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이후의 삶과 관련해서 

 

 

기대수명은 늘어나는 데 은퇴 시기는 예전보다 빨라지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희망퇴직이 많아지고 도중에 직장에서 잘려서 ‘강퇴’당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또는 희망퇴직 또는 강퇴를 당한 후 섣불리 사업에 손을 댔다가 실패하는 바람에 시골로 내려가 자리를 잡는 경우도 있다.

 

아직 일할 수 있는 나이에 직장을 그만 두었을 경우 그냥 놀 순 없다 보니 우리나라의 자영업 비율은 엄청 높다. 자영업 비율이 높다는 것은 같은 시장을 높고 벌어지는 경쟁도 그만큼 치열하다는 말이 되고 그 결과 오늘날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각박하고 처절하다. 양극화가 갈수록 극심해지고 있다.

 

특히 올 해 발생한 코로나19 사태는 자영업자들에게 마른하늘에 날벼락과도 같은 재앙을 안겨주고 있다. 정부가 나름 지원한다고 시늉하고는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 효과가 얼마나 되겠는가. 이미 상당 수 자영업자들이 가게를 접고 지방으로 내려가 농사 일용직에 뛰어들고 있다.

 

아무튼 은퇴를 했거나 은퇴를 당했다고 하자. 일하지 않아도 그런대로 먹고 살 수 있는 준비가 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오늘은 그런 분들 그리고 장차 그렇게 될 분들을 위해 나름은 도움이 될 수 있는 얘기를 하나 들려드리고자 한다.

 

 

청경우독이란 무엇인가? 

 

 

청경우독이란 말이 있다. 날이 맑으면 밭을 갈고 비가 오면 책을 읽는다는 말인데 이 말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삼국지연의에서 유비가 형주성 교외의 융중이란 한적한 곳에 숨어 사는 隱士(은사) 제갈량을 세 번이나 찾아갈 무렵 제갈량은 시를 통해 자신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봉황은 천길 높은 하늘 위로 날지만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않고

선비는 외진 곳에 숨어 살아도 옳은 주인이 아니면 의탁하지 않노라,

기꺼이 몸소 밭을 일구어 먹고 살지만 나는 내 초가집을 사랑하노라

마음 한가로이 거문고를 타고 책도 읽으며 하늘의 때를 기다리노라.

 

삼국지연의에 소개된 원문은 이렇다.

 

鳳翱翔於千仞兮(봉고상어천인혜) 非梧不棲(비오불서)

士伏處於一方兮(사복처어일방혜) 非主不依(비주불의).

樂躬耕於隴中兮(낙궁경어융중혜) 吾愛吾廬(오애오려),

聊寄傲於琴書兮(요기오어금서혜) 以待天時(이대천시).

 

예로부터 선비 즉 글을 읽는 식자층, 오늘말로 지식인들은 벼슬길에 나서야만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그게 어디 쉬운가! 그렇기에 때론 궁벽진 시골에서 스스로 논밭을 갈아 의식주를 해결하는 한편 시간이 나면 책도 보고 때론 거문고를 타면서 살기도 했다.

 

 

과거 우리 앞사람들의 가슴 속에 새겨진 사자성어

 

 

물론 이 또한 과거 선비의 삶에 대한 하나의 아이디얼(ideal)이다. 선비 중에 봉황처럼 탁월한 자 많지 않았고 제대로 된 자리가 아니면 나서지 않는 자는 당연히 드물었다. 名利(명리)를 탐하지 않는 사람이란 원래 드문 까닭이다.

 

이상적인 삶을 동경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아서 인간은 僞善(위선)적일 때가 있는 것이니 그 또한 능히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위선이란 것은 어떤 면에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메우는 처세의 한 방법인 까닭이다. (이런 것 역시 납득할 수 있게 되었으니 나 호호당 역시 나이를 먹었나 보다!)

 

그런 까닭에 晴耕雨讀(청경우독)이란 저 문구는 동아시아 사람들의 審美(심미)적 감각과 僞善(위선)의 양면성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쉽게 말하면 스스론 실천하지 못 하지만 그렇게 살고픈 마음은 있기에 과거 동아시아 유교권 세계의 선비들 마음속에 깊숙하게 자리를 잡은 문구가 되어온 것이다.

 

 

청경우독의 현대적 실천 방법 

 

 

하지만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청경우독이란 문구가 있다는 것조차 잘 모를 것이라 본다. 하지만 여전히 음미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청경우독의 현대적 실천 방법에 대해 알아두시면 은퇴를 했거나 장차 은퇴할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니 말이다.

 

노후 준비가 나름 되어있는 퇴직 공무원일지라도 그렇고 직장 경력만 있어서 감히 사업 구상을 하기 보다는 좀 더 안전한 길을 택하고자 하는 분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晴耕雨讀(청경우독), 날이 개면 밭에 나가 일하고 비오면 책 본다고 하니 평소엔 노동을 한다는 말이다. 취미생활은 그 사이 틈틈이 하고 말이다. 은퇴하는 사람 중에 할 일이 없고 굳이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형편이라고 해서 그저 여가를 즐기고 취미생활만 찾을 일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노동은 신체를 건강하게 해준다. 독서를 비롯하여 여가생활은 정신을 맑게 해준다. 心身(심신) 모두를 단련한다는 말이 바로 청경우독이기도 한 것이다.

 

노동을 하면서 취미생활을 해야 즐겁고 취미를 살리면서 일을 해야 일도 즐거워진다. 이게 핵심이다.

 

 

청경우독은 심신을 건강하게 해준다.

 

 

은퇴한 마당에 해보지 않은 사업을 하기엔 두려움이 있다, 그 바람에 그냥 시간만 죽이고 있다면 그거야말로 몸과 정신을 망치기 딱 좋다. 명줄 줄이는 길이다. 등산이라도 자주 하면 될 것도 같지만 어지간히 산을 좋아하지 않는 이상 그 또한 얼마 지나면 그만 두게 된다. 더불어서 등산은 나이가 들면 관절에 그다지 좋지 않다는 점도 있다.

 

은퇴 후엔 좋은 취미 생활을 가진 자라면 크게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역시 부족하다. 무엇이든 사소한 것이라도 경제활동을 해야 즐겁다. 텃밭을 가꾸는 일도 당연히 경제활동이다. 뿐만 아니라 텃밭 일도 몸이 힘들 정도의 노동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신체 단련이 된다.

 

정확히 말하면 꼭 경제활동이 아니어도 된다. 하지만 그 일이 반드시 보람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보람이 있으려면 역시 사소한 것이라도 경제활동, 즉 돈 버는 일이 가장 무난하다.

 

은퇴 전에 월 5백만 원을 벌던 사람이 텃밭을 가꾸면 액수론 어림도 없겠지만 그래도 하는 것이 몇 배 좋다. 열심히 하려면 얼마라도 돈 되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고, 열심히 하다 보면 몸도 건강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바탕 위에 취미생활 또는 나름의 여가생활이 곁들여져야 건강하게 즐겁게 은퇴 후의 삶을 누릴 수 있다.

 

삼국지연의의 제갈량에 있어서 청경우독은 능력이 출중해도 난세를 맞이하여 때를 기다리기 위함이었지만 그거야 소설 또는 허구의 얘기에 불과하다. 오늘의 현실에서 청경우독의 故事(고사)는 은퇴한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적용하면 오히려 그게 더 현실적이고 효과적일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한다.

 

은퇴 후라도 목적을 갖고 노동을 해야 여가나 취미생활이 더 즐겁고 발전하며, 그러면 노동도 더 즐거워진다. 몸과 마음이 하나이기에 함께 단련하고 수양해야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얘기였다.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떠오른 생각

 

 

오늘의 이 얘기는 며칠 전 지인들과 만나서 저녁 식사를 함께 한 것이 동기였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은퇴하게 될 것이니 평소 공부해오던 것에 더 몰두하며 지내겠다는 지인의 얘기를 듣고 그러기 위해선 노동도 함께 곁들여야 좋다는 권고를 해주면서 ‘청경우독’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사람은 정말이지 죽는 날까지 일하다가 죽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이라 여긴다. 직장에서 일하거나 사업을 할 적엔 그야말로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일손을 놓아버리고픈 마음도 수시로 든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은퇴 후엔 그렇다고 아예 일손을 놓아버리면 아니 된다고 본다.

 

은퇴 이후엔 돈을 벌었다고 해서 마냥 일손을 놓고 놀 일도 아니요, 소규모 경제활동이라도 열심히 하는 것이 사람의 몸과 마음을 적당히 긴장시켜주기에 일은 해야 한다. 긴장과 이완, 조임과 풀림이 균형을 잡아야만 빨리 늙지도 않고 건강을 유지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나이가 들면 좋은 취미 하나 가지고 있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인생의 보물이라 하겠다. 여기에 곁들여서 몸을 써서 노동할 수 있는 일도 하나 곁들인다면 그야말로 건강하게 오래 살면서 충만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날이 일요일로 바뀌었다. 창밖에 비가 내리고 있다. 남부 지방엔 많이 내렸다는데 서울 역시 오늘밤 푹 적셔주는 비가 왔으면 좋겠다. 비님 오시는 소릴 들어보고프다.

산다는 것은 고생이다.

 

(오늘 글은 수필이다.)

 

사는 게 왜 어려운가? 그 근본 이유를 최근 며칠 사이 곰곰이 생각해 보았더니 성가시고 귀찮은 일들이 끊임없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런 일들이 꼭 어떤 중대사인 것도 아니지만 아무튼 부단히 생겨난다. 그래서 사는 게 힘들고 고단하다.

 

최근 집을 이사했다. 그러다 보니 처리할 일들이 제법 있었다. (그 와중에 은행에 가서 순번표를 뽑고 착하게 순서를 기다려서 재난지원금도 받았다.) 이사하다 보니 가구도 장만해야 했다.

 

 

가구 하나 집으로 들이는 것도 성가심이 따른다. 

 

 

가구가 집으로 들어오는 일도 그냥 쑥 들어오는 것이 아니었으니 이로부터 얘기를 시작해보자.

 

현관 벨이 울리는 순간 우리 집 강아지들이 맹렬하게 현관 쪽으로 내달리면서 시끄럽게 짖어대기 시작했다. 이에 아내는 부랴부랴 현관으로 달려가서 잠시 기다리세요! 를 힘차게 외쳐야 했고 나는 강아지 두 마리를 몰아서 안방으로 넣어야 했다. 하지만 강아지들은 한사코 나를 피해서 현관 쪽으로 달려가고자 하니 야단을 치면서 안방으로 가두어야 했다. 안방에서 강아지들은 계속 짖어대고 나는 시끄러! 조용히 안 해! 하고 겁박을 해야 했다.

 

배달원이 가구를 놓고 나간 뒤 개들을 풀어주었는데 그 사이에 허리가 약간 삐끗해 있었다. 급하게 일어나느라 생긴 일. 저 망할 놈의 개새끼들! 하고 야단을 쳐보지만 사실 욕도 아닌 것이 개더러 개라고 하는 것이고 내가 기르는 자식들이니 새끼가 맞다, 그럴 때마다 뭐 좀 박력 있는 욕설이 없을까 생각하게 된다.

 

 

때론 비겁할 때도 있는 법

 

 

이런 식으로 근 보름 이상에 걸쳐 집을 정리했는데 딱 한 가지 문제가 남아있었다. 바로 에어컨 설치였다. 그래서 아내더러 야, 전화 좀 하지 그랬어 하고 핀잔을 주었지만 실은 이건 약간 비겁한 짓이었다. 여름이 가까운 터라 사실 나 역시 에어컨 설치야말로 이사하자마자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이란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아내를 독촉한 것은 일종의 면피 행위였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최근 며칠 사이 기온이 부쩍 올랐다. 폭염주의보! 아이고, 이거 큰일이다 싶어서 늦게나마 서비스 센터로 전화를 했지만 들려오는 응답이라곤 ‘지금 상담이 밀려서 통화할 때까지 57분 20초가 걸리겠습니다!’ 하는 절망적인 멘트였다.

 

저 로봇 놈의 말을 해석하면 ‘야! 이 고객님아, 좋은 말로 할 때 전화 따윈 하지 마, 이런 말이 아닌가!’. 좌절은 당연한 일, 이러니 산다는 게 힘든 일이네! 하고 장탄식을 했다. (이 대목이 바로 오늘의 글을 쓰게 한 동기였다.)

