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은 늘 애매모호한 법이어서

 

 

새해는 새 해, 새로운 해란 말이다. 하지만 12월 31일 저녁에 저문 해와 1월 1일 아침에 뜬 해는 거의 차이가 없다. 진짜 새 해는 작년 12월 23일, 동지 다음 날 아침에 뜬 해였고 그로서 해가 更新(갱신)되었다. 그렇기에 1월 1일은 다만 새 달력을 보게 된 날이다.

 

새해부터 이런 너저분한 얘기를 하는 까닭은 모든 사물의 시작과 끝은 언제나 애매하고 모호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었다.

정현종 시인은 자신의 시를 통해 “처음과 끝은 항상 아무 것도 없다”면서 그게 바로 “시간의 비밀”이란 말을 했다. 삶의 시작인 탄생과 그 끝인 죽음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니 그 중간 혹은 途中(도중)의 시간들, 즉 삶의 시간들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전부란 말이기도 하다.

 

 

새해를 맞이할 땐 일종의 종교적 감성을 느낀다.

 

 

이처럼 사람은 태어난 때가 시작이고 죽을 때가 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해 즉 年(년)을 단위로 해서 갱신되는 시간들을 통해 1년에 한 번씩 시작과 끝을 체험한다. 연말이 되면 어떤 끝을 감지하고 또 새해가 되면 작년의 나와 별 다른 것이 없음에도 뭔가 새로운 시작을 느낀다. 새해엔 보다 나은 날들이 이어지고 더 의미 있는 일들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런 까닭에 헌 달력을 내리고 새 달력을 벽에 매달아 펼치면서 우리들은 새로운 날들을 맞이하게 되고 또 그로서 새 삶인 것이니 헌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할 때면 우리 모두 일종의 종교적 감성을 갖게 된다. 작년은 지난 생 前生(전생)이고 새해 첫날은 이번 생 現生(현생)의 새로운 시작이니 그렇다.

 

이번엔 약간 색다른 감이 든다. 20년대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새해만이 아니라 새로운 10년이란 생각도 함께 드는 것이다. (물론 이는 단지 양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한 해를 기준으로 해서 붙여지는 숫자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국운의 맹동 추위가 한창 진행 중이니

 

 

올해 2020년은 庚子(경자)년이고 우리 대한민국의 國運(국운)에 있어 새로운 60년의 순환이 시작되는 2024 甲辰(갑진)년으로부터 4년 전이다. 60년의 순환에 있어 거의 끝자락에 해당된다. 60년을 1년의 기간으로 본다면 올해 2020년은 양력 1월 초의 小寒(소한) 즉 땅은 이미 차갑게 식었고 거기에 차가운 북풍이 불어와 아주 추운 한겨울이라 하겠다. (정확히 말하면 소한의 추위가 본격 시작된 것은 작년 2019년 10월부터였다.)

 

국운의 맹추위는 2022년 壬寅(임인)년 4월에 가서 절정에 달할 것이며 그때로부터 추위가 가시려면 또 다시 5년이 걸릴 것이니 2027년 4월, 국운의 雨水(우수)가 되어야 어느 정도 국운의 봄 느낌이 들 것이다. 작년 10월부터 계산하면 7년 반에 걸친 기간이다.

 

표현 상 국운의 추위라 했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보자.

 

 

활력은 바닥에 떨어졌는데

 

 

간단히 말해서 어떤 역동성 즉 활력이 없는 기간이다. 게다가 이번 우리 국운의 겨울은 글로벌 상황과도 맞물려서 더욱 힘들 전망이다. 안팎으로 활력을 찾기 힘들 것이란 얘기이다.

 

나 호호당은 중국 경제가 올 하반기부터 그간의 무리가 불거지면서 내년 2021년엔 크게 어려워질 것으로 보고 있다. 어쩌면 붕괴할 수도 있다고 보는데 그럴 경우 우리 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줄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관심사가 있으니 북한 문제이다. 우리와 북한은 1948년 가을에 각각 분리 독립했다. 따라서 올해 가을이면 그 때로부터 만 72년이 된다는 점이다. 72년은 60년 더하기 12년의 기간으로서 하나의 커다란 關門(관문)이 된다. 따라서 올 해 하반기로서 북한 내부에 커다란 변화가 생겨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점이다.

