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病相憐(동병상련)



며칠 꽤나 날이 덥더니 오늘은 비가 온다. 새벽녘에 제법 굵게 내리더니 오후 들어 부슬비로 내리고 있다. 덕분에 날이 식어서 좋다. 지난주에도 글을 거의 올리지 못했다. 좌골신경통 때문이다. 서 있거나 누워있으면 괜찮은데 앉았으면 통증이 온다. 그 바람에 글을 쓰기가 어려워서 지난 주 내내 쓰다 말고 쓰다 말고를 반복해야 했다. 답답한 노릇이다. 


케이블 채널을 돌리다 보면 디스크 시술에 관한 광고성 프로그램이 저렇게나 많았던가 싶다. 온통 어깨 통증, 허리와 다리 통증에 관한 것이다. 역시 남의 일은 내 알 바가 아닌 것이어서 종전까진 잽싸게 채널을 돌렸던 것이 정작 내 일이 되다 보니 새삼 눈에 들어온다. 


작업실은 방이 두 개, 수묵화를 그리던 건너 방의 책상을 치우고 매트리스를 깔았다. 앉았다가 통증이 시작되면 일어나서 서성대거나 아니면 건너 방으로 가서 누워서 책을 본다. 



좌골신경통 때문에 시작된 또 하나의 여행



러다 보니 어쩌다가 또 하나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가 남긴 무려 14권짜리 대작 “역사의 연구”를 읽는 일이다. 1970년대에 번역 출간된 책인데, 책 한 권당 면수만 해도 6백 페이지, 그러니 대략 8천 페이지 정도는 되는 것 같다. 


40대 초반 처음 접했는데 너무 방대한 내용이라 미처 다 읽진 못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읽어보니 무협소설 만큼이나 흥미진진, 재미가 있다. 40대 중반에 오스발트 슈펭글러가 남긴 “서양의 몰락”이란 책에 심취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엔 “역사의 연구”에 푹 빠졌다. 풍덩. 


인류 역사의 수많은 케이스들을 다루고 있어 미처 잘 모르는 분야도 여전히 있지만 이젠 그런대로 다른 책이나 위키를 뒤지지 않고서도 술술 읽혀지니 그간 역사에 대한 내 시야가 많이 넓어진 까닭이 아닌가 싶다. 현재 제4권을 읽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토인비의 저 방대한 연구가 다루고 있는 핵심 주제, 흔히 “도전과 응전”이란 말로 축약된 저 주제는 사실 나 호호당이 연구해 온 주제, 운명의 순환과 그 법칙에 관한 것과 그 본질에 있어 전적으로 동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기에 이번 독서 대장정이 더 흥미롭다. 


오늘의 글은 바로 그 주제에 관한 것이다. 



편하게 살면 나약해지는 것일까?



편하게 살다보면 나약해진다. 이 말이 과연 맞는 말일까? 아주 단순한 질문으로 얘기를 시작해보자. 


상식적으로 대충 맞는 말인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따져보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과연 그럴까 하는 생각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알고 보면 무려 14권에 달하는 방대한 연구를 통해 다루고 있는 주제 역시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이라 하겠다. 


토인비는 자신의 저서 제2부 ‘문명의 발생’에서 이 문제를 놓고 인류 역사의 방대한 사례들을 열거하고 살펴가며 집요하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 또 검증하고 있다. 


토인비의 연구에 따르면 문명의 발생 자체가 인류 투쟁의 산물이다. 문명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우호적인 환경에서 탄생한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고 척박하고 거친 환경 속에서 더 잘 생겨나고 성공적이더라 하는 얘기이다. 


편한 환경에서가 아니라 힘든 逆境(역경)에서 발전이 있다는 이 주장은 인류사의 거대한 흐름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한 개인의 역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된다. 


그러니 편하게 살다 보면 나약해진다는 말은 맞는 말이라 해도 무방하다. 



樂園(낙원)에서의 삶은 없다



당연히 우리 모두 누구 할 것 없이 안락하고 편하게 살고자 한다. 고생하고픈 이는 세상에 없다. 하지만 안일하게 살다보면 나약해지고 퇴보한다. 그 결과 이른바 망하게 된다. 그런 까닭에 편히 살고픈 우리의 바람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긴 하겠으나 편히 살다보면 나약해진다는 점에서 꽤나 矛盾(모순)된 욕망이라 하겠다. 


앞의 얘기를 다시 해보면 우리는 누구나 에덴동산이나 파라다이스 또는 극락정토와 같은 세상에서 삶을 누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현실의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세상은 실낙원 즉 Paradise Lost 이고 지저분한 穢土(예토)의 세상이다. 


토인비의 말을 빌려 얘기하면 인류의 문명 자체가 환경과 주어진 여건에 대한 부단한 즉 끊임없는 투쟁의 산물이다. 이 말을 조금 바꿔서 얘기하면 애초부터 환경이 풍족하고 살기에 좋았다면 아예 문명이란 것이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고 인간은 마치 자연 속에서 식물처럼 존재하고 있을 거란 얘기이다. 



산다는 것은 어차피 고단한 것이어서



따라서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어쨌거나 길고 긴 투쟁과 고생으로 점철되지 않을 수 없다. 다. 자연 환경과의 투쟁만이 아니라 인간 집단 간의 투쟁, 아울러 개개인간의 치열한 상호 경쟁 혹은 투쟁의 과정인 것이다. 


그러니 산다는 것은 고생일 수밖에 없다. 다만 운명의 순환이란 것이 있어서 상대적으로 좀 더 힘들고 반대로 조금은 더 수월한 때가 갈마드는 것일 뿐이다. 


바람이 있고 욕망이 있어서 우리는 어떤 목표를 세운다. 그런데 그 목표란 건 현재의 상태보다 더 높은 단계이기에 많은 노력을 경주해야 하고 보다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힘이 들 수밖에. 


상담하다 보면 흔히 듣게 되는 말이 있다. “정말이지 제게 이런 일이 생기리라곤 전혀 상상도 하지 못 했어요.” 하지만 그런 일을 겪지 않는 인생은 없다. 아직 겪지 않았을 뿐이지 누구나 한 번은 그런 어려운 처지를 겪게 된다. 평생을 두고 無事安逸(무사안일)하고 乘勝長驅(승승장구)하는 삶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와 반대로 평생을 두고 막히기만 하는 답답한 삶도 없다. 한 때 그럴 뿐이다.)



정말로 잘 살다간 어느 할머니



며칠 전 우리 젊은 세대들이 잘 모르는 ‘도리스 데이’란 이름의 미국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1960년대 전성기를 보낸 미국의 유명 여가수였다. 우리로 치면 동백아가씨의 이미자 선생님과 같은 분이다. 


1922년 4월 3일에 태어나 며칠 전에 돌아가셨으니 무려 97년 하고도 한 달을 살다간 셈이다. 


이 분의 사주를 검토해보면 최고의 운에 세상을 떠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태어날 때 받은 생명의 힘을 남김없이 알뜰하게 소진하고 세상을 떠난 분이란 생각이 든다. 


도리스 데이 할머니 역시 유명 가수로서 많은 영광을 누렸지만 그에 못하지 않게 숱한 좌절과 굴욕의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그냥 쭉 편하게 好衣好食(호의호식)한 삶은 절대 아니었다. 인생 한 번 살다 가려면 무수한 고비를 만나기 마련이고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흔히 잘 살려면 물건을 아끼고 돈을 아껴야 한다는 말은 듣게 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다. 한 번 살다가는 인생, 스스로를 아끼고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한 번 채어날 때 받은 자신의 삶을 알뜰하게 잘 쓰다가 가야한다는 얘기이다. 



죽은 것이 아니라 羽化登仙(우화등선)한 할머니



그런 면에서 도리스 데이 할머니의 삶이야말로 모범이고 典型(전형)이 아닌가 한다. 그간 구글이나 위키를 통해 수만에 이르는 사람들의 생애를 연구 검토해 보았지만 이 분처럼 잘 살다가 떠난 사람은 보지 못했다. 폐렴으로 사망했다고 하지만 이 분의 경우 그 어떤 통증이나 고생도 하지 않았을 것으로 단정을 한다. 그냥 노화로 인해 숨쉬기가 거북해져서 돌아가셨을 것으로 본다. 


살다보면 실망도 하고 뜻하지 않은 좌절을 겪게도 된다. 이에 화를 내기도 하고 역정을 부리기도 하겠지만 그게 다 손해란 사실, 그래본 들 그게 모두 아까운 내 생명력을 낭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양반 역시 한 때 그런 세월도 겪었지만 끝내 자신을 아끼고 소중히 다루었기에 저렇게 살다 갔을 것으로 여긴다. 


완전연소의 삶을 살다간 셈이니 죽은 것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에 신선이 되어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로 돌아간 羽化登仙(우화등선)의 삶을 살다간 것이 아닐까 싶다. 


혈기 왕성한 젊은 시절엔 영원히 살 것 같아서 돈과 명예를 얻고자 세월을 보내지만 나중에 알고 보면 결국 가장 소중한 것은 결국 내 삶이란 얘기였다. 


오늘의 글 역시 오후 3시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지금 시각이 새벽 3시 40분이다. 계속해서 의자에서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밖엔 여전히 비가 내리고 텔레비전에선 류현진이가 안타를 매회 맞아가면서도 실점하지 않고 용케 잘 던져가고 있다.





