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소화하기 어려운 난국의 연속 

 

앞의 글에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아웃소싱과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에 커다란 변화가 예상된다고 했다. 이는 현 세계의 상품 공급과 교역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뀐다는 얘기이니 실로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사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에 생겨난 변화만도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주요 선진국 경제의 금리가 사실상 제로가 되었고 여기에 양적완화라고 하는 미증유의 조치를 통해 상상을 초월하는 돈이 풀려나갔다.

 

 

돈의 가격이 왕창 내렸으니 불경기이자 디플레이션

 

 

금리란 돈의 가격,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용료인데 그 사용료가 대단히 저렴해진 것이다.

 

돈의 사용료가 싸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잠깐 생각해보자. 가령 주택이나 아파트를 임대해서 쓰고 있다면 임대료를 내게 된다. 그런데 그 임대료가 엄청나게 저렴해졌다면 그건 간단히 말해서 주택 가격이 엄청나게 내렸다는 말이 된다. 돈의 사용료가 아주 저렴해졌다는 것 역시 같은 말이 된다.

 

이어서 돈의 사용료가 싸졌다는 말은 투자할 곳이 변변치 않다는 뜻이다. 투자할 곳이 많다면 너도 나도 투자하기 위해 돈을 빌려고 들 것이니 자연히 돈의 사용료인 금리가 올라갈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돈이 갈 곳, 즉 투자할 곳이 극도로 적어졌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2007년 금융위기 이후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를 했다는 말은 글로벌 전체적으로 투자할 곳이 극도로 적어졌다는 말이 되는 것이고 이는 즉 경기가 나쁘다, 즉 불경기 상황이란 뜻이다.

 

 

원투 펀치를 맞고 비틀거리는 글로벌 경제 

 

 

그러나 2016년부터 그글로벌 경제는 조금씩 살아나고 있었다. 특히 미국 경기가 좋아지면서 미국 연준은 조금씩 금리를 올려갔고 양적완화로 해서 풀려나간 돈 역시 조금씩 회수하고 있었는데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또 다시 제로금리로 돌아갔고 연준의 통화환수는 생각하기도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다. 다시 말해서 이젠 미국을 비롯해서 전 세계 경제의 불경기가 아예 고착화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2008년의 금융위기, 2020년의 코로나19사태, 이는 12년의 시차가 있다. 12년은 60년 순환에 있어 기본 마디인데 글로벌 경제가 순환의 한 마디가 지날 때마다 크나 큰 타격을 입고 있는 셈이다. 글로벌 경제 전체가 강력한 원투 펀치를 맞은 것과 같은 형국이다.

 

 

미중 냉전의 시대

 

 

뿐만 아니라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그간에 지속적으로 이어져오던 미중 간의 패권 전쟁을 한 층 더 가중시키고 있기에 이젠 새로운 냉전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과거 미소 간의 수 십 년에 걸친 암중투쟁이었던 냉전은 1991년 소련의 해체로 끝이 났는데 또 다시 미중 간에 새로운 냉전구도가 확연해진 것이다. 저번 냉전이 군사적 대치를 기본으로 하는 진영 싸움이었다면 이번 냉전은 훨씬 더 복잡 미묘하다. 적대 진영이 확실하지도 않고 여전히 교류해가는 가운데 지속적으로 갈등과 마찰을 빚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중 간의 신 냉전구도는 현재 홍콩에서 보다 첨예하게 빚어지고 있다. 중국 당국에 의한 홍콩보안법 제정 움직임과 이에 맞선 미국의 홍콩 특별지위 철회 압박이 그것이다. 당장은 피차간에 눈치를 보고 있지만 그렇다고 마냥 피해갈 순 없는 대치국면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려운 우리의 입장

 

 

하지만 미중 간의 못할 판냉전은 홍콩만이 아니라 당장 우리에게도 어려운 숙제를 던져오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Economic Prosperity Network(EPN) 구상이다. 트럼프가 주도한 구상으로서 중국을 제외하고 우리를 포함해서 호주와 일본, 인디아, 뉴질랜드, 베트남을 연결하는 서플라이 체인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우리 경제는 중국과 너무나도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기에 우리 정부는 트럼프 정부의 제의에 대해 금년 하반기 미극 대선 결과를 기다리면서 일단은 답변을 회피하고 있다. 일본이나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 트럼프 역시 당장은 이렇게 할 수도 있지 않느냐 하면서 한 번 던져본 제스처라고 하겠지만 장차 이 구상이 훗날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간에 밀접하게 얽혀있던 미중 관계에서 미국은 당장은 몰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중국과 헤어지려는 의도를 가졌다는 점이니 그게 우리로선 두고두고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우리로선 누구와도 교역하는 것이 이익이건만 