 

 

대소사 모두 성가시니 살기가 힘들지. 

 

 

산다는 게 정말 쉽지가 않다. 이런 소소한 일도 성가셔 죽을 지경인데 인생길에 이런 잡일들만 사람을 귀찮게 하는 것 또한 절대 아니다.

 

작년에 진작 치과를 갔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못 가고 있다. 나이가 60대 중반에 들어서니 해마다 임플란트 같은 큰 공사를 최소한 하나 이상 하게 된다. 가려면 날을 잡아야 한다, 세상에 어느 누구가 이빨에 문제가 있다고 그 다음 날 자주 찾는 식당 들르듯이 쓱-하고 찾아가겠는가 말이다.

 

그러니 일단은 다음 주 정도에 가야지 하고 마음을 먹어 보지만 그 다음 주가 되면 다른 약속이 생기고 일이 생겨서 도저히 갈 틈이 나지 않는다. 실은 그 다음 다음 주엔 비교적 한가했건만 그럼에도 치과에 가지 않았다. 시간이 나면 결심이 서질 않고 결심하면 이상하게 시간이 나지 않는 게 치과 가는 일이다. 이런 식으로 해를 넘기고 있다.

 

그런가 하면 신체 상태, 소위 컨디션이란 게 하루라도 완벽하게 편한 날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허리가 작년엔 디스크가 와서 고생 좀 했다. 이제 그럭저럭 좋아졌는데 그래도 왼쪽 무릎 관절이 좀 그렇거나 아니면 뒷목이 당겨서 경추를 좌우로 꺾어보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소화에 좀 문제가 있거나 또는 장에 가스가 차서 종일 불편할 때도 있다. 그러다가 기관지가 좀 까실까실 통증이 오기도 한다. 또 어디 약간 먼 길이라도 다녀오면 그 뒤로 수일이 지났어도 회복이 시원치 않다.

 

그런 상태에서 간만에 친구로부터 전화라도 받게 되면 이렇다. “어떠니, 잘 지내지?” 하는 안부를 받게 되면 “뭐 그렇지 뭐, 잘 지내고 있어” 하고 답변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과연 내가 잘 지내고 있는 건가? 하고 의문이 생길 때도 많다.

 

 

잠자는 일마저도 성가신  루틴들이 따른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기 위해서도 해야 할 일들이 적지 않다. 잠자리에 필요한 소도구들 때문이다. 얘기하자면 전자침, 가습기에 물 채우기, 마실 물 한 잔과 티슈 박스, 전기로 데워서 몸 아래 받치는 둥근 돌, 넥플릭스를 보기 위한 컴퓨터 패드가 필요하다.

 

전자침은 담배를 피우는 사람인지라 매일 자기 전 몇몇 경혈자리를 자극해주기 위한 것이고 가습기는 나이가 드니 건조한 날씨엔 비강이 건조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자다가 목이 말라서 깰 때도 있으니 물 한 잔 역시 가져와야 하고 간혹 자다가 코를 풀기 위해 티슈도 필요하며 쉽게 잠이 오질 않으니 넷플릭스를 보면서 피로해지길 기다려야 한다. 누워서 패드를 두 손으로 천정을 향해 들고 있으면 금방 팔이 아파오고 그러면 빠져나가기를 하고 그러다가 운이 좋으면 잠에 들게 된다. (잠드는 일도 운이 좋아야 하니 참!)

 

 

몸뚱이 하나 건사하는 것이 제국을 운영하는 것과 같아서

 

 

이 몸뚱이 하나 건사하는 것만 해도 이렇게 어려운 데 거기에 먹고 살기 위해 돈도 벌어야 하고 그 판국에 간간히 지인들도 연락을 해서 관계를 유지해가야 한다, 그러니 이런 모든 것이 실로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 말이다. 성가신 일이 부단히 이어진다.

 

마치 거대한 제국을 운영하고 萬機親覽(만기친람)하는 재상의 느낌이다. (알고 보면 우리 몸 역시 무수한 세포들의 연합체이니 제국과도 같다.)

 

 

유튜브에서 지혜를 얻어보려 했으나 그 역시

 

 

인생이란 참 성가시구나! 하면서 생각을 좀 하는 가운데 유튜브에 들어가보니 우연인지 아니면 찾다보니 눈에 든 것인지 몰라도 미국의 어떤 여성 강사가 ‘5초의 법칙’이란 것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강사의 요지는 이렇다. 성공하려면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데 그게 싫어서 궁리만 할 뿐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탓이다, 따라서 해야 할 일이 있으면 5초 안에 망설이지 말고 즉각 실천에 옮기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할 일이 있으면 머리를 쓰지 말고 생각도 하지 말고 5초 이내에 즉각 행동으로 옮기라는 것이 요지였다. 그래야만 발전할 수 있다는 얘기인데 당연히 맞는 말이고 지당한 논리 같다.

 

하지만 정말 해야 할 일이 있고 그를 즉각 행동에 옮기려고 한다면 아마도 얼마 안 가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말은 옳지만 그게 어디 쉽나! 며칠 하다가 몸살이 나거나 아니면 안 하게 되지 쉽다.

 

미국의 저 여성 강사는 그걸로 밥을 먹고 살면서 유명 인기 강사가 된 탓에 신이 나서 저처럼 열심히 약을 팔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건 그녀의 비즈니스인 법, 전국을 순회하면서 강연을 하고 있지만 집에 들어서는 순간 손끝 하나 까닥 하기 싫어서 소파에 자빠져 누워있지 않을까 싶다. ‘여보, 저녁은 먹고 들어왔지! 나 힘든 거 알지?’ 하면서.

 

5초의 법칙을 다시 한 번 음미해보면 우리의 뇌는 생존을 위해 하기 싫은 것은 행동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고 진화되어 왔다는 것, 그러나 성공하려면 싫은 일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 뇌의 말을 듣지 말고 무시하라는 것이다. 이는 사실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뇌를 마비시키거나 속일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과도 같다. 솔직히 말도 되질 않는 얘기가 아닌가. 내가 나를 어떻게 속인단 말인가. 어처구니가 없다.

 

5초 강사의 말은 사기극이다! 우리가 뭉개고 있는 것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또 다른 쌈빡한 것이 없나 싶어서 찾아보니 또 미국인이었다. (미국엔 역시 이런 장사, 이른바 자기계발 교육이란 장사가 잘 되긴 하나 보다.)

 

좋은 습관을 만들면 좋다는 것은 이미 책으로 엄청 팔려나간 주제인데 그 친구는 그걸 좀 더 울궈먹는(표준어론 우려먹는) 장사를 하고 있었다. 좋은 습관을 가지면 좋은 줄 모두 알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좋은 습관을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는지를 사람들이 모른다는 것, 그리고 자기 말대로 하면 좋은 습관을 선택해서 가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치의 말로는 습관도 택하고 설계하기 나름이란 얘기인데 그게 글쎄 잘 될까 싶다.

 

5초 강사의 말이나 습관선택이 가능하다는 주장들은 엄청난 세월 속에서 진화해온 우리의 몸과 마음을 너무 만만하게 여긴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란 게 심리학자들이 그간 연구해온 것보다 몇 차원 더 심오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유튜브 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어서

 

 

유튜브에 좋은 내용이 많다고 하지만 실은 그렇지도 않다. 제목이 끌린다?, 그러고 나면 런닝 타임을 확인해보게 된다. 제목은 매력적인데 시간이 15분이라 적혀 있으면 갈등하지 않을 수 없다. 봐? 말어? 하면서.

 

가령 15분짜리를 보노라면 내가 궁금해 하는 내용은 7분 정도 지나야 나온다. 그래서 중간으로 건너뛰면 앞자락의 내용을 모르기에 또 불편하다. 이런 것들에게 몇 번 낚이다 보면 한 동안은 유튜브 보지 않게 된다.

 

(5초 강사, 습관 통제하는 법에 실망한 터라 한동안은 저런 자기계발 장사 근처엔 아예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성가신 것을 보상해주는 무엇이 있기에 우리는 살아간다.  

 

 

그래서 인생은 참 어렵다는 주제에 대해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온다. 너무 성가신 일이 많다는 것, 가짓수가 적어지면 하나하나가 더 힘들어지거나 아니면 소소한 것들이 끊임없이 성가시게 한다.

 

저 성가신 강아지들, 처음부터 강아지를 키운 것이 잘못이었나?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한 것만 해도 벌써 17년이나 되었는데 이걸 다시 원점에서 고민해야 하는가 싶다.

 

생각하다 보니 나름 괜찮은 결론을 얻게 된다. 강아지를 키움으로써 얻는 보상과 지불해야 하는 각종 물적 심적 비용이 그간에 그러니까 17년 동안에 균형을 잡아 왔기에, 나아가서 이윤이 조금은 더 남는 장사였기에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는 결론이다.

 

그래서 이 생각을 바탕으로 좀 더 외연을 확장해보기로 한다.

 

사는 게 힘들긴 하지만 살아가면서 얻는 즐거움 또는 행복과 균형을 잡고 있기에 그리고 약간이라도 남기는 장사인 까닭에 우리 모두 힘들지만 기를 쓰고 살고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이 논리 역시 좀 더 생각하고 따져볼 여지는 있는 것 같으니 일단 잠정 결론이라고 해두자. 사는 건 힘들다 하지만 때론 사는 맛이 날 때도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 우리를 낳아준 부모님들을 원망하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 경제의  촉박한 현안 

 

 

이렇게 가면 향후 멀지 않아서 우리나라 대기업은 거의 모두 주인이 없어질 판이다.

 

어느 경영학자의 글에 따르면 대기업 오너, 이른바 재벌의 오너의 지분은 평균 10% 미만인데 65%의 상속세를 내고 나면 지분이 3.5%도 채 남지 않는다고 한다. 이 정도 지분으로는 경영권을 유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비상장사와 계열사를 동원하는 식의 편법을 통한 상속과 경영권 승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이에 상속세 완화가 필요하다는 것인데 대개 이런 식의 주장을 할 때면 으레 재벌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이행이 필요하다는 것 아울러 상속 받는 이의 경영 능력이 입증되어야 한다는 말도 뒤따른다.

 

하지만 이런 얘기야 해보는 소리에 불과하다. 경영 능력이란 것은 어디까지나 사후적 판단에 불과한 것이고 가진 자의 사회적 책무란 것도 기준이 주어지지 않는 이상 골치 아픈 얘기에 그친다.

 

 

주인 없는 기업이 잘 될 리 없으니 

 

 

진짜 중요한 대목은 주인 없는 기업이 될 경우 경영이 잘 될 리 없다는 점이다. 이는 상식 중에 상식이다.

 

그런가 하면 예컨대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은 국민들에게 하는 공포 마케팅이라 주장하는 이들도 제법 된다. 일리가 있는 얘기라 본다. 그리고 그들의 말처럼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자를 보면 사업이라곤 전혀 해본 적이 없는 진보 진영의 인사거나 아니면 학자들이란 점이다.

 

그들의 말대로 과연 공포 마케팅에 불과한 것일까? 하고 생각해보면 그 또한 긍정하기 어렵다.

 

우리 국민들의 정서 상 부의 대물림에 대한 반감이 상당하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맹렬히 진행된 현 시점에선 더더욱 그렇다. 그러니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기도 어려운 실정이기에 정치권 쪽에서 그 누구도 섣불리 나설 수가 없다.

 

 

쉽게 해결될 문제도 아니어서 그냥 이대로 흘러갈 공산이 커보인다. 

 

 

따라서 재벌의 상속세 인하 문제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마냥 그냥 이대로 세월만 흘러갈 공산이 크다.

 

장차 이 문제는 어떻게 될까?

 

나 호호당의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면 그 어느 길도 답이 아닐 거란 생각이다. 상속세율이 그냥 유지되는 바람에 주인 없는 기업이 되어 소위 외부 인사들의 잔치판이 되어 쇠락해가거나 반대로 설령 상속세율이 완화되어 상속을 받게 된다 해도 재벌 3세 정도가 되면 할아버지나 부친과 같은 경영 능력을 지니기란 확률적으로 희박하다고 보기에 역시 결과는 앞의 경우와 비슷할 것이란 생각이다.

 

다시 말해서 좋은 해결 방안은 없을 거란 것이 나 호호당의 판단이다.

