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국내에서도 인기가 많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처녀작이다. 얘기하려는 것은 소설의 내용이 아니라 제목이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는 말이 무슨 뜻일까? 하는 점이다.

 

조용필 가수의 노래에도 바람의 노래란 것이 있다. “살면서 듣게 될까/ 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 하는 가사가 그것이다. 가수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는 노래도 있다. “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는 노랫말로 시작한다. 그런가 하면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 는 제목의 시집 제목이자 영화도 있고 ”바람 부는 날이면 언덕에 올라“, 이렇게 시작하는 옛 노래도 있다.

 

예로부터 시나 노래, 또 오늘날의 가요 속엔 바람을 언급하는 내용들이 무수히 많았고 지금도 여전히 바람에 관해 말하는 내용들이 들어가고 있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그렇다.

 

시작을 하거나 소설을 쓸 때 제목에 붙여도 좋고 내용 속에 바람에 관한 얘기를 넣을 것 같으면 인기를 얻을 확률이 아주 높다. 예로서 이제는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영국의 “폭풍의 언덕”이란 소설 역시 제목에서부터 바람을 언급하고 있다. 영국 요크셔 지방의 황량한 벌판과 바람을 배경으로 하는 로맨스 소설이다. 그런가 하면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g in the Wind)란 노래를 부른 밥 딜런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처럼 문학이나 노래 속에서 “사랑”이란 단어만큼이나 자주 등장하는 것이 바로 바람이란 단어라 하겠다.

 

왜 그럴까? 하는 것이 오늘 글의 주제이다.

 

간단히 말하면 ‘바람’이란 단어는 누군가 말하고 또 그를 들을 때마다 그리고 생각할 때마다 우리의 속을 흔들어 놓거나 또 설레게 하는 그 무언가가 있다는 점이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약간 에둘러 가보자.

 

성인이라 단어 앞에 들어간 聖(성)이란 한자는 원래 儒敎(유교)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른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훗날에 와서 聖人(성인)이란 하면 “덕과 지혜가 뛰어나고 사리에 정통하여 모든 사람이 길이 우러러 받들고 모든 사람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란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그러다가 19세기 무렵 동아시아에 기독교가 전래될 때 서양의 ‘saint’란 단어에 대해 대응하는 번역어로서 ‘거룩한 순교자’의 의미로 사용되고도 있다.

 

그런데 聖(성)의 원래 의미는 무엇일까? 에 대해 생각해보면 아주 재미가 있다. 알고 보면 공자가 언급하기 이전부터 聖(성)이란 단어는 특유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상형 문자에서 발전해온 한자이기에 聖(성)이란 글자를 분해해보면 귀 耳(이)와 입 口(구), 천간 壬(임)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壬(임)자는 나중에 추가된 것이고 원래는 耳(이)와 口(구)로만 되어 있었다. 이에 대해 듣고 말하는 것에 사람의 총명함이 다 들어 있기에 총명한 사람이 聖(성)이라고 해석되기도 한다. 이런 풀이는 기억하기엔 좋아도 정확한 해석은 아니다.

 

귀 耳(이) 곁에 붙은 입 口(구)는 초기 갑골문 속의 상형문자로 보면 한글의 자모인 ‘ㅂ’의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이 ‘ㅂ’의 뜻은 무엇일까? 하면 그건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쓰는 祭器(제기)였다.

 

이에 聖(성)이란 한자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신의 소리 즉 메시지를 귀로 들을 수 있는 신령한 무당을 뜻하는 단어였다.

 

(이 점에 대해 나 호호당은 일본의 뛰어난 한자 학자인 ‘시라카와 시즈카’ 선생의 책을 통해 알았다는 사실을 밝혀둔다.)

 

따라서 성인이란 일반 사람들이 들을 수 없는 신의 메시지 또는 계시를 들을 수 있는 특별한 사람 또는 무당을 뜻했다.

 

그러다가 훗날에 이르러 사회가 보다 조직적으로 변하면서 정치적 권력자인 王(왕)이 등장했고 중국에선 유교가 생겨나면서 뜻이 새롭게 해석되었다.

 

먼 옛날엔 동서양 모두 신령과 통하는 靈媒(영매)는 巫(무) 즉 무당이었고 무당이 씨족이나 부족을 다스렸다. 그러다가 인간 간의 투쟁이 격렬해지면서 힘이 뛰어나고 통솔력이 뛰어난 자가 사회적 권력을 잡게 되었다. 그런 자가 추장 또는 족장이 되고 또 나중엔 왕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영통한 무당의 권위는 예전에 비해선 줄어들었으나 그럼에도 그럭저럭 유지되었다.

 

다시 말해서 과거 神政一致(신정일치) 사회에서 신적 권력과 정치적 권력이 분화해가기 시작한 것이다. 왕이 최고 권력자가 되자 신의 소리를 듣고 통할 수 있는 자는 결국 왕권에 종사하는 새로운 직종으로서 神官(신관)이 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聖(성)의 의미 역시 변화하게 되었다. 유교의 鼻祖(비조)인 공자 시대에 이르러선 세속적 권력은 왕의 영역이지만 정신적 영역은 여전히 聖人(성인)이라 부르며 나름의 권위를 유지해갔던 것이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간다.

 

무당이나 신관이 신에게 제를 올리면서 신의 계시를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 聖(성)이란 단어 속에 내포되어 있다. 그렇다면 무당은 어떤 식으로 신의 계시나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일까? 하는 점이다.

 

그 답은 이미 글 앞부분에서 얘기했다. 바로 바람소리를 들으면서 그 속에 실려 있는 신의 메시지를 들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바람의 노래’를 들으면서 거기에 담긴 계시를 신관들이나 무당들은 들었던 것이다.

 

우리 아들의 어린 시절 밤이 되었는데 좀처럼 잠들지 않고 놀아달라고 칭얼대면 돌아가신 선친께선 “어서 자야지, 창밖에 바람 도깨비가 울고 있잖아, 어서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자야만 괜찮거든” 하는 얘기를 하시곤 했다.

 

겨울밤 바람소리는 대단히 두려운 바가 있다. 갑자기 세게 불기도 하고 휘몰아치기도 한다. 나이가 들면 으레 그런가 보다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되지만 어린 시절 겨울밤 바람소리에 무서워했던 기억은 누구나 한 번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중국 고대 기록에 보면 바람마다의 이름이 있었으니 그건 사실 바람신 즉 風神(풍신)의 이름이었다. 네 방위의 風神(풍신)에 대해 가령 동쪽의 바람신을 劦(협)이라 한 것이 그 예이다. 그런가 하면 고대 그리스 신화에선 겨울에 부는 북쪽 바람신의 이름을 보레아스(Boreas)라고 했다.

 

四方(사방)에는 저마다 신이 있어 소식을 보내오고 손길을 뻗쳐오는데 그 방법이 바람이거나 또는 새, 즉 神鳥(신조)를 보내는 방식이었다. 추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면 철새는 옛 사람들에게 신의 전령이자 使者(사자)였던 것이다. 우리 민속의 솟대가 그것이다.

 

風土(풍토)라는 단어가 있다. 바람과 땅이란 말인데 흔히 특정 지방의 기후와 토질을 뜻하기도 하며 풍토에 따라 사람의 성격이나 성향도 달라진다는 생각, 지금도 우리들은 하고 있다. 바람은 변화의 상징이고 땅은 고정된 것이니 이 둘이 만나서 특유의 기질과 성향을 형성한다는 생각이다.

 

그만큼 옛 사람들에게 바람이란 변화를 의미했고 따라서 그건 특별한 신의 손길로서 여겨졌다.

 

살랑대는 봄바람이 불면 꽃이 피고 새싹이 움텄다. 봄바람은 생명을 일으키는 신의 손길이었다. 쌀쌀한 가을바람이 불면 초목이 시들게 되니 엄숙 살벌한 기운 즉 肅殺(숙살)의 손길이었다. 겨울바람이 불면 모든 것이 재로 돌아가고 대지 위엔 앙상한 것들만 남게 되니 그건 죽음의 손길이었다. 이처럼 바람은 변화를 불러온다.

 

오늘날엔 보기 드물지만 예전 항구에 가면 어선들이 출항하기 전 무당인 만신이 굿마당을 펼친 다음 이번에 나가면 滿船(만선)이 될 것이란 말을 한다. 그리고 바람이 불면 배들이 일제히 出漁(출어)에 나선다. 그 바람은 이번에 나가면 좋을 것이란 신의 소식을 전하는 것이고 만신은 그 바람의 소리 또는 노래를 듣고 감을 잡는 것이다.

 

신이 난다는 말을 달리 신바람이 난다고도 한다. 神(신)의 바람이 불어 흥이 나서 즐겁고 또 그럴 때 일을 하면 잘 된다는 뜻이다. 바람이 났다는 말, 바람을 피운다는 말, 이 모든 말들은 뭔지 모르겠지만 어떤 새로운 변화가 생겼음을 뜻한다.

이제 마무리할 때가 된 것 같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하는 말은 바람 속에 실려 오는 신의 메시지를 들어보라는 얘기인 것을 이제 알았을 것이다. 오늘날의 세계는 과학에 의해 바람은 공기의 기압 차이에 의해 생겨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또 유일신 사상이 종교적 권력을 독차지하게 되면서 만물에 깃들어 있던 모든 신들과 정령들은 자취를 감췄다.

 

과학의 발전은 인류에게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엄연하고도 부정할 수 없는 과학의 功績(공적)이다. 더불어 유일신의 종교는 우리들과 수시로 대화하고 때론 성을 내기도 하고 때론 우리들을 달래주기도 하던 자연 속의 신들과 정령을 모두 걷어가 버렸다. 그런 생각은 迷信(미신)이라 폄하하면서 말이다.

