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企劃(기획)을 할 수 있는 나라

 

 

앞글에서 금융위기 당시 미국 연준은 각 우방국에게 달러 마통 개설을 터줌으로써 전 세계의 외환위기를 사전에 봉쇄했다는 얘기를 했다. 그런데 달러 위기를 사전에 막을 수 있는 달러 마통은 사실 전혀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든다. 그 이전에도 많은 달러 부족 위기가 있었다, 예컨대 1994년의 멕시코 외환위기, 1997년의 우리를 포함한 아시아 금융위기, 1998년 러시아 금융위기, 1999-2002년의 아르헨티나 위기, 2016년의 베네수엘라 위기, 2018년의 터키 외환위기 등이 그것이다. 왜 미국은 그 당시엔 마통을 발동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었을까? 하는 의문이다.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럴 이유가 없거나 또는 외환위기를 통해 미국이 어떤 이득을 볼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던 것이 아닐까?

 

나 호호당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이 중앙은행간 달러 스왑을 대거 풀어주는 것을 보고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아니? 저것들이, 방법이 다 있었음에도 시치미 딱 떼고 있었구나, 그래 이제 전 글로벌이 외환위기와 대공황이 오면 당장 저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달러 스왑을 하는구나! 했다.

 

그야말로 “미국아, 너희들은 다 계획이 있구나!” 였다. 미국은 달러라는 절대 무기를 가지고 있고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아이템을 만들어내는 혁신기업들이 있으며 월가의 금융세력들이 연준이나 재무부 관리들과 서로 왕래하는 곳이니 능히 기획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달러 마통 때문에 위상이 팍 꺾인 국제기구가 하나 있으니 바로 국제통화기금(IMF)이다. 외환위기가 발발할 때마다 IMF가 나설 것인지 말 것인지를 놓고 전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을 쳤는데 이젠 그냥 별 것이 아니게 되었다. 어쩐지 저번에 프랑스, 이번엔 불가리아, 그것도 여성들을 총재에 앉혔으니 겉보기엔 대단히 진취적인 것 같지만 그게 다 허울이다.

 

월가는 뉴욕에 있지만 수도 워싱턴을 보면 Fed와 미 재무부, IMF, World Bank 등이 불과 몇 백 미터 반경 안에 옹기종기 다 모여 있다. 아마도 미국 연준은 현재 달러를 무지막지하게 대거 왕창 풀어놓은 뒤 궁리를 하고 있을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시작되면 어떻게 하지? 아무튼 중국 저 놈들을 때려잡긴 잡아야 할 것 같은데 야, 아이디어 좀 내 봐! 하면서 툭 하면 죄다 모여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미국 연준(Fed) 너무 믿지 말기를.

 

 

연준의 파월은 증시가 징징거릴 때마다 당분간 절대 금리 올리지 않는다면서 달래고 있다. 하지만 연준의 위상도 예전에 비하면 스스로 체면을 깎아먹었다.

 

그 장본인은 바로 이번 바이든 정권에서 재무장관을 맡고 있는 옐런이다. 예전에 연준은 금리를 한 번 올리기 시작하면 연달아 사정없이 팍팍 올리던 곳이었는데 옐런이 연준의 수장을 맡던 시절 증시가 난리를 피우자 그만 깨갱-하고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흔히 비둘기파로 알려져 있지만 나 호호당이 보기에 그냥 월가의 꼬붕, 심하게 말하면 월가의 에이전트 격이다.

 

최근에 월가의 대형금융회사들이 비트코인을 조금씩 사들이고 있는데 이 또한 냄새가 난다. 돈을 무진장 풀어놓았으니 인플레이션 헤지 목적도 있겠지만 연준과 재무부에게 뭔가 주고 받으면서 나름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의심도 든다.

 

아무쪼록 주식 하는 분이나 부동산 ‘영끌’하고 있는 분들, 미국 연준 너무 믿을 건 아니란 얘기를 드린다. 그들은 미국을 위해 움직일 뿐 어느 시점에 가서 순식간에 얼굴을 바꿀 수 있는 그들이다. 지금도 연준은 중국을 상대로는 중앙은행간 달러 유동성 협정을 맺자는 말 하지 않고 있으니 이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다시 하는 얘기지만 미국은 달러를 들고 있기에 기획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음모론적인 접근이 아니라 해도 얼마든지 정해진 手順(수순)에 따라 움직이고 행동할 수 있는 나라란 사실이다.

 

예를 하나 들어본다.

 

새로 들어선 바이든 정부는 경기를 살리고 싶을 것이다. 그러면 그간 왕창 내렸던 달러를 서서히 강세로 돌릴 것이다. 달러가 강세로 가면 수입물품이 저렴해져서 소비가 늘어날 것이고 내수경기가 좋아질 것이다. 다만 중국 물품은 되도록 수입을 막도록 하는 조치도 함께 할 것이다. 예를 들면 테슬라의 경우 배터리 비중이 큰데 달러 강세는 LG에너지솔루션에서 사주고 중국의 CATL은 원천 봉쇄하는 식이다. (이런 걸 우리는 수혜라고 부른다.)

 

하지만 달러 강세로 미국 내수경기가 급격히 살아날 경우 인플레이션 우려가 있을 것이니 이런저런 사정을 감안해서 수순을 밟을 것이다.

 

그러니 나머지 글로벌 특히 우리와 같이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의 경우 오로지 저들의 움직임에 맞추어 대응할 수 있을 뿐 우리가 뭘 해볼 수 있는 여지는 별로 없다는 점이다.

 

 

이제부터 우리의 얘기

 

 

자, 이제 그러면 우리 얘기로 돌아와 보자.

 

먼저 확인하고 갈 것은 우리 경제의 성장세가 사실상 멈춘 시점인 2012년과 작년 2020년, 즉 8년간의 핵심 데이터이다.

 

                               시중통화량(M2)             국내총생산

2012년                         1,798조                       1,440조

2020년                         3,198조                       1,898조

 

이 자료만으로도 우리 경제의 체질이 얼마나 나빠졌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8년 사이에 통화량은 무려 77.9%가 늘어난 반면 국내총생산은 31.8%에 그쳤다. 77.9와 31.8의 차이가 바로 돈 가치의 하락을 의미한다. 총생산의 증가와 비례해서 통화량이 늘어나야 정상이라 하겠는데 말이다.

 

바로 이런 차이로 인해 불어난 시중 유동성이 갈 곳은 자산시장이 되고 있다. 즉 자산시장 상승의 근본적인 압력이 지속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이다.

 

 

증시와 부동산 시장은 성질이 많이 다르다는 점. 

 

 

자산시장하면 대표적으로 증시와 부동산 시장이다.

 

그런데 우리 증시와 부동산은 그 성질이 많이 다르다는 점이다. 증시의 경우 외국인 투자자금이 주도하지만 부동산 대표적으로 아파트는 거의 국내 수요와 공급으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역대 최장기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는 부동산 시장

 

 

먼저 부동산 시장부터 얘기를 해본다. 왜냐면 장차 조만간 정말로 초대형 사고가 날 시장이 바로 부동산이기 때문이다.

 

예전, 그러니까 2006년 말에 나 호호당은 우리 부동산 가격이 정점을 쳤다는 생각에서 당시 글을 통해서 그런 얘기를 했었다. 그런 이후 2008년 금융위기가 터졌고 그로서 우리 부동산 시장은 2012년까지 조정 국면을 거쳤다. 그런데 그 이후 한은이 기준금리를 2012년 7월에 종전의 3%에서 내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부동산 시장이 서서히 상승세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금리를 내린다는 것은 시중통화량을 늘린다는 것이고 특히 2015년 3월 2% 이하로 내리면서 시중통화량은 걷잡을 수 없이 마구 팽창하기 시작했으며 지금은 아시다시피 0.5%라고 하는 사실상의 제로금리 시대이다.

 

한은이 경기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2% 대 미만으로 과감하게 내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미국이 터준 '달러 마통'이 있다고 앞글에서 설명 드렸다. 2006년 말 이제 부동산 시장이 조정으로 들어갈 것으로 판단했던 나 호호당의 예측을 틀리게 만든 근본 동력은 바로 달러 마통이었던 것이다.

 

지금 나는 내 예상이 왜 틀렸는가에 대한 해명이나 변명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지금 진행 중인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왜 엄청난 거품이고 조만간- 결국 그 시점은 미국 연준이 정할 것이니 알 수가 없지만- 터질 것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 부동산 시장은 2012년 초반까지 조정을 거친 이후 금리인하로 인해 시중유동성이 지금까지 8년 동안 거침없이 늘어났고 그로 인해 부동산 시장 역시 8년간의 역대 최장기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 부동산 상승은 종전과 또 다른 거품이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의 부동산, 특히 아파트 가격의 상승은 그야말로 하늘로 치솟는 로켓과도 같다. 시장의 성질 또한 예전과 크게 다르다. 전에는 서울의 이른바 ‘버블 세븐’이 이슈였고 이에 투기지역으로 선포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전국이 동시다발적으로 오르고 있다. 오죽하면 ‘영끌’이란 신조어가 탄생했겠는가!

 

나 호호당 생각에 우리 경제 체질 상 기준금리의 하한선은 2%라 여긴다. 그래야만 증시나 부동산, 생산성, 환율 등등 여러 면에서 장기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미국 연준이 통 크게 허용해준 달러 마통으로 인해 우리 경제, 특히 한은은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다고 본다. 다시 한 번 돌이켜보면 기준금리가 2% 이하로 내려온 시점은 2015년 3월이었다. 그때 역사상 처음으로 2% 미만인 1.75%를 보여주었던 한은이다.

 

우리 경제가 어렵더라도 기준금리 하한인 2%대를 지켜갔더라면 물론 경기침체와 성장세 둔화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라 본다. 하지만 좀비기업을 더 이상 양산해내지 않았을 것이고 구조조정이 적절하게 진행되면서 우리 경제 체질을 장기적으로 건강하게 지켜갈 수 있었을 것이라 본다. (나 호호당의 이런 생각을 금융가에선 매파 성향이라 부른다. 나 호호당은 그렇다면 송골매란 얘기?)

 

결국 2015년 3월 바로 그때가 선택이었다. 당장 어려움을 감내할 것이냐 아니면 나중에 한 방에 몰아서 한 번 죽어볼 것이냐의 선택.

 

다음 글에서 최종 마무리를 하겠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막아준 "달러 마이너스 통장"

 

 

2008년 미국 금융위기가 글로벌 전체적인 금융위기나 공황으로까지 치닫지는 않았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음에도 말이다. 거기엔 뚜렷한 이유가 있다, 미국이 부랴부랴 터준 ‘달러 마이너스 통장’ 때문이었다. (달러 ‘마통’을 달리 표현하면 ‘달러 스왑’ 이라 한다. 더 정확한 표현으로 중앙은행간 유동성 스왑이라 한다.)

 

흔히 사람들은 미국 연준이 직접 돈을 찍어서 공급하는 양적완화를 단행한 데 대한 인상만 남아있지 앞서의 일이 있었다는 것은 잘 알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달러 마통’ 역시 실은 양적완화에 절대 뒤처지지 않는 엄청난 조치였다.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나 지역에서의 금융위기는 자동적으로 외환위기로 연결되는데 그 외환위기란 것을 더 정확하게 말하면 달러 부족 위기를 말한다. Dollar Shortage!

 

내부의 금융위기는 양적완화라는 수단으로 임시변통을 한 연준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글로벌도 걱정거리였다. 어디선가 달러 부족 위기가 터지면 글로벌 전체로 확산되거나 경제대공황이 올 수도 있었고 그럴 경우 미국 역시 더욱 어려워질 거란 걱정이었다.

 

이에 연준은 부랴부랴 주요 우방국 중앙은행들을 상대로 달러 마통 계약을 체결했고 그로서 글로벌 금융위기는 일어나지 않았다. 달러 마통 통장 방식은 작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에도 또 다시 적용되었다. (다만 죽이고자 마음을 단단히 먹은 상대인 중국에 대해선 달러 마통 통장을 터주지 않고 있는 미국이다. 제발 좀 뒤져라! 하는 마음이다.)

