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작년에 三災(삼재)가 끝났는데 이상하게 올 해가 더 힘드네요.”
얼마 전 상담 온 손님의 토로에 속으로 헐! 아직 삼재 같은 걸 믿다니.
고대 전통사회는 그야말로 해서는 안 될 것, 不淨(부정)한 것을 해서는 아니 된다는 禁忌(금기), 즉 taboo로 가득했다.
병을 옮기는 세균이 있다는 것을 제대로 알게 된 것이 19세기 말, 이제 겨우 150년 정도 되었다. 그 이전 사람들은 災厄(재액)을 옮기는 惡鬼(악귀)가 있어서 병도 걸리고 사고도 난다는 생각을 했기에 터부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터부 중에 하나가 불교에서 나온 三災八難(삼재팔난)이었다.
이 용어는 불교에서 화엄성중, 즉 호법신들에게 공양을 권하는 의식인 神衆請(신중청)의 경문 속에 나온다.
“동서남북 사방 어딜 출입하든 어떤 災害(재해)라든가 官災(관재)와 口舌(구설), 三災(삼재)와 八難(팔난)을 만나지 않게 해주시고 四百四病(사백사병)은 일시에 소멸케 해주시옵소서” 하는 경문이 그것이다.
삼재팔난 중에서 三災(삼재)는 하늘 땅 사람으로부터 발생하는 모든 재난을 뜻하며 八難(팔난)은 배고픔과 목마름, 추위, 더위, 물, 불, 칼, 병란(兵亂)의 여덟 가지 어려움을 말한다.
따라서 사주명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하지만 워낙 금기와 터부를 중시하다보니 민속 신앙을 통해 사주풀이 속에도 스며들었다.
그래서 사주쟁이들이 三災(삼재)를 새롭게 정의했다. 그런데 그 근거가 참으로 어처구니없이 허접하다. 소개하기조차 민망할 정도.
하지만 말이 나왔으니 잠깐 소개해본다.
12支(지) 중에서 亥(해)와 卯(묘), 未(미), 즉 돼지띠와 토끼띠 그리고 양띠는 이른바 木(목) 기운의 시작점이자 종말점인데 그런 목의 기운이 화로 가면 木生火(목생화)해서 소진될 것이니 좋지 않다.
巳(사)와 午(오), 未(미)의 해는 남방 불의 기운, 따라서 목의 기운이 소진된다. 그래서 3년간의 재액 즉 삼재의 해가 된다는 식이다.
가령 올 해는 乙巳(을사)년, 즉 남방 화운이 들어오는 시기, 그렇기에 앞서의 亥(해)와 卯(묘), 未(미), 즉 돼지띠와 토끼띠 그리고 양띠는 삼재가 시작되는 해, 이른바 들삼재가 된다. 2028 戊申(무신)년이 되어야 三災(삼재)의 액운이 끝난다.
그런데 당연한 것이 이런 되지도 않은 논리가 통할 턱이 없다. 그래서 삼재였는데 전혀 나쁘지 않고 오히려 좋은 일이 있었다 하자. 이거 뭐임? 하고 갸우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자 또 사주쟁이들이 방어논리를 만들었다. 다 나쁜 것은 아니고 좋은 삼재도 있으며 삼재의 액운에 몸가짐을 잘 하면 나중에 더 좋은 운이 온다는 식으로. 무마용 반창고 같은 것이라 하겠다. 헐! 어이가 없다.
그러니 三災(삼재)가 들었어요 하는 말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다.
마지막으로 앞의 神衆請(신중청)의 경문 속에 나오는 四百四病(사백사병)이란 말에 대해 잠깐 풀이해드린다. 흥미롭다.
고대 전통 의학에서 나온 말인데 사람의 五臟(오장) 즉 간장과 심장, 폐장, 신장, 비장에는 제각기 81종의 병이 생길 수 있는데 다 합치면 405종의 병이 된다.
그 중에서 죽을 병 한 가지를 빼면 404종의 병이 남는다. 그게 바로 四百四病(사백사병)이다. 옛 사람들 역시 죽을 병보다는 길게 고생하는 병이 더 무서웠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