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이름이 도나우 강변의 크렘스이다. 강에서 바라본 마을의 풍경이다. 이 도시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의서쪽 70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인구 2만4천의 도시이다. 다뉴브 강은 내륙 수운이 발달해서 여러 나라와 지역을 거치면서 강변에 많은 도시들이 생성되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의 강은 그렇지가 않다. 작은 마을 정도가 고작인 우리와 대비가 된다. 그림이 마음에 든다. 즐겨주시길...

멜크는 오스트리아 빈으로부터 서쪽으로 대략 50킬로미터 떨어진 다뉴브 강변의 도시이다. 그림의 쇤뷔엘 성은 앞에 올린 멜크 수도원보다 2킬로미터동북쪽 강변의 바위 위에 위치해있다. 오래 전 로마제국의 변경 요새였다가 나중에 신성로마제국의 성으로 지어졌다. 세월을 통해 여러 번 주인이 바뀌었다. 그림 앞의 강은 다뉴브 강이다. 햇빛을 받아 빛나는 성의 모습이 그저 아름다울 뿐이다. 즐겨주시길...

최근 그림들에는 하나의 테마가 있기에

 

 

 4월 28일자로 올린 그림에서부터 지금까지 올린 몇 개의 그림은 하나의 주제를 가진 연속적인 프로그램이다. 주제는 다뉴브 강이고 그림들은 다뉴브 강변에 위치한 도시와 마을들이다.

 

갑자기 난데없이 왠 다뉴브 강? 하겠지만 이제 그 영문을 말하고자 한다.

 

2015년 가을 나는 강남 교보문고에서 한 권의 책을 샀는데 제목이 ‘다뉴브’였다. 작은 글자로 인쇄된 제법 두꺼운 책이라 막상 샀지만 쉽게 엄두가 나질 않다가 어느 날인가부터 조금씩 읽어가기 시작했다.

 

작가는 ‘클라우디오 마그리스’란 이름의 이탈리아 작가이다. 원래부터 문학을 애호하면서도 그 선동성을 경계하는 나 호호당이고 또 유럽 문학에 대해 전혀 잘 모르지만 유럽 쪽에선 대단히 알려진 작가인 모양이다. 이 양반의 글을 읽다보면 작가라기보다는 대단히 박식한 저널리스트란 생각이 든다.

 

아무튼 나 호호당은 이 작가의 책을 읽을 때마다 흠뻑 빠져들게 되었다. 작가는 다뉴브 강변의 도시들을 강을 따라 내려가면서 차례로 소개한다. 도시 관광 안내가 아니라 그 도시들에 살았던 역대 유럽의 지성인들과 과학자, 시인과 철학자들의 자취를 찾아서 얘기를 들려준다.

 

마그리스란 작가나 그의 책 ‘다뉴브’ 모두 우리에게 많이 생소하다. 다뉴브 강이라 하면 “다뉴브 강의 물결”이란 왈츠 곡 정도밖에 모르는 우리들 아니겠는가. 그런 생소한 다뉴브 강의 물줄기를 따라 작가는 그 연변의 도시들을 방문해가면서 그곳에 서린 역사와 지리, 문학과 예술, 종교와 사상에 대해 그간 들을 수 없었던 많은 얘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수년간 읽어온 책, 다뉴브

 

 

쭉 읽고 치운 책이 아니라 잠들기 전에 읽고 화장실에 가서 잠시 읽고 그러다가 어떤 날엔 작업실로 들고 와서 쉬면서 읽고 또 어떤 날엔 약속 장소로 이동하면서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읽는 식이다. 이처럼 수시로 손에 짚이는 대로 펼쳐서 읽었고 또 눈이 피곤하면 책갈피를 덮는 방식으로 벌써 몇 년간 읽어왔다.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르고 중복해서 읽은 데도 많지만 어쨌든 완독을 했다.

 

 

구글 어스를 통해 다뉴브 강을 내려가다.

 

 

그러다가 며칠 전 구글 어스를 통해 다뉴브 강을 그 시원에서부터 쭉 따라가면서 도시들과 주변의 지형들을 살펴보았다. 중부 유럽에서 동유럽 끝의 흑해에 이르는 길고 긴 강, 위키에 보니 길이가 장장 2,850 킬로미터라 한다. 구글 어스에서 고도 1.5 킬로미터로 고정해놓고 끊임없이 마우스를 당겨가면서 강을 따라가는 여행이었고 또 작업, 아니 정확히 말해서 놀이였다.