 

달러 마통에 대해 더 궁금하신 분은 영문 위키피디아에 가서 다음 문장을 입력하면 되겠다. “Central bank liquidity swap”

 

 

달러 마통은 한국은행의 운신 폭을 넓혀주었으니 

 

 

2008년 위기 당시 우리도 미국과 달러 마통을 텄다, 뭐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사실 우리가 달러 부족 위기에 내몰릴 가능성은 거의 없었으나 그로 인해 한국은행의 운신 폭이 대폭 늘어났다. 경기부양을 위해 마음 놓고 기준금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2008년 8월 금융위기가 막 발생하던 당시 한은기준금리는 무려 5.25%였는데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2009년 2월까지 겨우 6개월 만에 무려 여섯 차례의 인하를 통해 2%까지 전폭적으로 낮춘 바 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달러 마통의 개설이었다. 금리를 인하해도 외국인 자금의 이탈로 인한 달러 부족 가능성이 거의 없기에 한은은 마음 놓고 금리를 내려 국내 경기를 부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외국인 자금들 또한 한은의 기준금리의 신속한 대폭 인하에도 불구하고 국내 금융시장에서 달러 부족 위기 즉 외환위기가 없을 것이니 굳이 투자 자산을 손절해가면서까지 내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미국 연준의 광범위하게 달러 마통 개설 조치로 인해 미국 금융위기가 다른 곳에서의 달러 부족으로 인한 외환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사실상 없어졌던 것이다.

 

그런 뒤 미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경기가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하자 한은은 더 이상 시중에 돈을 풀어놓기만 할 수 없단 생각에서 2010년 7월부터 2011년 6월까지 5회에 걸쳐 기준금리를 2%에서 3.25%까지 지속적으로 인상했다.

 

 

아쉽게도 한진해운을 살리지 않았으니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전 세계 경제가 심한 디플레이션 압력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그리스를 필두로 유럽국가들의 부채위기가 시작되었다. 이제 더 이상 금융위기 이전의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우리나라 유일의 국적해운사인 한진해운이 몰락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한진해운은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경기가 강력한 회복세를 보이자 글로벌 물동량이 다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과감하게 베팅을 했다. 배를 왕창 빌려서 늘어나는 수요에 대응해보고자 나선 것이다.

 

당시 국제 운임은 저렴했고 그로 인해 배를 빌려주는 임차료도 저렴했기에 그런 도박을 걸었던 것이다. 그런데 글로벌 경기는 2011년을 기점으로 또 다시 완전히 꺾였고 이에 한진해운은 빌린 배들의 임차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다.

 

한진해운의 상실은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 경제에 향후 두고두고 악영향을 미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산업은행이 인수해서 살려야 했던 것이라 본다.

 

당시 국내 부동산도 금융위기에 따라 하락조정에 들어갔다가 되살아났지만 한은의 연속적인 금리인상으로 또 다시 조정 국면으로 들어갔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이 결과적으론 국내경기를 불황으로 몰아넣은 셈이었다.

 

 

달러 마통은 결과적으로 오늘날 우리 경제 제로금리의 바탕이 되었으니  

 

 

박근혜 정권이 출범하기 직전인 2012년부터 우리 경제는 지속적으로 후퇴하고 있었고 2013년 초엔 부동산 침체도 심화되고 있었다. 이에 한은은 2012년 7월부터 기준금리 인하를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는데 실은 이것이 우리 경제가 사실상의 제로금리로 가는 출발점이 되고 말았다. 도중에 다시 금리를 조금 올려서 금리정상화를 조심스럽게 시도한 바 있지만 작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지금의 0.5%, 사실상의 제로금리가 정착되고 말았다.

 

즁요한 점은 달러 마통으로 인해 외환위기의 가능성이 거의 사라졌다는 점이고 그 때문에 한은은 금리인하를 마음 놓고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사실 이것이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될 지 아닐지 현재로선 판단하기 어렵다고 하겠다.

 

0.5% 기준금리 체제인 까닭에 좀비기업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일자리 부족으로 시달리는 우리 경제이기에 정리할 수도 없다. 이제 우리 경제의 생산성은 더 이상 향상되기 어려운 체질, 즉 성인병 체질인 만성 고혈압과 당뇨에 시달리는 체질이 고착화되어 버린 것이다.

 

 

환율은 미국과 중국 눈치보기에 바빠서 

 

 

우리는 수출경제이기에 남은 것은 이제 환율이다. 그러니 조금 얘기해보자.

 

예전엔 수출입 비중을 줄이고 내수를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그치지 않았지만 이젠 그런 타령을 할 수 있던 시절이 그립기까지 하다. 인구가 줄어드는 판국에 무슨 내수 활성화를 할 수 있으랴! 죽으나 사나 오로지 수출에 목을 매어야 하는 우리 경제이다.

 

그런데 환율이야말로 더더욱 어려워지고 말았다. 미국 금융위기 이후 저마다 자국 통화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환율전쟁이 본격화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세다가 우리의 경우 예전과 상황이 근본적으로 달라졌으니 우리 원화는 미국 달러는 물론이고 중국 위엔화라고 하는 양쪽 통화의 사정을 동시에 감안해야 하는 어려움이 생겼다는 점이다.

 

예전엔 달러가 오르거나 엔화가 오르면 수출이 잘 되는 구조였지만 지금은 우리 경제의 수출 중 상당 비중이 중국이어서 중국 위엔화가 내리면 중국으로 가는 수출이 줄어든다. 달러도 살피고 엔화도 살피고 위엔화도 살펴야 하는 구조가 형성된 바람에 외환당국도 여간 어려운 처지가 아닌 셈이다. 최근 달러가 많이 하락했어도 우리 수출이 그런대로 잘 되는 것은 중국 위엔화가 강세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금리인상 시기와 중국 버블 붕괴가 공교롭게도 일치될 가능성이 있으니 

 

 

그런 까닭에 우리 경제가 장차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은 나 호호당이 보기에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고 본다. 미국이 죽이려드는 상대방이 중국이고 이에 중국이 이런저런 이유로 무너질 것 같으면 위엔화는 급락할 것이고 우리의 대중국 수출도 대폭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중국 경제의 붕괴를 점쳐온 사람들이 많았지만 나 호호당은 오래 전부터 중국 경제가 무너질 수 있는 시기로서 2020-2024년을 예상해왔다. 다른 경제전문가들에겐 없는 나라별 국운의 흐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미국 연준이 금리를 본격적으로 인상하게 될 시기 역시 그 무렵이 아닐까 싶다는 점이다. 연준의 금리인상은 미국 달러를 강세로 이끌 수밖에 없다. 달러 강세는 환율전문가들 사이에서 ‘글로벌 경제가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라 입을 모으고 있다.

 

당분간은 증시도 오를 것이라 본다. 올 해 아니면 내년까지 종합지수 4000선에 근접할 수도 있다고 본다.

 

부동산 역시 당분간은 더 오를 것이라 본다. 최근엔 다소 주춤한 모양이지만 조금 지나면 또 다시 상승세를 탈 것이라 본다. 문재인 정부의 당초 아파트 수요예측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란 예기치 못한 변수가 등장하면서 시중 유동성이 무지막지하게 불어났고 이에 부동산 상승이 또 다시 가속화되었다. 그러자 젊은 층을 중심으로 가수요, 즉 ‘영끌’ 현상마저 생겨나면서 수요가 수요를 불러 일으키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어떤 무리수이든 불문하고 무조건 아파트 공급을 대폭 늘리고자 갖은 애를 쓰고 있다.

 

 

경칩이면 개구리가 밖으로 나오듯이 

 

 

오늘은 이 정도에서 끊어가기로 한다. 예상해보니 아마도 3회에 걸친 글이 될 것 같다. 최근 올리는 글이 늘어났는데 이는 모두 지난 연말부터 1월에 걸쳐 해오던 생각들이 이제 밖으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우수 경칩이면 개구리가 바깥으로 나오는 것과 같다.

중년의 자신감이 실수로 이어졌으니 

 

 

상담을 마친 뒤 虛妄(허망)할 때가 간간이 있다.

 

오십 초반의 남자 분이었다. (미리 얘기하지만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있어서 구체적인 상황은 생략했다.)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주식투자를 통해 불린 자산만도 수십억에 달했다. 빚도 몇 억 있었으나 큰 부담은 아니었다. 사정이 좋다 보니 퇴직을 종용받은 것도 아닌데 스스로 사표를 냈다. 이 정도면 앞으로 훨씬 느긋하고 편히 즐기면서 살 수 있으리란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誤算(오산)이었다. 빚은 나중에 더 벌어서 갚을 요량으로 모든 현금을 유망 바이오 벤처 한 종목에 몰아넣었다. 소위 ‘몰빵’을 친 것인데 갑자기 주가가 속절없이 하락하더니 몇 분의 일 토막이 났다. 주식을 다 팔아도 빚을 청산할 수 없어 현재로선 주가가 오르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얼마나 속이 탔으랴! 결정적인 문제는 직장이 없으니 고정수입이 없다는 점이다. 부랴부랴 다시 일자리를 알아보곤 있지만 50 넘은 이를 선뜻 반길 곳은 없다. 그간에 연을 맺었던 선배들을 통해 비정규직 자리라도 열심히 구직활동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 나 호호당을 찾아왔다.

 

직장 그만 두고 나서 불과 3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사주를 슬쩍 보고나서 절로 탄식이 새어나왔지만 상대가 알아차릴까 싶어서 억지로 숨을 눌렀다.

 

그리고 나선 솔직히 얘기해주었다. 이제 더 이상 몇 년 전의 여유롭던 상황으로 되돌아가긴 어려울 것이라고. 이어서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해주었다.

 

 

큰 수확은 10월 하순에 한 번 있는 법인데...

 

 

10월 하순 가을걷이가 이제 막 끝나가고 있는 농부가 있다고 합시다. 미처 수확이 다 끝나진 않았지만 하루가 다르게 곳간에 쌀가마니가 쌓여가고 있다고 합시다. 농부가 보기에 이 정도면 평생 먹어도 될 쌀을 얻었다 싶어서 이제 지겨운 농사일은 그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이에 그간의 논밭을 다 처분하고 쌀도 다 팔아서 현금으로 바꾼 뒤 그간에 눈여겨보던 다른 사업에 뛰어들었다 합시다. 그런데 곁에서 보던 것과 달리 막상 해보니 예상과는 전혀 달랐고 그 바람에 시작하자마자 돈을 다 날리고 말았던 것이지요.

 

논밭은 고정수입을 가져오던 그 분의 직장이었고 빚을 갚지 않은 상태에서 주식 한 종목에 모든 재산을 전부 투입한 것은 장사가 서툰 탓이라 하겠다.

 

그 분은 그런 상태에서 이제 막 60년에 걸친 운세 순환에서 겨울로 접어들고 있었다. 땅이 없으니 보리를 심을 수도 없고 식량은 다 팔아치웠다. 그렇게 마련한 현금은 주식에 들어가 다 녹아 없어졌다.

 

 

장점이 때론 단점이 되고 그 반대도 그러하니...

 

 

사주를 보니 일견 총명하고 기회포착에 능한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분명 능력과 장점을 갖춘 타입이었다. 그런데 능력이 있고 장점이 있다고 해서 평생에 걸쳐 늘 그러리란 법은 없다는 점이다. 때론 장점이 바로 단점이 될 때도 있다는 사실이다. 장점이 바로 단점이고 단점이 때론 장점이란 사실.

 

강의할 때 늘 하는 얘기지만 남자 나이 30대 후반에서 40대 전반이 되면 ‘물가에 내어놓은 아기와 같다’는 얘기를 해주곤 한다. 공격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란 놈이 여전히 치성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40대 후반, 대략 48세 무렵이 마지막 고비가 된다. 이는 초가을 볕이 대단한 것과 같다. 세상 경험도 이젠 충분하고 앞을 어느 정도 내다볼 줄 안다, 그러니 자신감도 충만하다. 테스토스테론은 이제 조금씩 빠져나가곤 있으나 스스로의 역량을 판단을 과신하는 탓에 그만 실수하기 쉬운 나이라 하겠다.

 

그 50대 초반 남자분의 실수는 바로 이 대목이다. 불과 3년 만에 거의 전부를 잃은 셈이다.

 

운세는 현재 小雪(소설), 이제 막 15년에 걸친 겨울로 접어든 때이다. 이런 운세라면 남들이 보기에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을 무렵이건만 그 분은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나이에 따라 운의 작용도 달라지는 까닭에 

 

 

운의 흐름도 중요하지만 어떤 운을 생물학적 연령 즉 나이 몇 살에 맞이하느냐가 실은 더 중요하다. 모든 것이 절정일 때 나이마저 중년의 세련됨과 자신감까지 더해지면 오히려 아차! 실수하기 쉽다.

 

命(명)으로 볼 때 적극적인 성향의 소유자라면 오히려 남성 호르몬이 빠져나간 뒤 즉 나이가 들어서 好運(호운)을 맞이하는 것이 좋고, 보수적인 성향의 소유자라면 남성 호르몬이 한창인 30-40대에 好運(호운)을 맞이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보완이 된다.

 

이처럼 운을 볼 때 그 사람의 생물학적 나이를 감안하지 않으면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

 

나 호호당의 경우 60년에 걸친 운세 흐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낸 것은 훨씬 오래 전의 일이었지만 그게 나이에 따라 달리 작용한다는 것에 대해 감을 잡고 구체적으로 정리가 될 때까지 또 다시 10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했다.

