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우울증이란 질병

 

 

오후 1시 경, 나로선 이제야 일어나서 아점을 먹을 시각, BBC 다큐를 보고 있었다. “트러스트 미, 아임 어 닥터”였다. 겨울 우울증에 대한 것이었다. 영어로 Seasonal affective disorder, 줄여서 SAD 라고 하는 질병이었다. (영문 이니셜이 나름 재치가 있다.)

 

겨울이 되면 심한 우울증에 빠지는 병이란 것이었다. 그냥 당연한 것 같은데 서구 사회에선 나름 치료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었다. 일조 시간이 짧으면 우울해지기 마련인데 위도가 높은 유럽의 겨울은 일조 시간이 정말 짧다.

 

런던의 경우 오늘 현재 일출은 아침 8시 3분이고 일몰은 오후 4시 14분, 일조시간이 겨우 8시간 11분이다. 노르웨이의 오슬로 같은 경우 일조시간이 겨우 6시간 30분에 불과하다.

 

그에 반해 우리의 경우 일출은 7시 47분이고 일몰은 오후 5시 33분, 일조시간이 9시간 46분이니 런던보다 1시간 35분이나 길고 오슬로보다 3시간이나 길다.

 

그러니 겨울 우울증 같은 것이 우리보다 분명 심할 것이고 사람에 따라 병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해지기도 하겠다. 치료법 역시 빛이다. 아침 햇빛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아니면 집에서 광도가 강한 불빛을 쪼이라는 것이었다.

 

 

겨울 생은 기본적으로 우울증 체질

 

 

겨울은 그 본질에 있어 죽음의 계절이다. 모든 것이 죽었거나 죽은 듯 지내는 계절이니 인간이라고 예외일 리 없다.

 

겨울 우울증에 걸릴 확률은 겨울에 태어난 사람이 더 높다. 타고날 때부터 이미 우울증 기질을 가지고 있고, 이에 겨울이 되면 다른 계절, 특히 여름 생에 비해 더 울적해진다.

 

 

계절에 따른 자살의 빈도

 

 

작업실에 나와 위키를 검색하다보니 겨울 우울증과 관련하여 연관 글이 있어 보니 계절에 따른 自殺率(자살률)에 관한 것이었다.

 

읽기 전에 그거야 당연히 봄이지 하고 찍었다. 본문을 읽어보니 역시 늦은 봄에서 초여름에 자살률이 가장 높다고 나와 있었다.

 

일반적으로 우울해지는 겨울을 예상하겠지만 답은 늦봄과 초여름이란 것이었다. 의학자들은 이런저런 요인을 감안하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가장 기본적인 것을 놓치는 경향이 있다.

 

자연순환운명학의 견지에서 얘기해본다.

 

겨울은 밤이 길고 해가 짧아서 우울해지긴 하지만 극단적인 선택을 하진 못한다. 자살이 보통 일인가 말이다. 그건 순간적이긴 하나 강력한 동기나 충동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울적하게 가라앉는 겨울엔 충동도 약하기 때문에 겨울에 자살률은 오히려 낮다.

 

그러나 3월 22일 경의 춘분이 되면 밤보다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그렇기에 춘분 무렵은 사람의 정서가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하는 때가 된다. 그렇기에 그로부터 60일 동안 사람의 정서는 그야말로 뒤죽박죽이다. 용기를 내기도 하고 때론 비관적인 생각도 들고 등등, 그러다 보니 어떤 이는 자살을 택하는 것이다.

 

 

3월 22일 경의 춘분이야말로 정서 변화의 때

 

 

요점은 즉 변화하는 때가 가장 어렵다는 얘기이다.

 

우리 대부분의 정서는 정서적으로 춘분 무렵이 되면 짜증이 속에서 치솟는다. 춘곤증이 가장 극심한 때이기에 육체적으로도 힘들다. 게다가 이 무렵이면 모든 것이 급작스럽게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이제 더 이상 막연한 생각들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서적으로 또 육체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이제 힘을 내어야 하는 때가 바로 춘분 무렵부터인 것이다. 그렇기에 춘분이 지나면 아, 올 한 해도 힘을 내어 살아가야 하는구나, 지긋지긋한 현실을 버텨야 하는구나 하는 자각이 든다.

 

그러니 짜증이 난다.

 

동서양 공히 봄을 두고 새로운 희망이 샘솟는 계절이라 말하지만 사실 그건 그냥 뻥이다. 立春大吉(입춘대길)이라든가 建陽多慶(건양다경)이라든가 하는 것은 그냥 우리식 덕담일 뿐이다. 좋게 해석하자면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정서적으로 힘들어가는 계절이기에 위로 차원에서 하는 사탕발림이라 하겠다.

 

봄은 죽었다가 되살아나는 계절이다, 그러니 그게 쉬울 까닭이 없다, 수난의 계절이다. 기독교에서 부활절 또는 오순절 등등 하는 것을 봐도 그렇다, 모두 이 무렵이 힘든 때임을 암시하고 있지 않은가.

 

이에 늦은 봄과 초여름에 자살이 많은 것은 결국 주어진 한 해를 부활해서 살아가기가 힘들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라 봐도 된다는 얘기이다.

 

 

정초에 세우는 계획은 요망사항일 뿐이다.

 

 

지금은 1월 정초이다.

 

사람들은 이 무렵에 나름 어떤 결심을 많이 한다. 새해 해맞이를 가서라든가 아니면 혼자 조용히 길을 걷다가 갑자기 어떤 목표를 세우거나 결심을 한다. 가령 담배를 끊겠다거나 새해엔 더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 올 해엔 꼭 취업에 성공하겠다는 결심 등등.

 

하지만 이맘때엔 하는 결심이나 목표 세우기는 사실 지켜질 가능성이 대단히 희박하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길고 길 겨울잠을 자다가 잠시 꾸어본 꿈과도 같다.

 

그렇기에 나 호호당은 누군가 정초에 올해엔 담배를 끊겠다거나 어떤 결심을 했다고 말하면 그다지 귀담아 듣지 않는다. 그냥 요망사항 정도로 받아들인다.

 

정초의 플랜이 왜 구현 가능성이 적을까? 이 점에 대해 얘기해보자.

 

플랜이란 기본적으로 비전(Vision)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비전이 무엇인가? 문자 그대로 앞날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런데 1월은 축월이다. 한 해를 통해 가장 어둡고 컴컴한 때가 아닌가. 모든 것이 잠들고 죽어있는 때이기에 사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많지 않고 머릿속으로 즉 상상으로 그려보는 것이 더 많은 때가 축월이다.

 

상상으로 그려본 그림을 뭐라 하는가. 상상화이다. 달리 말하면 환타지 그림이다.

 

그러니 구체적인 방법론도 애매할 것이고 계획을 밀고 나갈 의지나 체력 같은 것이 과연 내게 있는지도 잘 모른다. 그냥 요망사항을 나열하는 게 고작이다. 일례로 올 해엔 공부를 잘 했으면 좋겠다는 것은 요망사항이지 계획이 될 순 없다는 얘기이다.

 

정초에 우리들은 요망사항을 느끼고 그것을 계획이라고 포장하는 것이다.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천해나가려면 그 실천 행동이 일종의 습관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전혀 습관이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계획을 세운다 한들 그 계획이 실천 가능할 까닭이 없다.

 

공부 못 하던 학생이 정초에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적을 올리겠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하자. 성적을 올리는 것은 고사하고 그간에 열심히 하지 못했던 행동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새해가 되었다고 달라진 것 전혀 없는데 말이다.

 

어느 한 순간 ‘난 할 수 있어’ 하는 말을 백 번 천 번 외친다고 해서 일이 되지는 않는다. 매일 매일 그런 말을 반복하면서 일 년 내내 끈질기게 들러붙을 때 비로소 일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열심히 하는 것이 습관이 될 때 가능하다. 그러니 다시 말해서 정초의 계획은 그냥 요망사항에 그치는 것이 대부분이다.

 

 

연초의 전망 또한 그저 상상화일 뿐

 

 

새해가 되면 새 해의 전망에 관한 기사가 많이 만들어진다. 방면의 전문가를 모셔서 얘기를 듣기도 하고 나름 전문가들이 기사를 쓴다.

 

하지만 그냥 들어두는 정도로 그치는 것이 좋다. 석 달만 지나도 당초의 전망과는 전혀 다른 그림 혹은 광경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일 년을 하루에 비견해보자. 양력 1월은 丑(축)월인데 이는 하루 중에 축시, 즉 새벽 1시 30분부터 3시 30분에 해당된다. 캄캄한 밤이다. 멀리 있는 사물이 보일 까닭이 없다. 그러니 한 밤 중에 날이 밝으면 일어날 일을 전망해본들 그 전망이 잘 맞을 수가 없다는 얘기이다.

 

떨어져 있는 사물을 보려고 하면 일단 동이 터야 한다. 동트는 시각을 대략 오전 6시 반이라 한다면 그건 3월 22일의 춘분과도 같다. 이에 해가 떠서 밝은 시각은 빨라야 7시 반일 것이니 그건 양력 4월이다.

 

따라서 새 해의 일은 4월 정도가 되어야만 그나마 윤곽이 드러난다.

 

그러니 연초 또는 정초의 새 해 전망은 그냥 상상 속의 그림인 셈이다. 물론 방면의 전문가가 그린 것이지만 말이다. 아울러 정초의 계획 역시 그렇다.

칼바람을 맞으며 책을 사오다.



부터 기온이 내려간다. 이건 칼바람, 고개를 파묻고 어깨를 움츠려서 걷는다. 목도리 하고 나올 것을, 잠시 후회한다. 교고쿠 나쓰히코의 後(후)항설백물어가 번역 출간되었다는 신문의 소개를 보고 강남 교보문고를 들렀다 오는 길에서다. 


항설백물어, 한자로 巷說百物語, 巷間(항간)에 전해지는 백가지 이야기란 뜻이다. 처음에 항설백물어가 나왔는데 인기를 얻게 되자 계속 속편들이 나오고 있다. 그야말로 天才(천재)작가가 아닌가 싶다. 多作(다작)인데 일정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놀랍다,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생각과 아이디어가 샘솟는 모양이다.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생일을 검색해보니 1963년 3월 26일생, 癸卯(계묘)년 乙卯(을묘)월 戊辰(무진)일이다. 그간의 흐름으로 볼 때 1998년 戊寅(무인)년이 기의 절정인 立秋(입추)였음을 알 수 있다. 


1994년에 데뷔한 이래 많은 상을 받았으며 그의 작품은 만화로도 많이 제작되었다. 올 해가 2019년이니 이제 운세는 大雪(대설)이다. 슬슬 힘이 빠질 때가 가까웠다는 생각을 해본다. 



책도 상품이기에 유혹을 해온다.



시중에 나온 모든 상품들은 나름의 유혹질을 해댄다. 나 어때?, 나를 사보시지 그래, 이런 식이다. 유혹하지 않는 상품은 상품이 아니다. 그러니 모든 상품은 화장을 하고 차려 입고 있어야만 한다. 


책 역시 마찬가지, 그렇기에 책방에 들러 제목과 표지를 눈으로 훑어 가다보면 나름의 유혹이 담겨있다. 우리나라는 책을 잘 읽지 않는 나라, 그 바람에 책 표지와 장정엔 나름 최대한의 功(공)이 실려 있다. 하지만 역시 책은 제목이 중요하다. 