 

그 결과 인간의 삶은 공허해지고 말았다. 하지만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들은 우리의 삶에서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중요한 그 무엇을 잃어버렸음을 인지하고 있다. (물론 사회의 한 구석에선 무당들이 겨우겨우 신과의 소통을 이어가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시와 노래, 문학을 포함한 모든 예술은 과학이나 절대자의 종교가 앗아가 버린 그 무엇, 우리가 상실해버린 그 무엇들을 끊임없이 되풀이해서 일러주고 있다. 예술은 학문이 아니다, 그렇다고 종교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상실한 종교적인 감성을 채워준다. 그들이야말로 먼 옛날 바람의 소리 속에서 어떤 노래를 들을 수 있었던 무당 또는 靈媒(영매)들과 같기 때문이다.

 

예술로 돈 되기란 실로 어렵지만 그럼에도 예술이란 것이 존재하는 까닭은 모든 것을 과학적 설명으로 채우려는 현대 사회, 자연 속의 무수한 신들과 정령들을 몰아낸 현대 종교의 세상에서 여전히 본질적이고 원초적인 종교적 감성을 간직하고 있는 우리들의 수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장마는 유난히 바람이 세차다. 어젯밤 자정 넘은 늦은 시각 아파트 근처 길가에 서서 습기를 가득 머금은 바람 앞에 몸을 맡긴 채 이번 바람은 또 어떤 노래를 전해주고 있는지 궁금해 했다. 눈을 감고 귀를 쫑긋 세워보았다.

 

원문: 해가 연우에 이르면 고용이라 하고 연석에 이르면 하용이라 한다. 至于淵隅(지우연우) 是謂高舂(시위고용) 至于連石(지우연석) 是謂下舂(시위하용)

 

 

 

해설: 淵隅(연우)란 먼 서쪽 땅에 있는 커다란 연못을 말하는데 나 호호당 생각에 중국 서쪽 신강 위구르 지역에 있는 靑海(청해)성 즉 칭하이 성에 대한 고대인들의 정보가 전해진 게 아닌가 싶다. 고래로 중국인들은 고원 지방의 이민족들과 꾸준히 교류와 교역을 해왔다는 점에서 그렇다. 먼 서쪽의 바다와도 같은 큰 연못이다.

 

 

해가 약간 북서쪽으로 가면 산속으로 떨어지니 그 모습을 마치 절구를 찧는 모양, 즉 高舂(고용)이라 하고 있다. 착각하지 말 것은 절구 舂(용)은 밑이 절구 臼(구)자로서 봄 春자와 다르다는 점이다.

 

 

해가 서산 너머로 지는 모습을 절구에 해가 들어간다는 식의 표현을 하고 있으니 정말 그 상상력이 멋지지 않은가! 서녘의 산 전체를 하나의 커다란 절구로 여기고 있으니 이야말로 인문학적 상상력이라 하겠다.

 

 

연석에 대해선 별다른 문헌 자료가 없지만 더 서북쪽의 산을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해가 그곳에 이르면 이젠 절구 속에 담긴 꼴이니 下舂(하용)이라 한다.

 

 

 

 

원문: 해가 비천에 이르면 드디어 희화를 멈추고 육리를 쉬게 하는데 이때를 현거라고 한다. 한다. 至于悲泉(지우비천) 爰止羲和(원지희화) 爰息六螭(원식육리) 是謂縣車(시위현거).

 

 

 

해설: 비천, 슬픈 샘이란 말 역시 별다른 문헌근거가 전해지지 않는다. 아무튼 여기에 이르면 이윽고 羲和(희화)를 멈춘다고 하는데 여기에선 태양을 싣고 달리는 마차의 의미이다. 희화가 태양을 싣고 하늘을 달려가는 마차 혹은 전차라고 할 때 이는 그리스 신화의 파에톤(Phaethon)과 동격이 된다.

 

 

파에톤은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가 쓴 ‘변신 이야기’ 속에서 태양신의 아들 또는 포에부스의 아들로 나타나고 있다. 가끔 파에톤은 아폴론과 동격시되는데 이는 후대에 와서 이야기가 변형된 것이라 한다. 아무튼 파에톤이 모는 마차는 天馬(천마) 네 마리가 끌고 다니면서 천공을 운행한다.

 

 

이와 동일한 마차가 바로 희화인 것이고 끄는 말은 말이 아니라 용이 되니 바로 여섯 마리의 용 즉 六螭(육리)이다. 이때를 마차를 세운다고 해서 縣車(현거)라고 한다는 얘기이다.

 

 

용비어천가에서 ‘해동육룡이 나르샤’란 표현이 있는데 같은 맥락이다. 육리에서 螭(리)란 때론 이무기를 뜻하기도 한다. 여섯 마리 용이 끄는 마차이니 얼마나 힘차고 빠를까! 영화 벤허에선 말 네 마리인데 여기에선 여섯 마리이니 말이다. 원래 말 여섯 마리가 3열로 끄는 마차는 황제만이 타던 御駕(어가)에만 쓰였다.

 

 

사실 羲和(희화)에 대해선 실로 설이 분분하고 근거문헌도 엄청나게 많기에 이 글에선 자세하게 얘기하지 않겠다.

 

 

 

원문: 해가 우연에 이르면 황혼이라 하고 몽곡에 빠지면 정혼이라 한다. 至于虞淵(지우우연) 是謂黃昏(시위황혼) 淪于蒙谷(운우몽곡) 是謂定昏(시위정혼).

 

 

 

 

해설: 마차를 세웠으니 해는 마차에서 내려 걷는다. 그러다가 虞淵(우연)이란 연못에 이를 때를 황혼이라 하고 다시 더 걸어가서 蒙谷(몽곡)이라고 하는 아주 깊은 연목에 빠지게 되면 그때를 정혼이라 한다는 것이다.

 

 

몽곡에 대해 회남자에 주해를 단 자는 그저 북방의 산이라 하고 있지만 문맥으로 보면 맞지 않는다. 몽곡에 빠진다, 즉 빠질 淪(윤)자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다른 문헌을 찾아보면 후한 시대의 왕충이 쓴 論衡(논형)이란 책에는 북방의 깊고 큰 바다 즉 北海(북해)라고 묘사되고 있으니 그게 더 합당하다.

 

 

아무튼 비천에 이으러 마차에서 내린다고 했으니 해는 서북방에서 진 셈이고 그 이후론 마차와 여섯 마리 용을 쉬게 한 다음 물가로 가서 빠져든다고 한다. 해가 진 다음의 밤 시각을 말하는 것이다.

 

 

 

 

원문: 해가 우연의 물로 들어가서 몽곡의 물속에서 새벽까지 지새운다. 日入于虞淵之汜(일입우우연지사) 曙于蒙谷之浦(서우몽곡지포).

 

 

 

해설: 앞의 말을 반복하는 구절로서 해가 밤을 보낸다는 의미이니 밤 시간이다. 재미난 점은 물가를 뜻하는 汜(사)와 긴 물가를 뜻하는 浦(포)란 글자를 쓰고 있다는 점이다.

 

 

 

 

원문: 해는 구주와 칠사를 운행하니 그 거리는 오억만칠천삼백구리인데 이를 조주혼야로 나눈다. 行九州七舍(행구주칠사) 有五億萬七千三百九里(유오억만칠천삼백구리) 離以爲朝晝昏夜(이이위조주혼야).

 

 

 

해설: 해가 다니는 거리는 실로 엄청날 것이라 여겼던 고대인들이다. 당시 중국인들에겐 세상이 아홉 개의 구역 즉 九州(구주)로 구분이 된다 여겼다, 거기에 七舍(칠사)란 말은 제법 설명을 필요로 하는 말이지만 간단하게 정북에서 정남까지를 갔다가 되돌아오는 과정을 말한다.

 

 

그 엄청난 거리가 과연 얼마나 될까 고대인들은 당연히 궁금했을 것이다. 이에 누군가 아주 엄밀하게 측정해 보았더니 저처럼 엄청나다는 것이다.

 

 

이 책을 쓴 때가 前漢(전한) 시절이니 1리는 415.8미터가 된다. 따라서 오억만칠천삼백구리라 하는데 오억만은 5兆(조)를 뜻한다. 따라서 5조 7309리가 되는데 이를 계산해보려니 계산기 자리가 부족해진다. 역시 천문학적 단위가 된다. 그냥 엄청나다고 해두자. 참고로 말하면 당시엔 아직 兆(조)라고 하는 숫자단위는 없던 시절이다.

 

 

이런 해의 운행을 시각으로 나누면 아침 즉 朝(조)과 한낮의 晝(주), 늦은 오후를 뜻하는 昏(혼)과 밤 시간인 夜(야)가 된다는 얘기이다.

 

이상으로 회남자 천문훈의 일부 단락인 해의 운행에 관한 번역과 해설을 마쳤다.

 

 

 

약간 보충하는 얘기들.

 

 

 

열흘 단위에 대해 지금도 사람들은 旬(순)이란 표현을 쓴다. 한자를 모르는 사람들도 대충 뜻은 알고 있다. 旬(순)이라 글자를 보면 날 日(일)을 바깥에서 에워싸는 쌀 勹(포)로 되어있다. 가령 다음 달 상순까지 일을 마친다 할 때 흔히 사용한다.

 

 

그런데 순이란 글자 또는 개념이 생겨난 배경을 보면 상당히 흥미롭다.

 

 

앞글에서 옛날 사람들은 동해 멀리 부상 나무에 열 마리 금 까마귀가 있어 각각 해를 하나씩 등에 지고 있다는 식으로 생각했다는 말을 했다. 왜 열 개의 태양을 상상했던 것일까?

 

 

이 점에 대한 유력한 단서는 옛날 날을 기록할 때 쓰던 방식이 바로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의 열 개 글자, 즉 十干(십간)이었다는 점이다. 즉 甲日(갑일)은 갑의 태양이 뜬 것이고 乙日(을일)은 을의 태양이 뜬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그렇기에 앞글에서 羿(예)라고 하는 용사가 아홉 개의 태양을 활로 쏴 떨어뜨렸다는 전설 속엔 옛날에 曆法(역법), 즉 연도와 일자를 기록하고 정하는 체계가 혼란스러웠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하겠다.

