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음악의 거장 세상을 떠나다.

 

 

영화음악의 거장인 엔니오 모리코네가 어제 6일 세상을 떠났다. 어린 시절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웨스턴 영화 “황야의 무법자” 를 보고 받았던 감동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특히 영화음악의 박진감 가득한 신비한 소리에 뻑 간 바 있다. 나중에 그 곡을 만든 이가 ‘엔니오 모리코네’란 특이한 이름의 이탈리아 음악가임을 알게 되었다.

 

유튜브에서 다시 들어보았다. 여전히 멋지다. 음악과 함께 말을 달리는 느낌이 여전히 환상적이다.

 

조금 더 얘기하면 2008년 김지운 감독의 여름의 흥행작인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란 영화는 황야의 무법자 시리즈 3편인 “석양의 무법자”란 영화의 원 제목을 그대로 따온 오마주란 점도 알려드린다. 내 개인적으로도 그 영화의 곡이 가장 압권이었단 생각이다. 여성 가수의 신비로운 소리가 사람을 전율시킨다.

 

국내 팬들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연이은 세부 영화 3편을 통해 모리코네란 이름을 뇌리에 새겼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사주를 통해 일생을 살펴보니

 

 

그러니 그의 사주를 한 번 살펴본다.

 

1928년 11월 10일 밤 10시 25분생이라 되어있다.

 

사주로 바꾸면 戊辰(무진)년 癸亥(계해)월 甲寅(갑인)일 乙亥(을해)시가 된다.

 

사주에 火氣(화기)가 없으니 그와 관련된 일을 하면 스스로 즐기고 열중하는 법, 영화는 오행 상 불의 기운이기에 음악을 해도 영화음악이 적성에 아주 잘 맞았다는 생각이 든다.

 

운세를 보면 甲午(갑오)년이 입추가 되는데 27세인 1954년과 87세인 2014년이 입추의 해였다.

 

아버지가 연주자였기에 일찍부터 음악과 접했던 모리코네는 1961년 秋分(추분) 무렵에 영화음악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추분은 그 사람의 재능과 역량이 현저하게 드러나는 때인 까닭이다.)

 

이어 그의 운세가 寒露(한로)에 이르자 드디어 황야의 무법자 시리즈의 음악을 맡아서 엄청난 흥행과 함께 명성을 날리게 되며 그 이후로도 무수히 많은 영화음악들을 작곡한다.

 

하지만 참으로 償(상)을 받는 복 즉 상복이 없었다. 예를 들면 아카데미 음악상의 경우 무려 5번이나 지명되었지만 상을 타진 못했고 훗날 2007년에야 명예음악상을 시상할 수 있었다. 이유는 그가 할리우드 사람들과 가깝지 않았기 때문이라 본다. 그는 죽을 때까지 이탈리아의 살던 동네를 떠나지 않았다. 아울러 그의 운으로 본다면 1984년 갑자년이 입춘 바닥이었기에 상복이 없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 해도 그가 영화음악의 귀재요 최고의 거장이란 사실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그저 할리우드와 친하지 않았을 뿐이다.

 

1984년이 운세의 바닥이었지만 그의 타고난 재능만은 꾸준히 변함이 없었다. 운세가 저조한 기간 중에도 영화 ‘미션’이라든가 ‘시네마 천국’ 등등에서 서정성 넘치는 대단히 아름다운 곡을 꾸준히 선보였기에 천재이자 거장이란 평을 할 수 있다.

 

내 발로 걸을 수 있어야 사는 맛이 있는 법이니 

 

 

그는 2014년으로서 또 한 번의 입추를 맞이했는데 그만 올해 그만 대퇴골 골절상을 당한 것이 그만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91년과 8개월의 一期(일기)였으니 노화로 인한 사망이라 봐도 되겠다. (연세 많으신 분들이 대퇴골 부상을 입으면 대부분 그로 인해 돌아가신다.)

 

오래 사는 것 물론 좋지만 그 역시 자신의 두 발로 걸을 수 있을 때의 얘기이다. 이른바 運身(운신), 즉 내 몸을 내 생각대로 움직일 수 있느냐 여부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란 얘기이다. 엉덩이 근육과 허벅지 근육.

 

 

사람의 운세를 파악하는 것은 나 호호당에겐 아주 간단한 일이지만

 

 

나 호호당은 생년월일시만 알아서 사주를 뽑고 나면 3초 정도면 그 사람의 평생 운세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자연순환운명학을 연구해오는 과정에서 위키와 구글을 통해 지금까지 아마도 12만 명 정도의 사주를 그 사람의 프로필과 대조하면서 분석해왔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사람의 60년 순환에 있어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입춘 연도만 알 것 같으면 나머진 24절기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 즉 운의 변화를 추단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그런 글을 쓰다 보니 가끔 독자들 중에는 자신의 입춘이 언제인가를 알고 싶다는 요청 메일이 오곤 한다.

 

그런 요청에 대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응하지 않는다. 입춘 연도만 알면 전체 운을 알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독자가 하기 때문인 것 같은데 실은 24절기에 따라 나타나는 변화를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입춘 연도만 아는 것은 도움이 전혀 되지 않거나 더러는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기에 그렇다.

 

 

알고 보면 평생 고생이 따르는 것이 삶일진대

 

 

삶의 과정을 냉정히 분석해보면 끊임없는 고생이다. 운이 상승한다는 것을 달리 표현하면 생산을 하고 있다는 말이고, 운이 하락한다는 것을 달리 표현하면 생산이 끝나고 이제 쉬는 때라 보면 아주 정확하다.

 

그런데 생산이란 것은 당연히 수고가 곁들여져야 하는 것이기에 고단함이 수반된다. 생산이 끝나고 쉬게 되면 수확의 기쁨은 잠시인 것이고 그 이후론 허허롭고 재미가 없으니 그 또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니 사실 삶의 전체 과정 자체가 고생인 것이다.

 

가령 우리나라 역시 그렇다. 2012년으로서 국운의 생산이 사이클이 종료되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도 잘 사는 나라가 된 것은 분명한데 미래가 불투명해졌고 특히 젊은이들의 좋은 일자리가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먹고 사는 것은 해결이 된 것도 같은데 장차의 희망이나 비전이 별로 없고 인구는 줄어들고 있다. 운의 하락 과정인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우리나라가 생산 사이클에 있을 때엔 즐거웠을까 하고 회고해보자. 1982년부터 본격 생산 사이클로 접어든 우리나라였는데 도중에 무수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성장해왔다. 어려운 일이 많았으니 그 역시 힘들었다.

 

 

운세만 안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닌 까닭

 

 

그렇기에 상담을 통해 나 호호당이 오신 분에게 알려드리고 도움을 드리고자 하는 것은 운의 흐름도 중요하지만 30개월씩 즉 24개의 단계에 걸쳐 변화해가는 60년 순환에 있어 저마다의 타고난 성격 특성에 따라 앞으로 있을 수 있는 위기에 대해 미연에 방지하도록 하기 위해 나름의 충고를 드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 여긴다.

 

특히 이제 물러날 때인지 아니면 어려워도 용기를 내어 과감하게 앞으로 나아갈 때인지, 인생 전체에 걸친 진퇴의 시기와 그 원인에 대해 얘기해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충격을 받고 맥이 풀려서 

 

 

그런데 충격적인 일이 발생했다.

 

글 쓰는 도중, 새벽 1시 경에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 박원순 시장이 숨진 채 발견되었다고 하는 놀라운 뉴스를 접했다. 많이 놀라게 된다, 충격이다. 짐작컨대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 분의 생년월일이 호적과 다르고 또 음력 양력 여부를 정확히 모르고 있기에 함부로 말하진 않겠다.

 

다만 한 가지 생각이 들긴 한다. 현 정권의 주요 인사들 상당수가 그다지 좋지 못한 일에 휘말려서 어려움에 처하고 있다는 점이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시작으로 해서 그렇다. 이러다가 자칫 서울시장과 경기도 지사, 경상남도 지사, 부산시장의 자리를 놓고 일제히 보궐선거를 치러야 할 참이다.

 

글을 쓰다가 생각을 돌려 왜 갑자기 이런 일이 빈번할까? 하는 쪽으로 생각이 가다 보니 갑자기 맥이 풀린다. 그냥 전체를 삭제해버릴까 잠시 생각하다가 그냥 올리기로 한다. 오늘 글은 그런 면에서 미완의 글이라 하겠다.

참으로 없던 일이 벌어졌으니 

 

 

외국인들이 주식을 사지 않는데 개미들의 매수에 힘입어 증시가 많이 올랐다. 종전에 없던 일이다. 우리 증시는 외국인이 사면 오르고 팔면 내리는 것이 거의 20년 동안 이어져온 양상인데 이번 코로나19 이후의 증시 양상은 정반대이다.

 

외국인들은 연일 팔았고 기관들은 중립 코너인데 개인 매수세에 힘입어 코로나19 직전인 2월의 주가수준으로 회복되었으니 종전에 없던 일이고 한편으론 기이한 일이다. 그러자 나름 경제채널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소위 증권 전문가란 사람들이 이를 두고 ‘동학개미운동’이라 부추기고 나섰다.

 

아무튼 외국인은 여전히 주식을 매수하지 않고 있다. 사지 않다 보니 원/달러 역시 1200원 이상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외국인 자금이 국내로 들어와야만 달러가 약세로 갈 터인데 매수는커녕 매도하고 있으니 그럴 수가 없다.

 

현재 상황은 미국 연준이 미국 국채를 매입하는 형식으로 달러를 풀고 있다. 그러자 글로벌 유동성들은 가장 안전한 미국 국채 매입으로 몰려가면서 달러가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 달러를 많이 푸는 데도 불구하고 그러니 아이러니이다. 하지만 결국 이런 현상은 향후 글로벌 경제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라 하겠다. 글로벌 경제가 불안하면 안전 자산인 달러라든가 미국 국채에 대한 수요가 커진다.

 

 

고민이 깊어가는 동학 개미들

 

 

그렇다 치고 최근 일반 투자자들 즉 동학개미들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개미들의 매수세만으로는 앞으로 증시가 계속 상승할 것 같진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쯤에서 그간에 매수했던 주식을 팔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그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눈앞의 증시가 하락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고 더 결정적인 점은 이제부터라도 그간에 매도로 일관했던 외국인들이 매수세로 돌아서면 그야말로 지금부터 증시가 더욱 오를 수 있다는 기대감을 저버릴 수 없다는 점이 있다.

 

그간에 이른바 V자 형태의 반등을 보였으니 이젠 슬슬 이익을 취할 때가 된 것도 같고 또 이제 더 오르기가 쉽지 않다는 점 누구나 생각하면서도 반대로 외국인들이 본격 매수에 나설 경우 전혀 다른 얘기가 된다는 점이다.

 

지금부터 외국인 매수세가 돌아온다면 지금 팔아치우는 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수익 기회를 날리는 바보짓이 될 것이니 지금의 상황에 대해 개미 투자자들은 팔기도 그렇고 또 사기도 그런 애매한 형국에 처해 있다. 즉 간을 보고 있다.

 

이게 바로 최근 우리 개미들의 고민이다.

 

 

고민하는 개미들을 위한 힌트 또는 조언

 

 

그렇기에 오늘은 바로 이런 개미들의 고민에 대해 힌트가 될 수 있는 얘기를 하나 해드릴까 한다.

 

나 호호당은 1985년부터 증시를 해왔다. 35년 경력이니 적은 세월이 아니다. 그간에 벌기도 했고 잃기도 했다. 외국인들이 우리 증시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992년부터이니 이제 28년이 되었다.

 

그간 지켜본 바에 따르면 기관도 그렇지만 외국인 투자자들 역시 개인이 아니라 시장에서 이골이 난 ‘꾼’들이란 점이다. 그런데 꾼이 괜히 꾼이겠는가? 주식에서 돈을 벌려면 쌀 때 사서 비싸게 팔아야 하는 법인데 이제 증시가 회복될 만큼 회복된 시점에서 그냥 단순하게 주식을 사들인다? 만일 그럴 것 같으면 그건 정말이지 꾼의 자격이 없다.

 

지금 시장상황은 2월말부터 외국인들이 지금까지 20조원 이상에 걸쳐 거의 줄곧 주식을 매도했는데 그걸 가격이 다시 2월말 시점까지 회복한 현 시점에서 그냥 비싸게 사주겠느냐 하는 얘기이다.