 

돌아와서 얘기이다. 50대 초반의 그 분은 家長(가장)이기도 하니 계속 돈을 벌어야 한다. 능력이 충분한 분이라 앞으로 어떻게 해서든 대략 10년 정도는 수입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여긴다. 다만 예전에 받던 안정적인 보수보다는 훨씬 헐값에 품을 팔아야 하는 고단한 처지에 놓였다.

 

이런 상담을 마친 뒤 혼자가 되면 생각에 빠진다. 만일 저 분이 3년 전, 그러니까 직장을 그만 두려할 때 나를 찾아왔었다면 내가 과연 저 분을 만류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

 

아마도 그럴 순 없었을 것이다. 생전 처음 얼굴을 본 사이란 점, 그러니 당연히 아무리 강하게 말려도 거기에 무게가 실릴 순 없다는 점이다.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할 경우 불쾌한 표정을 짓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일 때가 더 일반적이다.

 

 

멀리 갈 것 없이 나 호호당 스스로가 하나의 케이스란 사실

 

 

하기야 멀리 갈 것도 없다. 나 호호당 스스로가 그랬었다. 급여도 많던 은행을 그만 두고 떼돈 벌어보겠다고 나선 것이 1993년 12월의 일이었다. 만 38세의 나이였다. 그리고 자신만만했다, 서초구에 아파트 2채, 하남시에 한 채가 있었으며 처가가 대단히 부유해서 나중에 받게 될 상속도 제법 예상이 되었으니 전혀 겁이 나질 않았다.

 

그런데 외환위기 거치면서 2001년이 되니 나 호호당의 순재산은 마이너스 3천만원이었다. 만 7년 만에 빈털터리가 되었던 것이다. 그 사이에 처갓집은 외환위기에 걸려 몰락했고 나 역시 이래저래 돈을 날려 먹었던 것이다. 그런데 1993년 직장을 그만 두기 직전 주변으로부터 만류도 많이 받았다는 사실.

 

 

의사를 찾으면 치료를 해주지만

 

 

그러니 상담하는 일에 虛妄(허망)함을 느끼곤 한다. 어쩔 수 없는 일, 각자의 타고 난 팔자소관 아니겠느냐 하면서 구태의연한 논리로 넘겨보지만 맥이 풀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사람이 아프면 병원을 찾는다. 그럴 때 의사가 왜 미리 병원을 찾아오지 않았느냐고 나무라는 법은 없다. 병의 상태에 따라 최선의 치료를 해줄 뿐이다. 그런데 운명상담이란 일은 아파서 왔을 땐 이미 돌이킬 수가 없고 치료를 해줄 수도 없다. 반대로 아프기 전에 왔다면 상대방은 해주는 말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딜레마!

 

 

전체로서 하나이지 따로따로가 아니어서 

 

 

이런 일도 있었다. 직장을 잘 다니던 이가 한 번 성공해보겠다는 의욕으로 인해 독립을 했는데 몇 년 버티지 못하고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불치의 병까지 걸려서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게 되었다.

 

그 분과 상담한 것은 독립하기 얼마 전이었고 이에 나는 그럴 때가 아니니 그만 두라고 만류했었다. 장담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 분의 사주로 볼 때 예민한 성격에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 사업에 실패하면 몹쓸 병에 걸릴 수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마도 5년이 흘렀을 것이다, 병색이 완연한 모습으로 다시 나를 찾아왔고 그간의 쓰라린 경과를 털어놓는 것이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건강을 회복하면 꼭 연락을 달라고 당부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나 메일 한 통을 받았다, 그 분의 아드님이 보낸 메일이었다.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세상과 하직할 것 같으니 그렇게 되면 나중에 내게 연락 한 통을 보내주었으면 한다는 말씀을 남기셨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메일을 지우지 않고 보관해놓고 있었다. 오늘 메일함에 들어가 찾아보니 2019년 초에 받은 메일이다. 따져보니 그 분과 처음 대면한 것은 아마도 2008년 경이었던 것으로 추산이 된다.

 

하고자 하는 말은 돈 따로 건강 따로가 아니란 점이다. 애정운은 어떻고 부부운은 어떠하며 재산과 명예 등등이 각자 따로 노는 것이 아니란 얘기. 모든 것은 하나로 꿰어져있다.

 

 

건강을 잃지 않는 한 삶은 결국 잘 살 수 있다는 거

 

 

처음 얘기했던 50대 초반의 상담객, 돈과 지위를 잃었지만 아직 건강까지 잃은 것은 아니란 점이 중요하다. 가장으로서의 무거운 책임에 노심초사하겠지만 중요한 점은 긴 호흡으로 고비를 잘 넘기고 나면 나중에 다시 과거의 힘들었던 날들을 추억하면서 살 수 있는 날도 온다는 점이다. 부디 그러길 바라고 또 빌어본다.

보헤미안 랩소디, 마마!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시청했다. 평소 극장에 가는 것을 성가셔 하는 탓에 그냥 흘려보냈는데 좋구나 싶었다.

 

보고 난 소감, 삶의 진지한 모습을 다루는 영화는 늘 애잔하고 애처롭다. 어쩌다가 게이가 된 바람에 에이즈로 죽은 프레디 머큐리, 하지만 대중 스타다운 죽음 같기도 하다. 게이나 양성애자, 골치 아픈 문제인데 아들에게 물었더니 유전적 소양보다 전립선 쾌감에 맛을 들이면 게이가 된다는 설이 최근 학설이라 한다.

 

프레디 머큐리의 생년월일을 검색해보았더니 1946년 9월 5일로 나온다. 태어난 시에 대해선 여러 설이 있는데 아침 5시 10분설이 가장 유력하다. 출생지가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앞바다 인도양에 위치한 잔지바르에서 태어났으니 표준시와 진태양시의 오차가 대략 24분 정도. 이에 아침 5시 10분에서 24분을 빼면 4시 46분 즉 寅(인)시라 볼 수 있다.

 

사주는 丙戌(병술)년 丙申(병신)월 壬午(임오)일 壬寅(임인)시가 되고 이에 60년 순환에 있어 입춘 바닥은 1932년과 1992년 壬申(임신)이 된다. 반대로 운기의 절정인 입추는 1962 壬寅(임인)년이다.

 

실제 그가 죽은 것이 입춘 바닥 직전 해인 1991년 11월 24일이니 앞의 사주 분석은 나름 신뢰가 간다.

 

그가 에이즈에 걸린 것은 1987년이라 하니 바닥 5년 전의 일이다. 운세가 한창 하강하고 있을 때였던 것이다.

 

그가 퀸이란 밴드를 결성한 때는 1970년이었으니 운세 상으로 秋分(추분)의 때였다. 이 무렵이면 사람의 재능이 빛을 발하는 때인데 마침 그 해 본격 활동을 시작했으니 시작하자마자 무난하게 성공 가도를 걸었다.

 

그가 남긴 대표작은 단연코 1975년에 발표한 싱글 음반인 “보헤미안 랩소디”였다. 이로서 세계적인 그룹, 요즘 시쳇말로 ‘월클’에 올랐다. 운세 상으로도 1975년은 한 해의 계절로 치면 10월 하순의 수확을 보는 때, 이를 나는 霜降(상강) 재운이라 부른다. 사실 그 노래가 프레디 머큐리 음악의 절정이었다.

 

노래는 그저 마마! 하는 소리만 귓전에 쟁쟁하다. 그저 애처롭다는 생각만 든다.

 

 

나 호호당은 스스로 사람이 아니라 오래된 정령이란 착각에 빠지곤 한다.  

 

 

오랜 세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팔자를 통해 운명을 추리하고 앞일에 대해 상담도 하고 자문도 해주다 보니 나 호호당 자신은 이제 보통의 사람과는 약간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이에 경험 또한 그 사람의 생에 일어난 일들을 기초로 한다. 남의 경험에 대해 들을 때도 있겠지만 그건 체험이 아니다.

 

그런데 나 호호당은 남의 경험이긴 하지만 수없이 많이 들었다. 게다가 속의 내밀한 얘기와 고뇌, 걱정, 털어놓기 힘든 경험들을 무수히 들었고 지금도 듣고 있다. 그러다 보면 감정이입도 될 때도 많다.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생년월일시를 통해 그 사람의 운명이 전개되는 시간표를 알고 있기에 그런 요소들이 훗날 그 사람에게 있어 어떤 영향을 가져올 지에 대해서도 짐작이 간다.

 

그러다 보니 가끔씩 나 호호당은 그 많은 사람들의 생애가 마치 나 호호당이 윤회와 전생을 거쳐 오면서 과거생에 체험했던 나 호호당의 삶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나 호호당 스스로가 마치 수만 번의 생을 살아온 사람처럼 느껴진다. 내 스스로 너무나도 오래 살아온 精靈(정령)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현재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인간이면서도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착각, 또는 반지의 제왕 속에 나오는 나무정령인 ‘엔트’와도 같은 느낌,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숱한 일들과 사람들의 일을 지켜본 그 나무정령 말이다.

 

 

현실을 살아가기 보다 추억의 삶이 더 많아졌으니 

 

 

게다가 나이마저 이젠 예순 일곱이 되다 보니 개인적으로 체험한 세상일도 결코 만만치가 않다.

 

어려서 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카랑카랑한 목소리, 김영삼 대통령의 쇳소리, 김대중 대통령의 전라도 사투리가 섞인 특유의 빠른 어조, 김종필 총리의 어눌한 듯 느긋한 충청도 억양, 노무현 대통령의 열정적인 목소리, 이명박 대통령의 쉰 목소리, 박근혜 대통령의 부드러우면서도 결단이 가득한 음성, 구강 구조로 인해 공기가 빠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음성, 뿐만 아니라 수많은 정치인들의 개성에 가득한 저마다의 목소리 들이 일순에 귓전에 울려오고 그 모습들이 내 눈앞을 스쳐간다.

 

젊은 날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런저런 음성과 야단치는 목소리, 개인적으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와 얼굴 표정, 뜨겁게 사랑했던 사람들의 정겨운 목소리와 표정의 다양한 뉘앙스, 극진히 사랑했던 먼저 간 강아지의 쾌활한 울음소리와 미소, 죽기 직전의 그 이별을 고하는 표정 등등 수많은 표정과 소리가 일순에 지나간다.

 

거기에 더하여 평생 즐겨 읽어온 많은 나라와 대륙들의 역사와 인물들의 스토리들이 더해져서 늦은 밤 시간 글을 쓰거나 사색에 빠지거나 책을 읽다가 문득 문득 과연 나는 사람인가 정령인가에 대해 헷갈리게 된다.

 

 

부러운 이도 없고 밑으로 보는 이도 없어졌으니 

 

 

그러다 보니 또 한 가지 생겨난 것이 있으니 이 세상에 그 어떤 이도 부러워하거나 밑으로 보는 사람이 없어졌다는 점도 있다. 사람 중에는 천재도 있고 부자도 있으며 능력이 뛰어난 이들도 많다. 물론 그 반대는 더 많다. 그런데 천재도 부럽지가 않고 부자도 부럽지가 않다,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그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동시에 나 호호당이 밑으로 내려보거나 한심하다 여기는 사람 또한 없다. 정확히 말하면 없어졌다. 예전에 있었는데 말이다.

 

그저 저마다의 삶이 있을 뿐이란 생각, 그리고 어떤 누구의 삶도 좀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노라면 그저 애처롭다는 생각만 든다. 혹시나 해서 얘기인데,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나 호호당의 인격이 세월 속에서 수양이 되고 도야가 되었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란 점 알아주시기 바란다.

 

그냥 부러운 사람도 없어졌고 나보다 못하다 싶은 사람도 없어졌다.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나 호호당의 눈엔 모든 사람이 애처로울 뿐이다. 저 노래 기막히게 부르던 프레디 머큐리의 삶 또한 그저 애처로울 뿐이다.

 

이 세상 사람들을 보라, 잘 났건 못 났건 저마다 얼마나 살아보려고 애를 쓰는가, 자신이 세상에 있어야 할 이유와 근거를 만들어보고자 얼마나 안간힘을 쓰는가 말이다. 그러니 애처롭다.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이 그렇다.

 

돈 많은 사람들의 삶도 잘난 사람의 삶도 알고 보면 다 거기에서 거기, 정말이지 오십 보 백 보, 그러니 특별할 것은 하나도 없다는 점, 저마다 갖고 있는 모자란 점으로 해서 열등감을 얼싸안고 몸부림친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기에 누구나 그렇다.

 

 

예로서 엘비스 프레슬리의 삶을 들여다 볼 것 같으면 

 

 

연예인, 빛나는 영광만큼이나 힘들고 애처로운 사람들이다. 연예인의 길을 시작하면 마땅히 대중의 스타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게다가 스타로 자리를 잡았다고 해서 마냥 행복한 것 또한 아니다. 일반인들이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애로와 장애가 있다는 점이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예를 들어본다.