 

북한이 살아날 수 있는 마지막 가능성은 비핵화 협상이었다. 미국은 확실하게 비핵화를 할 경우 살려줄 것이라 약속했지만 북한은 그 말을 신뢰하지 않았고 그로서 마지막 가능성을 날려버렸다. 비핵화 협상은 실패했고 동시에 북한 체제의 명줄은 사실상 끊어졌다. 이에 금년 하반기에 체제 붕괴로 가는 흐름이 시작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 또한 우리로선 그야말로 큰 문제이고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와 더불어 내년에 가서 중국 경제가 붕괴하진 않더라도 크게 난관에 부딪칠 경우 우리로선 그간에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어려움이 닥칠 것이란 점이다.

 

우리 내부의 활력은 바닥으로 떨어질 대로 떨어진 마당에 바깥에서 저처럼 엄청난 변수까지 발생한다면 과연 우리가 그를 감당할 수 있을까 싶은 우려가 든다. 우리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국가적 偶發債務(우발채무)가 한꺼번에 다 터져 나올 것이니 말이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우리 경제의 생산성이 떨어져서 2022년이면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자금이 본격 이탈할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런 외생변수까지 생길 경우 그야말로 그냥 아득해진다.

 

 

2008년에 썼던 글

 

 

사실 이 모든 악성 변수는 이미 오래 전인 2008년 11월 17일자로 “김태규 명리학” 코너에 실린 “다섯 개의 겨울 설산”이란 글을 통해 얘기했던 내용들이다. (티스토리 블로그엔 김태규의 명리학 글이 올라가 있지 않다. 보시고자 한다면 원래 블로그인 www.hohodang.com 에 가보시기 바란다.)

 

다섯 개의 겨울 설산은 다음과 같다.

 

1. 미국 금융위기로 촉발된 전 세계적 디플레이션. (이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2. 국내 부동산 가격의 하락으로 인한 경제 불황. (이는 2022년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3. 중국 경제의 거품 소멸에 따른 문제. (이는 내년 2021년의 일이라 여긴다.)

 

4. 김정일 이후 북한의 붕괴 등 그에 따른 통일비용. (김정일은 죽었고 그 아들이 시도한 비핵화 협상의 실패로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다.)

 

5. 우리 산업의 노후화와 수출 경쟁력 저하.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2008년 말 글을 쓴 이래 12년이 흐르는 동안 위의 다섯 개의 문제는 해결된 것이 전혀 없고 이제 보다 구체화될 참이니 그야말로 걱정이다.

 

 

이제 각오를 단단히 하자.

 

 

하지만 절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 국운의 제2기 즉 1964년부터 2024년에 이르는 60년 사이에 우리는 r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왔기에 어렵긴 하겠지만 끝내 버텨낼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다. 우리에겐 이미 높은 수준의 기술력도 있고 삼성전자를 비롯해서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있다. 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 이미 수많은 인재들이 활약하고 있어 때가 되면 더욱 역량을 발휘하고 빛을 내기 시작할 것이란 점이다.

 

어차피 우리 대한민국은 자원이 없는 나라, 따라서 사람이 국력인 나라이기에 萬難(만난)이 닥치더라도 버텨내고 마침내 뚫고 나갈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그 사이에 좀 어려울 뿐이다.

 

그러니 이제 우리 모두 견뎌낼 각오를 단단히 하자.

 

새해가 되면 좋은 德談(덕담)을 드려야 하건만 그렇지를 못해서 많이 망설였다. 이 짧은 글 하나 쓰는데 무려 닷새나 걸렸다. 그 사이에 무던히도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다가 그냥 이런 초라한 글로 새해 인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