 

 

고대 이집트 신화에는 피닉스 즉 불사조의 전설이 있다. 이집트 쪽에서 보기엔 동쪽의 아라비아 사막에서 해가 떠오른다. 그 때문에 피닉스는 아라비아의 사막에서 떠오르는 것으로 되어 있으며 500-600년마다 스스로의 몸을 불태워 죽고 그 재 속에서 다시 되살아난다는 전설 혹은 신화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해가 금 까마귀 등에 실려 동쪽 바다에서 떠올라 하늘을 가로 질러 매일 저녁 북녘의 깊은 바다 속으로 들어가 새벽까지 지새운다는 생각, 열 개의 해가 있으니 매일 매일 다른 해가 떠오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판타지가 필요한 까닭

 

 

 

우리 모두 매일 해를 보면서 날을 보낸다. 이에 현실에서 하루의 해를 보노라면 그저 동쪽에서 떠올라 남쪽 하늘을 돌아 서산으로 기운다. 그리고 밤이다. 그게 당연히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별 재미가 없다. 또 지구가 자전하기에 해가 마치 떴다가 지는 것처럼 보인다는 과학적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기에 더더욱 해의 하루 행보에 대해 관심이 없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옛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것, 그러면서 끊임없이 해의 운행에 대해 호기심과 흥미를 느꼈다는 사실, 이에 오늘의 글과 같은 판타지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흥미롭다.

 

 

현실의 삶은 사실 그다지 재미있지 않다. 당연한 것을 당연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고통스럽거나 짜증날 때가 더 많다. 하지만 우리 모두 가슴 한 편으론 오늘 혹시 즐거운 일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하고 공상해본다. 그 마음이 바로 판타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시작이다. 판타지란 뻥인 줄 알면서도 빠져주는 것, 빠져들어 적극적으로 즐기는 일이니 삶의 활력소가 된다.

 

 

 

독자들과 함께 즐기자는 마음에서

 

 

 

모처럼 의욕을 내어 글을 쓰기 시작했고 또 마쳤다. 워드로 한문을 찾아서 쓰는 작업, 한글로 치고 F9을 쳐서 창이 열리면 해당 한자를 찾아서 엔터 키를 치고 여기에 다시 독음을 달기 위해 괄호를 열고 닫는 작업은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작업이니 그렇다.

 

 

오늘 이 글을 쓰고 나니 지금은 그만 두었으나 예전엔 호호당의 교양강좌란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일종의 인문학 강좌였는데 오늘과 같은 내용을 포함해서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면서 배우는 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새롭다. 강의를 듣는 이가 서른 명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세월이 가면 이런 글을 해설해주는 사람도 없을 것이니 말이다.

 

 

이에 오랜만에 비록 힘들더라도 이런 내용을 소개하게 되어 기쁜 마음이다. 이 모두 나 호호당이 즐기는 판타지를 독자들과 함께 공유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부디 이번 글을 즐겨주셨으면 한다.

 

 

공지사항: 이번 토요일 강좌는 그 시각이 마침 태풍이 통과하는 때라서 부득이 연기해서 다음 주 화요일 오후 7시 강의실 402호에서 하고자 합니다.

 

판타지를 좋아하는 까닭에

 

 

가보지 않은 길은 늘 두렵고 궁금하다. 봉변을 당하면 어쩌지 하는 마음과 모험으로의 충동은 언제나 갈등이다. 판타지는 바로 그 경계선에 위치한다. 나 호호당은 이제 제법 오래 살아왔기에 별로 궁금한 것이 많지 않다. 인간사는 다 거기에서 거기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인간은 변하지 않기에 말이다. 하지만 늘 未知(미지)의 세계를 동경하기에 판타지를 좋아한다.

 

오늘은 때때로 즐겨 읽곤 하는 옛 도가의 책인 淮南子(회남자)에 실린 글을 해설해드릴까 한다. 사실 옛 古文(고문)을 이해하기 쉽도록 옮기고 해설한다는 일이 꽤나 공력이 드는 일이지만 그래도 독자들과 함께 즐겼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해본다.

 

 

옛 사람들의 해와 그 운행에 관한 판타지

 

 

고대 중국인들이 생각했던 판타지인데 해 즉 태양이 어떻게 동쪽에서 떠올라 서쪽 하늘 너머로 넘어가고 또 밤을 지낸 후 다시 떠오르는가에 대한 그들의 상상이자 지적 해석이다. (회남자 천문훈의 일부 단락이다.)

 

 

원문: 해는 양곡에서 뜨고 함지에서 목욕하며 부상의 뜰을 스쳐 지나간다. 부상에 올라서 이제 막 운행을 시작하려 할 때를 일러서 비명이라 한다. 出于暘谷(일출우양곡) 浴于咸池(욕우함지) 拂于扶桑(불우부상) 登于扶桑(등우부상) 爰始將行(원시장행) 是謂朏明(시위비명).

 

 

해설: 고대 전설에 의하면 暘谷(양곡)은 동쪽 먼 바다 한 가운데 있으며 거기엔 扶桑(부상)이라고 하는 아주 큰 나무가 있다고 한다. 나무의 높이는 무려 300리(120km)나 되며 겨자와 같이 아주 작은 잎들이 자란다고 한다.

 

이 나무의 가지에는 열 마리의 金烏(금오) 즉 금 까마귀가 서식하고 있는데 까마귀마다 등판에 태양 하나씩을 지고 있다. 옛 사람들은 해가 열 개란 생각을 했는데 이는 10일을 하나의 기간으로 묶는 旬(순)의 개념이다. 한 달을 구분할 때 상순 중순 하순, 이런 식으로 쓰는 용어 말이다.

 

그런 면에서 생겨난 재미난 전설이 예사구일의 고사이다. 먼 옛날 요 임금이 다스리던 시절 열 개의 해가 한꺼번에 나와서 천지가 타들어가는 불더위가 덮쳤을 때 羿(예)란 용사가 등장해서 활을 쏘아서 나머지 9개의 해를 떨어뜨렸고 그로서 세상이 평안해졌다는 羿射九日(예사구일)의 전설이 있다.

 

그리고 예의 예쁜 마누라가 姮娥(항아)였는데 서왕모의 불사약을 훔쳐서 달나라로 도망갔다는 얘기도 있으니 月宮姮娥(월궁항아)가 그것이다.

 

금 까마귀 전설은 동북아시아의 태양신 사상인 세 발 까마귀인 삼족오 신앙과도 관련이 있다.

 

돌아와서 얘기하면 매일 여명이 되면 금 까마귀 한 마리가 태양을 등에 지고 부상 나무 꼭대기에서 날아오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咸池(함지), 큰 바다를 지날 때면 물속으로 내려가 한 번 씻긴 후에 다시 날아오른다거 한다.

 

이 전설을 음미해보면 태양 자체는 허공을 날아오를 자체의 힘이 없는 그냥 알(egg)이기에 금 까마귀가 등에 지고 날아오르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咸池(함지)에서 목욕을 시킬 까? 그 이유는 해는 중국 동해안, 그러니까 우리나라 쪽 바다에서 둥실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 번 물속에서 잠수를 한 다음에 먼 수평선에서 그리스 문자인 오메가 모양을 만들면서 붉게 떠오른다고 여겼던 것이다.

 

본문에서 해가 금 까마귀 등에 실려 큰 바다 속에서 한 번 잠수했다가 다시 떠오르는 이 시각을 朏明(비명)이라 표현하고 있다. 朏明(비명)의 朏(비)자가 참으로 흥미롭다. 달 月(월)에 날 出(출)로 되어있으니 아직 하늘에 달이 떠있는 컴컴한 시각에 해가 먼 수평선 저 끝에서 떠오른다는 표현이다. 아직 어둠이 덮여있는데 먼동이 붉게 터오는 모습을 그리고 있으니 그게 朏明(비명)의 때이다.

 

 

원문: 曲阿(곡아)에 이를 때를 단명이라 하고 曾泉(증천)에 이를 때를 잠식이라 한다. 상야에 이를 때를 안식이라 하고 형양에 이를 때를 우중이라 한다.

至于曲阿(지우곡아) 是謂旦明(시위단명) 至于曾泉(지우증천) 是謂蠶食(시위잠식) 至于桑野(지우상야) 是謂晏食(시위안식) 至于衡陽(지우형양) 是謂隅中(시위우중).

 

 

해설: 해가 曲阿(곡아) 즉 굽은 언덕에 이르면 旦明(단명)이라 한다. 旦(단)이란 아침을 뜻하는데 글자를 보면 한 一(일)자를 지평선으로 하고 그 위로 날 日(일), 즉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형용하고 있다. 아침의 밝음이 즉 旦明(단명)인 것이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처음에 곡아는 그저 막연히 먼 동남쪽의 굽은 언덕, 멀어서 가볼 순 없는 곳을 뜻했지만 훗날 중국의 경계가 남쪽으로 확장되면서 오늘날 난징 근처의 양자강 물이 돌아나가는 곳을 두고 이곳이 바로 옛 사람들이 말하던 곡아였구나 하고선 지명을 붙였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그곳의 지명은 곡아에서 丹陽(단양)으로 바귀었는데 이 또한 붉은 태양이란 의미이다. 우리나라 충청북도의 단양읍 역시 그로부터 명칭을 땄다.

 

해가 증천에 이를 때를 잠식이라 한다고 했는데 曾泉(증천)이란 동남방 멀리 샘과 물이 많은 곳을 뜻하고 이때를 蠶食(잠식) 즉 누에벌레에게 아침에 뽕입을 먹이는 시간, 누에벌레들의 식사시간이라 하는 것이다. 예전에 누에치는 일은 농가의 중요한 벌이 수단이었다. 농가의 아녀자들이 부지런히 뽕입을 따다가 먹이는 광경이 눈에 선하지 않은가!

 

다음에 해는 동남쪽의 桑野(상야) 즉 뽕나무 가득한 들판을 지나는데 이때를 晏食(안식) 즉 늦은 아침의 새참 때라 한다. 그리고 다시 해가 衡陽(형양)을 지날 때를 隅中(우중) 즉 동남방의 모퉁이에 해가 위치하는 시각이라 한다.

 

형양은 중국의 전통적인 다섯 산인 五嶽(오악) 중에 하나인 남악 衡山(형산)의 남쪽을 뜻한다.