 

미국만 아니라 전 세계를 매료시켰고 지금도 여전히 전설이다. 위대한 비틀스의 멤버인 존 레논이나 폴 메카트니 역시 그를 마음의 스승으로 받아들였을 정도였다. 그처럼 대단한 그가 세상을 떠난 나이는 겨우 42세였다. 거의 요절했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다. 11세부터 노래를 시작해서 30년간 노래하다가 1977년에 죽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마약이나 무분별한 술 담배 등과는 전혀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다시 말해서 대중 스타답게 마약 중독이나 에이즈 같은 것으로 죽지 않았다. 원인은 참으로 뜻밖이다. ‘똥독’에 중독이 되어 죽었다. 똥을 제대로 싸지 못해서 죽었다.

 

연예인의 문제는 인기가 없으면 갈 데가 없다는 점이고 인기가 생겨서 바빠지면 정말이지 대소변을 편히 볼 시간마저 없다. 투어 콘서트를 하다 보면 생체 리듬이 무너지고 무대에서의 긴장 때문에 또 그렇다. 며칠 변을 보지 못할 때도 많다. 그러다 보면 변비가 되고 이에 설사약을 먹어 강제로 해결하기도 한다.

 

(작년 미스터 트롯 프로그램 예선에서 어떤 가수는 목을 풀기 위해 계속 물을 마시다가 정작 노래할 시간이 되자 방광이 차서 노래를 제대로 부르지 못하고 탈락했던 일이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변비와 설사를 반복하다가 결국 대장기능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그가 죽은 뒤 부검을 했더니 똥이 대량으로 검출되었고 대장은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져 있었으며 똥독으로 인해 심하게 부어있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운세는 1974 甲寅(갑인)년이 입춘 바닥이었는데 그 직전인 1973년 하와이에서 자선공연을 했다. “알로하 프롬 하와이”가 그것이다. 나 호호당이 보기에 그건 팬들에 대한 그의 마지막 서비스였다.

 

그런 이후 1975년경부터는 대변을 거의 보지 못해 심하게 고통 받았고 1977년에 사망했다.

 

하지만 그는 대중 스타답게 죽은 뒤에도 사인이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최고의 스타가 똥을 싸지 못해서 죽다니! 하는 말을 듣기 싫었던 모양이기도 하고 비즈니스에 연관된 사람들이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그가 사망한 것은 1977년이었지만 정확한 원인을 밝힌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모든 생명이 그저 애처롭다. 

 

 

태어난 자에게 세상은 한 번 살아보는 마당과도 같은 곳이다. 하지만 살아있는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만 하기에 삶은 즐거움과 아울러 고통으로 가득하다. 그러니 숨 쉬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과 생명들이 내 눈엔 그저 애처롭다.

 

(한동안 생각에 빠져 글을 자주 올리지 못했는데 최근에 올리는 글들이 그런 사색의 편린들이라 하겠다.)

 

새 봄의 첫날이 꽤나 터프하구나! 

 

 

오늘은 雨水(우수),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봄의 첫날이다. 그런데 아침 기온이 무려 영하 10도나 된다고 봄의 첫 날이 꽤나 터프하다.

 

우수로서 하늘과 땅이 맹렬하게 움직이면서 새 해를 열어간다. 그런데 하늘과 땅이 움직인다는 것은 무슨 말이며 새 해를 열어 간다는 말은 또 무슨 의미일까?

 

 

하늘과 땅이 맹렬히 움직이다는 말의 의미

 

 

간략하게 설명 좀 해드린다.

 

날은 비록 춥지만 땅속은 이미 녹기 시작해서 물이 위로 오른다. 땅속 온도가 오르니 겨우내 얼었던 땅속의 물이 서서히 위로 올라온다, 이를 두고 地氣(지기)가 상승한다고 말한다. 우수는 해가 가장 짧은 12월 20일 경의 동지로부터 60일 정도 지난 때, 일조시간도 많이 길어졌다. 이를 일러 天氣(천기)가 下降(하강)한다는 표현을 한다.

 

天氣(천기)가 내려오고 地氣(지기)는 오르기 시작한다. 이를 현대 과학적인 용어로 설명해보면 다음과 같다. 동지로부터 해가 길어지지만 땅은 계속 식어간다. 해가 길어지면 땅도 따듯해져야 할 터인데 옛 사람들은 도무지 이런 현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해가 길어지는데 땅은 왜 더 식어가서 추워지지? 하는 궁금증이었다.

 

현대 과학은 이 현상을 대단히 쉽게 설명을 한다. 햇빛, 光子(광자)가 날아와 땅에 닿으면 그 즉시 땅이 데워지는 것이 아니라 時差(시차)가 존재한다. 이에 지속적으로 햇빛 알갱이 광자, 보다 정확하게는 전자파의 하나인 적외선이 날아들면 마침내 식어가던 땅의 온도가 상승하기 시작한다. 이를 輻射熱(복사열), 영어로 radiant heat 라고 한다.

 

그러면 땅속에서 얼음 알갱이로 있던 물이 녹기 시작한다. 그렇게 되면 지표면의 건조한 공기는 지표 아래의 물을 흡수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이 연이어 지속되는 현상, 땅속에선 물이 녹아서 위로 올라오고 그러면 공기 중으로 다시 상승한다. 이게 본격화되면 봄날 아지랑이 현상이 생겨난다.

 

우수로서 물이 땅속에서 지표로 오르고 다시 대기 속으로 상승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천지의 준동은 모든 생명들의 준동을 유발한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이 하늘과 땅의 순환에 맞춰 진화해왔기에 당연하다.

 

 

생명은 따뜻하고 윤기가 나고 말랑하다. 

 

 

바깥에 나가보면 나뭇가지도 메말라 있고 덤불의 이런저런 풀들도 말라있다. 거의 바싹 마른 미라(mirra) 상태이다. 하지만 우수가 지나면 겉으로 바싹 말라있는 것 같아도 정작 만져보면 확연히 다르다. 뻣뻣하지가 않고 낭창댄다.

 

왜 낭창댈까? 하면 뿌리로부터 물이 위로 올라와 가지 끝까지 도달했기에 유연해지는 것이다. 이미 생명 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유연하다, 말랑하다, 뻣뻣하지가 않다. 반대로 죽어가는 것은 마르고 뻣뻣해진다.

 

물이 올라서 표면이 반짝거리는 것을 두고 우리는 潤氣(윤기)가 난다고 한다. 죽어가는 것은 윤기가 적어지고 빠진다, 죽고 나면 윤기가 없다. 여성들이 아침저녁으로 열심히 기름 성분이 포함된 보습제를 바르는 까닭?, 간단하다, 아직 젊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살아있는 것은 모두 熱氣(열기)가 있다. 따뜻하다. 손발이 차가워지면 죽어가는 것이다. 나 호호당 역시 중년의 나이까진 손발이 겨울에도 따끈따끈했다, 그런데 예순이 넘어가면서 이젠 그렇지가 않다, 겨울엔 손이 시리다.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열과 수분이 오르고 열과 수분이 속에서 남으면 바깥으로 나온다, 그런 자는 말랑하고 따뜻하고 윤기가 난다. 그게 생명이고 살아있음이다.

 

다시 돌아가서 얘기이다. 우수로서 해는 더 길어지고 땅도 녹는다. 그러니 지금은 북한 땅인 청천강 물도 해빙이 되어 흐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땅속에서 위로 물이 오른다. 물이 오르면 윤기가 생겨난다. 모든 생명들이 활기를 띈다. 풀과 나무는 땅속에서 잔뿌리를 내밀어 물을 빨아올리고 위로 올리니 잔가지 끝까지 말랑해진다.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은 기지개를 켜고 사람 역시 심장 박동이 올라가면서 활동이 왕성해진다.

 

 

우수, 하늘과 땅 그리고 생명이 준동하는 날

 

 

이를 두고 모든 생명을 포함해서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것이 준동하다고 하는 것이다. 얼마나 간결한 축약인가! 시적이고 상징적이며 아름답지 않은가! 또 이제 비로소 생명이 꿈틀대고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그들이 새 해를 열어젖힌다.

 

우수는 입춘과 경칩 사이에 놓인 中氣(중기)이다. 오늘은 우수에 대해 얘기하고 있지만 24 절기 모두가 저마다 나름의 심오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한 해의 순환을 나타내는 24절기, 즉 12節氣(절기)와 12中氣(중기)로 나누어 표현하는 이 오래된 방법은 시적이자 상징적이며 그 속엔 물리적 순환만이 아니라 생명 순환의 심오함까지 담아내고 있다.

 

한 해가 순환하는 모습은 60년 순환에 있어서도 고스란히 적용이 된다. 더 길게는 360년 순환에 있어서도 그렇고 그 이상의 기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의 운세가 우수에 이르면 어떤 모습일까? 

 

 

60년 운세 순환에 있어 어떤 이의 현재 때가 우수라고 한다면 어떤 일이 그 사람에게 벌어지고 있을까? 한 번 얘기해보자.

 

그 사람의 현재 겉모습은 지금 우수의 마른 가지처럼 겉보기엔 바싹 말라있을 것이다. 거칠하고 건조한 외양일 것이다. 하지만 우수에 이르러 겉으론 마른 가지일 지라도 만져보면 말랑해지고 있듯이 그 사람 역시 겉으론 전혀 볼품이 없고 대다수 사람들이 외면한다. 즉 전혀 존재감이 없다. 망했으며 앞날이 없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우수로부터 땅 속에서 물이 오르듯 그 볼품없는 사람 역시 서서히 봄날을 준비해가고 있다. 땅속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그 사람 속에선 뭔가 새로운 것이 준비되고 있지만 심지어 본인 스스로도 그런 줄 모르고 그저 절망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주변 사람들도 이미 포기하고 있다.

 

물이 오른다는 것, 사람에 있어선 신체적인 현상도 있지만 정신 즉 멘탈에 있어서도 물이 오른다. 멘탈에 있어 물이 오르는 현상은 사실 고통을 수반한다. 물이 오른다, 즉 생명력이 다시 주입되는 것이기에 고통스럽다.

 

고통이란 것은 사실 살아보자는 몸부림이다. 신체 어느 부위에 상처가 났을 때의 가장 첫 번째 현상이 痛覺(통각)이다. 아프다. 아파야만 우리 몸의 모든 시스템들이 그 상처 부위에 자원을 집중할 것이고 회복시키려 나설 것이기 때문에 통증이 오고 아프다. 아픈 것은 그 부위에 주의를 집중시키라는 우리 몸의 지상명령이다.

 

그렇기에 운세가 우수에 이른 자가 깨어나기 위해 겪어야 하는 대표적인 증세가 통증이다. 신체의 통증도 있겠으나 정신 즉 멘탈의 통증은 스스로 느끼는 비참함, 한심함, 자괴감 같은 것으로 나타난다. 난 왜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하고 自問(자문)하게 된다. 사람은 영리해서 엄살을 부린다, 그 바람에 이렇게 살 바엔 차라리 확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살라고, 문제점을 고쳐서 한 번 다시 잘 살아보라고 통증이 오는 것인데 죽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 자기를 기만하는 것이다. 자기기만!

 

 

이생망의 젊은이들에게 

 

 

우리 젊은이들 사이에서 꽤 오래 전부터 ‘N포세대’란 말이 유행하더니 몇 년 전부터는 ‘이생망’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냉정히 말하면 그게 바로 자기 기만이다. 살고 싶으면 살고 싶다고 해야 하고 잘 살아보고 싶다고 아우성을 쳐야지 왜 이번 생은 망했으니 포기한다고 엄살을 부리는가.

 

엄살은 봐주는 사람이 있을 때 어느 정도 통하는 법이지 계속 하면 통하지 않는다. 적당히 해야 효과가 있다. 장기엄살전략은 상책이 아니다.

 

기득권 기성세대를 무찌르고 쳐부수고 우리들이 새로운 대한민국의 주인이 되어야 겠소 하고 눈을 시퍼렇게 뜨고 부라리며 덤벼들어도 어려운 판국에 ‘이생망’이 무엇이란 말인가.

 

안타깝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지만 정말 속내를 말하자면 엄살 그만 부리고 정신 바짝 차려서 당신들이 숨 쉴 수 있는 세상을 스스로 셀프로 만들어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가진 자와 기득권자들은 절대 그냥 물러가지 않는다. 가진 것을 알아서 내려놓는 자는 소설 속에서나 있지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오랜 세월에 걸쳐 겪은 경험과 노하우도 풍부하다. 눈치도 빠르고 비위도 잘 맞추며 거짓말도 잘 한다. 실전에 강하다.

