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에서 문득 나온 말

 

 

이빨 임플란트 본을 뜨려고 수원에 있는 치과에 갔다. 모니터에 보니 2012년부터 다녀간 날자가 기록되어 있었다, 세어보니 이번까지 9년간 25회였다. 그리고 그 옆에 만 66세라고 나와 있었다, 당연하지만 생소했다.

 

66세라!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내 나이를 잘 알고 있건만 정작 그 숫자를 대하니 어색했다. 곁에 있던 간호사님께서 “저도 그래요, 세월이 금방 가요!” 하는 것이었다. 끄덕였다.

 

그 세월 동안 언제가 가장 좋았어요? 하고 간호사님이 물었다. 나도 모르게 답했다, 예전에 돈이 궁해서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때 강아지가 와서 정말 행복했어요, 그 때가 가장...

 

순간 그 세월이 눈앞을 스쳐갔다. 강아지 이름은 가을이, 말티즈와 푸들의 믹스 견이었는데 그 놈과의 많은 추억들이 떠오르자 순간 울컥하면서 눈물이 핑-돌았다. 하지만 얼굴에 덮개가 있어 보이질 않으니 조용히 그냥 울었다.

 

 

가장 가난했을 때 가장 행복했었으니 

 

 

나 호호당의 운세 순환은 1997년이 바닥이었는데 가을이는 2003년 여름에 우리 가족에게 왔다. 키우던 집에서 며느리가 아기를 낳는 바람에 혹시나 하는 걱정에 덜컥 맡게 되었다. 가장 힘든 바닥의 시절이었고 그 무렵 돈이 궁해서 이빨 보철 치료도 중도에 포기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럼에도 강아지와 함께 보낸 그 몇 년의 세월이 전 인생을 통해 가장 행복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돈이 없어 궁상을 떨면서 힘들었지만 그 때가 가장 행복했다. 아마도 어려웠던 일들은 세월 속에서 다 잊혀 졌으리라, 힘든 건 잊히는 법이니까, 그리고 좋은 기억만 남아서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무렵 가을이가 있었고 미니 토끼 초롱이도 있었기에 토끼가 좋아하는 민들레 풀잎을 따기 위해 가을이를 데리고 월세 아파트 주변 산책로를 거닐던 추억, 항상 밝게 웃던 그 놈의 표정이 눈앞에 선연하다. 행복했었다, 참으로.

 

예전에 이른바 잘 나가던 시절, 돌이켜보면 늘 불만이었다, 부유하게 자란 터라 그저 자만심만 가득했으니 뭐든 성에 차질 않았고 당연히 고마운 줄 몰랐다. 그러니 행복하지 않았다.

 

운세의 바닥, 입춘에서부터 10년간의 세월, 객관적으론 그리고 주변에서 보기엔 너무나도 힘든 세월이지만 행복과 불행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점 신기하지 않은가! 큰 병 앓았던 사람이 건강을 되찾거나 회복의 희망이 보이면 너무나도 행복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인가!

 

 

힘든 시절은 사실 놀라운 선물일 수 있어서 

 

 

건강을 회복해서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넘칠 정도로 기쁘고 감사하듯 운세의 바닥이란 거 너무 두려워할 일만은 아니다. 그 또한 알고 보면 삶의 놀라운 선물이다. 자만심을 치워주고 하루하루의 삶에 감사한 마음이 들게 해주니 그건 정말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나 호호당은 그 이후 삶이란 너무나도 원더풀하고 경이로운 그 무엇이라 여겨오고 있다.

 

상담 중에 입춘 바닥에서 10년간의 세월은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고 소생하는 놀라운 기간이란 점, 겪어보지 않은 자에게 아무리 얘기해줘도 납득이 가게 할 방법은 없는 것 같다, 그냥 위로의 소리인가 보다 싶은 표정만 대한다.

 

 

돈은 중요하지만 그 자체만으론 아무 것도 아니란 사실

 

 

돈?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대단히 중요한 물건인 것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돈의 절대 액수는 절대 중요하지 않다.

 

세상에 돈 많이 벌게 되는 자는 드물다, 확률적으로 당연한 얘기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큰돈을 벌어보지 못한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행복할 수 있을 거란 착각에 빠진다.

 

돈에 찌들어 고생 고생하다가 조금씩 벗어날 때가 행복하다, 액수 자체는 절대 중요하지 않다. 돈은 조금씩 벌어갈 때의 맛이지, 벌고 나면 감히 말하지만 아무 것도 아니다. 모바일 게임을 하고 있다고 해보자, 10만점을 넘기지 못 하다가 어느 날 실력이 늘어 갑자기 30만점을 돌파하고 이에 분발해서 어느 날 100만점을 넘겼다고 하자.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더 이상의 만족은 없다. 돈도 그렇다. 그렇기에 나 호호당은 돈 많은 자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때론 측은하게 여길 때도 많다.

 

 

호호당의 건강관리 

 

 

이쯤에서 난데없이 죽음에 대해 얘기해본다. 이유는 조금 있다가 밝히겠다.

 

우리 모두 죽음을 두려워한다. 나 호호당 역시 그렇다. 하지만 아주 많이 두려워하진 않는다. 죽음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니, 환갑을 넘기면서부터 천천히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다. 저기 어디쯤에 그 문턱이 눈에 들어오기에 늘 준비한다. 어느 순간 아니, 거기가 아니고 바로 지금이야 하고 죽음이 찾아올 수도 있으니 그 때 너무 놀라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도 해가며 살고 있다.