 

2200 포인트에서 1440포인트까지 팔았으니 단순평균해서 1820포인트 정도에서 팔아치운 주식을 이제 2150포인트 선부터 다시 채우고자 한다면 사는 과정에서 주가가 오를 것이다. 이에 가령 2500까지 오른다 하면 그들의 평균 매수단가는 낮게 잡아도 2300포인트 정도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1820에서 판 주식을 2300에서 다시 산다면 무려 26%나 비싸게 되사는 꼴이니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손해가 될 것이고 그들이 손해를 본만큼 동학개미들에게 그만큼의 수익을 안겨준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니 시장에서 이골이 난 그 꾼들이 그런 멍청한 짓을 하겠느냐는 얘기이다. 그렇다면 그건 꾼의 자격이 없다. 오랜 기간 동안 나 호호당이 지켜본 바에 의하면 그들은 어쨌거나 쌀 때 사더라는 점이고 오른 다음에 팔았다는 점이다. 이 점 하나만큼은 불변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환경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

 

 

이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그간에 팔아치운 주식을 다시 채우려 할 것 같으면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다. 일단 이제부터라도 서서히 매수 환경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 들어갈 것이라 본다.

 

우리 기관을 포함해서 외국인들이 바라는 매수환경이란 결국 증시가 또 다시 하락했을 때 조성이 된다. 그냥 이 가격대에서 단순하게 사들인다는 것은 동학개미들만 즐겁게 해주는 결과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이 무서운 것은 그들은 의도적으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외국인들은 우리 증시를 올리고자 할 것 같으면 국내외 매체를 통해 우리 경제나 증시에 우호적인 뉴스를 흘리도록 할 수 있고 그 반대로 내리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나쁜 뉴스를 만들어내고 유통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 뉴스는 겉으로 보기에 전문가들의 분석과 평가를 통해 만들어지기에 높은 개연성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그 역시 큰 그림에서 보면 하나의 거대한 작전이고 조작이라 봐도 절대 무방하다.

 

 

핑계야 만들어내기 나름인 것이니 

 

 

최근 수급이 펀더멘털을 앞서고 있기에 기업들의 실적보다 주가가 더 높이 올랐다는 말들을 한다. 수급에 앞서는 재료 없다는 말이 그것이다. 하지만 외국인들이 저들의 매수 시점을 만들기 위해 정말이지 글로벌 전체적으로 소식을 만들어내고 또 풍부한 자금력을 통해 선물매도나 여타 방법을 동원할 것 같으면 얼마든지 그럴 듯한 이론 또는 설득력 있는 여론 조성을 해낼 수 있다.

 

이에 주가가 내리고 나면 역시 주가는 펀더멘털을 따라간다는 말을 할 것이고 개인들 즉 개미들이 다 팔고 나가면 또 다시 다른 핑계를 만들어내면서 서서히 조심스럽게 주가를 올려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외국인들이고 이에 그 눈치를 차리고 동조에 나서면서 동반 매수에 나서는 것이 국내 기관 투자자들이다.

 

그들이 매수하는 동안엔 절대 좋은 뉴스나 소식 같은 것은 나오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매수하다가도 다시 악재를 만들어서라도 대거 팔아 치우고 우리 시장에서 떠날 것 같은 시늉을 내는 등 다양한 심리 작전을 반복하면서 끌어올리기에 개미들은 섣불리 매수에 나서지 못한다.

 

 

결국 고급 야바위꾼이라는 점 

 

 

겁을 줘서 싸게 사고 비위를 맞추면서 비싸게 팔아 수익을 챙긴다. 결국은 이게 바로 나 호호당이 1992년부터 지켜온 바의 외국인 투자자들의 방식이다. 좋게 말해서 꾼이고 나쁘게 말하면 고급 야바위꾼들이다.

 

그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요 경제를 분석하는 능력이 그다지 탁월한 것도 아니다. 다만 그들은 글로벌 전체를 움직여가는 미국 증시와 연결되어 있고 국제적인 경제 연구소들로부터 보다 빠른 정보를 입수할 수 있으며 아울러 매체를 글로벌 차원에서 조작 혹은 조종할 수 있는 능력, 여기에 풍부한 자금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우리 증시에서 그동안 수익을 낼 수 있었다는 것은 결국 우리 증시에 참가하는 개미들의 돈을 우려내고 앗아내었다는 말과 전혀 차이가 없다.

 

 

당장은 동학 개미들이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 같지만 

 

 

당장은 동학 개미들이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 같은 상황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외국인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어떤 계기를 만들어서 또 다시 칼자루를 되찾아갈 수 있는 궁리를 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좀 더 부연하면 그들이 코로나19로 인해 암울한 뉴스가 마구 나올 때 거침없이 주식을 팔아 치웠다는 것은 그 주식을 나중에 얼마든지 채워 넣을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그래서 마치 바보처럼 근 석 달에 걸쳐 기계적으로 팔아치울 수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당장은 싸게 팔지만 나중에 얼마든지 그 가격보다 더 저렴하게 매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외국인들이라 봐도 무방하다는 말이다.

 

그런 까닭에 올 하반기 증시는 상승할 가능성보다는 거꾸로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이유는 경제적 전망이 하반기에 부정적이라거나 기타 수많은 지수나 변수들을 예측해서가 아니라 외국인 그들이 그간에 싸게 팔아치운 주식을 매도한 가격 또는 그보다 더 저렴하게 매수할 수 있는 환경을 그들이 만들어낼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개미가 중시에서 수익을 올리는 방법이란 

 

 

일반 개미 투자자들이 증시에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볼 때 세 가지 길이 있다고 여긴다.

 

첫째는 정상적인 성장주나 대형주를 본인의 실력으로 샀든 운으로 매수했든 어쨌거나 좀 수익이 났다 싶으면 팔고 빠져나오는 방법이다. 꾹 참고 들고 간다? 그게 참으로 어렵다.

 

둘째로 주변 개미들의 행동이나 생각과는 철저하게 정반대로 행동하면서 때를 기다리고 기회를 엿보는 방법인데 이게 바로 개인 고수들의 영역이다.

 

마지막으로 외국인들이나 기관이 잘 쳐다보지 않는 마이너리그의 소형주나 작전주를 잘 연구해서 개미들끼리 치고받으면서 수익을 올리는 방법이다. 경력이 있는 개미들은 이쪽에 능하다고 봐도 큰 무리가 없다.

 

(코로나 때문에 수강 신청에 아직 여유가 있다는 점 알려드린다. 크게 무리가 없는 갖춘 강의장 환경이란 점 다시 한 번 알려드린다.)

강의 중에 나온 질문

 

 

토요일 강의 중에 한 분이 질문을 했다. 삶에는 60년에 걸쳐 1년 사계절 24절기와 같은 운의 변화와 흐름이 있다는 것은 알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운에 따라 어떻게 사는 것이 좋겠느냐는 질문이었다.

 

12회에 걸친 기초 강좌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라 그 분의 질문은 무척이나 적절했다. 살아가면서 자신의 운을 모르고 있다면 헷갈릴 수도 있고 더러 실수도 할 수 있겠지만 강좌를 통해 60년에 걸쳐 운의 변화가 있다는 것을 이해했고 나아가서 본인이 처한 운세가 지금 어떠한지 알았다면 그에 맞추어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겠느냐는 질문이었으니 참 적절한 질문이었다.

 

 

내 님의 사랑이 철따라 흘러가듯이 

 

 

기분이 좋아진 나는 미소와 함께 답변을 하기 시작했다.

 

“내 님의 사랑은 철따라 흘러간다”, 뭐 그런 노래가 있지요. (곡명은 “내 님의 사랑은”이고 양희은 씨가 불렀던 노래로 기억한다.) 그처럼 철따라 살면 됩니다, 하고 답변했다.

 

그러면 철따라 산다는 것이 어떻게 사는 것인지에 대해 얘기를 하면 되겠네요, 하는 말로 운을 떼고 이어서 설명을 시작했다.

 

철이란 말은 원래 24절기할 때의 절기를 줄여서 절이라 하고 다시 그를 철로 바꿔 쓰는 말이다. 철은 節氣(절기)의 節(절)인 것이다.

 

 

철들라는 말

 

 

어려서 공부 열심히 하지 않고 노는 데만 열중하는 아이에게 흔히 부모님들이 야, 너 철 좀 들어라 하는 말, 들어보셨을 것이다. 철이 든다는 말을 국어사전에선 “사리를 분별하여 판단할 줄 알게 되다”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사실 “철들다”는 말의 意譯(의역)이다.

 

철이 든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가을이 되면 가을에 맞추어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말이다. 물론 겨울이 되면 겨울에 맞게끔 산다는 뜻이 되겠다.

 

그런데 사실 부모님들의 철들라고 하는 주문은 계절 중에서도 유독 가을철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바람이다. 하지만 그건 사실 부모님들의 욕심이다.

 

 

철들라는 말 또한 부모님들의 과한 바람이어서 

 

 

한 해 사계절 중에 가을은 날씨도 선선해서 지내기 좋고 동시에 결실의 계절이어서 가장 풍요로운 때이다. 따라서 부모님들이 자녀에게 철들라고 요구하는 그 말은 사계절 중에서 가을철처럼 결실을 거두는 사람이 되라는 말, 뭐든 자신의 할 일은 야무지게 챙기면서 내실 있게 사는 사람이 되어달라는 말, 즉 성숙한 사람이 되어달라는 말이라 하겠다. 그렇기에 그건 다분히 부모님들의 욕심인 것이다.

 

 

철 없이 지내는 것 또한 실은 철따라 사는 것이기에 

 

 

알다시피 한 해엔 사계절이 있는 것이니 자녀가 때론 힘든 봄철의 모습을 보일 때도 있을 것이고 때론 욕심 등등한 여름철의 모습, 그리고 가을을 지나 겨울처럼 내성적이고 사색적인 모습을 보일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계절 중에 가장 영양가가 높은 가을철만 주문한다는 것은 좋게 말해서 바람이고 노골적으로 말하면 욕심인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아이가 장난기도 별로 없고 덤벙대지도 않으며 그저 생각이 깊은 말이나 행동을 주로 한다고 하자. 이 경우 사람들은 저 애는 애어른 같다는 표현을 쓴다. 하는 짓이나 생각이 어른 같은 아이를 일러서 하는 말이다.

 

그런 경우 그 아이의 사주를 보지 않아도 운세가 겨울이라 판단해도 거의 틀림이 없다. 그건 겨울의 모습인 것이다. 물론 타고난 성격이 그런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 아이의 운세 변화가 60년에 걸쳐 사색하는 계절인 겨울을 보내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 대목에서 어떤 아이가 학교에서 말썽만 부리고 더러 싸움박질을 자주 해서 문제아가 된다거나 반대로 왕따가 되어 지내고 있다면 그런 아이들은 운세가 바닥 또는 봄을 지내고 있다면 그야말로 정확하다. 15년에 걸친 봄.

 

그리고 어떤 아이가 의욕 혹은 욕심도 많고 열심히 하면서 전투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그 아이는 15년에 걸친 여름을 보내고 있다고 보면 그 역시 정확하다. 또 아이가 성적도 좋고 총명해서 좋은 학교에 진학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면 그 아이는 현재 결실의 계절인 가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더 얘기하면 어려선 공부도 잘하고 똑똑했는데 이상하게 고등학교 진학하면서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면 그 아이는 가을을 지나 운이 겨울로 접어든 셈이다.)

 

그런가 하면 중학교까진 열심히 하긴 해도 성적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는데 고등학교 가면서 더 발전해서 좋은 대학이나 또는 좋은 직장에 들어갔다면 그 학생은 이제 가을로 접어든 것이다.

 

 

사람을 판단하려면 삶 전체를 보고난 뒤에 

 

 

이처럼 사람은 타고난 능력과 성격도 있지만 운의 변화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가령 학교 시절엔 영 아니었는데 사회 진출 후 크게 성공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 역시 중년에 운이 가을을 맞이한 사람이라 보면 정확하다. 그렇기에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제대로 알기 위해선 그 사람의 전체 삶을 지켜보아야 한다. 이 모두 실은 운의 작용 때문이라 하겠다.

이제 원래의 질문으로 되돌아가보자.