 

 

다뉴브 강변에 펼쳐졌던 유럽 지성의 흐름

 

 

책에는 희대의 유대인 학살에 있어 한 역할을 맡았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또 다른 면모도 적혀있다. 독일 바이에른 숲속의 궁벽한 수도원에서 아이히만은 일주일 간 정신적 칩거를 했을 정도로 신앙이 깊었다는 사실, 수도원의 방명록에 믿음에는 믿음으로 라는 글귀를 남겼다는 것, 이처럼 대학살의 전문가는 명상과 정신집중, 숲의 평화를 사랑했으며 기도도 좋아했다는 글이 적혀있다.

 

참으로 뜻밖이다. 하지만 금방 이해가 간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상부의 지시에 순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그것이 엄청난 비인도적인 지시였어도 따랐던 것이 아닌가 한다. 물론 변호하고픈 마음은 없다.

 

아이히만의 생년월일을 검색해서 사주도 살폈으나 역시 평범한 사람이었다. 중령이란 계급을 달고 있던 그로선 어쩔 수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너무 끔찍하다.

 

독일 다뉴브 강변의 도시 레겐스부르크에 최종적으로 머물렀던 요하네스 케플러의 일화도 나온다. 레겐스부르크는 신성로마제국의 의회가 있던 도시. 의회는 시청의 큰 방에서 열리곤 했다. 케플러는 황실 점성술사로 일했기 때문에 레겐스부르크에 왔던 것이고 그 바람에 케플러 박물관도 이 도시에 있다.

 

케플러는 17세기 천문학 혁명의 중심인물, 행성의 운동법칙을 확립하여 훗날 뉴턴의 연구에 토대가 된 인물 아닌가. 그는 눈송이가 왜 육각형의 작은 별 모양이 되어 응어리지는 궁금했고 또 연구한 결과 논문을 썼다. 논문을 후견인에게 바치면서 쓴 편지 글귀가 책속에 소개된다.

 

“당신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좋아한다는 걸 나는 압니다. 그 가치가 아주 작기 때문이 아니라 지저귀는 참새마냥 익살스럽고 가볍게 그것과 놀 수 있기에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좋아한다는 걸 말입니다.”

 

논문을 보내면서 이처럼 시적 흥취로 가득한 글을 적었다니, 케플러의 또 다른 면모가 순간에 내 속으로 들어와 적신다.

 

이처럼 독일 책 속엔 시인의 시인이란 칭호를 가진 프리드리히 횔덜린에 관한 얘기, 분석철학의 비트겐슈타인, 정신분석학의 프로이드 등등 수많은 유럽의 문학과 예술, 지성의 巨峰(거봉)들에 관한 일화가 연이어 소개되고 있다.

 

 

난해하지만 매료되는 이야기들

 

 

문제는 이 책 내용 중 1/3 정도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학가답게 너무 어렵게 쓴 것 같기도 하고 물론 번역 과정에서의 문제도 있지 않았나 싶다. (원래 문학서적을 번역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나를 매료시키는 이 ‘다뉴브’란 책, 그러다가 내가 느낀 감흥을 간직한 채 다뉴브 강변의 마을과 도시들을 그려보기로 했다.

 

 

뜻밖의 그림 여정을 시작했으니

 

 

첫 그림은 4월 28일의 뒤른슈타인의 수도원 그림이었고 이어서 레겐스부르크, 세 강이 만나는 독일의 도시 파사우, 또 파사우의 하얀 탑 그림, 그리고 소설 ‘장미의 이름’의 모티브가 된 멜크 수도원 그림이다.

 

계속 그릴 것이다. 그리기 전에 책 속에서 그 마을에 관해 기술한 부분을 읽고 또 위키나 구글을 통해 알아본 후 그림을 그릴 생각이다. 물론 그림 속에는 전혀 그런 내용을 표시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그림 속에 그 무언가가 들어가 있지 않을까 싶긴 하다.

 

언제까지 그려나갈 지는 모르겠다. 숙제도 아니고 의뢰받은 프로젝트가 아닌 까닭에 그저 내키는 대로 그려볼 생각이다. 싫증이 나면 ‘예술은 자유로운 감성의 산물’이라고 눙치면서 슬쩍 몸을 빼면 그만 아니겠는가 말이다.

 

어쩌다가 시작한 그림 시리즈, 호빗 3부작 영화의 첫 편 제목이 “뜻밖의 여정”인 것처럼 그냥 뜻밖에 시작한 작업 또는 여정이라 여기면 되리라.


오스트리아 멜즈 지역의 바위 위에 자리하여 위용을 자랑하는 멜크 수도원이다. 베네딕도 회의 수도원이다. 이 수도원에는 구하기 힘든 막대한 양의 책들을 모은 큰 도서관이 있었는데 어쩌다가 불이 나서 큰 피해를 입었다. 1297년의 일이라 한다. 그 바람에 움베르토 에코의 유명한 소설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수도원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소설 마지막 장면에 가면 도서관에 불이 나면서 모든 미스테리가 종말점에 도달한다. 그림에 만족한다. 독자들도 즐겨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