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의 한계



미국 농구의 전설이었던 코비 브라이언트가 자가용 헬기를 탔다가 추락사했다. 생년월일을 찾아보니 1978년 8월 23일, 생시는 오후 3시로 추정된다. 


사주는 戊午(무오)년 庚申(경신)월 丁巳(정사)일 戊申(무신)시, 따라서 입춘 바닥은 2017 丁酉(정유)년이었다. 사망한 일자는 2020년 1월 26일 아침 9시 45분, 巳時(사시)였다. 운세가 극히 저조한 때라 갑작스런 사고에 대해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하지만 사전에 그의 사망을 예측할 수 있었을까? 하고 묻는다면 ‘전혀 알 수 없다’이다. 운세가 나쁘다는 것 정도야 자연순환운명학의 견지에서 충분히 예측할 수 있지만 사고사와 같은 문제는 사전에 예측할 수가 없다. 60년에 걸쳐 雨水(우수)의 운이니 이런 운엔 무리한 이동이나 변화는 무리라고 능히 예측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사망을 미리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형 사고의 경우



사고 당일 비와 심한 안개로 인해 대부분의 헬기들은 이륙을 하지 못 했는데 코비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으나 이륙을 감행했고 결과 산언덕에 충돌하는 바람에 사망했다. 동승했던 딸과 헬기 조종사, 동료 등 9명도 함께 사망했다. 


그렇다면 나머지 9명의 사람들도 운이 나빴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한 10년 전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연구해본 적이 있었다. 연구 결과 자료 부족 등등의 이유로 답을 얻을 수 없었다


예전의 사례로서 2015년 저먼윙스 여객기가 프랑스 남부 산악에서 충돌하면서 150명이 사망하는 초대형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었는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비행기 기장의 운세가 최악이었다는 점이다. 사고 후의 분석 결과도 그렇지만 기장의 운세로 볼 때 우울증 등으로 인한 자살 비행이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이런 종류의 사고는 데이터는 많으나 사망자의 신원 특히 생년월일을 알 수 없는 관계로 연구를 포기했다. 다만 당시 연구 결과 내린 잠정적인 결론은 운세가 나쁜 사람 곁에 있으면 문자 그대로 ‘재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번 코비와 함께 죽은 사람들의 운세까지 나빴다기보다는 코비 자신의 나쁜 운세가 동승자 모두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생각이다. 


개인의 사주나 운세 흐름, 즉 命(명)과 運(운)만으론 사망을 포함해서 특정한 일을 사전에 투시해낼 수 없다는 얘기이고, 나아가서 운명학이란 것이 미래를 透視(투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란 얘기를 하기 위해 앞의 예를 들었다. 



미래를 투시할 순 없지만



자연순환운명학에 의하면 60년에 걸쳐 특정한 개인이나 단체, 크게는 나라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좋은 호시절과 어려운 때를 분명하게 구분해낼 수 있다. 대충 거칠게 알아낼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2년 반을 단위로 해서 맞이하게 될 흐름의 특징과 상세한 변화까지도 읽어낼 수 있다. 


그렇기에 어떤 이가 상담을 왔다고 햇을 때 그 사람의 사주를 알고 또 찾아온 시점의 운세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심리적 상태에 있는가 하는 점도 대번에 짐작할 수 있다. 



생각이 팔자라는 말



결국 어떤 사람의 향후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그 사람의 심리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느냐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당사자는 자신의 심리나 심경의 변화가 장차 스스로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해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경우가 일반적이긴 하지만 말이다. 


생각의 변화는 많은 요인과 요소들로 인해 생겨나겠지만 결국 생각의 변화가 삶의 변화를 가져온다. 그렇기에 단적으로 말하면 ‘생각이 팔자이고 운명’이라 말해도 된다. 


그러나 다시 얘기하는 바, 미래를 그림처럼 투시해낼 수 있는 능력은 없다. 



어린 시절의 호기심



어려서 나 호호당이 궁금해 했던 것은 이른바 점을 치거나 사주를 본다는 사람에게 미래 투시 능력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미래를 미리 알 수 있다면 점을 치는 사람이나 사주보는 사람이 미리 알아서 땅이나 주택, 주식 등을 사놓아서 절로 돈을 벌 일이지 왜 상담객들에게 돈을 받고 생활하는 것일까? 하는 천진스런 생각도 했던 것이다. 


그런 호기심이 처음 생긴 것은 아홉 살 무렵이었다. 그 이후 그런 호기심에서 사주명리란 것을 고등학교 1학년 당시 접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었다. 한문을 독해할 수 있었기에 관련 서적이란 서적은 모조리 구해서 읽었고, 직장을 다니면서도 무당이 미래를 엿볼 수 있다는 말을 사람들이 하는 것에 이끌려 한동안 틈을 내어 무당들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호기심 때문이었다. 


뭐가 보이시는데요? 진짜 보입니까요? 하고 노골적으로 물었다가 면박을 당한 적도 있고 도대체 당신이 느끼고 본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고 약간은 부드럽게 접근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神病(신병)이 나는 바람에 무속인이 되었다는 일반적인 말, 항간의 믿음에 대해서도 과연 그런가? 하고 따져 묻기도 하면서 그야말로 무속인의 세계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들 역시 미래를 투시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란 결론을 얻었다. 순간순간 스쳐가는 그들만의 靈感(영감)이 무속인의 특별한 능력이란 정도는 충분히 알게 되었다. 