인생에서 찾아오는 기회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가 있다. 혹자는 인생에 3번의 기회가 온다고 하고, 혹자는 위기가 곧 기회라고도 한다.


운명을 오랫동안 연구한 나, 호호당은 인생에 2가지의 기회가 한번씩 온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시작하면 반드시 성공하는 기회이며, 또 하나는 반드시 실패하는 기회이다. 이것은 정말이지 많은 사람들을 상담하며 연구해본 결과 틀림이 없다.



이러한 이야기에 대하여 강의해 보았다.

우리는 전적으로 개방형 경제

 

 

우리 경제는 개방경제이다. 그 어느 나라보다도 무역비중이 높고 수출은 우리 경제의 명줄을 쥐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본시장 역시 철저하게 개방되어 있다. 그렇기에 우리 경제는 글로벌 경제 동향에 대해 극도로 민감할 수밖에 없다.

 

최근 트럼프가 중국에 대해 25% 관세폭탄을 터뜨리자 그것이 우리 경제에 미칠 악영향에 대해 모든 언론 뉴스 매체들이 일제히 보도하고 있고 증시는 지난 목요일부터 큰 폭의 하락을 보이고 있으니 이 모두 우리 경제가 대외 동향에 대해 얼마나 민감한 지를 잘 보여준다.

 

무역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이른바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다. 특히 전자제품의 경우 우리나 대만, 말레이시아, 태국 등은 일본에서 부품과 재료를 가져오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중간재를 생산한 다음 그것을 중국으로 가져간다. 그러면 중국에서 최종 완제품이 되어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되는 이 공급 사슬이 어떻게 변형되고 왜곡될 것인지 그 악영향을 미처 가늠하기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그 악영향은 무역과 관련된 실물경제만이 아니라 금융 분야에도 대단히 큰 파급효과를 미치게 된다. 그 바람에 글로벌 악재가 생길 때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동향에 대해 늘 우려를 이마에 달고 사는 우리들이다.

 

 

외국인 투자, 이젠 얘기할 때가 된 것 같아서

 

 

이에 오늘은 우리 증시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외국인 투자의 향후 동향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이젠 얘기할 때가 되었다는 판단을 한다.

 

우리 증시를 글로벌 시장에 개방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기 시작한 것은 1989년 말부터였다. 하지만 우려도 많았다. 증시를 개방하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막대한 자금력과 선진 투자 노하우로 인해 우리 증권사들이 상대가 안 된다는 말, 일반 투자자들도 막대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관련해서 흥미로운 점은 영화시장 개방 역시 자본시장 개방과 거의 같은 시기에 이루어졌다는 점, 그리고 영화시장을 개방하면 국산 영화는 맥도 못 추고 전멸할 것이라는 우려, 그 바람에 스타 배우들을 필두로 수많은 영화인들이 극력 반대에 나서고 시위도 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자본시장이나 영화시장 모두 오히려 개방 이후에 양과 질에서 장족의 발전을 보였다는 점도 흥미롭다.

 

 

개방으로 인해 크게 선진화된 우리 경제

 

 

이처럼 시장 개방은 나름의 부작용도 있지만 전체적인 국면에선 긍정적인 효과가 더 컸던 것이 사실이라 하겠다. 증시개방의 경우 그를 통해 우리 기업들 특히 대기업들의 재무구조가 크게 건실해졌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금융시장 개방 이후 우리 경제가 돌아가는 구조는 대단히 선진화되었다. 주식 좀 하는 사람치고 주당수익률(PER)이나 주당순자산(PBR), 자기자본이익율(ROE)과 같은 개념을 모르는 이가 없고, 은행에서 대출 좀 받으려 할 것 같으면 DTI 라든가 LTV, DSR 같은 개념을 익히 알고 있는데 이 모두 30년 전만 해도 대단히 낯설고 어려운 개념들이었다.

 

현재 우리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 비중은 시가총액에 있어 대략 35%선을 중심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이 자금이 크게 빠져나갈 것 같으면 증시 하락은 당연한 얘기일 것이고 파급효과로서 부동산 시장에도 큰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금융시장의 외국인 투자에 대한 향후 전망

 

 

그러면 지금부터 나 호호당이 밝혀온 ‘자연순환의 이치’에 근거해서 본격적으로 외국인투자의 향후 동향에 대해 전망해보고자 한다. (자연순환의 이치는 기본적으로 대단히 단순하지만 그 어떤 예측 기법보다도 위력적이란 사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해가다 보면 그 노력의 누적효과- 이를 나 호호당은 時間(시간)의 利子(이자)라고 부른다-에 의해 갑자기 주변으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는 때가 온다.

 

이는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인데, 예기치 않은 인정을 받게 되는 때는 60년 순환에 있어 입춘 바닥이자 시작점으로부터 25년이 흘렀을 때이다.

가령 어떤 이는 직장에서 인정을 받고 고속 승진의 길로 들어서거나 또 어떤 이는 장사가 갑자기 잘 되기 시작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경우 갑자기 주변에 좋은 남자들이 나타나서 구애를 해오기도 한다. 이른바 瑞光(서광)이 비쳐오기 시작하는 때가 입춘 바닥으로부터 25년이 경과한 시점이다.

 

우리 대한민국의 국운으로 보면 1964년이 입춘 바닥이었기에 25년이 흐른 때는 1989년이었다. 바로 그 무렵부터 증시개방에 대한 논의가 무성해지기 시작했던 것이고 외국 투자자들이 우리 경제와 기업에 대해 전에 없던 관심을 내비치기 시작했던 때였다.

 

 

우리가 매력을 발산하자 관심을 받은 것이니

 

 

이어서 1992년은 우리 국운에 있어 大暑(대서)의 때, 우리의 활력이 넘쳐나던 때였으니 이를 한 해의 순환으로 보면 7월 24일 경의 뜨거운 때와 같다.

 

이에 급기야 증시개방이 되고 외국인 투자가 들어오기 시작했던 것이니 이는 우리 경제가 그간에 큰 발전을 보인 결과 외국 자본의 눈에도 매력적으로 여겨진 것이라 하겠다.

 

이처럼 이 글을 읽는 독자 역시 입춘 바닥으로부터 25년이 흐르면 급작스럽게 일이 잘 풀려나가기 시작할 것이다. 물론 그 때를 이미 보낸 분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간의 흐름을 보면 우리 금융시장과 증시로 외국인의 자금이 밀려든 것에는 크게 세 번의 흐름이 있었다는 알 수 있다.

1992년 증시개방이 그것이고 그 다음에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의 증시 전면개방이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2003년부터 시작된 보다 막대한 액수의 외국인 투자가 있었다.

 

정치적 사회적 사건으로 인해 가려져있긴 하지만 자연순환의 이치에 따라 살펴볼 것 같으면 이 흐름의 본질은 1992년과 1997년, 그리고 2002년이었던 것으로 봐야 한다. 즉 10년에 걸친 흐름이었다.

 

1997년 말의 외환위기가 계기가 되어 우리 시장의 전면 개방을 불러왔다는 점, 또 2002년 말 노무현 대통령 당선에 대해 미국 측이 의혹의 눈길을 보냈지만 2003년 초 그런 의혹이 해소되면서 비로소 외국인 투자의 물결이 본격화되었기 때문이다.

 

(나 호호당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2003년 3월 17일 아침 뉴스에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의 당시 부시 대통령과 우호적인 전화 통화를 했다는 소식이 그것이다. 그 소식을 듣고 나 호호당은 이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미국의 의혹이 해소되었고 그러니 장차 외국인 투자가 물밀듯이 들어오겠네 하는 판단을 했었다.)

 

 

자연순환의 이치에 따른 외국인 투자 향후 전망

 

 

세월이 가면 변화가 생기기 마련이다. 시간이 가져다주는 변화이다. 그렇기에 이 간단한 이치로서 향후 외국인 투자의 동향을 능히 예측해볼 수 있다.

 

세상일은 30년이 흐르면 반대 흐름이 생겨난다. 60년 순환을 하나의 원운동으로 볼 것 같으면 30년 전과 후는 원 궤도에 있어 정반대(opposition)의 위치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앞에서 증시개방에 대한 말이 무성해진 것은 1989년부터였다는 말을 했다. 그러니 올 해 2019년 말이 되면 그로부터 30년 후가 된다. 따라서 나 호호당은 올 해말부터 외국인 투자의 감소가 서서히 진행되기 시작할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2022년, 즉 1992년의 증시개방으로부터 30년이 흐른 시점이면 외국인 투자가 현저하게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다. 아울러 1997년으로부터 30년이 흐른 2027년이 되면 우리 경제에 대한 매력이 크게 감소하면서 대폭의 감소가 있을 것이고 2032년 즉 2002년으로부터 30년 후가 되면 우리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가 빠져나갈 만큼 다 빠져나갈 것이란 얘기이다.

 

 

결국 조정(Correction)이겠으나

 

 

물론 이런 흐름은 일종의 조정(Corretion)이라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외국인 비중이 전적으로 없어진다는 얘기는 아닌 것이고 많이 줄어들 것이란 얘기이다. 지금 외국인 비중이 35% 선이란 점을 감안할 때 2032년 정도가 되면 그 절반인 17% 선 정도로 줄어들 것을 예상해볼 수 있다는 얘기이다.