 

 

자신의 처한 운을 알고 있다면 그건 네비를 장착한 것과 같아서 

 

 

스스로 처한 운을 알고 있다면 그건 삶의 항해 지도 또는 네비게이션 컴퓨터, 줄여서 ‘네비’를 장착한 것과 같아서 실로 큰 효용가치가 있다 하겠다.

 

어떤 이유로 크나큰 효용가치가 있는가? 하면 운의 계절과 철에 맞추어 살 것 같으면 인생의 큰 좌절이나 실패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쉬운 일만은 아닌 것이 사람에겐 젊은 시절 남성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기에 자칫 지나치거나 과격하기 쉬운 탓이다.

 

 

알고 보면 호운도 없고 악운도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운이란 것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고 또 그런 까닭에 好運(호운)과 惡運(악운)을 얘기하지만 실은 그런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악운이란 것은 그 사람의 운 즉 철에 맞지 않는 생각이나 행동을 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런 것이 있다고 여기는 것에 불과하다. 운이 한 여름이면 상황이나 환경이 힘들어도 과감하게 앞으로 나아가면 성공할 것이요, 아무리 객관적으로 좋은 상황일지라도 운이 한 겨울이면 반대로 처참하게 실패하게 될 것이다.

 

스스로의 운을 알아서 지금 운이 봄이라면 준비하는 때이기에 미래를 보면서 힘을 기를 때인 것이고 여름이라면 용기를 내어 힘껏 원하는 바를 향해 과감하게 전진해야 한다, 운이 가을이라면 모든 일이 생각보다 쉽게 이루어질 것이요 겨울이라면 그간의 성취를 되돌아보면서 이젠 여유롭게 쉴 때인 것이다.

 

 

운을 알 것 같으면 삶의 운행지도를 얻은 셈이라서 

 

 

이처럼 60년에 걸친 운의 사계절만 알아도 이처럼 잘 대처를 할 수 있을 것이니 그를 24개의 단계 즉 24절기까지 사전에 미리 알고 있다면 사실 상세한 삶의 운행지도를 얻은 것과 같다.

 

역사상의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때 즉 운을 잘못 판단하는 바람에 비극으로 끝나거나 실패로 생을 마쳤다.

 

 

운을 모르는 탓에 자초한 비극

 

 

이에 간단하게 예를 하나 들어보자. 천하영웅이자 상승의 장군 나폴레옹은 1812년에 60만 대군을 휘몰아 러시아 원정을 떠났다가 무참하게 실패했다. 당시 나폴레옹의 운은 해마다 11월 하순이면 찾아드는 小雪(소설)의 운이었다. 그 바람에 그는 퇴위하게 되고 지중해의 엘바 섬으로 귀양을 가야 했다.

 

그런데 그 시점에서 만일 나폴레옹이 자신의 운을 알아서 현실을 받아들였다면 사실 그 이후 오래 살면서 유럽 사교계의 명사로서 즐겁게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말이 귀양이지 한때 적대국이었던 유럽 강국들은 나름으로 나폴레옹의 위신과 명성을 인정해주었기에 작은 섬 엘바 섬에서나마 왕으로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처지를 인정할 수 없었고 그 바람에 섬을 탈출해서 또 다시 풍운을 일으켰다. 이때가 1815년, 당시 그의 운은 12월 초의 大雪(대설)이었다. 대설의 운이면 이제 겨울이 본격화되었으니 마음을 편히 먹고 지난 날을 회상하면서 지냈으면 아무 탈도 없었을 것을 그만 참지 못하고 일을 치고 말았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워털루에서 비참하게 패배하고 말았다. 이에 다시는 유럽으로 돌아올 수 없는 남대서양의 절해고도로 떠나야 했고 그곳에서 철저한 감시를 받으며 우울하게 살다가 6년 뒤인 1821년 병에 걸려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지위도 명예도 집안도 그리고 몸도 다 망치고 말았던 것이다.

 

만일 그가 자신의 처한 운을 알았더라면 능히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 여긴다.

 

 

운에 맞추어, 철에 맞추어 살면 가장 잘 살 수 있다는 얘기

 

 

그런데 이는 비단 영웅호걸들만의 얘기가 아니란 점이다. 보통 사람의 삶도 본질적으론 전혀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운세 변화를 알 것 같으면 운에 맞추어 살면 된다. 운에 맞추어 산다는 것은 운명의 주어진 철에 따라 살면 된다는 얘기와 같다.

 

우리 모두 철따라 흘러갈 수 있다면 바로 그게 가장 잘 사는 것이란 점을 얘기하고 싶어서 오늘의 글을 썼다.

찰나간에 생멸하는 세상

 

 

찰나란 말이 있다. 한자론 刹那이고 고대 인도의 ‘ksana’라고 하는 시간 단위를 한자음으로 표현한 것이다. (발음은 ‘크싸나’가 아니라 ‘싸나’라고 더 가깝다.)

 

찰나는 고대 인도에서 가장 짧은 시간 단위로서 지금의 시간으로 바꾸면 1초의 75분의 1일, 즉 0.013초가 된다.

 

刹那三世(찰나삼세)란 말도 있다. 현재의 찰나를 현세(現世)로 하고 그 앞뒤의 찰나를 각각 과거세(過去世)와 미래세(未來世)로 해서 삼세란 것이다. 다시 얘기하면 0.013초 전이 과거, 지금 0.013초가 흐르는 시간이 현재이며 그 다음 0.013초 뒤가 미래란 것이다.

 

가령 당신의 과거는 어떠했나요? 하고 물으면 0.013초 찰나 전의 과거 말인가요? 하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웃긴다.

 

힌두 철학에 바탕을 둔 불교 철학에선 刹那生滅(찰나생멸)이란 말도 한다. 매 찰나, 즉 0.013초마다 생겨나고 사라지고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존재 역시 늘 그대로 있는 것 같지만 매 찰나마다 사라지고 생겨나고를 반복하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無常(무상)속에서 치열하게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 

 

 

그다지 틀린 말도 아닌 것이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들은 생각보다 빨리 죽고 태어나고를 반복하면서 교체된다. 간세포나 혈액 세포는 150일이면 싹 다 바뀌고 피부의 세포는 2-4주면 다 교체되며 허파를 이루는 세포들은 1년이면 모두 갱신된다고 한다. 심장이나 뇌의 세포들은 갱신되지 않지만 그를 이루는 단백질 단위에선 끊임없이 바뀌고 있다. 우리는 매 순간 바뀌고 있는 것이다.

 

다만 우리의 뇌는 부단히 변하는 우리 스스로를 동일한 개체로서 통합시켜 가고 있기에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동일한 존재로 만들어준다.

 

하지만 실은 모든 것이 늘 사라지고 늘 생겨나기에 일정하고 恒常(항상)된 것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니 그를 불교에선 無常(무상)이라 한다.

 

 

시간은 상대적이어서 

 

 

시간, 즉 때의 간격은 대단히 상대적이다. 그렇기에 힌두 철학에서 말하는 대단히 긴 시간, 거의 영원과도 같은 시간을 永劫(영겁)이라 하지만 그 또한 보다 더 긴 시간에 비하면 찰나일 수도 있다.

 

1劫(겁)의 시간은 43억 2천만년인데 이건 우주의 창조신인 브라흐마에게 있어 하루라고 한다. 브라흐마가 하루를 보내면 43억 2천만 년이 흐르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재미있는 계산을 해볼 수 있다.

 

사람의 하루는 86,400 초이고 브라흐마의 하루 즉 1겁은 43억 2천만 년이다.

 

우리가 하루를 보내면서 느끼는 감각을 브라흐마가 하루인 43억 2천만년을 보내면서 느끼는 감각과 같다고 가정하면 창조신인 브라흐마에게 1초는 우리에게 무려 5만 년과 같다. 5만년을 1초로 느끼는 브라흐마에게 있어 1찰나는 우리에게 666년이 된다. 그러니 그 사이에 생겨나고 사라지고가 무수히 가능해진다.

 

 

우리를 좌절케 하는 힌두 철학

 

 

힌두 철학은 우리로 하여금 좌절케 한다. 본래 의도부터가 그런 것 같다. 우리가 살면서 중요시하는 그 어떤 것도 실은 아무 것도 아니고 찰나의 일도 아닌 그저 허망한 찰나 안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생멸의 일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해준다.

 

우리에겐 나름 길고 긴 인생, 그래서 인생길이라 우리들이 부르는 삶 전체가 창조신인 브라흐마에겐 1 찰나의 시간도 되지 않는다니 말이다. 기껏 100년도 살지 못하는 네가 잘 살든 못 살든 내겐 아무런 의미도 없단다, 라고 브라흐마가 말하는 것 같지 않은가.

 

고대 인디아의 사상과 철학, 즉 힌두 철학이 이처럼 엄청난 규모의 숫자와 시간을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제로 즉 零(영)을 일찍부터 사용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렇기에 힌두 철학에 있어 劫(겁)이란 시간 단위 역시 가장 큰 수가 아니었다.

 

1겁이 43억2천만년인데 그래봐야 4.32 곱하기 10의 9 제곱에 불과하다. 힌두 철학의 가장 큰 수인 無量大數(무량대수)는 10 뒤에 제로를 무려 68개나 붙이는 수, 10의 68제곱수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1920년에 와서야 미국의 한 수학자, 정확히 말하면 그 수학자의 9살 난 조카에 의해 10의 백 제곱이 되는 수인 구골(googol)이 만들어졌다. 참고로 미국의 인터넷 검색엔진 업체 구글(Google)은 처음에 구골(Googol)로 등록하려던 것이 실수로 잘못 표기한 탓에 그렇게 되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 찰나의 연속이지만 어떤 존재에겐 영겁과도 같은 시간일 수 있으리라. 우주의 창조신인 브라흐마에게 하루가 우리에겐 43억 2천만년인 것처럼 말이다.

 

 

시간, 절대적이면서 상대적인 것

 

 

강아지들과 살다보니 때론 관찰하게 된다. 우리 막내 강아지 ‘바리’는 밤이 되면 형이 귀가하기를 기다리며 현관 앞을 마냥 지키고 있다. 저 놈에게 기다리는 그 시간이 꽤나 길게 느껴질 터인데 어쩜 저렇게 하염없이 꼼짝도 않고 기다리고 있을까나? 참 신기하기도 하다는 생각을 한다. 개는 수명이 사람보다 훨씬 짧기에 1시간의 느낌이 우리 인간보다 훨씬 더 길게 느껴질 법도 한데 말이다. 개는 인내심이 강하다. 그만큼 멍청하기도 하다.

 

어린 초등학교 시절 매일 아침마다의 조회 시간, 교장 선생님의 말씀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가을 학기 개학하는 날, 학교로 향하면서 겨울 방학은 영겁 저편에 있는 것 같은 암울함 또는 절망감을 느낀 기억도 선명하다. 주말의 토요일과 일요일은 너무나도 짧고 주중의 날들은 왜 그리도 길기만 하던지.

 

시간이란 그렇기에 실로 묘한 놈이다.

 

간절하게 소식을 기다리는 자에게 一刻(일각), 15분의 시간이 三秋(삼추), 3년이란 말도 맞는 말이고 보고픈 연인을 저녁에 만나 사랑을 나누며 새벽을 맞이한 커플에게 그 하룻밤의 시간은 一刻(일각)일 것이다.

 

살다가 힘든 고비를 만나 힘들 땐 1년이 천년 같아서 이 세월 어서 가라 하는 말과 생각을 무수히 되뇐다. 사실이다. 반대로 영화의 세월은 10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래서 시간은 절대적이면서 상대적이다. 시간의 길이와 간격은 대단히 정확하게 측정될 수 있는 물리학의 단위이지만 우리의 시간에 대한 감각은 지극히 상대적이기에 그렇다.

 

 

나 호호당은 시간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나 호호당은 운명을 연구해온 사람이고 따라서 시간을 연구해온 사람이기도 하다. 그 사람이 처한 자연순환의 週期(주기)에 따라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상황을 알려주고 있다.

 

내가 중요하게 살피고 내다보는 주기는 60년 간격이다. 왜냐면 우리의 삶이 대략 85년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론 며칠이 중요할 때도 있기에 60일 간격의 주기를 살피기도 하고 때론 60개월의 주기에 따라 일을 살피기도 한다. 나라의 경우 60년보다 때론 360년의 주기가 더 중요할 때도 있다.