하지만 수 십 년간 책을 고르고 읽어온 나로선 어설픈 유혹엔 넘어가지 않는다. 내가 닳고 달아서 그런 것인지 대부분의 책 제목들은 그저 얍삽하게만 여겨진다. 영화를 많이 보다 보면 포스터만 봐도 얼추 눈치를 차리듯이 책 역시 마찬가지이다. 


얍삽한 제목은 역시 수필집에 많다. 대부분 몇 년 사이 유행하는 문구나 어투를 약간 변형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아무 것도 없지만 뭔가 있어 보이는 투의 제목. 


그런가 하면 최근엔 소위 인문학 책이란 것 역시 마찬가지, 국내 저자들이 쓴 인문학 책은 그 제목이 보는 내가 부끄러워질 정도, 물론 한 권이라도 더 팔아보기 위해 그런 제목을 달아야 하는 출판사의 고충도 이해가 가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니 수필집이나 국내 저자의 인문학 책은 어지간하면 바이 패스. 



소설책은 사람을 유혹하기가 어렵다.



문제는 소설이다. 


소설 역시 책으로 만들어졌으니 당연히 상품이다. 그런데 유혹의 향기를 내기가 정말 어렵다. 표지 장정과 약간의 서평을 제외하면 전혀 정보가 없다. 


유명작가라면 그 자체가 셀링 포인트가 되지만 그렇지 않은 작가의 소설은 정말 팔리기가 어렵다. 다른 책처럼 지식을 전달하는 것도 아니요 펼쳐보면 그냥 그저 그런 글과 문장이 인쇄되어 있는 것이 소설이다. 


유명작가가 아닐 경우 그 소설이 만족감을 줄 것인지 여부에 대해 책갈피를 들춰본다고 알 수 있지가 않다. 소설은 다 읽어야지만 그 소설이 어떤지를 알 수 있으니 구매시점에선 참으로 난감하다. 서평이란 것이 몇 문장 뒷면에 붙어있지만 그거야 모르는 일. 


그러니 잘 모르는 작가나 처음 대하는 작가의 소설책을 구매한다는 것은 사실 무모한 투기행위에 가깝다. 그러니 그냥 운이다. 


그에 비해 시집은 구매 결정이 상당히 수월하다. 몇 편 읽어보면 흥취를 느낄 수 있는지 아닌지를 금방 가늠할 수 있으니 말이다. 


지금은 내가 ‘빠’가 되어버린 교고쿠의 소설도 처음엔 표지 장정에 끌려서 샀다. 요괴 그림이 그려져 있어 그런대로 흥미가 있을 것 같아서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샀다. 물론 읽으면서 이건 대박인데 싶었지만 말이다. 


책이 좋다 싶을 때 내가 표하는 최고의 敬意(경의)는 책의 문장을 소리 내어 낭독하는 것이다. 낭독은 目讀(목독)보다 읽는 시간이 2-3배는 걸린다. 하지만 그만큼 얻는 즐거움도 크다. 


글과 내용이 시시하다 싶으면 눈으로 다 읽는 것이 아니라 건너뛰기를 한다. 그럼에도 아니다 싶으면 마지막 페이지 근처로 가서 좀 살펴보다가 던져버린다. 그리고 다음 해 2월 20일 경의 우수가 되면 내다버린다. 



서글프기도 하고 충격적이기도 한 이야기



또 다른 이야기를 해본다. 


‘서양중세사’란 책이 있다. 원 제목은 Western Europe in the Middle Ages, 300-1475 이니 엄밀히 말하면 ‘서구 중세사’라 해야 할 것이다. 1970년 미국에서 출간되었는데, 집문당이란 국내 출판사에서 아주 오래 전에 번역본을 내었다. 


번역도 대단히 훌륭하고 내용은 더더욱 좋다. 서양 중세사 입문 텍스트라 할 수 있는 이 책은 대할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뿐만 아니라 국내의 경우 서양 중세 전반을 다루고 있는 국내 유일한 입문서이기도 하다. 그러니 국내에서 서양사학과를 전공한 모든 학생은 이 책으로 공부를 시작한다고 한다. 


아쉬운 것은 서양 중세를 개괄하는 책이라곤 이 책이 전부라는 점이다. 


우리에게 서양 또는 西歐(서구)란 사실 엄청난 의미를 지닌다. 근대화라 하면 서구 근대화나 별반 차이가 없지 않은가. 서유럽의 중세를 모르고서야 어떻게 서유럽의 근대와 오늘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니 그 거대한 존재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서유럽 중세사에 대해 입문할 수 있는 번역된 텍스트가 겨우 이 한 권밖에 없다는 점은 사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솔직히 내겐 평생을 두고 충격적이다. 


게다가 서양 역사에 관해 다양한 책을 읽어오면서 눈이 넓어지다 보니 앞서의 저 책 역시 부분적으로 저자의 치우친 견해도 느껴진다는 점이다. 그런데 국내의 경우 저 책이 유일하니 저자의 편견 역시 고스란히 입문자들에게 옮아왔을 것이라 생각하면 우울해지기까지 한다. 


좀 더 확장하면 서양 중세를 개관하는 책이 달랑 한 권밖에 없다보니 우리 사회 전체가 서양 또는 서구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이해에도 일정한 한계가 주어질 수밖에 없으리란 생각도 하게 된다. 


하지만 비판은 그만 두자. 어쩌다 책 얘기를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이 또한 세월이 가면 나아지겠지 하는 마음이다. 



요괴는 세상엔 없지만 그렇기에...



바야흐로 丑(축)월이다. 한 해를 통해 가장 어둡고 추운 때이다. 가만히 있어도 갖가지 공상들이 허공에서 스물스물 머릿속으로 배어든다. 쉬이 잠들지 못하는 긴 밤, 시간을 메울 긴 이야기책이 필요하다. 그러니 교고쿠 나쓰히코의 요괴 괴담 소설을 찾게 된다. 


교고쿠의 주장은 참 말이 된다. 요괴는 세상에 없다, 하지만 있다고 여기면서 사는 것이 재미도 있고 나아가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것이다. 가히 환타지 문학의 정신 또는 스피릿(spirit)이 아닐까 싶다. 



축월에 꾸는 꿈은 저마다 비밀이어서



축월의 땅은 꽁꽁 얼어붙어서 딱딱하다. 몇 년 전 서울 교외로 나가서 포장되지 않은 맨땅을 맨발로 밟아본 적이 있다. 차갑고 딱딱해서 내가 알던 폭신한 땅이 아니었다. 땅이 사람과 소통할 마음이 없구나! 땅이 거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두기로 했다. 땅의 마음은 지표면으로 나와 있지 않고 깊은 땅속으로 들어가 숨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깊은 속에서 저만의 꿈을 꾸고 있구나 하는 생각. 


그 꿈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땅은 외면하고 있었다. 그래, 저만의 꿈을 꾸고 있겠다는데 굳이 내가 성가시게 할 것은 없지 싶었다. 


시내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땅이 저만의 꿈을 꾸듯이 축월엔 나도 나만의 꿈을 꾸어야지 했다. 축월의 모든 꿈은 그러니까 비밀인 것이다. 


글을 마쳤으니 오늘 사온 후항설백물어 속으로 즐겁게 빠져봐야지.


마리아 운세에 있어 절정의 운에 개봉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앞글에서 마리아가 운명의 하지에 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그 바람에 독일 오스트리아에서 영화화되었을 뿐 아니라 1959년에는 미국 브로드웨이의 뮤지컬로 만들어졌으며 1965년에는 급기야 ‘사운드 오브 뮤직’이란 영화가 되어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는 얘기를 했다. 


1965년은 乙巳(을사)년, 마리아의 운세 순환에 있어 가장 빛나는 寒露(한로)의 운, 즉 1925년 입춘 바닥으로부터 40년이 경과한 때였기에 그야말로 부와 명예를 얻었다. 이미 그녀는 미국은 물론이고 오스트리아로부터 감사패와 명예훈장 등을 받은 바 있었다. 


그러니 사실 마리아의 금전적 상황은 책을 낸 1949년 이후론 이미 크게 호전된 상태였다. 이에 가족합창단은 1957년에 해체되어 자녀들은 저마다 자신의 갈 길을 갔다. 마리아는 정착해 살던 버몬트에 규모가 큰 산장 여관을 지어서 생계 문제를 해결한 뒤에 자기 소생의 자녀 셋과 함께 파푸아 뉴기니로 가서 선교 일을 했다. 


그러다가 영화가 대성공을 거둔 1965년 다시 버몬트로 돌아와 산장을 경영하면서 서서히 막내아들에게 경영을 넘겨주었다. 


마리아는 1987년 3월 28일 심장마비로 인해 82년의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1985년은 1925년 입춘 바닥에 이어 마리아가 맞이한 또 한 번의 입춘 바닥이었기에 입춘을 지나 우수 무렵에 사망한 것이다.)


마리아의 사주를 보면 甲辰(갑진)년 丁丑(정축) 乙丑(을축)일이다. 가장 추운 축월에 태어났고 사주 월에 丁火(정화)가 있으니 심장 계통이 약하다는 것을 금방 알아볼 수 있다. 



마리아의 삶과 운명



10살 때 천애고아가 되었고 그 바람에 교사 과정을 이수한 후 수도원에 들어가 수녀 과정을 밟던 중, 우연히도 애가 일곱이나 되는 부잣집의 가정교사가 되었다. 그러다가 입골 아이들과 듬뿍 정이 들었고 이에 돈 많은 홀아비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하느님께서 너는 수녀가 아니라 그 집의 아내이자 엄마가 되어라 하고 명하셨던 모양이다. 


윤택하게 잘 살면 좋았을 것을 1935년 오스트리아 금융공황으로 인해 부부는 모든 금융자산을 날려버리게 되고 또 이어서 나치의 탄압을 피해 고국을 등지고 가족합창단으로 생계를 이어가면서 여러 나라를 전전하다가 마침내 미국의 버몬트 ‘깡촌’으로까지 흘러왔다. 


그러던 중 남편이 폐암으로 세상을 등졌고 아이 열의 과부가 된 마리아였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살림을 꾸려가던 중 자신과 가족의 얘기를 책으로 출간한 것이 계기가 되어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게 되었다. 


이 얼마나 극적이고 파란만장한 스토리인가! 



실제 이야기와 사운드 오브 뮤직의 차이점



물론 마리아의 실제 삶과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소개된 이야기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저 유명한 ‘도레미 송’을 비롯하여 뮤지컬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음악과 노래들은 물론 마리아 가족 합창단의 노래가 아니었다. 미국 뮤지컬계의 전설적인 작곡가 리처드 로저스와 작사가인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가 만든 노래이고 음악들이다. 


참고로 얘기하면 리처드 로저스는 해머스타인과 함께 사운드 오브 뮤직만이 아니라 오클라호마!(1943), 남태평양(1949), 왕과 나(1951) 등을 만들어낸 미국 뮤지컬계의 전설이다. (이 양반의 사주도 소개하고 싶지만 지면 관계상 생략한다.) 


영화의 첫 장면은 줄리 앤드루스(마리아 역)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인근의 푸른 산록에 펼쳐진 광활한 풀밭을 걸어오면서 활짝 팔을 펼치고 ‘사운드 오브 뮤직’을 부르면서 시작된다. 짧게 커트를 친 줄리 앤드루스의 맑고 고운 고음이 너른 풀밭에 울려 퍼진다. 그것만으로도 벌써 감동이다. 


혹시나 보고픈 마음이 든다면 유튜브에 들어가 ‘The Sound of Music Opening Scene’이라고 입력하면 된다. (영화의 곡은 뮤지컬의 곡과 같다.) 마리아(maria),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My Favorite Thing), 도레미(Do-Re-Mi), 잠자리 인사조의 노래인 안녕, 안녕히 (So Long, Farewell), 그리고 에델바이스 등 참으로 주옥같은 노래들이 영화에 담겨있다. 