 

물론 그 정도만 줄어도 우리 증시의 시가 총액은 엄청나게 줄어들 것이란 점 자명하다. 이에 따라 富(부)의 효과(Wealth Effect), 달리 말하면 자산효과도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유가증권 자산의 축소에 따라 소비가 위축될 것이며 부동산 시세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본다. (국민연금의 고갈 시점도 앞당겨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알고 보면 부동산 시장과 증시 모두 연동되어 움직인다. 결국 자산시장이란 점에선 같기 때문이다.

 

돈에 관한 글을 올릴 때마다 조심스럽다. 나 호호당의 글을 잘 읽지 않고 독자들께서 섣불리 판단하는 바람에 손실을 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경제 문제에 관한 글은 그래서 늘 주의를 기울여 주셨으면 한다.

 

얼마 전 “우리 경제 이제부터가 정말 어렵다”는 글을 올렸는데 이 글은 그와 관련된 글이라 하겠다.

희망이란 것에 대하여

 

먼저 희망이란 것에 대해서부터 얘기를 시작해본다.

 

희망이란 미래, 가까운 미래 또는 먼 미래이든 상관없이 장차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좋은 일이나 상태에 대한 바람이다.

 

가령 주중에 일터에 나가 일하는 사람들은 주말이 가까워오면 푹 쉬고 또 즐겁게 놀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그런가 하면 지금은 다소 궁핍해도 언젠가 돈을 많이 벌어서 즐겁게 살아갈 날이 올 것이란 희망을 가졌다면 그건 사실 막연한 희망이다. 희망은 이처럼 그것이 크든 작든 간에 우리로 하여금 눈앞의 힘든 현실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부여한다. 그러니 희망을 가진 것은 좋은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희망이란 것이 때론 대단히 해로울 때도 있다. 단적으로 현재의 어려운 때가 어서 빨리 지나가버리길 바랄 때 희망은 우리에게 독이 되기도 한다. 희망이 눈앞의 힘든 현실, 줄이면 ‘현실’로부터 자꾸 외면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희망은 힘이 아니라 해로운 독소로 변해서 우리의 삶을 파괴하기도 한다.

 

 

희망은 양날의 칼이어서

 

 

희망이 현재를 견디게 하는 힘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바로 그 현실을 외면하게 만들고 자꾸 망각하도록 만들 때 희망은 일종의 진통제, 나아가서 일종의 마약이 된다는 말이다. 물론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이런저런 통증으로 진통제를 먹어야 할 때가 수시로 있다. 나프록센, 아세트아미노펜, 이부프로펜 등등 다양한 진통제가 잘 팔려나가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진통제를 습관성으로 먹다 보면 나중에 결국 일종의 마약 중독 상태에 빠지는 것처럼 희망이란 것 역시 남용할 때 우리의 삶은 피폐해진다.

 

뭐든 생각하기 나름이란 말이 있다. 현실이 팍팍할 때 어떤 이는 막연한 희망으로 버텨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힘든 처지에서도 작은 즐거움을 찾고 또 즐기면서 위안을 찾는 이도 있다. 최근 유행하는 ‘소확행’ 같은 것도 그런 일종이다.

 

우리 사회는 2012년부터 경기침체 또는 스태그네이션 상태에 들어가 있고, 특히 젊은이들의 사회진출이 그 질적인 면에 있어 예전보다 훨씬 악화되었다. 대부분 계약직 또는 비정규직이 고작이어서 안정성이나 장래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젊은이들이다.

 

 

소확행과 욜로족, 젊은이들의 적응

 

 

이에 한동안은 헬 조선이다 하면서 푸념을 했지만 이젠 그런 푸념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니 ‘소확행’이다. 젊은이들이 현 세태에 대하여 나름의 적응을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쩌다가 한 번 목돈이 생기면 과감하게 지르기도 한다. 그럴 땐 ‘욜로’족 시늉인 셈이다.

 

이른바 ‘희망고문’에 넌더리가 난 우리 젊은이들이라 여긴다.

 

 

희망의 부작용

 

 

그렇다, 희망이 희망고문이 되면 삶은 피폐해진다. 뿐만 아니라 막연한 희망만으로 오늘을 견디는 방식은 현재와 현실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책에서 이런 시를 읽었다.

 

희망을 품다 보면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지.

최후의 시간이 오면

더 이상 희망도 없어라.

 

희망, 막연한 희망만으로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다 보면 어느새 삶의 종착역에 도달할 수도 있다는 경고가 시에 담겨 있다.

 

 

좋았던 일도 금방 무감각해지는 우리인 까닭에

 

 

사실 우리가 좀 살아보면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살다보면 때론 대단히 격할 정도로 좋은 일이 없지는 않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좋은 일이나 감격적인 慶事(경사)라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덤덤해지고 무디게 되며 심지어는 망각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내 경우 군에서 제대하던 날을 기억하곤 있지만 그 날의 감동과 기쁨은 전혀 남아있지가 않다. 이처럼 우리 삶에 있어 모든 기쁨의 날은 기억되긴 해도 기쁨의 알맹이는 금방 빛을 잃고 퇴화되며 심지어 없음 즉 無(무)로 변하기도 한다.

 

그런 우리들이기에 늘 새로운 그리고 막연한 희망과 꿈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희망이나 꿈은 눈앞의 일도 아니요 현실도 아니다. 아직 오지도 않은 따라서 존재하지도 않는 그저 막연한 미래에 대한 것이다.

 

미래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 따라서 우리의 삶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가진 것은 과거의 추억과 현재, 즉 눈앞의 시간뿐이다. 그런데 눈앞의 시간이 힘들고 시시하다 해서 외면하고 의미 없게 여겨버릴 것 같으면 결국 삶 전체가 의미 없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삶이란 과거가 되었을 때만이 이해가 되니

 

 

키르케고르의 말에 의하면 삶이란 뒤돌아봤을 때만이 이해될 수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과거에 대한 반추와 성찰을 통해서만이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현재란 순간순간의 이어짐이고 연속일 뿐, 거기에 스토리는 없다. 스토리란 결국 기승전결의 구조로서 결말이 나와야만 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늘 진행형이어서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사실. 점심시간까진 좋던 하루가 저녁에 들어 최악의 날이 될 수도 있겠고 또 그 다음 날이면 전혀 다른 일이 생길 수도 있는 끊임없는 진행형이 바로 현재인 까닭이다.

 

현실 그리고 현재의 순간에 있어 어쩌면 가장 즐겁고 행복한 순간은 이성간에 연애하는 시간들일 것 같다. 뜨거운 감정으로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고 원할 때의 그 시간들은 분명 꿈길 같다. 그렇기에 대중가요나 팝송은 죄다 연애나 사랑에 관한 얘기이다. 하지만 천생 바람둥이가 아닌 이상 평생을 정말로 그렇게 살 순 없는 노릇이고 연애의 시간은 길어봐야 긴 인생에 비하면 한 때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함부로 무턱대고 희망을 품을 일은 아닌 것이다. 그건 어딘가 조금 아프다고 진통제부터 찾는 나쁜 습관과 같은 것이니 말이다. (물론 전혀 진통제를 찾지 않고 오로지 생으로 버티는 것 역시 미련한 짓이긴 하다.)

 

 

우리 누구나가 보내고 있는 운명의 계절

 

 

우리 모두 알게 모르게 어떤 삶의 계절을 살아가고 있고 또 지내고 있다.

 

나 호호당은 어쩌다가 관심이 생기고 집요하게 연구해본 결과 어떤 사람이 지금 어떤 계절을 보내고 있는지 열두 달 중에 어느 달을 지내고 있는지 알아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60년에 걸쳐 한 해 열두 달이 지나가기에 누구에게나 계절과 시간의 길이는 동일하게 주어진다는 점도 알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승리나 유천, 준영과 같은 젊은 연예인들의 경우 인생의 계절이 모두 입춘 바닥 그리고 박유천의 경우 올 해가 바로 입춘 바닥의 해이다. 인생의 한겨울 추위가 그들을 몰아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곧 나름의 합당한 사회적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시간이 지나면 내가 왜 그 시절에 그렇게 행동했을까를 놓고 많이 되새겨보게 될 것이다.

 

그간의 상담 경험에 의하면 사람은 누구나 막연하긴 해도 자신의 계절을 알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헛된 희망이나 욕심으로 인하여 수시로 흐려지기도 하는 사람이다. 아닐 거야 더 좋아질 거야 하는 희망에서 말이다.

 

앞에서 말했다. 키르케고르의 말이 그것이다. 삶이란 뒤돌아봤을 때만이 이해될 수 있다는 말. 그렇기에 알려드리고자 한다.

 

 

좋은 시절은 없고 좋았던 시절만 가능한 법이어서

 

 

좋은 시절은 없다는 말이 그것이다. 되돌아봤을 때 그때가 좋았다거나 좋은 시절이었구나 하는 것은 있어도 지금 현재 좋은 시절이구나 하고 自覺(자각)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지금은 순간순간의 연속체일 뿐이기에 결론을 내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좋은 시절은 없고 좋았던 시절만 있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나빴던 시절도 있다.) 좋았던 시절이란 결국 현재와 비교해서 그런 판단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좋은 미래 역시 없다. 일단은 오지도 않은 존재하지 않는 시간인 것이고 그 역시 더 시간이 지나서 지금의 미래가 먼 과거의 일이 될 때만이 좋은 시절이었구나 혹은 나쁜 시절이었다는 자각을 할 수 있으니 그렇다.

