출 없이는 지탱하지 못하는 경제 구조로 되어있다. 그런데 수출을 한다는 것은 당연히 차이나 프라이스와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술이나 성능, 가격 면에서 끊임없이 차이나 프라이스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이다. 



우리 경제는 수출입에 의존하는 개방경제라서



우리 경제는 수출입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큰 만큼 사실상 개방된 경제구조라 하겠다. 즉 우리나라의 모든 산업은 그만큼 치열한 글로벌 경쟁 환경 속에 놓여있다. 


현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통한 소득주도성장과 주52시간 근무제를 추진하고 있다. 작년에 이런 소식을 접했을 때 잘 되길 바라는 마음도 컸지만 우려되는 바도 상당히 많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우려는 자영업자들이 견디기 힘들 것이란 점이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의 자영업 비율은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니 말이다. 그런 우려는 공연한 것이 아니었고 최저임금 문제는 금년 들어 일자리 문제와 소득 분배에 있어 적지 않은 문제점을 노출시켰다. 


하지만 사실 더 우려되는 것은 다른 데 있었다. 그간 우리 수출 기업들과 그 협력업체들의 커다란 장점으로서 기술 수준이나 가격 문제도 있었지만 또 하나의 장점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신속한 대응 능력이었다. 


해외 바이어로부터 긴급한 주문을 받게 되면 그 순간부터 모든 당사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대응해왔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런데 주52시간 근무제가 확산되고 정착될 것 같으면 종전까지의 신속한 대응 체제를 유지함에 있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른바 ‘워라벨’이라 하는 것, 저녁이 있는 삶이란 개념 등은 사실 대단히 중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치열한 글로벌 경쟁구도, 특히 차이나 프라이스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환경 속에서 우리 수출 기업들이 주52시간 근무가 정착될 경우 과연 예전과 같은 신속한 대응 태세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인지 하는 우려를 지울 수가 없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수출 대기업이야 또 나름 여유가 있다 하더라도 그 협력업체들 즉 중소기업의 경우 주52시간 근무로 인한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것이니 그게 더 걱정이다. 


다시 돌아가서 최저임금의 인상은 결국 생산비용을 높임으로써 전체적인 가격상승과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수출 가격에 있어선 인상 요인이 될 것이고 동시에 수입품의 가격은 상대적으로 저렴해져서 더욱 더 국내생산업체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예전에는 수출을 늘리기 위해 환율을 조정하는 방법, 즉 원화 가치를 절하하는 방법이 있었으나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로는 그런 조정이 사실상 봉쇄되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요인이다. 환율조작국 혐의를 받게 되면 그 자체로서 큰 부담이 되니 말이다.

 

우리 수출 대기업들이 중간 제품 생산을 위해 중국 현지 생산 비중을 높였던 이유 역시 수출 경쟁력 확보 차원이었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 근무제는 이런 흐름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얘기이다. 


해외 현지 생산이 늘어나면 당연히 국내 제조업의 일자리는 반대로 줄어들 것이니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 근무제가 가져올 수 있는 역기능이라 하겠다. 


작년에 인상된 최저임금만으로도 올 해 공무원 증원 등을 뺀 나머지 분야의 일자리에 대해 적지 않은 부작용을 유발했다. 그런데 이미 결정된 내년도 인상분이 반영될 경우 국내 내수시장이나 자영업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수출과 수입에 있어서도 부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올 해는 그나마 반도체 호황 덕분에 수출실적이 좋았으나 반도체 호황이 가시고 나면 여기에 더불어 앞에서 얘기된 문제점들이 나타날 것 같으면 그야말로 우리 경제는 내수도 수출도 다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든다.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중국 역시 올 데까지 다 왔다는 점이다. 내년엔 올 해보다 성장률이 더 떨어질 것은 거의 기정사실이고 내후년이면 더욱 그럴 것이란 점이다. 


중국 경제의 성장이 침체될 경우 당장은 우리에게도 부담이 되겠지만 긴 안목에서 볼 것 같으면 그나마 우리 경제에게 숨통을 틀 수 있는 작은 여유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의 글로벌, 리더의 품격이고 체면이고 다 벗어던지고 길길이 날뛰고 있는 트럼프의 미국을 보라. 오죽하면 저렇게까지 가고 있겠는가 말이다. 그야말로 살벌한 글로벌 경쟁이 전개되고 있다. 


미중간의 무역 전쟁은 단순히 교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략적인 차원에서도 이제 미국은 더 이상 중국을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 같다. 


그럼 와중에도 중국은 제조기술과 생산성을 지속적으로 높여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나라는 바로 우리 대한민국이 아니겠는가.


 

미국 연준의 금리인상, 또 하나의 가공할 리스크



지금까지 차이나 프라이스가 야기한 살벌한 글로벌 세상과 우리 경제에 대해 얘기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하여 또 하나 두려운 조짐이 이미 나타났다. 그야말로 雪上加霜(설상가상)이다. 


그 두려운 조짐이란 다름이 아니라 양적완화로 인해 전 글로벌에 걸쳐 자산가격의 엄청난 거품이 생겨나고 말았다는 점이다.


물론 아직까진 자산거품이 붕괴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이거야말로 붕괴가 시작될 경우 글로벌 전체에 불어 닥칠 또 하나의 엄청난 平地風波(평지풍파)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자산 거품 그 자체만으로도 자산의 양극화를 불러 왔을 뿐 아니라 그것이 소멸되기 시작할 경우의 파괴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물론 그 거품의 소멸을 촉발할 수 있는 방아쇠는 착실하게 진도를 나가고 있는 미국 연준의 금리인상이다. 


물론 미국 연준은 ‘금리 정상화’란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지금의 형국에서 그것이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인지 전혀 예상이 되지 않는다. 


예전부터 생각해왔다. 2019년부터 10년간 우리 경제는 참으로 어려운 시기를 맞이할 것이라고. 그간 차이나 프라이스 때문에 우리의 삶이 엄청나게 힘든 지경으로 내몰려 왔는데 이제 연준의 금리 인상, 즉 세계 전체적인 금리인상이란 또 하나의 수퍼 강적이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내년 2019년부터 우리 경제는 참으로 힘든 시험대에 오르게 되지 않겠는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