참고로 노래 에델바이스는 오스트리아의 민요가 아니라 뮤지컬을 위해 만들어진 곡이다. 하지만 오늘날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마치 이 노래를 마치 원래의 국민가요인양 부르고 또 애호하고 있다. 


실화와 영화의 큰 차이점은 영화에선 극적 재미를 위해 트라프 가족이 오스트리아를 탈출하기 위해 한 밤중에 아슬아슬하게 산록을 넘어 스위스로 탈출하는 장면으로 묘사되지만 사실 그런 스릴은 없었다. 그냥 온 가족이 기차를 타고 편안하게 이탈리아로 넘어갔다. 제2차 대전 발발 1년 전이었기 때문에 여행에 대한 통제가 없었던 까닭이다. 


영화는 이처럼 약간의 각색이 있었으나 실제 마리아의 삶은 그 이후로도 훨씬 고단했다. 



가장 암울한 순간이 반전의 시점이었으니



1905년 1월에 태어난 마리아의 삶은 1915년, 10세 때 고아가 되면서 고생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1947년 남편이 사망했을 때 절정에 달했다. 실로 앞날이 막막했으리라. 하지만 바로 그때가 바로 고생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마리아는 자신의 얘기를 글로 시작했으니 그 책이 1949년에 출판되면서부터 극적으로 풀려 나갔다. 그러니 34년에 걸친 고단한 삶을 견뎌야 했던 마리아였다. 



응달 30년이면 양달도 30년이다.



나 호호당은 얘기한다. 아무리 큰 고생이라도 30년이 넘어가면 서서히 풀리게 된다고. 60년에 걸친 순환이기에 응달 30년이었다면 따뜻한 양달의 세월 또한 30년은 주어지는 법이라고. 


여기에 예외는 없다. 그 어떤 삶도 60년에 걸쳐 양달 30년 응달 30년의 삶을 살게끔 되어있다. 물론 정도의 차이야 있겠으나 말이다. 


1955년생인 나 호호당 역시 서른여섯이 되던 1991년부터 헛바람이 불어 亡兆(망조)가 들었다. 그리고 고생 좀 했다. 하지만 기대하고 있다, 30년이 흐른 2021년이 되면 이윽고 양달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삶이란 그렇게 해서 흘러가고 이어져가는 무엇인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앞날이 많이 어둡다. 정확히 말하면 올 해 2019년부터 진짜 고생길로 접어든다. 그러니 10년 뒤인 2029년이 되면 그야말로 땅을 치고 앞길이 막막해져 있을 것이라 본다. 하지만 나 호호당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운의 흐름은 망하고 나면 또 다른 길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막히면 또 다른 길이 열리게 되는 운명의 묘한 이치



마리아의 경우 1935년은 바닥으로부터 10년이 흐른 청명의 때였다. 봄빛이 비쳐온 것이다. 이 해 남편은 금융공황으로 재산을 다 털어먹었을 때인데 실로 묘하게도 신부님이 집에 오셔서 머물면서 가족들에게 음악을 가르쳐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게 인연이 되어 가족합창단으로 먹고 살 길을 열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신비한 가. 


이처럼 누구나 사람은 입춘 바닥으로부터 10년이 흐르면 당장 좋은 일은 없을지라도 앞날을 살아갈 수 있는 어떤 계기가 주어진다. 그런데 재미난 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계기가 될 것이란 것을 감지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입춘 바닥으로부터 15년이 흐르면 사람은 간절해지고 성의가 넘친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길이 열리게 된다. 여전히 사람들은 현재 자신이 풀려 나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감지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입춘 바닥으로부터 22.5년이 흐르면 60년 순환에 있어 夏至(하지)를 맞이한다. 양력 6월 22일 경의 그 하지와도 같다. 이때 결심을 하고 무언가를 시작하면 그 일은 무조건 되게끔 되어있다. 입춘 바닥으로부터 22.5년간의 고생을 통해 다져진 그 사람만의 알맹이가 있기 때문이다. 


마리아의 경우 1925년이 입춘 바닥이었기에 22.5년이 흐른 1947년, 남편이 사망한 그 해, 자신의 진솔한 마음을 담은 책을 쓰게 된 것이 성공의 출발점이었다. 그 때가 그녀의 운세 흐름에 있어 夏至(하지)였던 것이다. 


입춘 바닥으로부터 하지는 22.5년 후에 오고 그로부터 다시 17.5년이 흐르면 40년이 되니 운세 흐름에 있어 절정인 寒露(한로)의 운이 찾아드는 것이니 그때가 되면 사람은 비로소 내가 나름 성취를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니라의 경우 입춘 바닥은 1964년이었기에 하지는 1986-1987년경이 되고 그로부터 17.5년이 흐른 때는 2004년이었고 한로의 운이었다. 그 무렵부터 대한민국은 이른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던 것이니 사람이나 나라나 운의 흐름은 동일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좀 더 얘기를 붙이면 성공한 자는 으레 교만해지기 마련인 법, 한로로부터 10년이 흐르면 매너리즘에 빠져들기 십상이고 다시 5년이 흐르면 어려워진다. 대한민국 역시 성공의 때인 2004년부터 올해까지 15년이 흘렀으니 이제 어려워지고 있다. 


모든 것은 流轉(유전)하고 循環(순환)한다. 그러니 運(운)이다. 


이번 주말 토요일 12일부터 자연순환운명학 기초강좌를 시작한다. 아직 신청이 가능하다는 점 알려드린다. 그리고 작년에 그려서 만든 성당 달력, 아직 재고가 남아있기에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


10살에 고아가 되어 세상을 버리고 수녀가 되고자 했던 처녀



은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아서 2회에 나누어 글을 쓰고자 한다. 


보통의 가정에 태어난 마리아란 이름의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10살 때 불행하게도 양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었다. 18세에 교사 과정을 이수한 뒤 정식 수녀가 되기 위해 수도원에 들어갔다. 우리로 치면 머리를 깎고 행자가 된 셈이다. 


그녀의 생년월일은 1905년 1월 26일, 甲辰(갑진)년 丁丑(정축)월 乙丑(을축)일이 된다. 丑(축)월에 태어난 乙木(을목)인 바, 그녀의 일생을 돌이켜볼 때 그녀의 입춘 바닥은 1925 乙丑(을축)년이었고 입추는 1955년임을 알 수 있다. 


부모를 모두 잃은 불상사가 그녀의 나이 10살이 되던 해였으니 1915년의 일이었다. 乙卯(을묘)년이고 운세 흐름은 입춘 바닥이 되기 10년 전인 大雪(대설)의 운이었다. 큰 눈이 펑펑 내린다는 대설 말이다. 10세의 어린 소녀가 눈 내리는 벌판에 혼자 내버려진 셈이었다. 얼마나 가련한가!


수도원에 들어간 것은 1923년이었으니 입춘 바닥 2년 전이다. 교사과정을 이수하긴 했으나 그녀에겐 별 의미가 없었던 모양이다. 이에 세속을 버리고 수녀의 길을 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하느님의 품안에서 안식을 찾은 것이다. 



전설의 시작



그녀는 수도원에 적을 두고 학교 선생 일을 하고 있었는데 입춘 바닥 다음 해인 1926년에 한 아이의 가정교사를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부잣집이었다, 그런데 그 집은 자녀를 일곱이나 낳은 엄마가 홍역을 앓던 중 그만 먼저 제 세상으로 떠난 집이었다. 


마이라는 처음에 한 아이만을 맡았으나 결국 어쩌다보니 일곱 자녀를 모두 돌보게 되었다. 고아로 자란 터라 아이들을 돌보게 된 것이 마리아에겐 커다란 위안이 되었던 것이다. 외로운 사람은 누군가를 돌보게 되면 책임감도 생기고 살아갈 의욕도 생기면서 위로도 받는 법이다. 


마리아가 진심으로 자녀들을 아끼고 잘 돌보는 것을 지켜보던 그 집 아버지, 홀아비는 어느 날 그녀에게 청혼을 하게 된다. 홀아비 남자는 마리아보다 나이가 무려 25살이나 많았다. 하지만 마리아는 수녀의 길을 포기하고 청혼을 받아들였다. 


그녀의 훗날 회고에 따르면 부잣집 홀아비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다 보니 청혼을 받아들였다고 심중을 밝히고 있다. “나는 아이들과 결혼한 셈이지요, 하지만 세월이 가다 보니 서서히 남편도 사랑하게 되었어요.”


나 호호당은 그녀의 저런 말이 액면 그대로의 진심일 것으로 확신한다. 왜냐면 결혼한 때는 1927년 11월인 바, 그녀의 운세로 보면 1925년 입춘 바닥에서 겨우 2년이 지난 때, 그러니 미래에 대해 그저 막막한 심정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살을 부비고 살아가는 아이들과 헤어지기 싫다는 것이 전부였을 것이라 본다. 



마리아의 남편 이야기



여기에서 잠깐 마리아가 결혼한 남자, 무려 25살이나 연상인 사람에 대해 알아보자. 


마리아의 남편은 오스트리아의 기사 계급 출신으로서 이름이 게오르크 폰 트라프, 오스트리아 제국의 해군 장교였다. 


제1차 대전이 터지기 전 게오르크는 영국 해군 제독들과 교분을 쌓았고 그러다가 영국의 부유한 귀족 집안의 딸과 1912년에 결혼을 하면서 크게 부자가 되었다. 아내가 가져온 거액의 지참금 때문이었다. 


그런데 1914년 제1차 대전이 발발하자 잠수함 함장으로서 무려 11척의 영국이나 프랑스 함선을 격침시키는 혁혁한 무공을 세웠고 최고 훈장을 수여받았다. 


그런데 막대한 지참금과 함께 아들 둘과 딸 다섯을 낳아준 고마운 아내가 1922년에 사망했던 것이고 이에 졸지에 애 일곱의 홀아비가 된 그는 어쩌다가 마리아와 인연이 닿게 되었던 것이다.


 

영원히 이어지는 것은 없어서



아무튼 마리아 남편의 입장에선 정말 그야말로 대박이었을 것이다. 일곱 자녀를 끔찍이 아껴줄 뿐 아니라 나이 또한 25살이나 연하의 젊은 색시를 얻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냥 그래도 잘 살면 되는 일이었는데 세상사가 그렇지가 않다. 세월이 가면 반드시 변동이 생기는 법. 


남편 게오르크는 당초 재산을 글로벌 금융 센터인 영국 런던의 은행에 맡겨두었는데 한 친구의 권유로 오스트리아 은행으로 옮겨오게 되었으니 이게 화근이 되었다. 


1929년 미국에서 공황이 터지자 온 세계로 파급이 되었는데 그러다가 1935년 어느 날 오스트리아 금융 전체가 공황에 빠져들고 말았던 것이다. 그 바람에 게오르크는 막대한 금융자산을 몽땅 날려먹고 말았다. 청천 하늘에 날 벼락 격이었다. 


사실 게오르크의 운세 흐름에 대해선 얘기를 하지 않았지만 간단히 말하면 그의 운명으로 볼 때 처가로부터 얻은 자산을 지킬 팔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또 마리아의 운으로 보면 1935년은 이제 입춘 바닥에서 10년이 흐른 淸明(청명)의 운이었기에 마리아 또한 부잣집 마나님 팔자는 아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다행히도 큰 저택 한 채는 남아있었기에 게오르크는 부랴부랴 저택의 꼭대기 층으로 살림을 옮기고 밑의 층엔 임대를 주는 방식으로 생활비를 마련했다. 