 

그러니 좋았던 시절만이 가능하다. 그때가 好時節(호시절)이었지 하는 과거적 사건만이 가능하다.

 

예전엔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 상담하러온 사람이 지금 호시절을 보내고 있건만 정작 본인은 그걸 모르고 현실의 어려움만 호소하고 있을 때 그러했다. 그래서 지금이 호시절이란 것을 알려주려고 애를 쓸 때도 많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다시 생각해보니 그런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모두 현재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과거만이 이해할 수 있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고 현재는 순간의 연속적인 과정이니 흐름의 渦中(와중)에 있는 자는 상황을 판단할 수 없는 법, 그리고 미래는 오지 않았기에 존재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나름 예쁜 그림을 그려보거나 좋은 꿈을 꿀 수 있을 뿐이다.

 

 

그저 분명한 것 한 가지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 이 시각 현재 인생의 어느 계절, 운명의 어느 계절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귀인을 만나는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런데 귀인이 무엇일까? 과연 귀인이란게 운명에서 있는가? 귀인이란 누구인가? 귀인이란 언제 만나는가?



이런 이야기를 가지고 강의를 해보았다.

최근 그림들에는 하나의 테마가 있기에

 

 

 4월 28일자로 올린 그림에서부터 지금까지 올린 몇 개의 그림은 하나의 주제를 가진 연속적인 프로그램이다. 주제는 다뉴브 강이고 그림들은 다뉴브 강변에 위치한 도시와 마을들이다.

 

갑자기 난데없이 왠 다뉴브 강? 하겠지만 이제 그 영문을 말하고자 한다.

 

2015년 가을 나는 강남 교보문고에서 한 권의 책을 샀는데 제목이 ‘다뉴브’였다. 작은 글자로 인쇄된 제법 두꺼운 책이라 막상 샀지만 쉽게 엄두가 나질 않다가 어느 날인가부터 조금씩 읽어가기 시작했다.

 

작가는 ‘클라우디오 마그리스’란 이름의 이탈리아 작가이다. 원래부터 문학을 애호하면서도 그 선동성을 경계하는 나 호호당이고 또 유럽 문학에 대해 전혀 잘 모르지만 유럽 쪽에선 대단히 알려진 작가인 모양이다. 이 양반의 글을 읽다보면 작가라기보다는 대단히 박식한 저널리스트란 생각이 든다.

 

아무튼 나 호호당은 이 작가의 책을 읽을 때마다 흠뻑 빠져들게 되었다. 작가는 다뉴브 강변의 도시들을 강을 따라 내려가면서 차례로 소개한다. 도시 관광 안내가 아니라 그 도시들에 살았던 역대 유럽의 지성인들과 과학자, 시인과 철학자들의 자취를 찾아서 얘기를 들려준다.

 

마그리스란 작가나 그의 책 ‘다뉴브’ 모두 우리에게 많이 생소하다. 다뉴브 강이라 하면 “다뉴브 강의 물결”이란 왈츠 곡 정도밖에 모르는 우리들 아니겠는가. 그런 생소한 다뉴브 강의 물줄기를 따라 작가는 그 연변의 도시들을 방문해가면서 그곳에 서린 역사와 지리, 문학과 예술, 종교와 사상에 대해 그간 들을 수 없었던 많은 얘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수년간 읽어온 책, 다뉴브

 

 

쭉 읽고 치운 책이 아니라 잠들기 전에 읽고 화장실에 가서 잠시 읽고 그러다가 어떤 날엔 작업실로 들고 와서 쉬면서 읽고 또 어떤 날엔 약속 장소로 이동하면서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읽는 식이다. 이처럼 수시로 손에 짚이는 대로 펼쳐서 읽었고 또 눈이 피곤하면 책갈피를 덮는 방식으로 벌써 몇 년간 읽어왔다.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르고 중복해서 읽은 데도 많지만 어쨌든 완독을 했다.

 

 

구글 어스를 통해 다뉴브 강을 내려가다.

 

 

그러다가 며칠 전 구글 어스를 통해 다뉴브 강을 그 시원에서부터 쭉 따라가면서 도시들과 주변의 지형들을 살펴보았다. 중부 유럽에서 동유럽 끝의 흑해에 이르는 길고 긴 강, 위키에 보니 길이가 장장 2,850 킬로미터라 한다. 구글 어스에서 고도 1.5 킬로미터로 고정해놓고 끊임없이 마우스를 당겨가면서 강을 따라가는 여행이었고 또 작업, 아니 정확히 말해서 놀이였다.

 

 

다뉴브 강변에 펼쳐졌던 유럽 지성의 흐름

 

 

책에는 희대의 유대인 학살에 있어 한 역할을 맡았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또 다른 면모도 적혀있다. 독일 바이에른 숲속의 궁벽한 수도원에서 아이히만은 일주일 간 정신적 칩거를 했을 정도로 신앙이 깊었다는 사실, 수도원의 방명록에 믿음에는 믿음으로 라는 글귀를 남겼다는 것, 이처럼 대학살의 전문가는 명상과 정신집중, 숲의 평화를 사랑했으며 기도도 좋아했다는 글이 적혀있다.

 

참으로 뜻밖이다. 하지만 금방 이해가 간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상부의 지시에 순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그것이 엄청난 비인도적인 지시였어도 따랐던 것이 아닌가 한다. 물론 변호하고픈 마음은 없다.

 

아이히만의 생년월일을 검색해서 사주도 살폈으나 역시 평범한 사람이었다. 중령이란 계급을 달고 있던 그로선 어쩔 수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너무 끔찍하다.

 

독일 다뉴브 강변의 도시 레겐스부르크에 최종적으로 머물렀던 요하네스 케플러의 일화도 나온다. 레겐스부르크는 신성로마제국의 의회가 있던 도시. 의회는 시청의 큰 방에서 열리곤 했다. 케플러는 황실 점성술사로 일했기 때문에 레겐스부르크에 왔던 것이고 그 바람에 케플러 박물관도 이 도시에 있다.

 

케플러는 17세기 천문학 혁명의 중심인물, 행성의 운동법칙을 확립하여 훗날 뉴턴의 연구에 토대가 된 인물 아닌가. 그는 눈송이가 왜 육각형의 작은 별 모양이 되어 응어리지는 궁금했고 또 연구한 결과 논문을 썼다. 논문을 후견인에게 바치면서 쓴 편지 글귀가 책속에 소개된다.

 

“당신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좋아한다는 걸 나는 압니다. 그 가치가 아주 작기 때문이 아니라 지저귀는 참새마냥 익살스럽고 가볍게 그것과 놀 수 있기에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좋아한다는 걸 말입니다.”

 

논문을 보내면서 이처럼 시적 흥취로 가득한 글을 적었다니, 케플러의 또 다른 면모가 순간에 내 속으로 들어와 적신다.

 

이처럼 독일 책 속엔 시인의 시인이란 칭호를 가진 프리드리히 횔덜린에 관한 얘기, 분석철학의 비트겐슈타인, 정신분석학의 프로이드 등등 수많은 유럽의 문학과 예술, 지성의 巨峰(거봉)들에 관한 일화가 연이어 소개되고 있다.

 

 

난해하지만 매료되는 이야기들

 

 

문제는 이 책 내용 중 1/3 정도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학가답게 너무 어렵게 쓴 것 같기도 하고 물론 번역 과정에서의 문제도 있지 않았나 싶다. (원래 문학서적을 번역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나를 매료시키는 이 ‘다뉴브’란 책, 그러다가 내가 느낀 감흥을 간직한 채 다뉴브 강변의 마을과 도시들을 그려보기로 했다.

 

 

뜻밖의 그림 여정을 시작했으니

 

 

첫 그림은 4월 28일의 뒤른슈타인의 수도원 그림이었고 이어서 레겐스부르크, 세 강이 만나는 독일의 도시 파사우, 또 파사우의 하얀 탑 그림, 그리고 소설 ‘장미의 이름’의 모티브가 된 멜크 수도원 그림이다.

 

계속 그릴 것이다. 그리기 전에 책 속에서 그 마을에 관해 기술한 부분을 읽고 또 위키나 구글을 통해 알아본 후 그림을 그릴 생각이다. 물론 그림 속에는 전혀 그런 내용을 표시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그림 속에 그 무언가가 들어가 있지 않을까 싶긴 하다.

 

언제까지 그려나갈 지는 모르겠다. 숙제도 아니고 의뢰받은 프로젝트가 아닌 까닭에 그저 내키는 대로 그려볼 생각이다. 싫증이 나면 ‘예술은 자유로운 감성의 산물’이라고 눙치면서 슬쩍 몸을 빼면 그만 아니겠는가 말이다.

 

어쩌다가 시작한 그림 시리즈, 호빗 3부작 영화의 첫 편 제목이 “뜻밖의 여정”인 것처럼 그냥 뜻밖에 시작한 작업 또는 여정이라 여기면 되리라.