 

여기에서 알아두면 재미난 지식을 하나 알려드린다. 산의 남쪽을 山陽(산양)이라 하고 산의 북쪽 사면을 山陰(산음)이라 하며, 반대로 강의 경우에는 강의 북쪽을 양이라 하고 강의 남쪽을 음이라 한다는 점이다.

 

가령 서울을 예로부터 漢陽(한양)이라 불러왔는데 이는 서울이 한강의 북쪽에 위치해 있어서 그렇다. 또 경상남도 산청군의 원 명칭은 山陰(산음)이었는데 이는 지리산의 북쪽에 있어서 그랬던 것을 명칭이 다소 음침하다는 지적에 따라 나중에 山淸(산청), 산이 맑은 곳이란 명칭으로 바꾸었다.

 

돌아가서 얘기하면 형산은 당시 고대 중국인들의 경계 밖이었다는 사실이다. 다른 문화권이었는데 훗날 중국으로 편입된 곳이기도 하다. 그러니 衡陽(형양) 형산의 남쪽은 더더욱 먼 곳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엔 형양시가 존재한다. 중국 양자강 남쪽의 후난성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중국 명칭으론 헝양시가 된다.

 

이처럼 해가 정확하게 동남방에 왔을 때를 모서리 가운데라고 해서 隅中(우중)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아침 열 시 정도 되는 시각이다.

 

 

원문: 해가 곤오에 이를 때를 정중이라 하고 조차에 이를 때를 소천이라 한다. 至于昆吾(지우곤오) 是謂正中(시위정중) 至于鳥次(지우조차) 是謂小遷(시위소천).

 

 

해설: 해가 昆吾(곤오)에 이를 때, 즉 해가 한낮에 南中(남중)할 때를 정중이라 한다고 한다. 곤오란 말의 유래는 정확하지가 않다. 다만 중국 고대의 지리에 관한 책인 山海經(산해경)에 보면 남쪽에 있는 산으로서 이 산에선 구리가 나오는데 이것으로 칼을 만들면 단단한 옥석도 자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옛 문헌인 文选(문선) 등에 보면 해가 정남방 곤오에 이르면 뜨거워져서 그 불길로 도자기를 구울 수 있다는 말도 있다.

 

이어서 鳥次(조차)에 이르면 小遷(소천)이라 한다고 했다. 鳥次(조차)라 함은 회남자의 주해에 의하면 서남쪽의 산 이름으로서 새들이 묵는 거처라고 되어있다. 소천이라 함은 남중했던 해가 살짝 서쪽으로 옮겨감을 뜻한다. 오후 2시 경이 된다.

 

 

원문: 해가 비곡에 이르면 포시라고 하고, 여기에 이르면 대천이라 한다. 至于悲谷(지우비곡) 是謂餔時(시위포시) 至于女紀(지우여기) 是謂大遷(시위대천)

 

 

해설: 悲谷(비곡)이란 회남자 주를 붙인 고유의 말에 따르면 서남방의 높고 깊은 계곡과 언덕으로서 너무 높고 깊은 그 산위에 오르면 사람으로 하여금 슬픔 감정을 들게 한다고 했다. 중국 서남쪽의 쓰촨성의 험준한 산을 예로부터 蜀山(촉산)이라 했으니 오늘날의 峨眉山(아미산)이 그것이다. 아마도 이 산에 관한 정보가 전해진 게 아닌가 한다.

 

촉산 즉 아미산은 훗날에 와서 불교와 도교의 성지가 되었으며 무협소설에도 많이 등장한다, 소위 아미판의 근거지로서. 또 서극 감독의 ‘촉산전’ 영화가 유명하고 리메이크 작품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이처럼 비곡 슬픈 계곡을 지날 때를 포시라고 한다고 하는데 餔時(포시)란 하루 중에서 가장 밥을 많이 먹는 끼니때 오후 3-4시를 말한다. 옛 사람들, 중국이나 한국 그리고 일본 모두 오후 3-4시경에 저녁밥을 먹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후 7-8시경이면 잠에 들었다. 현대인들의 생활 사이클과는 많이 다르다.

 

이어서 해가 女紀(여기)에 이르게 되면 大遷(대천) 즉 크게 서쪽으로 넘어가는 시각이라 한다. 女紀(여기)에 대해선 출전이나 근거가 별로 없다. 하지만 방위상으로 정서, 酉의 방위를 말한다. 해가 이제 완전 서쪽 하늘에 있는 때를 일컫는다.

 

글이 길어져서 두 편으로 나누어 올리기로 한다.

 

오늘의 글은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넘어가고 다시 어딘가에 머물다가 다음 날 아침에 떠오르는 과정에 대한 옛 사람들의 설명이자 해석이며 동시에 상상의 소산인 판타지를 원문과 번역, 해설을 곁들여서 설명하고 있다. 다음 편에서 마무리하고자 한다. 다음 편까지 다 읽고 나면 즐거울 것이라 여긴다.

최근 그림들에는 하나의 테마가 있기에

 

 

 4월 28일자로 올린 그림에서부터 지금까지 올린 몇 개의 그림은 하나의 주제를 가진 연속적인 프로그램이다. 주제는 다뉴브 강이고 그림들은 다뉴브 강변에 위치한 도시와 마을들이다.

 

갑자기 난데없이 왠 다뉴브 강? 하겠지만 이제 그 영문을 말하고자 한다.

 

2015년 가을 나는 강남 교보문고에서 한 권의 책을 샀는데 제목이 ‘다뉴브’였다. 작은 글자로 인쇄된 제법 두꺼운 책이라 막상 샀지만 쉽게 엄두가 나질 않다가 어느 날인가부터 조금씩 읽어가기 시작했다.

 

작가는 ‘클라우디오 마그리스’란 이름의 이탈리아 작가이다. 원래부터 문학을 애호하면서도 그 선동성을 경계하는 나 호호당이고 또 유럽 문학에 대해 전혀 잘 모르지만 유럽 쪽에선 대단히 알려진 작가인 모양이다. 이 양반의 글을 읽다보면 작가라기보다는 대단히 박식한 저널리스트란 생각이 든다.

 

아무튼 나 호호당은 이 작가의 책을 읽을 때마다 흠뻑 빠져들게 되었다. 작가는 다뉴브 강변의 도시들을 강을 따라 내려가면서 차례로 소개한다. 도시 관광 안내가 아니라 그 도시들에 살았던 역대 유럽의 지성인들과 과학자, 시인과 철학자들의 자취를 찾아서 얘기를 들려준다.

 

마그리스란 작가나 그의 책 ‘다뉴브’ 모두 우리에게 많이 생소하다. 다뉴브 강이라 하면 “다뉴브 강의 물결”이란 왈츠 곡 정도밖에 모르는 우리들 아니겠는가. 그런 생소한 다뉴브 강의 물줄기를 따라 작가는 그 연변의 도시들을 방문해가면서 그곳에 서린 역사와 지리, 문학과 예술, 종교와 사상에 대해 그간 들을 수 없었던 많은 얘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수년간 읽어온 책, 다뉴브

 

 

쭉 읽고 치운 책이 아니라 잠들기 전에 읽고 화장실에 가서 잠시 읽고 그러다가 어떤 날엔 작업실로 들고 와서 쉬면서 읽고 또 어떤 날엔 약속 장소로 이동하면서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읽는 식이다. 이처럼 수시로 손에 짚이는 대로 펼쳐서 읽었고 또 눈이 피곤하면 책갈피를 덮는 방식으로 벌써 몇 년간 읽어왔다.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르고 중복해서 읽은 데도 많지만 어쨌든 완독을 했다.

 

 

구글 어스를 통해 다뉴브 강을 내려가다.

 

 

그러다가 며칠 전 구글 어스를 통해 다뉴브 강을 그 시원에서부터 쭉 따라가면서 도시들과 주변의 지형들을 살펴보았다. 중부 유럽에서 동유럽 끝의 흑해에 이르는 길고 긴 강, 위키에 보니 길이가 장장 2,850 킬로미터라 한다. 구글 어스에서 고도 1.5 킬로미터로 고정해놓고 끊임없이 마우스를 당겨가면서 강을 따라가는 여행이었고 또 작업, 아니 정확히 말해서 놀이였다.

 

 

다뉴브 강변에 펼쳐졌던 유럽 지성의 흐름

 

 

책에는 희대의 유대인 학살에 있어 한 역할을 맡았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또 다른 면모도 적혀있다. 독일 바이에른 숲속의 궁벽한 수도원에서 아이히만은 일주일 간 정신적 칩거를 했을 정도로 신앙이 깊었다는 사실, 수도원의 방명록에 믿음에는 믿음으로 라는 글귀를 남겼다는 것, 이처럼 대학살의 전문가는 명상과 정신집중, 숲의 평화를 사랑했으며 기도도 좋아했다는 글이 적혀있다.

 

참으로 뜻밖이다. 하지만 금방 이해가 간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상부의 지시에 순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그것이 엄청난 비인도적인 지시였어도 따랐던 것이 아닌가 한다. 물론 변호하고픈 마음은 없다.

 

아이히만의 생년월일을 검색해서 사주도 살폈으나 역시 평범한 사람이었다. 중령이란 계급을 달고 있던 그로선 어쩔 수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너무 끔찍하다.

 

독일 다뉴브 강변의 도시 레겐스부르크에 최종적으로 머물렀던 요하네스 케플러의 일화도 나온다. 레겐스부르크는 신성로마제국의 의회가 있던 도시. 의회는 시청의 큰 방에서 열리곤 했다. 케플러는 황실 점성술사로 일했기 때문에 레겐스부르크에 왔던 것이고 그 바람에 케플러 박물관도 이 도시에 있다.

 

케플러는 17세기 천문학 혁명의 중심인물, 행성의 운동법칙을 확립하여 훗날 뉴턴의 연구에 토대가 된 인물 아닌가. 그는 눈송이가 왜 육각형의 작은 별 모양이 되어 응어리지는 궁금했고 또 연구한 결과 논문을 썼다. 논문을 후견인에게 바치면서 쓴 편지 글귀가 책속에 소개된다.