 

 

역사책을 뒤져보면 

 

 

역사책들을 뒤져봐도 과거 대제국들도 3대 째에 가면 으레 위기가 찾아왔다. 이 경우 그냥 몰락하거나 또는 누군가 능력 있는 자가 내부 쿠데타를 통해 바통을 이어받으면 다시 중흥하게 되고 그러면 그 이후론 제법 오래 지속되는 제국과 왕조의 패턴이다.

 

이런 경우 나 호호당이 늘 관심 있게 연구해보는 케이스가 하나 있으니 중세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인데 수백 년간의 영광을 이어간 이 명문 집안 역시 대중의 질시와 미움을 받은 끝에 나라밖으로 추방당하기도 하면서 무수한 시련을 겪어야 했다. 그런가 하면 계승자 중엔 무능한 자도 많았고 병약한 자도 많아서 숱한 어려움이 있었다.

 

 

부를 이어가는 것이 실은 비정상이어서

 

 

일반 사람의 심성이란 것이 그간 혜안을 가진 현인들의 말에 의하면 나보다 더 가진 자를 미워하거나 아니면 두려워하기 마련이어서 가진 자 역시 그 재산과 지위를 이어가기란 실로 어렵다. 우리 주변의 부자들을 봐도 대개의 경우 당대에 그치고 2세만 되어도 상속받은 것을 까먹고 살다가 몰락하는 경우가 더 흔하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러니 부를 이어가는 것 자체가 실은 비정상이라 하겠다.

 

 

우리의 걱정은 재벌들의 안위에 관한 것이 아니란 사실

 

 

문제는 재벌들의 안위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부를 이어가던 말든 솔직히 우리들로선 아무런 관심이 없다. 다만 문제는 우리 경제 구조 상 재벌 대기업들이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출 편중의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듯이

 

 

약간 말머리를 돌려보면 우리 경제의 오랜 숙제로 남아있는 것이 또 하나 있으니 수출 편중의 경제 구조란 점이다. 내가 기억하기도 1980년대 중반부터 끊임없이 학자들을 중심으로 제기되어 온 안건이다. 수출 비중이 너무 크니 내수 기반을 확충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인데 그 역시 空念佛(공염불)에 불과했다.

 

우리 경제는 그냥 여전히 수출과 수입 즉 무역 의존도가 높은 구조이고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을 뿐이다. (단 하나 돌파구는 남북이 통일되어 인구가 1억을 넘어서는 것밖에 없다.)

 

그처럼 재벌 편중의 경제구조 역시 그동안 무수히 지적되어 왔지만 여전히 변함이 없다. 그런데 앞의 문제와 다른 점은 이제 상속 문제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점이고 그런 면에서 실은 보다 시급한 현안이 되고 있다.

 

 

건강한 기업생태계란 일종의 신기루 같은 것이어서

 

 

재벌이나 대기업이 등장했다가 때가 되면 쇠락하고 그 뒤를 이어서 또 다른 정력적이고 혜안을 갖춘 능력자가 등장해서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그런 과정을 통해 국가의 번영을 지속해간다면 그 얼마나 좋으랴! 실로 理想(이상)적이라 하겠다.

하지만 현실에선 그게 결코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기존의 강자가 사라져가고 뒤이어 새로운 기술과 더불어 신흥 강자가 등장하는 건강한 기업 생태계를 갖춘 나라는 어떤 면에서 미국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그건 미국 특유의 현상이기도 하다.

 

 

일본이 우리에게 뒤쳐지고 있는 이유 역시 주인없는 기업 때문

 

 

과거 20년 사이에 보면 우리 기업들의 기술력과 경영 능력은 이제 이웃의 일본을 거의 넘어서고 있다고 해도 절대 틀린 말이 아니다. 왜 우리는 약진을 거듭해온 반면에 일본은 답보 또는 후퇴를 거듭하고 있을까?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많은 것들이 있지만 결국 일본의 대기업들은 주인이 없다는 점에서 우리와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일본이라고 해서 인재가 없을 리 만무할 것이고 맡겨만 준다면 경영능력이 뛰어난 인재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인이 없는 기업은 아무리 많은 인재가 모여 있어도 결과적으론 내부 정치판이 기업의 결정과 방향을 좌지우지하게 된다. 과거 전 세계 시장을 휩쓸던 소니가 오늘 날 저처럼 몰락하리라곤 과연 그 누구인들 상상이나 했겠는가.

 

 

우리 역시 일본 대기업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크다는 점. 

 

 

그런데 우리 대기업들 역시 이대로 가면 대마불사란 말처럼 기업은 살아남을지 몰라도 머리가 없는 공룡이 되어 결과적으로 잘 해야 일본 대기업 꼴이 날 것이라 본다. 아니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쳐져서 몰락하던가.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우리가 대응을 잘 하는 바람에 국민적 자긍심이 높아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실은 우리 앞에 놓여있는 어려움들은 이제 머리를 들기 시작하는 단계에 있다는 생각을 한다. 또 그 어려움은 실로 첩첩한 산의 연속일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이제 새로운 운의 주기를 맞이할 때가 된 우리 대한민국

 

 

運(운)이란 것이 있다. 한 개인의 삶에도 존재하지만 단체나 기업 나아가서 나라에도 영고성쇠가 존재하니 그게 바로 운이란 것이다.

 

운은 60년을 하나의 주기로 해서 변화해간다. (뿐만 아니라 그 60년을 여섯 개로 해서 360년에 걸쳐 변화해가는 더 큰 주기의 운도 있다.)

 

이처럼 운의 주기는 대단히 규칙적이다. 우리 대한민국의 국운은 1964년에 입춘을 맞이하였고 그로부터 우리는 그야말로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하지만 이제 또 다시 4년 뒤가 되면 입춘이 된다. 그렇기에 얼마 안 있어 그간에 누적된 각종 문제점들이 한꺼번에 불거져 나오는 시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 문제점들 중에 재벌의 승계와 상속 문제 역시 우리 경제의 앞길에 있어 대단히 커다란 숙제로 남아있다. 그간 이런 얘기를 하진 않았지만 이젠 한 번 언급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얘기를 했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문제가 되는 시점에서 좋은 해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존재한다면 그건 문제가 아니란 얘기가 된다. 오늘의 문제 역시 뚜렷한 해법은 없다. 그저 시간 속에서 세월 속에서 어떤 식으로든 귀착이 되어갈 것이라 본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 경제의 향후에 있어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부디 아무쪼록 조금은 더 나은 쪽으로 정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랜 고생 끝에 빛을 본 가수 장민호

 

“미스터 트롯”의 흥행이 대성공했다. 나 역시 흥미롭게 시청했다. 임영웅의 노래는 정말 대단한 것 같다. 그런데 내 눈을 가장 많이 끌었던 이는 장민호란 가수이다.

 

장민호, 양력으로 1977년 9월 11일생이다. 丁巳(정사)년 己酉(기유)월 辛未(신미)일이다. 경력으로 볼 때 2011 辛卯(신묘)년이 60년 운세 순환에 있어 立秋(입추)의 운이었고 이에 작년 2019년은 秋分(추분)의 운, 즉 인정을 받는 운세 즉 등용문을 통과하는 때였다. 그런 까닭에 올해 미스터 트롯에서 나름 인정을 받았고 특히 德性(덕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 지면서 대중적 스타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니 이제부터 10년간 장민호는 인생의 전성기를 맞이하는 형국이다.

 

관심이 갔던 것은 그가 오랜 세월 무명 가수 생활을 견뎌온 결과 마침내 스타로 올라섰다는 점이다. 1997년에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했지만 크게 주목 받지 못했고 그 이후 다양한 시도를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다가 트롯 가수로 전향한 것이 빛을 본 것이다. 남진 선생님의 노래 ‘상사화’를 아주 잘 불렀던 기억이 난다.

 

 

그의 운세를 살펴보니 

 

 

1981 辛酉(신유)년이 입춘 바닥이었으니 데뷔한 1997년은 小滿(소만)의 운이었다. 한 해로 치면 5월 하순 경과 같다. 소만 무렵이면 어린 벼가 논에 가득 들어서는 때이니 그 역시 신인 가수로서 인생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정도의 운으론 절대 스타가 될 수 없는 법, 왜냐면 인생의 운세 순환에 있어 대부분은 입추의 운 근처는 되어야만 대중성이 생기고 스타성이 발휘되며 또 그간의 능력이 발현이 되기에 그런 법이다.

 

(물론 그야말로 천재성이 있고 아울러 시대의 흐름과 맞아 떨어질 경우 입추 한참 전에도 성공하는 일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사실 희박하다. 예컨대 이미자 선생님과 같이 불세출의 재능을 가진 경우가 바로 그렇다.)

 

그렇기에 장민호의 경우 그 이후 많은 고생을 겪으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끝내 가수 외길을 걸어왔고 마침내 성공했으니 오히려 그 점을 더욱 인정해 줄 수 있다. 물론 그 길 말고는 달리 선택지도 없었겠지만 말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 성공 혹은 성취가 온다.

 

 

삶에 있어서 성공하는 방법 또는 길은 달리 선택할 것이 없을 때라 보면 된다.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손에 쥔 자는 나중에 보면 그 어느 것도 성취하지 못한다는 것, 인생을 살아보고 겪어본 자만이 비로소 알게 되는 삶의 진리라 하겠다.

 

이리 가도 될 것 같고 저리 가도 될 것 같은 상황이라면 나중에 보면 그 어느 길도 목적지로 안내하지 않는다는 것, 죽으나 사나 외길일 때 그 길만이 성공과 성취로 이어지는 길이란 것을 살아보지 않은 자가 어떻게 사전에 알 수 있으랴!

 

장민호는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가수 외길을 걸어왔고 그랬기에 마침내 운이 입추를 넘어서고 이에 다시 시간이 흐르자 스타로 올라섰다. 그러니 장하다고 말해준다.

 

오랜 무명 세월을 거치면서 실력을 가다듬어 마침내 대성한 가수라 할 때 얼핏 생각나는 분으로서 조항조 씨가 있다. 18년간 무명 가수로 지내다가 1997년 외환위기라는 특수한 사정 때문에 그가 부른 “남자라는 이유로”란 노래가 엄청난 호응을 얻으면서 스타덤에 올랐으니 대기만성 형이라 하겠다.

 

 

하는 일과 운세가 부합될 경우 쉽게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침 데뷔했을 때 운세가 한창이라서 바로 대박이 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가요계에서 보자면 서태지가 그런 케이스인데 그가 ‘서태지와 아이들’을 결성하고 활동을 시작한 때는 1991년이었다. 그런데 서태지의 경우 1992년이 입추의 운이었기에 그 해 4월에 발표한 1집 “난 알아요”가 빅 히트를 쳤다.

 

하지만 서태지로선 너무 일찍 은퇴를 한 것이 실수라면 실수였다. 불과 몇 년도 지나지 않은 1996년 1월에 돌연 은퇴를 선언한 것이다. 창작의 고통을 견디기 어려우니 화려할 때 미련 없이 떠난다는 것이 그의 말이었는데 그냥 좀 쉬다가 다시 활동을 재개하면 될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이후 컴백을 하고 다시 그만 두고를 반복하는 사이 그의 好運(호운)은 속절없이 지나가고 말았던 것이다. 서태지의 경우 이제 내후년 2022년이면 입춘 바닥이 되기에 왕년의 인기를 되찾기란 어려울 것으로 본다.

 

 

비교적 순탄한 길을 가는 이찬원과 정동원 

 

 

이번의 미스터 트롯에서 대단한 활약을 보여주었고 진또배기를 불러 더욱 대중들에게 널리 각인된 이찬원 씨의 경우 역시 2012년이 입추였는데 활동을 시작한 때는 2008년부터였다. 그런 까닭에 12년 만에 인정을 받는 운인 秋分(추분)에 성공을 했으니 그 정도면 순탄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장민호가 2011년 입추였고 이찬원은 2012년이었으니 운세 주기가 장민호와 거의 같다.

 

아울러 이번 미스터 트롯에서 나이든 여성들로부터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정동원 군의 경우 2007년 3월 19일 생이니 丁亥(정해)년 癸卯(계묘) 壬子(임자)일이다. 따라서 2022년 壬寅(임인)년이 입추의 운이 된다. 입추 불과 2년 전이니 이 정도면 대단히 순탄하게 가수의 길을 걷기 시작한 셈이다. 장차 많은 활약이 기대되는 데 다만 아직은 너무 어려서 자기관리를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이라 할 수 있다.

