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창을 열고 왼쪽으로 몸을 틀면 멀리 잠실 롯데타워가 보인다. 오른 쪽의 붉은 건물은 재개발에 들어간 케이 호텔이고 왼쪽의 빛나는 은갈치가 롯데타워이다. 난 늘 은갈치라고 부른다. 날이 흐리면 푸른 그레이로 보일 때도 있는데 그럴 땐 청어라고 부른다. 얼마나 높은지 수원에 이빨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고속도로 상에서도 멀리 저 은갈치가 보인다. 정말 대단하다. 롯데그룹이 저 건물 지어놓고 고전하고 있으니 한숨이 나올 때도 있다. 암튼 4월의 하늘 아래 은갈치는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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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작년에 三災(삼재)가 끝났는데 이상하게 올 해가 더 힘드네요.”

 

얼마 전 상담 온 손님의 토로에 속으로 헐! 아직 삼재 같은 걸 믿다니.

 

고대 전통사회는 그야말로 해서는 안 될 것, 不淨(부정)한 것을 해서는 아니 된다는 禁忌(금기), 즉 taboo로 가득했다.

 

병을 옮기는 세균이 있다는 것을 제대로 알게 된 것이 19세기 말, 이제 겨우 150년 정도 되었다. 그 이전 사람들은 災厄(재액)을 옮기는 惡鬼(악귀)가 있어서 병도 걸리고 사고도 난다는 생각을 했기에 터부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터부 중에 하나가 불교에서 나온 三災八難(삼재팔난)이었다.

 

이 용어는 불교에서 화엄성중, 즉 호법신들에게 공양을 권하는 의식인 神衆請(신중청)의 경문 속에 나온다.

 

“동서남북 사방 어딜 출입하든 어떤 災害(재해)라든가 官災(관재)와 口舌(구설), 三災(삼재)와 八難(팔난)을 만나지 않게 해주시고 四百四病(사백사병)은 일시에 소멸케 해주시옵소서” 하는 경문이 그것이다.

 

삼재팔난 중에서 三災(삼재)는 하늘 땅 사람으로부터 발생하는 모든 재난을 뜻하며 八難(팔난)은 배고픔과 목마름, 추위, 더위, 물, 불, 칼, 병란(兵亂)의 여덟 가지 어려움을 말한다.

 

따라서 사주명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하지만 워낙 금기와 터부를 중시하다보니 민속 신앙을 통해 사주풀이 속에도 스며들었다.

그래서 사주쟁이들이 三災(삼재)를 새롭게 정의했다. 그런데 그 근거가 참으로 어처구니없이 허접하다. 소개하기조차 민망할 정도.

하지만 말이 나왔으니 잠깐 소개해본다.

 

12支(지) 중에서 亥(해)와 卯(묘), 未(미), 즉 돼지띠와 토끼띠 그리고 양띠는 이른바 木(목) 기운의 시작점이자 종말점인데 그런 목의 기운이 화로 가면 木生火(목생화)해서 소진될 것이니 좋지 않다.

 

巳(사)와 午(오), 未(미)의 해는 남방 불의 기운, 따라서 목의 기운이 소진된다. 그래서 3년간의 재액 즉 삼재의 해가 된다는 식이다.

가령 올 해는 乙巳(을사)년, 즉 남방 화운이 들어오는 시기, 그렇기에 앞서의 亥(해)와 卯(묘), 未(미), 즉 돼지띠와 토끼띠 그리고 양띠는 삼재가 시작되는 해, 이른바 들삼재가 된다. 2028 戊申(무신)년이 되어야 三災(삼재)의 액운이 끝난다.

 

그런데 당연한 것이 이런 되지도 않은 논리가 통할 턱이 없다. 그래서 삼재였는데 전혀 나쁘지 않고 오히려 좋은 일이 있었다 하자. 이거 뭐임? 하고 갸우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자 또 사주쟁이들이 방어논리를 만들었다. 다 나쁜 것은 아니고 좋은 삼재도 있으며 삼재의 액운에 몸가짐을 잘 하면 나중에 더 좋은 운이 온다는 식으로. 무마용 반창고 같은 것이라 하겠다. 헐! 어이가 없다.

