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가 없다. 

 

 

북한 문제는 더 이상의 출구가 없다.

 

이번 바이든 행정부의 처리방법을 보면 더욱 그렇다. 아주 쿨-하다. 조건 달지 말고 대화하자, 대화 자체를 위한 선물은 없다, 대화에 나서든 말든 그건 너희 쪽 일이다. 이는 오바마 행정부 시절의 전략적 인내에서 크게 한 발 더 나아간 모습이다. 미국의 최종목표인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가 아닌 이상 기존의 봉쇄를 풀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야말로 북한 체제의 숨통을 완전히 틀어막아 버렸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가지고 미국을 상대로 겁박을 주긴 어렵다. 저번처럼 괌 섬을 표적으로 할 순 있겠지만 더 중요한 점은 그에 앞서 북한이 정말로 미국을 공격하려고 마음을 먹기 위해선 자신들 역시 그 순간에 이미 목숨임을 각오해야 한다는 점이다. 미국만이 아니라 우리나 일본 역시 타겟으로 버튼을 누르긴 대단히 어렵다, 그 역시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핵과 미사일을 얻고 먹고 살 길을 포기한 북한 

 

 

북한이 수십년간 우리와 미국을 속여가면서 핵과 미사일을 얻긴 했지만 그 대가는 너무나도 크다. UN의 제재, 사실상 미국이 가한 제재 내용을 보면 철저한 봉쇄이다. 인도적 물자를 제외한 거의 모든 품목에 대한 수출입 금지이다. 오늘날의 국가가 외부와의 교역 없이 제대로 된 경제를 유지할 순 없는 노릇인데 말이다. 그러니 북한 경제는 제재가 이어지는 이상 앞날은 없다.

 

핵과 미사일을 얻고 먹고 살 길을 포기한 북한이 된 셈이다.

 

 

북한 체제 자체도 출구가 없으니

 

 

미국의 제재를 떠나 북한 체제 스스로도 출구가 없다. 권력이 철저하게 한 사람에게 집중되다 보니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 고위 간부들은 그 아들 김정일을 떠나 다른 방도를 생각할 여지조차 없었고 다시 김정은이 이어받으면서 그냥 세습 왕조가 되었다. 지독하게 빈곤한 상태에서 외부에 대해선 닫혀있는 상태, 또 그 안에선 한 명의 독재자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지극히 이상한 나라로서의 북한이다.

 

북한이 미국의 경제봉쇄에도 견디고 버틸 수 있는 것은 닫혀있기 때문이고 빈곤하기 때문이다. 잘 살아보려는 그 어떤 시도도 현 상태에선 불가능하다. 만일 철저한 개방경제인 우리가 이런 제재를 당할 것 같으면 6개월도 못 가서 두 손 두 발을 다 들게 될 것이다.

 

 

이제 평화롭고 순조롭게 남북한이 하나가 되는 길 역시 없다. 

 

 

예전에 나 호호당은 2020년이 되면 남북한 모두에게 좋은 소식, 예컨대 평화로운 통일로 가는 소식 같은 것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고 또 그런 글도 올린 적이 있다. 하지만 철저하게 빗나갔다.

 

물론 한 때 정말 그렇게 될 수도 있겠구나 하고 흥분했던 적도 있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의 트럼프와 김정은 간의 정상회담이 그것이다. 하지만 아무 내용이 없었고 그 이후 혹시나 하고 기대는 했지만 하노이 회담 역시 아무 성과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이제 더 이상 북한 문제는 해법도 출구도 없다는 점만 재차 확인했다.

 

게다가 더욱 확실해진 점 하나를 추가하면 중국 요인이다. 중국은 어떻게 해서든 우리 대한민국과 저들 사이에 일종의 완충지대(buffer zone)로서 북한을 저들의 위성 국가로 유지하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만일 김씨 왕조가 무너질 경우 다른 대안을 찾아서 그렇게 시도할 것이다. (중국의 장기적 최종목표는 우리 대한민국까지도 저들의 위성국가 또는 영향권 안의 지역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 개방된 민주주의 체제를 바탕으로 순조롭고 평화적으로 남북한의 통일을 이룩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워졌다.