 

 

오늘은 소만 절기

 

 

지금 글을 쓰는 시각은 6월 5일 새벽 2시 5분, 이제 오늘 오후 1시 42분이 되면 芒種(망종)의 절기로 들어선다. 이로서 午(오)월이 된다.

 

이미 해가 많이 길다. 오전 5시11분에 일출이고 일몰은 저녁 7시50분이니 낮 시간이 14시간하고도 39분이나 된다. 일조 시간이 하루 길이의 61%나 된다. 夏至(하지) 때의 일조시간과 겨우 71분 정도밖에 나지 않는다. 그러니 이런 때를 옛날엔 長夏(장하)라 불렀다.

 

긴 여름이란 뜻인데 일조 시간이 워낙 길어서 그렇다. 하지만 동지 무렵 일조량이 짧을 때를 긴 겨울이라 부르진 않았으니 역시 사람에게 해가 비치는 시간이 중요한 것을 말해준다.

 

여름의 한자인 夏(하)란 글자가 실은 흥미롭다. 이 글자는 사람이 춤을 추는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정확한 이유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하지 무렵에 축제를 하고 춤을 추던 풍속에서 온 것으로 추측이 된다.

 

 

우리 국운의 하지 축제를 추억해본다

 

 

하지 축제라 하니 생각나는 것이 있다. 우리 대한민국의 60년 국운 순환에 있어 하지 때가 1987년이었는데 마침 그 때 우린 민주화로 넘어왔고 아울러 경제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온 국민들이 다 함께 흥겨워했던 때이고 다음해인 1988년엔 서울 올림픽까지 치렀으니 가히 국운의 하지 축제였던 셈이다.

 

지금은 우리 국운이 한겨울을 가고 있다. 글로벌 정세가 그때와는 180도 달라졌다. 현재의 정세는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에게 많은 부담이 될 것이다. 1987년 당시 전 국민들이 모두 들뜨고 격정에 넘쳤던 축제는 이제 간 곳이 없고 지금의 젊은이들은 그 시절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나마 우리가 이번 코로나19 사태에 대해 잘 대응했다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위안을 삼을 뿐이다.

 

물론 아직은 그래도 약간의 여유가 있다는 생각도 한다. 내후년인 2022년부터 닥쳐올 시련을 감안하면 말이다.

 

오늘은 뭔가 독자들이 그런대로 위안을 얻을 글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미스터 트롯을 대상으로 삼았다. 대중가요야말로 우리 모두의 정서를 액면 그대로 반영하고 또 위로해주는 것이니 말이다.

 

이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오늘은 망종이다. 최근 주가가 너무 올랐다는 느낌, 오버슈팅한다는 생각이다. 독자 중에 주식하시는 분이 있다면 이젠 나름 조심할 때란 말을 드리고 싶다. 아마도 이 달 하지 무렵부턴 흐름이 달라질 것 같다.

 

실로 소화하기 어려운 난국의 연속 

 

앞의 글에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아웃소싱과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에 커다란 변화가 예상된다고 했다. 이는 현 세계의 상품 공급과 교역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뀐다는 얘기이니 실로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사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에 생겨난 변화만도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주요 선진국 경제의 금리가 사실상 제로가 되었고 여기에 양적완화라고 하는 미증유의 조치를 통해 상상을 초월하는 돈이 풀려나갔다.

 

 

돈의 가격이 왕창 내렸으니 불경기이자 디플레이션

 

 

금리란 돈의 가격,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용료인데 그 사용료가 대단히 저렴해진 것이다.

 

돈의 사용료가 싸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잠깐 생각해보자. 가령 주택이나 아파트를 임대해서 쓰고 있다면 임대료를 내게 된다. 그런데 그 임대료가 엄청나게 저렴해졌다면 그건 간단히 말해서 주택 가격이 엄청나게 내렸다는 말이 된다. 돈의 사용료가 아주 저렴해졌다는 것 역시 같은 말이 된다.

 

이어서 돈의 사용료가 싸졌다는 말은 투자할 곳이 변변치 않다는 뜻이다. 투자할 곳이 많다면 너도 나도 투자하기 위해 돈을 빌려고 들 것이니 자연히 돈의 사용료인 금리가 올라갈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돈이 갈 곳, 즉 투자할 곳이 극도로 적어졌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2007년 금융위기 이후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를 했다는 말은 글로벌 전체적으로 투자할 곳이 극도로 적어졌다는 말이 되는 것이고 이는 즉 경기가 나쁘다, 즉 불경기 상황이란 뜻이다.

 

 

원투 펀치를 맞고 비틀거리는 글로벌 경제 

 

 

그러나 2016년부터 그글로벌 경제는 조금씩 살아나고 있었다. 특히 미국 경기가 좋아지면서 미국 연준은 조금씩 금리를 올려갔고 양적완화로 해서 풀려나간 돈 역시 조금씩 회수하고 있었는데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또 다시 제로금리로 돌아갔고 연준의 통화환수는 생각하기도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다. 다시 말해서 이젠 미국을 비롯해서 전 세계 경제의 불경기가 아예 고착화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2008년의 금융위기, 2020년의 코로나19사태, 이는 12년의 시차가 있다. 12년은 60년 순환에 있어 기본 마디인데 글로벌 경제가 순환의 한 마디가 지날 때마다 크나 큰 타격을 입고 있는 셈이다. 글로벌 경제 전체가 강력한 원투 펀치를 맞은 것과 같은 형국이다.

 

 

미중 냉전의 시대

 

 

뿐만 아니라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그간에 지속적으로 이어져오던 미중 간의 패권 전쟁을 한 층 더 가중시키고 있기에 이젠 새로운 냉전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과거 미소 간의 수 십 년에 걸친 암중투쟁이었던 냉전은 1991년 소련의 해체로 끝이 났는데 또 다시 미중 간에 새로운 냉전구도가 확연해진 것이다. 저번 냉전이 군사적 대치를 기본으로 하는 진영 싸움이었다면 이번 냉전은 훨씬 더 복잡 미묘하다. 적대 진영이 확실하지도 않고 여전히 교류해가는 가운데 지속적으로 갈등과 마찰을 빚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중 간의 신 냉전구도는 현재 홍콩에서 보다 첨예하게 빚어지고 있다. 중국 당국에 의한 홍콩보안법 제정 움직임과 이에 맞선 미국의 홍콩 특별지위 철회 압박이 그것이다. 당장은 피차간에 눈치를 보고 있지만 그렇다고 마냥 피해갈 순 없는 대치국면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려운 우리의 입장

 

 

하지만 미중 간의 못할 판냉전은 홍콩만이 아니라 당장 우리에게도 어려운 숙제를 던져오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Economic Prosperity Network(EPN) 구상이다. 트럼프가 주도한 구상으로서 중국을 제외하고 우리를 포함해서 호주와 일본, 인디아, 뉴질랜드, 베트남을 연결하는 서플라이 체인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우리 경제는 중국과 너무나도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기에 우리 정부는 트럼프 정부의 제의에 대해 금년 하반기 미극 대선 결과를 기다리면서 일단은 답변을 회피하고 있다. 일본이나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 트럼프 역시 당장은 이렇게 할 수도 있지 않느냐 하면서 한 번 던져본 제스처라고 하겠지만 장차 이 구상이 훗날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간에 밀접하게 얽혀있던 미중 관계에서 미국은 당장은 몰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중국과 헤어지려는 의도를 가졌다는 점이니 그게 우리로선 두고두고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우리로선 누구와도 교역하는 것이 이익이건만 

 

 

우리로서야 전 세계 어떤 나라이든 지역이든 무역을 하는 것이 국익이다. 이란과도 그렇고 중국과도 그러하며 러시아와도 그렇다. 그런데 새로운 블락 형성의 움직임은 편을 먹자는 것이고 편이 아니면 배제하자는 것인데 이게 구체화된다면 우리로서 대단히 난처하다.

 

 

한은의 수단이 이젠 사실상 사라졌으니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경제 역시 사실상의 제로금리 시대로 진입했으니 이번에 한은이 금리를 역사상 최저인 0.5%로 인하한 것이 그것이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우리로선 사실상 더 낮출 수 없는 최저금리라 하겠다. 여기에 더불어 한은에 의한 본격적인 양적완화의 조짐도 감지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이후 은행권의 기업과 가계의 대출이 급증했다.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3.4배나 폭증했다. 대부분이 긴급자금 대출인 셈이다. 그렇지 않아도 복지를 강조하는 현 정권은 국가의 부채 구모를 늘려오던 마당이었는데 이제 향후 10년 사이에 국가부채는 한 마디로 말해서 무진장 늘어날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10년 후가 되면 국가의 재정건전성이 크게 악화될 것이란 얘기이다.

 

저금리 시대이자 제로금리 시대이고 불경기이자 디플레이션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금리란 것이 계속 낮을 것 같지만 언젠가는 인플레이션이 와서 고금리로 바뀔 수도 있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당장으로선 고금리와 인플레의 시대를 상상하기란 쉽지가 않다. 그건 파탄을 의미한다, 그건 다 함께 죽어보자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런 우려보다는 당장 걱정되는 것은 한은의 금리 수단이 사실상 없어졌다는 점이다. 더 이상 인하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한은이 경기부양을 위해 할 수 있는 수단이라곤 양적완화밖에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데 우리 돈인 원화는 달러나 유로화, 엔화가 아닌 까닭에 직접 찍어내기 위해선 특히 미국으로부터의 협력 혹은 사전 승인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런 면에선 우리는 미국의 눈치를 봐야 할 것이고 수출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선 중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대단히 어려운 입장이다. 이런 마당에 미국과 중국은 적대하는 관계가 되었고 우리더러 어느 쪽에 설 것인지 편을 정하라고 압박해 오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이미 자영업자들은 엄청난 타격을 입은 상황이다.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하지만 그건 눈앞에 보이는 문제에 불과하다. 이제 닥칠 숙제들이 너무나도 많다.

 

 

우리 앞에 산적한 너무나도 많은 숙제들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의 구조 변화가 우리에게 어떤 득실을 가져올 것인지, 제로금리 시대에 경기가 지속적으로 더 악화된다면 어떤 대책을 쓸 수 있을 것인지, 또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국제 외교적인 노력의 대안은 무엇인지, 걷잡을 수 없이 폭증하게 될 부채의 홍수 속에서 이미 통제 범위를 넘어선 가계부채와 기업부채 아울러 국가의 재정건전성을 어떻게 대처해갈 수 있을 것인지, 미중 간의 냉전 구도 하에서 우리가 어떻게 처신해가야 할 것인지, 우리의 오랜 숙제이자 지정학적 리스크의 근원인 북한과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가야 할 것인지, 인공지능의 확산만 해도 그렇건만 코로나19 이후 생겨난 새로운 변화의 동인인 ‘언택트’ 흐름이 향후 일자리 문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등등.

 

이들 중 어느 한 가지만 잘못 되어도 우리 대한민국은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일들이 장차 있을 거대한 하락 조정의 출발점인 것인지 아니면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지도 못한 낯선 세상으로 우리를 데려갈 것인지 지금으로선 전혀 생각해볼 수 없다.

 

어쩌면 2000년 이후 우리가 보낸 10년이야말로 실로 좋은 시절이었고 황금기였다고 두고두고 회고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좋았던 옛 시절

 

예전에 일본이나 우리의 경우 평생직장이 기본이었다. 미국 역시 1970년대까진 한 번 직장에 들어가면 은퇴할 때까지 직장 변동이 그렇게까지 크진 않았다. 피고용자의 입장에선 대단히 안정적인 세월이었다.

 

베트남 전을 계기로 시작된 흐름

 

그런데 1980년대 초반 미국은 베트남 전쟁의 여파로 인해 심각한 경제난에 봉착했으며 게다가 신흥의 일본에게 뒤처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업들은 이른바 ‘구조조정’이란 것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구조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기업들은 기존의 사업구조와 소유구조, 자본구조, 경영구조, 지배구조 등을 변화시켜가기 시작했으니 그 핵심은 철저하게 수익을 지향하자는 것이고 생산성이 없는 분야 즉 돈이 되지 않는 부문을 과감히 통폐합하거나 또는 축소하는 것이었다. 예전엔 기업들 역시 시장 점유율이라든가 기타 체면이나 위신이란 것을 중요시하는 보수적 성향을 보였으나 이젠 오로지 이해타산에만 몰두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구조조정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고 그에 따라 예전에 없던 연봉계약제도와 비정규직의 채용이 대폭적으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우리 사회 역시 양극화가 심화되어왔고 직업적 안정성은 극도로 떨어졌다.

