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봄의 첫날이 꽤나 터프하구나! 

 

 

오늘은 雨水(우수),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봄의 첫날이다. 그런데 아침 기온이 무려 영하 10도나 된다고 봄의 첫 날이 꽤나 터프하다.

 

우수로서 하늘과 땅이 맹렬하게 움직이면서 새 해를 열어간다. 그런데 하늘과 땅이 움직인다는 것은 무슨 말이며 새 해를 열어 간다는 말은 또 무슨 의미일까?

 

 

하늘과 땅이 맹렬히 움직이다는 말의 의미

 

 

간략하게 설명 좀 해드린다.

 

날은 비록 춥지만 땅속은 이미 녹기 시작해서 물이 위로 오른다. 땅속 온도가 오르니 겨우내 얼었던 땅속의 물이 서서히 위로 올라온다, 이를 두고 地氣(지기)가 상승한다고 말한다. 우수는 해가 가장 짧은 12월 20일 경의 동지로부터 60일 정도 지난 때, 일조시간도 많이 길어졌다. 이를 일러 天氣(천기)가 下降(하강)한다는 표현을 한다.

 

天氣(천기)가 내려오고 地氣(지기)는 오르기 시작한다. 이를 현대 과학적인 용어로 설명해보면 다음과 같다. 동지로부터 해가 길어지지만 땅은 계속 식어간다. 해가 길어지면 땅도 따듯해져야 할 터인데 옛 사람들은 도무지 이런 현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해가 길어지는데 땅은 왜 더 식어가서 추워지지? 하는 궁금증이었다.

 

현대 과학은 이 현상을 대단히 쉽게 설명을 한다. 햇빛, 光子(광자)가 날아와 땅에 닿으면 그 즉시 땅이 데워지는 것이 아니라 時差(시차)가 존재한다. 이에 지속적으로 햇빛 알갱이 광자, 보다 정확하게는 전자파의 하나인 적외선이 날아들면 마침내 식어가던 땅의 온도가 상승하기 시작한다. 이를 輻射熱(복사열), 영어로 radiant heat 라고 한다.

 

그러면 땅속에서 얼음 알갱이로 있던 물이 녹기 시작한다. 그렇게 되면 지표면의 건조한 공기는 지표 아래의 물을 흡수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이 연이어 지속되는 현상, 땅속에선 물이 녹아서 위로 올라오고 그러면 공기 중으로 다시 상승한다. 이게 본격화되면 봄날 아지랑이 현상이 생겨난다.

 

우수로서 물이 땅속에서 지표로 오르고 다시 대기 속으로 상승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천지의 준동은 모든 생명들의 준동을 유발한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이 하늘과 땅의 순환에 맞춰 진화해왔기에 당연하다.

 

 

생명은 따뜻하고 윤기가 나고 말랑하다. 

 

 

바깥에 나가보면 나뭇가지도 메말라 있고 덤불의 이런저런 풀들도 말라있다. 거의 바싹 마른 미라(mirra) 상태이다. 하지만 우수가 지나면 겉으로 바싹 말라있는 것 같아도 정작 만져보면 확연히 다르다. 뻣뻣하지가 않고 낭창댄다.

 

왜 낭창댈까? 하면 뿌리로부터 물이 위로 올라와 가지 끝까지 도달했기에 유연해지는 것이다. 이미 생명 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유연하다, 말랑하다, 뻣뻣하지가 않다. 반대로 죽어가는 것은 마르고 뻣뻣해진다.

 

물이 올라서 표면이 반짝거리는 것을 두고 우리는 潤氣(윤기)가 난다고 한다. 죽어가는 것은 윤기가 적어지고 빠진다, 죽고 나면 윤기가 없다. 여성들이 아침저녁으로 열심히 기름 성분이 포함된 보습제를 바르는 까닭?, 간단하다, 아직 젊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살아있는 것은 모두 熱氣(열기)가 있다. 따뜻하다. 손발이 차가워지면 죽어가는 것이다. 나 호호당 역시 중년의 나이까진 손발이 겨울에도 따끈따끈했다, 그런데 예순이 넘어가면서 이젠 그렇지가 않다, 겨울엔 손이 시리다.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열과 수분이 오르고 열과 수분이 속에서 남으면 바깥으로 나온다, 그런 자는 말랑하고 따뜻하고 윤기가 난다. 그게 생명이고 살아있음이다.

 

다시 돌아가서 얘기이다. 우수로서 해는 더 길어지고 땅도 녹는다. 그러니 지금은 북한 땅인 청천강 물도 해빙이 되어 흐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땅속에서 위로 물이 오른다. 물이 오르면 윤기가 생겨난다. 모든 생명들이 활기를 띈다. 풀과 나무는 땅속에서 잔뿌리를 내밀어 물을 빨아올리고 위로 올리니 잔가지 끝까지 말랑해진다.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은 기지개를 켜고 사람 역시 심장 박동이 올라가면서 활동이 왕성해진다.

 

 

우수, 하늘과 땅 그리고 생명이 준동하는 날

 

 

이를 두고 모든 생명을 포함해서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것이 준동하다고 하는 것이다. 얼마나 간결한 축약인가! 시적이고 상징적이며 아름답지 않은가! 또 이제 비로소 생명이 꿈틀대고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그들이 새 해를 열어젖힌다.

 

우수는 입춘과 경칩 사이에 놓인 中氣(중기)이다. 오늘은 우수에 대해 얘기하고 있지만 24 절기 모두가 저마다 나름의 심오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한 해의 순환을 나타내는 24절기, 즉 12節氣(절기)와 12中氣(중기)로 나누어 표현하는 이 오래된 방법은 시적이자 상징적이며 그 속엔 물리적 순환만이 아니라 생명 순환의 심오함까지 담아내고 있다.

 

한 해가 순환하는 모습은 60년 순환에 있어서도 고스란히 적용이 된다. 더 길게는 360년 순환에 있어서도 그렇고 그 이상의 기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의 운세가 우수에 이르면 어떤 모습일까? 

 

 

60년 운세 순환에 있어 어떤 이의 현재 때가 우수라고 한다면 어떤 일이 그 사람에게 벌어지고 있을까? 한 번 얘기해보자.

 

그 사람의 현재 겉모습은 지금 우수의 마른 가지처럼 겉보기엔 바싹 말라있을 것이다. 거칠하고 건조한 외양일 것이다. 하지만 우수에 이르러 겉으론 마른 가지일 지라도 만져보면 말랑해지고 있듯이 그 사람 역시 겉으론 전혀 볼품이 없고 대다수 사람들이 외면한다. 즉 전혀 존재감이 없다. 망했으며 앞날이 없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우수로부터 땅 속에서 물이 오르듯 그 볼품없는 사람 역시 서서히 봄날을 준비해가고 있다. 땅속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그 사람 속에선 뭔가 새로운 것이 준비되고 있지만 심지어 본인 스스로도 그런 줄 모르고 그저 절망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주변 사람들도 이미 포기하고 있다.

 

물이 오른다는 것, 사람에 있어선 신체적인 현상도 있지만 정신 즉 멘탈에 있어서도 물이 오른다. 멘탈에 있어 물이 오르는 현상은 사실 고통을 수반한다. 물이 오른다, 즉 생명력이 다시 주입되는 것이기에 고통스럽다.

 

고통이란 것은 사실 살아보자는 몸부림이다. 신체 어느 부위에 상처가 났을 때의 가장 첫 번째 현상이 痛覺(통각)이다. 아프다. 아파야만 우리 몸의 모든 시스템들이 그 상처 부위에 자원을 집중할 것이고 회복시키려 나설 것이기 때문에 통증이 오고 아프다. 아픈 것은 그 부위에 주의를 집중시키라는 우리 몸의 지상명령이다.

 

그렇기에 운세가 우수에 이른 자가 깨어나기 위해 겪어야 하는 대표적인 증세가 통증이다. 신체의 통증도 있겠으나 정신 즉 멘탈의 통증은 스스로 느끼는 비참함, 한심함, 자괴감 같은 것으로 나타난다. 난 왜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하고 自問(자문)하게 된다. 사람은 영리해서 엄살을 부린다, 그 바람에 이렇게 살 바엔 차라리 확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살라고, 문제점을 고쳐서 한 번 다시 잘 살아보라고 통증이 오는 것인데 죽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 자기를 기만하는 것이다. 자기기만!

 

 

이생망의 젊은이들에게 

 

 

우리 젊은이들 사이에서 꽤 오래 전부터 ‘N포세대’란 말이 유행하더니 몇 년 전부터는 ‘이생망’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냉정히 말하면 그게 바로 자기 기만이다. 살고 싶으면 살고 싶다고 해야 하고 잘 살아보고 싶다고 아우성을 쳐야지 왜 이번 생은 망했으니 포기한다고 엄살을 부리는가.

 

엄살은 봐주는 사람이 있을 때 어느 정도 통하는 법이지 계속 하면 통하지 않는다. 적당히 해야 효과가 있다. 장기엄살전략은 상책이 아니다.

 

기득권 기성세대를 무찌르고 쳐부수고 우리들이 새로운 대한민국의 주인이 되어야 겠소 하고 눈을 시퍼렇게 뜨고 부라리며 덤벼들어도 어려운 판국에 ‘이생망’이 무엇이란 말인가.

 

안타깝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지만 정말 속내를 말하자면 엄살 그만 부리고 정신 바짝 차려서 당신들이 숨 쉴 수 있는 세상을 스스로 셀프로 만들어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가진 자와 기득권자들은 절대 그냥 물러가지 않는다. 가진 것을 알아서 내려놓는 자는 소설 속에서나 있지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오랜 세월에 걸쳐 겪은 경험과 노하우도 풍부하다. 눈치도 빠르고 비위도 잘 맞추며 거짓말도 잘 한다. 실전에 강하다.

 

그러니 그냥 싸움에 나설 경우 젊은이들은 판판이 깨지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깨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덤벼들어야 한다.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이란 말이 공연한 말이겠는가.

 

속아도 보고 깨져도 보고 나뒹굴기도 하면서 단련이 된다. 그렇게 하면서도 다시 일어나 도전하는 힘이 젊은이들에게 있기에 後生可畏(후생가외), 즉 부지런히 기량을 갈고닦은 후배는 선배를 능가할 수 있으니 두려운 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국운은 내년 2022년이 大寒(대한)이다. 온 나라 사람들이 줄어드는 파이를 놓고 저마다 차지해 보겠다고 난리통이다. 그런데 젊은이들은 그저 맥 빠지고 김빠진 넋두리를 한다, ‘이생망’이라고.

 

 

우리 국운의 우수를 기다리고 지켜볼 터이니 

 

 

하지만 5년 뒤 2027년이 되면 국운의 雨水(우수)를 맞이한다. 나 호호당은 그 때를 기다리고 있다, 과연 그 때 가서도 젊은이들이 그런 자기기만을 일삼고 있을 것인지 아니면 정말 정신 차리게 될 지.

 

나 호호당의 나이 올 해로서 예순하고도 일곱이다. 갖은 세상의 맛을 두루 씹어도 보고 핥아도 본 묵은 생강이다. 하지만 속내를 한 번 털어놓는다, 정권과 정치인들이 젊은 당신들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그저 그렇게 해 줄 것 같은 ‘척’을 하고 시늉을 낼 뿐이라고.

 

그러니 그냥 넋 놓고 있을 일이 아니란 얘기이다. 또 그렇다고 해서 무슨 혁명을 하라는 것 또한 아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이미 자유민주주의 나라로서의 경험을 제법 오래 해왔으니 조용하고 힘차게 또 지속적으로 당신들의 세상을 만들어 가면 될 일이라 본다. 힘차게 장강의 앞 물결을 밀어내는 뒷 물결이 되라는 얘기이다. 

 

오늘은 雨水(우수), 천지가 준동하는 첫날이다. 그렇기에 우수는 새 생명과 젊음의 첫 날이다. 우리 국운의 우수인 2027년이 되면 당연히 그런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蛇足(사족)으로 한 마디, 우수가 되었으니 집안부터 청소해보자. 주변이 깨끗해지면 정신도 덩달아 맑고 깨끗해진다. 평범하지만 한 해를 알차게 만들어갈 수 있는 秘訣(비결)이다.

새해가 시작되었지만 새해의 윤곽은 아직...

 

 

봄의 시작이자 한 해의 시작인 立春(입춘)이 지났지만 아직 봄은 시작되지 않았고 여전히 겨울이다. 우리가 체감하는 봄은 2월 3일의 입춘으로부터 15일이 지난 2월 18일 雨水(우수)가 되어야 시작된다. 그러니 아직은 겨울의 끝자락이다.

