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의 일이 기억나서

 

 

1월이 술술 흘러가고 있다. 벌써 19일이고 다음 주면 설, 그러면 2월로 넘어간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세월도 빠르다.

 

사나흘 전의 일이다. 밤 11시 경, 늘 하던 대로 강아지들 데리고 아들과 함께 뒷산에 올랐는데 남쪽 하늘에 왕별 시리우스가 빛나고 있었다. 무심코 별을 바라보다가 문득 스쳐가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정확하게 30년 전 그러니까 1990년 1월의 어느 날 밤 한강 둔치 즉 반포한강공원에서 저 별을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 것이다.

 

차이라곤 그땐 반포한강공원이었고 이번엔 그로부터 약 2 킬로미터 떨어진 동작동 뒷산이란 점이 전부. 별은 30년 전 1월의 겨울밤이나 30년 후 1월의 동작동 뒷산 공원에서나 아무런 변함없이 빛을 뿌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서른여섯의 청년이었고 지금은 예순여섯의 반늙은이.

 

 

나 호호당의 몰락이 시작된 1990년 5월

 

 

그러자 1990년 5월이 떠올랐다. 30년 전의 일인데 엊그제 일처럼 선명하다. 1990년 5월 직장에서 제법 나름 공을 세운 바람에 그 포상으로 20일에 걸쳐 지구를 한 바퀴 돌아왔다. 문자 그대로 세계일주( tour round the world)를 했다. 유럽으로 날아가서 돌아다니다가 영국으로 건너갔고 다시 미국으로 갔다가 태평양을 건너 서울로 돌아왔다.

 

당시만 해도 해외여행 자체가 흔치 않던 시절에 지구를 빙 둘러 왔으니 얼마나 흥겨웠겠는가. 그런데 훗날 알고 보니 바로 그 포상 여행이 나 호호당에겐 몰락의 시작점이었다. 1990년 1월은 나 호호당의 60년 운명 순환에 있어 冬至(동지)의 때였던 것이다.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샀고 또 질시도 샀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구렁텅이로 내려갔다, 따지고 보면 내 스스로 찾아간 길이었지만 말이다.

 

그로부터 15년이 흘러 2005년 여름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작업실로 들어왔고 그곳에서 운명상담 일을 하면서 동시에 과거 내 삶의 태도와 자세에 대해 깊은 반성을 했다. 바로 그 무렵이 운명 순환에 있어 春分(춘분)이었다.

 

그리고 다시 세월이 잘도 흘러가더니 이제 2020년이 되었다. 나 호호당은 이제 夏至(하지)의 운을 맞이하고 있다. 금년 5월 나 호호당은 또 하나의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기간은 아주 짧지만 그게 나로선 대단히 의미심장한 일이란 것을 문득 알게 되었다.

 

1990년 5월의 거창한 세계일주 여행과 이번 5월에 계획된 여행 간에는 정확하게 30년의 시차가 존재하는 까닭이다.

 

 

약간 시건방을 떨었더니 그 결과가

 

 

1990년 당시 서른여섯 살이었는데 그 이후 많은 풍파를 거치더니 어언 예순여섯이 되었다. 우리가 살다보면 때론 인생이 너무 길게 느껴질 때도 있기 마련인데 당시 나 호호당 역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긴 인생 지루해서 어떻게 살지? 하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천만의 말씀,

 

그 이후 우당탕 정신없이 가는 세월 이제 좀 멈추고 숨을 돌려보니 벌써 예순여섯이다. 紅顔(홍안)의 청년이 어쩌고저쩌고 숨 한 번 돌리는 사이에 白髮(백발)이 반도 더 되는 반늙은이가 되어있다. 그야말로 허 하고 또 참이다. 허-참!

 

시간이란 참으로 묘한 것, 전자레인지 돌아가는 것은 30초만 해도 지루한 데 30년 세월은 무엇에 홀린 듯 쏜살같이 날아갔으니. 하지만 겨울 하늘의 시리우스는 아무런 일 없었다는 듯 예나 지금이나 똑 같이 겨울 밤하늘을 밝히고 있다.

 

30년 전 1990년의 冬至(동지)의 운을 맞이하여 처음엔 서서히 내리막을 타다가 어느 순간부터 속도를 내며 잘도 미끄러져 내리더니 15년이 흘러 2005년 밑바닥에서 이르러 반성과 성찰 좀 했고 이제 다시 힘겹게 오르막길을 기어올라 2020년 이제 간신히 夏至(하지)의 운을 맞이하고 있다.

 

사실 1990년부터 내리막을 탔다고 했지만 나중 일이야 알 리 없었던 나로선 처음에 아주 즐거웠다. 그러던 것이 갑자기 어려워지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2년 뒤인 1992년부터였다. 1992년은 내게 있어 小寒(소한)의 운이었다. 소한이라 하면 해마다 양력 1월 5일경에 찾아드는 절기를 말한다.