 

구조조정은 그런데 그것에서 그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갔으니 이른바 ‘아웃소싱’이란 개념이다. 이는 1989년부터 일반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으며 특히 1990년에 소개된 논문 하나가 결정적으로 작용했으니 바로 “기업의 핵심 역량 이론”이란 논문이었다. 내용인 즉 기업은 핵심 사업에만 집중하고 나머지 부수적인 부문은 외주를 통해 해결함으로써 생산성 향상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1990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실린 논문인 “The Core Competence of the Corporation”이 그것이다.)

 

선도 기업이 되기 위해선 오로지 기업의 핵심 역량에만 집중하고 나머지 평범한 요소들은 외주로 넘기거나 아니면 매각 등을 통해 버려야 한다는 새로운 경영 개념과 사조가 기본 경영 사조로 자리를 잡았고 이에 구조조정이라든가 아웃소싱은 너무나도 흔한 일상사가 되었다.

 

중국의 공짜 인건비가 가져다 준 변화

 

처음에 아웃소싱은 미국 내에서의 일이었는데 나중엔 그리고 특히 제조업 분야에선 국경을 넘어 대량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바로 저렴한 인건비의 중국이 그 대안이 되어 주었다. 미국은 1979년 초부터 중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했기에 미국의 제조 기업들은 거의 공짜나 다름이 없는 중국 노동자들의 인건비를 감안할 때 중국 현지에 공장을 차리거나 또는 기술 지도를 통해 세워진 중국 기업들의 공장에서 생산하는 것이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최상의 방안이 되어준 것이다.

 

이런 흐름은 1994년 무렵 ‘글로벌화’란 이름을 달고 더욱 더 박차가 가해졌다.

 

그러자 기업들의 자기자본의 투자에 대한 이익률 이른바 ROE는 급격히 높아졌고 당연히 기업들의 주가는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실적이 좋아졌으니 기업의 고위간부들은 엄청난 급여를 챙길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을 더욱 부채질한 것이 있었으니 투자은행들과 재무 컨설팅 회사들이 제공하는 극도로 다양한 재무 금융기법들이었다. 인수합병과 사업 부문의 분리 매각, 매수기업의 자금이 부족할 경우 매수대상 기업의 자산과 수익을 담보로 금융기관에게서 자금을 차입하여 매수합병을 하는 차입매수(LBO)와 같은 다소 수상한 방법까지 동원되면서 기업들은 사모펀드의 사냥감으로 전락해갔다. 당연히 기업 내 종업원들의 안위는 이제 관심 밖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미국 내 제조업의 일자리는 말살되다시피 했고 단순 사무직 자리 또한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콜센터만 해도 처음엔 영어권인 홍콩이나 싱가포르로 이전되었고 나중엔 더 저렴한 인도로 옮겨갔다.

 

그 결과 오늘날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선진경제권 국가들의 제조업은 거의 말살되었고 단순 사무직 역시 극도로 줄어들었다. 반면 중국은 그야말로 세계의 공장이 되었다.

 

 

양극화의 원인

 

 

오늘날 극심해진 세계적 양극화와 선진경제권 국가내의 양극화는 그 배후에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흐름들이 놓여있다. 그 결과 저소득 대중들의 불만은 엄청나게 높아져 갔지만 저렴한 중국산 일상 소비재들이 선진 경제권 시장으로 대량 유입됨으로써 그들의 생활고를 덜어준 것 또한 사실이다. (돈 없는 서민은 중국산을 쓰고 돈 많은 이들은 명품을 쓰는 구조 말이다.)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

 

 

이처럼 구조조정과 아웃소싱이 글로벌 규모로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있었으니 바로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이다. 국제적 분업과 물류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복잡 정교하게 얽혀있는 구조인 것이고 또 여기에는 정보기술(IT)이 뒷받침되면서 극도로 다듬어지고 정교해질 수 있었다.

 

예컨대 미국 애플 아이폰의 경우 설계는 애플이 했지만 그에 들어가는 정교한 부품들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전 세계 여러 기업들로부터 조달한다. 또 그 부품들 역시 여러 나라들의 다양한 기업들로부터 원자재와 하위 부품이 조달된다. 하지만 최종 조립은 대만기업 폭스콘이 중국 현지에 차려놓은 거대한 공장에서 중국 노동자들의 손을 통해 이루어지고 이에 상표를 부착한 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시장으로 팔려나간다.

 

미국기업들이 주도한 이와 같은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 안에는 그야말로 전 세계의 무수히 다양한 기업들이 참여하고 또 그를 통해 수익을 올리고 있다. 한 마디로 미국이 만들어 놓은 정교한 국제적 분업체계이자 물류 구조인 것이다.

 

 

코로나 19 사태가 알려준 것

 

 

그런데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그간의 흐름에 대해 엄청난 브레이크가 되고 있다.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 그야말로 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지구촌의 최강자가 아니겠는가. 그렇건만 이번 사태는 미국이 안고 있는 취약점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고도의 기술력을 요구하지 않는 마스크나 보호용 비닐, 산소호흡기 그리고 소독용 알코올마저 없어서 방역이나 치료가 되지 않고 무수한 사람들이 속절없이 죽어나가고 있으니 미국으로선 굴욕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건 으레 저인건비의 중국 공장에서나 만들어지는 것이지 소득과 생산성이 높은 미국에선 감히 생산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품목들, 어쩌면 미국 생산으로선 아예 이윤자체가 나지 않는 물품들이 이번 사태에선 희귀품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더 이상 중국의 상승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작심을 한 미국으로선 이번 사태야말로 크나 큰 경종을 울리고 있는 셈이다. 오로지 이윤 동기만이 지상의 과제가 되어 왔던 미국 기업과 산업계였던 것이고 시장논리만이 지배하던 미국이었기에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제 그간의 흐름에 조정이 시작되고 있으니 

 

 

세상사 모든 흐름은 60년을 하나의 순환 주기로 하기에 그 절반인 30년이 지나면 반대의 흐름이 생겨나는 법, 아웃소싱이란 것이 1989년부터 일반화되기 시작했고 기업의 핵심 역량만 강조되기 시작한 1990년으로부터 이제 30년이 흘러 2020년이 되자 더 이상 그냥 이대로 갈 순 없다는 자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 전부터 논의되던 이른바 리쇼어링(Reshoring), 즉 생산 거점을 다시 미국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요구가 불거지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제조업이 그렇다. 저렴한 인건비를 기반으로 서구 선진경제권의 모든 제조업이 중국으로 몰려갔던 바, 이제 다시 중국에서 나오는 흐름이 본격화될 참이라 하겠다.

 

 

미국의 중국 견제와 맞물리고 있으니 사태는 일파만파

 

 

이런 흐름의 배경에는 앞에서 얘기했듯이 중국을 더 이상 그냥 두지 않으려는 미국의 세계 전략 또한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의 중국 때리기는 다분히 흥행을 위한 쇼의 측면이 있다. 트럼프는 정치인인 까닭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 역시 미국의 일반 유권자들이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에 바탕을 두고 있기에 금년 하반기의 대선에서 반대 진영인 민주당이 승리한다 해도 중국 때리기는 방법 상의 차이야 있겠으나 기본은 크게 변함이 없을 거란 얘기이다.

 

하지만 그간에 만들어져온 극도로 정교한 국제분업체계인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에 있어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엄청나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일반 소비재, 가령 홈 쇼핑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되는 의류 품목들을 나를 보면 거의 다가 중국산 아니면 베트남 산이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미국은 이제 중국을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에서 제외시키고자 한다. 더 이상 중국에 대한 의존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생각이다. 하지만 현재 상태에서 보면 미국은 너무나도 많은 품목들을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세계에서 중국 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는 바로 미국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제 중국과의 관계를 정리하고자 한다. 흔히 말하는 디커플링(decoupling)을 해보고자 한다. 이는 그야말로 엄청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돈의 흐름, 이익을 따라 형성된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에 대해 정치적인 의도, 중국을 꺾어놓겠다는 목표에서 그간의 구조를 변경한다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선 시장과 무수히 많은 마찰을 일으킬 것이 너무나도 명백하기 때문이다.

 

오늘 이런 글을 쓰는 까닭은 물론 우리와의 관련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글이 길어지고 있어 이번 글은 여기에서 그치고 다음 글에서 맺음을 하고자 한다.

"나는 자연인이다."란 텔레비전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 잘 알려진 프로그램이고 중년 남성들이 즐겨보는 프로그램이다. 나 역시 흥미롭게 시청하지만 관점이 전혀 다르다. 산중 자연인의 얘기를 들으면서 저 친구는 현재 운세가 어디쯤 되겠구나 하며 짐작하고 추산해보는 재미로 본다.

 

출연하는 대부분의 자연인들은 운세가 60년 순환에서 바닥점인 입춘을 막 지냈거나 아니면 몇 년 된 사람들이다. 줄여 얘기하면 모두들 운세가 바닥권에 있다고 보면 무방하다.

 

여유가 있고 상황이 좋아서 산 속으로 들어가진 않는다. 일종의 피신과도 같은 것인데 그런 사람들이 이승윤 씨 혹은 윤택 씨와 대화를 나누면서 때론 허세를 부리기도 한다, 그 모습 또한 흥미롭다. 실은 대단히 외로울 것이다, 하지만 복잡한 세상살이보다는 저 생활이 마음은 더 편하기에 저렇게 지내고 있으리라.

 

운세 상 입춘에서 청명까지의 10년, 한 해로 치면 양력 2월 4일 경의 때로부터 4월 5일 경까지 두 달 동안은 출생하기 전 즉 뱃속의 아기와도 같다. 운명의 子宮(자궁) 속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대다수 보통의 사람들은 이 기간 동안 조용히 존재감 없이 세월을 보내기 마련인데 저 자연인들은 자연의 품에 안겨 조용히 세월을 보내고 있다.

 

 

프로그램 인기의 원인

 

 

우리나라 중년 남자들이 저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이유 또한 금방 이해가 간다. 세상에서 먹고 사느라 싸우다 보니 지친 것이고 그런 탓에 나도 나중에 정녕 안 되면 저렇게 할 수도 있겠구나 하면서 위안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산 속엔 부귀영화도 없지만 싸워야 할 일도 없으니 말이다.

 

약속 시간에 맞춰 움직일 필요도 없고 어느 정도 준비, 주로 추운 겨울을 날 수 있는 준비 같은 거 말이다, 이런 것들만 되면 나머진 그저 끼니를 때우면 그만이고 편히 늘어져 쉬거나 잠자면 그만인 삶, 그게 바깥에서 보기엔 부러운 것이다.

 

하지만 탄력이 살아있고 아직도 힘이 있어 분주하게 사는 사람이라면 정작 산 속에서 삶을 보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혼자서 지내라 하면 이틀이면 충분할 것이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자연인들은 얼마나 世間(세간)에서의 삶이 힘들고 지쳤으면 산속으로 들어 갔을까나. 그 심정이 처음에 오죽했으랴.

 

산중이 아니라 俗世(속세) 다른 말로 世間(세간)에 살면서 입춘 바닥의 운을 보내는 이가 실은 더 많고 흔하다. 물론 입춘 바닥이 되어도 겉으로야 아주 멀쩡한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볼 것 같으면 역시 그렇구나 하고 수긍을 하게 된다.

 

 

평창동의 저택들은 사실 운명의 무덤과도 같다. 

 

 

얼마 전 평창동의 화랑에서 생애 최초의 수채화 전시회를 했었는데 그 주변의 집들은 그야말로 저택이고 성채였다. 대지만도 수백 평에 이층 양옥으로 지은 집들 말이다.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그런 집들을 보면 으와, 엄청나구나, 나도 이런 집에 한 번 살아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자연스레 들기 마련이다. 집 뒷면엔 북한산의 수려한 바위 봉우리들이 연이어 둘러 있고 동네는 인적이 드물어 참으로 한적하다. 그런 바람에 갤러리들이 평창동으로 몰려들고 있다.

 

그런데 평창동 저택들의 내부 사정을 알 것 같으면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온다.

 

평창동 언덕에 집을 지을 무렵 집주인의 운세는 상강 정도가 된다. 10월 20일 경의 상강 말이다. 60년 순환 흐름에서 보면 입춘으로부터 대략 42.5년이 경과할 때이다. 10월 상강에 쌀을 수확하듯이 60년 흐름에서 상강은 인생에서의 큰 농사를 마무리하고 수확을 보는 때라 보면 된다.

