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는 지루하던 삶이었는데 

 

 

기억이 난다, 서른 중반 무렵의 어느 날 문득 인생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하루하루가 무한정 이어질 것 같아서 야, 이거 언제 다 살고 죽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하는 얘기로 인생 반환점이란 개념이 있다. 80세가 기대수명이라면 마흔이 반환점이 된다. 어쩌면 당시 나 호호당이 아직 반환점을 돌지 않았기에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반복되는 직장 생활이 지루해서 그랬었나?

 

때가 대략 1980년대 말, 당시 남자들의 경우 70 후반이 보통의 수명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40년은 더 살아야 할 것 같은데 그 세월이 너무 요원했다.

 

하루하루가 무한정 이어진다면 그 하루하루는 가치가 없다. 永生(영생)을 사는 자에게 시간과 세월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저번 글에서 덧이란 어휘가 시간적인 틈이나 사이를 뜻한다 했다. 따라서 덧없는 삶이란 말은 우리가 살아서 존속하는 시간이 짧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서른 중반의 나 호호당은 삶이 덧없다가 아니라 덧이 너무 많이 남았다고 느꼈던 셈이다.

 

 

젊어선 오만하게 멋이나 부렸을 뿐

 

 

당시 나이든 선배나 어른들께서 인생 순식간에 훅 간다, 쏜 살 같아, 살아보니 인생 참 아무 것도 아니야, 이런 말씀들을 해주셨는데 겉으론 공손하게 네 그렇죠, 하고 답했지만 속으론 그다지 별로 공감하지 도 동의하지도 않았다.

 

중국 천재 시인 이태백이 강개한 어조로 삶의 덧없음을 노래하는 게 멋은 있었지만 솔직히 뭔 말인지 잘 몰랐다. 나 호호당은 독서를 좀 하다 보니 동서양의 수많은 시인들과 작가들의 시와 글을 두루 접했지만 그 또한 무슨 의미인지 잘 알지 못했다.

 

그랬던 나 호호당이 어언 70이 되어 이제 남은 세월 얼마나 될까? 하고 어림해보고 있다. 이거 어쩌다 보니 다 살았네, 훅 갔네, 그간 즐거운 일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보다는 고생이 더 많았던 것 같고 먹고 사느라 세월 다 갔네, 이제 좀 진짜 놀아보려니까 몸도 아프고 남은 세월도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아서 아쉬운 생각만 든다.

 

게다가 세월 가는 속도는 더 빠르게 느껴진다. 한 해 지나가는 게 젊은 날 대여섯 달 정도 되는 느낌이다. 2024년도 내일 8월 7일이면 立秋(입추), 한 해의 반환점이다.

 

이거 정말 인생 덧없구나 싶은 것이다.

 

 

지금 70이 된 나 호호당이 서른 중반의 과거 호호당에게 들려주고픈 얘기

 

 

그러면서 옛날 선배들과 어른들의 말씀 빈말이 아니었음이야! 하는 생각에 절로 커-, 카- 하고 거칠게 한 숨을 내뱉게 된다.

이제 1955년생, 세는 나이 일흔이 된 나 호호당은 30년도 더 전, 사는 게 다소 지루했던 서른 중반의 새파랗게 젊은 호호당에게 얘기를 하나 해주려 한다.

 

이보시게, 젊은 친구, 사는 게 루즈(loose)하다면서? 매일 쳇바퀴 도는 삶이 지겹고 의미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시는 모양인데 잠깐 들어보게나, 해줄 얘기가 하나 있으니 말일세.

 

젊은 자네의 시간, 하루, 그리고 한 달, 또 한 해는 그저 시간이 갈 뿐 그 자체로서 별 의미가 없다고 느끼지? 많이 남았으니 말이지. 그런데 말이지 시간에 가치를 부여하지 못하는 자는 궁극적으로 삶의 그 어떤 행위나 행동에서도 가치를 찾을 수가 없게 된다는 거 알고 있나?

 

하지만 이제 시간이 그러니까 자네가 이 세상에 머물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느끼기 시작하면 뭔가 많이 달라진다네.

 

 

有限(유한)함을 느끼면 애틋해지는 법

 

 

왜 그런 거 있잖아, 늘 보던 얼굴, 아내이거나 연인이거나 아니면 오랜 친구일 수도 있겠지만 암튼 늘 가깝던 사람이라면 때론 좀 지겹기도 하고 또 때론 시큰둥할 때도 있잖아,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상대가 이제 우리 보는 날 그렇게 많이 남지 않았다는 얘기를 해오면 갑자기 애틋해지는 것 뭐 그런 거 말이야.

 

그래서 갑자기 미안한 마음도 들고 더 잘해줄 껄 하는 후회도 은근히 생기고 뭐 그렇잖아. 그래서 여기저기 그간 말로만 해오던 장소를 찾아가기도 하고 아니면 함께 여행을 가기도 하지. 이제 시간이 얼마 없으니 알차게 보내야 한다는 다짐도 생기고 말이야.

