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쳐나는 시중 유동성

 

 

이번 코로나19 쇼크로 인해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전 세계 경제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증시는 불과 석 달 만에 코로나19 직전 상황까지 회복되었다. 실물 경제는 무척 어려운 상황인데 증시가 원상회복을 했다는 것은 현재의 증시가 실물 경제와는 꽤나 큰 괴리가 발생했음을 뜻한다. 외국인투자자들이 그렇게 팔았어도 국내 자금의 힘만으로도 너끈히 반등에 성공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서 부동산 시장 또한 여기저기에서 부풀어 오르면서 정부가 이를 막느라 애를 먹고 있다.

 

이 모두 시중에 유동성이 넘치고 있기 때문인데 이는 경기부양을 위해 정부와 한은이 돈을 엄청나게 풀어대고 있기 때문이다.

 

 

퇴물이 되어버린 전통적인 금융정책 수단

 

 

예전 같으면 시중에 돈이 넘치면 인플레이션 압력이 발생할 것이기에 한은은 당연히 금리를 올려서 그 유동성을 흡수해버릴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금융정책의 기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기본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시중에 돈이 넘치니 그 돈을 흡수한다거나 줄인다는 것은 그야말로 더 이상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 오늘의 경제상황인 까닭이다. 우리는 물론이고 글로벌 경제 전체가 그렇다.

 

1980년대 이후 글로벌 경제는 사실상 부채 증가 즉 통화량 증발을 통해 번영을 누려왔다. 하지만 그 사이에도 미국 연준을 비롯해서 각국 중앙은행들은 사이사이 금리인상을 통해 경제의 거품을 꺼지게 하거나 누그러뜨리기도 했다.

 

그렇기에 금융당국자들은 경제 거품이 심해질 경우 금리인상을 통해 어느 정도 불경기를 조성함으로써 경제의 정상화가 가능하리란 생각을 가져오고 있었는데 이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종전의 전통적인 금융정책은 퇴물이 되고 말았으니 그 계기는 바로 2008년 미국 금융위기였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는 되돌릴 수 없는 선을 넘어섰다. 

 

 

사실 당시의 금융대공황 역시 처음엔 연준의 금리인상이 시발점이었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로 인한 부동산 거품이 더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2004년 연준은 금리인상을 단행했는데 바로 이게 도화선이 되어 결국 2008년 미국 금융위기가 발발했던 것이다.

 

당시 미국은 물론이고 글로벌 전체적으로 부채가 이미 너무나도 많아서 금리인상을 통해 버블을 종식시켰다가는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제 전체가 풍비박산날 수 있는 상황임을 감지했던 것이다. 이미 경제의 체질이 너무나도 나빠져 있었기에 금리인상은 시도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돈을 더 풀어내기 위한 새로운 기술들만 속속 등장하고 있으니 

 

 

이에 새 연준위원장이 된 버냉키는 새로운 수법을 들고 나왔으니 바로 양적완화였다. 부채가 너무 많아서 위기에 처한 경제를 돈을 더 찍어서 막아버린 것이 양적완화였다. 양적완화는 그야말로 극약처방이었다. 그로 인해 일단 글로벌 경제는 그럭저럭 되살아났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도 엄청나게 컸기 때문이다. (어쩌면 훗날 버냉키야말로 세계 경제를 확실하게 말아먹은 최악의 인물로 기억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부작용이란 다름 아니라 전 세계 경제가 돈의 홍수에 빠졌다는 점이다. 부채가 더 많아졌고 반면 생산성은 떨어지면서 글로벌 경제는 예전의 활력을 더 이상 회복할 수가 업었다. 오히려 디플레이션 위험이 감지될 정도였다.