 

“당신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좋아한다는 걸 나는 압니다. 그 가치가 아주 작기 때문이 아니라 지저귀는 참새마냥 익살스럽고 가볍게 그것과 놀 수 있기에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좋아한다는 걸 말입니다.”

 

논문을 보내면서 이처럼 시적 흥취로 가득한 글을 적었다니, 케플러의 또 다른 면모가 순간에 내 속으로 들어와 적신다.

 

이처럼 독일 책 속엔 시인의 시인이란 칭호를 가진 프리드리히 횔덜린에 관한 얘기, 분석철학의 비트겐슈타인, 정신분석학의 프로이드 등등 수많은 유럽의 문학과 예술, 지성의 巨峰(거봉)들에 관한 일화가 연이어 소개되고 있다.

 

 

난해하지만 매료되는 이야기들

 

 

문제는 이 책 내용 중 1/3 정도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학가답게 너무 어렵게 쓴 것 같기도 하고 물론 번역 과정에서의 문제도 있지 않았나 싶다. (원래 문학서적을 번역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나를 매료시키는 이 ‘다뉴브’란 책, 그러다가 내가 느낀 감흥을 간직한 채 다뉴브 강변의 마을과 도시들을 그려보기로 했다.

 

 

뜻밖의 그림 여정을 시작했으니

 

 

첫 그림은 4월 28일의 뒤른슈타인의 수도원 그림이었고 이어서 레겐스부르크, 세 강이 만나는 독일의 도시 파사우, 또 파사우의 하얀 탑 그림, 그리고 소설 ‘장미의 이름’의 모티브가 된 멜크 수도원 그림이다.

 

계속 그릴 것이다. 그리기 전에 책 속에서 그 마을에 관해 기술한 부분을 읽고 또 위키나 구글을 통해 알아본 후 그림을 그릴 생각이다. 물론 그림 속에는 전혀 그런 내용을 표시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그림 속에 그 무언가가 들어가 있지 않을까 싶긴 하다.

 

언제까지 그려나갈 지는 모르겠다. 숙제도 아니고 의뢰받은 프로젝트가 아닌 까닭에 그저 내키는 대로 그려볼 생각이다. 싫증이 나면 ‘예술은 자유로운 감성의 산물’이라고 눙치면서 슬쩍 몸을 빼면 그만 아니겠는가 말이다.

 

어쩌다가 시작한 그림 시리즈, 호빗 3부작 영화의 첫 편 제목이 “뜻밖의 여정”인 것처럼 그냥 뜻밖에 시작한 작업 또는 여정이라 여기면 되리라.

초여름 날의 즐거운 산책

 

 

싱그럽다는 말은 이맘때를 두고 하는 말일 것 같다. 하늘은 맑고 푸른데, 바람마저 시원하다. 새 잎사귀와 새 풀이 도처에 널렸고 걷다 보면 어디선가 흘러온 라일락 향기가 콧속으로 들어와 상큼하다.

 

오후 시간 상담 한 건을 마무리한 뒤 5시 무렵 작업실을 나섰다. 내게 있어 외출이란 결국 300미터 떨어진 인근의 교보문고를 찾는 일이다. 책 구경을 하려면 체력이 필요하니 우선은 길 건너편의 버거킹에 들러 와퍼 세트를 먹었다. 마침 제자가 선물한 교보문고 현금카드도 쓸 겸 일주일 사이에 새로 나온 책들도 만날 겸 해서였다.

 

햄버거를 먹고 나와서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옆의 젊은 처녀가 최대한의 미백 화장을 하고 진한 속눈썹을 붙인 채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최대한 鼻音(비음)을 섞어가며 귀여움을 부리고 있었다. 아이고, 저 귀여운 철딱서니.

 

 

서울 강남 거리의 특별한 즐거움

 

 

이처럼 서울 강남의 거리를 걷는 일은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 젊은 여성들의 잘 차려입은 모습을 즐기는 일이 그것이다. 세련된 차림과 화장의 젊고 싱싱한 아가씨들 사이로 걸어가는 일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나라 젊은 여성들, 특히 서울 강남의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보면 극도의 세련미를 느끼게 된다. 또 그럴 때면 내게도 저처럼 귀엽고 발랄한 딸이 하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도 느낀다.

 

나 호호당은 화가의 눈을 가졌다. 늘 사물을 관찰하고 또 종이 위에 묘사하는 훈련을 해왔기에 여성들의 치장한 모습도 즐기는 한편 그 밑에 가려진 몸매까지 고스란히 읽어낼 수 있다. 그러다 보면 가끔 피식- 웃곤 한다. 가령 어떤 아가씨가 약간 처진 엉덩이 라인을 제대로 카버하지 못했을 때 말이다.

 

때론 심한 노출 때문에 보는 내가 거북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매력을 최대한 뽐내려는 그 자신감에 대해 기꺼이 칭찬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어차피 삶은 순간의 연속, 그러니 좋아, 홧팅!

 

혹시나 해서 얘기인데, 나 호호당이 그녀들을 바라보는 시간은 지극히 짧다. 젊은 시절이라면 당연히 은밀한 욕망도 일었겠지만 이젠 그렇지가 않다. 그냥 그 싱싱한 젊음을 즐긴다.

 

그런 까닭에 상대가 거북스럽게 여길 눈빛으로 쳐다보는 법은 없다. 한 여성에 대한 내 눈길이 0.3초 이상 머무는 법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 시간이면 얼굴은 물론이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의 전체 실루엣, 심지어는 때론 그녀들의 영혼마저 느낄 수 있다.

 

책을 몇 권 산 뒤 다시 작업실로 돌아오기까지 지나쳤던 젊은 여성들의 모습들이 글을 쓰다 보니 차례로 떠오른다. 쾌청한 하늘 밑 저녁노을 빛에 환하게 빛나는 모습들이 내 눈에 지금 담겨있다.

 

 

 

브레송의 결정적인 순간들!

 

 

이런 말을 하고 나니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생각난다. 일상의 모습과 이미지가 담고 있는 그 순간의 리얼리티를 포착해낸 자신의 사진에 대해 ‘결정적 순간’이란 표현을 했던 프랑스의 사진작가 말이다.

 

5월 초의 맑은 하늘 아래 저녁노을을 받아 빛나는 저 여성들의 모습, 내 눈에 포착된 저 눈부신 이미지들이야말로 과연 그렇지 않겠는가 싶다.

 

 

서점 매대에서의 흥정

 

 

교보문고 매장으로 말머리를 돌린다.

 

입맛을 부추기는 책이 오늘 역시도 열댓 권 가량이었다. 책갈피를 들추면서 잠시 본문을 읽어보다가 일단은 자리에 그냥 놓고 다시 자리를 옮긴다. 두어 달 전부터 망설이던 책 중에 하나인 “팩트풀니스”를 오늘은 사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무역의 세계사”란 책이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살펴보니 예전에 참으로 즐겁게 읽었던 “부의 탄생”이란 책을 쓴 그 사람, 바로 윌리엄 번스타인이었다.

 

부의 탄생을 읽은 뒤의 소감은 지극히 단순하고 명백하다, 이유를 모를지라도 돈이 지속적으로 밀려드는 곳이면 그곳에 성장이 생겨나고 부가 창출된다는 얘기. 도덕이나 윤리, 정당성 같은 것을 떠나 부는 그렇게 창출된다는 얘기였다. 감명 깊게 읽은 책이다.

 

그러니 무역의 세계사도 사야 하겠네 하는 생각을 했다. 이에 영문 제목을 보니 ‘A Splendid Exchange’, 이에 아, 이 책이구나, 국내 번역되면 좋을 터인데 하는 생각을 했던 바로 그 책.

 

그런데 가격을 보니 31,500원, 더 문제는 하드카버 책이니 들고 가려면 무겁겠다는 생각에 일단은 나중에 사기로 결정을 했다. (나 호호당은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하는 일이 거의 없다. 매장에서 마음에 들면 사서 들고 온다.)

 

다시 옆을 보니 “케임브리지 중국경제사”란 묵직한 그러나 매력적인 주제의 책이 놓여있었다. 이 방면에 관해 적지 않은 책을 읽긴 했으나 새로운 시각과 연구를 담고 있는 것 같아서 구미가 당겼지만 역시 책의 부피와 무게 때문에 다음 기회로 넘겼다.

 

다시 눈을 돌리니 순간 나를 의아하게 만든 책이 있었다. “당신도 피카소 그림을 살 수 있다”, 이런 제목. 저게 뭐지? 싶어 제목 밑에 달린 부제를 보니 ‘4차산업 혁명시대, 블록체인과 인문경영’이었다. 순간 이해가 갔다, 피카소 그림의 지분을 살 수도 있는 공유경제, 뭐 이런 얘기이구나 싶었다. 책을 내려놓으면서 그래 많이들 사시구려, 했다.

 

한 시간 여 매장을 돌아다닌 끝에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집 한 권, 교고쿠 나쓰히코의 “후 항설백물어(하)”, 일본 경제에 관한 책 한 권, 앞서 말한 “팩트풀니스”, 이렇게 네 권의 책을 산 뒤 돌아 나왔다.

 

 

분수 물방울 속에서 빛나고 있는 여름

 

 

좌골신경통이 있는 몸인지라 계단을 오를 때 살금살금 올라야 했다. 서쪽 하늘의 눈부신 역광이 내 눈 속으로 파고 들었고 또 옆으로 흘러내리는 계단식 분수의 물과 부딪쳐 빛났다. 교보문고 입구 계단에 분수물이 소리 내어 활기차게 흐르면 계절은 여름이다.

 

오늘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초여름이 왔고 얼마 후면 더위가 닥쳐오겠지. 그러다가 선선한 가을이 올 것이고 겨울이 오면 어느덧 한 해를 떠나보낼 준비를 해야 하리라.

 

이런 식의 되풀이, 즉 해의 순환을 이젠 어언 예순 네 번째 겪고 있으니 시간과 세월은 잘도 흐른다. 탄력 넘치던 몸뚱이도 어느덧 허리 디스크가 파열되고 신경섬유에 염증이 생겨서 다리를 절뚝거릴 지경에 이르렀으니 거 참! 그저 어서 나아야지 하는 마음뿐이다.