 

가파른 내리막은 바로 소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소한이란 말이 나왔으니 우리 경제에 대해 얘기를 좀 할까 싶다. 우리 대한민국 역시 작년 10월부터 국운의 60년 순환에 있어 소한을 맞이했기에 그렇다. 그러니 우리나라는 지금부터 본격 내리막을 탄다고 보면 되겠다.

 

 

우리 대한민국의 본격 시련은 이제 시작

 

 

그러다가 2022년 4월이 되면 한 해를 통해 가장 춥다는 大寒(대한)의 때가 된다. 최근 우리 경제가 어렵다는 말이 무성하지만 그래도 아직 나름 희망이 있다고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2022년 4월이 되어서도 희망을 얘기하는 사람 과연 몇이나 될는지.

 

돌이켜보면 2008년에 터진 미국 금융위기는 우리 경제의 명맥을 연장시켜주었다는 사실이다. 그 덕을 우리가 보았다는 얘기이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 다음과 같다.

 

2008년 말 가계부채는 723조였는데 작년 2019년 3/4분기엔 1572조로 그 사이에 두 배 이상 늘어났다. 부채가 저처럼 늘어났으니 원리금 부담이 커져서 소비에 많은 부담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해서 유럽과 일본이 돈을 마구 풀어대는 바람에 글로벌 금리가 거의 제로금리 수준까지 내려갔고 그 바람에 우리 역시 금리를 대폭 낮출 수 있었다.

 

2008년 말 4.25%이던 기준금리가 지금 1.25%로 대폭 인하될 수 있었던 것은 주요 선진국들의 금리가 낮아졌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다시 말해서 2008년 금융위기가 없었다면 우리 역시 금리를 4% 선에서 유지하고 있을 것이란 얘기이다.

 

그랬을 경우 지금과 같이 가계부채가 1500조 선까지 늘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가령 1000조 정도만 되었다 해도 4% 이상의 금리를 부담하긴 너무나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랬을 경우 이미 우리 경제는 가계부채로 인한 부담으로 내수 경기가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쪼그라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2008년의 금융위기야말로 우리 경제의 명맥을 10년 이상 더 연장시켜 주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계부채가 극에 달하자 문재인 정부는 소위 ‘수퍼예산’이란 것을 편성해가면서 재정투입을 통해 경제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결국 정부 부채의 증가를 뜻한다. 이제 국가부채가 가계부채를 대신해서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 바람에 국가부채는 2008년 대비 두 배 이상 늘어났으며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니 이제 통제불능이라 본다.

 

이른바 경제주체라고 하면 기업과 가계 그리고 정부이다.

 

기업부터 얘기하면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는 좀비 기업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나름 건전한 기업들은 투자에 있어 극도로 몸을 사리고 있다. 가계는 엄청난 가계부채로 인해 사실상 소비를 늘릴 수가 없고 이제 정부마저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재정건전성까지 무시해가면서 부채를 늘려가고 있는 오늘이다.

 

그러니 멀지 않은 시점에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더불어서 수출에 이상이 생기거나 외국인 자금 이탈이라든가 중국의 거품 붕괴 또는 북한의 급작스러운 변고 등이 있을 경우 우리 경제는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또 한 편으로 지금의 글로벌 저금리 추이가 벌써 오랫동안 이어져오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것이 이대로 이어지기 보다는 다른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세상 변화는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든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렇다. 이에 어쩔 수 없이 금리를 올려야 할 경우 즉각적인 우리 경제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금년부터 경제활동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고 대학 정원에 비해 학생 수가 급격히 줄기 시작한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상황은 더 암울해진다.

 

이런 얘기들이 지금은 우려라 하겠으나 2년 뒤인 2022년이 되면 눈앞의 현실이 되어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주마등처럼 스쳐간 30년 세월

 

 

다시 돌아와서 얘기이다.

 

2020년 1월이 어느새 다 지나가고 있다. 시간은 잘도 간다, 술술.

 

그러는 가운데 30년 전 1990년 1월의 어느 날 밤 시리우스를 바라보았던 기억을 시작으로 지난 30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빠른 속도로 눈앞을 스쳐간다. 기억의 필름들이다.

 

그 사이에 청년은 늙은이가 되었다. 기력은 당연히 많이 떨어졌지만 생각하는 힘은 오히려 더 정교하게 다듬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그렇게 억울하진 않다.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고 그 반대도 그렇다.

 

살아갈 날이 이젠 살아온 날보다 훨씬 적으니 앞으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지 하고 다짐을 해본다. 앞으로도 어려운 고비 많을 것이고 그 사이에 좋은 날도 있을 것이니 어려울 적엔 굴하지 않고 좋을 적엔 解弛(해이)해지지 않고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