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그만 둔 남자는 무력해진다.
나 호호당은 운명상담을 해오는 과정에서 실로 다양한 사람들의 속 얘기를 들어왔다. 그러다보니 한 가지 알게 된 것으로서 중장년 남자가 퇴직을 하거나 은퇴를 하면 너무나도 무력해진다는 점이다. 마치 去勢(거세)라도 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어쩌면 그보다 더 심해서 사회적 사망이나 다름이 없지 않은가 하는 느낌까지 들 때가 있다.
최근 모 은행에서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바람에 명예퇴직자 수가 다른 때보다 더 많을 것으로 전망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어차피 조만간 명퇴 압력을 받을 것이니 기왕이면 조건이 좋을 때 그만 두자는 생각, 충분히 납득이 간다. 하지만 그들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것은 퇴직 후의 삶이다.
생각과는 달라도 많이 다른 퇴직 혹은 은퇴 후의 삶
먼저 퇴직한 선배에게 물어보기도 할 것이고 나름 이런저런 구상을 해보기도 할 것이다. 그간 평생 일만 해왔으니 이제 여유를 갖고 쉬기도 하고 평소 해보고 싶었던 취미생활도 좀 즐겨볼 생각도 가질 것이다.
퇴직하는 것이나 은퇴하는 것 자체는 본인의 뜻만으로 되는 일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정작 쉬게 되고 또 시간이 지나면서 느끼게 되는 무력한 감정은 주변에서 보고 들은 것, 즉 간접경험보다 훨씬 심하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무력한 감정은 半(반)년이 다르고 1년이 다르며 2년, 이런 식으로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이는 그간 퇴직한 분들과의 상담을 통해 충분히 느낀 점이다.
특히 쉬게 된 뒤 3년이 지났을 때의 무력감은 대단히 심한 것 같다. 3년 정도 지나면 긴장감이 사라진다, 눈빛도 흐려지고 주의력도 산만해진다. 탄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보통의 사람들은 퇴직이나 은퇴할 때 노후자금부터 생각한다. 물론 당연한 일이지만 그를 떠나서 퇴직 후나 은퇴 후에 어떻게 삶을 보내고 시간을 보낼 것인가에 대해 거의 준비된 것이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막연히 제2의 삶이라든가 인생 2모작을 운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 호호당 생각에 퇴직이나 은퇴 후에 나름 바쁘게 시간을 보낼 대상이 없다면 그건 퇴직 또는 은퇴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것이라 여긴다. 물론 그 이전보다야 여가나 시간적 여유가 더 많아지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분주하게 매달려야 할 대상이 없다면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란 생각이다.
늘 바쁘게 살던 사람, 늘 일에 매여 살던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삶, 한가롭고 매인 것이 없는 삶으로 전환한다는 것은 사실 엄청난 변화이기 때문이다.
예전과는 달라진 노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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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0년대만 해도 퇴직이나 은퇴를 하고 나면 대부분의 경우 몇 년 살지 못했다는 사실, 문자 그대로 얼마 남지 않은 餘生(여생), 우수리 삶을 보냈었다. 하지만 오늘날엔 퇴직연령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로도 20년 이상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50대 중반 무렵에 명예퇴직을 할 경우 그보다 훨씬 길어져서 30년 또는 그 이상이 될 수도 있겠다.
퇴직이나 은퇴 후의 삶이 이렇게 길어졌는데 그 시간들을 그냥 쉬면서 한가롭게 지낸다고 여긴다면 그야말로 엄청난 誤算(오산)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돈이 넉넉하다 하더라도 정말로 애호하는 취미, 사실상 그것을 일삼아 보낼 정도의 취미를 가진 것이 아니라면 남는 해답은 딱 하나밖에 없다.
오로지 일해야만 즐겁게 살 수 있다.