 

다시 얘기지만 새해가 시작되었지만 이번 새해가 어떤 해가 될 것인지 아직은 가늠하기 어렵다. 그냥 좋은 해가 되길 바랄 뿐이다. 새해에 어떤 일이 펼쳐질 것인지를 전망하려면 가장 빨라야 4월 하순의 穀雨(곡우)는 되어야 한다.

 

왜 새해가 되었지만 한 해를 전망할 수 없다는 걸까? 그 이유를 알아보면 그렇게 어렵지 않다.

 

밤 12시 자정이 넘으면 새 날이 시작된다. 하지만 새 날이 되었다고 해서 우리가 그 즉시 활동하진 않는다. 자정 넘긴 시각이면 대다수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져있다. 그러다가 아침에 일어나 밥도 먹고 이런저런 준비를 마친 뒤 일터로 나간다.

 

여기서 잠깐, 일터란 무엇인지를 짚고 넘어가보자.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그냥 싸움터 즉 戰場(전장)이라 보면 정확하다. 우리가 새해가 되고 그 새해를 예상해본다는 것은 새해의 전투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예측해보려는 것과 같다.

 

그런데 새 날의 전망은 일터에 나가봐야만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좋은 하루가 될 것인지 아니면 힘든 하루가 될 것인지는 일터에 나가봐야만 윤곽이 그려진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일터로 나가서 일을 시작하는 시각은 대부분 오전 9시 경이다.

 

한 해의 일도 마찬가지이다. 새 해가 밝았지만 아직은 한밤중과 같다. 4월 하순이 되어야만 하루로 치면 8시 반 정도와 같다. 8시 반 경이면 아직 업무가 시작되진 않았어도 하루의 윤곽을 그려볼 수 있듯이 새해의 일도 4월 하순은 되어야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코로나19에 대한 전망

 

 

뭐니 해도 올 한 해의 가장 큰 궁금증은 코로나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백신이 제대로 들어올 지, 들어온다면 언제쯤일지, 효과는 충분할지, 그리고 그 결과 우리 모두 바라는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지가 가장 궁금하다.

 

앞날을 예측함에 있어 자연순환운명학이란 날카로운 도구를 갖고 있는 나 호호당도 새 해 벽두부터 이렇다 하고 단언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굳이 해본다면 이렇다.

 

팬데믹 선언이 작년 3월 12일 무렵에 있었으니 그로부터 18개월이 경과한 금년 9월 12일 경이면 급기야 변화가 나타나지 않을까 한다. 18은 변화의 수인 까닭이다. 그리고 20개월이 흐른 11월이면 어느 정도 코로나 종식에 대한 희망을 가져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코로나가 사실상 끝이 난거나 다름없다고 볼 수 있는 때는 2년이 흐른 2022년 3월 11일 경은 되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가 지나간 뒤가 어떤 면에선 더 두렵다. 

 

 

그런데 설령 코로나가 끝이 난다 해도 그 이후가 어떤 면에선 더 두렵다. 자영업자들은 사실상 이제 망했거나 거의 거덜이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란 점, 그리고 올 해 중에 상당히 많은 중소기업들이 도산하게 될 것이란 점이다. 그러니 코로나가 종식되어도 경제가 코로나 이전으로 되돌아가긴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무진장 돈을 풀었으니 돈의 가치는 엄청나게 떨어진 마당에 소득은 늘긴 고사하고 줄어들고 있으니 이미 사람들의 실질적인 소비생활 무지막지하게 많이 위축되었으며 빈부 격차는 극도로 벌어진 판국이다. 그런데 그런 흐름이 코로나 이후에 어쩌면 더 본격화될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보복소비가 있을 거란 전망도 있지만 그거야 잠시 반짝이일 것이고 그 이후론 그야말로 시름시름 앓게 될 경제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

 

어쩌면 시름시름 앓는 게 최상일 수도 있겠다. 그게 아니라 그야말로 우리를 포함해서 글로벌 경제가 혼절 상태로 들어갈 가능성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경제 나아가서 글로벌 경제, 이런 얘기는 이쯤으로 접어두고 오늘은 다른 얘기 하나 드린다.

 

 

꿈과 희망, 그리고 비전이란 것은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최근과 같이 어려운 시대엔 꿈과 희망을 가지기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미래에 대한 비전(vision)이 없다는 말도 그렇다.

 

그런데 말이다, 꿈과 희망은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인생을 한 50년 이상 살아본 사람들이라면 알고 있지만 대다수의 삶은 꿈과 희망보다는 현실의 무게를 견디는 것만 해도 바쁘고 힘들다. 부유하게 사는 게 아니라 그냥 평범하게 먹고 사는 것만 해도 대단히 힘들다는 사실, 그렇기에 그렇게 먹고 살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훌륭하다는 점을 중년을 지내보면 절로 알게 된다.

 

가만히 서있으면 뒤처진다. 나름 힘껏 달리고 있어야만 옆 사람과 함께 갈 수 있다. 모두가 힘껏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등속도 운동만으론 앞서가기가 어렵다. 가속을 더 붙일 수 있어야만 주변보다 앞설 수 있는 곳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인 까닭이다. 그렇기에 주변과 함께 가고 있다면 그건 등속도 운동이라 하겠는데 그게 바로 대다수 보통 사람처럼 평범하게 먹고 살고 있는 모습이다.

 

등속도 운동은 꿈과 희망을 동력으로 하지 않는다. 그냥 현실을 견디는 것이 등속도 운동이다. 미래에 대한 비전 또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냥 현실을 견디고 버티는 있는 것만으로도 벅차기 때문이다.

 

 

의욕과 탐욕, 운의 상승과 하강

 

 

또 하나의 얘기를 드린다.

 

갖고 싶은 게 있다고 하자. 그냥 갖고 싶은 게 아니라 정말로 가지고 싶은 것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대상이 현재 서 있는 곳으로부터 첩첩한 산을 무수히 넘어가야만 가질 수 있다고 한다면 그로서 그것을 갖고픈 마음의 진실이 드러난다.

다시 말해서 비용을 치러서라도 가지고 싶은 물건인지 아니면 그렇게 비싼 비용을 치를 것이라면 그건 아니다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앞의 마음을 意慾(의욕)이라 한다. 욕심과 함께 거기에 意志(의지)가 함께 실린 것이다. 뒤의 것을 貪慾(탐욕)이라 한다. 탐하는 욕구만 있을 뿐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치를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의욕과 탐욕, 꿈과 희망, 미래에 대한 비전, 이런 얘기는 나름의 깊은 연관성이 있다.

 

 

정리해보면 이렇다. 

 

 

첫째, 의욕을 가진 자라면 運(운)이 상승하는 사람이다. 반면에 탐욕만 있다면 그건 이제 운이 하강하는 사람이다.

 

둘째, 꿈과 희망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견디고 버티다 보면 그로서 어느 순간 꿈과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꿈과 희망은 所定(소정)의 힘든 과정을 겪은 자만이 가져볼 수 있는 그 무엇이다.

 

셋째,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다고 느끼는 것이 실은 더 일반적이고 정상이다. 마래에 대한 비전은 의욕을 가지고 오랫동안 노력해온 사람만이 어느 순간에 가서 그 빛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한 때 블루오션 전략이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지만 그 블루오션이란 것이 바로 그렇다.

 

꿈과 희망은 역경을 거치다 보면 어느 순간 가지게 되는 것이고 그 상태가 더 지속되면서 의욕을 가지고 발전해가다 보면 마침내 미래의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따라서 의욕을 가지고 노력하는 자만이 어느 때에 이르러 꿈과 희망을 품게 되고 그게 더 이어지면 환한 비전이 그 사람의 망막에 홀연히 비쳐오고 그려진다.

 

오랜 세월 운명에 대해 연구해오다 보니 어느 날 운과 명의 이치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알게 된 사실이 바로 노력하는 것이 운의 상승이고 시쳇말로 거저 먹으려들기 시작하면 운이 맹렬히 하강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상엔 공짜가 없다, 그래서 세상은 사실 공정하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 은행, 일본말로 닛폰 긴코는 가장 멍청한 실책을 저지른 최악의 은행이란 汚名(오명)을 쓰고 있다. 일본의 초장기 불황과 디플레이션을 불러온 주범의 하나로 여겨지는 탓이다.

 

일본의 거품 붕괴가 시작된 것이 1991년부터였으니 나 호호당 역시 그간에 일본의 장기불황이나 일본은행의 실책에 관해 얘기하고 있는 실로 많은 책들과 논문을 접해왔다. 일본인이 반성 조로 쓴 비평도 있었고 영미 학자들이 쓴 책이나 논문, IMF가 발간한 보고서도 있었으며 국내 저자의 책도 여러 권 읽었다.

 

처음엔 그러니까 나 호호당의 40대 시절엔 저자들의 주장이나 지적이 다 맞는 얘기로만 보였다. 일본 은행의 담당자들은 정말 바보였구나! 하면서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내 스스로도 안목이 생기면서 그간에 만난 수많은 저자들의 주장이나 지적이 꼭 맞는 얘기인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많은 저자들의 주장이나 지적을 면밀히 검토하고 음미해보노라면 결국 결과론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결말을 알고 나서 그 원인을 거슬러 살펴보는 작업은 당연히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

 

과거의 일이나 사건에 대해 원인을 알아내고 그로서 향후의 일에 대비하는 것은 인간의 대표적인 지적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미래는 무한히 많은 결말의 가능성에 대해 열려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 저지른 실책을 새기고 더 이상 반복하는 어리석음을 경계한다고 해서 미래의 성공이나 안전을 보장할 순 없다는 얘기이다.

 

한편으로 다시 생각해보면 일본 은행의 담당자들이 당시의 주어진 상황 속에서 멍청한 짓만 한 것은 아니었지 않은가 하는 생각까지도 해보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비호하자는 얘기는 아니고 다만 지금 내리는 어떤 결정이 장차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아니면 역효과를 낼 것인지를 사전에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얘기이다.

 

그렇기에 일본의 초장기 불황을 초래한 것으로 알려지고 전해지고 있는 일본 은행의 거듭된 실책들도 어쩌면 당시로선 최선이었거나 또는 훗날에 가선 적절한 선택이었던 것으로 규명될 가능성도 전혀 없지 않다는 얘기이다. 모든 사건과 상황은 나름 그 고유의 특수성을 가지는 법이어서 일반적인 사건이란 것은 사실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오늘 이 글에서 과거의 얘기를 하고 있는 까닭이 있다.

 

어쩌면 2008년 미국 금융위기로 인해 단행된 미국 연준의 양적완화 정책, 과잉 유동성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더 많은 유동성으로 틀어막은 것, 그리고 작년 코로나19로 인해 실시된 무지막지한 연준의 양적완화 조치야말로 당사국인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 경제를 나락으로 이끌어가게 될 최악의 조치가 될 가능성이 충분히 엿보이기 때문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이 달러를 무제한으로 찍어내면서 당장의 극심한 불경기나 극도의 디플레이션을 막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겠으나 장차 치러야할 代價(대가) 또한 무지막지하게 커져버리고 있다.

 

첫 번째 대가로서 양적완화를 통해 빈부 차이가 이제 더 이상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미국은 당연히 그렇고 그 여파는 우리에게도 미치고 있다.

 

두 번째 대가로서 결국 언젠가 금리를 정상화하고 그간에 풀린 돈을 회수해야 하는 날이 올 터인데 그게 현실화되는 순간 미국과 아울러 글로벌 전체가 거의 昏絶(혼절) 내지는 假死(가사)에 이르게 된다는 점이다.

 

먼 나라 미국이 아니라 우리 얘기를 해보자. 우리나라 역시 일종의 準(준)양적완화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 11월 광의의 통화인 M2가 2901조였는데 작년 2020년 11월엔 3178조를 넘었다. 만 1년 사이에 통화량이 약 9.6% 증가했다. 그런데 작년 우리나라 GDP는 마이너스 1%였다. 그러니 돈의 가치가 10% 이상 하락한 셈이다.

 

가령 은행에 100만원을 정기예금이나 적금으로 1년 동안 들고 있었다면 1.2% 정도의 이자를 받는다 해도 그 사이에 10% 이상 손해를 봐서 90만원으로 줄었다고 보면 된다.

 

(참고로 좀 더 얘기하면 2012년의 M2는 1799조였는데 작년 말 3178조가 되었으니 그 사이에 시중 통화는 77%나 늘어났다. 평균소득인 GDP는 8년 사이에 다 합쳐서 20% 정도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돈의 가치는 57% 정도 떨어졌다.)