 

하지만 週期(주기)라든가 시간의 길이는 그다지 중요하지가 않다. 시간은 절대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현재 극심한 고생을 겪고 있는 이에게 장차 15년만 지나면 많이 편안해 지리라고 답변해줄 때도 있다. 이에 상대방은 15년이라고요? 그땐 다 살았을 터인데 그 때가서 편안해지면 뭘 해요! 하고 어이가 없다는 식으로 되묻는 이도 있다.

 

그런 상대를 보면서 난 속으로 그래봐야 한 계절 지나가는 것에 불과한데요, 하는 생각을 한다. 60년 순환을 사계절로 하면 15년은 한 계절이 된다. 또 그 15년은 666년을 1 찰나로 느끼는 절대자 브라흐마에게 있어 시간이라 할 것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여름날 저녁 하루살이를 바라보면서 때로 측은함을 느끼기도 한다. 정말 이슬과도 같은 삶이니. 그런데 우리의 삶, 길어야 100년의 삶은 브라흐마에게 있어 하루는커녕 1찰나의 1/6도 채 되지 않는다, 우리를 보면서 브라흐마가 측은함을 느끼기라도 할까?

 

눈앞의 시간이 너무나 힘들어서 암울할 때도 있다. 살다보면 그럴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힘든 시간의 暴壓(폭압)으로부터 견디게 해주고 또 맞설 수 있게 하는 강력한 무기가 있다.

 

 

망각, 시간에 맞설 수 있게 하는 강력한 무기

 

 

그 무기는 바로 忘却(망각)이다.

 

망각이란 개인의 장기 기억에 저축한 지식이나 정보를 상실하는 것이다. 오래 전의 일일수록 기억을 더 급속도로 많이 상실한다고 한다. 망각은 사실 우리를 편안하게 해준다. 삶에서의 마찰과 실패, 갈등과 같은 스트레스들을 지워주기 때문이다. “세월이 약”이란 말이 바로 그 말이다. 실연한 후 오래 되면 그 상처도 잊히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런 까닭에 제 아무리 힘든 시간도 삶도 살다보면 살아진다.

 

올 해로서 만 65세가 된 나 호호당이 살아온 모든 생을 뒤돌아볼 것 같으면 순간에 지나쳐간다. 65년의 세월이 순간처럼 느껴진다. 물리적인 시간은 분명 65년이었을 것이고 그 사이에 힘든 시간과 괴로운 세월들도 많았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 모두가 한 순간의 일처럼 느껴진다. 이 역시 우리 뇌가 가진 능력인 忘却(망각)의 효과 때문이다.

 

장수한 사람이 임종을 앞두고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돌이켜보니 잘 살아온 것 같다는 말. 하지만 그 역시 망각의 덕분이다. 긴 인생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스트레스와 좌절 또한 적지 않았을 터인데 그게 다 잊히고 망각되었기에 그런 회고를 한다고 본다.

 

이처럼 우리에겐 시간을 견디게 해주는 망각이란 무기가 있다. 생각해보면 , 참으로 고맙고 또 근사한 우리 뇌의 능력이 아니겠는가! 절대적인 시간을 시간의 경과와 함께 나중에 가서는 상대적으로 짧게 만들고 나아가서 결국 無(무)로 되돌려놓는 우리 뇌의 功能(공능)인 것이다.

 

 

찰나와 영겁 사이를 오가는 우리 

 

 

우리 모두 찰나와 영겁을 오가면서 살아가고 또 존재한다.

우리 경제는 8년 전부터 디플레이션 상태에 빠져있다.

 

 

우리나라는 2012년부터 GDP 갭이 계속해서 마이너스 상태를 보이고 있다. GDP 갭이란 실질 GDP에서 잠재 GDP를 뺀 값으로서 이게 마이너스이면 디플레이션이 우려되거나 또는 디플레이션 상태라 보면 된다. 그런데 우리 경제는 2012년부터 지금까지 8년째 마이너스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장기에 걸쳐 이어진 법이 없었으니 디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디플레이션에 빠져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다만 그간의 디플레이션은 비교적 완만하게 진행되어 왔기에 그다지 체감되지 않았을 뿐이다.

 

디플레이션이란 것은 마치 고질병과 같아서 한 번 시작되면 좀처럼 멈추기가 어렵기 때문에 정부도 그렇고 학자들도 어지간해선 디플레이션이란 단어를 언급하길 싫어한다, 그런 까닭에 우리가 디플레이션이 상태란 것을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을 뿐 실은 디플레이션 상태이다.

 

 

디플레이션이란 무엇인가? 

 

 

디플레이션이란 무엇인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보자. 공급에 비해 수요가 부족하면 재고가 지속적으로 쌓이게 될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냥 불황이라 보면 되겠지만 재고가 계속해서 쌓이면 기업은 서서히 생산량을 줄이게 되고 그게 다시 지속되면 생산 능력 자체를 줄이게 된다. 이런 현상이 전 산업 부문에서 나타나면 당연히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고 그러면 수요가 위축되어 또 다시 생산능력을 줄이는 악순환이 거듭된다. 이게 디플레이션이다.

 

따라서 디플레이션은 일시적인 경제 위기나 충격과는 다르다. 2008년으 미국 금융위기로 인한 불황은 우리에게 쇼크였을 뿐 디플레이션은 아니었다. 하지만 2012년 이후 지금까지 이어진 상황은 단순한 불경기가 아니라 디플레이션 상태라 볼 수 있다.

 

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추경예산을 해마다 편성하고 또 집행하면서 점차 재정 지출을 늘려가는 것 역시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조치들이지만 역으로 디플레이션이기에 그렇게 하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다만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 올 해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큰 경제적 충격이 없었던 탓에 사람들은 그냥 그런가 보다, 경기가 별로 좋지 않다 정도로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벌서 8년째 디플레이션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그간의 누적 효과를 감안한다면 우리 경제는 속으로 파열이 일어나고 있는 상태 즉 서서히 골병이 든 상태라 봐도 무방하다.

 

권투로 치면 큰 펀치 한 방에 쓰러진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상대의 잽(jab)을 허용한 결과 무너져 내리고 있다고 봐야 하리라. 가랑비에 옷 젖는 말.

 

그 사이에 대통령 탄핵이라고 하는 미증유의 일이 발생한 것만 봐도 그렇다. 그 역시 바탕에는 우리 경제의 디플레이션이 근본 원인이라 본다. 옛날로 치면 왕의 목을 벤 셈이니 정말 큰 사건이었음이 확실하다.

 

 

디플레이션이 생긴 것은 우리 국운으로 설명해볼 수 있다. 

 

 

그런데 왜 우리 경제가 2012년부터 GDP 갭이 계속해서 마이너스 상태를 보이면서 완만하나마 디플레이션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점에 대해 자연순환운명학의 관점에서 설명해보면 바로 2012년이 우리 국운의 60년 순환에 있어 小雪(소설)의 때였기에 그렇다고 답하겠다. 간단히 말하면 운이 기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小雪(소설)은 해마다 양력 11월 20일 경에 찾아오는 절기로서 그때부터 서서히 겨울이 시작된다. 한 해의 농사가 끝났고 그 수확도 다 끝난 때가 소설이니 이제 더 이상 생산의 시기는 아닌 까닭에 우리 경제는 2012년부터 디플레이션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가 코로나19에 대해 정말 잘 대응한 것은 맞지만 

 

 

이 대목에서 얘기를 약간 둘러가 보자.

 

이번에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코로나19 사태에서 우리는 정말 잘 대응했다. 꽤나 자랑스러웠는지 “K-방역”이란 말까지 생길 정도이다. 국민들도 이런 상황에 대해 나름 많은 위안을 얻고 또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다.

 

어제 뉴스를 보니 미국의 70대 코로나19 환자가 완치되어 퇴원을 했는데 62일간의 치료비가 무려 13억 원을 넘겼다고 한다. 그런 점만 봐도 우리의 의료체계가 그 얼마나 잘 되어 있는지 실감케 한다. 그러니 자랑스러워 할 법도 하다.

 

이처럼 우리가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하여 상당히 잘 대처하고 있다는 점, 우리의 의료체계 특히 보험 체계가 잘 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건 그것이고 문제는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급변하고 있는 글로벌 정세가 장기적으로 볼 때 우리에겐 대단히 큰 짐을 안겨주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경제에 있어 수요가 공급보다 줄어드는 현상이 지속되면 디플레이션이라 했는데 우리 경제의 수요를 살펴보면 크게 내수와 수출로 이루어진다. 특히 우리 경제에 있어 수출 비중은 대단히 중요하고도 크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우리에게 가져올 부담은 바로 수출, 즉 해외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게 바로 문제이다.

 

최근 흔히 얘기되는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의 기존 구조가 크게 흔들릴 수 있는 전망이 생겨났으니 그 근본적인 이유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때문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미국은 중국을 최대한 제외할 수 있는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경제에 있어 수출은 우리 기업들이 중간 부품을 생산해서 중국으로 수출하면 중국 현지 공장에서 최종 조립이 되어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으로 다시 수출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제 미국이 기존의 이런 글로벌 공급망을 바꾸겠다고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흐름과 변화가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인지 단언할 순 없어도 아무튼 좋을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 여러 전문가들의 衆論(중론)인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게다가 미중간의 패권 전쟁 과정에서 미국이나 중국이 또는 모두가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해올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 특히 우려가 된다.

 

가령 자동차 시장만 봐도 그렇다. 그간의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중국과 인디아의 시장 성장이 나머지 전체적인 침체 흐름을 막아왔다. 그렇지 않았으면 벌써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크게 침체되었을 것이다. 이에 우리나라만 해도 미국과 중국 현지에서 자동차를 생산하고 판매하고 있는데 선택을 강요해올 것 같으면 그야말로 진퇴양난에 처하게 될 것이란 얘기이다.

 

예로서 이번에 폭스콘이 미국의 압력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미국 현지에 생산 공장을 설립하겠다고 나선 것이 그것이다.

 

줄여 말하면 우리의 수출에 있어 글로벌 불경기도 문제지만 미중 패권 전쟁으로 인한 수출 위축 또는 기타 악영향이 이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크게 작용하게 될 것이란 점이다.

 

이미 내수는 정부의 재정지출이 없으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위축 일로를 걷고 있는 마당에 수출마저 이런저런 이유로 위축될 것 같으면 그간에 누적되어온 디플레이션으로 인한 충격이 증폭되는 결과로 이어져서 그야말로 극심하고도 헤어나기 어려운 디플레이션 상황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눈앞의 사태도 문제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일시적인 쇼크로 볼 수도 있지만 만일 가을 들어서 글로벌 전체적으로 2차 대유행이 시작될 것 같으면 그야말로 충격의 강도와 그 지속 시간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해질 것이다. 경제의 경우 우리 자체가 코로나19를 극복했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좌절감에 빠진 북한

 

 

그런 마당에 북한이 다시 사고를 쳤다.

 

이번에 북한이 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은 늘 해오던 도발이나 트집잡기와는 다소 다른 의미가 있어 보인다.

 

이번 일은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으로부터 20년이기 때문이다. 20년은 어떤 일의 최종적인 결론이 나올 때이기에 현 상태로는 남북 관계를 더 이상 진전시킬 수 없다는 것을 북한이 인정하고 깊은 실망감 또는 좌절감을 느낀 것 같다.

 

동시에 이번 연락사무소 폭파 건은 2년 전 싱가포르 회담에 대한 단기적인 결론이기도 하다.

 

새로 권력에 오른 김정은은 비핵화 카드를 가지고 미국과 담판을 성사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늘 거짓말만 해오던 북한에 대해 미국은 더 이상의 신뢰를 가질 수 없었기에 선 비핵화를 주장했던 것이 북한으로 하여금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궁지로 몰아넣은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에서 신뢰의 가치를 경시해온 북한은 이제 그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핵을 가진 상태에서 더 이상 남북관계의 개선을 통한 경제발전,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 개선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북한이 이번 사태로서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셈이라 하겠다.