 

인생 산다는 것 또한 그래, 젊어서 날이 많이 남았을 때는 그저 그래, 심지어 지겹기도 하지. 그런데 이제 그 날이 확 줄어서 카운트가 되기 시작하면 아쉽고 애틋한 생각이 들어.

 

그렇다고 새삼스럽게 영원히 살고픈 욕심이 드는 것도 아니라네. 永生(영생)? 그 또한 어쩌면 永劫(영겁)의 지옥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어. 산다는 게 사실 그리 쉽고 만만한 게 아닌데 그걸 영원히 산다? 그건 싫지.

 

따지고 보면 인생 덧없다는 말도 틀린 얘기, 일생의 시간을 놓고 말하면 길다 하면 길고 짧다 하면 짧은 거지, 1분이 1시간 같을 때도 있고 하룻밤이 두어 시간 같을 때도 있으니.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은 오래가지 않는 법

 

 

그런데 잘 생각해보라고, 세상 예쁜 것들은 다 오래가지 않는다는 거. 정말 그래. 열흘 붉은 꽃은 없다,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 싱싱하게 예쁜 꽃은 기껏해야 사흘이고 그 또한 잘 관찰해보면 한 나절에 불과하잖아.

 

아름답고 예쁜 것들은 절대 그냥 그대로 머물지 않아, 잠시 이 세상에 나타나서 그 고운 빛을 뿌리고는 어느새 사라져버려, 그래서 덧없다는 말을 하는 거야.

 

이 대목에서 하나 물어볼게, 아름답지만 덧없는 것, 그 지속 시간이 짧다고 해서 그게 다 허망하고 부질없는 것일까? 하는 질문이야.

 

 

하지만 우리에겐 기억하는 힘이 있어서 

 

 

사실 불멸의 아름다움이란 건 세상에 없어. 진짜 아름다운 것은 싱싱한 과일이나 방금 피어난 꽃송이처럼 금방 시들거나 상해. 하지만 우리에겐 기억이란 게 있어서 그 아름다움을 가슴 속에 머릿속에 간직할 수가 있어.

 

오랫동안 사랑해온 연인 또는 배우자가 있다고 하자고. 아니면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이미 오래 전에 헤어져서 가끔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고.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매력, 그리고 어느 한 순간 영혼을 다해서 홀딱 반했던 순간의 그 모습과 감정은 이미 온 데 간 데 없잖아, 하지만 그런 한 순간이 있었다는 기억 또는 추억만 간직하고 있어도 우리의 삶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해.

 

다시 얘기지만 아름다운 것은 덧없어, 덧이 없지. 하지만 그 덧없는 아름다운 것을 우리의 모든 感官(감관)으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어루만져서 그 감촉을 느꼈다면 그를 기억하면 그것으로서 충분하다고 봐.

 

그렇기에 어느 한 순간 빛을 뿌리고 사라져가는 아름다움이고 예쁜 것들이지만 그를 허망하다, 부질없다고 한스럽게 여기지 않아도 된다는 거야.

 

어디 가지 않고 우리 저마다의 가슴 속에 있잖아, 간직하고 있으면 되는 일이잖아.

 

물론 우리의 기억은 카메라가 아니야, 이에 세월이 오래 되면 그 기억 또한 많이 희미해지고 변용되어 있겠지만 무슨 상관? 또렷하진 않아도 예뻤다는 인상만 남아 있으면 그로서 족한 일 아니겠냐고.

 

그러니 젊은 30년 전의 호호당 이 친구야, 이제 얘기를 정리해보자고.

 

 

인생 한 번 살아본다는 건 무조건 좋은 일

 

 

인생 한 번 살아보는 거 정말 좋은 거야. 잘 사는 방법, 그런 거 정답 따윈 아예 없어. 그런 생각 버려. 어떻게 살든 또 살았든 다 좋은 거야. 주어진 상황 속에서 나름 발버둥을 쳐왔다면 다 잘 산 거야.

 

그리고 인생은 아름다워, 왜냐고?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과 만나면서 살잖아. 인생길에서 좋은 시간은 사실 많지 않아, 아니 별로 없어, 있어도 아주 짧아. 하지만 그 순간을 기억하고 간직하면 되는 일이야.

 

이게 이제 70이 되어 몸도 노후화되고 탈도 좀 나서 힘들기도 하지만 그런 나 호호당이 과거의 호호당, 세월이 너무 많이 남아서 지루해하던 서른 중반의 호호당에게 해주고픈 얘기라네.

 

그럼 이제 지금의 나 호호당이 스스로에게 해주는 말을 정리하면서 맺음을 짓는다.

 

야, 호호당아, 남은 시간 많지 않음을 알잖아, 그러니 하루하루의 시간을 음미해가면서 곱씹어 가면서 알차게 열심히 살아보라고. 지금부터라도 나중에 죽을 때 아무런 여한이 없도록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보자고. 브라보, 파이팅!

 

이것으로서 제 그간의 삶을 정리했으니 다시 힘을 내어 재미난 얘기들 많이 들려주려한다.

 

(알림: 작업실이 다음 주면 세팅이 끝난다. 이에 상담 재개 소식을 공지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