살인범과의 인연



사주를 연구하면서 예를 들면 돈을 엄청 많이 벌었다는 사람을 포함해서 나름 특별한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서 흘러온 과정과 시간들에 대해 사주와 연관 지어 물어본 적도 많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986년의 서진 룸 살롱 집단 살인 사건의 주범이었던 사람과의 인연이다. 


서대문 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그 양반, 이제는 고인이 된 사람을 찾아가서 면회를 신청하고 만났다. 그 양반은 모르는 사람이 왜 찾아왔냐고 물었고 이에 나는 (살인을 한) 당신의 사주가 궁금해서 찾아왔다는 답을 했더니 그야말로 노발대발하는 것이었다. 


그 이후 어쩌다 보니 사형이 확정된 뒤에도 직장에서 휴가를 내어 몇 차례 지방 교도소로 이송된 그를 찾아가 면회를 하고 영치금도 넣어주다 보니 정이 들었는데 어느 날 찾아갔더니 형이 집행되었다는 말을 듣고 명복을 빌어준 일도 있다.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사람의 사주는 일반인과 어떤 점이 다를까? 하는 호기심에 끌려 그런 인연도 맺게 되었던 셈이다. 



術士(술사)들을 찾아서



관상이나 수상 이런 것들 역시 과연 신빙성이 있는 걸까 궁금해서 나름 대가로 알려진 사람들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1993년 겨울엔 훗날 허영만 만화로 인해 유명해진 관상가인 신기원 씨를 찾아가서 만난 적도 있다. 


내 얼굴을 한 번 슥 보더니 蒼鷹搏兎(창응박토)의 相(상)이란 말을 해주었다. 푸른 매가 겨울 하늘 상공을 날면서 사냥감인 토끼를 찾고 있다는 말이었다. 꽤 수긍이 갔다. 



결국은 自然(자연)에서 답을 얻었으니



그러다가 2007년 경 문득 자연순환의 원리와 이치를 깨닫게 되었고 이를 다듬어서 2014년엔 자연순환운명학이란 것이 만들어졌다고 글로 쓰기도 했다. 실은 1983년부터 착안한 아이디어를 무수히 검증한 끝에 확립한 결과였다. 


결정적인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 등장한 인터넷, 특히 위키피디어와 구글의 도움이었다. 그를 통해 8만명 이상의 사람들에 대해 그 생애와 운명을 연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존 명리학, 중국에서 전해져온 이론으로선 결코 알 수 없었던 운의 정확한 흐름을 예측해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중국의 명리학을 바탕으로 하고는 있지만 적당히 꿰맞추는 식의 이론이 아니라 운의 흐름에 대해서만큼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정교한 이론체계인 자연순환운명학은 그 근본 원리가 만물은 자연을 흉내 낸다는 것이다. 자연의 행로를 따라서 간다는 것, 이게 근본 이론이다. 



어쩌다보니 인생 전체가



운명학이란 것과 인연이 된 것은 열일곱의 나이였던 1971년이었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러 2001년 나이 마흔 일곱에 상담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니 다시 30년이 흘러 2031년, 인연 맺은 때로부터 60년이 흐른 시점, 내 나이 일흔 일곱이 되면 나 호호당은 운명학에 대해 어떤 경지에 가 있게 될까? 


나 호호당 역시 궁금할 따름이다. 미래를 투시할 순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냥 길을 따라서 가볼 작정이다. 그 끝에서 무엇을 보게 되고 만나게 될 지 그 누군들 알겠는가. 하지만 너무 큰 기대는 갖지 않을 생각이다. 



길을 가면서 노래한다.



이 대목에서 얘기 하나 들려드린다. 


오래 전의 중국 영화 邊走邊唱(변주변창), 우리말로 하면 ‘길을 가면서 노래한다’가 되겠다. 국내 개봉은 1992년이었다. 


옛날 중국 어느 곳에 눈먼 소년이 있었는데 사부로부터 줄악기를 배웠다. 사부는 눈을 뜰 수 있는 비방을 악기 통속에 넣어주면서 악기의 줄이 천 번 끊어졌을 때 열어야만 효과가 있을 것이란 얘기를 해주었다. 

 

세월이 많이 흘러 노인이 된 장님 소년은 그 사이에 줄을 무수히 끊어먹었고 그 바람에 연주의 대가가 되었다. 연주가 너무나도 신통해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게 된다. 


하지만 맹인 악사의 소원은 줄이 천 번 끊어져서 그 비방을 펼쳐보는 것이었다. 마침내 어느 날 천 번째 줄이 끊어졌다. 흥분한 악사는 악기 통속에 있던 비방을 꺼내들어 펼쳐보지만 그 비방엔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그냥 종이쪽지였다. 맹인 악사의 평생소원은 물거품이 되었고 이에 실망한 나머지 제자의 품에 안겨 숨진다. 


오랫동안 인상에 남아있는 영화이다. 그러니 나 호호당 역시 인연을 맺은 지 60년이 흘러 2031년이 되었을 때, 사실상 다 살았을 때 그곳 그 시점에서 무언가를 만나게 되리란 기대도 하지만 너무 큰 기대는 자제할 생각이다. 


그저 분명한 것은 내후년인 2022년쯤엔 그간의 연구를 집대성해서 책으로 엮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