 

정부는 올 해에도 4차 재난지원금이란 명목으로 돈을 시중에 또 풀 것이라 한다. 그러면 시중 유동성은 더 늘어나고 그와 비례해서 돈의 가치는 더 떨어질 것이다. 물론 한 치 앞이 급한 사람은 고마운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실은 그게 받아도 받는 게 아닌 거라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그 결과 불어난 돈이 어디로 가는가? 하면 결국 자산시장, 부동산 아니면 증시이다. 그래서 전 국민이 미친 듯이 증시에 뛰어들고 있다. 열심히 사서 올리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가장 재미를 보는 것은 이미 예전에 주식을 가지고 있는 자들, 즉 기업의 대주주들과 외국인 투자자들이다.

 

일례로서 외국인투자자들의 경우 삼성전자 주식의 55%이상을 2003년에서 2006년에 걸쳐 평균 가격 6,600원 정도에 사들였다. 그런데 지금 삼성전자의 주가는 어제 장 마감 가격이 84,400원이었다. 그 사이에 대략 13배 정도 수익을 올렸고 또 배당도 가져갔다.

 

좀 더 실감나게 얘기해보자. 84,400원 가격에서 시가 총액이 504조원이 되었으니 6,600원 할 당시의 시총은 40조원이 미처 되지 않았다. 그 사이에 464조가 불어났는데 그 중 55%를 외국인투자자들이 차지하고 있으니 그들은 그 사이에 255조의 평가익을 보고 있는 셈이다.

 

불어난 시중 유동성이 갈 곳은 오로지 부동산과 증시가 거의 전부인 마당에 정부와 한국은행이 돈을 계속 찍고 또 국채발행을 통해 부어대고 있다. 돈의 가치는 그와 반비례로 떨어지고 자산을 가진 자들의 재산은 날로 불어나고 있다. 이거야말로 부익부 빈익빈에 있어 최악의 사례가 아니면 달리 무엇일까?

 

힘을 가진 노조는 아우성을 치면서 그런대로 급여를 인상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장인들은 잘리지 않으면 다행이다 싶어서 감히 월급을 올려달라는 말은 뻥긋 하기도 어렵다. 그냥 월급이 일 년에 10% 이상 감봉되고 있는 셈이다. 자영업자들의 처지야 아예 논외로 친다.

 

그런가 하면 집을 가진 자는 집값이 올라서 희희락락이고 전세나 월세에 사는 이들은 그냥 앉은 채 빈곤해지고 있다.

이러니 우리 사회 역시 맹렬한 속도로 빈부의 격차가 더더욱 커져가고 있다.

 

이게 바로 미국 연준의 양적완화로부터 시작된 현상이고 그 결말의 하나이다. 이미 앞에서 말한 첫 번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음이다.

 

두 번째 대가, 장차 치러야 할 대가는 금리 인상으로 인한 것이다. 주가나 집값은 폭락할 것이다. 피할 도리가 없다. 주식을 많이 가진 자들 역시 손해를 많이 보겠지만 미리 감을 잡고 팔면서 손해를 줄일 능력이 있는 자들이다.

 

하지만 증시가 오르는 사이에 부지런히 돈을 가져다 넣은 자들은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주식 부자들은 이미 예전에 주식을 사놓았기 때문에 주가가 내리면 그냥 좋았다 말았네 하면 되겠지만 지금 주식을 비싸게 사주고 있는 개미들은 증시가 하락하면 그 손해를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다.

 

‘영끌’로 집을 산 젊은이들, 대출을 많이 받아서 막차를 찬 젊은이들은 당장이야 가격이 더 오르니 좋아 하다가 금리 인상이 시작되면 집값이 속절없이 내려서 자칫 대출금보다 더 적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우리만 그렇게 되진 않을 것이다. 장본인인 미국 역시 극심한 불경기와 자산 가치 하락으로 인한 디플레이션을 피할 수 없다.

 

지금 연준의 파월 의장과 옐런 재무장관은 자신의 임기 중에 금리를 올려야 하는 일만큼은 없기를 바라면서 재정투입을 늘리고 통화를 늘려가고 있다. 악역은 뒷사람의 몫이겠지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모른다. 경제가 살아나면 금리를 인상하면 다시 죽을 것이고 살아나지 않으면 빈부 격차는 무한대로 확장이 된다. 그리고 결국 금리를 정상화해야 할 것이다. 그게 언제인진 모르지만 말이다.

 

나중에 보면 역대급 바보짓을 저질렀다고 알려진 일본 은행의 그것보다 미국 연준의 바보짓이야말로 수퍼 역대급 실책인 것으로 귀결이 날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래서 오늘 글을 썼다. 어떻게 될 지 결말이야 현 시점에서 아무도 모른다. 다만 가까운 미래는 그야말로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만 얘기해둔다.

전국을 뒤덮은 증시 열풍

 

 

오랜만에 먼 지방의 山寺(산사)에 다녀왔다. 겨울인데도 비가 내려 그 정취가 각별했다.

 

지팡이를 하나 살 요량으로 경내 매점에 들렀다. 나이가 좀 되어 보이는 주인 아주머니와 절 아래 마을 사람으로 보이는 두 분이 주식 얘기를 한창 나누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삼성전자를 산 모양이고 아저씨는 다른 것을 샀다가 재미를 보지 못했다는 얘기였다.

 

증시 바람이 깊은 산중 古刹(고찰)의 일주문을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이거 이러다가 절 종무소 보살님은 물론이고 주지 스님까지 주식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거 정말 큰일이다.

 

전 국민이 주식에 혼이 나갔구나 싶다. 늙은이 젊은이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죄다 증시에 돈을 쏟아 붓고 있다. 부동산과 달리 증시는 돈 백만 있어도 할 수 있으니 그렇다.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우량 주식을 사서 몇 년간 푹 묻어두면 돈이 된다고 부추긴다.

 

출구가 없는 젊은이들은 증시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고 평생 벌어도 아파트 한 채 마련하기 어려운 30대들 또한 주식에 인생을 걸었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40대는 빨리 벌어서 은퇴하고 인생을 즐길 요량으로 건곤일척의 승부수를 던졌고 50대는 최후의 수단으로 증시에 목숨을 걸고 있다. 은퇴한 60대는 노후가 걱정되니 역시 증시에 돈을 넣었다.

 

 

서툴기만 한 신규 개미들

 

 

그런데 보기에 너무 서툴고 못 한다 싶은 대목이 느껴진다. 특히 삼성전자만큼은 죄다 사들고 있다는 점이다. 필수지참 주식이자 국민주로서의 삼성전자가 된 셈이다.

 

안타까운 것은 삼성전자야말로 들고 있으면 돈이 되기가 정말 어렵다는 점이다.

 

주식을 살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은 단 두 가지밖에 없다. 먼저는 장차 실적이 좋아질 기업의 주식을 사야한다는 점이고 다음으론 앞으로 사고자 하는 사람이 많은 주식이 오른다는 점이다.

 

정리하면 실적 전망과 잠재 매수 여력이다.

 

그런데 증시에 뛰어든 모든 국내 개미들이 삼성전자를 샀다는 점이다. 이제 어떤 이들이 삼성전자를 사줄까? 샀던 사람들이 앞으로도 계속 줄기차게 사줄까? 생각하면 그러긴 어려울 것 같다.

 

국내 개인투자자들은 거의 대충 다 샀으니 더 사줄 것 같진 않다. 남은 것은 기관과 외국인투자자들인데 기관은 개인들의 환매 요청 때문에 주식을 살 여력이 없다. 남은 것은 외국인 투자자들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삼성전자 주식을 왕창 그리고 꾸준히 매수해야만 삼성전자 주가가 오를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모든 개미들이 삼성전자를 사놓고 오르기만을 기대하고 고대하는 판국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아, 이제부터 우리가 사서 전폭적으로 올려드리겠습니다, 하고 순진하게 놀아주겠느냐는 얘기이다.

 

 

외국인투자자들은 당분간 삼성전자를 사주지 않을 것이다. 

 

 

판세를 빤히 다 읽고 있는 외국인 투자자들이다. 속으론 삼성전자를 사고 싶어도 당분간은 절대 사주지 않는다. 국내 개미들이 잔뜩 사서 가격도 잔뜩 오른 삼성전자를 이제 와서 더 비싸게 사들인다? 어림없는 소리. 그러면 선수(?)가 아니다.

 

삼성전자가 정말 우량 주식인 것은 맞다. 그 바람에 삼성전자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절대 비중을 보유하고 있다. 작년 2020년 2월 12일자 외국인 보유비중은 57.05% 였고 금년 1월 29일자로 그 비중은 55.06%이다. 1년 사이에 2% 정도를 줄였다.

 

그 좋은 삼성전자를 외국인투자자들은 무슨 까닭으로 팔아서 줄였을까?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가격이 하도 많이 오르고 잘 오르는 것을 보고 신나서 팔았다. 팔면서 이익을 왕창 챙겼다. 2% 정도만 팔았지만 매도로 인한 수익은 실로 엄청나다.

 

작년 1월 말 삼성전자 주식의 시가총액은 339조였는데 금년 초 주가가 9만원 할 때의 시가총액은 536조였다. 1년 사이에 200조가 늘었으니 외국인 투자자들이 삼성전자 주식 2%를 팔아서 현금으로 챙긴 수익은 대략 8조 원 이상이란 계산이 나온다.

 

 

외국인들에게 8조원을 헌납하고 있는 개미들

 

 

이 8조 원의 돈은 그렇다면 누가 지불했을까? 하면 그건 바로 국내 개미들이 사들이면서 지불했다고 보면 된다.

주식이란 것은 사서 올랐다 해도 팔지 않았다면 그건 평가이익에 불과하다. 살 때 지불한 금액과 나중에 팔아서 돌려받는 금액이 더 클 때만이 정말 이익을 본 것이 된다.

 

그 좋은 삼성전자이건만 무슨 이유로 외국인 투자자들은 더 사지 않고 오히려 팔았을까를 생각해보란 얘기이다. 외국인들이 팔았다 해도 겨우 2%에 불과하다, 그것을 팔아먹은 자들은 주식을 잘 모르는 몰지각한 외국인투자자들이라 치자. 앞으로 외국인투자자들이 더 사주면 되는 일 아니겠는가.

 

다시 하는 얘기지만 외국인투자자들은 당분간 삼성전자 주식을 사주지 않는다. 가지고 있는 삼성전자 주식을 조금 더 팔아서 가격을 대폭 깎을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 당연하다.

 

아마도 상승을 시작한 6만원선까지, 그게 무리라 한다면 최소한 7만원선까지 가격을 낮춘 다음에 가서 슬슬 사볼 생각을 하고 있을 외국인투자자들일 것이다. 상대방의 패를 다 읽었으니 전혀 서둘 필요가 없는 외국인투자자들인 것이다.

 

그 결과 특히 작년 12월 초부터 삼성전자를 사들인 개미들은 상당한 평가손을 감내해야 할 것이고 하락세에 겁이 나서 팔면 현실적인 손해를 봐야 할 것이다.

 

그럴 경우 삼성전자 사두면 돈 된다고 떠들던 전문가님들은 입을 싹 씻거나 또는 무조건 버티라고 충고해줄 것이다.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습니다! 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삼성전자가 오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외국인투자자들이 사주지 않아도 개미들이 앞으로도 무작정 무진장 삼성전자를 사주면 오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뭐든 흐름이 있고 때가 있기에 개미들이 무한정 개미지옥을 향해 돌진하진 않을 것이라 본다.

 

 

우리 증시는 오르면 내리고 내리면 오르는 왔다리 갔다리 체질이다. 

 

 

말머리를 조금 돌려본다.

 

우리 증시는 미국 증시와 다르다.

 

미국 증시는 연금 펀드에서 끊임없이 사들인다는 점, 그리고 아예 연준이 나서서 돈을 풀어서 증시를 떠받친다는 점 등으로 해서 시간을 두고 꾸준히 상승한다. 인플레이션 효과가 확실히 존재하는 증시이다.

 

하지만 우리 증시는 전혀 다르다, 글로벌 경기 동향, 즉 수출 동향을 따라가는 것이 우리 증시이다. (내수는 이미 돌아가신지 오래이니 언급할 가치가 없다.) 그렇기에 우리 증시는 전형적인 ‘경기순환형’ 증시이다. 글로벌 경기순환.

 

그런데 현재 증시의 지수를 보면 이미 실물경제와 상당한 괴리가 발생해있다. 이 점에 대해 엉터리 전문가들은 이제 우리 증시도 선진국형 프리미엄을 받아도 된다고 너스레를 떨고 있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현재 우리 증시는 이미 상당한 버블 상태라고 봐도 절대 무방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장 지금부터 내릴 것이란 얘기는 결코 아니다. 기세란 것이 있어서 기왕에 많이 오른 상태라 해도 더 오를 수가 있고 아주 많이 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전 국민이 개미가 되어 주식을 사고 있는 한 외국인투자자들이 순순하게 수익을 먹여줄 까닭이 없다는 점 또한 알아야 하겠다. 증시란 것은 결국 제로섬 게임, 줄여서 일종의 게임이기 때문이다.