 

그런 까닭에 상강 무렵이면 여유가 넉넉해서 이제 멋진 집을 짓기도 한다. 넓은 주차장에 외제차도 두어 대, 넓은 거실에 푸른 잔디밭, 마당 가장자리엔 정자도 있고 구부러진 소나무가 심어지며 연못엔 분수와 함께 금붕어들이 노닌다. 정말 그림이다.

 

그러다가 자녀들이 이윽고 출가하게 되고 세월이 가면 영감 할머니 두 노친네만 남게 되고 또 시간이 지나면 혼자 몸이 된다. 그 정도 집을 지을 재력이면 대개 사업으로 성공을 한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나이든 부부만 지낼 경우 겨울엔 전체 난방을 하기엔 돈이 아까워서 거실 소파에서 전기히터 하나을 끼고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실내 공기는 차갑고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거대한 저택이 된다. 이게 평창동 저택들의 일반적인 실상이다.

 

나 호호당은 전시회 기간 중 주변을 살피면서 아, 저 집들은 사람 사는 집이 아니라 무덤이구나, 운명의 무덤! 하고 탄식을 했다. 우연히 화랑 앞의 저택에 사시는 나이든 영감님의 사주를 봐주고 사연도 듣게 되면서 그런 생각을 더 굳힐 수 있었다.

 

 

자연인이나 평창동 저택의 주인들이나 실은 같은 것이어서

 

 

산 속에 사는 ‘자연인’들은 경제적으로 실패했거나 몸이 아파서 들어가 사는 경우가 많다. 평창동의 저택은 조금 달랐다, 예전에 크게 성공했고 여전히 재력도 있지만 큰 집에서 외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겉보기엔 전혀 다르지만 운명의 바닥을 보내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것이다.

 

평창동 저택들이 밀집된 언덕에서 시내를 바라보면 청와대가 위치한 북악산에 가로막혀 보이지 않는다. 사실상 산중이나 같다, 그런 면에서 세간을 등지고 사는 자연인들이나 서울 시내를 등지고 사는 평창동의 부자들 또한 실은 운명적으로 동일한 흐름인 셈이다.

 

 

저마다 다양한 운명의 바닥 시절

 

 

실로 다양한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형태로 운명의 바닥 기간을 지낸다. 자연인들이나 평창동 저택의 외로운 사람들만이 아니란 얘기이다. 오랜 기간 동안 직장을 다니면서 무난한 세월을 보낸 사람이 어느 날 은퇴를 하게 될 경우 그런 사람들의 운세 또한 바닥에 접근해 있다고 보면 거의 틀림이 없다.

 

그런 사람들 중에 그냥 놀 수가 없어 해보지 않은 사업에 도전할 경우 예외가 없다 할 정도로 실패하는데 그 역시 운이 바닥권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냥 까먹으면서 세월을 보내면 그런대로 지낼 수 있을 것을 그게 불안해서 자기 자금을 들여 사업을 했다가 그야말로 쫄딱 망한 사람들, 운세를 보면 바닥권에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런가 하면 청년기에 지지리도 풀리는 일이 없어서 대학 졸업 후에 백수로 집속에 박혀 지낸다면 그 역시 운세 바닥을 지내고 있다고 보면 거의 정확하다, 아니 아주 정확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나이가 들어, 그러니까 60 대 이후 운명의 바닥권에 들어가면 병이 생겨서 그만 세상을 하직하기도 한다. 여러 번 얘기했듯이 입춘으로부터 7.5년이 경과한 춘분 무렵에 나이가 70대 가량 되면 그만 세상을 뜨기도 한다. 요즘 추세로 보면 아까운 것이다.

 

 

하지만 본질적으론 동일한 흐름이란 점. 

 

 

이처럼 운세 바닥이라 해도 외관상의 모습은 실로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그 속을 보면 동일한 흐름이 존재한다는 얘기이다.

 

운명의 바닥이라 하면 입춘을 전후해서 앞뒤 20년을 말한다. 특히 입춘 이후 10년이 가장 고생스럽고 시련이 많다. 그렇기에 대한민국 국민이 5천만이고 그 중 1/3은 그렇다는 계산이 나온다. 반대로 얘기하면 1/3은 절정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셈이고 또 1/3은 열심히 도전 중에 있거나 발전해가고 있다 보면 되겠다.

 

토요일엔 강의를 하기에 강남역 거리를 지나쳐야 한다. 걸어가면서 스쳐가는 사람들의 얼굴과 자세를 절로 보게 된다. 그러면서 저 친구는 이제 맛이 가고 있구나, 아 저 젊은이는 무얼 모르면서 한창의 세월을 구가하고 있구나, 저 친구 울적해보이지만 서서히 힘을 길러가고 있네, 등등 이런 식으로 나도 모르게 판단을 하게 된다.

 

굳이 생년월일을 알아서 사주팔자를 보지 않아도 그간의 상담을 통해 몸에 익힌 감각으로 판단하게 되니 그렇다. 기세가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의 눈빛이나 동작, 몸가짐이 현저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 기 때문이다. 수만의 사람들을 상대로 상담을 하고 그 과정에서 그들의 사적인 얘기들을 들으면서 생겨난 감각인 것이다.

 

속세를 버리고 산중에 사는 자연인이나 평창동 저택을 지키고 있는 외로운 부자들이나 본질에서 보면 동일하다는 것,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으나 그게 그런 것을 어떡하겠는가. 천하 부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편히 숨을 거둘 수도 없으니 그 또한 운세가 그렇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낯선 세상으로 우리를 이끌어가고 있으니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해 전혀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변화의 모멘텀이 생겨났다. 앞으로의 세상이 어떻게 변화해갈 것인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재택근무 하나만 일반화되어도 

 

재택근무란 것, 그저 그게 한 20-30년 뒤의 일인 줄로만 했는데 당장이라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 이번 일로 입증이 되었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장차 미칠 파장이 엄청나고 심대하다. 우선 생각나는 것으로서 시내 중심가에 있는 수천억대의 고층 빌딩들이 어떻게 될까 하는 점이다. 그게 과연 필요하긴 할까?

 

오피스 거리는 아침마다 수많은 인파가 몰려드는 곳, 지하철이나 대중교통이 빈번히 오고가고 수많은 사람들이 아침엔 몰려오고 저녁이면 떠나가는 곳이다. 인근엔 식당가와 유흥주점이나 위락시설이 집중되어 있다. 편의점도 많고 고급 식당, 중급 식당, 저렴한 식당과 주점들이 띠를 이루어 존재한다.

 

이 모두 그 중심에 오피스 빌딩이 있기 때문인데, 물론 기업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한 용도도 있지만 그거야 부수적인 효과에 불과한 것이니 장차 오피스 타운의 변모는 불가피해 보인다. 어쩌면 도심의 기능과 형태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을 수도 있겠다.

 

그간 고층빌딩은 주로 사모펀드들이 인수해서 임대 수익을 올리는 대상이다. 그러니 재택근무가 일반화되면 고층빌딩의 임대에 따른 기대수익률 또한 많이 변하고 또 낮아질 것이다.

 

물론 유흥가도 여전히 존재할 것이고 식당도 존재하겠지만 마천루의 오피스 빌딩이야말로 문자 그대로 都心(도심), 즉 도시의 중앙이란 점에서 향후의 변화는 상상하기 어렵다. 관공서 또한 마찬가지.

 

이런 상상을 하고 있다 보니 이번에 현대차가 착공에 들어가는 강남 삼성동의 이른바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 GBC는 참으로 시류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시류에 맞지 않는 현대차의 거대 빌딩 착공

 

 

GBC라고 하는 저 거대 고층 건물은 오피스 빌딩과 호텔, 컨벤션 시설, 공연장 등으로 채워진다고 하는데 벌써 오피스 빌딩으로서의 용도가 줄어들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더불어 자동차를 만들어 파는 현대차가 왜 갑자기 빌딩 임대업자로 바뀌고 있느냐 하는 점도 있다.

 

용산의 경우 그간에 국제비즈니스 지구를 조성한다고 난리를 피우다가 삼성물산이 손을 떼고 떠나면서 결국 이젠 아파트 8천호로 귀결되었다. 그간 국제비즈니스 지구가 된다는 소식에 주변의 부동산 시세도 많이 올랐는데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면 그건 사실 주변 부동산 시세에 있어 상당한 악재라 하겠다.

 

 

서울 외곽의 직장인들은 만세 환호를 부를 판국

 

 

그런가 하면 서울로의 출퇴근에 하루 3-4시간을 써야 했던 예컨대 동탄 신도시 일대의 직장인들은 재택근무만 일반화되면 그야말로 야호-하고 쾌재를 부를 참이다. 생활의 질이 무진장 상승할 참이다.

 

그런데 재택근무가 과연 좋은 것일까 하는 점 역시 아직은 미지수이다. 서울 외곽에서 출퇴근하는 사람들에겐 당연히 반가운 소식이지만 모니터 앞에 노출되는 얼굴만 간단하게 세수를 한 뒤 밑으론 내의만 걸치고 일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이다.

 

 

출근하는 것 역시 일종의 맛인데

 

 

아침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출퇴근하는 것 또한 나름의 맛이 있고 긴장감도 있는 법인데 늦게 일어나서 대충 얼굴에 물칠만 하고 모니터 앞에 앉아서 근무를 한다? 어쩌면 출퇴근하던 시절이 그리워질 것도 같다. 또 식사량에 비해 에너지 소비가 적어지면 체중 조절에 문제가 생기거나 그렇지 않으면 식욕이 떨어져서 건강이나 체력 관리에도 또 다른 변화가 생겨날 것이다.

 

8시 45분에 기상해서 우유 한 잔에 토스트 하나 먹고 나서 9시부터 근무하는 세상, 분명 새로운 세상이다.

 

 

삶과 일하는 풍토 전체가 변할 것이니

 

 

재택근무가 일반화된다 해도 얼마간에 한 번 정도는 회사로 사무실로 출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 회사 사무실에 고정된 내 책상은 없을 것이고 번갈아 교대로 사용하는 쉐어링이 될 것이다. 그런가 하면 높은 고층의 사무실에서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세상을 밑으로 내려다보며 근무하는 맛은 사회적 출세와 성공의 상징인데 그런 재미도 사라질 것이다.

 

정장 차림에 대한 수요 또한 대폭 줄어들 것이다. 그런 의류업체들은 고민 좀 하게 생겼다. 여성들의 외출복에 대한 수요야말로 의류산업의 핵심인데 그 역시 만만치 않은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오피스 거리의 고층 빌딩들 또한 용도 변경을 해야 할 것 같다. 극장이라든가 아니면 스포츠 시설 또는 러브호텔로 변경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영화관이란 것 또한 넷플릭스와 같은 새로운 채널 그리고 5G와 같은 고속통신 인프라로 인해 지금의 상태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지 그 또한 미지수라 본다. 데이트를 위한 영화 관람이 아니라면 굳이 불편하게 극장을 찾아가는 불편을 감수할 이유가 사실 없지 않은가. 사람들이 대형화면이나 입체 음향의 돌비 사운드 때문에 영화관을 찾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참고로 얘기하면 대형화면이 주는 웅대함이란 사실 우리들의 착각이다. 집에서 대형 모니터로 영화를 보는 것이나 극장의 큰 화면 앞에서 보는 것이나 우리 뇌가 인식하는 차이는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방에 전등불만 끄면 동일해진다.)

 

영화관이나 극장가 역시 도시의 중앙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 주변에 유흥가가 몰려들기에 일종의 도시의 오락 센터라고 하겠는데 이 또한 변화가 불가피해질 것이다.

 

 

새로운 스트레스의 발생

 

 

돌아가서 다시 얘기하면, 재택근무가 일반화되면 하루 종일 아내나 남편 또는 식구들과 부대끼며 시간을 보내게 되니 그로 인한 마찰 스트레스가 적지 않을 것이다. 물론 오늘날엔 부부가 모두 일하는 시대이긴 하지만 이른바 남편 출근시켜 놓고 아이들 학교 보내놓고 호젓하게 차 한 잔 하면서 나만의 시간을 즐기던 가정주부들은 좋은 시절 사라질 것이다.