 

이번 사건은 종전의 도발과는 달리 1991년 말 소련 붕괴와 1992년 한중수교로 인해 고립무원에 빠진 북한이 택한 카드, 즉 핵보유를 통해 미국과 담판을 짓고 그로서 체제의 번영을 기도해보려던 장기전략이 근본적인 난관에 봉착했음을 알리고 있다 하겠다. 북한은 그 사이에 국제사회 특히 미국의 신뢰를 완전히 상실한 것이 결정적인 자충수였음을 이제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 남북관계는 물론이고 북한과 미국의 관계도 전혀 새로운 마당으로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돌이켜보면 6.15 선언은 2002년 북한이 비밀리에 우라늄을 농축하던 것이 미국 정보당국에 의해 발각이 나면서 시작된 이른바 제2차 북핵위기로 인해 이미 그 당시에 실패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디플레이션 흐름에서 글로벌 무역구조의 변동과 수요 위축, 그리고 남북 관계의 장애. 모든 것이 답답하고 갑갑하기만 하니 이를 어쩐다! 말인가.

은퇴 이후의 삶과 관련해서 

 

 

기대수명은 늘어나는 데 은퇴 시기는 예전보다 빨라지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희망퇴직이 많아지고 도중에 직장에서 잘려서 ‘강퇴’당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또는 희망퇴직 또는 강퇴를 당한 후 섣불리 사업에 손을 댔다가 실패하는 바람에 시골로 내려가 자리를 잡는 경우도 있다.

 

아직 일할 수 있는 나이에 직장을 그만 두었을 경우 그냥 놀 순 없다 보니 우리나라의 자영업 비율은 엄청 높다. 자영업 비율이 높다는 것은 같은 시장을 높고 벌어지는 경쟁도 그만큼 치열하다는 말이 되고 그 결과 오늘날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각박하고 처절하다. 양극화가 갈수록 극심해지고 있다.

 

특히 올 해 발생한 코로나19 사태는 자영업자들에게 마른하늘에 날벼락과도 같은 재앙을 안겨주고 있다. 정부가 나름 지원한다고 시늉하고는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 효과가 얼마나 되겠는가. 이미 상당 수 자영업자들이 가게를 접고 지방으로 내려가 농사 일용직에 뛰어들고 있다.

 

아무튼 은퇴를 했거나 은퇴를 당했다고 하자. 일하지 않아도 그런대로 먹고 살 수 있는 준비가 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오늘은 그런 분들 그리고 장차 그렇게 될 분들을 위해 나름은 도움이 될 수 있는 얘기를 하나 들려드리고자 한다.

 

 

청경우독이란 무엇인가? 

 

 

청경우독이란 말이 있다. 날이 맑으면 밭을 갈고 비가 오면 책을 읽는다는 말인데 이 말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삼국지연의에서 유비가 형주성 교외의 융중이란 한적한 곳에 숨어 사는 隱士(은사) 제갈량을 세 번이나 찾아갈 무렵 제갈량은 시를 통해 자신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봉황은 천길 높은 하늘 위로 날지만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않고

선비는 외진 곳에 숨어 살아도 옳은 주인이 아니면 의탁하지 않노라,

기꺼이 몸소 밭을 일구어 먹고 살지만 나는 내 초가집을 사랑하노라

마음 한가로이 거문고를 타고 책도 읽으며 하늘의 때를 기다리노라.

 

삼국지연의에 소개된 원문은 이렇다.

 

鳳翱翔於千仞兮(봉고상어천인혜) 非梧不棲(비오불서)

士伏處於一方兮(사복처어일방혜) 非主不依(비주불의).

樂躬耕於隴中兮(낙궁경어융중혜) 吾愛吾廬(오애오려),

聊寄傲於琴書兮(요기오어금서혜) 以待天時(이대천시).

 

예로부터 선비 즉 글을 읽는 식자층, 오늘말로 지식인들은 벼슬길에 나서야만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그게 어디 쉬운가! 그렇기에 때론 궁벽진 시골에서 스스로 논밭을 갈아 의식주를 해결하는 한편 시간이 나면 책도 보고 때론 거문고를 타면서 살기도 했다.

 

 

과거 우리 앞사람들의 가슴 속에 새겨진 사자성어

 

 

물론 이 또한 과거 선비의 삶에 대한 하나의 아이디얼(ideal)이다. 선비 중에 봉황처럼 탁월한 자 많지 않았고 제대로 된 자리가 아니면 나서지 않는 자는 당연히 드물었다. 名利(명리)를 탐하지 않는 사람이란 원래 드문 까닭이다.

 

이상적인 삶을 동경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아서 인간은 僞善(위선)적일 때가 있는 것이니 그 또한 능히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위선이란 것은 어떤 면에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메우는 처세의 한 방법인 까닭이다. (이런 것 역시 납득할 수 있게 되었으니 나 호호당 역시 나이를 먹었나 보다!)

 

그런 까닭에 晴耕雨讀(청경우독)이란 저 문구는 동아시아 사람들의 審美(심미)적 감각과 僞善(위선)의 양면성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쉽게 말하면 스스론 실천하지 못 하지만 그렇게 살고픈 마음은 있기에 과거 동아시아 유교권 세계의 선비들 마음속에 깊숙하게 자리를 잡은 문구가 되어온 것이다.

 

 

청경우독의 현대적 실천 방법 

 

 

하지만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청경우독이란 문구가 있다는 것조차 잘 모를 것이라 본다. 하지만 여전히 음미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청경우독의 현대적 실천 방법에 대해 알아두시면 은퇴를 했거나 장차 은퇴할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니 말이다.

 

노후 준비가 나름 되어있는 퇴직 공무원일지라도 그렇고 직장 경력만 있어서 감히 사업 구상을 하기 보다는 좀 더 안전한 길을 택하고자 하는 분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晴耕雨讀(청경우독), 날이 개면 밭에 나가 일하고 비오면 책 본다고 하니 평소엔 노동을 한다는 말이다. 취미생활은 그 사이 틈틈이 하고 말이다. 은퇴하는 사람 중에 할 일이 없고 굳이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형편이라고 해서 그저 여가를 즐기고 취미생활만 찾을 일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노동은 신체를 건강하게 해준다. 독서를 비롯하여 여가생활은 정신을 맑게 해준다. 心身(심신) 모두를 단련한다는 말이 바로 청경우독이기도 한 것이다.

 

노동을 하면서 취미생활을 해야 즐겁고 취미를 살리면서 일을 해야 일도 즐거워진다. 이게 핵심이다.

 

 

청경우독은 심신을 건강하게 해준다.

 

 

은퇴한 마당에 해보지 않은 사업을 하기엔 두려움이 있다, 그 바람에 그냥 시간만 죽이고 있다면 그거야말로 몸과 정신을 망치기 딱 좋다. 명줄 줄이는 길이다. 등산이라도 자주 하면 될 것도 같지만 어지간히 산을 좋아하지 않는 이상 그 또한 얼마 지나면 그만 두게 된다. 더불어서 등산은 나이가 들면 관절에 그다지 좋지 않다는 점도 있다.

 

은퇴 후엔 좋은 취미 생활을 가진 자라면 크게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역시 부족하다. 무엇이든 사소한 것이라도 경제활동을 해야 즐겁다. 텃밭을 가꾸는 일도 당연히 경제활동이다. 뿐만 아니라 텃밭 일도 몸이 힘들 정도의 노동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신체 단련이 된다.

 

정확히 말하면 꼭 경제활동이 아니어도 된다. 하지만 그 일이 반드시 보람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보람이 있으려면 역시 사소한 것이라도 경제활동, 즉 돈 버는 일이 가장 무난하다.

 

은퇴 전에 월 5백만 원을 벌던 사람이 텃밭을 가꾸면 액수론 어림도 없겠지만 그래도 하는 것이 몇 배 좋다. 열심히 하려면 얼마라도 돈 되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고, 열심히 하다 보면 몸도 건강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바탕 위에 취미생활 또는 나름의 여가생활이 곁들여져야 건강하게 즐겁게 은퇴 후의 삶을 누릴 수 있다.

 

삼국지연의의 제갈량에 있어서 청경우독은 능력이 출중해도 난세를 맞이하여 때를 기다리기 위함이었지만 그거야 소설 또는 허구의 얘기에 불과하다. 오늘의 현실에서 청경우독의 故事(고사)는 은퇴한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적용하면 오히려 그게 더 현실적이고 효과적일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한다.

 

은퇴 후라도 목적을 갖고 노동을 해야 여가나 취미생활이 더 즐겁고 발전하며, 그러면 노동도 더 즐거워진다. 몸과 마음이 하나이기에 함께 단련하고 수양해야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얘기였다.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떠오른 생각

 

 

오늘의 이 얘기는 며칠 전 지인들과 만나서 저녁 식사를 함께 한 것이 동기였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은퇴하게 될 것이니 평소 공부해오던 것에 더 몰두하며 지내겠다는 지인의 얘기를 듣고 그러기 위해선 노동도 함께 곁들여야 좋다는 권고를 해주면서 ‘청경우독’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사람은 정말이지 죽는 날까지 일하다가 죽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이라 여긴다. 직장에서 일하거나 사업을 할 적엔 그야말로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일손을 놓아버리고픈 마음도 수시로 든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은퇴 후엔 그렇다고 아예 일손을 놓아버리면 아니 된다고 본다.

 

은퇴 이후엔 돈을 벌었다고 해서 마냥 일손을 놓고 놀 일도 아니요, 소규모 경제활동이라도 열심히 하는 것이 사람의 몸과 마음을 적당히 긴장시켜주기에 일은 해야 한다. 긴장과 이완, 조임과 풀림이 균형을 잡아야만 빨리 늙지도 않고 건강을 유지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나이가 들면 좋은 취미 하나 가지고 있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인생의 보물이라 하겠다. 여기에 곁들여서 몸을 써서 노동할 수 있는 일도 하나 곁들인다면 그야말로 건강하게 오래 살면서 충만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날이 일요일로 바뀌었다. 창밖에 비가 내리고 있다. 남부 지방엔 많이 내렸다는데 서울 역시 오늘밤 푹 적셔주는 비가 왔으면 좋겠다. 비님 오시는 소릴 들어보고프다.

산다는 것은 고생이다.

 

(오늘 글은 수필이다.)

 

사는 게 왜 어려운가? 그 근본 이유를 최근 며칠 사이 곰곰이 생각해 보았더니 성가시고 귀찮은 일들이 끊임없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런 일들이 꼭 어떤 중대사인 것도 아니지만 아무튼 부단히 생겨난다. 그래서 사는 게 힘들고 고단하다.

 

최근 집을 이사했다. 그러다 보니 처리할 일들이 제법 있었다. (그 와중에 은행에 가서 순번표를 뽑고 착하게 순서를 기다려서 재난지원금도 받았다.) 이사하다 보니 가구도 장만해야 했다.

 

 

가구 하나 집으로 들이는 것도 성가심이 따른다. 

 

 

가구가 집으로 들어오는 일도 그냥 쑥 들어오는 것이 아니었으니 이로부터 얘기를 시작해보자.

 

현관 벨이 울리는 순간 우리 집 강아지들이 맹렬하게 현관 쪽으로 내달리면서 시끄럽게 짖어대기 시작했다. 이에 아내는 부랴부랴 현관으로 달려가서 잠시 기다리세요! 를 힘차게 외쳐야 했고 나는 강아지 두 마리를 몰아서 안방으로 넣어야 했다. 하지만 강아지들은 한사코 나를 피해서 현관 쪽으로 달려가고자 하니 야단을 치면서 안방으로 가두어야 했다. 안방에서 강아지들은 계속 짖어대고 나는 시끄러! 조용히 안 해! 하고 겁박을 해야 했다.

 

배달원이 가구를 놓고 나간 뒤 개들을 풀어주었는데 그 사이에 허리가 약간 삐끗해 있었다. 급하게 일어나느라 생긴 일. 저 망할 놈의 개새끼들! 하고 야단을 쳐보지만 사실 욕도 아닌 것이 개더러 개라고 하는 것이고 내가 기르는 자식들이니 새끼가 맞다, 그럴 때마다 뭐 좀 박력 있는 욕설이 없을까 생각하게 된다.