 

 

내년 2022년에 무슨 일이 잇을 것 같아서

 

 

그런데 앞으로의 변화를 전망해보면 바로 내년 2022년에 뭔가 일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 그런 가에 대해 얘기하려면 자연순환의 기본 이치에 대해 간단하게 알아볼 필요가 있다.

 

세상은 60년을 하나의 週期(주기)로 한다. 이를 한 해로 칠 것 같으면 15년은 한 계절이 되고 30년이면 한 해의 절반이 된다. 계절이 지나면 모습이 변화하고 기후가 달라지듯 15년이 흐르면 달라진다. 30년이 지나면 정반대의 흐름이 펼쳐진다. 가령 지금이 7월 말이니 석 달이 지나면 10월의 늦가을이 되어 있을 것이고 6개월이 지나면 1월 초의 추위를 겪게 될 것이다.

 

이제 간단한 기초지식을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의 일을 전망해보자.

 

 

제1번 도식: 2006년 10월 - 2021년 10월 (15년, 한 계절)

 

 

미국이 UN 안보리 결의 제 1718호를 통해 북한을 제재하기 시작한 것은 2006년 10월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오는 10월이면 제재 시작으로부터 만 15년이 된다. 한 계절이 지났으니 내년 2022년이면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본다.

북한은 그간의 지독한 경제봉쇄로 인해 더 이상 견디기 힘든 시점에 왔다고 본다. 무려 15년씩이나 지독한 제재를 잘 버텨오긴 했으나 무한정 버틸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간 북한으로선 중국이 끈을 이어가기 위해 조금씩 보내준 물자, 그리고 현 정부 들어 북한과의 대화 채널을 이어가기 위해 미국 눈치를 살피며 조금씩 보내주는 물자 외엔 다른 유입 경로가 없다.

 

(미국 정부는 이에 간혹 우리 정부의 비공식 지원에 대해 지적하곤 한다. 다 알고 있다는 식이고 그 정도의 숨통은 열어 주겠다는 것이다.)

 

 

제2번 도식: 1992년 - 2022년 (30년, 한 해의 절반)

 

 

또 하나 내년 2022년을 유력하게 볼 수 있는 근거는 바로 1992년이 북핵 문제의 출발점이었기에 그렇다. 북한이 핵을 개발하기 시작한 것은 1991년 말 소련 붕괴와 1992년 우리와 중국 간의 수교였다. 거의 동시에 철석같이 믿었던 큰 형님은 무너졌고 둘째 형님은 등을 돌렸다.

 

이에 북한 김씨 부자는 이빨을 갈면서 체제의 생존을 모색했고 그 결과 얻은 답이 핵과 미사일이었다. 이에 1992년으로부터 30년, 반대 흐름이 시작되는 시점이 바로 내년 2022년이다. 그렇기에 변화의 가능성이 높다.

 

 

제3번 도식: 1950년 - 1986년 - 2022년이다. (72년)

 

 

72년이란 60년 더하기 12년으로서 한 주기가 지난 뒤 새로운 변화가 본격화되는 시점을 말한다.

 

여기에 해당되는 내용을 볼 것 같으면 이렇다. 1950년 북측이 적화통일을 싣한 6.25 전쟁이 있었다. 그로부터 36년이 흘러 1986년이 되자 우리 대한민국은 놀라운 경제성장과 함께 국력이 비약적으로 신장하기 시작했다. 이로서 남북한 간의 체제 경쟁은 사실상 우리 측의 승리로 귀결이 났다.

 

그로부터 다시 36년이 흐른 시점이 바로 내년 2022년이다.