길이 막히면 또 다른 길을 열어주는 운명, 그 신비함



그런데 운명의 일은 참으로 신비하기까지 하다. 이 무렵 오스트리아 대주교가 음악에 밝은 신부 한 분을 부부 집에서 기거하도록 했는데, 두 부부는 이 신부로부터 음악과 합창에 대해 배우게 되었고 또 그 바람에 부부는 아이들과 함께 가족 합창단을 만들어 공연을 했다. 


이처럼 운명은 가장 암담한 때에 훗날 가족이 생계를 꾸려갈 수 있는 또 다른 길을 열어주었던 것이다. 



끊임없는 고난의 길



그러나 고난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히틀러가 광기를 내비치면서 파시즘의 물결이 오스트리아를 뒤덮어왔다. 


그 사아에 마리아는 남편과의 사이에 세 자녀를 두었는데 이들 부부는 모든 아이들을 이끌고 오스트리아를 떠나 이탈리아로 갔고, 다시 영국으로 갔다가 마침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나치 독일은 부부의 저택을 나중에 히틀러의 실세 막료이자 유태인 학살을 진두지휘했던 하인리히 힘러의 사령부 건물로 사용했다.)


미국으로 간 것은 1940년이었다. 그녀의 운세에 있어 이제 여름이 시작되는 立夏(입하)의 운이었다. 여전히 고달프긴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는 일은 없어진 것이다. 


부부가 미국으로 가서 정착한 곳은 미국의 ‘깡촌’ 버몬트 주의 한 시골마을이었다. 버몬트, 메이플 시럽의 생산지이자 수려한 자연풍광으로 유명한 곳이고 반대로 인구는 엄청 적다. (구론산 바몬드의 바몬드는 버몬트이고 바몬드 카레 또한 우리에게 익숙하다, 하지만 사실 일본 기업이 만든 제품일 뿐 버몬트 주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 


부부는 미국에서 가족합창단 순회공연을 다니면서 겨우 생계를 이어갔다. 하지만 또 불행이 닥쳤으니 1947년 남편 게오르크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夏至(하지)의 운, 사람이 분발하는 때



하지만 마리아는 더욱 분발했다. 홀몸이 되어 열 아이의 장래를 책임지고 나선 것이었다. 


1925년이 입춘 바닥이었으니 1947년은 22년이 경과한 시점, 즉 夏至(하지)의 운이었다. 하지의 운이 되면 사람은 일생에 걸쳐 가장 용맹해진다. 마리아 역시 그랬을 것이다. 



책 한 권이 열어준 행운의 길



마리아는 자신과 가족의 얘기를 책으로 써서 출판했는데 1949년의 일이었다. 그런데 그 책은 이른바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능히 그럴 법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수녀를 지망했던 처녀가 홀아비의 일곱 자녀와 함께 지내기 위해 25살 연상의 홀아비와 결혼을 했고, 그러다가 다시 집안이 파산을 하고 또 나치의 마수를 피해 이국 만리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가족 합창단을 하던 중 남편까지 잃게 된 과부의 인생 얘기였으니 얼마나 실로 구구절절한 스토리인가 말이다. 


책의 제목은 트라프 가족 합창단의 이야기, The Story of the Trapp Family Singers 였다. 


책이 많이 팔려나가면서 마리아와 가족에겐 큰 경제적 도움이 되었을 뿐 아니라, 공연 투어도 일정이 바빠졌다. 음반도 미국 대형 음반사에서 제작되었다. 이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게 되면서 급기야 1956년과 1959년에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영화로도 제작되어 흥행에 성공했다. 마리아는 출판사의 요청에 따라 후속편을 책으로 출판했는데 역시 판매가 잘 되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등장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으니 1959년에는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사운드 오브 뮤직’이란 제목의 뮤지컬로 만들어져 엄청난 성공을 했다. 


그러자 1965년에는 급기야 줄리 앤드류스가 마리아 역을 맡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바로 그 도레미 송이 들어간 영화로 제작되어 전 세계적으로 빅 히트를 쳤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은 820만 달러의 예산을 들여 박스 오피스 실적이 무려 2억8천6백만 달러, 제작비 대비 무려 35배나 되는 흥행을 기록했으니 실로 엄청나게 성공한 뮤지컬 영화, 실로 전설적인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이 정도에서 일단 끊고 다음 회에서 마무리하겠다.


영원히 변해가면서 영원히 되돌아오는 시간



영원한 것은 세상에 없다. 시간의 걸음만큼 세상과 사물은 변해간다. 


그런데 세상은 신기하게도 죽었던 것이 때가 되면 되살아나고 팔팔하던 것들 또한 때가 되면 시들고 삭아서 사라진다. 끊임없이 변해가면서도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것, 이를 순환이라 한다. 


이런 순환에 대해 동아시아 세계에선 예로부터 運(운)이란 명칭으로 불러왔다. 운이란 말은 그냥 움직인다는 뜻만이 아니라 되돌아온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운이란 바로 순환이란 말의 또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서양의 경우 일례로서 고대 로마 시절엔 운을 포춘(Fortune)이라 불렀다. 


옛 사람들은 그런 운이나 포춘에 대해 그것을 결정하는 더 높은 존재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에 그 존재를 동아시아 세계에선 하늘 즉 天(천)이라 여겼고 서양에서 여신인 포르투나(Fortuna), 그리스에선 여신 티케(Tyche)라고 여겼다. (특히 재미난 점은 고대 로마인들은 그 순환을 포르투나가 돌리는 수레바퀴로 여겼다는 점이다. 바로 운명의 수레바퀴 말이다.)


고대 사람들은 운 그리고 명은 하늘이, 그리스 로마에선 여신 포르투나가 사람이 태어날 때 이미 정해 놓았다고 여겼기에 운의 좋고 나쁨은 사람의 영역 밖의 일이라 여겼다. 


서양의 경우 운명을 여신 포르투나가 관장한다는 생각은 그 이후 기독교가 주된 도그마로 자리 잡으면서 일종의 하위문화로 전락했고, 동양의 경우 운명을 하늘이 관장한다는 생각은 사람의 심성을 강조하는 유교적 가르침 앞에서 역시 하위문화로 전락했다. 



호호당은 새로운 타입의 순환론자



나 호호당은 순환론자이다. 다만 과거의 슨환론자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순환론자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과거 역사를 보면 세상사에 순환이 존재한다는 것을 감지하고 얘기한 사람은 동서양에 걸쳐 실로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환에 있어 치밀하고 엄밀한 규칙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해낸 것은 아마도 나 호호당이 최초가 아닌가 싶다. 


현대판 순환론자인 나 호호당의 눈에 운명을 점지하는 것은 하늘도 아니요 여신 포르투나도 아니다. 사람의 命(명)이란 결국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소양인 것이요, 운이란 것은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어떤 흐름이 어떤 사람의 탄생과 더불어 반영되는 것이라 여긴다. (태어나는 것은 따라서 우연이 아니란 사실이다.) 


그렇기에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를 볼 것 같으면 그 사람이 어떤 유전적 소양을 가졌는지 그리고 순환의 시작점이 언제인지를 정확히 알아볼 수 있다. 


이 대목에서 밝혀둘 것은 사람의 생년월일시만 가지고 그 사람의 유전적 소양에 대해 예견할 수 있는 것에는 역시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 사람의 순환 주기와 시작점, 흐름에 대해서만큼은 놀라울 정도의 정확성을 가지고 예측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시대를 잘 만난 덕분에



나 호호당이 순환의 규칙성 또는 법칙성을 많은 시행 착오을 거친 끝에 용케 발견해낼 수 있었던 것은 시대를 잘 타고난 덕분이라 여긴다. 


간단히 말하면 인터넷 덕분이고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2000년대 초반에 등장한 위키피디아와 구글 검색을 통한 자료검증이 거의 무한정으로 가능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영어나 중국어 등의 외국어 자료를 해독할 수 있는 교육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순환의 규칙성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정보기술(IT)의 혁신 덕택이라 하겠다. 



나라들도 순환이 있으니



더불어 역사에 관한 흥미는 나 호호당의 평생에 걸친 것이었기에 역사자료가 잘 정비되어 있는 나라들의 경우 순환의 법칙과 틀을 적용한 결과 나라마다의 순환이 시작되는 시점, 블로그를 통해 내가 흔히 立春(입춘)이라 부르는 시점을 알아내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순환에도 여러 레벨에서의 주기가 존재한다는 것 역시 알아내었다. 단기적으론 하루 24시간에서 5일의 주기, 60일의 주기, 365일 1년의 주기, 60개월 5년의 주기, 60년의 주기, 더 장기적으론 360년의 주기와 2,160년의 주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검증해낼 수 있었다. (그 이상은 사실 천문학적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 사실 더 이상의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나라의 순환에 관한 것, 즉 國運(국운)에 관해서 잠깐 얘기해보자.


사람이나 나라나 우리에게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주기는 60년 순환이다. 왜냐면 우리의 삶이 100년을 넘지 못하기에 그렇다. (나라의 경우 엄밀히 말하면 60년 주기보다 그 상위의 주기인 360년 주기가 실은 더 의미가 있다고 본다.)



순환을 통해 알아보는 나라별 영고성쇠의 실례



내가 검증을 통해 알아낸 나라들의 운세 순환, 즉 국운을 통해 각 나라의 상황을 볼 것 같으면 그 나라의 영고성쇠와 흥망을 알 수 있다. 


가령 나라별 순환의 시작점인 입춘 시점을 알 것 같으면 쉽게 예측이 가능해진다. 입춘 시점으로부터 5년 전이 되면 급속하게 쇠락해서 입춘 후 5년까진 실로 고난의 세월을 거친다. 


가령 미국의 경우 癸巳(계사)년이 입춘점인데 2013년, 1953년, 1893년, 1833년, 1773년이 그렇다. 가까운 시점을 보면 2013년의 5년 전에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상당히 어려운 시간을 보낸 미국이다. 트럼프는 바로 그런 어려움 때문에 등장할 수 있었던 이단아라 하겠다. 


일본의 경우 乙酉(을유)년이 입춘 시점이다. 2005년, 1945년, 1885년 등이 그렇다. 2005년의 5년 전부터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이 지속되면서 철저하게 무기력해졌고, 1945년의 5년 전엔 1940년엔 미국으로부터의 압박을 받아 1941년 태평양 전쟁이란 무모한 도박을 했다가 철저하게 실패했다. 


프랑스의 경우 辛卯(신묘)년이 입춘 시점으로서 가깝게는 2011년이 그렇다. 프랑스는 2005년 10월에 파리 교외의 이민자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에서 엄청난 폭동이 20여일에 걸쳐 발발했다. 그 이후 프랑스는 사회적 약자들에 의한 끊임없는 시위와 테러, 최근의 노란조끼 시위 등으로 고통 받고 있다. 


영국의 경우 壬午(임오)년이 입춘 시작점인데 2002년이다. 영국의 경우 1997-2007년 기간 중에 일종의 커다란 변혁을 거쳐야 했으니 바로 토니 블레어 총리에 의한 ‘제3의 길’이 그것이다. 


노동당으로 집권한 블레어 총리였지만 그는 노동당의 전통적인 좌파 정책으로선 더 이상 길이 없음을 설파한 끝에 국유화 정책을 버리고 시장경제로 전환했다. 그 바람에 영국 노동당은 ‘신 노동당’이란 별칭까지 얻었다. 