 

 

때론 비겁할 때도 있는 법

 

 

이런 식으로 근 보름 이상에 걸쳐 집을 정리했는데 딱 한 가지 문제가 남아있었다. 바로 에어컨 설치였다. 그래서 아내더러 야, 전화 좀 하지 그랬어 하고 핀잔을 주었지만 실은 이건 약간 비겁한 짓이었다. 여름이 가까운 터라 사실 나 역시 에어컨 설치야말로 이사하자마자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이란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아내를 독촉한 것은 일종의 면피 행위였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최근 며칠 사이 기온이 부쩍 올랐다. 폭염주의보! 아이고, 이거 큰일이다 싶어서 늦게나마 서비스 센터로 전화를 했지만 들려오는 응답이라곤 ‘지금 상담이 밀려서 통화할 때까지 57분 20초가 걸리겠습니다!’ 하는 절망적인 멘트였다.

 

저 로봇 놈의 말을 해석하면 ‘야! 이 고객님아, 좋은 말로 할 때 전화 따윈 하지 마, 이런 말이 아닌가!’. 좌절은 당연한 일, 이러니 산다는 게 힘든 일이네! 하고 장탄식을 했다. (이 대목이 바로 오늘의 글을 쓰게 한 동기였다.)

 

 

대소사 모두 성가시니 살기가 힘들지. 

 

 

산다는 게 정말 쉽지가 않다. 이런 소소한 일도 성가셔 죽을 지경인데 인생길에 이런 잡일들만 사람을 귀찮게 하는 것 또한 절대 아니다.

 

작년에 진작 치과를 갔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못 가고 있다. 나이가 60대 중반에 들어서니 해마다 임플란트 같은 큰 공사를 최소한 하나 이상 하게 된다. 가려면 날을 잡아야 한다, 세상에 어느 누구가 이빨에 문제가 있다고 그 다음 날 자주 찾는 식당 들르듯이 쓱-하고 찾아가겠는가 말이다.

 

그러니 일단은 다음 주 정도에 가야지 하고 마음을 먹어 보지만 그 다음 주가 되면 다른 약속이 생기고 일이 생겨서 도저히 갈 틈이 나지 않는다. 실은 그 다음 다음 주엔 비교적 한가했건만 그럼에도 치과에 가지 않았다. 시간이 나면 결심이 서질 않고 결심하면 이상하게 시간이 나지 않는 게 치과 가는 일이다. 이런 식으로 해를 넘기고 있다.

 

그런가 하면 신체 상태, 소위 컨디션이란 게 하루라도 완벽하게 편한 날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허리가 작년엔 디스크가 와서 고생 좀 했다. 이제 그럭저럭 좋아졌는데 그래도 왼쪽 무릎 관절이 좀 그렇거나 아니면 뒷목이 당겨서 경추를 좌우로 꺾어보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소화에 좀 문제가 있거나 또는 장에 가스가 차서 종일 불편할 때도 있다. 그러다가 기관지가 좀 까실까실 통증이 오기도 한다. 또 어디 약간 먼 길이라도 다녀오면 그 뒤로 수일이 지났어도 회복이 시원치 않다.

 

그런 상태에서 간만에 친구로부터 전화라도 받게 되면 이렇다. “어떠니, 잘 지내지?” 하는 안부를 받게 되면 “뭐 그렇지 뭐, 잘 지내고 있어” 하고 답변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과연 내가 잘 지내고 있는 건가? 하고 의문이 생길 때도 많다.

 

 

잠자는 일마저도 성가신  루틴들이 따른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기 위해서도 해야 할 일들이 적지 않다. 잠자리에 필요한 소도구들 때문이다. 얘기하자면 전자침, 가습기에 물 채우기, 마실 물 한 잔과 티슈 박스, 전기로 데워서 몸 아래 받치는 둥근 돌, 넥플릭스를 보기 위한 컴퓨터 패드가 필요하다.

 

전자침은 담배를 피우는 사람인지라 매일 자기 전 몇몇 경혈자리를 자극해주기 위한 것이고 가습기는 나이가 드니 건조한 날씨엔 비강이 건조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자다가 목이 말라서 깰 때도 있으니 물 한 잔 역시 가져와야 하고 간혹 자다가 코를 풀기 위해 티슈도 필요하며 쉽게 잠이 오질 않으니 넷플릭스를 보면서 피로해지길 기다려야 한다. 누워서 패드를 두 손으로 천정을 향해 들고 있으면 금방 팔이 아파오고 그러면 빠져나가기를 하고 그러다가 운이 좋으면 잠에 들게 된다. (잠드는 일도 운이 좋아야 하니 참!)

 

 

몸뚱이 하나 건사하는 것이 제국을 운영하는 것과 같아서

 

 

이 몸뚱이 하나 건사하는 것만 해도 이렇게 어려운 데 거기에 먹고 살기 위해 돈도 벌어야 하고 그 판국에 간간히 지인들도 연락을 해서 관계를 유지해가야 한다, 그러니 이런 모든 것이 실로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 말이다. 성가신 일이 부단히 이어진다.

 

마치 거대한 제국을 운영하고 萬機親覽(만기친람)하는 재상의 느낌이다. (알고 보면 우리 몸 역시 무수한 세포들의 연합체이니 제국과도 같다.)

 

 

유튜브에서 지혜를 얻어보려 했으나 그 역시

 

 

인생이란 참 성가시구나! 하면서 생각을 좀 하는 가운데 유튜브에 들어가보니 우연인지 아니면 찾다보니 눈에 든 것인지 몰라도 미국의 어떤 여성 강사가 ‘5초의 법칙’이란 것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강사의 요지는 이렇다. 성공하려면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데 그게 싫어서 궁리만 할 뿐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탓이다, 따라서 해야 할 일이 있으면 5초 안에 망설이지 말고 즉각 실천에 옮기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할 일이 있으면 머리를 쓰지 말고 생각도 하지 말고 5초 이내에 즉각 행동으로 옮기라는 것이 요지였다. 그래야만 발전할 수 있다는 얘기인데 당연히 맞는 말이고 지당한 논리 같다.

 

하지만 정말 해야 할 일이 있고 그를 즉각 행동에 옮기려고 한다면 아마도 얼마 안 가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말은 옳지만 그게 어디 쉽나! 며칠 하다가 몸살이 나거나 아니면 안 하게 되지 쉽다.

 

미국의 저 여성 강사는 그걸로 밥을 먹고 살면서 유명 인기 강사가 된 탓에 신이 나서 저처럼 열심히 약을 팔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건 그녀의 비즈니스인 법, 전국을 순회하면서 강연을 하고 있지만 집에 들어서는 순간 손끝 하나 까닥 하기 싫어서 소파에 자빠져 누워있지 않을까 싶다. ‘여보, 저녁은 먹고 들어왔지! 나 힘든 거 알지?’ 하면서.

 

5초의 법칙을 다시 한 번 음미해보면 우리의 뇌는 생존을 위해 하기 싫은 것은 행동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고 진화되어 왔다는 것, 그러나 성공하려면 싫은 일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 뇌의 말을 듣지 말고 무시하라는 것이다. 이는 사실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뇌를 마비시키거나 속일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과도 같다. 솔직히 말도 되질 않는 얘기가 아닌가. 내가 나를 어떻게 속인단 말인가. 어처구니가 없다.

 

5초 강사의 말은 사기극이다! 우리가 뭉개고 있는 것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또 다른 쌈빡한 것이 없나 싶어서 찾아보니 또 미국인이었다. (미국엔 역시 이런 장사, 이른바 자기계발 교육이란 장사가 잘 되긴 하나 보다.)

 

좋은 습관을 만들면 좋다는 것은 이미 책으로 엄청 팔려나간 주제인데 그 친구는 그걸 좀 더 울궈먹는(표준어론 우려먹는) 장사를 하고 있었다. 좋은 습관을 가지면 좋은 줄 모두 알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좋은 습관을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는지를 사람들이 모른다는 것, 그리고 자기 말대로 하면 좋은 습관을 선택해서 가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치의 말로는 습관도 택하고 설계하기 나름이란 얘기인데 그게 글쎄 잘 될까 싶다.

 

5초 강사의 말이나 습관선택이 가능하다는 주장들은 엄청난 세월 속에서 진화해온 우리의 몸과 마음을 너무 만만하게 여긴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란 게 심리학자들이 그간 연구해온 것보다 몇 차원 더 심오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유튜브 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어서

 

 

유튜브에 좋은 내용이 많다고 하지만 실은 그렇지도 않다. 제목이 끌린다?, 그러고 나면 런닝 타임을 확인해보게 된다. 제목은 매력적인데 시간이 15분이라 적혀 있으면 갈등하지 않을 수 없다. 봐? 말어? 하면서.

 

가령 15분짜리를 보노라면 내가 궁금해 하는 내용은 7분 정도 지나야 나온다. 그래서 중간으로 건너뛰면 앞자락의 내용을 모르기에 또 불편하다. 이런 것들에게 몇 번 낚이다 보면 한 동안은 유튜브 보지 않게 된다.

 

(5초 강사, 습관 통제하는 법에 실망한 터라 한동안은 저런 자기계발 장사 근처엔 아예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성가신 것을 보상해주는 무엇이 있기에 우리는 살아간다.  

 

 

그래서 인생은 참 어렵다는 주제에 대해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온다. 너무 성가신 일이 많다는 것, 가짓수가 적어지면 하나하나가 더 힘들어지거나 아니면 소소한 것들이 끊임없이 성가시게 한다.

 

저 성가신 강아지들, 처음부터 강아지를 키운 것이 잘못이었나?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한 것만 해도 벌써 17년이나 되었는데 이걸 다시 원점에서 고민해야 하는가 싶다.

 

생각하다 보니 나름 괜찮은 결론을 얻게 된다. 강아지를 키움으로써 얻는 보상과 지불해야 하는 각종 물적 심적 비용이 그간에 그러니까 17년 동안에 균형을 잡아 왔기에, 나아가서 이윤이 조금은 더 남는 장사였기에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는 결론이다.

 

그래서 이 생각을 바탕으로 좀 더 외연을 확장해보기로 한다.

 

사는 게 힘들긴 하지만 살아가면서 얻는 즐거움 또는 행복과 균형을 잡고 있기에 그리고 약간이라도 남기는 장사인 까닭에 우리 모두 힘들지만 기를 쓰고 살고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이 논리 역시 좀 더 생각하고 따져볼 여지는 있는 것 같으니 일단 잠정 결론이라고 해두자. 사는 건 힘들다 하지만 때론 사는 맛이 날 때도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 우리를 낳아준 부모님들을 원망하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 경제의  촉박한 현안 

 

 

이렇게 가면 향후 멀지 않아서 우리나라 대기업은 거의 모두 주인이 없어질 판이다.

 

어느 경영학자의 글에 따르면 대기업 오너, 이른바 재벌의 오너의 지분은 평균 10% 미만인데 65%의 상속세를 내고 나면 지분이 3.5%도 채 남지 않는다고 한다. 이 정도 지분으로는 경영권을 유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비상장사와 계열사를 동원하는 식의 편법을 통한 상속과 경영권 승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이에 상속세 완화가 필요하다는 것인데 대개 이런 식의 주장을 할 때면 으레 재벌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이행이 필요하다는 것 아울러 상속 받는 이의 경영 능력이 입증되어야 한다는 말도 뒤따른다.

 

하지만 이런 얘기야 해보는 소리에 불과하다. 경영 능력이란 것은 어디까지나 사후적 판단에 불과한 것이고 가진 자의 사회적 책무란 것도 기준이 주어지지 않는 이상 골치 아픈 얘기에 그친다.

 

 

주인 없는 기업이 잘 될 리 없으니 

 

 

진짜 중요한 대목은 주인 없는 기업이 될 경우 경영이 잘 될 리 없다는 점이다. 이는 상식 중에 상식이다.

 

그런가 하면 예컨대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은 국민들에게 하는 공포 마케팅이라 주장하는 이들도 제법 된다. 일리가 있는 얘기라 본다. 그리고 그들의 말처럼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자를 보면 사업이라곤 전혀 해본 적이 없는 진보 진영의 인사거나 아니면 학자들이란 점이다.

 

그들의 말대로 과연 공포 마케팅에 불과한 것일까? 하고 생각해보면 그 또한 긍정하기 어렵다.

 

우리 국민들의 정서 상 부의 대물림에 대한 반감이 상당하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맹렬히 진행된 현 시점에선 더더욱 그렇다. 그러니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기도 어려운 실정이기에 정치권 쪽에서 그 누구도 섣불리 나설 수가 없다.