 

물론 그 부작용을 잘 알고 있던 연준은 2015년부터 몇 년에 걸쳐 그간에 지나치게 많이 찍어낸 돈을 점차적으로 회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부진하던 글로벌 경제에 또 하나의 직격탄이 된 코로나19

 

 

그런데 금년 들어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경제를 정상으로 돌리기 위해 연준은 찍어낸 돈의 회수는 고사하고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앞서 근 6년에 걸쳐 찍어낸 양적완화와 동일한 액수를 시중에 추가로 공급한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연준의 경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돈을 살포한 액수는 2014년까지 6년에 걸쳐 3조 6천억 달러였는데 이번 코로나 19에 대해선 불과 6개월 만에 3조3천억 달러를 찍어내어 시중에 살포했으니 그 속도에 있어 실로 유례가 없다. 그러자 미국 금융시장은 연준의 조치에 환호작약했다. 시중에 다시 돈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올 것이고 그러면 증시가 또 다시 반등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연준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간 영국의 탈퇴 등으로 존립기반이 끊임없이 흔들려오던 EU 역시 중앙은행인 ECB를 통해 그간에 풀어낸 양적완화를 또 다른 명목을 붙여 더 확대실시하고 나섰다. “팬데믹긴급매입프로그램”, 이니셜로 PEPP이 그것이다.

 

안 그래도 부채로 돌아가는 경제란 지적을 받아오던 글로벌 경제였는데 이제 어쩌면 더 이상 과거처럼 상황에 따라 금리를 올리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면서 경제를 조절하는 종전의 상태론 되돌아갈 수 없는 어떤 한계선을 넘은 것 같기도 하다. 이제 금리인상이란 것은 전 세계 경제가 일제히 동반자살하자는 말과 동의어가 되어버린 셈이다. 금리인상? 큰일 날 소리가 된 것이다.

 

 

돈을 찍어내는 구체적인 방식 세 가지 

 

 

말이 나온 김에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실시하고 있는 돈 찍어풀기 정책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간단히 알아보자.

 

크게 세 가지 방식이다. 첫째는 금리인하인데 이제 더 이상 내릴 금리가 없어졌다. 그래서 두 가지 새로운 초식이 등장했으니 하나는 양적완화가 그것이다. 이를 달리 표현해서 “부채의 화폐화”라고 하는 어려운 용어를 쓰기도 한다. 다음으론 정부가 마치 헬리콥터에서 공중에 돈을 살포하는 방식과 같다고 해서 “헬리콥터 머니”라 부른다.

 

최근 우리 한은 역시 금리를 인하해서 사실상 제로금리가 되었지만 그마저 불충분하다 싶어 이번엔 국고채를 세 차례에 걸쳐 4조5천억을 매입했다. 이 역시 양적완화이자 소위 “부채의 화폐화”에 해당이 된다. 셋째 정부가 재난지원금이란 명목으로 광범위하게 돈을 살포했으니 이는 바로 “헬리콥터 머니”에 해당이 된다. 우리 역시 미국이나 EU, 일본이 해오던 방식을 조금씩이나마 다 손을 댄 셈이다.

 

부채의 화폐화, 실로 논란이 많은 주제이다. 정부 부채가 많아져서 문제가 되니 중앙은행이 정부의 빚을 탕감해주는 방식이다. 그럴 경우 GDP 대비 정부 부채의 수준이 줄어든다. 일종의 사기라고 하겠지만 엄연히 시행되고 있다. 결과적으론 중앙은행이 그 액수만큼 돈을 더 찍어내는 것이기에 양적완화와 같다.

 

“헬리콥터 머니” 또한 논란이 많다. 재난지원금은 1회성이었으나 최근 미래통합당의 김종인 대표가 먼저 주장하고 나서면서 이슈가 된 기본소득 제도가 만일 도입될 것 같으면 헬리콥터 머니가 항구화되고 제도화된다는 얘기가 된다.

 

“부채의 화폐화”라든가 “헬리콥터 머니” 방식은 과거에 전혀 사례가 없진 않지만 그래도 제2차 대전 이후론 자취를 감췄다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제로금리만으론 불충분하게 되자 또 다시 등장했다.

 

 

돈을 엄청나게 찍어내었어도 발생하지 않은 인플레이션 

 

 

부채의 화폐화라든가 헬리콥터 머니 등의 방식은 결국 시중에 돈을 더 많이 공급하기 위한 일종의 편법이다. 그런데 돈을 마구 찍어내면 당연히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기 마련이라고 그동안 알려져 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2008년 이후 양적완화를 했음에도 전혀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금융위기 이후 6년에 걸친 연준의 돈 찍어내기, 양적완화만 해도 종전대로라면 무려 500%의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는 메가톤급 조치였는데 사실상 인플레이션은 없었다.