그 해답은 바로 일이다. 일해야만 살 수 있다. 돈을 떠나서 그렇다. 그 이전까지의 노동 강도는 아니라 해도 어쨌거나 일해야만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 노동 강도가 떨어지니 기대수익이나 보수도 적어질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돈의 액수가 떠나서 일하지 않는 삶은 사람을 망쳐놓는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피 터지게 박 터지게 공부한다, 그 결과 좋은 직장이나 전문직이 되었다고 하자. 그런데 퇴직이나 은퇴한 다음의 삶을 위해선 그런 노력이나 준비는 전혀 하지 않는다, 이 점이 내 눈에 너무나도 이상하게 보인다, 나아가서 奇異(기이)하기까지 하다.
우리나라도 임금피크제가 부분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그런데 상당 수 사람들은 급여가 깎이느니 명예퇴직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 나 호호당은 그게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여긴다. 예컨대 일하는 사람은 살아있는 것이고 쉬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라 여길 것 같으면 당연히 살아있는 상태, 즉 급여가 줄더라도 더 근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물론 유교적 전통이 있기에 후배보다 급여가 줄 것 같으면 체면이 깎이는 것 같은 부담은 있겠지만 그래도 그게 실은 더 현명한 선택이라 본다.
실제 있었던 얘기이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회장을 지내신 분이 은퇴하신 지 불과 4년 만에 돌아가셨다. 대단히 건강하고 정력적이던 분이셨는데 갑자기 急逝(급서)를 한 것이다. 직접은 아니지만 연고가 좀 있어서 그 분의 소식을 종종 전해 듣던 나는 그 분의 급작스런 사망은 거대기업 경영자로서의 권력을 상실하면서 생겨난 무력감이 큰 작용을 했다는 생각을 한다.
앞부분에서 퇴직 혹은 은퇴 후에 무력감을 느낀다고 했는데 이는 결국 권력의 상실을 말한다. 반드시 고위직을 하다가 은퇴한 것이 아니라 해도 내가 통제하던 것들이 내 손을 벗어나게 되면 상실감 또는 무력감이 드는 것이니 이를 달리 말하면 권력의 상실이다.
나이가 들면 신체적으로 약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거기에 더하여 가지고 누리고 있던 권력까지 상실하고 나면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러니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하거나 해오던 일에서 은퇴할 경우 당분간 쉬는 것은 절대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 기간이 3년을 넘어갈 것 같으면 삶의 질이 급격히 하락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어느 정도 쉬는 것은 좋지만 결국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제2의 삶이 되는 것이고 인생 2모작이 된다.
이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선 충분히 얘기를 했으니 어떻게 새로운 일을 찾아나서야 하는 것일까에 대해 얘기해보자.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섬에 있어
우선적으로 고려할 사항은 퇴직 혹은 은퇴 전에 받았던 수준의 보수나 권력을 누리고자 하는 것은 당연히 어렵다는 점이다. 물론 그런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겠으나 이는 자신의 방면에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은 특별한 경우에만 가능하다. 따라서 기대수준을 낮추는 것은 지극히 온당하다.
동시에 알아둘 것은 나이가 든 사람의 장점은 육체적 강인함도 아니요 두뇌회전의 민첩함이 아니다. 오랜 인생 경험에서 얻게 되는 지혜, 노화에 따라 찾아오는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감소로 인한 여유와 너그러움이라 하겠다.
삶이나 일의 경험과 지혜, 더불어 여유와 너그러움은 청년이나 중년의 사람들로부터 쉽게 찾아볼 수 있는 德目(덕목)이 아니다. 그러니 이 덕목을 살려서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서야 한다.
나이든 사람의 장점을 살려서 일하라
그렇기에 새롭게 일을 찾아 나섬에 있어 대우나 보수, 권력의 크기는 사실 나이든 사람에게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심지어는 무료봉사를 할 수도 있는 것이고 능력을 갖춘 젊은 사람의 밑에서 작은 부분을 맡아서 일을 해도 즐거울 수 있는 것이다.
頂点(정점) 혹은 피크를 넘겼으니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일하면서 나름의 보람을 찾으면 그로서 충분히 즐겁게 노후의 삶을 꾸려갈 수 있다는 얘기이다.