 

그러니 그냥 싸움에 나설 경우 젊은이들은 판판이 깨지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깨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덤벼들어야 한다.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이란 말이 공연한 말이겠는가.

 

속아도 보고 깨져도 보고 나뒹굴기도 하면서 단련이 된다. 그렇게 하면서도 다시 일어나 도전하는 힘이 젊은이들에게 있기에 後生可畏(후생가외), 즉 부지런히 기량을 갈고닦은 후배는 선배를 능가할 수 있으니 두려운 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국운은 내년 2022년이 大寒(대한)이다. 온 나라 사람들이 줄어드는 파이를 놓고 저마다 차지해 보겠다고 난리통이다. 그런데 젊은이들은 그저 맥 빠지고 김빠진 넋두리를 한다, ‘이생망’이라고.

 

 

우리 국운의 우수를 기다리고 지켜볼 터이니 

 

 

하지만 5년 뒤 2027년이 되면 국운의 雨水(우수)를 맞이한다. 나 호호당은 그 때를 기다리고 있다, 과연 그 때 가서도 젊은이들이 그런 자기기만을 일삼고 있을 것인지 아니면 정말 정신 차리게 될 지.

 

나 호호당의 나이 올 해로서 예순하고도 일곱이다. 갖은 세상의 맛을 두루 씹어도 보고 핥아도 본 묵은 생강이다. 하지만 속내를 한 번 털어놓는다, 정권과 정치인들이 젊은 당신들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그저 그렇게 해 줄 것 같은 ‘척’을 하고 시늉을 낼 뿐이라고.

 

그러니 그냥 넋 놓고 있을 일이 아니란 얘기이다. 또 그렇다고 해서 무슨 혁명을 하라는 것 또한 아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이미 자유민주주의 나라로서의 경험을 제법 오래 해왔으니 조용하고 힘차게 또 지속적으로 당신들의 세상을 만들어 가면 될 일이라 본다. 힘차게 장강의 앞 물결을 밀어내는 뒷 물결이 되라는 얘기이다. 

 

오늘은 雨水(우수), 천지가 준동하는 첫날이다. 그렇기에 우수는 새 생명과 젊음의 첫 날이다. 우리 국운의 우수인 2027년이 되면 당연히 그런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蛇足(사족)으로 한 마디, 우수가 되었으니 집안부터 청소해보자. 주변이 깨끗해지면 정신도 덩달아 맑고 깨끗해진다. 평범하지만 한 해를 알차게 만들어갈 수 있는 秘訣(비결)이다.

새해가 시작되었지만 새해의 윤곽은 아직...

 

 

봄의 시작이자 한 해의 시작인 立春(입춘)이 지났지만 아직 봄은 시작되지 않았고 여전히 겨울이다. 우리가 체감하는 봄은 2월 3일의 입춘으로부터 15일이 지난 2월 18일 雨水(우수)가 되어야 시작된다. 그러니 아직은 겨울의 끝자락이다.

 

다시 얘기지만 새해가 시작되었지만 이번 새해가 어떤 해가 될 것인지 아직은 가늠하기 어렵다. 그냥 좋은 해가 되길 바랄 뿐이다. 새해에 어떤 일이 펼쳐질 것인지를 전망하려면 가장 빨라야 4월 하순의 穀雨(곡우)는 되어야 한다.

 

왜 새해가 되었지만 한 해를 전망할 수 없다는 걸까? 그 이유를 알아보면 그렇게 어렵지 않다.

 

밤 12시 자정이 넘으면 새 날이 시작된다. 하지만 새 날이 되었다고 해서 우리가 그 즉시 활동하진 않는다. 자정 넘긴 시각이면 대다수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져있다. 그러다가 아침에 일어나 밥도 먹고 이런저런 준비를 마친 뒤 일터로 나간다.

 

여기서 잠깐, 일터란 무엇인지를 짚고 넘어가보자.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그냥 싸움터 즉 戰場(전장)이라 보면 정확하다. 우리가 새해가 되고 그 새해를 예상해본다는 것은 새해의 전투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예측해보려는 것과 같다.

 

그런데 새 날의 전망은 일터에 나가봐야만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좋은 하루가 될 것인지 아니면 힘든 하루가 될 것인지는 일터에 나가봐야만 윤곽이 그려진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일터로 나가서 일을 시작하는 시각은 대부분 오전 9시 경이다.

 

한 해의 일도 마찬가지이다. 새 해가 밝았지만 아직은 한밤중과 같다. 4월 하순이 되어야만 하루로 치면 8시 반 정도와 같다. 8시 반 경이면 아직 업무가 시작되진 않았어도 하루의 윤곽을 그려볼 수 있듯이 새해의 일도 4월 하순은 되어야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코로나19에 대한 전망

 

 

뭐니 해도 올 한 해의 가장 큰 궁금증은 코로나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백신이 제대로 들어올 지, 들어온다면 언제쯤일지, 효과는 충분할지, 그리고 그 결과 우리 모두 바라는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지가 가장 궁금하다.

 

앞날을 예측함에 있어 자연순환운명학이란 날카로운 도구를 갖고 있는 나 호호당도 새 해 벽두부터 이렇다 하고 단언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굳이 해본다면 이렇다.

 

팬데믹 선언이 작년 3월 12일 무렵에 있었으니 그로부터 18개월이 경과한 금년 9월 12일 경이면 급기야 변화가 나타나지 않을까 한다. 18은 변화의 수인 까닭이다. 그리고 20개월이 흐른 11월이면 어느 정도 코로나 종식에 대한 희망을 가져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코로나가 사실상 끝이 난거나 다름없다고 볼 수 있는 때는 2년이 흐른 2022년 3월 11일 경은 되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가 지나간 뒤가 어떤 면에선 더 두렵다. 

 

 

그런데 설령 코로나가 끝이 난다 해도 그 이후가 어떤 면에선 더 두렵다. 자영업자들은 사실상 이제 망했거나 거의 거덜이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란 점, 그리고 올 해 중에 상당히 많은 중소기업들이 도산하게 될 것이란 점이다. 그러니 코로나가 종식되어도 경제가 코로나 이전으로 되돌아가긴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무진장 돈을 풀었으니 돈의 가치는 엄청나게 떨어진 마당에 소득은 늘긴 고사하고 줄어들고 있으니 이미 사람들의 실질적인 소비생활 무지막지하게 많이 위축되었으며 빈부 격차는 극도로 벌어진 판국이다. 그런데 그런 흐름이 코로나 이후에 어쩌면 더 본격화될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보복소비가 있을 거란 전망도 있지만 그거야 잠시 반짝이일 것이고 그 이후론 그야말로 시름시름 앓게 될 경제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

 

어쩌면 시름시름 앓는 게 최상일 수도 있겠다. 그게 아니라 그야말로 우리를 포함해서 글로벌 경제가 혼절 상태로 들어갈 가능성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경제 나아가서 글로벌 경제, 이런 얘기는 이쯤으로 접어두고 오늘은 다른 얘기 하나 드린다.

 

 

꿈과 희망, 그리고 비전이란 것은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최근과 같이 어려운 시대엔 꿈과 희망을 가지기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미래에 대한 비전(vision)이 없다는 말도 그렇다.

 

그런데 말이다, 꿈과 희망은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인생을 한 50년 이상 살아본 사람들이라면 알고 있지만 대다수의 삶은 꿈과 희망보다는 현실의 무게를 견디는 것만 해도 바쁘고 힘들다. 부유하게 사는 게 아니라 그냥 평범하게 먹고 사는 것만 해도 대단히 힘들다는 사실, 그렇기에 그렇게 먹고 살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훌륭하다는 점을 중년을 지내보면 절로 알게 된다.

 

가만히 서있으면 뒤처진다. 나름 힘껏 달리고 있어야만 옆 사람과 함께 갈 수 있다. 모두가 힘껏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등속도 운동만으론 앞서가기가 어렵다. 가속을 더 붙일 수 있어야만 주변보다 앞설 수 있는 곳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인 까닭이다. 그렇기에 주변과 함께 가고 있다면 그건 등속도 운동이라 하겠는데 그게 바로 대다수 보통 사람처럼 평범하게 먹고 살고 있는 모습이다.

 

등속도 운동은 꿈과 희망을 동력으로 하지 않는다. 그냥 현실을 견디는 것이 등속도 운동이다. 미래에 대한 비전 또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냥 현실을 견디고 버티는 있는 것만으로도 벅차기 때문이다.

 

 

의욕과 탐욕, 운의 상승과 하강

 

 

또 하나의 얘기를 드린다.

 

갖고 싶은 게 있다고 하자. 그냥 갖고 싶은 게 아니라 정말로 가지고 싶은 것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대상이 현재 서 있는 곳으로부터 첩첩한 산을 무수히 넘어가야만 가질 수 있다고 한다면 그로서 그것을 갖고픈 마음의 진실이 드러난다.

다시 말해서 비용을 치러서라도 가지고 싶은 물건인지 아니면 그렇게 비싼 비용을 치를 것이라면 그건 아니다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앞의 마음을 意慾(의욕)이라 한다. 욕심과 함께 거기에 意志(의지)가 함께 실린 것이다. 뒤의 것을 貪慾(탐욕)이라 한다. 탐하는 욕구만 있을 뿐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치를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의욕과 탐욕, 꿈과 희망, 미래에 대한 비전, 이런 얘기는 나름의 깊은 연관성이 있다.

 

 

정리해보면 이렇다. 

 

 

첫째, 의욕을 가진 자라면 運(운)이 상승하는 사람이다. 반면에 탐욕만 있다면 그건 이제 운이 하강하는 사람이다.

 

둘째, 꿈과 희망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견디고 버티다 보면 그로서 어느 순간 꿈과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꿈과 희망은 所定(소정)의 힘든 과정을 겪은 자만이 가져볼 수 있는 그 무엇이다.

 

셋째,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다고 느끼는 것이 실은 더 일반적이고 정상이다. 마래에 대한 비전은 의욕을 가지고 오랫동안 노력해온 사람만이 어느 순간에 가서 그 빛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한 때 블루오션 전략이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지만 그 블루오션이란 것이 바로 그렇다.

 

꿈과 희망은 역경을 거치다 보면 어느 순간 가지게 되는 것이고 그 상태가 더 지속되면서 의욕을 가지고 발전해가다 보면 마침내 미래의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따라서 의욕을 가지고 노력하는 자만이 어느 때에 이르러 꿈과 희망을 품게 되고 그게 더 이어지면 환한 비전이 그 사람의 망막에 홀연히 비쳐오고 그려진다.

 

오랜 세월 운명에 대해 연구해오다 보니 어느 날 운과 명의 이치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알게 된 사실이 바로 노력하는 것이 운의 상승이고 시쳇말로 거저 먹으려들기 시작하면 운이 맹렬히 하강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상엔 공짜가 없다, 그래서 세상은 사실 공정하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 은행, 일본말로 닛폰 긴코는 가장 멍청한 실책을 저지른 최악의 은행이란 汚名(오명)을 쓰고 있다. 일본의 초장기 불황과 디플레이션을 불러온 주범의 하나로 여겨지는 탓이다.

 

일본의 거품 붕괴가 시작된 것이 1991년부터였으니 나 호호당 역시 그간에 일본의 장기불황이나 일본은행의 실책에 관해 얘기하고 있는 실로 많은 책들과 논문을 접해왔다. 일본인이 반성 조로 쓴 비평도 있었고 영미 학자들이 쓴 책이나 논문, IMF가 발간한 보고서도 있었으며 국내 저자의 책도 여러 권 읽었다.

 

처음엔 그러니까 나 호호당의 40대 시절엔 저자들의 주장이나 지적이 다 맞는 얘기로만 보였다. 일본 은행의 담당자들은 정말 바보였구나! 하면서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내 스스로도 안목이 생기면서 그간에 만난 수많은 저자들의 주장이나 지적이 꼭 맞는 얘기인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많은 저자들의 주장이나 지적을 면밀히 검토하고 음미해보노라면 결국 결과론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결말을 알고 나서 그 원인을 거슬러 살펴보는 작업은 당연히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

 

과거의 일이나 사건에 대해 원인을 알아내고 그로서 향후의 일에 대비하는 것은 인간의 대표적인 지적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미래는 무한히 많은 결말의 가능성에 대해 열려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 저지른 실책을 새기고 더 이상 반복하는 어리석음을 경계한다고 해서 미래의 성공이나 안전을 보장할 순 없다는 얘기이다.

 

한편으로 다시 생각해보면 일본 은행의 담당자들이 당시의 주어진 상황 속에서 멍청한 짓만 한 것은 아니었지 않은가 하는 생각까지도 해보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비호하자는 얘기는 아니고 다만 지금 내리는 어떤 결정이 장차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아니면 역효과를 낼 것인지를 사전에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얘기이다.