 

이에 대해 여러 설명이 제시되고는 있지만 솔직히 말하면 왜 인플레이션이 없었는지 실은 아무도 모른다고 해야 정상일 것이다. 유럽중앙은행의 양적완화 역시 마찬가지이고 일본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미 정부의 부채를 인수해서 탕감해주고 있기에 동일하다.

 

돈을 마구 풀었음에도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자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연준은 자신감을 얻은 모양인지 불과 몇 달 만에 과거 6년간 찍었던 돈만큼을 신속하게 공급했다. 전광석화와도 같은 작전이었다. 이에 그간 상황을 지켜보던 한은 역시 돈을 찍어도 큰 문제가 없겠구나 싶었는지 소규모나마 ‘연준 따라하기’에 나섰으니 최근의 조치들이 바로 그렇다.

 

그런데 그렇다 해도 부작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 것이 우리의 경우 풍부한 시중 유동성 때문에 부동산이 들썩이고 있다. 이에 정부는 며칠 전 실로 과감한 세금정책을 통해 부동산을 억제하겠다고 나섰다. 정부로선 세수도 늘리고 부동산 잡는다는 명분도 있고 하니 대단히 즐거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증시 역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실물경제와 유리된 상태에 급반등한 증시는 현 상태만으로도 이미 거품이라 하겠지만 이게 장차 하락할 것인지 아니면 계속 힘을 받아서 거품을 더 키우면서 상승해 갈 것인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다. (거품이란 말은 언젠가 소멸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이란 점 알려드린다.)

 

 

장차 어떻게 될 것인지 그 누구도 모르는 새로운 세상

 

 

아무튼 현실은 금융위기에 따른 돈 찍어 풀기에 이어 이번 코로나19로 인한 초단기간의 돈 찍어내기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이게 장차 어떤 작용을 하게 될 진 사실 아무도 모른다. 글로벌 경제를 어디로 몰고 갈 지 전혀 알 수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잘 모르지만 어쨌거나 당장 어려움을 모면하기 위해 시도해보는 행위를 무엇이라 해야 할까? 아마도 그런 행위를 두고 도박이라 하는 것이 온당할 것 같다. 따라서 지금 전 세계 중앙은행들과 정부들은 일제히 도박에 나선 셈이다.

 

도박의 결과? 현 시점에서 나 호호당은 물론이거니와 경제에 해박한 그 누구도 모를 것이라 장담한다. 이런저런 수치를 잔뜩 늘어놓으면서 어려운 얘기를 하는 경제학자나 전문가들 그리고 정책 당국자들 역시 모를 것이라는데 베팅한다. (전문가라고 하는 입장에서 질문을 받으면 이리저리 돌려 말하는 수밖에 더 있으랴!)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제 글로벌 경제가 미증유의 불확실한 환경으로 크게 한 걸음 들어섰다는 점이다. 되돌아갈 길은 없다. 독을 독으로 막는다는 말처럼 부채가 많아서 생긴 문제를 더 많은 부채로 막더니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또 다시 더 많은 부채로 막고 있으니 이를 항간에선 돌려막기라고 하던데 목하 글로벌 경제는 글로벌 스케일의 돌려막기에 나서고 있다.

 

이 글은 결과적으로 장차 초래될 상황이나 결과에 대해 답은커녕 힌트도 드리지 못하는 글이 되고 말았으니 그저 미안한 일이고 재미없는 일이다. 현금의 글로벌 경제는 예전에 없던 불확실성으로 가득하다는 말만 드리면서 글을 맺는다.

 

독자들의 쉬운 이해를 위해 나 호호당이 여러 날에 걸쳐 글을 몇 번이고 고쳐 쓰다 보니 당초 지난 일요일에 올리려던 글이 늦어졌다. 그만큼 고생했다는 점 독자들께서 알아주셨으면 참으로 고맙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