 

물론 사람들은 죽음 자체보다 그 과정에서 겪는 고통에 대해 더 많은 걱정을 하며 지낸다. 건강 검진도 열심히 하고 어디 좀 이상하면 병원을 찾아간다. 게다가 운동도 어떻게든 좀 해보고자 하고, 체력도 유지해보려고 노력한다. 다 좋은 일이다.

 

그런데 나 호호당은 사실 1993년 직장을 떠난 이래 지금까지 28년 동안 건강검진을 한 번도 받지 않았다. 직장인이 아니기에 강제하는 이도 없다. 그러니 위장 내시경이나 대장 내시경, 피 검사 등등 해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건강에 무관심한 건 절대 아니다. 매주 친동생과도 같은 한의사가 왕진을 와서 진맥도 하고 침도 놓고 때론 약도 지어준다. 중국에서 안마를 배워온 또 한 명의 친동생 같은 후배에게 안마도 열심히 받는다.

 

작년에 혈압이 조금 생겼다가 정상이 되었고, 재작년엔 좌골신경통으로 걷기도 어려웠지만 교정 치료를 받으면서 좋아졌다. 이빨도 나름 최대한 수리하고 임플란트를 해가고 있다. 말인 즉 건강에 무관심한 것은 결코 아니란 얘기이다.

 

 

마음을 잘 써야 오래 살 것이니

 

 

타고 나길 건강하게 태어난 것 또한 사실이다. 다만 나 호호당이 건강을 위해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내 마음 씀씀이다. 用心(용심)!

 

매사 천천히 해가고 억지 부리지 않으려 한다. 욕심도 정도껏 부리려 한다. 가장 피해야 할 일은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이다. 증오심은 사람의 마음을 갉아먹는다. 집착 또한 몸을 못 쓰게 만든다. 성질을 부릴 때도 있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면 바로 사과한다, 잘잘못을 떠나서.

 

(강남역 삼성전자 빌딩 앞에 가면 이재용 X새끼 Y새끼, 죽일 놈 살릴 놈 하는 방송이 늘 크게 들려온다. 진짜 미워서 저럴까 싶다. 미움이 아니라 그저 ‘먹고살리즘’ 때문에 저런다면 그나마 다행한 일이라 여긴다. 사회정의, 불의타파, 친일파 정리 등등 그런 걸로 권력과 세력을 얻어 잘 먹고 사는 이들을 보면 그 역시 그렇다. 그래 잘 먹고 사슈! 한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거 힘든 일이다.)

 

그런 모든 것들이야말로 毒(독)이라 여긴다. 독을 가까이 두면 위험해지듯 나 호호당은 억지부리기, 성깔 부리기, 욕심부리기, 집착하기 등을 그때그때 씻어내면서 사는 게 건강관리라 여긴다. 흔히 하는 말로 “죽기 살기 식”이란 것이 있는데 나 호호당은 죽기 살기 하다 보면 빨리 죽게 된다고 여긴다. 상대방이 죽어도 그냥 죽겠는가? 말이다. 그러니 누군가 내게 죽기 살기로 나오면 냉큼 빨리 항복하고 죄송합니다 하고 사과까지 하겠다는 심정이다.

 

이게 나 호호당의 건강관리 방법이다. 너그럽게 편하고 수월하게 살아가는 것, 내 몸을 아끼고 내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는 것이 방법이다. 피지컬보다 마음가짐, 마음씀씀이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호호당의 마지막 환타지

 

 

그런데 갑자기 앞에서 죽음에 대해 얘기를 꺼낸 까닭에 대해 이제 밝힌다.

 

나 호호당은 죽음 뒤의 세계에 대해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고마타 싯다르타는 그런 따윈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만 말이다.) 관심이 많은 이유는 나 호호당의 환타지 때문이다.

 

나 호호당이 어느 날 죽었다고 하자. 저승길을 간다고 하자.

 

그러면 먼저 보낸 강아지 가을이와 또복이, 영롱한 눈빛의 토끼 초롱이, 또 동작동 뒷산 공원에서 겨울 입구에 누군가 내다버린 고슴도치-이름은 도치였다, 그리고 동작동 마을에서 13년을 지내면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사료를 주고 죽으면 염을 해서 뒷산에 매장해주었던 근 100여 마리의 고양이들이 나 호호당 가는 저승길에 일제히 마중을 나오지나 않을까? 하는 환타지이다. 부모님들과 조상님들도 나오시면 더욱 좋겠고.

 

얼굴을 서로 비비고 입술을 핥고 만져주고 안아주고 팔짝팔짝 뛰고, 흐르는 눈물이야 얼마든지 흐르든 말든 그거야 무슨 상관이랴! 그냥 펑펑 울지 뭐, 싶다.

 

그게 바로 다시 만나서 원을 푸는 거, 바로 邂逅(해후) 아니겠는가!

 

오늘 글의 제목이 “가장 행복했었던 시절”이다. 하지만 만일 그게 가능하다면 죽은 뒤에야말로 최고로 행복한 시절이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나 호호당이 죽음을 그렇게까지 두려워하지 않는 것 역시 이런 생각 때문이다. 제발 그런 때가 오길 바라며 하루하루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