운의 장기 순환과 단기 순환의 상호 작용

 

 

나 호호당이 세상의 변화를 살피는 방법은 60년에 걸친 장기 순환과 60개월의 단기 순환의 상호 작용을 관찰하는 방법이다. (큰 그림을 살필 적엔 60년에 걸친 장기 순환에 대해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눈앞의 일이나 가까운 미래를 살필 적엔 두 가지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우리 경제가 몇 년 사이 줄곧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경제는 2014년부터 이미 스태그네이션(Stagnation), 경제 성장률이 침체 상태, 달리 말하면 잠재성장률과 같거나 그 이하인 상태를 유지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國運(국운)이 2024년이면 立春(입춘) 바닥을 맞이할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던 나 호호당으로선 우리 경제가 침체상태에 있다는 것은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었고 현실을 그냥 받아들이고 있었다.

 

한편으로 그러는 사이에도 어쩌면 우리 경제가 침체 즉 스태그네이션 정도가 아니라 더 심한 곤경에 빠져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 또한 그간에 늘 해오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최근 몇 년 사이의 동향에 대해 신경을 곧추 세우고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금년 1/4분기는 향후 전망에 결정적인 시기

 

 

지난 달 한국은행은 우리 경제 성장률이 1/4분기에 작년 4/4분기 대비 0.3% 축소되었다는 발표를 했다. 상당한 충격이다.

 

다시 얘기하는 바이지만 나 호호당이 경제를 살피고 또 판단하는 방법은 일반 경제전문가들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물론 같은 수치와 통계자료를 근거로 하지만 판단의 방법은 일반적인 경제예측이론이 아니라 나 호호당이 발견해낸 자연순환의 이치에 의한 것이다.

 

우리 국운과 경제의 60개월짜리 단기순환은 2017년 4월 초에 시작해서 2022년 4월 초로서 끝이 나고 그 이후엔 또 다른 60개월의 단기순환이 펼쳐진다.

 

작년 8월 23일자로 “소득주도성장론을 바라보는 복잡한 심사”란 글을 올린 바 있다. 본문 내용에 이렇게 쓰고 있다.

 

“7월 고용발표를 접하고 나서 맥이 풀리고 기가 빠졌다.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걱정하고 우려하던 그 이상의 나쁜 수치가 나왔기 때문이다. (중략) 올 7월은 향후 45개월의 흐름과 방향을 처음으로 가늠해볼 수 있는 달이었다. 2017년 4월부터 2022년 3월에 이르는 60개월의 흐름을 예측할 수 있는 시점이었다는 말이다.”

 

또 그 이전인 7월 24일자에 “2019년 5월, 우리 경제의 변곡점”이란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그런 글을 올린 것은 올해 5월, 바로 지금의 때가 되면 우리 경제가 침체이긴 하더라도 그런대로 이어져갈 것인지 아니면 더욱 심한 곤경에 처할 것인지의 여부가 판명이 나는 시점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온건한 스태그네이션과 더욱 엄중한 경제 상황의 기로

 

 

이에 과연 어느 쪽으로 기울 것인가, 스태그네이션 상태로 유지될 것인가 아니면 보다 심한 침체로 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나 호호당은 금년 1/4분기를 보면 알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려놓고 있던 차였다.

 

그런 마당에 1/4분기 0.3% 역성장이란 소식이 들려왔다. 그렇다면 우리 경제는 이제부터 그냥의 일반적인 경기침체가 아니라 더 엄중한 상황으로 들어갈 것이란 진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왜 이런 판단을 하게 되는지를 놓고 독자들의 이해를 조금이라도 돕기 위해 약간의 설명을 해보기로 한다.

 

한 해를 놓고 보자. 5월 초가 되면 4월 20일 경에 뿌린 볍씨가 발아해서 모판을 뚫고 나온다. 이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새싹이 머리를 내미는 것이다. 싹이 나오면 이제 눈에 보인다. 不明(불명)에서 明(명)의 때로 접어든 것이다. 5월 초의 立夏(입하)란 절기는 그 이전까지 땅속에 숨었던 일들이 이제 바깥으로 드러나는 때인 것이다.

 

2017년 4월 甲辰(갑진)월부터 60개월에 걸쳐 진행되는 순환을 놓고 얘기해보면 15개월이 경과하고 16개월로 접어드는 2018년 7월이 바로 60개월 순환에 있어 立夏(입하)의 때라고 할 수 있다. (1년 12개월을 5년 60개월에 대입하면 되겠다.)

 

그렇기에 2018년 7월의 고용수치는 2017년 4월부터 2022년 3월까지 진행될 흐름을 가늠해볼 수 있는 최초의 시점이었다. 그런데 수치가 몹시 나빴다. 그 이후 정부는 부랴부랴 갖은 방법을 동원해서 수치 자체는 높여놓는데 성공했으나 아시다시피 상당수가 초단기 일자리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번 5월은 60개월의 전체 흐름을 훨씬 더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내다볼 수 있는 결정적인 시점이 된다.

 

해마다 6월 22일경의 夏至(하지) 무렵이면 한 해의 모든 흐름이 명확해지는 때이다. 하지는 빛이 가장 센 탓에 모든 사물을 가장 명확하게 비추이는 때인 까닭이다.

 

이를 60개월에 대입해서 시점을 뽑아보면 올 2-3월이 바로 夏至(하지)의 때란 것을 알 수 있다. 2017년 4월로부터 22.5개월이 경과한 시점을 말한다.

 

따라서 올 2-3월은 60개월 전체의 흐름을 명확하게 眺望(조망)해볼 수 있는 결정적인 시점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번 한은의 발표, 금년 1/4분기, 즉 금년 1-3월까지의 경제성장률 수치가 마이너스로 나온 것이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4/4분기 -3.3% 이후 41분기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라 하며 분기 기준으로 5개 분기만의 마이너스 성장이다. 경기하강 속도가 예상보다 가파르다는 의미다. 뿐만 아니라 전년 동기 대비로도 이번 1/4분기 성장률은 1.8%에 그치고 있다. 이 또한 2009년 3/4분기 이후 38분기 즉 9년 반 만에 최저치라고 한다.

 

 

우리 경제, 심각한 상황으로 들어설 것 같으니

 

 

동향을 가장 정확하게 예단할 수 있는 결정적인 시기에 이런 우울한 수치가 나왔으니 나머지 기간, 즉 2022년 3월까지의 우리 경제 흐름은 일반적인 침체를 넘어 대단히 심각한 국면이 연출될 것으로 진단하게 된다.

 

정부는 2/4분기부터 수출이나 내수 등이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것 같다는 얘기이다. 올 8월 壬申(임신)월이면 보다 더 수상한 국면이 연출되기 시작해서 연말 정도가 되면 정부 역시 전망을 대폭 수정하게 될 것이라 본다.

 

올해 성장률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정부 예산 규모가 크고 여기에 추경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 미만일 공산이 크다고 본다. 뿐만 아니라 구체적으로 수치를 확정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어쩌면 내년 2020년 경제성장률 전체가 마이너스가 될 가능성도 엿보인다는 점이다.

 

한 가지 덧붙일 점은 중국 경제가 금년 하반기부터 6% 대의 성장률을 지켜나가기가 어려울 것이란 점도 있다. 중국 경제는 이미 작년부터 성장률이 꺾이기 시작했고 올 해엔 그런 경향이 더 심화될 것이라 확신한다. 그렇기에 중국 경제가 부진할 경우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국내에서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정책에 대한 평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여야 간의 정치 투쟁이 개입되어 있어 더더욱 그렇다. 그런 논쟁에 휘말릴 이유가 없는 나 호호당이지만 그동안 지켜온 바 득보다는 실이 더 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게다가 이번에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 발사 사건은 비핵화 협상을 최대한 잘 끌어내려는 문재인 대통령의 노력에 엄청난 부담을 주고 있다. 발사 장면을 담은 사진을 보니 우리로선 요격이 불가능한 ‘이스칸데르’ 버전인 것 같으니 마음이 더 무겁다. 저기에 핵을 장착하게 되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우리로선 정말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미사일을 발사체라 하고 도발을 도발 아니라고 강변해야 하는 대통령과 정부로선 참으로 난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어떻게 해서든 한반도에 평화를 만들어내려는 대통령의 노력에 뜨거운 성원을 보낸다. 중간 과정이 어떻게 되든 결과적으로 잘 되기만을 바랄 밖에.

초여름 날의 즐거운 산책

 

 

싱그럽다는 말은 이맘때를 두고 하는 말일 것 같다. 하늘은 맑고 푸른데, 바람마저 시원하다. 새 잎사귀와 새 풀이 도처에 널렸고 걷다 보면 어디선가 흘러온 라일락 향기가 콧속으로 들어와 상큼하다.

 

오후 시간 상담 한 건을 마무리한 뒤 5시 무렵 작업실을 나섰다. 내게 있어 외출이란 결국 300미터 떨어진 인근의 교보문고를 찾는 일이다. 책 구경을 하려면 체력이 필요하니 우선은 길 건너편의 버거킹에 들러 와퍼 세트를 먹었다. 마침 제자가 선물한 교보문고 현금카드도 쓸 겸 일주일 사이에 새로 나온 책들도 만날 겸 해서였다.

 

햄버거를 먹고 나와서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옆의 젊은 처녀가 최대한의 미백 화장을 하고 진한 속눈썹을 붙인 채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최대한 鼻音(비음)을 섞어가며 귀여움을 부리고 있었다. 아이고, 저 귀여운 철딱서니.