 

이제 이 글에서 하고자 하는 마지막 얘기를 해보자.

 

 

결국 대다수가 돈을 잃게 될 것이니 큰 일이다.  

 

 

그건 앞에서 얘기했듯이 큰일이 났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장차 전 국민, 전 개미들이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될 것이 명백하다. 우리 증시는 글로벌 경기순환형 증시이기에 미국처럼 꾸준히 오르는 것이 아니라 많이 오르면 많이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 시기가 내년일지 아니면 내후년일지 그건 모르겠으나 많이 오르면 많이 내리게 되는 우리 증시의 체질은 변함이 없다. 그러니 직장인들은 물론이고 20-30대 영끌 빚투의 젊은이들, 나아가서 산사 경내의 매점 아주머니나 인근 농부 아저씨의 쌈짓돈도 왕창 날아갈 것이다.

 

올해 경기가 기대만큼 살아나지 않아도 증시는 내릴 것이고 미국 연준이 언젠가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폭락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어쨌거나 우리 증시는 미국 증시와는 달라서 오르면 내린다. 거품 위에 거품을 쌓다 보면 나중에 내려도 너무 심하게 내릴 것이다.

 

그 때 가서 빠져나오면 될 게 아니냐? 하겠지만 그게 또한 쉽지가 않다.

 

증시는 도박과 그 성질이 정확하게 똑 같기 때문이다. 도박 중독에 한 번 빠지면 정말 빠져나오기 힘들듯이 증시 또한 한 번 맛을 들이면 그만 두기가 너무나도 어렵기에 결국 손해를 잔뜩 보고 나서야 털고 나올 수 있다.

 

그나마 털고 나오면 다행이라 하겠고 계속 잃으면서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도박이기에 그렇다.

 

증시는 나름 선수라 할 수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장기간 하다 보면 본전을 유지하거나 또는 벌게 되는 곳이다.

 

나 호호당은 주식 좀 할 줄 안다. 1983년부터 했으니 경력이 38년이다. 그 사이에 계산해보면 조금은 남는 장사를 했다. 한 때 정말 많이 벌기도 했지만 나중에 다시 반납한 탓에 조금 남겼다.

 

 

호호당의 주식에 대한 기본 투자 방법

 

 

참고하시라고 나 호호당의 주식에 대한 기본 전략을 밝히면서 글을 마무리한다.

 

원금이 1000만원이면 500만원 이상 절대 주식을 사지 않는다. 500만원은 그냥 놀린다. 하지만 언젠가 예기치 않게 상상 이상의 대폭락장이 연출된다. 그러면 어느 순간 이를 악물고 예비군으로 있던 500만원을 전부 과감하게 투입한다. 그러면 순식간에 본전은 물론이고 그 이상의 수익을 올린다. 물론 아닐 경우도 있다. 더 내릴 수도 있다, 그러면 다 날린 셈치고 ‘존버’한다. 신용매수? 그거야말로 죽음의 길이다.

 

그리고 주식을 하다 보면 사고 파는 맛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30만원 정도는 급등주에 들어가서 앗싸, 하면서 즐기기도 하고 파라락- 내리면 에잇, 망했네 하면서 손절하기도 한다. 스트레스 해소용이고 도박 놀음이다. 그런 맛도 있어야지 주식하지 늘 냉철하게 주식하는 것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돈 버는 것, 특히 주식으로 돈 버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다. 제로섬인 탓이다.

 

꽤 오랫동안 글을 올리지 않았다. 1월 丑(축)월엔 생각이 많기 때문이다. 무수히 많은 생각과 상념들이 떠오르고 다시 내린다. 축월은 원래 안개 속과 같은 달이기에 생각도 그렇다. 다시 힘을 내어보고자 한다.

오래 전 전망이 현실이 되고 있으니 

 

 

7년 전인 2014년 4월 2일자 프리스타일에 고용의 바닥이란 글을 올린 바 있다. (호호당 제1166호)) 그리고 다시 5년 전인 2016년 9월 19일자로 “고용, 교육 그리고 아파트”란 글을 올리기도 했다. (제1502호).

 

호호당 티스토리 독자들 중에 그 글을 보고 싶으신 분들은 기존의 블로그에 가서 보시면 되겠다. (www.hohodang.com)

글에서 (우리나라) 고용은 2022년이 되면 바닥을 칠 것이라고 전망을 적고 있다.

 

 

거세게 불어닥치고 있는 고용 한파

 

 

세월이 흘러 어언 당시의 전망이 거의 굳어져가고 있다. 뉴스에 보니 취업자 수가 1998년 외환위기 이래 22년 만에 가장 큰 감소폭을 보였다고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실업자 수도 증가했다 한다. 주 36시간 이상 취업자 수는 120만 3000명(5.6%) 줄어든 반면, 36시간 미만 취업자는 55만 4000명(10.3%) 늘었다고 하니 질적인 면에선 더욱 나빠진 셈이다.

 

물론 코로나19로 인한 악영향이 크다. 그런데 그렇다면 올 하반기에 가서 코로나 유행이 마무리되면 고용 사정이 좋아질까? 다시 말해서 코로나19만 종식되면 예전의 좋았던 일상으로 되돌아가고 고용 사정도 크게 호전될 수 있을까 하는 얘기이다.

 

 

코로나19가 지나가도 사정은 크게 호전되긴 어려워서

 

 

코로나19가 끝나면 2020년에 비해 당연히 경기가 좋아지긴 하겠으나 그건 기저효과로 인한 잠시의 반등에 그칠 공산이 크다. 그 이후혼 내수가 활성화되긴 어렵다고 보는데 그 이유는 부채 부담이 지나치게 커져버렸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더욱 깊어졌다. 무엇보다도 취업인구의 1/4 이상을 차지하는 자영업자들은 그간의 손실을 복구하긴 힘들 것이다. 폐업을 하지 않았다 해도 그간에 빚만 엄청나게 늘어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계부채도 최근 자료를 보면 작년 3분기 통계로 이미 우리나라 GDP 규모를 넘어서 버렸다. 이는 작년 부동산 폭등으로 인한 영향과 아울러 빚을 내어 주식에 투자하는 ‘빚투’의 영향도 크다.

 

가계 부채는 빠르게 늘었으나 가처분소득은 1년 동안 겨우 0.3% 늘어났기에 가계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사상 최고치인 171.3%에 이르렀다. (지금처럼 초저금리 상황에서도 가계의 경우 수입의 20% 정도가 원리금 상환에 들어가고 있다.)

 

기업 부채 역시 1년 사이에 GDP 대비 101.1%에서 111.1%로 급증했다. 부채를 늘려 생산적인 방면에 투자를 했다기보다는 좀비기업들이 대폭 늘어나면서 생존을 위해 빚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뉴스에 보면 작년 3/4분기 가계와 기업 부채를 합치 액수가 전년 동기 대비 16.6% 포인트 급등한 211.2%라고 한다.

그런 까닭에 코로나19가 끝나면 잠시 경기가 살아나긴 하겠으나 그 이후론 경기가 살아날 가능성은 더욱 적어지고 말았다. 부채 상환 부담으로 인해 소비여력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시름시름 앓는 정도일 것이고 만일 미국 연준이 금리 인상을 시작하면 그야말로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 속에 빠져들 가능성이 큰 우리 경제라 하겠다. 증시 폭락, 부동산 폭락, 그로 인한 본격적인 구조조정의 시작. 말을 꺼내기도 싫다.

 

정부가 재정투입을 늘려서 경기를 유지하는 것 역시 나름의 한계가 있다. 국가부채가 GDP의 50%를 넘어서면 주요통화권, 즉 달러나 유로, 엔화가 아니라 원화를 사용하는 우리나라이기에 국가신용등급에 악영향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양질의 일자리는 더더욱 기대난

 

 

최근 증시 상승이 대단하다. 증시에 상장된 우리나라 일류 대기업들의 활약이 나름 대단하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대기업들이 채용을 늘리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보지만 그게 어렵다.

 

우리 대기업들은 투자할 돈도 있고 기술도 있다. 실적도 나쁘지 않다. 작년 코로나19의 와중에도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 대기업이 고용하고 있는 인원은 전체 취업자 수에 비해 대단히 적다는 점이다. 투자를 해도 장비와 플랜트에 투자를 하고 고급 인력에 투자를 할지언정 신입 사원을 무턱대고 늘리진 않는다.

 

그러니 코로나19가 끝나도 고용 사정은 좋아질 것 같지 않다. 취업자의 대부분이 자영업자와 좀비기업 비중이 무려 50%나 달하는 중소기업에 속하기 때문에 양질의 일자리 증가는 그야말로 기대하기 어렵다.

 

 

최악을 향해 치닫는 교육 일자리

 

 

일자리와 관련해서 또 한 가지 지나칠 수 없는 분야가 교육이다. 교육 부문 역시 그간에 많은 일자리를 차지해왔기에 그렇다. 그런데 이 부문 역시 최악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부채 부담으로 인해 소비여력이 떨어진다고 했는데, 그렇게 되면 대거 감축될 분야가 바로 교육비 지출인 까닭이다. 학원비 지출이 줄면 학원이 줄 것이고 학원 강사들이 줄 것이다. 사교육 분야 역시 극심한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다, 특히 작년 코로나19로 인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학원들은 이제 또 다시 학원 영업을 재개하기도 어렵다.

 

아울러 지방대학의 구조조정이 코로나19가 가시고 나면 그야말로 본격화될 것이다.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 숫자가 근본적으로 줄고 있고 대학을 나온다 한들 이미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누차 확인했기 때문이다. 지방대학의 정시 경쟁률이 대거 하락하고 있다는 뉴스가 바로 그 점을 알리고 있지 않은가.

 

전체적으로 교육비 지출의 감축이 예상되고 있다. 그러니 그간 많은 취업과 고용을 맡고 있던 교육 분야의 일자리 또한 줄어들 것이다.

 

그러니 내후년 2022년 무렵이 고용의 바닥점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본다.

 

 

청년 고용, 가장 취약한 분야

 

 

가장 암울한 쪽은 청년 취업이다. 1989-1998년 사이에 태어난 청년 세대가 고용 충격을 가장 집중적으로 받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을 막 졸업하고 사회 초년생 신분이어야 할 25~29세 취업자 수 감소폭이 전체 취업 감소분의 60%를 넘게 차지한다고 한다. 게다가 남녀의 성별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전체적으로 취업했다 해도 상당수가 알바나 비정규직이니 젊은 청년층의 취업은 이미 최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황이 이렇다는 얘기, 즉 1989-1998년 사이에 태어난 청년층들의 취업이 양적으로 질적으로 열악하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사회 출발에서부터 경력과 능력 계발에 있어 본인의 능력이나 의도와는 상관없이 결정적인 핸디캡을 안고 시작하게 됨을 의미한다.

 

출발이 그렇다면 그들의 경우 향후로도 소득이 높아질 가능성이 적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고 자연히 세대별 양극화를 더욱 심화하게 될 것이다. 더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세대가 목하 마구 늘어나고 있는 국가부채의 부담을 장차 떠안게 된다는 점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모순인가!

 

 

한계에 봉착한 각개돌파의 몸부림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이나 영국 등으로 유학을 가면 현지의 좋은 직장에 들어가거나 국내에 돌아와도 좋은 직장에 들어갈 거란 희망이 많았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완전히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최근에는 미국이나 영국이 아니라 일본이나 싱가폴로도 유학을 많이 간다. 영미권 유학에 비해 현지 취업률이 좋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100% 취업보장과 같은 선전은 절대 현실이 아니다. 현실은 절대 만만치가 않다.

 

유학과 더불어 한동안은 대학원 진학도 상당히 많았지만 오늘에 이르러 그 또한 상황은 더욱 나빠지고 말았다. 수도권 대학 출신 청년들의 취업 사정이 극도로 악화되면서 지방대학 출신은 더 이상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인공지능(AI)가 장차 일자리를 더 많이 앗아갈 거란 얘기, 그게 어느 정도 정말 그렇게 될 것인지 현재로선 모르겠지만 심리적으로 젊은 층들에게 엄청난 압박이 되고 있다. 안 그래도 어려운 판국에 기를 팍팍 꺾어놓고 있다.

 

 

허망했던 정권과 정책 차원의 노력

 

 

정권 차원에서 그간 일자리 문제에 대한 노력이 없었던 것 아니다. 문제는 모두 실패했고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권 시절, 2010년대 초반 한 때 잡 쉐어링, 우리말로 일자리 나누기가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그게 될 일이 아니었다. 기득권 노조가 강고하게 거부하는 현실에서 그런 아이디어는 그저 한 때 꿔본 꿈에 불과하다. 박근혜 정부 역시 노동시장 유연화를 시도했다가 노조의 강력한 반발로 실패했다.