 

최근 보면 북한의 모든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고 봉쇄는 여전하다. 미국은 그간의 실패를 경험삼아 더 이상 어설픈 달래기라든가 구슬리기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더불어 그간 북한은 국제사회에서의 신뢰를 잃어버렸기에 비핵화의 경우에도 구체적인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는 이상 미국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한다는 점도 있다.

 

지금까지 3개의 圖式(도식)을 통해 내년 2022년이면 뭔가 큰 변화가 있을 것 같다는 추측이 든다.

 

물론 그 변화가 어떨 것인지 전혀 감이 잡히질 않는다. 편하고 반가운 일은 아닐 것이다, 앞에서 얘기했듯 이제 그런 평화롭고 순탄한 통일의 길을 사라졌기에 말이다. 그 어떤 경우에도 단기적으로 우리 경제와 재정에 엄청난 부담을 줄 것이다.

 

예상해볼 수 있는 여러 일들이 있다. 김정은의 有故(유고)라든가 경제난으로 인한 주민들의 급격한 이반 등등, 그리고 갑작스런 체제 붕괴, 그럴 경우 중국이 압록과 두만강을 건너 안정을 명분으로 군 병력을 진주할 경우, 또 그에 대해 미국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그야말로 一波萬波(일파만파)의 일들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모든 추측은 방면의 전문가들이 많으니 굳이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다만 앞에서 제시한 3개의 圖式(도식)이 모두 내년 2022년 한 시점을 가리키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독자께서 어떤 환경에서 수채화 작업을 하시냐고 묻는 분이 있었다. 네, 아주 조그마한 화실이라고 답했다. 사진 반대편 공간엔 내 컴퓨터와 모니터가 있고 왼쪽 벽에는 3단 철제 수납공간이 있어 종이나 여타 도구와 재료들을 쌓아놓고 있다. 화면 안에만 해도 많은 것이 있다. 아들이 미국에서 직구해준 이젤과 LED등, 물병과 티슈, 붓과 스프레이, 커터, 왼쪽에 작업용 모니터, 그리고 붓들, 그 앞에 팔레트와 붓 닦는 티슈걸레, 스폰지와 타카, 스테이플러, 물감 접시들, 많은 것이 있다. 이젤 아래엔 물감 수납통이 있고 드라이기가 있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이것저것 참으로 많은 소도구들이 필요해진다. 오른 쪽 밝은 공간은 베란다이고 거기에 책꽂이가 있다. 나 호호당의 영혼은 늘 이곳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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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시원한 허공을 그려보고팠다. 제주 바다, 사진 오른 쪽이 어둡게 나왔지만 그냥 올린다. 그냥 느낌으로 즐기시길...

일부러 갈매기 한 마리도 그려넣지 않았다. 그냥 바람 가득한 허공이 주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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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니 힘든 날 편한 날도 있구나!

 

 

한 땐 사는 게 힘들었다, 하지만 아직 삶의 날들이 많이, 아주 많이 남아있어서 언젠가는 편한 날들도 오겠지 싶었다.

 

어제 7월 25일로서 66년을 살았다.

 

다행히도 그 사이에 형편도 많이 좋아졌고 또 아직 큰 질환은 없기에 앞으로 20년은 살 지 않을까 싶다, 목표는 우리 어머니처럼 세는 나이로 90을 찍어보는 거다. 물론 도중에 문제가 생기면 20년을 채우지 못할 수도 있겠다. 그러니 삶의 날이 대략 20년 정도는 남았다고 여긴다.

 

20년, 길다 하면 길겠지만 그간 살아온 느낌으론 그다지 길 것 같진 않다. 후딱은 아니겠으나 국수 넘어가듯 후루륵- 하고 흘러가지 않겠나 싶다.

 

 

주어진 20년을 어떻게 해야 잘 쓰고 갈까? (가성비를 생각하면서.)