 

 

서울 강남 거리의 특별한 즐거움

 

 

이처럼 서울 강남의 거리를 걷는 일은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 젊은 여성들의 잘 차려입은 모습을 즐기는 일이 그것이다. 세련된 차림과 화장의 젊고 싱싱한 아가씨들 사이로 걸어가는 일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나라 젊은 여성들, 특히 서울 강남의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보면 극도의 세련미를 느끼게 된다. 또 그럴 때면 내게도 저처럼 귀엽고 발랄한 딸이 하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도 느낀다.

 

나 호호당은 화가의 눈을 가졌다. 늘 사물을 관찰하고 또 종이 위에 묘사하는 훈련을 해왔기에 여성들의 치장한 모습도 즐기는 한편 그 밑에 가려진 몸매까지 고스란히 읽어낼 수 있다. 그러다 보면 가끔 피식- 웃곤 한다. 가령 어떤 아가씨가 약간 처진 엉덩이 라인을 제대로 카버하지 못했을 때 말이다.

 

때론 심한 노출 때문에 보는 내가 거북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매력을 최대한 뽐내려는 그 자신감에 대해 기꺼이 칭찬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어차피 삶은 순간의 연속, 그러니 좋아, 홧팅!

 

혹시나 해서 얘기인데, 나 호호당이 그녀들을 바라보는 시간은 지극히 짧다. 젊은 시절이라면 당연히 은밀한 욕망도 일었겠지만 이젠 그렇지가 않다. 그냥 그 싱싱한 젊음을 즐긴다.

 

그런 까닭에 상대가 거북스럽게 여길 눈빛으로 쳐다보는 법은 없다. 한 여성에 대한 내 눈길이 0.3초 이상 머무는 법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 시간이면 얼굴은 물론이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의 전체 실루엣, 심지어는 때론 그녀들의 영혼마저 느낄 수 있다.

 

책을 몇 권 산 뒤 다시 작업실로 돌아오기까지 지나쳤던 젊은 여성들의 모습들이 글을 쓰다 보니 차례로 떠오른다. 쾌청한 하늘 밑 저녁노을 빛에 환하게 빛나는 모습들이 내 눈에 지금 담겨있다.

 

 

 

브레송의 결정적인 순간들!

 

 

이런 말을 하고 나니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생각난다. 일상의 모습과 이미지가 담고 있는 그 순간의 리얼리티를 포착해낸 자신의 사진에 대해 ‘결정적 순간’이란 표현을 했던 프랑스의 사진작가 말이다.

 

5월 초의 맑은 하늘 아래 저녁노을을 받아 빛나는 저 여성들의 모습, 내 눈에 포착된 저 눈부신 이미지들이야말로 과연 그렇지 않겠는가 싶다.

 

 

서점 매대에서의 흥정

 

 

교보문고 매장으로 말머리를 돌린다.

 

입맛을 부추기는 책이 오늘 역시도 열댓 권 가량이었다. 책갈피를 들추면서 잠시 본문을 읽어보다가 일단은 자리에 그냥 놓고 다시 자리를 옮긴다. 두어 달 전부터 망설이던 책 중에 하나인 “팩트풀니스”를 오늘은 사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무역의 세계사”란 책이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살펴보니 예전에 참으로 즐겁게 읽었던 “부의 탄생”이란 책을 쓴 그 사람, 바로 윌리엄 번스타인이었다.

 

부의 탄생을 읽은 뒤의 소감은 지극히 단순하고 명백하다, 이유를 모를지라도 돈이 지속적으로 밀려드는 곳이면 그곳에 성장이 생겨나고 부가 창출된다는 얘기. 도덕이나 윤리, 정당성 같은 것을 떠나 부는 그렇게 창출된다는 얘기였다. 감명 깊게 읽은 책이다.

 

그러니 무역의 세계사도 사야 하겠네 하는 생각을 했다. 이에 영문 제목을 보니 ‘A Splendid Exchange’, 이에 아, 이 책이구나, 국내 번역되면 좋을 터인데 하는 생각을 했던 바로 그 책.

 

그런데 가격을 보니 31,500원, 더 문제는 하드카버 책이니 들고 가려면 무겁겠다는 생각에 일단은 나중에 사기로 결정을 했다. (나 호호당은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하는 일이 거의 없다. 매장에서 마음에 들면 사서 들고 온다.)

 

다시 옆을 보니 “케임브리지 중국경제사”란 묵직한 그러나 매력적인 주제의 책이 놓여있었다. 이 방면에 관해 적지 않은 책을 읽긴 했으나 새로운 시각과 연구를 담고 있는 것 같아서 구미가 당겼지만 역시 책의 부피와 무게 때문에 다음 기회로 넘겼다.

 

다시 눈을 돌리니 순간 나를 의아하게 만든 책이 있었다. “당신도 피카소 그림을 살 수 있다”, 이런 제목. 저게 뭐지? 싶어 제목 밑에 달린 부제를 보니 ‘4차산업 혁명시대, 블록체인과 인문경영’이었다. 순간 이해가 갔다, 피카소 그림의 지분을 살 수도 있는 공유경제, 뭐 이런 얘기이구나 싶었다. 책을 내려놓으면서 그래 많이들 사시구려, 했다.

 

한 시간 여 매장을 돌아다닌 끝에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집 한 권, 교고쿠 나쓰히코의 “후 항설백물어(하)”, 일본 경제에 관한 책 한 권, 앞서 말한 “팩트풀니스”, 이렇게 네 권의 책을 산 뒤 돌아 나왔다.

 

 

분수 물방울 속에서 빛나고 있는 여름

 

 

좌골신경통이 있는 몸인지라 계단을 오를 때 살금살금 올라야 했다. 서쪽 하늘의 눈부신 역광이 내 눈 속으로 파고 들었고 또 옆으로 흘러내리는 계단식 분수의 물과 부딪쳐 빛났다. 교보문고 입구 계단에 분수물이 소리 내어 활기차게 흐르면 계절은 여름이다.

 

오늘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초여름이 왔고 얼마 후면 더위가 닥쳐오겠지. 그러다가 선선한 가을이 올 것이고 겨울이 오면 어느덧 한 해를 떠나보낼 준비를 해야 하리라.

 

이런 식의 되풀이, 즉 해의 순환을 이젠 어언 예순 네 번째 겪고 있으니 시간과 세월은 잘도 흐른다. 탄력 넘치던 몸뚱이도 어느덧 허리 디스크가 파열되고 신경섬유에 염증이 생겨서 다리를 절뚝거릴 지경에 이르렀으니 거 참! 그저 어서 나아야지 하는 마음뿐이다.

 

 

삶의 결정적인 하루를 보내면서

 

 

오늘은 늦은 오후 무렵의 햇빛과 푸른 하늘을 즐겼고 그를 기억 속에 담았으니 하루의 수확은 풍성하다. 게다가 서울 강남의 초여름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 처녀들의 모습, 내겐 그들이 마치 바닷속을 힘차게 헤엄쳐가는 등푸른 생선들과도 같았다, 그 역시 듬뿍 눈에 담았으니 더더욱 좋은 날이다. 더불어 늦은 밤 잠자리에 누워 새 책들과 대화할 수 있게 되었으니 오늘은 정말 좋은 날이다. 다시 말하면 오늘은 삶에 있어 또 하나의 ‘결정적인 날’인 것이다.

제때에 씨 뿌린 대한민국, 그렇지 못한 북한



봄에 때에 맞추어 볍씨를 뿌려야만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볼 수 있다. 물론 그 도중인 여름에는 부지런히 잡초를 뽑아야만 하고 日氣(일기)도 순조로워야 한다. 


우리 國運(국운)의 순환에 있어 씨를 뿌려야할 시기는 1976년 무렵이었다. 그 때가 우리와 북한 모두에게 있어 穀雨(곡우), 즉 씨를 뿌려야 할 때였던 것이다. 


비록 독재자란 평가를 받고는 있으나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모든 가용한 자원을 총동원해서 씨를 뿌렸다. 중화학 공업의 육성이 그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제조업 강국으로 성장했고 2006년, 즉 국운의 霜降(상강)인 수확기에 풍성한 결실을 볼 수 있었다. 당시 전자와 자동차, 조선, 화학 등등 우리의 모든 주력산업들이 엄청난 실적을 보여주었던 것이 그것이다. 


이 모두 결국은 1976년 국운의 씨 뿌릴 시기에 야무지고 독하게 씨를 뿌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2006년 우리의 반쪽인 북한은 핵실험을 강행했다. 


남쪽은 경제발전에 성공해서 부강한 나라가 된 반면 경제가 파탄지경에 이른 북한은 핵개발에 성공했으니 그 대조가 참으로 심하다. 



북한이 핵개발에 매달린 이유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복잡하게 따질 것도 없다. 그 이유는 북한의 경우 씨를 뿌려야 했던 1976년에 씨를 제대로 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랬던 까닭이 사회주의 체제 자체의 문제인지 아니면 김일성과 그 집단의 잘못인지 그건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북한은 그 중요한 시기를 그냥 흘려보내고 말았다. 


1976년과 2006년, 30년이란 결코 짧지 않은 시차가 존재한다. 그러니 그 도중에 북한 역시 잘해볼 수 있는 기회는 없었던 것일까?

이를 벼농사로 비유해서 설명해본다. 