 

 

삶의 결정적인 하루를 보내면서

 

 

오늘은 늦은 오후 무렵의 햇빛과 푸른 하늘을 즐겼고 그를 기억 속에 담았으니 하루의 수확은 풍성하다. 게다가 서울 강남의 초여름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 처녀들의 모습, 내겐 그들이 마치 바닷속을 힘차게 헤엄쳐가는 등푸른 생선들과도 같았다, 그 역시 듬뿍 눈에 담았으니 더더욱 좋은 날이다. 더불어 늦은 밤 잠자리에 누워 새 책들과 대화할 수 있게 되었으니 오늘은 정말 좋은 날이다. 다시 말하면 오늘은 삶에 있어 또 하나의 ‘결정적인 날’인 것이다.

年號(연호)란 무엇인가?



오는 5월 1일 일본의 새 천황이 즉위한다. 이에 따라 그간의 平成(평성)이란 연호 대신에 令和(영화)라고 하는 새 연호를 사용하게 된다. 


年號(연호)란 한문을 사용하는 동양의 군주국가에서 쓰던 기년법, 즉 햇수를 세는 방법이다. 중국에서 시작된 것이고 우리와 일본이 사용하였으나 오늘날 우리와 중국은 군주제가 아닌 까닭에 일본만 사용하고 있다. 그 바람에 우리에겐 다소 생소하다. 


일본 천황은 일종의 종교적 首長(수장)이기에 실제 통치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본인들은 천황의 교체를 새로운 시대의 도래로 받아들인다. 그렇기에 새 연호에 담긴 의미를 알아보는 것은 이웃인 우리로서도 관심을 가져볼 만한 사안이라 본다. 



연호는 새 군주의 소망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연호는 새로운 군주가 지향하는 바를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이번의 레이와라고 하는 연호 역시 새 일황이 자신의 재임 중에 어떤 일본이 되기를 바라고 있는지 그 소망을 담고 있기에 이웃 일본의 장래를 점쳐보는 데 있어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연호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는 구체적인 사례를 하나 들어본다. 


삼국지연의의 대표 연호 建安(건안)



삼국지연의를 읽다 보면 建安(건안)이란 연호가 자주 보인다. 건안이란 연호, 平安(평안)한 세상을 세운다는 뜻이다. 이는 조조가 후한의 마지막 황제인 헌제를 옹립함과 동시에 수도를 피폐한 낙양을 버리고 허창으로 이전한 뒤에 내건 연호이다. 


이후로도 전쟁은 이어졌으나 조조가 건안 5년 북방의 강대 세력인 원소를 제압하면서 당시 중국의 중심 지역이었던 화북 지방은 평정이 되었다. 그 이후로 적벽대전 등등 많은 전쟁이 있었으나 모두 변두리에서의 싸움이었기에 나름대로 建安(건안)했던 셈이다. 



자립을 강조하고 있는 새 연호라 하지만.



일본은 그간 연호를 택할 때 주로 중국의 문헌에서 따왔으나 이번의 令和(영화)는 처음으로 일본의 고문학인 萬葉集(만엽집) 속의 글귀에서 채택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일본이 진정한 自立(자립)을 소망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왜냐면 일본은 아직 자립의 나라가 아닌 까닭이다. 특히 군사 방위 면에서 사실상 미국의 속국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그렇다. 일본은 제2차 대전 이후 평화헌법을 채택하면서 이런저런 이유에서 방위를 사실상 미국에게 위임해왔는데 장기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보겠다는 의지를 이번 연호에 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아베 총리가 주장하는 개헌 건과도 즉각적으로 맥락이 닿는다. 이번에 물러나는 아키히토 천황은 그간 아베와 무척이나 불편한 관계였는데 새 천황이 아베의 스탠스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이번 연호의 제정 배경과 관련해서 적지 않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연호가 일본의 옛 문헌인 ‘만엽집’에서 채택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국 문학과의 연관이 전혀 없지는 않다. 우리나 일본의 고문학 특히 지배계급의 문자이던 한자로 된 시가 속엔 중국 문학의 영향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만엽집의 문장은 다음과 같다. 


于時、初春令月、氣淑風和.

(초봄의 달이 되니 공기는 맑고 바람은 부드럽다.) 


그리고 이 문장의 원형은 중국 後漢(후한)대의 사상가인 張衡(장형)이 지은 歸田賦(귀전부), 즉 논밭으로 돌아갈 것을 노래한 시가 속에 있으니 다음과 같다. 


於是仲春令月時和氣凊.

(중춘의 달에 이르러 날은 따듯하고 하늘은 맑다.)


장형의 귀전부는 훗날 중국 시문학의 중요한 장르를 이룬 田園詩(전원시)의 원형이라 하겠으며 특히 도연명의 絶唱(절창)인 歸去來辭(귀거래사)가 대표적이다. 


따라서 이번의 새 연호인 令和(영화)는 새 천황의 치세는 부드럽고 맑은 세상이 되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이번에 물러나는 아키히토의 치세 즉 1989년부터 올 해까지의 30년간 일본의 현실은 무척이나 어둡고 힘든 시절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1990년 말 저 유명한 거품 붕괴가 시작되었고 그 이후론 한 때 전 세계를 삼킬 것 같던 일본의 경제적 위세는 오늘에 이르러 그저 먼 옛 이야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자신의 치세 동안 일본이 몰락했다는 점에 대해 이번에 물러나는 아키히토는 대단히 유감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치세가 좋지 못했던 것에 대해 아키히토는 자신에게 덕이 없는 탓, 즉 不德(부덕)의 소치로 여겼을 것이고 이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에 상당한 염증을 느끼고 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바람에 천황의 자리는 대개 사망한 후에 넘겨주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이번의 경우 고령이긴 하지만 아직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물려주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아키히토의 경우 천황에 오른 1989년부터 올 해까지 30년인 바, 30년은 一世(일세)라는 점에서 물러나기에 적절하다는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다. 



일본의 새 연호에 대한 나 호호당의 생각은 조금 달라서



그런데 레이와, 令和(영화)라고 하는 새 연호에 대해 나 호호당이 나름 해보는 되는 생각 또는 기대가 있어 얘기해본다. 


만엽집에 실린 시가의 원형이 중국 장형의 귀전부이고 그 시는 이른바 田園詩(전원시)란 점 때문이다. 전원시는 단순하게 전원의 풍경과 소박한 생활을 예찬하는 것이 아니란 점이다. 


중국 역사를 통해 지배계층이었던 사대부나 문인들은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치열한 권력투쟁을 벌였고 그 결과 권력에서 밀려나거나 염증을 느낀 자들이 나중에 욕심을 버리고 고향 마을인 전원으로 돌아가 농사나 지어가며 편안하게 살아보리라 하는 생각을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전원시이다. 


사실 이런 과거 지배계층의 정서는 유교적 영향이 강한 우리나 일본 중국의 경우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널리 유포되기도 했으니 노력해보다가 정 안 되면 시골로 돌아가 땅이나 파면서 살겠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생각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 엄연히 존재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50대 이하의 사람들에겐 돌아갈 시골이 사실상 없다, 돌아가서 농사지을 땅이 없기에 앞서의 귀거래사 풍의 감정은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각설하고 요지를 얘기해보면 이번 레이와란 연호가 연호 제정자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전원시적 감성과 연결되고 있다는 점에 나 호호당은 주목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군국주의를 통해 세력을 확장하다가 미국을 만나 좌절했고 그 이후 경제적으로 확장하면서 패권을 노리다가 그 역시 1990년 거품 붕괴로 실패했다는 점이다. 이에 오늘날 일본 사람들의 심리 속에는 그냥 평범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주어진 처지에 만족하면서 살고픈 소망이 강하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 또한 일종의 전원시적인 감정이라 할 것인 바, 이에 나 호호당은 이번 연호 레이와를 볼 때 당초 의도한 것 같지는 않지만 일개 국가로서의 일본이 장차 또 다시 글로벌 세계에 도전장을 내밀기 보다는 이제 나름의 田園(전원)으로 물러가 그냥 조용히 지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짐작을 해보게 된다. 


최근 우리와 일본은 정치적으로 상당한 갈등관계이다. 하지만 경제 측면이나 민간 교류 차원에선 사실 대단히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나 호호당은 멀지 않아 우리와 일본은 오히려 예전보다 더 좋은 관계로 발전해갈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인근의 일본이 우리의 좋은 이웃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그런데 이번 연호를 보니 문득 그런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글을 쓰고 또 올린다.


관광객으로 북적대는 여수



어쩌다 좋은 인연이 생겨서 엑스포가 있었던 2012년부터 해마다 한 두 번씩 2박3일 일정으로 여수를 다녀오고 있다. 가게 되면 으레 그곳 지인의 돌산 평사리 별장에 머물곤 한다. 별장에서 내려다보이는 가막만은 섬과 반도로 둘러싸였기에 풍랑이 드물다. 밤이면 졸고 있거나 잠든 것 같은 가막만, 가막가막하고 가물가물한 그 모습이 그 이름과 잘도 어울린다. 


이번 여수행은 전과는 달리 약간의 변화가 있었으니 지인이 작년에 오픈한 ‘여수살롱’이란 복합문화공간에서 여수와 대한민국의 미래로 제목으로 2시간 여 동안 특별강연을 했다. 40여 분들이 오셨는데 다행스럽게도 모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주셨다. 


금요일 오후 여수 엑스포역에 내렸더니 기온이 서울보다 몇 도는 높아서 마치 4월 하순의 날씨 같았는데 둘러보니 수많은 관광객들이 카트를 끌고 바깥으로 나가고 있었다. 마중 나온 지인이 여수 시내가 북적대고 있다는 얘기와 함께 엑스포와 함께 고속철이 들어선 이래 해마다 관광객이 급증하고 있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여수로선 당연히 희소식, 하지만 나로선 여수 오는 것도 앞으론 성수기를 피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교통 정체로 해서 흥국사에 들렀으니



그 바람에 여수 돌산 별장은 심한 정체로 해서 늦은 밤 시각에 들어가야 했고, 다음 날에도 돌산 끄트머리의 향일암이나 바닷가 쪽은 피하기로 했다. 그래서 아예 시내로 들어가서 북쪽의 여수산업단지 방면에 있는 흥국사를 가보기로 했다. 