 

그렇기에 일본의 초장기 불황을 초래한 것으로 알려지고 전해지고 있는 일본 은행의 거듭된 실책들도 어쩌면 당시로선 최선이었거나 또는 훗날에 가선 적절한 선택이었던 것으로 규명될 가능성도 전혀 없지 않다는 얘기이다. 모든 사건과 상황은 나름 그 고유의 특수성을 가지는 법이어서 일반적인 사건이란 것은 사실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오늘 이 글에서 과거의 얘기를 하고 있는 까닭이 있다.

 

어쩌면 2008년 미국 금융위기로 인해 단행된 미국 연준의 양적완화 정책, 과잉 유동성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더 많은 유동성으로 틀어막은 것, 그리고 작년 코로나19로 인해 실시된 무지막지한 연준의 양적완화 조치야말로 당사국인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 경제를 나락으로 이끌어가게 될 최악의 조치가 될 가능성이 충분히 엿보이기 때문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이 달러를 무제한으로 찍어내면서 당장의 극심한 불경기나 극도의 디플레이션을 막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겠으나 장차 치러야할 代價(대가) 또한 무지막지하게 커져버리고 있다.

 

첫 번째 대가로서 양적완화를 통해 빈부 차이가 이제 더 이상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미국은 당연히 그렇고 그 여파는 우리에게도 미치고 있다.

 

두 번째 대가로서 결국 언젠가 금리를 정상화하고 그간에 풀린 돈을 회수해야 하는 날이 올 터인데 그게 현실화되는 순간 미국과 아울러 글로벌 전체가 거의 昏絶(혼절) 내지는 假死(가사)에 이르게 된다는 점이다.

 

먼 나라 미국이 아니라 우리 얘기를 해보자. 우리나라 역시 일종의 準(준)양적완화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 11월 광의의 통화인 M2가 2901조였는데 작년 2020년 11월엔 3178조를 넘었다. 만 1년 사이에 통화량이 약 9.6% 증가했다. 그런데 작년 우리나라 GDP는 마이너스 1%였다. 그러니 돈의 가치가 10% 이상 하락한 셈이다.

 

가령 은행에 100만원을 정기예금이나 적금으로 1년 동안 들고 있었다면 1.2% 정도의 이자를 받는다 해도 그 사이에 10% 이상 손해를 봐서 90만원으로 줄었다고 보면 된다.

 

(참고로 좀 더 얘기하면 2012년의 M2는 1799조였는데 작년 말 3178조가 되었으니 그 사이에 시중 통화는 77%나 늘어났다. 평균소득인 GDP는 8년 사이에 다 합쳐서 20% 정도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돈의 가치는 57% 정도 떨어졌다.)

 

정부는 올 해에도 4차 재난지원금이란 명목으로 돈을 시중에 또 풀 것이라 한다. 그러면 시중 유동성은 더 늘어나고 그와 비례해서 돈의 가치는 더 떨어질 것이다. 물론 한 치 앞이 급한 사람은 고마운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실은 그게 받아도 받는 게 아닌 거라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그 결과 불어난 돈이 어디로 가는가? 하면 결국 자산시장, 부동산 아니면 증시이다. 그래서 전 국민이 미친 듯이 증시에 뛰어들고 있다. 열심히 사서 올리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가장 재미를 보는 것은 이미 예전에 주식을 가지고 있는 자들, 즉 기업의 대주주들과 외국인 투자자들이다.

 

일례로서 외국인투자자들의 경우 삼성전자 주식의 55%이상을 2003년에서 2006년에 걸쳐 평균 가격 6,600원 정도에 사들였다. 그런데 지금 삼성전자의 주가는 어제 장 마감 가격이 84,400원이었다. 그 사이에 대략 13배 정도 수익을 올렸고 또 배당도 가져갔다.

 

좀 더 실감나게 얘기해보자. 84,400원 가격에서 시가 총액이 504조원이 되었으니 6,600원 할 당시의 시총은 40조원이 미처 되지 않았다. 그 사이에 464조가 불어났는데 그 중 55%를 외국인투자자들이 차지하고 있으니 그들은 그 사이에 255조의 평가익을 보고 있는 셈이다.

 

불어난 시중 유동성이 갈 곳은 오로지 부동산과 증시가 거의 전부인 마당에 정부와 한국은행이 돈을 계속 찍고 또 국채발행을 통해 부어대고 있다. 돈의 가치는 그와 반비례로 떨어지고 자산을 가진 자들의 재산은 날로 불어나고 있다. 이거야말로 부익부 빈익빈에 있어 최악의 사례가 아니면 달리 무엇일까?

 

힘을 가진 노조는 아우성을 치면서 그런대로 급여를 인상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장인들은 잘리지 않으면 다행이다 싶어서 감히 월급을 올려달라는 말은 뻥긋 하기도 어렵다. 그냥 월급이 일 년에 10% 이상 감봉되고 있는 셈이다. 자영업자들의 처지야 아예 논외로 친다.

 

그런가 하면 집을 가진 자는 집값이 올라서 희희락락이고 전세나 월세에 사는 이들은 그냥 앉은 채 빈곤해지고 있다.

이러니 우리 사회 역시 맹렬한 속도로 빈부의 격차가 더더욱 커져가고 있다.

 

이게 바로 미국 연준의 양적완화로부터 시작된 현상이고 그 결말의 하나이다. 이미 앞에서 말한 첫 번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음이다.

 

두 번째 대가, 장차 치러야 할 대가는 금리 인상으로 인한 것이다. 주가나 집값은 폭락할 것이다. 피할 도리가 없다. 주식을 많이 가진 자들 역시 손해를 많이 보겠지만 미리 감을 잡고 팔면서 손해를 줄일 능력이 있는 자들이다.

 

하지만 증시가 오르는 사이에 부지런히 돈을 가져다 넣은 자들은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주식 부자들은 이미 예전에 주식을 사놓았기 때문에 주가가 내리면 그냥 좋았다 말았네 하면 되겠지만 지금 주식을 비싸게 사주고 있는 개미들은 증시가 하락하면 그 손해를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다.

 

‘영끌’로 집을 산 젊은이들, 대출을 많이 받아서 막차를 찬 젊은이들은 당장이야 가격이 더 오르니 좋아 하다가 금리 인상이 시작되면 집값이 속절없이 내려서 자칫 대출금보다 더 적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우리만 그렇게 되진 않을 것이다. 장본인인 미국 역시 극심한 불경기와 자산 가치 하락으로 인한 디플레이션을 피할 수 없다.

 

지금 연준의 파월 의장과 옐런 재무장관은 자신의 임기 중에 금리를 올려야 하는 일만큼은 없기를 바라면서 재정투입을 늘리고 통화를 늘려가고 있다. 악역은 뒷사람의 몫이겠지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모른다. 경제가 살아나면 금리를 인상하면 다시 죽을 것이고 살아나지 않으면 빈부 격차는 무한대로 확장이 된다. 그리고 결국 금리를 정상화해야 할 것이다. 그게 언제인진 모르지만 말이다.

 

나중에 보면 역대급 바보짓을 저질렀다고 알려진 일본 은행의 그것보다 미국 연준의 바보짓이야말로 수퍼 역대급 실책인 것으로 귀결이 날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래서 오늘 글을 썼다. 어떻게 될 지 결말이야 현 시점에서 아무도 모른다. 다만 가까운 미래는 그야말로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만 얘기해둔다.

전국을 뒤덮은 증시 열풍

 

 

오랜만에 먼 지방의 山寺(산사)에 다녀왔다. 겨울인데도 비가 내려 그 정취가 각별했다.

 

지팡이를 하나 살 요량으로 경내 매점에 들렀다. 나이가 좀 되어 보이는 주인 아주머니와 절 아래 마을 사람으로 보이는 두 분이 주식 얘기를 한창 나누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삼성전자를 산 모양이고 아저씨는 다른 것을 샀다가 재미를 보지 못했다는 얘기였다.

 

증시 바람이 깊은 산중 古刹(고찰)의 일주문을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이거 이러다가 절 종무소 보살님은 물론이고 주지 스님까지 주식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거 정말 큰일이다.

 

전 국민이 주식에 혼이 나갔구나 싶다. 늙은이 젊은이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죄다 증시에 돈을 쏟아 붓고 있다. 부동산과 달리 증시는 돈 백만 있어도 할 수 있으니 그렇다.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우량 주식을 사서 몇 년간 푹 묻어두면 돈이 된다고 부추긴다.

 

출구가 없는 젊은이들은 증시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고 평생 벌어도 아파트 한 채 마련하기 어려운 30대들 또한 주식에 인생을 걸었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40대는 빨리 벌어서 은퇴하고 인생을 즐길 요량으로 건곤일척의 승부수를 던졌고 50대는 최후의 수단으로 증시에 목숨을 걸고 있다. 은퇴한 60대는 노후가 걱정되니 역시 증시에 돈을 넣었다.

 

 

서툴기만 한 신규 개미들

 

 

그런데 보기에 너무 서툴고 못 한다 싶은 대목이 느껴진다. 특히 삼성전자만큼은 죄다 사들고 있다는 점이다. 필수지참 주식이자 국민주로서의 삼성전자가 된 셈이다.

 

안타까운 것은 삼성전자야말로 들고 있으면 돈이 되기가 정말 어렵다는 점이다.

 

주식을 살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은 단 두 가지밖에 없다. 먼저는 장차 실적이 좋아질 기업의 주식을 사야한다는 점이고 다음으론 앞으로 사고자 하는 사람이 많은 주식이 오른다는 점이다.

 

정리하면 실적 전망과 잠재 매수 여력이다.

 

그런데 증시에 뛰어든 모든 국내 개미들이 삼성전자를 샀다는 점이다. 이제 어떤 이들이 삼성전자를 사줄까? 샀던 사람들이 앞으로도 계속 줄기차게 사줄까? 생각하면 그러긴 어려울 것 같다.

 

국내 개인투자자들은 거의 대충 다 샀으니 더 사줄 것 같진 않다. 남은 것은 기관과 외국인투자자들인데 기관은 개인들의 환매 요청 때문에 주식을 살 여력이 없다. 남은 것은 외국인 투자자들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삼성전자 주식을 왕창 그리고 꾸준히 매수해야만 삼성전자 주가가 오를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모든 개미들이 삼성전자를 사놓고 오르기만을 기대하고 고대하는 판국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아, 이제부터 우리가 사서 전폭적으로 올려드리겠습니다, 하고 순진하게 놀아주겠느냐는 얘기이다.

 

 

외국인투자자들은 당분간 삼성전자를 사주지 않을 것이다. 

 

 

판세를 빤히 다 읽고 있는 외국인 투자자들이다. 속으론 삼성전자를 사고 싶어도 당분간은 절대 사주지 않는다. 국내 개미들이 잔뜩 사서 가격도 잔뜩 오른 삼성전자를 이제 와서 더 비싸게 사들인다? 어림없는 소리. 그러면 선수(?)가 아니다.

 

삼성전자가 정말 우량 주식인 것은 맞다. 그 바람에 삼성전자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절대 비중을 보유하고 있다. 작년 2020년 2월 12일자 외국인 보유비중은 57.05% 였고 금년 1월 29일자로 그 비중은 55.06%이다. 1년 사이에 2% 정도를 줄였다.

 

그 좋은 삼성전자를 외국인투자자들은 무슨 까닭으로 팔아서 줄였을까?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가격이 하도 많이 오르고 잘 오르는 것을 보고 신나서 팔았다. 팔면서 이익을 왕창 챙겼다. 2% 정도만 팔았지만 매도로 인한 수익은 실로 엄청나다.

 

작년 1월 말 삼성전자 주식의 시가총액은 339조였는데 금년 초 주가가 9만원 할 때의 시가총액은 536조였다. 1년 사이에 200조가 늘었으니 외국인 투자자들이 삼성전자 주식 2%를 팔아서 현금으로 챙긴 수익은 대략 8조 원 이상이란 계산이 나온다.

 

 

외국인들에게 8조원을 헌납하고 있는 개미들

 

 

이 8조 원의 돈은 그렇다면 누가 지불했을까? 하면 그건 바로 국내 개미들이 사들이면서 지불했다고 보면 된다.

주식이란 것은 사서 올랐다 해도 팔지 않았다면 그건 평가이익에 불과하다. 살 때 지불한 금액과 나중에 팔아서 돌려받는 금액이 더 클 때만이 정말 이익을 본 것이 된다.

 

그 좋은 삼성전자이건만 무슨 이유로 외국인 투자자들은 더 사지 않고 오히려 팔았을까를 생각해보란 얘기이다. 외국인들이 팔았다 해도 겨우 2%에 불과하다, 그것을 팔아먹은 자들은 주식을 잘 모르는 몰지각한 외국인투자자들이라 치자. 앞으로 외국인투자자들이 더 사주면 되는 일 아니겠는가.