 

그러니 三災(삼재)가 들었어요 하는 말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다.

 

마지막으로 앞의 神衆請(신중청)의 경문 속에 나오는 四百四病(사백사병)이란 말에 대해 잠깐 풀이해드린다. 흥미롭다.

 

고대 전통 의학에서 나온 말인데 사람의 五臟(오장) 즉 간장과 심장, 폐장, 신장, 비장에는 제각기 81종의 병이 생길 수 있는데 다 합치면 405종의 병이 된다.

 

그 중에서 죽을 병 한 가지를 빼면 404종의 병이 남는다. 그게 바로 四百四病(사백사병)이다. 옛 사람들 역시 죽을 병보다는 길게 고생하는 병이 더 무서웠던 모양이다.

 

초여름 느낌이 난다. 날씨도 약간 덥고 신록도 싱그럽다. 무슨 나무이고 꽃인지 모르겠지만 마냥 명랑해보인다. 철 모르고 즐겁던 청소년기의 나 호호당이 생각난다. 무술 도장에서 열심히 연습을 하던 중 어쩌다가 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저 자식 땀 많이 흘리네 하고 웃던 기억이 난다. 운동 마친 뒤 귀가하면서 자주 사먹던 밀면- 부산은 밀면이 유명하다-도 기억난다. 그때는 밤 10시에도 식당이  문을 열고 있었다. 부산 용두산 공원 밑의 밀면집이었는데. 배불리 먹어도 1시간이면 다 소화가 되고 다시 시장기가 돌던 그 시절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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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삶을 잘 마치고 떠나셨다. 올 초 몸이 편치 않다는 소식을 듣고 생일을 따져보니 얼마 되지 않아 가시겠구나 하고 짐작했다.

 

1936년 12월 17일 저녁 9시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난 것으로 되어있다.

 

丙子(병자)년 庚子(경자)월 癸酉(계유)일 壬戌(임술)시가 된다.

 

(저녁 9시 출생이란 것은 대략적인 시각일 것이고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서경 58도 27분이니 술시로 추정하는 것이 온당하다.)

 

12월생이지만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가 남반구 즉 남위 34도이기에 사실상 북반구의 6월에 해당된다. 차가운 사주가 아니란 얘기. (향후 나 호호당의 뒤를 잇는 후학이 있다면 지구의 북반구와 남반구 문제에 대해 좀 더 심도 있게 연구해주기를 바란다.)

 

사주 구성을 볼 때 1973 癸丑(계축)년이 입춘 바닥이었다. 그 얼마 전인 1969년 사제 서품을 받고 1973년 입춘 시점, 4월 22일에 종신서원을 한 뒤 예수회 아르헨티나 관구장으로서 경력을 시작했다.

 

새로운 인생이 시작하는 입춘의 시점부터 사제의 길을 본격 걷기 시작했으니 훗날 로마 가톨릭 교회의 큰 인물이 될 것을 기약하고 있었다 하겠다.

 

운기가 가장 강한 입추가 2003년이었는데 그 2년 전인 2001년 大暑(대서)의 운에 추기경이 되었으며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2013년 화려한 운세인 寒露(한로)의 운에 마침내 프란치스코 교황이 되었다.

 

그로부터 12년간 교황의 직무를 훌륭하게 수행하셨으며 올 해 2025년은 冬至(동지)의 운이다.

 

동지는 더 이상 더 이상 새로운 비전(vision)이 없는 때가 되는데 아마도 교황께선 이 세상에서 하실 일을 다 마무리했다고 느끼셨던 것 같다.

 

돌아가신 날이 4월 21일, 庚辰(경진)월 庚申(경신)일 아침인 庚辰(경진)시에 선종하셨다. 날을 보면 아무런 고통 없이 편히 숨을 거두신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1973년 종신서원을 한 날이 4월 22일이었는데 그로부터 52년이 흘러 4월 21일에 선종하셨다는 점이다. 우연 같지만 이런 게 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란 점 알려드린다. 세상 모든 일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흐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