떠나기 전 혹시나 해서 흥국사에 관해 검색해보았다. 그간 여러 차례 다녀오는 과정에서 가볼만한 곳은 대충 훑은 터였기 때문이다. 그간 살아오면서 많은 국내 절을 가보았다. 여수 향일암도 몇 차례 갔었으나 여수 흥국사 얘긴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으레 아담한 절일 줄 알았다. 


그저 임진왜란 당시 흥국사 스님들이 수군이 되어 이순신 장군과 함께 싸웠고 또 많은 분들이 전사했다는 사실 정도만 알고 있었기에 호국영령들이 잠들어있는 흥국사에 찾아가 절을 올리면 호국 귀신들께서 그래도 즐거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만 했다. 


흥국사가 자리 잡은 영취산의 진달래가 대단하다는 얘긴 들어본 적이 있었기에 절 입구에 도착하자 나는 절보다는 영취산 산등성이를 먼저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흥국사는 묵은 古刹(고찰)일 뿐 아니라 巨刹(거찰)이었다. 



정갈한 호남지역의 사찰



전라도의 절은 느낌이 경상도 절과는 많이 다르다. 경상도나 강원도의 절은 신도가 많아서 재정이 풍부하고 그 바람에 경내 장식도 다소 과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물론 세월의 흔적은 그만큼 지워지기 마련이다. 반면 기독교 신자가 많은 전라도의 절은 재정이 시원치 않은 탓에 비유컨대 빈티지, 오랜 풍상의 흔적이 역력하다. 


낡았으나 깨끗하면 정갈한 인상을 주기 마련인데 전라도의 고찰들이 바로 그렇다. 금박이 번쩍번쩍한 것보다 금박이 벗겨진 모습이 더 좋다. 오랜 聖地(성지) 같아서 말이다. 



격식을 다 갖춘 고찰이자 거찰, 흥국사



흥국사 역시 고찰의 느낌을 물씬 풍겼다. 그리고 아주 큰 절, 뜻밖이었다. 뿐만 아니라 절이 갖추어야 할 모든 요소를 고루 지니고 있었다. 


일주문을 지나니 영취산 양쪽 봉오리에서 내려오는 두 줄기 개천 위로 석교가 놓여 있었다. 다리 앞까진 사바세계이고 다리 위를 지나면 번뇌와 고통이 없는 저편, 즉 到彼岸(피안)이다. 큰 절 중에도 개천이 없는 절도 적지 않다. 그런 면에서 흥국사는 일단 격식을 갖춘 셈이다. 



늘 흥미로운 사천왕님들



개천을 건너 저편 세계로 들어서니 네 분의 天王(천왕)이 지키는 천왕문이 있었다. 제석천의 휘하에 속하는 네 명의 신들로서 수미산 중턱에 있다고 하니 나 역시 수미산 중턱까지 오른 셈이다. 만일 내가 魔鬼(마귀)라면 이 분들에게 즉각 들켜서 끝장일 것이다. 


사대천왕 중에서 나 호호당이 제일 좋아하는 분은 광목천왕이다. 廣目(광목), 아주 큰 눈이란 뜻이다. 엄청나게 크고 밝은 눈으로 서방세계의 모든 일들을 샅샅이 관찰하고 판단한다. 잘못된 일이 있으면 즉각 창을 날려서 퇴치를 한다. 


내가 광목천왕에 흥취를 느끼는 것은 광목천왕의 탐지능력이 마치 미국 이지스 구축함의 3차원 고정밀 레이다와 방어시스템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참고로 조금 더 애기하면 이지스는 그리스어로 아이기스(Aegis), 아테네 여신이 들고 다니는 방패를 말한다. 무엇이든 이 방패로 방어할 수 있고 또 방패를 흔들면 폭풍이 일어서 상대를 물리칠 수 있는 무기이다. 그 바람에 미국은 미사일 구축함에 이런 이름을 붙였다. 


多聞天王(다문천왕)도 흥미롭다. 多聞(다문)은 많이 듣는다는 뜻이니 세상 속 모든 소리를 다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말, 따라서 미국의 국가안보국(NSA), 엄청난 양의 해외 통신과 해외 신호 정보, 물론 암호화된 통신까지도 해독 분석 종합하는 거대한 조직을 연상시키는 탓이다. 


절에 들를 때마다 사천왕 목조상은 반드시 카메라로 찍어온다. 표정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린 시절 외할머니를 따라서 동래 범어사에 갔을 땐 사천왕님들이 정말 무섭게만 여겨졌었다. 아마도 외할머니가 어린 손자에게 만일 못된 짓을 하면 너 이분들에게 큰 벌을 받게 될 거라고 겁을 주었던 모양이다. 


개천 다리를 지나 피안에 도달했어도 사실 사천왕문이란 문을 무사히 통과해야만 제대로 극락세계로 들어선다는 점에서 사천왕문은 일종의 입국심사대인 셈이다. 뭐 신고할 것은 없습니까? 네, 없습니다.

 

천왕문을 지났으니 이제 나도 극락세계의 어엿한 방문객이 되었다. 


그 다음 나를 맞이한 것은 봉황루, 대개 저런 누각은 위의 다락방은 스님들이 공부하는 강원이고 밑으로는 신도나 방문객이 통과하는 문 역할을 하는 법인데 아쉽게도 아래가 막혀있었다. 할 수 없이 옆으로 돌아서 올라가야 했다. 


왜 막았을까? 궁금했다. 그러자 영주 부석사의 안양루가 생각났다. 문루에 올라서면 양쪽으로 태백과 소백의 산자락을 한눈에 볼 수 최고의 전망대이건만 말이다. 


그런데 대웅전 마당에 들어서기 직전에 또 하나의 문이 있었다. 제법 특이했다. 이름은 法王門(법왕문)이었는데 그로서 또 하나의 경계를 짓고 있었다. 왜 그런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바닷가의 특징을 살린 흥국사 대웅전



그러고 나서 대웅전이었는데 정말 특이했다. 일반 사찰의 대웅전과는 많이 달랐다. 대웅전을 받치고 있는 기단석에 새겨진 동물들이 용과 거북은 물론이고 바다의 게도 있었으니 여수 바다의 해물 냄새가 물씬 풍겨나고 있었다. 


모양도 대단히 해학적이어서 한참을 살펴보며 웃음을 지었다. 뿐만 아니라 마당의 石燈(석등)도 국내 일반 사찰의 그것과는 모양이 많이 틀렸다. 따라서 흥국사는 대단히 이채로운 절이라 하겠다. 



의도와는 달리 많은 절과 거액의 시주



최근 허리가 불편해진 나는 당초 작은 절이라 여기고 절 몇 번 하는 정도는 큰 부담이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많은 전각들이 있어 가는 곳마다 세 번 씩만 절을 올려도 무려 수십 번에 걸쳐 절을 해야 했다. 


특히 어느 전각에선가 여수 순천 출신으로서 후백제 견훤이 거병할 때 오른팔 역할을 했던 김총 장군의 神位(신위)와도 만났다. 김총이 누군가, 여전히 여수 순천 일대의 성황신이 아닌가, 이 지역 귀신들 중에선 최고 실세 귀신일 것이니 절을 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복전함에 넣은 돈도 당초 예상을 넘었다. 천원 짜리 지폐 몇 장, 오천원 지폐 한 장, 만원권 몇 장이 있었는데 전각이 많아서 홀라당 다 넣고 나왔다. 4만원인가 했는데 나중에 따져보니 무려 6만3천원이나 시주했음을 알았다. 여태껏 복전함에 넣은 액수로는 최고 액수였다. 그날 흥국사 일반 시주 중에선 최고 VIP가 아니었을까 싶다. 스님을 모시고 밥 한 끼 대접한 셈 치기로 했다. 



확실하게 빽을 써놓았기에



우연히 들렀다가 절도 많이 올리고 돈도 넉넉히 넣어드렸다. 흥국사 부도밭에 계신 여러 큰 스님의 영령들, 전사한 호국승군의 영령들, 그리고 김총 장군 귀신께서 두루 기뻐하실 것은 당연한 노릇, 그러니 장차 여수에 올 때 나 호호당을 해코지할 어둠의 세력은 원천봉쇄당한 셈이다. 


뭐니 해도 신앙 중에 신앙은 기복신앙인 아닌가 싶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려운 신학이나 교리와 같이 철학 비스무리한 것은 괜한 것이 아닐까 여긴다. 


관세음 누님이 계시는 원통전 앞의 감로수 샘물을 마신 것을 끝으로 천천히 돌아서 나오다가 일주문을 지난 뒤 돌아서서 마지막으로 합장했다. 


그러면서 말씀을 올렸다. 그동안 제자 무지한 탓으로 향일암에만 들렀습니다, 이제 알았으니 다음엔 흥국사에도 반드시 찾아오겠습니다. 그러니 여러 조사 영령들과 전사하신 승군 귀신님들, 또 김총 성황신께선 팍팍 살펴주시길 바라옵니다. 



사이비신자 호호당



고백하자면 나 호호당은 사이비 신자이다. 절에 가면 부처님 신도이고 성당에 가면 가톨릭 신자, 교회에 가면 개신교 신자, 그리고 전에 실크로드의 이슬람 모스크에 갔을 땐 무슬림이었다. 또 여러 명산대천에 가면 그곳의 산신과 河伯(하백)의 제자이며 唐木(당목) 앞에선 신령을 믿는다. 그런가 하면 평소엔 無敎(무교)란 점에서 참으로 사이비 신자이다.


울적함을 달래는 방법

 

 

오늘은 색깔에 대해 얘기할 까 한다. 이런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최근의 울적한 기분 때문이다. 스스로 울적한 지 아닌지 평소 잘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글을 쓰고자 모니터 앞의 키보드를 대했을 때 금방 손가락이 나가지 않으면 그제서야 알게 된다, 내가 다운되어 있음을.