입춘을 전후한 5년은 至難(지난)한 때이기에



나라 역시 한 개인과 마찬가지로 60년 순환에 있어 입춘을 전후한 10년은 대단히 至難(지난)한 기간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360년 흐름에 있어 그것이 몇 번째 60년 순환에 해당되느냐에 따라 그 고난의 강도는 상당히 다르게 나타나지만 말이다. 이 점에 대해선 언젠가 본격적인 설명을 하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



우리 대한민국 역시 예외가 아닌 것이니



오늘 이런 나라별 운세 흐름, 즉 국운에 대해 얘기하는 것에는 까닭이 있으니, 이제 우리 대한민국이 바로 그런 어려운 때를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대한민국의 경우 입춘 시점은 甲辰(갑진)년이다. 1964년과 1904년이 그러했으며 앞으로 오는 2024년이 입춘이란 얘기이다. 


그렇기에 올 해 2019년부터 10년에 걸쳐 참으로 많은 어려움들을 우리가 겪고 또 감내하면서 우리 스스로를 변화시켜 나가야 할 것으로 여긴다. 일종의 ‘탈태환골’과 같은 변화를 겪게 된다는 얘기이다. 


어제 신문에 보니 이헌재 전 부총리가 말하길 2019년은 우리이게 있어 各自圖生(각자도생)의 해라고 한다. 1998년과 같은 고통에 직면해 있다는 말과 함께 현재의 문제를 적당히 타협하다간 고통이 5년 갈지 10년이 갈지 아무도 모른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현실은 역시 적당히 타협하려 들 것이고 따라서 10년에 걸친 衰落(쇠락)이 시작될 것으로 나 호호당은 보고 있다. 우리가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당시 국민들의 氣(기)가 시퍼렇게 살아있었던 것이 가장 컸다고 본다. 


이헌재 전 총리는 당시 어려움을 극복할 때 큰 역할을 했던 분이니 지금 역시 또 한 번 국민들이 뜻을 모으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기개 또는 희망을 가지시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오늘날의 우리 대한민국은 너무나도 공고해진 기득권 때문에 조금치의 양보를 통한 대타협이 사실상 불가능해져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이제 우리에겐 당시와 같은 탄력이 없다는 얘기이고 이에 쇠락의 길로 가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여긴다. 


우리가 쇠락의 길로 가면서 어떤 문제점들이 생겨날 것인지 사실 그런 점에 대해선 전혀 구체적이지 않다. (약간 변명조로 말할 것 같으면 미래는 열려 있기 때문이다.)


나 호호당이 장차 우리가 어려워진다고 말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우리 국운의 60년 순환에 있어 그런 때가 되었기 때문이라 보기 때문이다. 


우리니라는 2019년이 되면 10년에 걸쳐 참으로 어려운 시기를 맞이할 것이란 생각은 이미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우리 국운의 입춘 시점이 甲辰(갑진)이란 것을 알아낸 것은 이미 10년도 더 된 얘기인 까닭이다. 


따라서 우리 역시 장차 10년에 걸친 衰落(쇠락)의 과정을 거칠 것이라 본다. 하지만 그 쇠락에 따른 고통이 장기적인 관점에선 결코 무의미하진 않을 것이라 여긴다. 


쇠락의 과정은 다름 아닌 현존하는 우리 사회의 여러 강고해진 기득권들이 해체되는 과정일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모두가 자각하고 각성하게 될 것이고 그 결과 우리를 둘러싼 글로벌 환경 변화에 대해서도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마침내 갖추어나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 국운의 360년 흐름에 대해 조금만 언급하겠다. 


우리 대한민국의 360년 흐름은 1904년에 시작되었기에 그 사이에 첫 번째 60년 순환이 1964년으로서 마무리되고 지금의 두 번째 순환도 2024년으로서 마무리된다. 따라서 이제 곧 세 번째 60년 순환이 시작될 참인데 원래 세 번째 순환의 정점에 도달하면 국력이 비약적으로 신장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2024년으로부터 30년이 흐른 2054년 무렵의 대한민국은 물론 통일 대한민국일 것이고 세계사에 기여하는 훌륭한 선진강국이 되어있을 것이란 얘기이다. 물론 그 무렵 나 호호당은 세상에 없겠지만 분명히 그럴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새해엔 덕담을 해야 하건만 이런 얘기를 하게 된다. 사실 며칠간 고민하고 썼다 지우고를 여러 차례 반복한 끝에 마무리한 글이다. 시각을 보니 새벽 4시 24분, 4시간 이상 걸렸지만 그나마 마무리할 수 있어 다행이라 여긴다.


추운 밤의 뒷산 산책



추운 밤, 아파트 뒷산에 올랐다. 강아지들 데리고 아들과 함께. 고양이 사료도 주고 겨울새 모이도 주고 강아지들 응가도 시키고, 근 9년째 지속되고 있는 우리 父子(부자)의 생활 루틴이다. 밤 시각 아들과의 뒷산 산책이야말로 하루 중에서 가장 즐거운 때가 아닐 수 없다. 


처음엔 세 마리의 강아지였는데 그 사이에 두 마리는 죽어서 뒷산 경사면에 묻혔고 남은 놈도 이젠 올드 독, 하지만 2년 전 갓 태어난 신참 흰둥이가 합세했다. 


흰둥이는 한창 나이라서 팔팔하고 달리기를 즐겨서 매일 밤 뒷산 고양이들과 풀숲을 쑤셔놓으면서 술래잡기를 펼친다. 고양이들도 밥 주는 아저씨의 강아지인 줄 알아서 그저 피하기만 할 뿐 사납게 맞서는 경우는 없다. 한 수 접어주는 것이다. 


뒷산 공터에 오르니 동남쪽 높지 않은 하늘에 겨울철의 왕별인 시리우스가 밝고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산에 잘 올랐다고 환영해주는 느낌. 기온은 영하 8도이지만 며칠 사이 추위에 적응이 된 탓인지 그다지 춥지 않았다. 


아들에게 물어보곤 한다, 저 별은 뭐지? 그러면 아들은 스마트폰 앱을 가동시켜 내게 알려준다. 밤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 불빛이 깜빡깜빡 비치면 나는 또 아들에게 물어본다, 그러면 아들은 또 스마트폰 앱으로 저건 어디에서 어디로 날아가는 무슨 항공 소속 화물기라고 알려준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 시각은 2018년 12월 31일 새벽 1시 11분이다. 해의 마지막 날, 즉 歲暮(세모)이고 세밑의 마지막 날이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송년인사를 드릴 참 해서 자판을 탁탁탁 두드린다. 



類似(유사) 자연인의 삶을 살고 있는 호호당



어떤 면에서 나 호호당은 도심에 살고 있는 自然人(자연인)이다. “나는 자연인이다”의 그 자연인 말이다. 


새벽 또는 아침녘이 되어야 잠에 들고 점심 무렵에 일어나 간단하게 아점을 먹고 오후 3시나 되어야 작업실로 나간다. 찾아오는 이와 상담을 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책을 보거나 생각에 빠져있다. 무료하면 근처의 강남 교보타워 지하 책방에 들러 책 구경을 하거나 책을 사기도 한다. 문구점에 가서 그림 종이나 재료를 사기도 하고. 


며칠 전엔 일본 추리작가 교고쿠 나쓰히코의 소설 ‘우부메의 여름’을 사서 잠자리에서 읽었다. 추리소설을 잠자리에서 읽는 것은 사실 좋지가 않다. 흥미가 돋기 시작하면 결국 잠에 들지 못하고 끝장을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잠들기 전에 읽는 책은 역시 딱딱한 학술서적이나 아니면 차라리 순수문학 소설이 좋다. 그런데 토마스 만의 ‘마의 산’과 같은 소설은 절대 피하는 것이 좋다. 그런 책은 잠을 부르기는커녕 2천년 서양 역사와 철학, 기타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일깨우는 웅장한 교향악과도 같아서 한동안 불면증에 빠질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러니 차라리 시집 같은 것이 좋을 것 같다. 


아무튼 궁금증을 유발하는 추리물이나 또 흥미진진한 역사책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는 얘기. 


저녁 식사는 약속이 없는 한 작업실 근처의 식당에서 해결한다. 마땅한 생각이 나지 않을 때 찾는 곳은 가까운 버거킹 그리고 할머니가 하는 허름한 분식점의 치즈 라면이다. 치즈 라면만 먹은 날은 아무래도 금방 출출해지는 탓에 작업실 구석에 놓인 크래커로 해결한다. 아이비는 아이비대로, 참이나 에이스 역시 나름의 맛이 있다. 달달한 믹스 커피와 함께 먹으면 요기가 된다. 



인상에 남는 相談(상담)



오늘 일요일 상담 한 건을 했다. 나름 독특한 상담이어서 인상에 남는다. 


40대 남자 엘리트 직장인이었고 마침 솔로라서 기왕이면 고생길을 가보라고 얘기해주었다. 아울러 그 친구 역시도 험한 길을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운이 하강하면 마침내 바닥에 도달하게 되고 그러면 또 다시 되살아나게 된다. 그 친구는 현재 운이 서서히 기울고 있는 터라 장차 크게 보면 두 가지 코스가 있는데 당신이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을 해주었다. 물론 선택은 그대의 몫이란 말도 해주었다. 


한 가지 길은 험난한 길인데 도중에 엄청 후회되는 때도 있겠지만 길게 보면 그로 인한 보상도 큰 길이고 또 한 가지 길은 나름 연착륙하는 길인데 나중에 보면 재미도 보람도 별로 없다.

 

선택을 하라고 말은 했지만 나는 그 친구가 터프한 첫 번째 길을 택할 것이라는데 베팅을 했고 그 친구 역시 그쪽 길을 가겠다는 말을 했다. 띵동!


남자라고 하는 동물의 삶



물론 내 편견이겠으나 남자란 동물이 힘을 발휘하는 경우는 두 가지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 하나는 무거운 책임을 짊어졌을 경우 또 하나는 동기부여가 확실한 경우가 그것이다. 


남자들을 보면 책임질 일도 없고 동기부여가 되지 않으면 참으로 쓸모가 없고 무능한 존재가 되고 만다는 것이 여태껏 살아오면서 가지게 된 생각 혹은 편견이다. (하기야 개인의 가치판단은 거의 99.99%의 확률로 편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러니 남자가 일찍 돈을 벌거나 성공하고 나면 사실 그게 더 문제가 된다. 자칫 타락의 길로 갈 수가 있다. 


아무튼 그렇다 치고 얘기이다. 돈이 많고 적고, 환경이 좋고 나쁘고, 사실 이런 것들은 남자가 인생을 보람 있고 의미 있게 살아감에 있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대다수 젊은이들은 이런 점을 모른다.) 


대상이 무엇이든 그것에 대한 동기가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어쩌다가 성급한 욕정 또는 무언가에 눈이 멀어 결혼을 하고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현실의 무게를 견딜 때만이 남자는 제 역할을 하고 능력을 발휘한다는 생각이다. 



남자가 잘 산다는 것은



그간에 대다수의 남자들은 주로 두 번째 길, 결혼해서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투덜거리면서도 힘차게 살아왔고 또 그 바람에 나중에 가서 자신의 피곤하고 고단했던 삶을 돌아보며 긍정하면서 편히 숨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사실 그게 잘 사는 길인 것이다. 


또 하나의 길은 동기부여가 된 바람에 희박한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고 죽을 둥 살 둥 정신없이 그것을 쫓아가는 삶이다. 물론 고생은 당연지사. 하지만 그 길 역시 잘사는 길이란 사실. 