 

다시 하는 얘기지만 외국인투자자들은 당분간 삼성전자 주식을 사주지 않는다. 가지고 있는 삼성전자 주식을 조금 더 팔아서 가격을 대폭 깎을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 당연하다.

 

아마도 상승을 시작한 6만원선까지, 그게 무리라 한다면 최소한 7만원선까지 가격을 낮춘 다음에 가서 슬슬 사볼 생각을 하고 있을 외국인투자자들일 것이다. 상대방의 패를 다 읽었으니 전혀 서둘 필요가 없는 외국인투자자들인 것이다.

 

그 결과 특히 작년 12월 초부터 삼성전자를 사들인 개미들은 상당한 평가손을 감내해야 할 것이고 하락세에 겁이 나서 팔면 현실적인 손해를 봐야 할 것이다.

 

그럴 경우 삼성전자 사두면 돈 된다고 떠들던 전문가님들은 입을 싹 씻거나 또는 무조건 버티라고 충고해줄 것이다.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습니다! 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삼성전자가 오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외국인투자자들이 사주지 않아도 개미들이 앞으로도 무작정 무진장 삼성전자를 사주면 오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뭐든 흐름이 있고 때가 있기에 개미들이 무한정 개미지옥을 향해 돌진하진 않을 것이라 본다.

 

 

우리 증시는 오르면 내리고 내리면 오르는 왔다리 갔다리 체질이다. 

 

 

말머리를 조금 돌려본다.

 

우리 증시는 미국 증시와 다르다.

 

미국 증시는 연금 펀드에서 끊임없이 사들인다는 점, 그리고 아예 연준이 나서서 돈을 풀어서 증시를 떠받친다는 점 등으로 해서 시간을 두고 꾸준히 상승한다. 인플레이션 효과가 확실히 존재하는 증시이다.

 

하지만 우리 증시는 전혀 다르다, 글로벌 경기 동향, 즉 수출 동향을 따라가는 것이 우리 증시이다. (내수는 이미 돌아가신지 오래이니 언급할 가치가 없다.) 그렇기에 우리 증시는 전형적인 ‘경기순환형’ 증시이다. 글로벌 경기순환.

 

그런데 현재 증시의 지수를 보면 이미 실물경제와 상당한 괴리가 발생해있다. 이 점에 대해 엉터리 전문가들은 이제 우리 증시도 선진국형 프리미엄을 받아도 된다고 너스레를 떨고 있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현재 우리 증시는 이미 상당한 버블 상태라고 봐도 절대 무방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장 지금부터 내릴 것이란 얘기는 결코 아니다. 기세란 것이 있어서 기왕에 많이 오른 상태라 해도 더 오를 수가 있고 아주 많이 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전 국민이 개미가 되어 주식을 사고 있는 한 외국인투자자들이 순순하게 수익을 먹여줄 까닭이 없다는 점 또한 알아야 하겠다. 증시란 것은 결국 제로섬 게임, 줄여서 일종의 게임이기 때문이다.

 

이제 이 글에서 하고자 하는 마지막 얘기를 해보자.

 

 

결국 대다수가 돈을 잃게 될 것이니 큰 일이다.  

 

 

그건 앞에서 얘기했듯이 큰일이 났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장차 전 국민, 전 개미들이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될 것이 명백하다. 우리 증시는 글로벌 경기순환형 증시이기에 미국처럼 꾸준히 오르는 것이 아니라 많이 오르면 많이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 시기가 내년일지 아니면 내후년일지 그건 모르겠으나 많이 오르면 많이 내리게 되는 우리 증시의 체질은 변함이 없다. 그러니 직장인들은 물론이고 20-30대 영끌 빚투의 젊은이들, 나아가서 산사 경내의 매점 아주머니나 인근 농부 아저씨의 쌈짓돈도 왕창 날아갈 것이다.

 

올해 경기가 기대만큼 살아나지 않아도 증시는 내릴 것이고 미국 연준이 언젠가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폭락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어쨌거나 우리 증시는 미국 증시와는 달라서 오르면 내린다. 거품 위에 거품을 쌓다 보면 나중에 내려도 너무 심하게 내릴 것이다.

 

그 때 가서 빠져나오면 될 게 아니냐? 하겠지만 그게 또한 쉽지가 않다.

 

증시는 도박과 그 성질이 정확하게 똑 같기 때문이다. 도박 중독에 한 번 빠지면 정말 빠져나오기 힘들듯이 증시 또한 한 번 맛을 들이면 그만 두기가 너무나도 어렵기에 결국 손해를 잔뜩 보고 나서야 털고 나올 수 있다.

 

그나마 털고 나오면 다행이라 하겠고 계속 잃으면서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도박이기에 그렇다.

 

증시는 나름 선수라 할 수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장기간 하다 보면 본전을 유지하거나 또는 벌게 되는 곳이다.

 

나 호호당은 주식 좀 할 줄 안다. 1983년부터 했으니 경력이 38년이다. 그 사이에 계산해보면 조금은 남는 장사를 했다. 한 때 정말 많이 벌기도 했지만 나중에 다시 반납한 탓에 조금 남겼다.

 

 

호호당의 주식에 대한 기본 투자 방법

 

 

참고하시라고 나 호호당의 주식에 대한 기본 전략을 밝히면서 글을 마무리한다.

 

원금이 1000만원이면 500만원 이상 절대 주식을 사지 않는다. 500만원은 그냥 놀린다. 하지만 언젠가 예기치 않게 상상 이상의 대폭락장이 연출된다. 그러면 어느 순간 이를 악물고 예비군으로 있던 500만원을 전부 과감하게 투입한다. 그러면 순식간에 본전은 물론이고 그 이상의 수익을 올린다. 물론 아닐 경우도 있다. 더 내릴 수도 있다, 그러면 다 날린 셈치고 ‘존버’한다. 신용매수? 그거야말로 죽음의 길이다.

 

그리고 주식을 하다 보면 사고 파는 맛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30만원 정도는 급등주에 들어가서 앗싸, 하면서 즐기기도 하고 파라락- 내리면 에잇, 망했네 하면서 손절하기도 한다. 스트레스 해소용이고 도박 놀음이다. 그런 맛도 있어야지 주식하지 늘 냉철하게 주식하는 것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돈 버는 것, 특히 주식으로 돈 버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다. 제로섬인 탓이다.

 

꽤 오랫동안 글을 올리지 않았다. 1월 丑(축)월엔 생각이 많기 때문이다. 무수히 많은 생각과 상념들이 떠오르고 다시 내린다. 축월은 원래 안개 속과 같은 달이기에 생각도 그렇다. 다시 힘을 내어보고자 한다.

오래 전 전망이 현실이 되고 있으니 

 

 

7년 전인 2014년 4월 2일자 프리스타일에 고용의 바닥이란 글을 올린 바 있다. (호호당 제1166호)) 그리고 다시 5년 전인 2016년 9월 19일자로 “고용, 교육 그리고 아파트”란 글을 올리기도 했다. (제1502호).

 

호호당 티스토리 독자들 중에 그 글을 보고 싶으신 분들은 기존의 블로그에 가서 보시면 되겠다. (www.hohodang.com)

글에서 (우리나라) 고용은 2022년이 되면 바닥을 칠 것이라고 전망을 적고 있다.

 

 

거세게 불어닥치고 있는 고용 한파

 

 

세월이 흘러 어언 당시의 전망이 거의 굳어져가고 있다. 뉴스에 보니 취업자 수가 1998년 외환위기 이래 22년 만에 가장 큰 감소폭을 보였다고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실업자 수도 증가했다 한다. 주 36시간 이상 취업자 수는 120만 3000명(5.6%) 줄어든 반면, 36시간 미만 취업자는 55만 4000명(10.3%) 늘었다고 하니 질적인 면에선 더욱 나빠진 셈이다.

 

물론 코로나19로 인한 악영향이 크다. 그런데 그렇다면 올 하반기에 가서 코로나 유행이 마무리되면 고용 사정이 좋아질까? 다시 말해서 코로나19만 종식되면 예전의 좋았던 일상으로 되돌아가고 고용 사정도 크게 호전될 수 있을까 하는 얘기이다.

 

 

코로나19가 지나가도 사정은 크게 호전되긴 어려워서

 

 

코로나19가 끝나면 2020년에 비해 당연히 경기가 좋아지긴 하겠으나 그건 기저효과로 인한 잠시의 반등에 그칠 공산이 크다. 그 이후혼 내수가 활성화되긴 어렵다고 보는데 그 이유는 부채 부담이 지나치게 커져버렸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더욱 깊어졌다. 무엇보다도 취업인구의 1/4 이상을 차지하는 자영업자들은 그간의 손실을 복구하긴 힘들 것이다. 폐업을 하지 않았다 해도 그간에 빚만 엄청나게 늘어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계부채도 최근 자료를 보면 작년 3분기 통계로 이미 우리나라 GDP 규모를 넘어서 버렸다. 이는 작년 부동산 폭등으로 인한 영향과 아울러 빚을 내어 주식에 투자하는 ‘빚투’의 영향도 크다.

 

가계 부채는 빠르게 늘었으나 가처분소득은 1년 동안 겨우 0.3% 늘어났기에 가계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사상 최고치인 171.3%에 이르렀다. (지금처럼 초저금리 상황에서도 가계의 경우 수입의 20% 정도가 원리금 상환에 들어가고 있다.)

 

기업 부채 역시 1년 사이에 GDP 대비 101.1%에서 111.1%로 급증했다. 부채를 늘려 생산적인 방면에 투자를 했다기보다는 좀비기업들이 대폭 늘어나면서 생존을 위해 빚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뉴스에 보면 작년 3/4분기 가계와 기업 부채를 합치 액수가 전년 동기 대비 16.6% 포인트 급등한 211.2%라고 한다.

그런 까닭에 코로나19가 끝나면 잠시 경기가 살아나긴 하겠으나 그 이후론 경기가 살아날 가능성은 더욱 적어지고 말았다. 부채 상환 부담으로 인해 소비여력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시름시름 앓는 정도일 것이고 만일 미국 연준이 금리 인상을 시작하면 그야말로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 속에 빠져들 가능성이 큰 우리 경제라 하겠다. 증시 폭락, 부동산 폭락, 그로 인한 본격적인 구조조정의 시작. 말을 꺼내기도 싫다.

 

정부가 재정투입을 늘려서 경기를 유지하는 것 역시 나름의 한계가 있다. 국가부채가 GDP의 50%를 넘어서면 주요통화권, 즉 달러나 유로, 엔화가 아니라 원화를 사용하는 우리나라이기에 국가신용등급에 악영향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양질의 일자리는 더더욱 기대난

 

 

최근 증시 상승이 대단하다. 증시에 상장된 우리나라 일류 대기업들의 활약이 나름 대단하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대기업들이 채용을 늘리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보지만 그게 어렵다.

 

우리 대기업들은 투자할 돈도 있고 기술도 있다. 실적도 나쁘지 않다. 작년 코로나19의 와중에도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 대기업이 고용하고 있는 인원은 전체 취업자 수에 비해 대단히 적다는 점이다. 투자를 해도 장비와 플랜트에 투자를 하고 고급 인력에 투자를 할지언정 신입 사원을 무턱대고 늘리진 않는다.

 

그러니 코로나19가 끝나도 고용 사정은 좋아질 것 같지 않다. 취업자의 대부분이 자영업자와 좀비기업 비중이 무려 50%나 달하는 중소기업에 속하기 때문에 양질의 일자리 증가는 그야말로 기대하기 어렵다.

 

 

최악을 향해 치닫는 교육 일자리

 

 

일자리와 관련해서 또 한 가지 지나칠 수 없는 분야가 교육이다. 교육 부문 역시 그간에 많은 일자리를 차지해왔기에 그렇다. 그런데 이 부문 역시 최악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부채 부담으로 인해 소비여력이 떨어진다고 했는데, 그렇게 되면 대거 감축될 분야가 바로 교육비 지출인 까닭이다. 학원비 지출이 줄면 학원이 줄 것이고 학원 강사들이 줄 것이다. 사교육 분야 역시 극심한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다, 특히 작년 코로나19로 인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학원들은 이제 또 다시 학원 영업을 재개하기도 어렵다.

 

아울러 지방대학의 구조조정이 코로나19가 가시고 나면 그야말로 본격화될 것이다.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 숫자가 근본적으로 줄고 있고 대학을 나온다 한들 이미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누차 확인했기 때문이다. 지방대학의 정시 경쟁률이 대거 하락하고 있다는 뉴스가 바로 그 점을 알리고 있지 않은가.

 

전체적으로 교육비 지출의 감축이 예상되고 있다. 그러니 그간 많은 취업과 고용을 맡고 있던 교육 분야의 일자리 또한 줄어들 것이다.