어떤 면에서 가장 좋은 것은 중년 시절보다 보수도 적고 권한도 적겠으나 노동시간을 줄인 상태에서 계속 일을 해가는 가운데 좋은 취미가 있어 그를 즐기면서 살 수 있다면 그야말로 최상이다. 錦上添花(금상첨화), 그야말로 비단 위에 꽃을 얹은 것과 같다.
진정한 德業一致(덕업일치)에 대해
그리고 비록 좋은 취미가 없다 하더라도 뿐만 아니라 사람이 어느 경지나 나이가 되면 사실 일하는 것이야말로 실은 가장 즐겁게 노는 것임을 절로 알게 된다. 그게 바로 진정한 德業一致(덕업일치)인 것이다. 일과 놀이가 구분되지 않고 渾然(혼연)하게 하나가 된다는 얘기이니 바로 이것이 제2의 삶이고 인생 2모작이라 하겠다.
평생 지겹게 일만 했다고 투덜대던 사람이 세월이 흘러 그냥 막연하게 쉬게 되면 그때서야 바쁘게 일하던 시절을 진심으로 그리워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그때가 좋은 시절이었다고 되뇌면서 말이다.
세상은 쓰임이 있는 자를 버리지 않는 법이라서
이 대목에서 세상의 숨겨진 이치 하나에 대해 얘기해보겠다.
일을 한다는 것은 내 개인적으로 먹고 살기 위함이고 가정을 꾸려나가기 위함, 즉 내 자신의 私益(사익)을 위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 그런데 달리 생각해볼 수도 있다. 일을 한다는 것은 세상이 나를 ‘쓰고’ 있음이란 사실이다.
세상이 사람을 쓰고 있다, 즉 用人(용인)하고 있을 경우 그 사람을 저 세상으로 어지간해선 데려가지 않는다. 당장 쓸모가 있으니 그렇다. 이에 세상은 그 사람의 건강도 챙겨가면서 쓸모를 더 啓發(계발)시켜주기도 한다.
쓰이는 사람의 입장에선 스스로 실력이 늘어난다고 하겠으나 그 사람을 쓰는 세상의 입장에선 계발이 되는 셈이다.
세상이치는 간단하고도 嚴峻(엄준)하다. 쓸모가 있으면 남겨두는 법이고 쓸모가 사라지면 정리해버린다.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진정으로 일을 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니
이제 슬슬 마무리할 때, 일을 하고파도 써주는 곳이 없어서 못 한다는 얘기가 있다. 물론이다 우리 사회의 경우 나이든 사람, 퇴직했거나 은퇴한 사람을 좋은 대우를 해주면서 어서 오십시오 하고 받아주는 곳은 사실상 드물다.
하지만 일이란 결국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찾아서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무료로 봉사하거나 아무런 권력이나 명예가 없이도 일할 수 있음을 감안하면 그렇다.
당장 수고비를 받지 못한다 해도 일은 할 수 있다. 일하는 것을 말리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비를 들고 동네 한 바퀴 돌면서 쓸고 다녀도 되는 일이고 초등학교 건널목 앞에 가서 봉사해도 된다. 무료봉사하겠다는데 만류하는 이는 없지 않은가.
돈을 받지 않아도 일은 일인 것이니 그냥 무료하게 노느니 무료로 봉사하면 그게 일이다. 우리나라 남자들, 체면이나 위신 때문에 잘 못하는 것은 알지만 그건 사실 영양가가 없는 생각에 불과하다.
일을 찾아보면 처음엔 무료봉사라 하더라도 세상 인정이란 것이 때가 되면 마음으로나마 감사인사를 받게 된다. 그러면 좋지 않겠는가.
남자란 모름지기 죽을 때까지 일해야 즐겁게 살고 오래 산다, 쓸모가 있으니 세상 또한 감안해서 보살펴준다.
그런데 왜 남성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여성에 대해선 말이 없느냐 하는 분이 있을 것 같다.
이 점에 대해 간단히 언급한다,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평생 쓸모가 있고 쓸 데가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여성은 없다는 말이다. 알아서 제 역할을 하는 것이 여성인 까닭이다. (다만 최근 늘어나고 있는 커리어 우먼들이 장차 어떨는지 그건 아직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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