볍씨를 뿌렸다 해도 가뭄이 들면 농사가 되질 않는다. 그렇기에 6월 23일 경의 夏至(하지)까지 비가 내리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낸다. 기우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적어도 하지 무렵까진 늦어도 비가 내려야만 농사가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 국운에 있어 夏至(하지)는 1986년경이었다. 북한이 오늘날처럼 핵이라고 하는 협박 수단을 통해 생존의 길을 모색해보려는 생떼를 부리게 된 것은 결국 국운의 하지인 1986년까지 제대로 된 경제발전의 길을 찾아내지 못했거나 아니면 공산체제의 모순으로 인해 손을 놓고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마지막 때를 놓친 북한이었던 것이다. 


북한의 경우 제 때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으니 그냥 무사하게 흘러가는 법은 없다.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때를 놓친 북한의 고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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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6년으로부터 15년이 흐른 1991년 무렵이 되자 북한으로선 마른하늘에 날벼락과도 같은 일들이 발생했다. 


1991년 말 그간 철석같이 믿고 의지하던 소련이 붕괴했을 뿐 아니라 또 하나의 뒷배였던 중국이 우리 남한과 수상한 거래를 하더니 졸지에 1992년에는 정식으로 외교관계를 텄다. (그 바람에 아버지에 이어 북한의 통치자가 된 김정일은 죽을 때까지 중국을 저 배신자들! 하면서 미워했고 경계했다.) 


엄청난 고립감을 느낀 김일성이가 핵개발을 염두에 두기 시작한 것 역시 1991년이었을 것으로 추산한다. (그 결과가 바로 1993년 초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인 NPT 탈퇴였고 그로서 제1차 북핵 위기가 발생했다.) 


다시 말하지만 북한으로선 1986년 무렵, 국운의 하지 무렵이 마지막 기회였다. 그러나 북한은 그냥 세월을 보냈고 그 바람에 그 10년 뒤인 1996년이 되자 식량 고갈과 부족으로 인해 엄청난 사람들이 굶어주는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절을 보내야 했다. 


북한은 양면 전략을 썼다. 비밀리에 핵을 개발해가되 우리 측에겐 경제원조를 요청했다. 때마침 김대중 대통령의 햇볓 정책과 맞물려서 2000년엔 최초로 남북한 정상회담이 열렸다. 하지만 2002년 핵개발 사실이 미국 정보 당국에 의해 발각되면서 우리로선 더 이상 북한을 원조할 근거가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자 김정일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오로지 핵 개발에 매진했다. 이제 죽으나 사나 핵을 완성한 다음 그것으로서 우리는 물론이고 미국과 담판을 지어보겠다는 장기에 걸친 어려운 전략을 택했다. (그 사이에 북한 김정일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게 집요하게 경제 원조를 요청했으나 미국이 동의하지 않는 한 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결과 2006년 마침내 북한은 핵 실험을 단행했다. 본격 협박을 시작한 북한인 것이다. 



김정일과 김정은 부자의 생존전략



김정일은 파탄에 빠진 경제를 살리지 못한 가운데 심한 압박 속에서 2008년 뇌졸중과 뇌일혈로 쓰려졌고 결국 2011년 말 사망하고 말았다.

김정일은 대단히 머리가 뛰어나고 치밀했던 사람이었던 것으로 판단이 된다. 권력을 김정은에게 넘겨주면서 자신의 사후에 있을 상황에 대해 대단히 치밀한 전략을 수립해놓았던 것 같기 때문이다. 


이에 김정은은 권좌에 오른 후 부친의 사전 지침에 따라 상당수의 권력자들을 처단했고 특히 대표적 친중파이자 피붙이인 장성택을 처행했는데 이는 결국 중국을 극도로 경계했던 김정일의 사전 안배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뿐만 아니라 작년 3월 그간에 도발을 거듭해오던 김정은이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 미국에게 비핵화 담판을 짓자고 나섰던 것 역시 김정일의 사전 전략이 아니었나 싶다. 



좌초된 북한의 담판 전략과 그 한계



하지만 북한 김정일과 김정은 부자의 답판 전략은 올 초 하노이 회담의 협상 실패로 인해 사실상 무너지고 말았다. 


영변 핵시설만 포기하는 대가로 먼저 경제제재를 푼 다음 그간에 만들어놓은 핵 무력을 하나씩 협상의 카드로 써가면서 최대한 경제를 살려보겠다는 김정은의 구상은 이른바 빅딜이 아닐 것 같으면 아예 거래를 하지 않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책을 만나 좌초되고 말았다. 미국은 여야를 막론하고 북한에 대한 不信(불신)심리가 엄청나게 강한 까닭이다. 


이에 김정은은 전략을 수정해가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를 끌어 들여서 협상력을 높여보려는 쪽으로 방법을 바꾸고 있다. 물론 문재인 정부의 역할도 대단히 어려워지고 있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조건으로 북한이 좀 더 양보하는 방안을 도출해내려는 것이 정부의 기본 방침이었기 때문이다. 



교착상태에 빠진 비핵화 담판에 대한 전망



이제 장차 이 일이 어떻게 될 것인지 애기해보자, 일종의 전망이다. 


전망을 함에 있어 두 가지 방법이 가능하다. 


먼저 단기 흐름에 입각한 전망부터 얘기해본다. 


작년 3월 김정은의 제안으로 시작된 북핵 담판이다. 이에 6월 미국 백악관에서 제1차 정상회담이 있었으나 알맹이는 전혀 없었다. 아쉽지만 일단 인사를 나눈 셈이라 치자. 


그런 이후 올 2월 하노이에서 제2차 정상회담이 개최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 호호당은 갸우뚱했다. 2월에 열린다면 잘 될 까닭이 없는데 싶었기 때문이다. 이에 미리 얘기는 하지 않았으나 아마도 실패할 것으로 짐작했고 실제 결과 역시 그러했다. 이번 회담의 성과가 있다면 양자 간의 입장 차이가 엄청나게 멀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 전부였다.


일은 시작으로부터 24, 즉 이번 경우 24개월이 흘렀을 때 성패가 드러나도록 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자연순환의 법칙에서 하는 얘기이다.


 

금년 9월에서 11월 사이에 숨은 고비가 있으니



그렇기에 내년 2020년 3월이 최종적인 고비가 될 것으로 판단한다. 그런데 그 도중에 보이지 않는 진짜 고비가 숨어있다는 점이니 그건 18개월에서 20개월 사이에 존재한다. 


따라서 작년 3월에서 계산해보면 올 9월에서 11월 사이에 아마도 뉴스 보도가 되진 않을 것으로 보지만 양자 간에 마지막 절충이 그 무렵에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그러니 그 비밀 접촉과 협상에서 사실상 윤곽이 드러나게 될 것이란 얘기이다. 


정리하면 올 9-11월 사이에 있을 비밀 협상이야말로 이번 핵 담판에 있어 성패를 좌우하는 기로가 될 것이다. 보도는 되지 않겠지만 양쪽에서 흘러나오는 내용들을 잘 분석해보면 어느 정도 가늠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이제 장기 흐름에 입각한 더 큰 시야에서의 전망에 대해 얘기해보자. 15년 간격으로 살펴보면 충분하다. 


1976년 국운의 穀雨(곡우)인 파종 시기에 남한은 발전과 번영의 씨를 뿌렸고 북한은 그냥 놀았다. 


1991년 국운의 大暑(대서)에 남한은 왕성하게 발전의 경로를 밟고 있었으나 북한은 소련이 무너지고 중국이 우리와 수교하면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이에 핵 개발을 시작하게 된 북한이다.

 

2006년, 국운의 霜降(상강) 수확기에 남한은 풍성한 수확을 보았으나 알거지가 된 북한은 결국 핵실험을 강행했다. 


이처럼 15년 간격으로 살펴보면 남북한의 차이가 명료해진다. 따라서 다시 15년이 흐른 시점은 2021년 국운의 大寒(대한) 시점이다. 나 호호당은 2021년이야말로 북핵 문제만이 아니라 사실상 모든 것이 총 정리되는 최종 시점이란 판단을 한다. 



종합 전망



이 점을 앞서의 얘기와 연결해서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은 전망이 가능해진다. 


올 9월에서 11월에 진행되는 북미간의 실무협상이 비핵화 협상에 있어 사실상의 고비이자 機樞(기추)가 될 거란 점이다. 이에 그 일이 잘 진행된다면 내년 3월 이후 전체 협상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어 제3차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고 또 좋은 결실을 얻게 될 것이라 본다. 


그러나 반대로 그렇지 않을 경우 내년엔 보다 더 엄중하고 경색된 국면이 찾아들 가능성이 크다는 점, 그리고 마침내 2021년까지 이어질 경우 현재로선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하고 있는 엄청난 변화가 발생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예컨대 북한 체제의 급격한 붕괴라든가 여타 현재로선 생각하기 어려운 변고가 발생할 가능성 등이 그것이다. 


씨를 뿌려야 할 때 씨를 뿌리지 못하더니 오늘날 저토록 생억지를 쓰고 있는 북한이다, 우리의 반쪽이 저렇다니 그저 딱할 뿐이다.


잘 되면 내 탓, 못 되면 조상 탓

 

 

잘되면 내가 잘한 것이고 못되면 조상 탓을 한다는 말이 있다.