 

재택근무만이 아니라 재택학습도 사실상 가능해졌다. 그러면 엄마들은 돌아버린다. 남편과 아이들이 출근하지 않고 등교하지 않는 세상은 지옥일 수도 있겠다. 지금 가정주부들은 아이들이 학교 가는 날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이번 사태로 재택학습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번 사태로 인해 학교 선생님들 또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EBS에서 최고의 선생님들만 나와서 전 학년이 전국적으로 일제히 학습하면 된다는 것이고 그 바람에 각 선생님들의 할 일은 큰 위협을 받았다. 학부모들이 너희 선생님은 왜 저리도 강의를 못 하니? 하고 아이들에게 흉을 보고 있다고 한다.

 

친하게 지내는 어느 학교 교사는 우린 사실 탁아소 근무자일 뿐 무얼 가르치고 지도하는 선생이 아니란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하면서 장탄식을 했다. 지도한다고 말 들을 아이들도 아니고 가르친다고 배우는 아이들도 아닌데 그냥 교단에서 혼자서 쇼를 하고 있었다고 말이다.

 

학습은 학원에서 하는 것이지 학교는 그냥 매일 아침이면 아이들을 붙잡아 놓는 역할만 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번 일을 계기로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었다는 자조의 말도 했다.

 

 

사람이 점점 쓸모가 없어질 것도 같아서 

 

 

조금 더 생각을 연장하고 확장해보면 장차 AI, 인공지능으로 인해 점점 더 인력이 필요 없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무얼 해서 먹고 살지? 하는 두려움이 닥친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기본소득을 받아먹고 살아야지 뭐, 잘 나가는 대기업들이 돈을 벌면 그 기업들이 세금을 낼 것이고 그러면 그 세금을 국가가 나누어주는 방식이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 그리고 두려움.

 

그런데 생산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삶이 즐거울 수 있을까? 보람이 있을까? 하는 걱정이 생긴다. 어쩌면 그런 세상은 예전에 우리들이 두려워했던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 나오는 빅 브라더의 세상과 별반 다름이 없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든다. 그건 그야말로 또 하나의 신세계가 될 것이 분명하다.

 

오래 전 시절은 사람의 수가 바로 생산력의 크기이던 시절이 있었고 그 시절엔 인구 대국이 강국이었다. 분명히 이제 그런 세월은 지나갔다. 산업화 시절엔 철강 생산량이 바로 강국의 지표였고 그러다가 얼마 전까지는 소비가 경제성장의 원천이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이제 지구촌의 인구도 증가률이 거의 1%대로 내려앉았다. 그나마 플러스가 유지되는 것은 개발도상국들의 인구 증가가 주된 원인이다.

 

반면 도시화는 1960년대 말의 36% 수준에서 지금은 56%로 높아졌다. 인구는 이제 줄어들 참이고 도시화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재택근무의 일반화는 도시화 경향에 역전되는 흐름을 만들어낼 수도 있어 보인다.

 

인구 증가와 식량생산기술의 발전, 달러의 무제한 공급에 따라 글로벌 경제는 과거 수십년 동안 호황을 누렸는데 인구 증가가 정체되거나 줄어든다면 GDP 성장도 정체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재택근무가 가능한 시점에 들어서고 있고 글로벌 경제는 디플레이션의 기미가 농후하다. 게다가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마구 앗아갈 참이다. 소수의 엘리트들이 돈을 만들어내고 나머지 일반의 사람들은 기본소득으로 돌아가는 이상한 세상이 어쩌면 멀지 않은 미래에 다가와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 호호당이 알기로 쓸모가 없어지면 결국 사라지게 된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제 인공지능의 시대가 되면 어쩔 수 없이 쓸모가 없는 인간들이 넘쳐나는 시대가 될 것도 같으니 인구감소를 통해 해결할 것인지 또 다른 방법이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분명한 것은 이제 우리는 어느덧 새로운 세상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코로나19는 그곳으로 들어서는 새로운 모멘텀을 제공했다.

 

(이사 준비로 인해 며칠 간 그림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짐을 꾸리느라 그림을 그리지 못하니 기분이 울적하고 답답하다. 어서 후딱 이사해서 평소의 일상으로 돌아가야지 원, 미치겠다.)

외롭고 어두운 길을 가고 있는 상담객

 

 

나 호호당의 짧지 않았던 삶 전체를 되돌아볼 때 가장 외로웠을 때는 1995년이었다. 사람이 너무 그리웠다, 사람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말이다. 벌써 25년 전의 일이니 이젠 그저 아득하다.

 

며칠 전 한 상담객이 다녀갔다. 그 이의 운세 흐름이 바로 나 호호당의 25년 전과 같았다. 지금 당신의 상황은 가도 가도 정처를 알 수 없는 외롭고 스산한 어둠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라 얘기해주니 그 분은 순간 울컥하면서 참지 못하고 그만 눈시울을 적셨다. 티슈 한 장을 빼서 드렸다, 그냥 좀 우는 것도 괜찮다고 위로도 해주었다.

 

겉으론 아무 문제가 없고 그냥 멀쩡한 분이었다. 현재 40대 중반의 나이에 직업도 상위 클라스에 속하는 양반이 속으론 어둡고 스산한 길을 가고 있었다.

 

그 분의 운세 흐름은 우리가 해마다 1월 20일 경에 겪는 大寒(대한)과도 같았다. 대한은 한 해를 통해 땅이 가장 차갑게 식어있는 때, 기온 역시 가장 추운 때.

 

 

대한의 때에 대해 

 

 

대한 무렵에 교외로 나가보라, 무엇이 보이는가.

 

어디에도 생동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땅은 얼어서 생경할 정도로 굳고 단단하다. 그 위로 눈이라도 내리면 어디에도 한 점의 生氣(생기)마저 없다. 먼 산을 보면 쌓인 눈 사이로 갈색의 낙엽과 앙상한 가지들로 인해 회갈색만 눈에 들어온다. 해가 나오는 낮 시간은 아주 짧아서 금방 서산으로 해가 넘어간다. 먹이를 찾아 차디 찬 허공을 맴돌던 새들도 금방 둥지로 돌아간다. 구름도 많지 않다, 공기가 건조하기 때문이다. 구름엔 잠시 붉은 놀이 서리다가 어느새 회갈색으로 변하고 그리곤 짙은 어둠이 내린다. 그러면 길고 긴 밤이 찾아온다.

 

나 호호당은 사람의 운세 순환을 계절의 변화, 좀 더 자세하게는 24절기의 변화로 설명한다. 이는 비유가 아니다. 액면 그대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 분의 현재 상황은 바로 1월 20일 경의 대한이기에 겉으론 멀쩡해도 실은 차가운 대한의 길을 밟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동병상린이란 말처럼 나 호호당의 1995년, 그러니까 25년 전의 상황도 바로 대한의 운이었기에 그토록 외롭고 쓸쓸했던 것이고 사람의 온기가 그리웠기에 그 분의 심정과 상황에 대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그 분의 경우 워낙 성실하고 자기 관리에 빈틈이 없는 분이라 그저 심정만 힘들 뿐인 것이고 사람에 따라 즉 타고난 팔자와 성정에 따라 겉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내면의 심정은 별반 차이가 없다.

 

 

대한의 본질적 의미

 

 

대한의 운이 어떤 것인가를 본질적인 차원에서 얘기하면 그것은 놀랍게도 ‘무덤 속의 고독’이라 말할 수 있으리라.

 

사람이야 죽으면 이미 의식이 없으니 무덤 속에 들어간 들 고독할 까닭도 없다 싶겠지만 그거야 감히 누가 그렇다고 장담할 수 있으리! 대한의 운은 운명적으로 죽음의 상태인 것이고 무덤 속에 홀로 들어앉아 고요하고 외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라 보면 되겠다. 그렇기에 대한의 운이란 전혀 밟아본 적 없는 저승의 길을 혼자서 가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 까닭에 겉으로야 멀쩡하게 하던 일 하고 있고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고는 있어도 내면의 영혼은 홀로 저승의 어둡고 추운 길을 더듬어가고 있는 것이다.

 

해마다 우리가 겪는 겨울은 그 본질에 있어 죽음이다. 한해살이들은 겨울로서 죽고 여러해살이들은 假死(가사)의 시간을 보내거나 겨울잠을 잔다. 우리 인간 역시도 수 십 년을 살지만 겨울이 되면 의식은 내면으로 침잠하면서 일종의 假死(가사)상태로 들어간다.

 

그렇기에 우리 인간들 역시 해마다 겨울이면 간접적으로나마 죽음을 체험한다. 죽음이 무엇이냐고 누군가 나 호호당에게 물어온다면 그건 겨울, 겨울 중에서도 늦겨울을 상상해보라고 답해준다. 잿빛의 계절 겨울 말이다.

 

 

운명학의 본질

 

 

사람들은 운명학이라 하면 길흉사를 예측하고 하는 일이 언제면 잘 될 것이냐 잘 풀릴 것이냐, 이런 사람을 만났는데 도움이 될 것인지 아니면 경계해야 할 것인지의 문제, 또 결혼은 몇 살쯤에 하는 것이 좋을지, 이사 방향은 어느 쪽이 좋겠느냐 등등 지극히 이해타산에 관한 것을 미리 알아보는 일 정도로 여긴다.

 

물론 운명학은 그런 궁금증에 대해 답을 해준다. 하지만 진짜 운명학의 본질은 그 사람이 어떤 개성과 자질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살아가면서 맞이하는 계절의 변화가 어떤 것인지를 탐구하는데 있다. 맞이하는 운명의 계절에 따라 상황과 심정이 따라갈 것이니 그 결과로서의 인간사이다.

 

1월 20일 경의 대한은 생산하는 때가 아니다. 만물이 죽은 듯이 쉬고 있다. 그러니 대한의 운을 맞이한 사람이라면 어떤 성과를 기대할 수가 있겠는가? 생산이 있을 리 없고 성과가 있을 까닭이 없다. 그 바람에 스스로도 그렇고 주변에서도 저 사람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생산성이 약해졌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그 결과 사직을 강요당할 수도 있겠다.

 

대한의 운을 맞이한 고3 수험생이라면 어떨까? 좋은 성적을 얻어 좋은 대학으로 진학할 까닭이 없다. 겉으로야 남들처럼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척을 할 뿐 영혼은 다른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거나 몽상에 젖어 있어서 그렇다.

 

그렇기에 그런 학생 또는 그 학부모가 찾아와서 입시에 대해 물어볼 것 같으면 현실적인 말투, 즉 집중이 되지 않아서 학업의 성과가 좋지 않을 것이고 그 결과 좋은 대학 진학은 어려울 것이라고 눈치를 봐가면서 苦言(고언)을 해주게 된다.

 

그러면 학부모 쪽에서 우리 아이가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대단히 의욕적이었는데 이상하게 점차 의욕이 저하되고 성적도 부진하다는 말을 한다. 당연하다, 대한은 생산의 계절이 아닌 까닭이다.

 

기업의 경우도 대한의 운이 되면 경영진부터 타성에 빠져있고 그 결과 실적은 답보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최상이고 그렇지 않으면 점차 뒤처지게 된다. 물론 국가 또한 그렇다.

 

 

세월 따라 운명의 계절도 변화해간다. 

 

 

오늘의 글은 대한을 예로 들어서 운명의 흐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그 본질적인 것을 얘기하고 있을 뿐이다.

 

1월 20일 경의 大寒(대한)이 있으니 그 반대편, 즉 6개월 뒤인 7월 24일 경의 大暑(대서)는 열에너지가 펄펄 끓어오르는 때이다. 에너지가 넘쳐나기에 일시적인 좌절을 당해도 그건 시련일 뿐 실패로 귀결되지 않는다. 엎어졌다가 해도 금방 다시 일어나서 목표한 바에 도전해간다. 그리고 성취해간다.

 

앞에서 소개했던 그 분 역시 30년 전엔 그랬을 것이다. 십대 무렵에 말이다. 그 무렵이 에너지 넘치는 대서였을 것이니.

어떤 이는 중년의 나이에 대서 운을 맞이하여 약진한다. 반면 어떤 이는 중년에 대한의 시들한 길을 밟고 있다. (나 호호당 역시 마흔 살 무렵에 대한의 길을 밟았었다.)

 

 

운명의 계절이 있기에 삶은 아름답고 풍요로울 수 있으니

 

 

그런데 말이다. 이 대목에서 나 호호당이 운명학을 수십년간 연구해온 결과 진정으로 해주고픈 말이 하나 있어서 얘기해드리고자 한다.