내 생각에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란 물건은 적극적인 삶을 유도하는 물질이기에 가령 지나치게 편안할 경우 고생을 일부러 사서라도 하게끔 만드는 물질이 아닌가 싶다. 


앞에서 찾아온 그 40대 솔로의 경우 현실이 그런대로 나쁘지는 않지만 뭔가 강력한 존재감 혹은 의미를 갈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고생길이 바로 그 욕구를 채워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얘기해주었다. 



쾌락의 길은 오히려 위험하나니



쾌락의 길은 치명적인 毒針(독침)을 내포하고 있다. 갈수록 그 강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져야 한다는 점이다. 


기본적인 욕구나 욕망을 충족하는 것 역시 재미가 있고 즐거움이 있으며 쾌락이 주어진다. 식욕이나 성욕, 수면욕과 같은 기본적인 욕구가 그렇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욕구는 채워도 금방 비워지는 탓에 또 다시 욕구가 생기는 바람에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런 본능적인 욕구를 넘어서는 욕구는 충족하면 할수록 어려워진다. 그거야말로 칼자루를 아니라 칼날을 쥐고 하는 게임과도 같다. 이길 도리가 없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세 번 먹으면 질리기 마련이다. 맛이란 놈은 배에서 요구해야지 혀에서 요구하면 그건 골치 아프다는 얘기. 



고생길, 험한 길을 권유한 까닭



따라서 사실 잘 사는 길은 더 많은 쾌락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로 고통과 역경 속에서 발견할 가능성이 더 크다.

 

특히 나이가 젊을수록 자신의 역량이 가진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어 한다. 남자가 여자보다 더 그런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선 역시 이른바 ‘빡센’ 길을 가야 한다. 


역량의 한계를 넘는 바람에 좌절하고 고통 받을 지라도 그런 경험을 해보고 싶은 동물이 남자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남자의 경우 부양할 가족이 있다면 감히 그런 시도를 해보지 못한다. 책임감 때문이다. 시쳇말로 더러워도 참고 살아야 한다. 


그렇기에 오늘 나를 찾아온 40대 솔로남의 경우 미적지근하게 이것저것 타협하다가 나중에 진짜 후회하지 말고 기왕이면 빡세게 가는 길이 끝에 가선 더 나을 것 같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사주를 보니 능히 그럴 법 하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작업실을 나가는 그 젊은 친구의 등 뒤로 축원을 했다. Good Journey! 


이 늦은 시각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 젊은 친구 역시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빌보였다. 빌보 배긴스 말이다. 



송년 인사



시각을 보니 오전 3시 25분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인다. 송년의 인사라고 해두자.

 

사람들은 좀 지쳤다 싶으면 소위 힐링(healing)을 생각한다. 푹 쉬면서 편안한 시간을 가지고 싶어 한다. 물론 그럴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진정한 힐링은 쉬는 것이 아니다, 지옥불 속에서 화끈하게 구워지고 나면 어느새 말끔하게 힐링이 되어 있고 더 건강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2019년에도 올해와 변함없이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힘들고 벅차고 고단한 나날들을 맞이해보자. 견뎌나가자.


호기심과 궁금한 것을 삶의 재미로 삼아서



지금 시각은 2018년 12월 27일 새벽 1시 18분. 며칠 동안 하나의 주제에 꽂혀서 골몰하느라 글이나 그림에 손을 댈 시간이 없었다. 끈기가 있는 편도 아니요 집요한 것과는 전혀 거리가 멀지만 이상하게도 뭔가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파헤친다. 


궁리해 봐도 모르겠으면 일단 머릿속 창고에 넣어둔다. 그러다가 다시 어떤 계기에 단서를 발견하면 또 다시 궁리해본다. 


이런 말을 누군가에게 말하면 ‘탐구형 성격’이란 말을 듣게 되겠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호기심이 가는 것, 그래서 궁리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성격이라 하겠다. 


궁금한 것, 호기심이 가는 대상을 나 호호당은 在庫(재고)라 부른다. 궁금한 것을 풀어가는 것, 이는 삶의 활력이자 즐거움이기에 다 소비해서 재고가 바닥이 나면 낭패감을 느끼고 울적해진다. 그 바람에 재고가 거의 소진되었다 싶으면 이제 곧 울적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또는 위기감을 느낀다. 그러다보니 소비하는 만큼 재고를 채워 넣어야 한다는 강박감도 가지고 있다. 


쌀독에 쌀이 떨어지면 굶어야 하듯이 내게 있어 궁금한 안건이나 주제란 바로 식량이다. 밥을 먹으면 힘이 나고 굶으면 힘이 빠지듯 궁리할 대상은 내게 밥과도 같다. 



뱀파이어 형 인간(?)



30대의 어느 날엔 내가 마치 뱀파이어나 드라큐라와도 같은 유형의 인간이라 여긴 적도 있었다. 여느 보통의 식량만 있으면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점에서 말이다. 


몸매가 좋고 용모가 뛰어난 여성들 중엔 멋쟁이가 많다. 멋을 부리느라 보통의 여성들보다 더 자주 옷을 사 입고 바꿔 입는다. 경제 여건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치장하는 데 돈과 시간을 쓴다. 


예전엔 그런 멋쟁이 여성을 보면 그냥 사치하는 성격이라 여겼다. 그런데 살면서 생각해보니 그 멋쟁이 여성이나 호기심을 소비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나 호호당이나 본질에 있어선 전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 여성은 멋을 소비하는 것이고 나 호호당은 긍금증을 소비하고 있을 뿐이다. 차이가 있다면 멋쟁이 여성은 나보다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그러니 실은 내가 더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身分財(신분재)에 대해선 아예 흥취가 없으니



궁금한 것을 궁리하는 것이 삶의 재미이자 활력소인 탓에 과시성 소비에 대해 나는 거의 관심이 없다. 과시성 소비의 대상을 어떤 경제학자는 身分財(신분재)란 용어로 표현하기도 한다. 


(신분재에 대해 조금 얘기하면 타인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소요되는 재화를 말한다. 예를 들면 모피코트라든가 롤렉스 시계, 유명 골프장 회원권, 명품 가방, 페라리와 같은 스포츠카.)


사람이란 사람 사이, 즉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신분재야말로 대다수 사람들의 삶에 있어 엄청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궁리하는 것을 제2의 식량으로 삼아 살아가는 약간의 별종에 속하는 나 호호당의 경우 신분재 방면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이나 흥취가 없다. 그런 면에선 이른바 가성비 쪽이라 하겠지만 실은 가성비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다. 


돈 없는 젊은이들이나 이른바 서민 계층의 사람들은 ‘가성비’를 중시한다. 價格(가격) 대비 性能(성능)의 비율 말이다. 


먹거리 중에 패스트푸드나 인스턴트 식품이야말로 가성비 甲(갑)이다. 맛도 좋고 영양도 부족하지 않으면서 값도 저렴하다. 하지만 신분재란 측면에서 보면 그야말로 꽝이다. 그러니 패스트푸드에 대해 무척 비판적인 사람들도 많은데 그중에는 은근히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느라 그런 사람도 꽤 되는 것 같다. 시간과 돈을 들여 식사를 한다? 그건 이미 서민이 아닌 셈이다. 


(그러니 재작년인가 구의역에서 젊은 정비원이 안타깝게 사망한 사건을 사람들은 ‘구의역 컵라면 청년’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 얼마나 압도적인 표현인가 말이다.)


돈 없는 젊은이라도 사회활동을 통해 소득이 늘어나면 서서히 신분재를 장만하기 시작한다. 형편에 맞게 좋은 만년필을 한 자루 마련한다거나 브랜드가 있는 남방셔츠를 한 장 마련한다거나 하는 것이 그것이다. 



물건에 대한 예의, 사람에 대한 예의 



관련해서 얘기하면 얼마 전 겨울이 시작될 무렵 우연히 빈폴 매장에 들어갔는데 남성 캐주얼 셔츠가 무려 50만원을 웃도는 물건이 있는 것을 보고 깜작 놀라서 나도 모르게 도망쳐 나왔다. 내가 가끔 사 입는 3만원 짜리 유니클로 캐주얼 셔츠가 무려 17-18벌에 해당되는 가격이었으니 질겁할 만도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돈이 아깝다는 얘기도 아니다. 유니클로 정도의 셔츠면 그런대로 훌륭한 물건인데 그런 좋은 물건이 빈폴의 셔츠 한 장과 무려 17대1의 교환비가 나온다는 것은 돈을 떠나서 물건에 대한 예의가 아니란 생각을 한다. 


다시 말해서 나 호호당은 물건을 아낄 뿐이지 돈 자체를 아끼진 않는다. 그게 그거 아니냐 하면 할 말도 없지만 그렇다.

 

어려서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그럼에도 늘 부모님들로부터 모든 물건은 아껴야 한다는 말을 들었던 까닭인 것도 같다. 지금도 집안에서 치약의 마지막 부분은 내가 짜서 쓴다. 아들이나 아내는 치약이 잘 나오지 않으면 바로 교체한다.

 

가격, 즉 상품의 가격은 상품의 가치를 반영해야만 옳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현실 세상은 우월한 신분을 자랑하고픈 사람들의 심리로 인해 품질은 50% 좋은 반면 가격은 17배나 되는 세상인 것이다. 


거기에 희소성이 곁들여지면 가격은 무한대로 치솟기도 한다. 그것이 정말 필요한 가를 떠나서 말이다. 물론 아무리 비싸더라도 사겠다는 사람들이 경쟁을 할 것 같으면 뭐라 할 말은 없다. 


사람의 수입이나 소득도 때론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류현진 선수가 활약하는 다저스의 명투수 클레이튼 커쇼의 경우 2018년 연봉은 3,400만 달러였고 소화한 이닝(inning)은 161 이닝이었다. 


1 이닝 당 21만 달러란 계산이 나온다. 한 이닝에 던진 평균 투구 수가 13개 정도라고 하면 공 한 번 던지면 15,000 달러, 우리 돈으로 1700만원이 된다는 얘기이다. 


야구공 한 번 세게 잡고 휙 하고 뿌리면 1700만원, 참 요상한 세상이다. 


그렇지만 소득세도 많이 나아고 매니저에게도 돈을 떼어주어야 할 것이니 실제 손에 쥐는 금액은 훨씬 적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납득해보기로 한다. 


그런가 하면 2017년도 미국 상장 대기업 CEO 평균 연봉이 1,150만 달러란 뉴스도 읽은 적이 있다. 모든 것에 관여해야 하는 관계로 사실상 365일 내내 신경을 쓴다 치고 하루에 3만 달러 정도 받는 셈이다. (하기야 우리나라 삼성전자 사장님들의 연봉도 그에 못하지 않은 모양이다.)


물론 야구선수이든 대기업 CEO 이든 모두가 그야말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올라온 사람들이고 능력을 검증받은 사람들이니 그렇긴 하지만 좀 지나친 것 같기도 하다. 


그렇긴 하지만 연봉 100억을 받는 사람의 가치가 연봉 3천만원을 받는 사람에 비해 300배나 된다는 점에 대해선 실로 동의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무슨 이념이 있는 좌파도 아니다, 그냥 세상 흐름에 대충 순응할 뿐이다. 


돈 얘기는 그만 하기로 하자. 말머리를 돌려본다. 



노인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이 나이에



연말이고 며칠 지나면 우리 식 나이로 예순하고도 다섯이 된다. 재작년부터인가 들기 시작한 생각 중에 하나, 60 중반이면 노인인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나 호호당은 이제 노인 축에 드는 것일까 아니면 아직 좀 남은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었다. 