 

 

아무튼 20년이 주어졌으니 그것들을 잘 사용할 생각 또는 계획을 세워보고 있다. 사람들이 노후를 준비할 때 돈이나 자금을 먼저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나 호호당 생각에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남은 시간과 세월을 어떻게 해야 알차게 보낼 수 있을지 하는 점이다. 해야 할 일이 있고 정리하고 매듭지어야 할 것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직 할 일이 제법 남았다는 말을 하고 나니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 웃음을 짓는다. 일본 고대 수필문학의 한 정점을 장식했던 요시다 켄코(吉田兼好)가 지은 “도연초”라는 책 속에 사람은 “길어도 마흔 전에 죽는 것이 남 보기에 흉하지 않고 적당할 것 같다”는 말을 남기고 있어서 그렇다.

 

그가 살았던 14세기 무렵의 삶은 고작 50 이었기에 늙어서 추한 꼴을 보이지 말고 아직 형색이 살아있는 40 이전에 죽는 것이 좋다는 말인데, 정작 그런 말을 남긴 그는 당시로선 대단히 이례적인 70 까지 살다갔다는 점이다. 마음을 비우고 살아서 오래 살았나?

 

돌아와서 얘기이다.

 

해야 하고 정리 매듭을 지어야 할 일은 두 가지.

 

 

가장 중요한 것은 손주를 보는 일

 

 

먼저는 손주를 보는 일이다. 낳고 또 낳아야만 기본을 달성한다고 본다. 내가 아들 하나를 얻었으니 그 아들이 다시 아들이든 딸이든 낳아야만 내게 주어진 생명으로서의 기본 과업을 마무리한다고 여긴다.

 

아들은 올 해로서 39세, 하지만 그간에 운세 순환이 바닥을 기는 바람에 이제 겨우 일어서려고 하고 있다. 작년이 立夏(입하)였다. 현재 자신의 사업을 하고 있는데 그게 자리를 잡아야만 결혼을 해서 자식을 볼 게 아닌가. (아들은 ‘비혼’이 아니다. 여건만 되면 결혼할 생각을 하고 있다. 다행한 일이다.)

 

손주를 보아야만 죽은 다음 누대의 조상들을 만나도 “내 할 일은 와고 왔습니다!” 하고 큰소리를 칠 게 아닌가. (조상령이란 게 있는지 없는지 그건 확실하지 않지만.)

 

여름 오후나 저녁, 짝을 지으려 정신없이 날고 있는 하루살이들을 보노라면 늘 그런 생각이 든다, 또 아파트 에어컨 실외기 받침대에 알을 낳아서 품을 수 있는 둥지를 틀고자 열심히 집주인 눈치를 보는 비둘기 쌍만 보아도 그렇다. 치열한 삶의 8할은 새끼 낳고 키우는 일이다.

 

 

자연순환운명학을 세상에 남기고 전파하는 일

 

 

다음으로 마무리할 일은 2014년에 성립되었다고 내 스스로 얘기했던 “자연순환운명학”의 이론을 사례와 함께 책으로 엮어서 세상에 남기는 일이다. 올 초부터 원고를 쓰기 시작했는데 세부 사항까지 다 마치려면 3년은 걸릴 것이라 본다.

 

그런 다음 그 책을 바탕으로 영문판 책을 만들어서 대략 3천권 정도 찍어서 전 세계 주요 도서관 앞으로 발송하는 일이다. 올 해로부터 10년 사업이라 여기고 있다. 2031년까지 마무리할 생각이다.

 

자연순환이론은 종전의 사주명리학과는 차원이 다른 이론이고 예측의 정확도 면에서 추종을 불허한다. 사람의 운명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사 모든 일에 적용이 되는 틀이기에 그냥 나 혼자 가지고 놀다가 가기엔 너무 아깝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오늘날 글로벌 권력 지형 상에서 주목받는 나라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자체만 해도 운명에 관한 정교한 이론이 있다고 제 아무리 소리쳐본들 미신 비슷한 것으로 치부되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가끔씩 상상해보는 꿈이 있는데, 하버드 대학이나 영국의 명문대학생들을 모아놓고 속는 셈치고 어디 한 번 내 이론을 들어보렴, 하고 그런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물론 그럴 기회는 없을 것 같기에 꿈이다.