 

노조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는 문재인 정부는 초기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시범 케이스였던 인천공항공사 사태를 기점으로 잠잠해지고 말았다. 될 일이 아니었기에 그렇다.

 

 

2022년이 지나면 다소 나아지겠지만

 

 

그렇기에 2022년이 고용의 바닥이란 오래된 나 호호당의 전망은 고스란히 현실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이후론 바닥을 치고 돌아설까? 하는 질문도 제기된다.

 

다소 사정이 나아질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그 이유가 많이 초라하다. 경제사정이 좋아지고 경기가 살아나서가 아니라 청년층의 공급 자체가 줄어들고 있고 강성 노조를 구성하고 있는 그 사람들이 은퇴하면서 그나마 숨통이 트이게 될 거란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글은 참으로 쓰기가 힘들었다. 겨우 마무리한다. 지친다. 

양적완화, 역사상 최악의 금융정책실패

 

 

위에 2008년 미국 금융위기 당시 연준(Fed)이 단행한 제1차 양적완화로 시작되고 금년 팬데믹으로 인해 단행된 무제한 양적완화 조치는 멀지 않은 미래에 가서 금융사상 가장 거대한 실패로 여겨질 공산이 크다. 뿐만 아니라 두고두고 연준이 저지른 최악의 실패 사례로 기록될 것이라 본다.

 

양적완화를 하지 않았더라면 당연히 미국을 포함해서 글로벌 전체 경제가 막대한 손상을 입고 엄청난 디플레이션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적완화와 같은 이상한 조치는 하지 않았어야 한다고 본다. 그 득실을 따질 때 부작용과 폐단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는 거품이 지나쳤기에 발생했다. 그런데 거품을 소멸시키는 수순을 밟지 않고 오히려 더 큰 거품을 만들어냄으로써 막은 것이 양적완화였기 때문이다.

 

 

붕괴 외에는 출구가 없다

 

 

그 바람에 오늘에 이르러 미국을 포함해서 전 글로벌 경제는 정상적인 출구를 상실해버리고 말았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더 큰 거품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즉각적으로 파국이 오는 구조인 것이다. 돌려막기를 하면서 이자가 더 발생하고 그러면 더 큰 액수로 돌려막아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따라서 양적완화는 전 세계 경제를 마치 마약중독자로 만들어 놓은 셈이다. 특히 작년 코로나 팬데믹이 닥쳤을 때 연준이 취한 무제한 양적완화는 마약을 중독자의 옆자리에 상시 비치해 놓은 것과 같은 상황이다.

 

 

돌이킬 수 없는 양극화

 

 

양적완화는 또 다른 부작용을 만들어내었으니 빈부 격차를 극단적으로 확대해 버렸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경우 1990년부터 시작된 양극화는 양적완화가 결정적인 계기를 통해 그 이후론 더 이상 되돌릴 수 없을 정도의 소득과 부의 양극화가 발생하고 고착되어 버렸다.

 

미국의 경우 소득이나 재산 등에서 상위 10%의 가구가 주식의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양적완화 바람에 거품 증시가 무너지지 않고 거꾸로 더 엄청나게 상승하면서 그들의 부가 더욱 더 커져버렸기 때문이다. 특히 상위 1%의 재산은 무지막지하게 커져버리고 말았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직전 금융시장에 거품이 잔뜩 끼었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나스닥은 4.6배로 올랐고 S&P 500 지수는 2.4배가 되었다. 거품 위에 더 큰 거품을 얹은 셈이다. 거품은 소멸되어야 하건만 말이다.

 

그런 까닭에 주식을 가진 상위 10% 특히 1%의 부는 더욱 늘어나버렸고 상대적으로 주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들은 자산 면에서 더욱 쪼그라들었고 일자리 역시 어려워지면서 소득 역시 더욱 줄어들었다. 이로서 유례없는 양극화가 발생해버린 미국이다.

 

그런 면에서 양적완화는 미국의 상위 10%에게만 유리한 조치였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어려워도 정도를 걸었어야 했는데

 

 

반대로 양적완화를 하지 않았으면 미국은 물론이고 글로벌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겠으나 그 과정에서 소득과 부의 양극화는 지금보다야 훨씬 덜 했을 것이고 더불어 글로벌 경제도 비록 길고 긴 고통의 과정을 거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정상 회복될 수 있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10-12년에 걸치는 부채 사이클, 즉 통화의 사이클이 정상적으로 작동될 수 있었을 것이고 호경기에 이어 불경기가 번갈아드는 정상적인 경제 순환 과정을 밟을 수 있었을 거란 얘기이다.

 

 

연준의 안일한 기대

 

 

현재 미국 연준은 지금의 엄청난 자산 버블을 이어가다 보면 언젠가 실물경제와 금융 간의 적절한 균형점에 도달하지 않겠느냐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연준이 금리 조절과 통화 공급 조절을 통해 경제 전체를 통제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그렇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그건 어림도 없는 얘기, 거의 오만에 가까운 발상이라 본다. 그게 아니면 당장 방법이 없으니 일단 막고 보겠다는 糊塗(호도)책에 불과하다.

 

 

증시 안에서도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있으니 

 

 

미국의 경우 예전에 좋은 일자리를 창출해주던 대표기업들을 500개 모아서 만든 지수가 S&P500이다. 그런데 현재 그 기업들은 더 이상 이윤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저 유동성에 힘입어 지수가 오르고 있을 뿐이다.

 

반면 기술주를 모아놓은 것이 나스닥을 중심으로 몇 개 기업들만 오르고 있다. 페이스북과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와 구글, 여기에 마이크로소프트와 테슬라, 이렇게 겨우 7개의 기업이 지수 상승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쏠림 현상, 주식 시장 안에서의 양극화와 차별화만 극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 바람에 바이든이 빅 테크 기업들을 견제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그게 그리 쉬울 것 같진 않다.)

 

 

우리 역시 심각하다

 

 

우리나라 역시 양적완화로 인한 폐해가 상당하다. 부동산과 증시가 바로 그렇다. 부동산의 경우 문재인 정부 출범부터 아파트 공급을 줄이는 계산착오에 더하여 규제책인 임대차3법 등이 부작용을 발생시키면서 문제가 심각해지긴 했지만 그 바탕에는 막대한 유동성이 놓여 있다.

 

증시 역시 그렇다.

 

사실 우리나라의 경제 체력 상으로 볼 때 코스피는 1950 포인트, 코스닥은 765 포인트가 정상 상태에서 상승의 한계였다고 본다. 그러나 지난 주 1월 8일자로 코스피는 3152, 코스닥은 987 포인트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니 코스피의 경우 60 % 정도, 코스닥은 30% 정도의 거품이 끼어있다는 것이 나 호호당의 관점이다. 부동산의 경우 정확한 통계를 몰라서 그렇지만 그 역시 30-40% 정도의 추가 거품이 발생해 있다고 추산한다.

 

이렇게 된 이유 역시 한은의 유동성 초과 공급 그리고 정부의 재정 투입이 원인이다. 당장 어려우니 살리고 봐야 한다는 것이지만 결국 경제를 비정상으로 이끌어가는 부작용은 피할 길이 없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증시의 경우 미국보다 거품이 적은 편이란 점이다. 하지만 부동산의 경우 그간에 자산보유와 증식에 있어 증시보다는 부동산 쪽에 주로 치중되어 왔다는 점에서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지속적으로 거품이 커져왔고 따라서 장차 소멸될 경우 그 충격은 실로 감당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지금 미국 연준이 하는 행동은 개인으로 비유하면 빚을 내어 부동산을 사고 그 부동산을 담보로 다시 빚을 내어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를 하는 식의 과정을 무한정 되풀이하겠다는 것과 같다. 그러니 무리라고 본다. 무제한 돈을 찍어서라도 가격을 받쳐 줄 터이니 계속 주식을 사고 부동산 갭투자를 하시오 하는 것이니 말이다.

 

 

결국 거대한 하락조정으로 막을 내릴 것이니 

 

 

따라서 미 연준의 의도대로 상황이 흘러갈 확률은 대단히 낮다고 본다. 결국충격적인 조정 혹은 파국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확률적으로도 그렇고 나아가서 더 정상적이고 자연스럽다고 본다. 그 시점을 언제라고 단정 짓긴 어렵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다지 먼 미래가 될 것 같지도 않다.

 

이 대목에서 얘기할 것은 최근 새롭게 증시에 뛰어든 젊은이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점이다. 현 상황에서 주식을 하지 않는 것은 너무 두려운 얘기, 그 바람에 하게 되는 ‘패닉 바잉’이다. 이왕 하는 것을 말릴 생각은 없다. 다만 어느 시점에선 빠져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그냥 그 속에서 머물다 보면 어느새 도박의 맛에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도박의 무서운 점

 

 

증시나 부동산 투자나 본질은 도박이기에 한 번 맛을 들이면 처음엔 재미를 보다가도 대다수의 경우 결국 다 털리고 끝난다. 그래서 도박이다. 그런데 문제는 도박에 한 번 맛을 들였다가 손을 씻고 나오는 게 대단히 어렵다.

 

그렇다고 참기 힘들어도 아예 손을 대지 말라는 말 또한 하기 어렵다. 기회가 눈앞에 와 있는데 외면하라는 말이 되니 말이다. 부동산 특히 변동성이 심한 주식이 무서운 것은 내리는 것도 무섭지만 오르는 것도 실은 무섭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자료 하나 소개한다.

 

작년 3월, 코로나 팬데믹이 선포될 무렵의 자료인데, ‘동반성장을 위한 워싱턴 센터(Washington Center for Equitable Growth)’란 곳이다. 내용을 보면 이제 미국도 거의 치유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득격차와 자산격차가 너무 심하다.

(https://equitablegrowth.org/the-distribution-of-wealth-in-the-united-states-and-implications-for-a-net-worth-tax/)

옛 기억이 되살아나서 

 

 

늦은 밤 창밖의 차갑게 얼어붙은 하늘을 밝게 비추는 달을 물끄러미 바라 보다가 오래 전의 기억 한 토막이 다시 떠올랐다. 늦은 봄 저녁 무렵, 바깥엔 바람이 불고 있었는데 갑자기 후두둑- 하는 빗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방안은 더욱 고요해졌다. 모니터 앞에 앉아 있던 나는 어느 순간 깊은 상념에 들었다. 그러다가 빗소리가 들리지 않기에 문득 정신을 차리고 나니 늦은 밤 시각이었다. 봄날이었지만 기온이 내려 약간 추웠던 몸의 기억도 되살아난다.

 

그게 작년인지 재작년인지 아니면 더 이전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날 저녁에 했던 생각들 중에 하나가 또 다시 머릿속에 떠오른다. 우리의 國運(국운)과 관련된 생각이었다.

 

 

丙(병)자가 머리에 오는 해마다 10년 단위로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丙(병)이란 글자가 머리에 오는 해를 보면 나라의 활력을 확인하고 점검해볼 수 있다는 생각, 이에 오늘 다시 그 생각을 이어가 본다. 같은 생각을 시간 간격을 두고 또 다시 해보고 또 해보면서 생각을 다듬어가다 보면 훨씬 더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의 과거 흐름을 살펴보자. 10년 단위로 보면 아주 뚜렷하게 보인다.

 

1966년 丙午(병오)년, 빈곤 국가에서 수출입국을 향한 몸부림이 있었으니 당시의 구로수출공단이 그것이다. 저렴한 인건비를 경쟁력으로 가발에서 섬유 등 경공업 위주의 수출 기업들이 주로 활약했다.

 

1976년 丙辰(병진)년, 박정희 대통령의 주도로 중화학 공업으로의 전환이 시도되었다. 당시 재벌 기업들에게 대출 재원을 집중시켰고 산업은행이 중심 역할을 했다. 당시에 대출이란 수출할 수 있는 기업들에게만 주어지는 그 자체로서 특혜였다.

 

1986년 丙寅(병인)년, 중화학 공업으로의 전환이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엄청난 성공이었다. 처음으로 무역 흑자가 달성되었고 이에 국내로 달러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증시가 급등하기 시작했고 아파트 시세가 오르기 시작했으니 그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부동산 불패신화의 시작이었다.) 그 무렵부터 처음으로 우리 국민들도 밝은 내일을 전망하기 시작했고 그 다음 해인 1987년 민주화로의 이행이 시작되었다.

 

1996년 丙子(병자)년, 그간의 성과로 인해 국민소득 1만 달러가 달성되었고 그로서 선진국 클럽인 OECD에 가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풍조, 투자만 하면 성공한다는 분위기는 곧바로 다음 해인 1997년 외환위기를 초래하기도 했다.