 

그러니 내후년 2022년 무렵이 고용의 바닥점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본다.

 

 

청년 고용, 가장 취약한 분야

 

 

가장 암울한 쪽은 청년 취업이다. 1989-1998년 사이에 태어난 청년 세대가 고용 충격을 가장 집중적으로 받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을 막 졸업하고 사회 초년생 신분이어야 할 25~29세 취업자 수 감소폭이 전체 취업 감소분의 60%를 넘게 차지한다고 한다. 게다가 남녀의 성별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전체적으로 취업했다 해도 상당수가 알바나 비정규직이니 젊은 청년층의 취업은 이미 최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황이 이렇다는 얘기, 즉 1989-1998년 사이에 태어난 청년층들의 취업이 양적으로 질적으로 열악하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사회 출발에서부터 경력과 능력 계발에 있어 본인의 능력이나 의도와는 상관없이 결정적인 핸디캡을 안고 시작하게 됨을 의미한다.

 

출발이 그렇다면 그들의 경우 향후로도 소득이 높아질 가능성이 적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고 자연히 세대별 양극화를 더욱 심화하게 될 것이다. 더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세대가 목하 마구 늘어나고 있는 국가부채의 부담을 장차 떠안게 된다는 점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모순인가!

 

 

한계에 봉착한 각개돌파의 몸부림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이나 영국 등으로 유학을 가면 현지의 좋은 직장에 들어가거나 국내에 돌아와도 좋은 직장에 들어갈 거란 희망이 많았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완전히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최근에는 미국이나 영국이 아니라 일본이나 싱가폴로도 유학을 많이 간다. 영미권 유학에 비해 현지 취업률이 좋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100% 취업보장과 같은 선전은 절대 현실이 아니다. 현실은 절대 만만치가 않다.

 

유학과 더불어 한동안은 대학원 진학도 상당히 많았지만 오늘에 이르러 그 또한 상황은 더욱 나빠지고 말았다. 수도권 대학 출신 청년들의 취업 사정이 극도로 악화되면서 지방대학 출신은 더 이상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인공지능(AI)가 장차 일자리를 더 많이 앗아갈 거란 얘기, 그게 어느 정도 정말 그렇게 될 것인지 현재로선 모르겠지만 심리적으로 젊은 층들에게 엄청난 압박이 되고 있다. 안 그래도 어려운 판국에 기를 팍팍 꺾어놓고 있다.

 

 

허망했던 정권과 정책 차원의 노력

 

 

정권 차원에서 그간 일자리 문제에 대한 노력이 없었던 것 아니다. 문제는 모두 실패했고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권 시절, 2010년대 초반 한 때 잡 쉐어링, 우리말로 일자리 나누기가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그게 될 일이 아니었다. 기득권 노조가 강고하게 거부하는 현실에서 그런 아이디어는 그저 한 때 꿔본 꿈에 불과하다. 박근혜 정부 역시 노동시장 유연화를 시도했다가 노조의 강력한 반발로 실패했다.

 

노조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는 문재인 정부는 초기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시범 케이스였던 인천공항공사 사태를 기점으로 잠잠해지고 말았다. 될 일이 아니었기에 그렇다.

 

 

2022년이 지나면 다소 나아지겠지만

 

 

그렇기에 2022년이 고용의 바닥이란 오래된 나 호호당의 전망은 고스란히 현실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이후론 바닥을 치고 돌아설까? 하는 질문도 제기된다.

 

다소 사정이 나아질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그 이유가 많이 초라하다. 경제사정이 좋아지고 경기가 살아나서가 아니라 청년층의 공급 자체가 줄어들고 있고 강성 노조를 구성하고 있는 그 사람들이 은퇴하면서 그나마 숨통이 트이게 될 거란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글은 참으로 쓰기가 힘들었다. 겨우 마무리한다. 지친다. 

양적완화, 역사상 최악의 금융정책실패

 

 

위에 2008년 미국 금융위기 당시 연준(Fed)이 단행한 제1차 양적완화로 시작되고 금년 팬데믹으로 인해 단행된 무제한 양적완화 조치는 멀지 않은 미래에 가서 금융사상 가장 거대한 실패로 여겨질 공산이 크다. 뿐만 아니라 두고두고 연준이 저지른 최악의 실패 사례로 기록될 것이라 본다.

 

양적완화를 하지 않았더라면 당연히 미국을 포함해서 글로벌 전체 경제가 막대한 손상을 입고 엄청난 디플레이션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적완화와 같은 이상한 조치는 하지 않았어야 한다고 본다. 그 득실을 따질 때 부작용과 폐단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는 거품이 지나쳤기에 발생했다. 그런데 거품을 소멸시키는 수순을 밟지 않고 오히려 더 큰 거품을 만들어냄으로써 막은 것이 양적완화였기 때문이다.

 

 

붕괴 외에는 출구가 없다

 

 

그 바람에 오늘에 이르러 미국을 포함해서 전 글로벌 경제는 정상적인 출구를 상실해버리고 말았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더 큰 거품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즉각적으로 파국이 오는 구조인 것이다. 돌려막기를 하면서 이자가 더 발생하고 그러면 더 큰 액수로 돌려막아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따라서 양적완화는 전 세계 경제를 마치 마약중독자로 만들어 놓은 셈이다. 특히 작년 코로나 팬데믹이 닥쳤을 때 연준이 취한 무제한 양적완화는 마약을 중독자의 옆자리에 상시 비치해 놓은 것과 같은 상황이다.

 

 

돌이킬 수 없는 양극화

 

 

양적완화는 또 다른 부작용을 만들어내었으니 빈부 격차를 극단적으로 확대해 버렸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경우 1990년부터 시작된 양극화는 양적완화가 결정적인 계기를 통해 그 이후론 더 이상 되돌릴 수 없을 정도의 소득과 부의 양극화가 발생하고 고착되어 버렸다.

 

미국의 경우 소득이나 재산 등에서 상위 10%의 가구가 주식의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양적완화 바람에 거품 증시가 무너지지 않고 거꾸로 더 엄청나게 상승하면서 그들의 부가 더욱 더 커져버렸기 때문이다. 특히 상위 1%의 재산은 무지막지하게 커져버리고 말았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직전 금융시장에 거품이 잔뜩 끼었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나스닥은 4.6배로 올랐고 S&P 500 지수는 2.4배가 되었다. 거품 위에 더 큰 거품을 얹은 셈이다. 거품은 소멸되어야 하건만 말이다.

 

그런 까닭에 주식을 가진 상위 10% 특히 1%의 부는 더욱 늘어나버렸고 상대적으로 주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들은 자산 면에서 더욱 쪼그라들었고 일자리 역시 어려워지면서 소득 역시 더욱 줄어들었다. 이로서 유례없는 양극화가 발생해버린 미국이다.

 

그런 면에서 양적완화는 미국의 상위 10%에게만 유리한 조치였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어려워도 정도를 걸었어야 했는데

 

 

반대로 양적완화를 하지 않았으면 미국은 물론이고 글로벌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겠으나 그 과정에서 소득과 부의 양극화는 지금보다야 훨씬 덜 했을 것이고 더불어 글로벌 경제도 비록 길고 긴 고통의 과정을 거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정상 회복될 수 있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10-12년에 걸치는 부채 사이클, 즉 통화의 사이클이 정상적으로 작동될 수 있었을 것이고 호경기에 이어 불경기가 번갈아드는 정상적인 경제 순환 과정을 밟을 수 있었을 거란 얘기이다.

 

 

연준의 안일한 기대

 

 

현재 미국 연준은 지금의 엄청난 자산 버블을 이어가다 보면 언젠가 실물경제와 금융 간의 적절한 균형점에 도달하지 않겠느냐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연준이 금리 조절과 통화 공급 조절을 통해 경제 전체를 통제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그렇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그건 어림도 없는 얘기, 거의 오만에 가까운 발상이라 본다. 그게 아니면 당장 방법이 없으니 일단 막고 보겠다는 糊塗(호도)책에 불과하다.

 

 

증시 안에서도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있으니 

 

 

미국의 경우 예전에 좋은 일자리를 창출해주던 대표기업들을 500개 모아서 만든 지수가 S&P500이다. 그런데 현재 그 기업들은 더 이상 이윤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저 유동성에 힘입어 지수가 오르고 있을 뿐이다.

 

반면 기술주를 모아놓은 것이 나스닥을 중심으로 몇 개 기업들만 오르고 있다. 페이스북과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와 구글, 여기에 마이크로소프트와 테슬라, 이렇게 겨우 7개의 기업이 지수 상승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쏠림 현상, 주식 시장 안에서의 양극화와 차별화만 극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 바람에 바이든이 빅 테크 기업들을 견제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그게 그리 쉬울 것 같진 않다.)

 

 

우리 역시 심각하다

 

 

우리나라 역시 양적완화로 인한 폐해가 상당하다. 부동산과 증시가 바로 그렇다. 부동산의 경우 문재인 정부 출범부터 아파트 공급을 줄이는 계산착오에 더하여 규제책인 임대차3법 등이 부작용을 발생시키면서 문제가 심각해지긴 했지만 그 바탕에는 막대한 유동성이 놓여 있다.

 

증시 역시 그렇다.

 

사실 우리나라의 경제 체력 상으로 볼 때 코스피는 1950 포인트, 코스닥은 765 포인트가 정상 상태에서 상승의 한계였다고 본다. 그러나 지난 주 1월 8일자로 코스피는 3152, 코스닥은 987 포인트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니 코스피의 경우 60 % 정도, 코스닥은 30% 정도의 거품이 끼어있다는 것이 나 호호당의 관점이다. 부동산의 경우 정확한 통계를 몰라서 그렇지만 그 역시 30-40% 정도의 추가 거품이 발생해 있다고 추산한다.

 

이렇게 된 이유 역시 한은의 유동성 초과 공급 그리고 정부의 재정 투입이 원인이다. 당장 어려우니 살리고 봐야 한다는 것이지만 결국 경제를 비정상으로 이끌어가는 부작용은 피할 길이 없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증시의 경우 미국보다 거품이 적은 편이란 점이다. 하지만 부동산의 경우 그간에 자산보유와 증식에 있어 증시보다는 부동산 쪽에 주로 치중되어 왔다는 점에서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지속적으로 거품이 커져왔고 따라서 장차 소멸될 경우 그 충격은 실로 감당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지금 미국 연준이 하는 행동은 개인으로 비유하면 빚을 내어 부동산을 사고 그 부동산을 담보로 다시 빚을 내어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를 하는 식의 과정을 무한정 되풀이하겠다는 것과 같다. 그러니 무리라고 본다. 무제한 돈을 찍어서라도 가격을 받쳐 줄 터이니 계속 주식을 사고 부동산 갭투자를 하시오 하는 것이니 말이다.

 

 

결국 거대한 하락조정으로 막을 내릴 것이니 

 

 

따라서 미 연준의 의도대로 상황이 흘러갈 확률은 대단히 낮다고 본다. 결국충격적인 조정 혹은 파국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확률적으로도 그렇고 나아가서 더 정상적이고 자연스럽다고 본다. 그 시점을 언제라고 단정 짓긴 어렵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다지 먼 미래가 될 것 같지도 않다.

 

이 대목에서 얘기할 것은 최근 새롭게 증시에 뛰어든 젊은이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점이다. 현 상황에서 주식을 하지 않는 것은 너무 두려운 얘기, 그 바람에 하게 되는 ‘패닉 바잉’이다. 이왕 하는 것을 말릴 생각은 없다. 다만 어느 시점에선 빠져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그냥 그 속에서 머물다 보면 어느새 도박의 맛에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도박의 무서운 점

 

 

증시나 부동산 투자나 본질은 도박이기에 한 번 맛을 들이면 처음엔 재미를 보다가도 대다수의 경우 결국 다 털리고 끝난다. 그래서 도박이다. 그런데 문제는 도박에 한 번 맛을 들였다가 손을 씻고 나오는 게 대단히 어렵다.

 

그렇다고 참기 힘들어도 아예 손을 대지 말라는 말 또한 하기 어렵다. 기회가 눈앞에 와 있는데 외면하라는 말이 되니 말이다. 부동산 특히 변동성이 심한 주식이 무서운 것은 내리는 것도 무섭지만 오르는 것도 실은 무섭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자료 하나 소개한다.

 

작년 3월, 코로나 팬데믹이 선포될 무렵의 자료인데, ‘동반성장을 위한 워싱턴 센터(Washington Center for Equitable Growth)’란 곳이다. 내용을 보면 이제 미국도 거의 치유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득격차와 자산격차가 너무 심하다.

(https://equitablegrowth.org/the-distribution-of-wealth-in-the-united-states-and-implications-for-a-net-worth-ta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