 

이를 심리학에선 ‘이기적 편향’이라 한다, 하지만 어쨌거나 이는 우리가 힘든 인생을 견뎌낼 수 있게 해주는 대단히 중요한 자기 보호 심리라 하겠다. 나 호호당 역시 젊은 날엔 이런 심리를 두고 조롱하기도 했지만 지금에 이르러선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게 바로 진리!

 

 

지적 장애아 관련 다큐 프로를 보다가

 

 

텔레비전에서 지적 장애아동들에 대한 다큐를 방영하고 있었다. 잠깐 보다가 채널을 돌렸다, 가슴 아픈 일.

 

그간에 지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사주를 적지 않게 보았고 그를 통해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이 있다. 산모의 운세 순환이 바닥권에 있지 않았다면 장애아가 태어날 가능성이 지극히 적다는 점이다. 의학계에선 유전적 요인을 많이 지적하지만 실은 산모의 운세 순환이야말로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것을 나 호호당은 익히 알고 있다.

 

 

유전보다도 운의 흐름이 더 문제인 법이니

 

 

정확하게 얘기해보자.

 

부모에게 비록 유전적 결함이 있다 하더라도 그 때문에 장애아가 태어나진 않는다. 그런데 부모 특히 산모의 운세 순환이 60년 순환에 있어 바닥점인 立春(입춘)을 전후한 10년 사이에 아이가 태어날 경우 유전적 결함이 그대로 태아에게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이다.

 

달리 말하면 부모의 컨디션이 떨어져있을 때 출산을 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물로 이 대목에서의 컨디션이란 매일매일의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60년에 걸쳐 진행되는 장기 순환에 따른 것을 말한다.

 

이는 비단 장애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출생 이후 어린 시절에 이런저런 남다른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을 보면 거의 예외가 없다. 본인의 운세만이 아니라 부모의 운세와 직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잘 되지 못하면 당연히 조상 탓이다.

 

 

유복자로 살다 가신 선친에 대한 기억

 

 

나 호호당의 돌아가신 선친 역시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遺腹子(유복자)였던 선친이었다. 선친께선 한 때 사업적으로 성공하셔서 좋은 세월을 보내기도 하셨지만 그럼에도 평생을 두고 그늘이 있었다.

 

가끔씩 스스로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란 독백을 하시던 기억이 있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유언을 남기시면서 ‘인생이란 게 별것도 아니지만 내 평생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일은 너를 낳아서 무사하게 키워낸 거’라고 하셨다.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

 

 

이런 경우도 보았다.

 

1949년이 60년 순환의 입춘 바닥이었던 어느 할머니의 얘기이다. (지금 그 분은 돌아가셨다.)

 

집안이 궁핍해서 치워지다시피 시집을 갔는데 그때가 17살, 1949년이었는데 때마침 입춘, 운세 바닥이었다. 출가 후 아이를 가지면 유산하고 또 유산하고, 그러기를 무려 여섯 번이나 반복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스물아홉이 되던 1961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정상 분만을 하게 되었고 그 이후 아들 둘 딸 둘을 낳아 무사히 잘 키웠다는 것이었다.

 

그 할머니는 1970년대 들어 남편 일을 도와서 크게 돈도 벌었고 부귀영화도 누렸다. 상담하는 내내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토로하시는 할머니였다. 세월이 흘러 살림이 넉넉해지자 해마다 빠지지 않고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고 있다는 말씀도 하셨다.

 

그 시절 영양 상태도 충분하지 못한 상태였을 것이며 더욱이 운세 바닥에서 출산이란 엄청난 작업을 했으니 뱃속 아이가 정상적으로 자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위로가 되는지 안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것이 더 다행한 일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하는 말씀을 드렸던 기억이 난다.

 

 

스티브 잡스, 역시 운세 바닥에 태어난 까닭에

 

 

이전에 글로 소개한 적도 있지만 애플의 창립자 스티브 잡스 역시 마찬가지. 스티브 잡스는 1955년생인데 1956년이 60년 순환에 있어 입춘 바닥이었다. 그 바람에 대학생 커플이 키울 수가 없었고 입양이 되었다. (사실 입양되는 아이들의 운세를 보면 다 그렇다, 이 또한 전혀 예외가 없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고 크게 성공한 사람이지만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혼외자식을 인정하지 않았다.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커다란 심리적 콤플렉스가 있었던 것으로 여긴다. 그런 까닭에 나 호호당은 스티브 잡스에 대해 측은한 심정이 있다. 이미 죽고 없지만 말이다.

 

 

자연순환운명학이 세상에 널리 인정을 받는다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볼 때가 있다.

 

나 호호당이 발견해낸 자연순환운명학의 이론이 세상에 인정받고 널리 퍼지게 될 경우 불행한 출생을 미연에 방지하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그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어디 만만한가, 잘 받아들여지면 좋겠으나 반대로 자칫 잘못 되어 일종의 우생학으로 간주되어 많은 비난을 받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도 든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예전 생각이 난다. 2010년 무렵 자연순환운명학의 이론을 거의 완성해가던 무렵, 내가 이것을 세상에 공개하는 것이 어쩌면 세상에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을 했다. 이거야말로 소위 천기누설인데 말이다.

 

하지만 결국 2014년에 들어 나는 자연순환운명학이란 것이 성립되었다고 내 나름 블로그를 통해 선포를 했다. 가치 판단의 문제는 세상에 맡기기로 결정을 했다.

 

서구에 비해 동아시아 사람들은 어떤 지식을 알아내게 되면 널리 공개해서 그것이 보다 더 발전할 수 있도록 하기보다는 소수의 제자들에게만 비밀리에 전수했던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 바람에 서구 세계는 과학 기술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했고 동아시아 세계는 결국 한때 큰 수모를 겪어야 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나 호호당이 알아낸 운명의 법칙은 당연히 공개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가끔 제자들이나 독자들은 전체 이론을 소개하는 책을 쓰는 것이 어떠냐는 얘기도 해온다. 하지만 아직은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 책 집필은 조금 더 미룬 상태에서 블로그를 통해서만 글을 올리고 있다.

 

사실 이론을 공개하고 널리 알린다 하더라도 파급력엔 어차피 한계가 있다는 생각도 한다. 왜나면 이곳 대한민국은 글로벌 권력의 중심이 아니라 변방인 까닭이다.

 

유전법칙을 연구해낸 멘델의 경우 논문을 발표한 후에도 무려 36년이 걸려서야 우연히 소수의 학자들로부터 주목을 받게 되었고 그러면서 진화론의 다윈이 미처 설명하지 못한 부분을 보완하게 되었고 그로서 오늘날의 유전학과 생명과학의 흐름을 만들어졌다.

 

엄청난 과학적 발견이 무려 36년씩이나 걸린 뒤에야 알려지게 된 것은 결국 그레고어 멘델이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의 변방 후미진 시골에서 연구를 했고 또 이론을 발표했기 때문이었다. 그 바람에 비록 멘델은 동료 수도사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았으나, 당시의 위대한 생물학자들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고 논문 발표 이후 36년, 사후 17년이 흘러서야 연구의 가치가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사실.

 

그렇기에 나 호호당 역시 자연순환운명학이 살아생전에 주목을 받고 과학적 가치를 인정받을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한다. 동시에 그렇다고 해서 묻히는 일도 없을 거라 여긴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확고한 이론이기에 결국 시간의 문제인 것이다.

 

 

어디 한 평생 살기가 만만한가 말이다.

 

 

돌아가서 얘기이다.

 

태어나서 한 평생 살다가는 것이 정말이지 장난이 아니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말로는 어려선 부모가 부양해주고 장성하면 돈을 벌어서 가족을 부양하다가 나이가 들면 은퇴해서 편안한 노후를 보내야 한다고 하지만 어디 그러기가 쉬운가 말이다.

 

운세 바닥 근처에 태어난 이 중에는 절대 다수가 질병이나 장애, 가정환경 등으로 인해 고통을 받게 되고 20-30대에 운세가 바닥인 젊은이들은 취업도 어렵고 결혼이나 짝을 찾아 안정된 생활을 그려보기가 난감하다.

 

그런가 하면 중년에 운세가 바닥에 이르게 되면 직장에서 내몰리게 되고 그러다가 어렵사리 자영업을 해보지만 성공하는 이는 희박하고 대부분 그야말로 고생의 나날이다.

 

또 노년에 운세가 바닥에 이르면 갖은 질병에 시달리거나 아니면 자녀 문제로 인해 경제적 파탄에 이르는 사람들이 실로 허다하다. 물론 평균의 사람보다 일찍 세상을 뜨는 경우도 많다.

 

작업실이 서울 강남역 인근이라 교보서점에 들렀다가 산책 삼아 한 바퀴 강남역까지 갔다가 되돌아오기도 한다.

 

강남역 일대는 젊은이들의 거리이다. 기온이 높아지면서 젊은이들, 특히 젊은 처녀들의 모습과 옷차림이 보기에도 정말 좋다. 세련되었고 표정은 발랄하다. 모두들 나름 잘 꾸미고 있다.

 

그런데 그를 바라보는 나 호호당의 시선이 마냥 편하지는 않다. 저 어리고 싱싱한 젊은이들이 장차 긴 세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마모되고 피폐해질 것인가를 생각하면 말이다.

 

(토요일 시작하는 기초강좌에 아직 여유가 있다. 이번 기회에 이 신기하고 절묘한 운명의 과학적 법칙을 배워 가시는 분이 더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