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독자의 질문
어떤 독자가 메일을 통해 이런 질문을 해왔다. “개인이 운이 겨울에 접어들어 그릇이 차서 그만해야 한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무리를 하기직전에 예민하면 연륜으로 촉으로 알 수 있는 겁니까?”
메일을 읽고 나서 ‘궁금하면 내게 물어보러 오시면 될 것을...’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좀 더 본격적으로 알고 싶으면 강좌를 들으면 더 좋겠고 말이다. 물론 독자의 경우 다른 사정이 있으니까 이렇게 메일로 물어보는 것이리라.
질문은 간단하지만 제대로 답하려면 말로 해도 몇 시간을 해야 할 정도의 질문이라 하겠다. 제대로 이해하려면 기초반 강의 전 과정을 다 들어도 모자랄 판이니 선뜻 답을 할 수 없었다.
이에 그냥 넘어갈 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에 남아서 시간을 들여서 좀 더 생각해보니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한 번은 만나는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니 질문을 한 그 분에게만 얘기하기 보다는 여러 독자들과 공유하는 게 더 좋겠다는 판단이 섰다. 이에 충분한 설명이 되긴 어렵겠으나 그래도 얘기를 해보기로 한다.
모든 경우의 수에 맞는 답을 드리긴 어렵다는 점.
운세가 겨울이 된 사람의 경우를 보면 그야말로 천차만별이고 각양각색이다. 그러니 그 모두에 맞추어 답을 해줄 순 없다는 점부터 얘기해둔다.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따라서 약간은 寓話(우화)적으로 얘기하는 것이 더 좋다고 본다. 운이 겨울로 접어들었다는 말은 한 해 동안의 가장 큰 수확인 추수가 끝났다는 것을 뜻한다.
운명의 겨울이란 말이 가진 뜻
겨울이란 가을 추수를 마치고 쉬는 農閑期(농한기)라 보면 된다. 이제 바쁜 일손을 쉬게 하고 한가롭게 지내는 때란 의미이다.
가을에 수확을 보고 나면 내년 초여름, 정확히 말하면 보리 수확철까지 그리고 하지에 감자가 나올 때까지 수확이 없게 된다. 이를 60년 흐름으로 환산하면 무려 수확이 없는 시기가 무려 30년씩이나 된다.
가을 수확이 풍성한 경우에 있어서
가령 가을 수확이 대단히 풍성했다고 해보면 이제 내년 봄까지 편안하게 ‘마실’이나 다니면서 한가롭게 지내다가 늦봄부터 슬슬 땅을 갈고 씨를 부리면 되는 일이다. 굳이 필요 이상의 무리를 하거나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이런 경우에 대해 실례를 들면 대표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대부호 빌 게이츠를 들 수 있다. 빌 게이츠는 1997년부터 겨울에 접어들 무렵 엄청난 돈을 벌었다. 이에 2005년 운세의 겨울 동지에 은퇴해서 지금까지 놀고 있다. 물론 휴식 시간이 길다 보니 다소 지루하다는 애로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다소 가을 수확이 풍성했다고 해도 욕심이 과하거나 또는 그냥 편히 쉬는 성격이 아닌 탓에 가을에 걷은 수확을 봄까지 기다리지 않고 겨울 벌판에 또 다시 뿌린다면 어떻게 될까?
겨울에 뿌린 씨앗들은 모조리 얼어 죽을 것이고 식량도 부족해져서 봄이 되면 굶주리게 될 것이다. 나 호호당은 이런 경우에 해당되는 사람들도 무수히 경험한 바 있다.
가을 수확이 풍성하지 않은 경우에 있어서
이제 반대로 가을 수확이 충분치 않거나 성에 차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를 얘기해보자.
가을 수확이 충분치 않은 경우는 봄에서부터 여름까지의 경영이 충실하지 않았거나 능력에 비해 욕심이 과한 나머지 충분치 않다고 여길 수도 있겠다.
이런 경우는 그만 두고 싶어도 그만둘 여유가 없다. 비유한다면 개미와 배짱이의 우화에서 배짱이 격이라 하겠다. 겨울의 추위가 심해져도 어떻게 해서든 자리를 지키거나 아니면 품을 팔아서라도 겨울을 나고 봄을 견디면서 이래저래 먹을 것이 풍부해지는 여름까지 버텨야 한다.
운세가 겨울이다 보니 열정이 부족하다는 것도 알고 있고 의욕도 떨어져 있지만 상황논리 상 그만 접고 편히 쉴 입장이 되지 않는다. 열심히 노력했다면 겨울에 잘 지낼 수도 있었을 터인데 내가 너무 허송세월했네 하는 한탄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현장을 지켜야 한다.
때가 가을인지를 모르는 바람에 범하는 愚(우)에 대하여
약간 다른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가을 수확이 풍성했지만 인생 두 번 살아본 게 아니라 초보이다 보니 앞으로도 계속 영원히 가을이 이어질 것이란 착각을 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이런 경우도 대단히 흔하다.
이는 자영업이나 사업자가 아니라 고급 월급쟁이 중에 이런 경우가 많다. 풍성한 가을을 보내다 보니 앞으로도 계속 그럴 줄로 알고 다소 방만해져서 過用(과용)을 하고 있다가 겨울이 깊어져서 뭔가 잘 못 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절감하는 되는 경우가 그것이다. 그야말로 한 겨울에 닭이 맨발로 다닌다고 오뉴월인 줄 안다는 우리 속담이 그것이다.