 

그러니 책을 남겨야 한다, 그것도 오늘날의 표준 언어인 영문판 책으로. 글로벌 권력의 핵심 중추가 인지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가령 미국 동부 보스턴의 핵심들에게 자연순환 운운하는 따위는 머나 먼 로키 산맥 저 편 인디언의 알 수 없는 북소리 혹은 주문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달콤한 기대 혹은 상상

 

 

단지 하나 믿는 구석은 ‘옳고 강한 것은 스스로를 세상에 드러낸다’는 점이다. 톨킨이 남긴 반지의 제왕에서 보면 ‘절대 반지는 인두인 큰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았어도 결국은 누군가를 시켜서 자신을 세상에 등장케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영어 단어 right 를 생각해보라, 옳다는 뜻도 있고 권리라는 뜻도 있다. 다시 말해서 Right has right, 옳은 것은 권력(힘)을 갖는다. 이에 나 호호당의 자연순환운명학이 진짜일진대 그렇다면 그냥 맥없이 사라지진 않으리라 스스로 굳게 믿고 있다.

 

자연순환운명학이 세상에 등장한 것은 2014년, 그러니 60 년 뒤인 2074년에 가서는 온 세상 천지에 퍼져있으리라 기대한다. 당연히 그 때 나 호호당은 세상에 없겠으나 말이다. (아니면 저승에서 키득대고 있을라나?)

 

이상 두 가지 해야 하고 마무리를 지을 일에 대해 얘기했다. 나머진 모두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그간의 다른 목표들은 이제 다 정리했으니 

 

 

젊은 날엔 적지 않은 목표와 호기심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진리에 대한 탐구, 특히 인간의 철학과 종교, 역사에 대한 탐구가 그것이었고 또 하나는 내 발로 걸어서 중국 시안에서 이스탄불까지 여행해보는 일이었다, 땅의 크기를 알려면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는데 이건 40대 초반에 벌써 버렸다.

 

그러니 진리 탐구만 남았었는데 그 또한 이젠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다.

 

 

싯다르타를 따르자니 너무 힘이 들어서 

 

 

불교철학만 해도 오늘날 우리나라의 선불교는 원래 고타마 싯다르타가 가르친 것과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어떤 면에서 대승불교라고 하는 전체가 싯다르타의 가르침에 위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싯다르타의 가르침은 인도 자체에서 이미 틀려졌을 뿐 아니라 중국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중국식 철학과 사고방식이 곁들여져서 탄생한 것이 화엄경이고 법화경 원각경 등등의 경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동안 비교적 싯다르타의 가르침에 조금은 더 가까운 이른바 소승불교라고 대승불교 쪽에서 폄하하는 쪽도 열심히 진지하게 탐구해보았다. 대표적으로 ‘아비달마구사론’이나 ‘대승오온론’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세상엔 그 어떤 실재도 실체도 없다고 말한 싯다르타의 가르침과는 달리 실재나 실체를 인정하고 창조해내고 있었다.

 

유식불교는 모든 것이 幻(환)이라고 주장하면서 우리 의식의 근저에는 근본적인 실체인 ‘아뢰야식’이란 게 존재한다고 얘기하고 있으니 그 역시 결국 실재론이다. 이는 사물 자체의 궁극적인 실체를 얘기한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형이상학적 원리나 아뢰야식이나 방향이 다를 뿐 동등하다.

 

싯다르타가 얘기한 것은 사실 아주 간단하다. 모든 것이 모든 것을 의지하여 생겨나는데 그 모든 것엔 실체가 없다, 즉 無自性(무자성)이다. 전부가 실체가 없으니 그로서 모이고 집합된 나라고 하는 존재 또한 실체가 없다, 그저 그런 것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임시의 구조물이고 그게 끊임없이 변해가면서 이어가는 게 삶의 모습이라고 얘기한다.