그런데 오늘 뉴스를 보니 우리나라 50대 이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노인의 나이는 68.5세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아직 노인은 아니란 말이 되는데 중요한 점은 50대 이상 사람들의 생각이란 것이다. 30대나 40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일까? 그 또한 궁금하다. 그러니 내 생각으론 準(준)노인 정도가 된 게 아닐까 싶다. 



즐거운 삶을 위한 在庫(재고)관리



처음에 시작했던 주제로 마무리하자. 궁금증을 在庫(재고)로 해서 살아간다는 얘기 말이다. 이에 끊임없이 호기심 가는 것을 발굴하려고 애를 쓴다. 궁금하지 않으면 사는 재미가 없으니. 


역사에 대한 지식, 언어에 대한 나만의 연구, 그리고 나 호호당이 세계 최초로 발견해낸 자연순환운명의 이치, 그런 것들은 사실 나 호호당이 호기심 때문에 궁금한 것들을 즐기는 과정에서 얻어진 것들이다. 일종의 副産物(부산물)이인 것이다. 


궁금한 주제나 안건이 있으면 어딜 가나 지루하지가 않다. 머릿속 창고에서 끄집어내어 다시 음미하거나 검토하고 있으면 금방 시간이 간다. 버스를 타거나 또는 지하철을 타서 눈앞에 흥미로운 경치가 없으면 눈을 뜬 채로 머릿속 궁리 마당으로 들어가 버리면 그만이다. 



재고관리에 생겨난 약간의 트러블


런데 최근 몇 년 사이 문제가 좀 생기고 있다. 


최근 근세 초기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였던 베네치아의 역사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 미국의 토마스 매든이란 학자가 2012년에 낸 책이다. 제목은 “Venice: A New History”이다. 난 이미 베네치아의 역사에 관해 여러 권의 책을 읽었다. 


그런데 이제 이런 의문부호가 떠오른다. 내가 베네치아 학을 전공하는 사람도 아니요, 얻은 지식을 종합해서 어디에 가서 강의할 것도 아니며 뿐만 아니라 주변에 베네치아에 관해 얘기를 들려줄 사람도 없다. 


게다가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마당,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앞으로 잘 살아본 들 사실 이십년 좌우인 사람이 우리 역사도 아니요 유럽 전체 역사도 아니며 세계사도 아닌 局地(국지)적인 역사에 대해 왜 나는 호기심을 느끼고 궁금증을 갖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다. 


비단 베네치아만이 아니다. 그냥 하나의 예일 뿐이다. 물론 나는 그 이유를 알고는 있다. 내게 있어 사실 베네치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즐겁게 살기 위한 방편, 즉 소비해야 할 궁금증의 대상으로서 베네치아일 뿐인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제 이런 따위의 궁금증은 점점 흥미롭지가 않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머릿속 창고에서 정작 재고가 떨어지면 큰일이다. 그렇기에 좀 더 섹시한 궁금증을 발굴해내어야 한다는 불안감 내지는 강박감이 들고 있다. 



그저 고맙기만 한 자연순환운명학



이런 점에서 천만다행인 것은 자연순환운명학이다. 


운명의 이치에 대해 흥미를 느낀 것이 47년 전이다. 그러다가 뭔가 미처 발견되지 않은 것이 있다는 가정 아래 연구를 시작한 것이 36년 전이다. 이에 마침내 자연순환의 이치를 이론적으로 정립한 것이 6년 전이다. 그 이후로도 끊임없이 궁리하면서 6년을 보냈다. 


참 잘도 궁금해 하고 실로 오랫동안 가지고 놀면서 즐거웠다. 하지만 아직 살아갈 날 또한 적지 않으니 여전히 아껴가면서 흥미를 잃지 않고 좋은 재고의 하나로서 유지해야 한다는 다짐을 해본다. 운명의 이치에 관한 내 연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궁금한 것들이 많이 남아있다. 적어도 그렇다고 스스로를 위무하고 힘을 내어본다. 


생각하면서 글을 쓰느라 시간이 많이 흘렀다. 글을 마친 현재 시각은 오전 5시 46분, 4시간 38분 동안 즐겼다. 이제 오탈자를 찾아서 정정할 참이다. 날씨를 보니 영하 10도, 체감은 영하 14도. 아파트가 좋긴 하다, 작년에 새로 설치한 보일러 때문에 약간 덥다 싶으니. 


연말이 되면 궁리하기에 딱 좋다. 그러니 재고를 아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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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흐름 속에서 누구나 오르고 또 내려간다. 그러면 올라갈 때에, 그리고 내려갈 때의 모습은 어떠할까? 오늘은 이러한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운의 상승기에는 모든 것이 고되다. 노력은 하지만 성과가 없으니 지쳐 포기하고 싶어지는 시기가 대부분이다. 내적으로는 성장하고 있으나 아직 운이 따라주지 않아서 그렇다. 하지만 이 시기는 불행한 시기가 아니라 아직 때가 아닌 것이다. 불운不運이 아닌 비운非運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조금의 성과가 나면 정말 자신의 모든걸 걸고 뛰어들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맹렬한 성장을 시작하는 시기이다.

반대로 하락기는 모든 것이 별반 노력도 없이 잘 이루어지는 시기에 찾아온다. 그러한 시간을 지나면서 인간은 누구나 방심을 하게되고, 나태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신의 운이 떠나가면 숨겨진 나태함과 방만함이 겉잡을 수 없이 문제가 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축구 선수 손흥민 선수의 경우를 빌어 강의해 보았다. 이번 강의는 강의 내용이 길어져 상/하의 2회에 걸쳐 진행될 것이다.


살다보면 운명을 느끼게 된다.

 

 

저마다의 運命(운명)이란 것이 있다는 것을 젊은 시절엔 잘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인생살이 좀 겪다 보면 운명이란 것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거의 모든 이가 하게 됩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의 연구와 검증을 거쳐온 저 호호당에게 있어 운명이란 것은 마치 하늘에 떠있는 해와 같이 너무나도 명백하고 당연할 뿐입니다.

 

命(명)이란 부모로부터 받아서 타고난 저마다의 자질이고 바탕이며 性情(성정)인 것이고 運(운)이란 것은 결국 인생의 四季節(사계절)을 거쳐 가는 과정입니다.

 

 

한 인생 살다 간다는 것, 실로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니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얼마나 많은 고비를 견디고 또 버텨내어야 하며 또 얼마나 많은 굽이를 돌아가야 합니까. 이에 누군가는 한창 풍성한 가을을 보내고 있는가 하면 반대로 어떤 이는 인고의 세월인 봄을 견뎌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누군가는 세상 다 삼킬 기세로 왕성한 여름을 보내고 있으며 반대로 어떤 이는 만물이 시든 겨울과 같이 시들시들한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인생의 계절, 즉 운도 변해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뜨거운 여름도 어느새 서늘한 가을로 바뀌듯이 우리 모두에게 찾아드는 인생의 계절 역시 조금치도 틀림이 없습니다. 다만 인생의 사계절은 60년을 하나의 주기로 해서 변해가는 너무나도 유장한 흐름이기에 보통의 사람들은 그를 잘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연순환운명학이란

 

 

감히 자신하는 바, 대략 50만 가지의 유형으로 구분이 되는 저마다의 命(명)과 그에 따른 운세의 변화를 조금치의 오차도 없이 짚어낼 수 있는 학문이 제가 30년의 연구와 검증 끝에 정리하고 틀을 세운 ‘자연순환운명학’입니다.

 

자연순환운명학은 사람의 일만이 아니라 세상 그 어떤 일이든 그 추이를 점검하고 장차의 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론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기업이나 조직, 더 크게는 나라의 흐름에 이르기까지 과거를 이해하고 현재를 진단하며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놀라운 도구이기도 합니다.

 

 

자연순환운명학의 원리를 알게 됨으로써 얻는 근본 효용

 

 

우리가 살면서 갖게 되는 모든 불안과 불만은 미래를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未知(미지)에 대한 不安(불안)인 것입니다. 언제 이 힘들고 어두운 터널이 끝이 날 것인지, 또는 지금 모든 것이 좋긴 하지만 불현듯 막을 내릴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 등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그러나 자연순환운명학을 배우고 이해할 경우 무엇보다도 그런 불안감을 씻어낼 수 있다고 감히 자신합니다. 성공도 성취도 그와 반대로 역경과 고난도 사실 각자의 주어진 命(명)과 運(운)에 따라 다 때가 있기 때문에 미리 알고 대비한다면 적어도 막연한 불안감과 삶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모든 것에 ‘당신의 때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에 더불어 세상 돌아가는 이치까지 훤히 내다볼 수 있는 도구 혹은 무기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 삶의 문제만이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이치까지 얻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번 1월에 시작하는 자연순환운명학 기초이론 강좌에 많은 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12회에 걸쳐 이어지는 기초과정의 회별 주요 강의 내용

 

 

제 1회. Introduction, 자연순환운명학의 전체적인 원리와 이론

제 2회. 생년월일시에 의거하여 사주를 추출하는 기본 방법과 陰陽五行(음양오행)에 대한 현대적인 이해.

제 3회. 운명이 통과해 가야 하는 24개의 관문에 대한 이해 #1

제 4회. 운명이 통과해 가야 하는 24개의 관문에 대한 이해 #2

제 5회. 60년 순환의 기산점 즉 立春(입춘)점을 파악하는 방법

제 6회. 60진법 속에 숨어있는 數(수)의 법칙에 대한 이해 #1

제 7회. 60진법 속에 숨어있는 數(수)의 법칙에 대한 이해 #2

제 8회. 운명에 작용하는 어길 수 없는 因果(인과)의 법칙

제 9회. 518,400개에 달하는 四柱(사주)의 개성과 특징 파악법 #1

제10회. 518,400개에 달하는 四柱(사주)의 개성과 특징 파악법 #2

제11회. 실제 사례를 통한 이론의 종합적 적용 방법 #1

제12회. 실제 사례를 통한 이론의 종합적 적용 방법 #2

 

 

 

 

강좌 개요

 

 

강좌 개최

- 2019 년 1월 12일 토요일 오후 4시 30 분부터 8시까지. 

 

강좌 기간

- 매주 토요일 1회, 총 12번의 강좌 (도중에 연휴가 있을 경우 강좌는 순연됩니다.)

 

강좌 시간

- 3 시간 30 분이고 중간에 간식 시간을 가집니다.

 

강좌 장소

- 강남역 근처 CNN the Biz 강남교육연수센터 강의실 (Tel. 02-564-4172) 

- 지하철 2호선 강남역 11번 출구에서 400 미터, 도로로 5분 거리

 

수강료

- 12회분 66 만원 (부담되시는 분은 3번에 나누어 분납도 가능합니다.)

 

신청 방법

- 제 메일(1tgkim@hanmail.net)로 신청을 하시면 제가 참강 확인 메일을 보내 드립니다.

- Tel. 02-534-7250로 오후 3시 이후에 전화주셔도 됩니다.

 

사전에 준비할 것은 없으며 더러 한자를 몰라서 망설인다는 분들의 문의가 있는데 아무런 애로가 없다는 점 알려 드립니다.



 

 

 

2018.12.21. 호호당 김태규

아슬아슬한 고비들을 넘겨왔으니

 

 

살아오면서 앞이 캄캄했던 적이 여러 번 된다. 앞날이 막막했던 적도 수 차례 된다. 어떤 순간엔 이게 현실이 아니지 싶어 내 뺨을 꼬집어본 적도 두어 번 있다. 애를 끓이며 하얗게 밤을 지새운 적도 무수히 많고 그러다 보면 아침녘 쓴 입안을 부시려고 연거푸 칫솔질을 한 적도 어디 한 두 번이 아니다.