 

 

쉽게 해결될 문제도 아니어서 그냥 이대로 흘러갈 공산이 커보인다. 

 

 

따라서 재벌의 상속세 인하 문제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마냥 그냥 이대로 세월만 흘러갈 공산이 크다.

 

장차 이 문제는 어떻게 될까?

 

나 호호당의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면 그 어느 길도 답이 아닐 거란 생각이다. 상속세율이 그냥 유지되는 바람에 주인 없는 기업이 되어 소위 외부 인사들의 잔치판이 되어 쇠락해가거나 반대로 설령 상속세율이 완화되어 상속을 받게 된다 해도 재벌 3세 정도가 되면 할아버지나 부친과 같은 경영 능력을 지니기란 확률적으로 희박하다고 보기에 역시 결과는 앞의 경우와 비슷할 것이란 생각이다.

 

다시 말해서 좋은 해결 방안은 없을 거란 것이 나 호호당의 판단이다.

 

 

역사책을 뒤져보면 

 

 

역사책들을 뒤져봐도 과거 대제국들도 3대 째에 가면 으레 위기가 찾아왔다. 이 경우 그냥 몰락하거나 또는 누군가 능력 있는 자가 내부 쿠데타를 통해 바통을 이어받으면 다시 중흥하게 되고 그러면 그 이후론 제법 오래 지속되는 제국과 왕조의 패턴이다.

 

이런 경우 나 호호당이 늘 관심 있게 연구해보는 케이스가 하나 있으니 중세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인데 수백 년간의 영광을 이어간 이 명문 집안 역시 대중의 질시와 미움을 받은 끝에 나라밖으로 추방당하기도 하면서 무수한 시련을 겪어야 했다. 그런가 하면 계승자 중엔 무능한 자도 많았고 병약한 자도 많아서 숱한 어려움이 있었다.

 

 

부를 이어가는 것이 실은 비정상이어서

 

 

일반 사람의 심성이란 것이 그간 혜안을 가진 현인들의 말에 의하면 나보다 더 가진 자를 미워하거나 아니면 두려워하기 마련이어서 가진 자 역시 그 재산과 지위를 이어가기란 실로 어렵다. 우리 주변의 부자들을 봐도 대개의 경우 당대에 그치고 2세만 되어도 상속받은 것을 까먹고 살다가 몰락하는 경우가 더 흔하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러니 부를 이어가는 것 자체가 실은 비정상이라 하겠다.

 

 

우리의 걱정은 재벌들의 안위에 관한 것이 아니란 사실

 

 

문제는 재벌들의 안위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부를 이어가던 말든 솔직히 우리들로선 아무런 관심이 없다. 다만 문제는 우리 경제 구조 상 재벌 대기업들이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출 편중의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듯이

 

 

약간 말머리를 돌려보면 우리 경제의 오랜 숙제로 남아있는 것이 또 하나 있으니 수출 편중의 경제 구조란 점이다. 내가 기억하기도 1980년대 중반부터 끊임없이 학자들을 중심으로 제기되어 온 안건이다. 수출 비중이 너무 크니 내수 기반을 확충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인데 그 역시 空念佛(공염불)에 불과했다.

 

우리 경제는 그냥 여전히 수출과 수입 즉 무역 의존도가 높은 구조이고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을 뿐이다. (단 하나 돌파구는 남북이 통일되어 인구가 1억을 넘어서는 것밖에 없다.)

 

그처럼 재벌 편중의 경제구조 역시 그동안 무수히 지적되어 왔지만 여전히 변함이 없다. 그런데 앞의 문제와 다른 점은 이제 상속 문제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점이고 그런 면에서 실은 보다 시급한 현안이 되고 있다.

 

 

건강한 기업생태계란 일종의 신기루 같은 것이어서

 

 

재벌이나 대기업이 등장했다가 때가 되면 쇠락하고 그 뒤를 이어서 또 다른 정력적이고 혜안을 갖춘 능력자가 등장해서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그런 과정을 통해 국가의 번영을 지속해간다면 그 얼마나 좋으랴! 실로 理想(이상)적이라 하겠다.

하지만 현실에선 그게 결코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기존의 강자가 사라져가고 뒤이어 새로운 기술과 더불어 신흥 강자가 등장하는 건강한 기업 생태계를 갖춘 나라는 어떤 면에서 미국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그건 미국 특유의 현상이기도 하다.

 

 

일본이 우리에게 뒤쳐지고 있는 이유 역시 주인없는 기업 때문

 

 

과거 20년 사이에 보면 우리 기업들의 기술력과 경영 능력은 이제 이웃의 일본을 거의 넘어서고 있다고 해도 절대 틀린 말이 아니다. 왜 우리는 약진을 거듭해온 반면에 일본은 답보 또는 후퇴를 거듭하고 있을까?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많은 것들이 있지만 결국 일본의 대기업들은 주인이 없다는 점에서 우리와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일본이라고 해서 인재가 없을 리 만무할 것이고 맡겨만 준다면 경영능력이 뛰어난 인재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인이 없는 기업은 아무리 많은 인재가 모여 있어도 결과적으론 내부 정치판이 기업의 결정과 방향을 좌지우지하게 된다. 과거 전 세계 시장을 휩쓸던 소니가 오늘 날 저처럼 몰락하리라곤 과연 그 누구인들 상상이나 했겠는가.

 

 

우리 역시 일본 대기업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크다는 점. 

 

 

그런데 우리 대기업들 역시 이대로 가면 대마불사란 말처럼 기업은 살아남을지 몰라도 머리가 없는 공룡이 되어 결과적으로 잘 해야 일본 대기업 꼴이 날 것이라 본다. 아니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쳐져서 몰락하던가.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우리가 대응을 잘 하는 바람에 국민적 자긍심이 높아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실은 우리 앞에 놓여있는 어려움들은 이제 머리를 들기 시작하는 단계에 있다는 생각을 한다. 또 그 어려움은 실로 첩첩한 산의 연속일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이제 새로운 운의 주기를 맞이할 때가 된 우리 대한민국

 

 

運(운)이란 것이 있다. 한 개인의 삶에도 존재하지만 단체나 기업 나아가서 나라에도 영고성쇠가 존재하니 그게 바로 운이란 것이다.

 

운은 60년을 하나의 주기로 해서 변화해간다. (뿐만 아니라 그 60년을 여섯 개로 해서 360년에 걸쳐 변화해가는 더 큰 주기의 운도 있다.)

 

이처럼 운의 주기는 대단히 규칙적이다. 우리 대한민국의 국운은 1964년에 입춘을 맞이하였고 그로부터 우리는 그야말로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하지만 이제 또 다시 4년 뒤가 되면 입춘이 된다. 그렇기에 얼마 안 있어 그간에 누적된 각종 문제점들이 한꺼번에 불거져 나오는 시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 문제점들 중에 재벌의 승계와 상속 문제 역시 우리 경제의 앞길에 있어 대단히 커다란 숙제로 남아있다. 그간 이런 얘기를 하진 않았지만 이젠 한 번 언급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얘기를 했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문제가 되는 시점에서 좋은 해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존재한다면 그건 문제가 아니란 얘기가 된다. 오늘의 문제 역시 뚜렷한 해법은 없다. 그저 시간 속에서 세월 속에서 어떤 식으로든 귀착이 되어갈 것이라 본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 경제의 향후에 있어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부디 아무쪼록 조금은 더 나은 쪽으로 정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랜 고생 끝에 빛을 본 가수 장민호

 

“미스터 트롯”의 흥행이 대성공했다. 나 역시 흥미롭게 시청했다. 임영웅의 노래는 정말 대단한 것 같다. 그런데 내 눈을 가장 많이 끌었던 이는 장민호란 가수이다.

 

장민호, 양력으로 1977년 9월 11일생이다. 丁巳(정사)년 己酉(기유)월 辛未(신미)일이다. 경력으로 볼 때 2011 辛卯(신묘)년이 60년 운세 순환에 있어 立秋(입추)의 운이었고 이에 작년 2019년은 秋分(추분)의 운, 즉 인정을 받는 운세 즉 등용문을 통과하는 때였다. 그런 까닭에 올해 미스터 트롯에서 나름 인정을 받았고 특히 德性(덕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 지면서 대중적 스타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니 이제부터 10년간 장민호는 인생의 전성기를 맞이하는 형국이다.

 

관심이 갔던 것은 그가 오랜 세월 무명 가수 생활을 견뎌온 결과 마침내 스타로 올라섰다는 점이다. 1997년에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했지만 크게 주목 받지 못했고 그 이후 다양한 시도를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다가 트롯 가수로 전향한 것이 빛을 본 것이다. 남진 선생님의 노래 ‘상사화’를 아주 잘 불렀던 기억이 난다.

 

 

그의 운세를 살펴보니 

 

 

1981 辛酉(신유)년이 입춘 바닥이었으니 데뷔한 1997년은 小滿(소만)의 운이었다. 한 해로 치면 5월 하순 경과 같다. 소만 무렵이면 어린 벼가 논에 가득 들어서는 때이니 그 역시 신인 가수로서 인생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정도의 운으론 절대 스타가 될 수 없는 법, 왜냐면 인생의 운세 순환에 있어 대부분은 입추의 운 근처는 되어야만 대중성이 생기고 스타성이 발휘되며 또 그간의 능력이 발현이 되기에 그런 법이다.

 

(물론 그야말로 천재성이 있고 아울러 시대의 흐름과 맞아 떨어질 경우 입추 한참 전에도 성공하는 일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사실 희박하다. 예컨대 이미자 선생님과 같이 불세출의 재능을 가진 경우가 바로 그렇다.)

 

그렇기에 장민호의 경우 그 이후 많은 고생을 겪으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끝내 가수 외길을 걸어왔고 마침내 성공했으니 오히려 그 점을 더욱 인정해 줄 수 있다. 물론 그 길 말고는 달리 선택지도 없었겠지만 말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 성공 혹은 성취가 온다.

 

 

삶에 있어서 성공하는 방법 또는 길은 달리 선택할 것이 없을 때라 보면 된다.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손에 쥔 자는 나중에 보면 그 어느 것도 성취하지 못한다는 것, 인생을 살아보고 겪어본 자만이 비로소 알게 되는 삶의 진리라 하겠다.

 

이리 가도 될 것 같고 저리 가도 될 것 같은 상황이라면 나중에 보면 그 어느 길도 목적지로 안내하지 않는다는 것, 죽으나 사나 외길일 때 그 길만이 성공과 성취로 이어지는 길이란 것을 살아보지 않은 자가 어떻게 사전에 알 수 있으랴!

 

장민호는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가수 외길을 걸어왔고 그랬기에 마침내 운이 입추를 넘어서고 이에 다시 시간이 흐르자 스타로 올라섰다. 그러니 장하다고 말해준다.

 

오랜 무명 세월을 거치면서 실력을 가다듬어 마침내 대성한 가수라 할 때 얼핏 생각나는 분으로서 조항조 씨가 있다. 18년간 무명 가수로 지내다가 1997년 외환위기라는 특수한 사정 때문에 그가 부른 “남자라는 이유로”란 노래가 엄청난 호응을 얻으면서 스타덤에 올랐으니 대기만성 형이라 하겠다.

 

 

하는 일과 운세가 부합될 경우 쉽게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침 데뷔했을 때 운세가 한창이라서 바로 대박이 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가요계에서 보자면 서태지가 그런 케이스인데 그가 ‘서태지와 아이들’을 결성하고 활동을 시작한 때는 1991년이었다. 그런데 서태지의 경우 1992년이 입추의 운이었기에 그 해 4월에 발표한 1집 “난 알아요”가 빅 히트를 쳤다.

 

하지만 서태지로선 너무 일찍 은퇴를 한 것이 실수라면 실수였다. 불과 몇 년도 지나지 않은 1996년 1월에 돌연 은퇴를 선언한 것이다. 창작의 고통을 견디기 어려우니 화려할 때 미련 없이 떠난다는 것이 그의 말이었는데 그냥 좀 쉬다가 다시 활동을 재개하면 될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이후 컴백을 하고 다시 그만 두고를 반복하는 사이 그의 好運(호운)은 속절없이 지나가고 말았던 것이다. 서태지의 경우 이제 내후년 2022년이면 입춘 바닥이 되기에 왕년의 인기를 되찾기란 어려울 것으로 본다.