 

그러니 임시의 나라는 것은 있지만 실체로서의 나는 아예 태어난 적도 없고, 태어난 적도 없으니 죽는 법도 없다. 生(생)이 있어야 死(사)가 있을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 나라는 존재를 실체, 즉 고유의 自性(자성)이 있다고 착각하는 까닭에 고통 받는 게 삶이다. 그런데 나 스스로 실체 없음을 알고 나면 고통 받는 나라는 존재는 임시 구조물로서 실체 없는 것들의 이합집산일 뿐이란 게 싯다르타의 얘기이다.

 

 

욕망이 결국은 앞선다는 사실

 

 

하지만 인간적 욕망은 싯다르타의 가르침만으론 너무나도 성에 차지 않는다. 내가 있는데 왜 없다고 하시나? 하면서 부단히 나라는 존재의 영원불멸을 믿고 싶어한다. 이어가야 하지 않겠어! 하면서. 너무나도 당연한 욕망이다.

 

그래서 사후 세계가 있기를 바라고 하느님이 계시는 천당이 있기를 바란다. 다만 고대 인도 방식에선 사후에 다시 윤회 전생한다는 식이고 기독교에선 영원히 하느님 곁으로 간다는 식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싯다르타는 김 팍 빠지는 설법을 남겼다, 현실의 삶에서 너라는 존재의 실체가 없는데 네가 죽은 뒤 갈 곳이 따로 어디 있겠느냐고.

 

너무나도 머리가 명석했던 고타마 싯다르타였다, 그는 비트겐슈타인보다 훨씬 더 똑똑한 천재였고 실천적 수행자였다. 그렇기에 그의 쿨(cool)한 가르침은 뜨거운 욕망으로 가득한 우리들이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노 땡큐! 하는 우리들이다.

 

 

고민 끝에 내린 헤징(Hedging) 또는 양다리 걸치기

 

 

저번 겨울 동안 ‘대승오온론’과 ‘화엄경’ 일부를 두어 차례 다시 읽으면서 고민했다. 나 호호당은 고타마 싯다르타의 제자인가 아니면 중국 대승불교의 제자인가, 또는 육조 혜능의 추종자인가를 놓고 고민했다.

 

뿐만 아니라, 사후 세계라든가 절대 神聖(신성)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가득해서 그야말로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내려놓았다, 더 이상 제대로 알고자 하지 않기로. 그냥 몽매한 중생으로 살다가기로 작정을 했다.

 

이에 생각을 두 가지로 나눠 쓰기로 마음먹었다. 하나는 쿨한 싯다르타의 가르침을 가진다, 또 한 편으론 은근히 또 다른 좋은 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버리지 않기로 말이다.

 

나름 知的(지적)이긴 하지만 실은 대단히 교활하고 천박한 잡놈의 생각이고, 말도 되지 않는 얘기지만 어쩔 수가 없다, 살아갈 날도 그리 많지 않으니 이제 좀 더 현실적으로 간다. 그런 나 호호당은 삶과 죽음 앞에서 천박하고 비굴함을 인정한다.

 

 

지적 바람피우기와 수채화에 빠져서 

 

 

그러니 이제 나 호호당의 길고 긴 지적 旅程(여정)은 대충 마무리가 되었다.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저 남은 것은 이 책 저 책, 이 사람 저 사람의 주장을 들어가면서 마치 난봉꾼처럼 독서 편력을 이어갈 생각이다. 그리고 열심히 조금이라도 더 멋진 수채화 작품을 만들어갈 생각이다. 아, 그리고 또 하나, 열심히 하늘과 구름과 바람을 구경하는 일이 그것이다. 

 

66세의 삶을 이 글로서 정리해보았다. 조금 어려운 얘기들도 있었지만 양해해주시길 바란다. 솔직한 글도 가끔은 써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