 

나중에 자연운명순환의 법칙을 발견한 뒤 알게 되었지만 나 호호당의 운세 흐름은 1997년이 입춘 바닥이었다. 그 바람에 그를 전후한 10년, 즉 1992년부터 2002년까지의 10년은 나 호호당에게 있어 그야말로 黑歷史(흑역사)였던 것이다.

 

(흑역사, 일본 애니메이션 ‘건담 시리즈’에서 만들어진 신조어라 하는데 나름 재치가 있다.)

 

자랑거리도 아닌 이런 얘기를 글머리에 꺼낸 것은 이유가 있다.

 

 

애를 너무 끓이면 명을 단축하나니

 

 

애를 심하게 끓이면 액면 그대로 명줄 단축한다는 얘기를 하기 위함이다.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은 흔히 ‘내 이렇게 애를 태우니 이러다가 명대로 못 살겠네’, 이런 말을 내뱉곤 한다. 그런데 이게 그냥 푸념이 아니라 정말 그렇다는 말을 한다.

 

중년에 몹쓸 병인 난치성의 癌(암)에 걸려서 세상을 등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물론 유전적인 것이 크겠지만 죽고 사는 문제는 그보다도 그 사람의 운세와 큰 연관, 거의 결정적인 관련이 있다는 것을 그간의 연구와 사례 검증을 통해 나 호호당은 알고 있다.

 

내 생각에 암이란 난치의 질병에 걸린 것 자체가 지속적인 스트레스, 애를 태우고 속을 끓인 일이 너무 과도했던 결과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암과 같은 질병을 떠나 중년에 사망하는 것 자체가 운세와 관련이 결정적이고 결국 어려운 고비에서 지나치게 애를 태우고 속을 끓인 것이 원인이라 여긴다.

 

 

대학 동기 송년회에서의 일

 

 

어제 저녁 대학 학과 동기 송년회가 있었다.

 

사회를 맡은 이가 하는 말인 즉 동기 모임을 하다 보면 남자들의 경우 65-70세 사이가 생존자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구간이란 얘기였다. 그 구간을 지나면 사망하는 사람이 크게 줄어서 대충 80세 전반까진 이어진다는 말이었다.

 

그런 얘기를 듣다보니 절로 그간에 세상을 등진 친구들에 대해 새삼 헤아려보게 되었고 확률을 뽑아보니 대학 졸업 후 15% 정도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계산이 나왔다. 대략 1/6.

 

그 중에 한 친구는 각별했던 터라 생년월일시를 알고 있었다. 동갑인 1955년생인데 2009년이 입춘 바닥이었고 2014년에 췌장암이 발병해서 2015년에 사망했다.

 

그 친구는 한때 이른바 갑부집의 맏아들이었다. 1980년대 초반 그 친구의 부친은 서울 중심가에 소유하고 있는 대형 빌딩만 80채가 넘을 정도의 부자였다. 그런 부자가 어느 날 빚에 내몰려 졸지에 몰락하고 말았다.

 

부친이 남긴 국세체납액이 너무나도 많아서 그 친구는 도저히 어떻게 재기해볼 수도 없었다. 이에 서울 은마 아파트 상가에서 구멍가게를 하면서 지내오던 중 췌장암이 발병한 것이다.

 

병에 걸리기 전, 그 친구를 만날 때마다 속 비워, 이런들 저런들 한 세상이야, 너무 애 끓이지는 마, 늘 이런 충고를 해주던 터였다. 한편 속으로 저 친구 저러다가 결국 2014-2016년의 험한 구간을 넘기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늘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런 병에 걸렸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야, 나 살 수 있겠니? 내 팔자 좀 잘 살펴봐 하고 물어 보는 바람에 선뜻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췌장암은 사망률이 지극히 높은 병이고 게다가 그 친구의 운세를 잘 알고 있던 터라 빈 말일지언정 쉽사리 해줄 수가 없었다. 그냥 얼버무렸던 기억만 난다.

 

그 친구를 장지에 묻고 나서 ‘자네, 그렇게나 속을 끓였으니 빨리 간 거야,’ 하면서 술을 부어 주었다. 송년회 모임 내내 나는 그 친구 생각에  잠겨있었다. 박수치면 박수 치는 시늉을 하면서도 말이다.

 

 

살면서 깨달은 것들

 

 

그때 깨달은 것이 하나 있으니 여린 사람이 큰 성공을 하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자리에 오르면 명 재촉한다는 점이었다. 덤덤한 자는 성공을 해도 덤덤할 것이고 따라서 망해도 덤덤할 것이지만, 여린 자는 그게 어렵기 때문이란 생각이었다.

 

아끼던 고등학교 후배, 전설의 투수 최동원이 생각난다. 1986년 코리언 시리즈 4승의 투수였던 그가 몰락한 2000년대 중반 나와 친하게 지냈는데 볼 때마다 너무 속상해하고 애를 끓이는 것이었다.

 

술에 취한 나머지 추태까지 부리는 바람에 야 이놈아, 너 그러다가 암 걸린다, 네 체질로 볼 때 대장암이야, 하고 겁을 주었는데 말이 씨가 된다고 그만 나중에 대장암으로 2011년에 사망했다. 겨우 52세의 나이였으니 그야말로 비통한 일이었다.

 

살면서 또 깨달은 것이 있으니 名利(명리)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명예와 이득에 너무 집착하다가 그것을 정작 잃게 되면 뒷감당이 어렵다. 그 결과 몸을 다치게 해서 암에 걸리거나 여타 다른 병으로 인해 짧은 삶으로 마친다는 얘기이다.

 

명예와 이익이란 萬人(만인)이 다투는 물건이다. 만인이 다투다 보니 차지했다고 해서 영원히 내 것으로 온전히 차지하기도 어렵다. 사는 동안 잠시 얻었다가 되돌려주는 물건이 名利(명리)가 아닌가 싶다. 그것도 어쩌다가 얻게 되는 것에 불과하니 기본적으로 헛것이나 같은 물건이라 여긴다.

 

 

말로서 의미를 전달하기란 참으로 어려워서

 

 

상담을 하다 보면 말의 의미를 이해시킨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가령 운세가 이제 한창 내리막인 사람이 찾아왔다고 하자.

그 경우 특히 60년 순환에 있어 52.5년이 경과하는 때, 즉 冬至(동지)의 운에 무리한 일이나 새로운 일을 펼치지 말라는 주의 또는 당부를 하게 된다.

 

그런데 상대는 다시 물어본다. 제 수명은 얼마나 될까요? 하고.

 

그러면 그게 다 하나로 연결된 것이란 말을 해준다. 동지 운에 무리하다가 일이 잘못 되면 명이 줄어들 것이고, 그 때를 무난하게 넘길 것 같으면 장수를 할 수 있다는 말.

 

가령 동지 운에 무리한 일에 착수하면 모든 것을 그르치게 되고 그 결과 애를 태우고 속을 끓이다 보면 명을 재촉할 것이란 얘기를 다시 한 번 들려준다.

 

모든 것은 因果(인과)의 사슬로 이어진다. 실패하면 돈만 날리는 것이 아니라 목숨까지 송두리째 통째로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시킨다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다. 겪지 않은 일을 전달하기란 어렵다.

 

사람들은 돈과 이익, 명예 같은 것이 잃게 될 경우 사람의 목숨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자명한 이치를 모른다. 관념적으론 알 수 있어도 그게 진짜로 그렇다는 것을 아는 이는 드물다.

 

 

뭣이 소중한 가?

 

 

나 호호당 보기에 우리가 가진 가장 중요한 재산 혹은 자산은 다름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잠정적으로 머무를 수 있는 권리’라 말할 수 있는 생명 혹은 수명이다. 돈이나 재산, 명예 같은 것은 목숨 자체에 비하면 사실 별 것이 아니다. 또 그런 면에서 이 세상에 태어난 이는 근본적으로 거의 평등하다는 생각도 해본다.

 

너나 나나 한 세상 살다가는 것에 큰 차이는 없다는 얘기이다. 다만 긴 인생 충분하게 누리다 가느냐 아니면 운세가 바닥을 길 때 속을 끓이고 애를 태우는 바람에 고비를 넘지 못하고 그만 숨을 멈추게 되느냐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 여긴다.

 

나 호호당의 경우 1997년이 바닥이었기에 2005년 무렵엔 내가 이러다간 얼마 살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그만 살고픈 생각도 들었다.

 

이에 조금씩 생각을 바꿔 먹었다. 우선 들숨과 날숨을 편안하게 길게 가져가는 연습부터 시작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과거지사 실수한 일 따윈 최대한 잊어버리고 지워버리고자 노력했다. 모든 이가 바보이고 멍청한 데가 있는 법이니 나라고 예외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현명해져보자, 이런 생각을 했다.

 

아마도 나 호호당이 조선 시대 사람이었다면 그 무렵에 죽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50세의 나이로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엔 좋은 점이 있으니 영양이 충분해서 기초체력이 좋다는 점이다. 세상을 잘 만난 것이다. 이에 그런대로 영양 섭취가 되는 바람에 서서히 천천히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2007년부턴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했고 그 이후 지금까지 무난하게 잘 살아오고 있다. 나름 성공한 셈이다.

 

 

이제 歷戰(역전)의 인생 용사로서

 

 

지난날 눈앞이 캄캄할 정도의 고비가 어디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좋게 말하면 열정이고 달리 말하면 욕심이 많은 탓에 고생을 자초했다는 생각을 한다. 이에 그 많은 어려운 고비와 위기를 견디고 참으면서 살아오다 보니 이제 환갑도 넘겼고 기왕지사 아흔까지 살아보고자 하는 의욕을 부린다.

 

모친이 아흔에 돌아가셨다. 그러니 아들인 나 호호당 역시 가능한 일 아니겠는가 말이다. 물론 이 또한 욕심이지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 조심해가면서 잘 살겠다는 의욕일 뿐, 실은 언제 저 세상에서 불러도 놀라지 않고 담담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기본은 채웠지 않은가. 어제 저녁 동창회에서 나눈 말이 바로 ‘우리가 기본은 했다’ 그런 얘기였다.

 

 

잘 산다는 것

 

 

사람들은 잘 살아야 한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잘 산다는 것에 대한 저마다의 생각은 참으로 다른 것 같다. 나이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것 같다. 언어는 같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용은 각인각색이다.

 

길게 살려면 영광의 때도 있지만 굴욕 또한 피할 수가 없다. 이에 그 榮辱(영욕)이 사람을 피폐하게 한다. 하지만 너무 피폐해져서 넘길 수 있는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길게 살 수가 없다.

 

나로선 뭐니 해도 길게 사는 삶이 잘 사는 것이란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현재를 살펴보면 세월의 傷痕(상흔)은 남았다. 아직도 쉬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나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것 모두 일종의 상흔이다. 가급적 단출하고 조촐히 살려는 노력 역시 실은 과거 상처로부터 받은 영향일 것이다.

 

시인 워즈워드가 읊은 시 중에 ‘초원의 빛’이 있다.

 

시에서 언급되는 초원의 빛과 꽃의 영광이란 살다보면 어차피 잃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길게 살아야만’ 빛나는 그 순간을 다시 맞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연말이다. 세밑이 며칠 남지도 않았다. 독자 여러분과 그 가정의 안녕과 행복을 진심을 다해 기원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