 

 

비교적 순탄한 길을 가는 이찬원과 정동원 

 

 

이번의 미스터 트롯에서 대단한 활약을 보여주었고 진또배기를 불러 더욱 대중들에게 널리 각인된 이찬원 씨의 경우 역시 2012년이 입추였는데 활동을 시작한 때는 2008년부터였다. 그런 까닭에 12년 만에 인정을 받는 운인 秋分(추분)에 성공을 했으니 그 정도면 순탄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장민호가 2011년 입추였고 이찬원은 2012년이었으니 운세 주기가 장민호와 거의 같다.

 

아울러 이번 미스터 트롯에서 나이든 여성들로부터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정동원 군의 경우 2007년 3월 19일 생이니 丁亥(정해)년 癸卯(계묘) 壬子(임자)일이다. 따라서 2022년 壬寅(임인)년이 입추의 운이 된다. 입추 불과 2년 전이니 이 정도면 대단히 순탄하게 가수의 길을 걷기 시작한 셈이다. 장차 많은 활약이 기대되는 데 다만 아직은 너무 어려서 자기관리를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이라 할 수 있다.

 

 

오늘은 소만 절기

 

 

지금 글을 쓰는 시각은 6월 5일 새벽 2시 5분, 이제 오늘 오후 1시 42분이 되면 芒種(망종)의 절기로 들어선다. 이로서 午(오)월이 된다.

 

이미 해가 많이 길다. 오전 5시11분에 일출이고 일몰은 저녁 7시50분이니 낮 시간이 14시간하고도 39분이나 된다. 일조 시간이 하루 길이의 61%나 된다. 夏至(하지) 때의 일조시간과 겨우 71분 정도밖에 나지 않는다. 그러니 이런 때를 옛날엔 長夏(장하)라 불렀다.

 

긴 여름이란 뜻인데 일조 시간이 워낙 길어서 그렇다. 하지만 동지 무렵 일조량이 짧을 때를 긴 겨울이라 부르진 않았으니 역시 사람에게 해가 비치는 시간이 중요한 것을 말해준다.

 

여름의 한자인 夏(하)란 글자가 실은 흥미롭다. 이 글자는 사람이 춤을 추는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정확한 이유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하지 무렵에 축제를 하고 춤을 추던 풍속에서 온 것으로 추측이 된다.

 

 

우리 국운의 하지 축제를 추억해본다

 

 

하지 축제라 하니 생각나는 것이 있다. 우리 대한민국의 60년 국운 순환에 있어 하지 때가 1987년이었는데 마침 그 때 우린 민주화로 넘어왔고 아울러 경제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온 국민들이 다 함께 흥겨워했던 때이고 다음해인 1988년엔 서울 올림픽까지 치렀으니 가히 국운의 하지 축제였던 셈이다.

 

지금은 우리 국운이 한겨울을 가고 있다. 글로벌 정세가 그때와는 180도 달라졌다. 현재의 정세는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에게 많은 부담이 될 것이다. 1987년 당시 전 국민들이 모두 들뜨고 격정에 넘쳤던 축제는 이제 간 곳이 없고 지금의 젊은이들은 그 시절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나마 우리가 이번 코로나19 사태에 대해 잘 대응했다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위안을 삼을 뿐이다.

 

물론 아직은 그래도 약간의 여유가 있다는 생각도 한다. 내후년인 2022년부터 닥쳐올 시련을 감안하면 말이다.

 

오늘은 뭔가 독자들이 그런대로 위안을 얻을 글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미스터 트롯을 대상으로 삼았다. 대중가요야말로 우리 모두의 정서를 액면 그대로 반영하고 또 위로해주는 것이니 말이다.

 

이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오늘은 망종이다. 최근 주가가 너무 올랐다는 느낌, 오버슈팅한다는 생각이다. 독자 중에 주식하시는 분이 있다면 이젠 나름 조심할 때란 말을 드리고 싶다. 아마도 이 달 하지 무렵부턴 흐름이 달라질 것 같다.

 

실로 소화하기 어려운 난국의 연속 

 

앞의 글에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아웃소싱과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에 커다란 변화가 예상된다고 했다. 이는 현 세계의 상품 공급과 교역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뀐다는 얘기이니 실로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사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에 생겨난 변화만도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주요 선진국 경제의 금리가 사실상 제로가 되었고 여기에 양적완화라고 하는 미증유의 조치를 통해 상상을 초월하는 돈이 풀려나갔다.

 

 

돈의 가격이 왕창 내렸으니 불경기이자 디플레이션

 

 

금리란 돈의 가격,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용료인데 그 사용료가 대단히 저렴해진 것이다.

 

돈의 사용료가 싸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잠깐 생각해보자. 가령 주택이나 아파트를 임대해서 쓰고 있다면 임대료를 내게 된다. 그런데 그 임대료가 엄청나게 저렴해졌다면 그건 간단히 말해서 주택 가격이 엄청나게 내렸다는 말이 된다. 돈의 사용료가 아주 저렴해졌다는 것 역시 같은 말이 된다.

 

이어서 돈의 사용료가 싸졌다는 말은 투자할 곳이 변변치 않다는 뜻이다. 투자할 곳이 많다면 너도 나도 투자하기 위해 돈을 빌려고 들 것이니 자연히 돈의 사용료인 금리가 올라갈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돈이 갈 곳, 즉 투자할 곳이 극도로 적어졌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2007년 금융위기 이후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를 했다는 말은 글로벌 전체적으로 투자할 곳이 극도로 적어졌다는 말이 되는 것이고 이는 즉 경기가 나쁘다, 즉 불경기 상황이란 뜻이다.

 

 

원투 펀치를 맞고 비틀거리는 글로벌 경제 

 

 

그러나 2016년부터 그글로벌 경제는 조금씩 살아나고 있었다. 특히 미국 경기가 좋아지면서 미국 연준은 조금씩 금리를 올려갔고 양적완화로 해서 풀려나간 돈 역시 조금씩 회수하고 있었는데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또 다시 제로금리로 돌아갔고 연준의 통화환수는 생각하기도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다. 다시 말해서 이젠 미국을 비롯해서 전 세계 경제의 불경기가 아예 고착화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2008년의 금융위기, 2020년의 코로나19사태, 이는 12년의 시차가 있다. 12년은 60년 순환에 있어 기본 마디인데 글로벌 경제가 순환의 한 마디가 지날 때마다 크나 큰 타격을 입고 있는 셈이다. 글로벌 경제 전체가 강력한 원투 펀치를 맞은 것과 같은 형국이다.

 

 

미중 냉전의 시대

 

 

뿐만 아니라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그간에 지속적으로 이어져오던 미중 간의 패권 전쟁을 한 층 더 가중시키고 있기에 이젠 새로운 냉전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과거 미소 간의 수 십 년에 걸친 암중투쟁이었던 냉전은 1991년 소련의 해체로 끝이 났는데 또 다시 미중 간에 새로운 냉전구도가 확연해진 것이다. 저번 냉전이 군사적 대치를 기본으로 하는 진영 싸움이었다면 이번 냉전은 훨씬 더 복잡 미묘하다. 적대 진영이 확실하지도 않고 여전히 교류해가는 가운데 지속적으로 갈등과 마찰을 빚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중 간의 신 냉전구도는 현재 홍콩에서 보다 첨예하게 빚어지고 있다. 중국 당국에 의한 홍콩보안법 제정 움직임과 이에 맞선 미국의 홍콩 특별지위 철회 압박이 그것이다. 당장은 피차간에 눈치를 보고 있지만 그렇다고 마냥 피해갈 순 없는 대치국면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려운 우리의 입장

 

 

하지만 미중 간의 못할 판냉전은 홍콩만이 아니라 당장 우리에게도 어려운 숙제를 던져오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Economic Prosperity Network(EPN) 구상이다. 트럼프가 주도한 구상으로서 중국을 제외하고 우리를 포함해서 호주와 일본, 인디아, 뉴질랜드, 베트남을 연결하는 서플라이 체인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우리 경제는 중국과 너무나도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기에 우리 정부는 트럼프 정부의 제의에 대해 금년 하반기 미극 대선 결과를 기다리면서 일단은 답변을 회피하고 있다. 일본이나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 트럼프 역시 당장은 이렇게 할 수도 있지 않느냐 하면서 한 번 던져본 제스처라고 하겠지만 장차 이 구상이 훗날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간에 밀접하게 얽혀있던 미중 관계에서 미국은 당장은 몰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중국과 헤어지려는 의도를 가졌다는 점이니 그게 우리로선 두고두고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우리로선 누구와도 교역하는 것이 이익이건만 

 

 

우리로서야 전 세계 어떤 나라이든 지역이든 무역을 하는 것이 국익이다. 이란과도 그렇고 중국과도 그러하며 러시아와도 그렇다. 그런데 새로운 블락 형성의 움직임은 편을 먹자는 것이고 편이 아니면 배제하자는 것인데 이게 구체화된다면 우리로서 대단히 난처하다.

 

 

한은의 수단이 이젠 사실상 사라졌으니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경제 역시 사실상의 제로금리 시대로 진입했으니 이번에 한은이 금리를 역사상 최저인 0.5%로 인하한 것이 그것이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우리로선 사실상 더 낮출 수 없는 최저금리라 하겠다. 여기에 더불어 한은에 의한 본격적인 양적완화의 조짐도 감지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이후 은행권의 기업과 가계의 대출이 급증했다.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3.4배나 폭증했다. 대부분이 긴급자금 대출인 셈이다. 그렇지 않아도 복지를 강조하는 현 정권은 국가의 부채 구모를 늘려오던 마당이었는데 이제 향후 10년 사이에 국가부채는 한 마디로 말해서 무진장 늘어날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10년 후가 되면 국가의 재정건전성이 크게 악화될 것이란 얘기이다.

 

저금리 시대이자 제로금리 시대이고 불경기이자 디플레이션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금리란 것이 계속 낮을 것 같지만 언젠가는 인플레이션이 와서 고금리로 바뀔 수도 있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당장으로선 고금리와 인플레의 시대를 상상하기란 쉽지가 않다. 그건 파탄을 의미한다, 그건 다 함께 죽어보자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런 우려보다는 당장 걱정되는 것은 한은의 금리 수단이 사실상 없어졌다는 점이다. 더 이상 인하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한은이 경기부양을 위해 할 수 있는 수단이라곤 양적완화밖에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데 우리 돈인 원화는 달러나 유로화, 엔화가 아닌 까닭에 직접 찍어내기 위해선 특히 미국으로부터의 협력 혹은 사전 승인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런 면에선 우리는 미국의 눈치를 봐야 할 것이고 수출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선 중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대단히 어려운 입장이다. 이런 마당에 미국과 중국은 적대하는 관계가 되었고 우리더러 어느 쪽에 설 것인지 편을 정하라고 압박해 오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이미 자영업자들은 엄청난 타격을 입은 상황이다.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하지만 그건 눈앞에 보이는 문제에 불과하다. 이제 닥칠 숙제들이 너무나도 많다.

 

 

우리 앞에 산적한 너무나도 많은 숙제들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의 구조 변화가 우리에게 어떤 득실을 가져올 것인지, 제로금리 시대에 경기가 지속적으로 더 악화된다면 어떤 대책을 쓸 수 있을 것인지, 또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국제 외교적인 노력의 대안은 무엇인지, 걷잡을 수 없이 폭증하게 될 부채의 홍수 속에서 이미 통제 범위를 넘어선 가계부채와 기업부채 아울러 국가의 재정건전성을 어떻게 대처해갈 수 있을 것인지, 미중 간의 냉전 구도 하에서 우리가 어떻게 처신해가야 할 것인지, 우리의 오랜 숙제이자 지정학적 리스크의 근원인 북한과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가야 할 것인지, 인공지능의 확산만 해도 그렇건만 코로나19 이후 생겨난 새로운 변화의 동인인 ‘언택트’ 흐름이 향후 일자리 문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등등.

 

이들 중 어느 한 가지만 잘못 되어도 우리 대한민국은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일들이 장차 있을 거대한 하락 조정의 출발점인 것인지 아니면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지도 못한 낯선 세상으로 우리를 데려갈 것인지 지금으로선 전혀 생각해볼 수 없다.

 

어쩌면 2000년 이후 우리가 보낸 10년이야말로 실로 좋은 시절이었고 황금기였다고 두고두고 회고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