 

일 년 사계절 중에 어느 계절도 나쁜 계절은 없다는 말이다. 겨울이 있기에 봄볕이 반가운 법이고 여름이 있어서 만물이 치열하게 다투면서 힘자랑을 한다. 그리고 가을이 있어서 더위가 가시고 풍성한 수확을 기대할 수 있다. 이에 가을이 지나면 쉬어야 나중에 또 생산에 나설 것이니 겨울 또한 반갑다.

 

인생살이 역시도 그렇다. 성공이 있겠지만 좌절도 있어야 할 것이며 좌절을 통해 사람은 더욱 성숙해지고 인격도 깊어진다. 좌절해본 사람만이 남의 좌절과 그 아픔에 대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또 성취해본 사람만이 그 과정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 그리고 그 결과로서의 성취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삶의 과정은 전체가 하나의 고리를 이루면서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얘기이다. 좌절 없는 삶, 있지도 않겠지만 만약 그렇다 한다면 그건 사람을 업신여기게 되어 외면으로야 겸손한 척 해도 사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게 되거나 또는 자만의 결과 인격 파탄의 길로 들어서는 길밖에 더 있겠는가.

 

60년을 통해 맛을 보는 사계절 24절기이다. 다만 사람에 따라 계절의 순서가 달리 찾아들 뿐이다. 한 해가 계절의 변화를 통해 아름답듯이 삶 또한 운명의 계절이 있어서 변화해가기에 아름답고 풍요로울 수 있다는 얘기이다.

 

사는 건 고생이지만 그 보상 또한 충분히 주어진다는 것이 오늘의 얘기였다.

자연 속의 모든 생명은 입하로서 가장 빈곤하나니 

 

 

어제 5월 5일은 어린이날이었고 아울러서 여름의 기운이 들어서는 立夏(입하)였다.

 

입하는 한 해를 나누는 24절기 중에서 여름을 알리는 절기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직은 늦봄이지 여름이 되었다고 여기진 않는다. 피부로 느끼는 여름, 즉 熱氣(열기)의 여름은 5월 20일의 小滿(소만)부터라 하겠다.

 

해마다 5월 초의 이맘 때 즉 입하 무렵은 한 해를 통틀어 자연이 가장 가난한 때이다. 자연만이 아니라 자연 속의 모든 생명들 역시 가장 빈곤한 때이다.

 

바깥을 내다보면 푸른 하늘 아래 신록이 나오고 새들이 힘차게 날아다니건만 어떤 이유로 가장 빈곤한 때라 하는가? 만물이 그야말로 싱싱하게 躍動(약동)하는 이 좋은 계절을 두고 가장 빈곤한 때라고 얘기하는 것은 실로 대단한 모순이자 역설로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입하 무렵에 자연은 가장 가난한 것은 사실이고 진실이다.

 

오늘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은 우리들의 일반적인 생각과 인식이 대단히 편향적이라는 것,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오늘의 얘기를 통해 알려드리기 위함이다.

 

(생각을 글로 쓰는 것은 말로 하는 것보다 열배는 힘들다. 말은 직관적으로 아무런 두서없이 꺼내도 듣는 이와 주고받는 가운데 의사를 전달할 수 있지만 글은 어떤 형식을 취하든 논리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글을 쓴다는 것은 사실 피곤한 일이지만 독자가 납득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얘기를 전개해보자.)

 

 

왜 입하 무렵에 모든 것이 가장 빈곤하고 가난한 것일까? 

 

 

예를 들어본다. 예컨대 나무가 가장 영양이 풍부하고 건강한 때는 11월 8일 경의 立冬(입동), 즉 겨울이 시작될 무렵이다.

 

이 무렵 나무는 여름내 광합성을 통해 만들어진 영양분의 축적이 최고조에 달한다. 뿐만 아니라 매달고 있던 나뭇잎 속에 남아있던 엽록소(일종의 자양분)를 몸속으로 다시 회수해버린 다음 낙엽으로 털어낸다, 이제 소용이 없으니.

 

따라서 나무 몸통 속의 자양분은 최고조에 달한다. 그래야만 겨우내 그간에 쌓아놓은 자양분을 가지고 내년 봄까지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겨울 동안 나무는 소비만 할 뿐 더 이상의 영양분을 생산하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그런 까닭으로 나무는 한 해 중에 입동 무렵, 낙엽이 질 무렵에 가장 건강하다.

 

그리고 겨울이 온다. 나무는 겨울잠에 든다. 최소한의 생리활동만 하면서 자양분을 조금씩 소비해간다. 다시 얘기지만 더 이상의 생산은 없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생산은 없고 소비만 하게 되는가? 하는 질문을 해온다면 그 답은 사실 아주 간단하다. 새 해가 되어 새 잎사귀를 만들어서 광합성을 시작할 때까지 생산은 없고 소비만 있다.

 

나무가 새 잎사귀를 만들어 광합성을 시작하는 때는 평균적으로 바로 입하 무렵, 바로 지금이다. 나무에 따라 벚나무와 같은 나무는 4월 중순부터 새 잎을 만들어 광합성 즉 생산에 들어가지만 평균적으로 나무들의 광합성이 시작되는 시기 즉 생산 활동이 시작되는 때는 지금 입하 무렵인 것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또 하나의 변수가 있다는 사실이다. 새 잎사귀, 우리들이 新綠(신록)이라 부르는 그 잎사귀들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그 역시 다량의 자양분을 지출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무가 새 잎사귀를 만들기 위해 자양분을 별도로 준비하기 시작하는 때는 2월 초순, 즉 새 해가 시작되는 입춘 무렵부터이다.

 

 

나무의 딜레마 

 

 

그렇기에 입춘 무렵이 되면 나무는 고민 또는 딜레마에 빠진다. 광합성을 통해 신규 생산을 하려면 5월 초순의 입하는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때까지 먹고 살 자양분이 이제 그다지 여유가 없다. 그럼에도 새 잎사귀를 만들어내려면 그 역시 다량의 자양분을 필요할 것이니 별도로 비축해야 한다. 일종의 신규 투자를 위한 자양분이 필요해진다.

 

따라서 입춘부터 나무는 새 잎을 만들기 위한 자양분도 필요하고 아울러 5월 초의 광합성을 시작할 때까지 소비할 자양분도 필요해진다.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느냐 하는 문제, 이미 그간에 축적된 자양분은 신규 투자는 고사하고 5월 초까지 먹고 살기에도 빠듯한 판국에 훗날의 생산을 위해 새 잎사귀를 만들어낼 별도의 자양분을 따로 남겨야 하는 어려운 문제인 것이다.

 

 

우리 인간 역시도 같은 딜레마를 안고 산다. 

 

 

이를 사람으로 바꾸어서 얘기해보자. 은퇴를 한 퇴직자가 있다고 하자. 퇴직을 했으니 퇴직금을 뭉칫돈으로 받았다고 하자. 퇴직자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일단 매달 생활에 들어갈 비용을 계산할 것이고 아울러 계속해서 소비만 할 순 없다는 생각에 작은 가게라도 하나 열어볼 생각도 할 것이다.

 

앞의 것은 일용할 양식인 것이고 뒤의 것은 투자용 자금이다. 투자할 자금을 크게 잡으면 매달의 생활비를 줄여야 할 것이고 그 반대로 하면 투자할 자금이 너무 적어서 다른 경쟁자에 비해 불리할 것이다.

 

전전긍긍 많은 고민을 거듭하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그냥 소비만 할 순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에 결심, 즉 가게를 하나 열기로 마음을 가져야 할 때가 온다. 앞으론 인생 100세라고 하는데 도저히 소비만으로 감당이 될 것 같지 않은 탓이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생각하지도 않던 비용 지출도 생기게 된다. 자녀 학비라든가 결혼에 따른 비용 같은 거 말이다. 그 바람에 당초 생각보다 자금이 더 줄어든다. 생활비도 더 아껴서 쓰는 마당에 이제 가게를 하나 열어야 한다고 결심하게 되면 그 당사자의 마음이 그 얼마나 떨리고 걱정이 클 것인가 말이다.

 

퇴직자의 고민이나 나무의 입장, 즉 새 해가 되어 새 잎사귀를 만들 자금과 함께 소득이 생길 때까지 먹고 살 자금을 동시에 생각하는 나무의 고민이나 하등의 차이가 없다.

 

게다가 처음부터 나중에 필요하게 될 투자 자금을 사전에 정확하게 계산해놓기도 어려울 것이고 이 정도 비용이면 되리라 여겼던 당초의 계산이 어긋날 확률도 크다는 사실이다. 그런 까닭에 정작 결심을 해야 할 시점이 되면 이도 저도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리게도 된다.

 

우리 인간이 그렇듯이 나무 또한 정확하게 계산해 놓고 겨울잠에 드는 것은 아니다. 겨울이 더 혹독하게 추울 경우 그를 견디기 위한 자양분의 소비나 비용이 더 많아질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입하로서 모든 생명체들은 치열하고 처절한 생존경쟁을 시작한다.  

 

 

立夏(입하)는 앞에서 예로 든 나무의 입장에서 이제 과감하게 신록을 매달아 놓고 생산에 들어가는 때이다. 혹시라도 인근의 나무가 가지를 더 높이 올려 잎사귀를 매다는 바람에 자신에게 떨어질 그야말로 피와도 같이 소중한 햇빛을 가로 챌 수도 있을 것이다. 나무들 역시 인근의 나무는 라이벌이다.

 

그렇기에 5월 5일의 입하는 그야말로 자연의 모든 생명들이 가장 궁핍한 상태에서 이판사판 승부수를 던지면서 치열한 생존경쟁에 본격 돌입하는 때라 보면 된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우리 사람들은 그저 5월은 푸르구나, 만물이 약동하는구나 하는 감상을 얻지만 알고 보면 치열한 삶의 게임, 생존경쟁이 바야흐로 요이땅-하고 시작하는 살벌한 계절이라 하겠다.

 

지금까지 나무를 예로 들어 얘기했지만 알고 보면 자연 속의 모든 생명들이 그렇다. 새들 역시 겨우내 단백질을 제대로 먹지 못해 몸이 허약한 때가 지금이다. 풀벌레가 나와서 돌아다녀야만 열심히 영양 섭취를 할 터인데 그 와중에 새들은 이맘 때 짝짓기까지 한다. 애도 낳고 키우면서 영양분을 스스로도 벌충하고 또 새끼들까지 먹여야 하니 새들 역시 대단히 고달픈 때, 죽기 아니면 살기의 때가 지금 입하 무렵이다.

 

몸매가 작아서 보기에 대단히 귀여운 물총새를 보자. 봄에 번식을 하는데 새끼들을 부양하기 위해 입하 무렵부터 애비 수컷은 하루에 50마리 정도의 작은 물고기를 사냥해온다고 한다. 하루 종일 아내가 새끼들을 지키고 있는 둥지로 50마리를 물어서 운반해야만 부부도 먹고 새끼들도 부양할 수 있다고 하니 그 얼마나 피곤한 물총새의 삶인가!

 

 

자연 속엔 평화가 없다. 

 

 

아름다운 숲을 바라보면서 우리들은 아, 자연은 참으로 평화스럽다는 찬탄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우리들의 관념일 뿐 그 숲속엔 나무와 풀들, 그곳에 서식하는 모든 생명들이 처절한 생존경쟁을 펼치고 있다. 자연은 절대 평화스럽지가 않다.

 

5월은 하늘이 푸르고 해가 길어지며 신록이 나오고 만물이 약동하는 계절이라 여긴다면 그건 우리들의 착각일 뿐, 5월로서 자연 속의 모든 것은 가장 빈곤하고 그렇기에 한 치도 양보 없는 치열한 생존경쟁을 시작한다.

 

60년에 걸친 운명의 순환에 있어서도 입춘 바닥으로부터 15년이 경과한 입하의 때가 되면 그 사람은 가장 빈곤하고 부실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살기 위해선 이를 악물고 또 다시 투쟁과 싸움에 나선다. 그렇지 않으면 도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헝그리 복서의 때라고 전에 얘기했다.

 

5월 초부터 여름이다. 활동하기 좋은 계절이 되었다. 달리 말하면 나가서 생산하고 또 싸우기 좋은 계절이 되었다. 생산이 바로 싸움이다. 5월부터 6개월간 그러니까 11월 초의 입동까지 각자는 각자만의 전쟁에 나서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홧팅! 해보자.

 

이처럼 나 호호당의 자연순환운명학은 일반의 생각과는 달리 逆說(역설)들로 가득하다. 마치 니체의 철학과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