 

 

우리로서야 전 세계 어떤 나라이든 지역이든 무역을 하는 것이 국익이다. 이란과도 그렇고 중국과도 그러하며 러시아와도 그렇다. 그런데 새로운 블락 형성의 움직임은 편을 먹자는 것이고 편이 아니면 배제하자는 것인데 이게 구체화된다면 우리로서 대단히 난처하다.

 

 

한은의 수단이 이젠 사실상 사라졌으니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경제 역시 사실상의 제로금리 시대로 진입했으니 이번에 한은이 금리를 역사상 최저인 0.5%로 인하한 것이 그것이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우리로선 사실상 더 낮출 수 없는 최저금리라 하겠다. 여기에 더불어 한은에 의한 본격적인 양적완화의 조짐도 감지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이후 은행권의 기업과 가계의 대출이 급증했다.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3.4배나 폭증했다. 대부분이 긴급자금 대출인 셈이다. 그렇지 않아도 복지를 강조하는 현 정권은 국가의 부채 구모를 늘려오던 마당이었는데 이제 향후 10년 사이에 국가부채는 한 마디로 말해서 무진장 늘어날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10년 후가 되면 국가의 재정건전성이 크게 악화될 것이란 얘기이다.

 

저금리 시대이자 제로금리 시대이고 불경기이자 디플레이션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금리란 것이 계속 낮을 것 같지만 언젠가는 인플레이션이 와서 고금리로 바뀔 수도 있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당장으로선 고금리와 인플레의 시대를 상상하기란 쉽지가 않다. 그건 파탄을 의미한다, 그건 다 함께 죽어보자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런 우려보다는 당장 걱정되는 것은 한은의 금리 수단이 사실상 없어졌다는 점이다. 더 이상 인하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한은이 경기부양을 위해 할 수 있는 수단이라곤 양적완화밖에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데 우리 돈인 원화는 달러나 유로화, 엔화가 아닌 까닭에 직접 찍어내기 위해선 특히 미국으로부터의 협력 혹은 사전 승인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런 면에선 우리는 미국의 눈치를 봐야 할 것이고 수출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선 중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대단히 어려운 입장이다. 이런 마당에 미국과 중국은 적대하는 관계가 되었고 우리더러 어느 쪽에 설 것인지 편을 정하라고 압박해 오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이미 자영업자들은 엄청난 타격을 입은 상황이다.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하지만 그건 눈앞에 보이는 문제에 불과하다. 이제 닥칠 숙제들이 너무나도 많다.

 

 

우리 앞에 산적한 너무나도 많은 숙제들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의 구조 변화가 우리에게 어떤 득실을 가져올 것인지, 제로금리 시대에 경기가 지속적으로 더 악화된다면 어떤 대책을 쓸 수 있을 것인지, 또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국제 외교적인 노력의 대안은 무엇인지, 걷잡을 수 없이 폭증하게 될 부채의 홍수 속에서 이미 통제 범위를 넘어선 가계부채와 기업부채 아울러 국가의 재정건전성을 어떻게 대처해갈 수 있을 것인지, 미중 간의 냉전 구도 하에서 우리가 어떻게 처신해가야 할 것인지, 우리의 오랜 숙제이자 지정학적 리스크의 근원인 북한과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가야 할 것인지, 인공지능의 확산만 해도 그렇건만 코로나19 이후 생겨난 새로운 변화의 동인인 ‘언택트’ 흐름이 향후 일자리 문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등등.

 

이들 중 어느 한 가지만 잘못 되어도 우리 대한민국은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일들이 장차 있을 거대한 하락 조정의 출발점인 것인지 아니면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지도 못한 낯선 세상으로 우리를 데려갈 것인지 지금으로선 전혀 생각해볼 수 없다.

 

어쩌면 2000년 이후 우리가 보낸 10년이야말로 실로 좋은 시절이었고 황금기였다고 두고두고 회고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