 

2006년 丙戌(병술)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산업 전반의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 삼성전자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등장했다. 그 해 우리의 수출산업들은 그야말로 전 세계 시장에서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었다. 전기 전자, 자동차, 조선, 철강, 화학 등등 모든 면에서 일제히 약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별이 심해지면서 양극화가 맹렬히 진행되는 문제도 생겨났다.

 

2016년 丙申(병신)년에 이르러 급기야 우리 경제와 산업은 일정한 한계에 부딪치고 말았다. 강경하고도 완고한 기득권 노조로 인해 생산성은 떨어지고 비정규직이 일반화되었으니 이로서 양극화는 고착화되고 말았다. 아울러 좀비기업들이 대폭 늘어났고 그나마 일부 대기업들만 맹렬한 연구와 투자를 통해 약진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제 우리 경제의 탄력은 사실상 고갈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 바람에 증시는 2011년부터 2016년 말까지 장기 박스 장세를 연출했으니 실은 그게 한계였기 때문이다.

 

최근의 일이니 조금 더 자세하게 얘기해본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대거 재정투입을 단행하기 시작했으니 그로서 국가 채무가 마구 늘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국가 채무의 증가란 간단히 말해서 미래로부터 돈을 가불해 쓰는 방식이라 보면 된다.) 그 바람에 증시와 부동산이 또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년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전 글로벌이 돈을 마구 찍어내었고 우리 정부와 한국은행 역시 덩달아 재정투입과 금리인하 그리고 소규모이긴 해도 일종의 양적완화를 단행했다.

 

우리 경제는 개방경제이고 동시에 수출을 통해 외화를 벌고 그로서 필요한 물자를 수입해 사용하는 철저한 교역 중심의 국가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수출입국을 지향했던 박정희 대통령과 한미FTA를 결정지은 노무현 대통령의 공적이 실로 크고 위대하다 하겠다.

 

 

2026 `병오년이 되면 어떨까? 

 

 

그런데 이제 다시 2026변 丙午(병오)년이 되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될까? 60년 전인 1966년엔 너무나도 자원이 없고 기술이 없어서 시골 미용실이나 이발소에서 수거해온 머리카락으로 가발을 만들어 수출을 했던 나라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60년 사이에 크게 한 단계 도약한 것이 사실이지만 말이다.

 

지금은 기술도 있고 자원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곤경에 처하는 것을 모면하긴 어려울 것이라 본다. 무엇보다 전 글로벌이 그간에 풀어놓은 막대한 유동성으로 인해 경제가 정상화될 경우 금리를 올려 흡수할 것이기에 어려울 것이고 그렇다고 이대로 그냥 가자니 글로벌 디플레이션의 압력을 피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 인구도 줄어들고 있다. 양육비용이 지나치게 커지면서 출산을 기피하는 심리와 더불어 양극화로 인해 젊은 층의 소득기반이 크게 위축되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현재 우리산업의 근본 경쟁력은 반도체 산업이고 여기에 신재생 에너지와 2차 전지 그리고 전기차 방면에 엄청난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하지만 전기차에 들어가는 2차전지의 경우 아직 표준규격이 정해지지 않았기에 향후 순조롭게 성장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근본적인 실패야 없겠으나 도중에 상당한 진통이 수반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막강한 경쟁력을 가진 조선업의 경우 대표적인 경기산업이란 점에서 글로벌 경제 상황에 좌우된다.

 

향후 글로벌 경제는 상당 기간의 침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처리되어야 했던 문제들이 지금도 진행 중이고 여기에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더 큰 무리를 했기 때문이다.

 

 

2026년부터는 진짜 개혁을 해야 할 것이니  

 

 

따라서 2026 丙午(병오)년이 되면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단계이긴 해도 여전히 우리 경제의 앞길은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아마도 과거 우리가 중화학 공업으로의 일대 전환을 도모했던 1976년 丙辰(병진)년으로부터 60년이 흐른 2036년 또 한 번의 丙辰(병진)년이 되면 경제 전반에 있어 거대한 변혁이 생겨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에 앞서 2026년부터 2036년 사이의 10년 동안 경제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면에서 수많은 구조조정과 변혁이 잇따르지 않을까 싶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국민연금이라든가 여타 연금들에 대한 개혁, 기득권 노조의 개혁 등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기득권 노조에 대한 개혁 없이는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기득권 노조의 지지를 바탕으로 하는 현 정권이 내세우고 있는 각종 개혁 아젠다들은 일정한 한계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낡은 틀에 얽매어 있는 현 정치권의 진영 구도 역시 대변혁이 수반되지 않겠는가 싶다.

 

게다가 우리는 북한이라는 하는 엄청난 우발부채를 안고 있다. 상황에 따라선 감당하기 어려운 리스크로 증폭될 수 있는 과제가 북한 문제이다. 핵으로 중무장한 북한이기에 더더욱 해결하기 어려운 고질적인 숙제가 되어 버렸다.

 

현제로선 별다른 방안이 없긴 하나 그렇다고 전혀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라 본다. 특히 중국 경제가 버블이 터지면서 좌초될 경우 기회가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중국 경제의 붕괴 또는 침체는 우리에게도 엄청난 시련이 되겠지만 말이다.

 

목하 “K형 성장”시대라고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만이 아니라 기업들 또한 철저하게 양극화되고 있다. 같은 기업 내에서도 수익성이 떨어지는 분야의 경우 희망퇴직이 상례화되고 있다. 고용 시장 전반에 걸쳐 한파가 닥쳐오고 있다. 넘쳐나는 유동성으로 인해 아파트와 증시만 오르는 비정상적인 현상이 이제 마치 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이에 영끌과 빚투가 당연시되는 오늘이다.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는 때 역시 올 것이니

 

 

우리 금융시장에 외국인 투자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992년 8월부터였다. 그러니 2022년이 되면 반대의 흐름, 즉 빠져나가는 단초가 열릴 것이다. 그러면 환율이 오를 것이고 금리도 불가피하게 올려야 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초저금리 시대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증시와 부동산 역시 아래쪽으로 물꼬를 틀 가능성이 크다. 자칫 영끌과 빚투로 사들인 자산들의 하락이 있을 경우 문제는 일파만파로 커져갈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증시 상승과 부동산 앙등은 롤러코스터가 내리기 직전의 상황처럼 최고점으로 끌어올려지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야말로 우리 앞에는 지금으로선 전혀 감도 잡히지 않고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생각,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늦은 밤 시각까지 멍 하니 창밖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예전의 어느 봄날 바람 불고 비 내리던 날의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비정상이 정상으로 되돌아가는 일이 하기야 쉬운 일이겠는가!

 

 

힘찬 선어처럼 뛰어오르는 증시

 

 

이 글은 며칠 전에 썼다. 오늘 증시는 또 다시 3000을 넘어서면서 펄펄 날뛰고 있다. 마치 폭풍 치는 회록색의 바다에서 물고기들이 힘차게 수면 위로 날아오르는 것 같다.

 

우리 증시가 질적으로 한 단계 도약했다는 말, 코리언 디스카운트가 사라지고 있다는 말, 부동산에서 금융자산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 그야말로 풍성한 말잔치이고 장밋빛 전망 일색이다. 그래서 웃긴다, 그냥 비정상적인 과열 장세가 이어지고 있을 뿐인데. 곧 조정이 올 것이고 그랬다가 또 다시 올라도 심하게 오를 것이다. 비정상인 까닭이고 훗날 내려도 너무 심하게 내릴 것이다. 일단 돈을 좀 벌고 볼 일이다.

 

(알림: 자연순환운명학 기초반 강좌를 공고했더니 혹시 거리두기가 연장되면 어떻게 되느냐는 문의가 제법 있다. 일정을 연기하거나 그게 정 어려우면 일단 수강료를 반환한 뒤 다시 일정을 잡게 된다는 점 알려드린다.)

좋은 소식부터 

 

 

증시와 관련해서 좋은 소식이 하나 있고 나쁜 소식이 하나 있다.

 

기왕지사 좋은 얘기부터 해본다. 올 해 증시는 많이 오를 것이다. 올라도 아주 많이 오를 것이다. 주식 투자하시는 분들은 작년보다 어쩌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증시가 될 것이라 본다. 그렇게 될 것 같으면 좋은 소식이 분명하다.

 

 

유동성으로 인해 증시는 올라도 지나치게 오를 것이니 

 

 

지금의 증시는 유동성이 많아서 오르는 증시, 즉 유동성 장세이다. 유동성이 좀 많은 것이 아니라 지나치리만큼 많다. 그러니 지나치게 올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우리 증시는 여러 면에서 미국 증시를 따라간다. 당연한 일이다. 예로서 2차 전지 주식의 상승은 미국 테슬라의 움직임, 아울러 애플의 동향에 달려있다. 테슬라가 잘 가면 국내 2차 전지 주식들도 잘 간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경제동향은 문자 그대로 글로벌 경제동향이라 봐도 무방하기에 미국 증시에 연동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유동성만 해도 그렇다. 한국은행 역시 미국 연준(Fed)의 움직임을 적당한 거리를 두고 따라 움직인다. 미국이 금리를 내리면 덩달아 내리고 미국이 올리면 약간의 시차를 두고 올린다.

 

지금 증시는 유동성 증시라고 했는데, 미국에서 유동성을 공급하는 주체는 미국 연준이다. 이는 마치 글로벌 경제에 물을 대는 저수지와 같다. 그런데 작년 초부터 미국 연준은 水門(수문)을 다 열어젖혀서 물을 무제한 방류했고 지금도 여전히 방류하고 있다.

 

 

미국만 해도 작년 M2가 무려 26%나 늘어났으니 사고를 친 꼴 

 

 

그 바람에 미국 시중의 유동성은 엄청나게 폭증했다. 넓은 의미에서의 통화량을 의미하는 M2가 미국의 경우 작년 2020년에 무려 25.98%가 증가했다. (연간 10%만 되도 비정상이라 하는데 말이다.) 아직 집계되진 않았지만 작년 미국의 연간 경제성장률은 대략 마이너스 3.6%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니 무려 30% 정도 돈을 더 늘린 것과 같다.

 

사실 이게 좋은 일은 전혀 아니다. 재화 생산은 조금 줄었는데 돈은 왕창 늘렸으니 수중의 현금가치가 30% 정도 사라진 것과 같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미국 직장인들의 급여가 30% 정도 삭감된 셈이다.

 

(우리나라 역시 작년에 10% 정도 M2가 늘어났다. 수중의 현금이 10% 정도 가치가 떨어진 셈이다. 급여 생활자들이야 그렇다 치고 자영업자들은 완전 사망했다.)

 

시중 유동성을 늘리면 자산 가치는 상승하기 마련이다. 1억하던 물건의 가치가 미국의 경우 1억 3천만원은 되어야만 사실상 본전이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부동산과 주식이 많이 오르고 있다. 실은 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 정도 올라야만 본전인 것이다.

 

이런 이치는 우리도 마찬가지, 그런 까닭에 부동산이 펄펄 오르고 주식도 폭등하고 있다. 올 해 증시가 많이 오를 것이라 했는데 실은 올라야만 그런대로 제 가치를 유지할 수 있기에 그렇다.

 

하지만 증시가 활황이다 보니 수수료를 챙기는 증권회사들은 신바람이 났다. 소위 증권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대박이 났다. 수익이 마구 늘어나고 있으니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요즘 증권방송에 출연하는 전문가들을 보라, 얼굴에 희색이 가득하다. 메뚜기 한 철.

 

 

3700까지도 갈 것 같아서 

 

 

나 호호당의 추산으론 우리 증시에서 코스피 시장은 시점이야 모르겠으나 3700 포인트 정도는 갈 것 같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앞으로도 1000 포인트는 더 오를 것이란 얘기이다.

 

문제는 도중에 당연히 하락 조정도 그 폭이 만만치 않게 클 것이란 점이다. 오른다고 해서 일직선으로 오르는 법은 없고 엄청 겁을 줘서 감히 함부로 주식을 사지 못하게 만들어놓은 뒤 어느 순간 순식간에 올라가버리기에 주식은 어렵다. 그렇지 않으면 누군들 주식에서 성공 못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아무쪼록 돈 많이 버시길.

 

 

나쁜 소식 차례

 

 

이것으로서 좋은 소식은 마무리하고 다음엔 나쁜 소식에 대해 얘기를 해보자.

 

이제 우리는 물론이고 글로벌 경제는 사실상 외통수에 걸려들었고 증시는 더더욱 그렇다. 언제가 될 진 모르겠으나 對價(대가)를 무진장 호되게 비싸게 치르게 생겼으니 이런 말을 한다.