이런 경우 실수를 깨닫고 더욱 신중하게 앞날을 대비해야 하는데 그 방법이 오히려 더 무리한 길을 선택할 때도 많다. 실수가 또 다른 실수를 부르는 격이다. 가령 평생 사업이라곤 해보지 않은 퇴직자가 소중한 퇴직금을 자본으로 해서 소규모 사업을 차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가 실패하게 되면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 된다. 설상가상이다. 이런 경우도 대단히 흔하다.
그런가 하면 풍성한 가을의 운에 얻어지는 그 소중한 수확, 내년 초여름까지 그것으로 나야하는 소중한 수확을 어쩌다 보니 자녀 교육비로 홀랑 다 털어 넣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이는 특히 급여 수준이 높은 고급 월급쟁이로 지낸 사람들 중에서 흔히 보게 된다.
자녀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야 십분 이해가 간다. 이에 능력이 닿는 데까지 밀어주겠다는 중산층 또는 중상층 사람들이 많다. 그 바람에 비싼 해외유학을 보내게 되고 그 결과 정작 부부의 노후 준비는 부실해지는 경우가 그렇다. 게다가 자녀가 결혼하게 되면 또 돈이 든다.
많은 급여임이 분명하지만 그 바람에 상당한 액수를 자녀 교육비로 쓰고 거기에 소비 수준도 조금씩 높아지다 보면 나중에 정말 뒷감당이 어렵다. 그러다가 운이 어느 날부터 기울고 직장에서 밀려나게 되면 그야말로 막막해진다.
좋은 직장에 다닐 정도의 사람이니 능력도 분명 뛰어난 인재라 하겠지만 정작 직장을 그만 두고 나와서 해보지 않은 생경한 일에 뛰어들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 새로운 일은 능력을 떠나 세월이 필요한 법이니 그렇다.
이에 소중한 퇴직금까지 사업으로 다 털어먹고 나면 앞길이 암울해지는 것은 당연지사. 이는 우리 사회의 중산층이나 중상층 사람들에게 실로 흔한 일이다.
자신의 때를 대부분의 사람이 自覺(자각)한다고 보지만
사실 내 경험에 비추어볼 때 굳이 나 호호당을 찾아와 운세 흐름을 묻지 않아도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흐름을 어느 정도 자각하고 있는 것 같다. 문제는 제대로 인지했다 하더라도 그게 확실한 근거가 없는 이상 생각은 수시로 바뀐다는 점이다.
빌 게이츠의 경우 정확한 타이밍, 물러날 때에 물러날 수 있었던 것은 그 양반이 무척이나 명석한 까닭도 있다 하겠으나 그보다는 돈을 벌 만큼 벌었던 터라 이제 굳이 억지로 더 벌려고 할 이유가 없었기에 냉철하게 자신의 흐름에 대해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고 본다.
급할 때일수록 여유를 가지란 말이 있다. 마음에 여유가 있다 보면 대개의 경우 사람은 일에 대해 정확한 결정과 선택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의 경우에 있어 그런 여유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겨울의 중간점인 冬至(동지)의 운에 내리는 선택은 그야말로 중요하다.
특히 15년간의 겨울에 있어 늦겨울로 접어드는 때, 즉 겨울 시작으로부터 7.5년이 흘렀을 때, 절기로 말하면 冬至(동지)의 때가 되었을 때 내리는 선택과 결정이야말로 엄청나게 중요하다. 그 결정과 선택에 따라 그 이후 15년간의 행방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운명의 동지에 섣부른 판단을 하거나 무리한 선택을 하고 나면 그 이후의 일은 전혀 예기치도 않은 뜻밖의 우환을 겪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참고로 빌 게이츠는 바로 그 동지의 때에 참으로 싹싹하게 물러났다는 점 알려드린다.)
동지의 때에 무리를 하는 바람에 어려워지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라 나라 역시도 그렇다. 가령 미국의 경우 국운의 동지는 2005년이었는데 바로 이 해 서브 프라임 모기지 론의 신규 대출이 절정을 보인 것이 결국 2008년의 금융위기를 초래했다.
독자의 질문에 대한 호호당의 대답
이제 앞서 독자의 질문 즉 “개인이 운이 겨울에 접어들어 그릇이 차서 그만해야 한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무리를 하기직전에 예민하면 연륜으로 촉으로 알 수 있는 겁니까?”에 대해 대답을 드리고자 한다.
충분히 연륜이나 촉으로 감지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보면 감지할 때엔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촉으로 느끼고 감지한다 해도 이미 그간에 생겨난 흐름 상 가령 노후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거나 새롭게 수익원을 창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어려운 입장에 있을 경우가 그것이다.
이에 지금쯤 접어야 한다고 느낄 지라도 그럴 수 있는 여유가 없다면 감으로 느껴지고 촉이 왔다 한들 처한 환경이 용납하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출구전략, 말처럼 쉬운 게 아니어서
그렇기에 출구, 즉 엑시트(exit)를 말과는 달리 실천에 옮기기란 사실 대단히 지난한 일이 되는 것이다. 앞 사람의 행적을 비판하긴 쉬워도 정작 스스로 때가 되어 경우에 맞게 행동하기란 그래서 어려운 법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도박판에서 이번 한 판만 잘 되면 털고 일어나겠다는 사람들이 왜 결국 빈털터리가 되어서야 일어서게 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이렇다. 도박꾼이 이번 한 판만 하는 마음이 들 땐 이미 늦은 때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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