 

이럴 땐 기분 전환이 필요하다. 의욕적으로 그림을 그릴 때도 있지만 최근 며칠 사이의 그림은 기분 전환용이었다. 어제 올린 영국 콘월의 성 마이클 수도원 풍경과 그 전날 올린 텅 빈 바닷가 백사장, 폭풍이 다가오는 바다 그림 등이 바로 울적함을 달래기 위해 그린 것들이다.

 

두 번째로 울적함을 달래는 방법은 책을 읽는 것이다. 잠자리에 누워서 갓등 아래에서 책을 읽다가 졸리면 등을 끄고 눈을 감았다가 다시 잠이 오지 않으면 등을 켜고 책을 보는 식이다.

 

간밤의 책은 “철이 금보다 비쌌을 때”란 제목의 책이다. 도서출판 까치에서 나온 책이다. 읽다가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에 기분이 다소 업 되었다.

 

 

오늘의 주인공 울트라마린 블루

 

 

물감의 색 중에 울트라마린 블루, 줄여서 울트라마린. 영어론 Ultramarine, 이런 색이 있다. 내가 수채화를 그릴 때 너무나도 애용하는 색깔이다.

 

알아낸 사실은 이 단어의 유래였다. 울트라마린이란 색깔은 쉽게 말해서 짙은 靑藍(청람)색, 바다색이다. 난 평소 그냥 ‘마린’이라 그러지 왜 울트라마린이란 했을까 하는 점에 대해 그냥 강한 바다색을 뜻하는 줄로 알고 있었다. ultra 란 접두사가 극도로, extremely의 의미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읽다가 알게 된 것은 그게 아니라 ‘바다를 건너온’ 이런 의미로 붙여졌다는 사실이었다. 이 경우 ultra 는 저 너머, beyond 란 의미였던 것이다.

 

 

울트라마린 블루는 바다를 건너온 값비싼 물감이었다.

 

 

색깔 자체가 바다색이다 보니 울트라마린은 ‘진한 물색’ 정도의 의미로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 ‘바다 건너온 물감’이란 의미였던 것이다.

 

바다 건너온 물감은 당연히 비싸다, 울트라마린이란 색의 이름만으로도 값이 비싸다는 뜻이 담겨겨 있는 셈이다.

 

비싼 색이다 보니 울트라마린이란 색깔의 배경에는 많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청금석 또는 라피스 라줄리

 

 

청금석이란 보석이 있다. 한자로 靑金石. 이렇게 말하면 잘 모를 것이고 라피스 라줄리란 이름을 대면 보석에 대해 약간 지식이 있는 분이라면 알 수도 있겠다. Lapis lazuli. 흔히 라피스라 부르는 보석이다.

 

사실 라피스란 말은 라틴어로 돌이란 뜻이고 라줄리는 ‘푸르다’란 단어의 소유격이다. 그러니 라피스 라줄리라고 해야 푸른 색 돌이란 의미가 되지만 시장에선 흔히 라피스라고만 부른다.

 

청금색, 라피스 라줄리는 지금도 꽤 값이 나가는 보석이지만 예전엔 그야말로 끔찍하게 비싼 보석이었다. 전 지구상에서 나오는 곳이 사실상 단 한 군데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오로지 한 군데에서만 나오는 보석

 

 

라피스 라줄리가 나오는 곳은 오로지 아프가니스탄이다. 아프가니스탄 중에서도 단 한 곳, 중앙아시아 파미르 고원에 인접한 해발 7천 미터의 힌두쿠시 산맥의 험한 산속에서만 나온다.

 

중국 청나라 시절엔 너무나도 귀하고 고가의 보석이라 황제와 황족들만이 장식하던 보석이었다. 청금석 구슬 하나면 도시 하나를 다 사도 돈이 남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럴 정도였으니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로 지극히 고가였을 것은 물론이다. 오늘날의 가장 비싼 다이아몬드보다 수십 배나 비쌌던 청금석이고 라피스 라줄리였다.

 

그런데 그 비싼 청금석을 갈아 으깨어 물감으로 만든 것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인 울트라마린 블루란 사실이다.

 

물론 상질의 것은 보석으로만 사용되었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물감의 재료로 쓴다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말이다.

 

 

지극히 고가의 보석을 으깨어 만든 물감

 

 

청금색을 으깨어 만든 안료로서의 울트라마린 블루를 과연 어디에다가 썼을까? 궁금하지 않으신가.

 

13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절의 유명한 화가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는 파도바의 부호 가문인 스크로베니 집안의 사적 예배당 벽에 청금석을 으깨어 만든 울트라마린 블루 물감으로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옷을 색칠했다.

 

예수와 성모 마리아, 바로 聖畵(성화)를 그리는데 있어 그 끔찍하게 비싼 물감을 사용했던 것이다. 부호였던 스크로베니 가문은 조토가 그 색을 쓸 수 있도록 천금 만금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자 이탈리아는 물론이고 전 유럽에 소문이 쫙 퍼졌다. 흔히 金漆(금칠)을 한다고 하지만 그보다 수백 배 비싼 청금석을 으깨어 색으로 칠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사치도 그런 사치가 없었다. 고려시대의 극사치 물품인 金泥(금니)로 그린 관세음보살 그림이 있지만 그보다 더한 사치였다.

 

 

사치를 향한 무한경쟁

 

 

그러자 뜨거운 경쟁이 시작되었다. 누가 얼마나 더 많이 청금색 물감을 칠할 수 있느냐를 놓고 유력 가문이나 왕, 귀족, 교회들이 치열한 레이스를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유력 도시인 피렌체나 밀라노 등지에서 유명 화가들을 모셔다가 울트라마린 블루의 성화를 그리는 것이 대유행이었다. 그야말로 출혈 경쟁이었다. 이에 로마 교황 바오로 3세 그리고 율리오 2세는 오늘날 로마 교황청 안에 있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에 미켈란젤로를 불러다가 대작들을 그리는 데 있어 라피스 라줄리의 물감인 울트라마린 블루를 넉넉히 쓰게 했다.

 

예배당 안에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보티첼리 등의 화가들이 그린 프레스코 그림만 무려 1만2천점이었고 이 모두에 울트라마린 블루를 사용했다. 물론 예수나 성모 마리아 등의 주요 인물에 한해서만 칠을 했다. 로마 교황청에 관광을 가면 반드시 보게 되는 그림들, 가령 ‘아담의 창조’, ‘최후의 심판’과 같은 그림들 말이다.

 

 

사치야말로 인간적이다!

奢侈(사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반적으로 경원시된다. 도덕군자들이 흔히 경계해야 할 항목으로 사치와 방종을 강조하는 까닭이다. 반대로 그만큼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치야말로 남들에게 자랑하고 자신의 위상을 드높임에 있어 없어선 안 될 아이템이 아닌가. 벤츠 아니면 저렴한 BMW라도 몰고 다녀야만 하는 이유가 달리 무엇이랴, 돈 자랑이지.

 

나 호호당은 주변사람들에게 얘기해준다. 돈이 있으면 기꺼이 사치를 하라고, 하지만 사치만 하지 말고 남들에게도 그 액수만큼 베풀면서 하라는 말을 해준다. 그래야 욕을 덜 먹게 된다고.

 

과거 시절에 사치를 하면서도 비난을 피하는 방법은 바로 종교적인 일에 사치를 부리는 것이었다. 종교야말로 마구 사치를 부려도 남들이 노골적으로 비난하기 어려운 항목이 아닌가 말이다.

 

예수님이나 성모 마리아의 초상을 그리고 옷을 칠하는데 있어 끔찍하게 비싼 울트라마린을 썼다고 하면 대단하다는 말을 들을지언정 돈지랄을 했다는 비난은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저 유명한 고려 불화 수월관음도, 언젠가 국립박물관에 전시되기도 했던 그림은 금을 녹여서 사용한 것이지만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그보다 수백 배 비싼 라피스 라줄리를 안료로 해서 만든 울트라마린 블루로 칠했으니 우리보다 사치가 훨씬 심했음을 알 수 있다.

 

청색을 내는 안료는 사실 자연계에서 귀하다. 녹색이야 많지만 블루는 정말 드물다. 중국과 우리나라의 청화백자의 그 산뜻한 청색 역시 천연 코발트라고 하는 지극히 귀한 색깔을 써서 만들어졌다.

 

 

첨단산업이었던 합성염료와 안료의 개발

 

 

그런데 오늘날 블루 물감 혹은 염료, 아니 모든 색깔이 모두 지극히 저렴하다. 화공학자들이 천연의 색상을 인공적으로 합성해내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했고 그 결과 성공했기 때문이다.

 

독자분들은 바스프(BASF)란 독일 회사를 들어봤을 것이다. 세 명의 독일인 화학자들이 1865년에 세운 회사인데 오늘날 세계 유수의 화학기업이다.

 

그런데 바스프가 처음 개발에 성공한 아이템이 바로 인공 울트라마린 블루였다. 바스프는 염료 즉 인공물감을 합성하면서 떼돈을 벌었고 그를 바탕으로 오늘날 플라스틱과 기능성 제품, 농화학, 정밀화학, 석유화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최고의 제품과 솔루션을 제공하는 글로벌 화학 기업이 되었다.

 

오늘날엔 인공 합성을 통해 수천만가지의 색이 만들어져있고 해마다 새로운 색이 등장한다.

 

오늘날의 청바지 또는 진 역시 합성염료가 있기에 저렴한 비용에 생산할 수 있다. 옛날엔 인디고 블루라고 해서 오로지 인도에서만 생산이 되는 극도로 비싼 천연안료였다. 바스코 다 가마가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간 목적 역시 향신료와 함께 인디고 블루를 독점하기 위함이었다는 사실.

 

오늘의 글은 블루에 관한 글이었다. 인간의 탐욕과 사치, 기술개발에 얽힌 이야기였다. 기분 전환 차 썼다. 독자들도 흥미롭게 읽어주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