 

 

증시가 이젠 비정상적으로 변질해버렸기에 

 

 

연휴 기간 중에 증권방송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데 어느 전문가가 한다는 말을 듣고 배꼽을 잡고 웃었다. 금년도 투자자들이 무척이나 경계해야 소식이 있다면서 하는 말이 글로벌 경기가 빠르게 회복된다는 소식, 달러가 강세로 간다는 소식,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있다는 소식, 이런 말이 들려오면 증시가 급락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틀린 말이 아니다. 경기가 빨리 회복되어 경제가 정상화되거나 인플레이션이 강해지거나 달러가 강세로 가면 달러 유동성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결국 미국 연준이 금리를 올리게 되는 상황이 된다, 그러면 당연히 증시가 하락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어이가 없다, 경제가 정상화되면 주식은 망한다는 얘기가 되니 말이다. 예전의 증시는 그 나라의 경제가 발전하거나 기업들이 실적을 낼 때 상승했는데 이젠 경제가 호실적은 고사하고 정상화만 되어도 증시가 내리게 생겼으니 이건 무슨 상황인가?

 

결국 지금의 증시는 이미 비정상적으로 변질되었다는 얘기이다.

 

시중에 돈을 엄청나게 풀어 놓았다. 그런데 경제가 정상화되고 회복될 경우 엄청나게 풀린 돈은 곧바로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것이다. 그러면 급격하게 금리를 올려야 할 것이고 고금리인 즉 증시엔 쥐약이 된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의 증시는 경제가 정상회복될 거란 소식이 들리는 날부터 하락세로 돌아설 것이란 얘기이다. 그러니 이게 비정상이지 정상이겠는가!

 

 

모든 비정상의 출발점은 바로 양적완화였으니 

 

 

근본적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 큰 눈에서 보면 이 모든 비정상의 출발점은 미국 연준이 저지른 짓 때문이다. 2008년 여름 미국 금융위기가 발발했을 때 연준의 버냉키 의장은 돈을 직접 찍어서 시중에 공급하는 소위 양적완화란 것을 단행했다. 이게 바로 모든 비정상의 출발점이었다.

 

당시의 금융위기 역시 힘들어도 정상적으로 처리하면 될 일이었다. 은행들의 막대한 부실채권은 정부가 배드 뱅크(Bad Bank)를 만들어서 처리하고 또 시중금리가 상승하더라도 경제가 정상화될 때까지 떨어낼 것은 떨어내도록 했어야 했다.

물론 세계적인 불황이 덕쳤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게 처리했어야만 어렵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경제가 정상화될 수 있었을 것이라 본다.

 

아파야 할 것을 아프지 않게 한다고 연준의 버냉키는 일종의 마약성 치료제인 스테로이드 처방을 내린 셈이었다. 그런데 한 번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무려 세 차례나 양적완화를 하고도 여전히 문제가 풀리지 않자 시즌2란 명목으로 3.5차 양적완화까지 했다.

 

그렇게 처리하자 글로벌 경제공황은 오지 않았으나 문제는 그렇다고 경제가 활발하게 살아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냥 비실비실한 글로벌 경제가 2008년 이후 2020년 초까지 이어졌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에 코로나19가 발발했다.

 

 

마약성 스테로이드를  이젠 무제한 투여하고 있으니 

 

 

그러자 연준의 파월 의장은 이번에 무제한 양적완화란 것을 단행했다. 종전의 나름 절제된 스테로이드 투여가 아니라 무한정 투여했던 것이다. 부작용 같은 것은 나중 문제라 하면서 말이다. 이에 유럽도 일본도 얼씨구 하면서 따라했고 한국은행도 슬그머니 따라서 움직였다. 그 바람에 작년 초반 선진경제국들은 무려 17조 달러에 달하는 ‘가짜 돈’을 시중에 공급했다.

 

일종의 마역성 치료제인 스테로이드를 장기 투여하면 엄청난 부작용을 유발한다. 그런데 이젠 아예 대놓고 무한정 썼다. 그 바람에 글로벌 경제엔 돈 즉 유동성이 일대 홍수를 이루고 있다. 그 홍수가 자산시장인 부동산과 증시로 밀어닥쳐서 거대한 상승의 물결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비정상적인 상승인 것이다.

 

총량 불변의 법칙이란 게 있다. 양적완화를 했어도 결국 경제가 견뎌내고 감내해야 할 고통의 총량은 변하지 않을 거란 얘기이다. 그런 까닭에 미국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 경제는 여전히 디플레이션 압력에 시달리고 있는 것인데 이번에 또 다시 그리고 무제한 양적완화를 했기에 더 큰 대가를 치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고 본다.

 

 

멀지 않아 호된 대가를 치르게 생겼으니 

 

 

그 시점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무제한 양적완화로 인한 비용은 치르게 될 것이라 본다. 그리고 그 시점이 그리 멀지 않을 것으로 본다. 2008년 11월부터 양적완화란 것이 단행되었으니 60년 순환이란 관점에서 볼 때 그 1/4인 15년이 경과한 2023년 11월부터 무지막지한 청구서가 날아들지 않을까 하는 추산이다.

 

그렇기에 때가 되면 증시도 엄청난 하락세를 보일 것이다. 앞에서 3700 포인트를 얘기했는데 하락할 경우 1000 포인트 이하까지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 과정에서 이번에 주식시장에 뛰어든 대부분의 개미들은 그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게 될 수도 있겠다. 한 번 재미를 보고 나면 아니다 싶어도 쉬이 떠날 수도 없기에 그렇다. 그게 증시의 魔力(마력)이니.

 

증시 하락 역시 시중의 유동성을 빨아들여 없애는 대표적인 방법 중에 하나란 얘기이다.

 

좋은 소식, 나쁜 소식 다 말씀드렸다. 이 글을 접하는 독자님들만큼은 그저 무사하시도록.

 

제자님들에게 알리는 사항: 나 호호당은 작년 5월에 이사를 했는데 추석 때 저번 살던 주소로 선물을 보내신 제자님들이 적지 않았다. 대다수 물건이 반송되었음을 뒤늦게 알았다. 이에 새 주소를 알려드린다. 서울 서초구 태봉로2길 60, 309동 1104호(우면동 서초 네이처힐 아파트)

자정 넘기니 새 해라, 거 참 신기한 일일세! 

 

 

현재 시각 00시 34분. 표준시와 서울 지역의 진태양시는 32분 05초 차이가 있으니 이제 2021년으로 넘어온 지 1분 55초가 지났다. 그래, 새 해인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새 해엔 또 무슨 험한 일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을 것인지 겁부터 난다.

 

앞의 문장은 오늘 31일에서 1일로 막 넘어온 시각에 썼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밤 11시 55분, 2021년의 하루가 거의 지난 셈이다.

 

살아보면 알게 되겠지만 나이가 들면 한 해 가는 것이 그리 길지 않다. 시간의 진행에 둔감해지기 때문이다. 올 해로서 나 호호당은 세는 나이로 예순 일곱이 된다. 세월이 이처럼 잘도 가니 앞으로 남은 삶의 시간도 후다닥 지나가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삶이란 탄생으로 열고 죽음으로 닫는 괄호와도 같아서

 

 

삶이란 일종의 括弧(괄호)속에 갇혀있다. 탄생으로 괄호를 열고 죽음으로 괄호를 닫는 그 사이의 공간 또는 시간이 삶이란 생각이다. 그 공간과 시간이 처음에는 마치 무한할 것 같다는 착각을 하지만 살다 보면 서서히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유한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 호호당 역시 괄호를 닫는 시점까지 그렇게 긴 시간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해가 갈수록 느낀다.

 

그렇다고 해서 영원히 무진장 괄호 속에 머물고 싶지도 않다. 그게 만일 가능하다면 그 영원의 시간들이 너무나도 지루할 것 같아서 두려운 생각마저 든다. 설령 늙지 않고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 해도 그건 바로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속의 톰 크루즈 신세 밖에 더 되겠는가!

 

그런 까닭에 삶이란 이럴 수도 또 저럴 수도 없는 버거운 무엇이란 생각을 이따금씩 한다. 늘 그렇진 않다는 얘기이다. 그 바람에 가끔 혹시라도 죽고 나면 전혀 다른 세계 또는 우리들이 흔히 靈界(영계)라고 말하는 세상과 공간을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기대어린 공상도 해보게 된다.

 

괄호의 앞과 뒤는 無(무)가 아니라 영원히 이어지는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슬과도 같은 구조로 되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혹은 기대. 불교나 힌두교의 윤회라든가 아니면 삼십삼천의 세계 말이다. 欲界(욕계)가 아니라 色界(색계) 내지 無色界(무색계) 같은 것을 경험할 수 있진 않을까 하는 기대. 하지만 살아선 도무지 믿을 수가 없고 죽어봐야 알 수 있겠는데 그렇다고 당장 죽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새 해가 시작되고 있다. 우리가 보통 삶을 몇 년 살았느냐를 기준으로 하기에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되다보니 앞서와 같이 거의 넋두리와도 같은 얘기를 하게 된다. 새 해 벽두답게 몽롱한 탓이라 해두자.

 

이제 정신을 차려본다.

 

 

2021년의 새로운 계획과 포부

 

 

살면서 베일에 가려져 있던 운명의 이치와 법칙에 대해선 나름 집요하게 파고든 결과 끝내 알아내고야 말았다. 나 호호당은 천성적으로 호기심을 삶의 동력으로 하는 사람인데 깊은 경지에까지 알고 나니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운명에 대한 호기심이 이젠 많이 옅어진 것이다. 알아내는 과정에서 갖은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지만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누차 먹다 보면 그저 그렇듯이 운명에 대한 궁금증도 마찬가지.

 

그래서 올 해부턴 마침내 그간에 알아내고 파악한 운명의 이치와 법칙, 이른바 ‘자연순환운명학’의 전체에 대해 그 세부 내역까지 글로 정리해볼 생각을 먹었다. 원론부터 먼저 쓰고 다음엔 각론, 그리고 구체적인 사례집으로 이어지는 집필이 될 것 같다. 전체를 책으로 엮어내려면 적어도 3년은 걸릴 것 같은데 일단 내년에 원론부터 먼저 책으로 엮어볼 생각이다.

 

그 작업을 마치고 나면 평생 또 다른 방면에서 연구해온 언어의 기원과 생성 원리에 대한 것을 책으로 정리해볼 생각, 그리고 한일고대사에 숨겨진 내용들을 책으로 정리해볼 생각도 가지고 있다. 이에 추산해보면 향후 10년의 작업 분량은 족히 될 것도 같으니 그러면 70대 후반이 될 것이고 그 다음엔 숨만 조심스럽게 잘 쉬다가 가면 되리라.

 

 

증시, 지나치게 오를 것이고 지나치게 화를 부를 것이니

 

 

증시가 엄청난 유동성으로 인해 잘도 오르고 있다. 이 모두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탓이니 참으로 아이러니, 逆說(역설)이다.

 

올 해 증시 역시 작년보다야 덜 하겠으나 그 역시 드라마틱할 것으로 본다. 도중에 만만치 않은 조정도 있겠지만 결국 상상 외로 많이 올라갈 것으로 내다본다.

 

그런데 많이 오르면 실은 그게 바로 문제의 발단이 될 것이다. 올 해 말이나 내년, 그 시점을 알긴 어렵지만 경제가 정상 회복되는 그 순간부터 증시는 그야말로 엄청난 하락을 시작할 것이니 그렇다. 인플레이션이 시작되면 유동성을 흡수하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니 말이다.

 

롤러코스터, 잘 아실 것이다. 롤러코스터를 타보면 처음엔 트랙의 최고점까지 차체가 끌어올려진다. 위치에너지를 최대한 얻기 위함이고 그로서 내리기 시작하면 그게 엄청난 운동 에너지로 바뀐다. 미국 증시도 그렇겠지만 우리 증시야말로 최고의 롤러코스터가 되리라 예상한다. 결국엔 수많은 그리고 막대한 액수의 손실이 발생하면서 막을 내릴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부동산 역시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까 싶다.

 

증시에 대해선 곧 별도의 글을 통해 이야기해보겠지만 여기에서 간단히 얘기해보면 우리 증시는 2000 포인트 선을 넘지 말아야 했다. 그 선이 우리 경제가 갈 수 있는 최대한의 수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그 선을 다시 넘어서 3000에 접근하고 있으니 이는 지극히 무리한 경제운영, 즉 돈의 공급을 늘려서 만들어내고 있는 억지 상승인 까닭이다.

 

억지는 결국 禍(화)를 초래한다. 2000선에서 머물렀다가 하락했다면 연착륙이 가능했겠으나 그 이상 선을 넘어서 한참을 올랐다가 내릴 경우 그건 경착륙밖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부동산도 마찬가지.

 

 

새롭고 거대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2020년은 최악의 해였지만 산업 방면에서 거대한 변화가 시작된 한 해이기도 했다. 2차 전지와 친환경 에너지 산업으로 전 글로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에 석유 수요는 2019년으로서 정점을 찍었다는 보고도 나오고 있다.

 

특히 2차 전지는 향후 3-4년 동안 ‘표준’규격을 을 선점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것이다. 일단은 테슬라이고 다음으론 2024년에 나올 애플의 자율주행 전기차가 표준을 정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테슬라도 애플도 성공을 장담하긴 어렵다는 점에서 2차 전지 산업은 요동을 치고 부침을 거듭해 갈 것이다.

 

그런가 하면 현대차가 올 해 선을 보일 전기차 플랫폼의 첫 제품인 아이오닉5가 글로벌 시장에서 어떤 반응을 얻느냐 또한 우리 경제의 명운을 가름할 엄청난 승부처가 되고 있다.

 

이처럼 우리 기업들 역시 사생결단의 각오로 막대한 투자를 감행함은 물론이고 적은 이윤의 마진을 놓고 싸움을 펼쳐야 할 것이니 그 결과는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친환경 에너지의 경우 덩치가 작은 미국의 ‘넥스트에라 에너지(NEE)’사가 석유업계의 거인인 엑손모빌의 시가 총액을 넘어서고 BP(브리티시페트롤리엄)사가 이젠 ‘석유의 시대가 끝났다’고 선언하고 장차 신재생에너지 사업 투자를 확대해 종합 에너지회사로 변신해가겠다고 발표했다.

 

그런가 하면 반도체의 상징적 존재이던 ‘인텔’이 금년 중에 생산 부문에서 손을 뗄 것인가를 놓고 깊은 숙고에 들어갔다고 한다. 인텔의 경우 1968년에 설립되었으니 戊申(무신)년인데 세상 만물은 60년의 순환 속에서 48년이 흐르면 정체기에 들기 마련이다. 이에 2016 丙申(병신)년부터 인텔은 깊은 정체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에 미국의 상층 엘리트들은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인텔마저 생산을 놓게 되면 반도체 생산은 삼성전자와 TSMC에게 의존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와 대만은 중국과 가까운 사실상의 최전선 변경 지역에 위치해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장기 전략 측면에서 리스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미국은 TSMC가 생산거점을 대거 미국 안으로 옮겨주길 기대하고 또 압력을 넣고 있다.

 

그런 면에서 작년에 삼성이 파운드리와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2030년까지 글로벌 1위를 목표로 설정하고 새롭게 투자에 나선 것은 그야말로 승부수라 하겠다. 뭐니 해도 우리 대한민국을 끌어가고 있는 반도체, 대한민국은 반도체 수출로서 먹고 사는 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닌 까닭이다.

 

이 점과 관련해서 나 호호당이 특별히 걱정하고 있는 것은 삼성전자가 반도체를 시작한 것이 1983년이었기에 48년이 흐른 2031 辛亥(신해)년에 가서 맞이할 정체기를 어떻게 극복해 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처럼 작년부터 산업 기술 방면에서 실로 많은 것들이 커다랗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도전과 낡은 과제,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어서 

 

 

우리나라의 경우 2000년 초부터 시작된 양극화가 이제 20년을 넘어가면서 이젠 극심한 경지에 이르렀다. 대한민국, 안팎으로 거센 도전에 직면해있다. 이것으로서 2021년 새 해 첫 글을 연다.

 

마지막으로 올 한 해 역시 좋은 한 해가 되긴 어렵겠지만 그저 부디 독자들의 가정이 無事(무사)하고 무탈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옛 말에 대한 또 다른 해석

 

 

登高自卑(등고자비)란 말이 있다. 유교 경전인 中庸(중용)의 말로서 먼 곳에 이르려면 가까운 곳에서부터 출발해야 하고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말에서 왔다. 譬如行遠必自邇(비여행원필자이),譬如登高必自卑(비여등고필자비).

 

때론 등고자비란 표현을 달리 해석해서 지위가 높아질수록 스스로를 낮추어야 한다는 處世(처세)의 말로 쓰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의 글은 또 다른 뜻의 말로서 얘기해보고자 한다. 높은 곳에 오르면 일부러 몸을 낮추어야 한다는 當爲(당위)의 말로서가 아니라 절로 자신의 왜소함을 알게 된다는 뜻으로 이해해 보고자 한다.

 

긴 인생 살다 보면 알게 되는 것들이 참 많다. 그냥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그러함을 이해하고 체득하게 되는 것들이 많다는 말이기도 하다.

 

 

높은 산에 오르면 모든 것이 다 거기에서 거기라서

 

 

높은 산에 오르면 시야가 완전히 달라진다. 낮은 땅에선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하늘이 더 높아지고 땅이 더 크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건너 편 산은 물론이고 더 멀리 더 많은 산들의 능선과 봉우리들까지 눈에 들어온다.

 

낮은 곳에 있는 것들은 일목요연하다. 낮은 곳에선 커다랗던 숲도 큰 땅에 비하면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고 눈앞을 흘러가던 강도 그 길이가 훨씬 더 크고 길게 이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을을 내려다 볼 것 같으면 2층 건물이나 10층 건물이나 다 그만그만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알게 된다. 우리가 평소 지내는 낮은 땅에선 차이가 크게 느껴지는 것들이 높은 곳에서 보면 그 차이가 거의 없거나 미미하다는 사실을. 줄여 말하면 땅 아래의 모든 사물이 높은 산과 거대한 산, 장대한 하늘에 비하면 그저 도토리 키재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물의 一齊(일제)함

 

 

사물의 一齊(일제)함을 보게 되고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알게 된다, 자기 자신이 이 크고 넓은 세상에 비하면 사실 아무 것도 아니란 사실,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존재란 사실까지 알게 된다. 즉 自卑(자비)함을 깨닫게 된다.

 

나아가서 지위가 높다 해도 돈이 많다 해도 얼굴이 잘 생겼다 해도 그게 다른 이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그렇게 느낄 순 있다 해도 세상의 거대함과 유구함에 비하면 그 차이란 것이 사실 아무 것도 아니란 것을 알게 된다는 말이다.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다른 사물들까지 포함해서 다 미미하고 왜소하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달리 얻는 게 있다. 그건 만물이 모두 微微(미미)하고 평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우리 각자는 어떤 통쾌함과 호쾌한 마음을 얻게 된다.

 

그간 좀 잘 살아보고자 또는 좀 더 앞서가고자 아등바등 애를 쓰고 기를 썼던 것이 별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 애를 써도 계속 뒤쳐진다 싶어서 가졌던 열등감이나 自塊(자괴)의 심정 또한 전혀 그럴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 주변의 누군가가 내 눈에 참으로 한심하고 ‘찌질’해서 무시하던 마음 또한 실은 나의 찌질함으로 인한 것이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한심하다고 여겼던 주변의 그 사람이나 좀 잘 났다고 우쭐대는 당신이나 모두 이 세상에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것을 알고 나면 그로서 시원해지고 통쾌해지며 이윽고 어떤 자유를 얻게 된다. 편해진다.

 

 

장자의 소요유 그리고 제물론

 

 

어쩌다 한 번 태어나 살아보고 살아가는 인생, 주어진 시간 동안 재미나게 놀다가야지 하는 마음을 가질 것 같으면 그건 다름 아니라 莊子(장자)가 글을 통해 남기고 이름을 붙인 逍遙遊(소요유)편의 내용이고 만물이 실은 一齊(일제)하고 평등하다는 것을 보았다면 그건 장자 齊物論(제물론)의 경지이다.

 

높은 산에 올라 땅을 내려다보고 눈을 수평으로 두어 멀리까지 바라본 뒤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우러를 것 같으면 모든 사물을 포함해서 자기 자신의 卑賤(비천)함을 알게 될 것이고 세상과 천지의 장대함과 유구함을 보게 되니 마음이 호쾌해지고 시원해져서 걸침이 없게 된다. 크다 해도 그만이고 작다 해도 그만이다, 모두가 평등하고 모든 사물이 일제하다. 그러니 통쾌하고 시원하다.

 

 

절로 낮아지는 자기 자신

 

 

높은 곳에 오르면 억지로 자신을 낮출 것이 아니라 절로 낮아진다. 높은 지위에 올라 겸손을 떨면서 그 지위를 보전하려고 애를 쓸 일이 아니라 절로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잘 난 내가 없으니 굳이 겸손을 떨고 그다지 사양할 나도 없다. 잠시 어쩌다가 그 지위에 있게 되었다고 여기면 그만이다.

 

 

객관과 주관

 

 

사물을 이렇게 볼 수 있다면 그게 비로소 客官(객관)의 눈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주관의 마음도 없지 않다, 각자는 작은 小宇宙(소우주)란 말이 있으니 말이다.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고 우주도 없으니 나야말로 귀한 존재란 생각이 있는데 그 또한 틀린 말이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는 바로 나 자신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 절대 틀린 말이 아니다.

 

이에 만물이 미미하고 평등하며 일제하다는 객관의 생각과 나야말로 더 없이 소중하다는 주관의 생각은 그렇다면 충돌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충돌할 것도 같지만 전혀 충돌하거나 모순되지 않는다. 각자가 소중한 만큼이나 타자도 소중하다고 알면 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이 소중하고 귀하다고 알면 된다. 크게 눈을 뜨고 보면 모든 생명들은 저마다 존재하고 살아가기 위해서 엄청난 투쟁을 하고 있다. 살기 위해선 다른 생명을 잡아먹기도 하고 잡아먹히기도 한다.

 

 

알고 보면 모든 것이 다 애처로워서 

 

 

그렇기에 이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고 슬픔으로 가득하다. 삶은 苦海(고해) 즉 고통의 바다인 것이 맞다. 이에 그 고통과 슬픔을 직시하면서 애처롭게 바라보는 눈이 있으니 그를 慈悲(자비)의 마음이라 한다. 慈悲心(자비심)이 그것이다. 동시에 사랑의 마음이다.

 

이런 자비의 눈은 객관의 눈이자 주관의 눈이기도 하다. 동시에 자비의 눈은 바깥으로만 향하지 않는다. 바깥에 있는 다른 존재들과 생명들도 애처롭지만 우리 모두 스스로도 애처롭다. 우리 모두 살아보려고 그 얼마나 애를 쓰고 참고 견디고 있는가.

 

이 또한 높은 곳에 오르면 보게 되고 알게 된다. 너른 세상이 온통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세 가지 시선과 생각이 하나로 

 

 

객관의 눈에서 만물이 다 거기에서 거기란 사실, 일제하고 평등하다는 사실을 알면 속이 통쾌하고 시원해진다. 豪爽(호상)해지니 莊子(장자)가 일러준 가르침이다. 각자가 하나의 소우주란 점은 동서양의 공통된 지혜로서 주관의 눈이다. 또 하나 만물이 그리고 모든 생명이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애처롭고 측은하니 자비의 눈이고 사랑의 마음이다.

 

높은 곳에 오르면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받아들일 수 있고 그 세 가지 생각과 마음이 서로 충돌하거나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높은 곳이라 해서 다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드라마에 ‘펜트하우스’란 것이 있다. 100층 고층 건물의 가장 높은 층에서 지상을 오만한 자의 눈으로 내려다보는 자들과 그런 위치에 가고자 발악하는 그야말로 세속의 드라마이다. 아직 진짜 높은 곳에 올라보지 않은 탓에 펼치게 되는 찌질한 자들의 애처로운 얘기이다. 아직 성숙되지 않은 자들의 성장 드라마라 해도 좋겠다. 아무튼 ‘스카이 캐슬’에 이어 시청률 좀 나오게 생겼다.

 

자아에 빠져 헤매다가 어느 순간 알게 되리니

 

사람은 태어나서 몇 년이 지나면 자기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된다. 自我(자아)를 알게 되면서 자신의 존재 증명, 세상에 있어야 할 근거와 타당성을 찾느라 애를 쓴다. 그게 좀 부족하다 싶으면 열등감에 괴로워하기도 하고 좀 잘 된다 싶으면 자만감에 우쭐댄다. 그렇게 열등감과 자만감 사이를 오가면서 수십년을 살아간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인생의 연륜이 쌓이면 문득 알게 된다. 앞에서 말한 것들을, 그건 인생이란 높은 산에 올랐기 때문이라 해도 무방하다.

 

 

운과 명을 넘어서서  

 

 

운명이란 것이 과연 있는가? 하는 궁금증에서 시작된 나 호호당의 긴 여행이 시작된 것이 1971년이니 이제 근 50년에 이르고 있다. 길고 긴 여정이었다. 이제 운명이란 것이 무엇이고 어떤 것인지 제법 알만큼 알게 되었다.

 

이에 사람이란 운명의 곡선 위에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위상이 달라질 뿐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원운동은 돌아오는 것이니 운 또한 돌아오는 것에 지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제 2020년도 나흘 밖에 남지 않았다. 오늘 글로서 송년 인사를 갈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