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았다고 할 수도 있고 틀렸다고 할 수도 있는 금년 초의 예측
“올 해 2018년은 북핵 문제에 있어 결정적인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금년 2월 1일자 글인 ‘북한의 비핵화’에 썼다. 프리스타일 1657회 글이 그것이다.
글 중엔 또 이런 말도 있다. “현재로선 협상의 여지가 거의 없어 보인다”, 이에 “나 호호당으로선 이제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는 생각, 김정은에게 별안간 일이 생기면서 북한 내부에 급격한 변화가 생기는 일이 그것”이라고 썼다.
나는 오래 전부터 북한과 북핵 문제에 대해 두 가지 사항을 절대적인 전제로 여겨왔다.
하나는 북핵 문제는 2018년 중에 결정적인 변수가 생길 것이며 또 하나는 이미 실패한 북한 체제는 2020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란 점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김정은에게 일이 생기고 그를 통해 핵 문제가 풀리고 이어 남북한이 통일로 가는 길을 열게 될 것이란 희망어린 생각을 줄곧 가져왔다.
그러나 글을 쓴 지 이제 겨우 4개월이 지난 현 시점에 와서 보니 내 예측과 전제는 맞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틀렸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전혀 예기치 못한 방식, 정말이지 상상도 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상황이 풀려가고 있는 오늘이다. 글을 썼던 2월 1일에서 겨우 4개월이 조금 흐른 다음 주 12일에 싱가포르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의 회담이 열릴 것이니 말이다.
아무튼 천만 다행한 일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된다. 나 호호당이 연구해낸 자연순환운명학의 방식에 대해 말하자면 장차 생길 일의 타이밍이나 시기는 참으로 예리하고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미래의 상황을 그려내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역사의 창발성
물론 미래의 구체적인 상황을 그려내지 못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모든 변수와 정보를 사전에 꿰뚫고 있지 않는 한 그럴 수가 없는 일이다. 매 순간 스스로를 창조해가는 역사를 사전에 결정지을 순 없는 노릇인 것이다.
하지만 나 호호당이 정립한 자연순환의 이치는 이 세상 그 어느 이론보다도 변화의 시기와 타이밍을 예측함에 있어 더 없이 탁월한 이론이란 점이란 점에 대해선 실로 자랑스럽게 여긴다.
미래를 그려내진 못한다, 다시 말해서 미래의 모습을 결정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미래로 이어지는 변화의 시점과 변곡점에 대해선 이른바 칼 같이 예리하게 지적할 수 있다.
참으로 기묘한 북미간의 거래
방향을 바꾸어서 얘기이다. 이런 생각이 든다. 북한 김정은이 요구하는 것은 비핵화를 대가로 체제의 절대적인 안전보장인 것이니 그것이 올 해안에 성사가 된다면 올 해 무술년으로서 북미 간에 보호조약이 체결되는 셈이다. 이른바 ‘무술 보호조약’인 셈이다. (아마도 2020년 즉 경자 보호조약이 될 가능성이 더 커 보이지만 말이다.)
보호조약이란 말은 우리에게 대단히 좋지 않은 이미지의 단어이다. 1905년의 ‘을사 보호조약’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표현을 쓰게 될 것이라 보지만 내용으로만 따지다면 그야말로 보호조약인 것이다. 그러니 이건 또 뭐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대한제국의 胎動(태동)인가?
또 이런 생각도 든다. 장기적으로 보면 올 해 무술년으로서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지역강자인 대한제국이 胎動(태동)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다.
남과 북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서로 다른 체제 하에 이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은 유일 독재이면서 시장경제를 지향해갈 공산이 크니 이는 중국식 모델과 유사하다 하겠고, 우리는 민주체제로서 시장경제를 이어갈 것이라 본다.
하지만 남과 북은 근본적으로 같은 뿌리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에 서로 잘 협조해가는 가운데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북한이 우리와 같은 민주체제로 전환하게 되고 이에 다시 실질적으로 하나의 국체 즉 통일대한민국이 성립된다면 그것이 바로 대한제국이 아니면 달리 무엇이랴.
당장은 아니겠으나 언젠가 남과 북이 하나로 통합한다 한들 주변의 일본이나 중국, 러시아 등이 이를 저지할 어떠한 명분도 없기 때문이다. 원래 남과 북은 하나였기에 말이다.
동북아 균형자로서의 가능성
나아가서 주변국이 아닌 미국은 통일된 대한민국을 동북아시아의 지역강자로 인정함과 동시에 동북아시아를 컨트롤하는 지역강자로 만들어줄 가능성도 대단히 높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이는 바로 고 노무현 대통령이 언급했던 바로 그 동북아시아의 균형자, 줄여서 ‘동북아 균형자’가 구현되는 셈이기도 하다.
평화를 만들어내려면 강력한 힘이 있어야 한다. 힘없는 자가 평화를 주장하는 것은 단순한 이상주의에 불과한 것이 현실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언젠가 남북한이 하나의 국체로 합쳐지고 또 부강한 나라를 이어갈 것 같으면 충분한 가능한 일인 것이다.
원래 미국은 소련과의 냉전이 시작되면서 일본을 동북아 일대의 에이전트로 삼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냉전이 끝난 뒤 중국이 급부상하고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자 당초의 글로벌 전략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다.
일본의 방위산업은 그저 지역과 기득권 계층의 이익이나 나눠먹는 왜곡된 채널로 전락해버린 오늘의 현실이며, 일반의 일본 시민들 역시 군국주의에 대한 엄청난 환멸로 인해 힘 좀 쓰는 일본으로 만들어보려는 아베의 노력은 전혀 진척이 없다.
반대로 힘이 커진 중국은 공산당 체제의 유지를 위해 황제 체제로 회귀해버렸다. 동시에 우쭐대면서 급격한 팽창주의 전략을 노골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이에 글로벌 패자인 미국의 입장에서 당장은 아니라 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남과 북이 언젠가 순조롭게 통합될 경우 통일 대한민국을 동북아의 에이전트 겸 이 지역의 균형자 역할을 맡을 수 있도록 지원할 가능성은 충분하기 때문이다.
2024년부터 시작되는 우리 국운의 제3기
우리 대한민국은 2024년이면 새로운 60년 순환의 立春(입춘)을 맞이한다. 많은 어려움과 고난이 수반될 것이라 본다. 하지만 좀 더 큰 눈, 즉 360년 순환의 관점에서 보면 2024년으로서 60년 단위로 진행해가는 흐름에 있어 3번째 단계에 들어선다. 이를 나는 360년 국운의 제3기가 시작된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국운 제3기는 역동적인 확장의 시기가 될 것이니
여러 나라의 국운을 그간 유심히 세심하게 살펴본 바로는 국운 제3기는 팽창과 확장의 시기가 된다. 따라서 우리 국운의 제3기는 남에서 북으로의 팽창이기도 하고 동시에 남과 북이 협조해가면서 하나로 통합되는 팽창이자 확장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그 힘과 다이내믹은 한반도 안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그간 폐쇄된 지역이었던 북한은 그야말로 동북아의 ‘알박기’ 역할을 해왔다. 그런 알박기가 빠지면 일거에 기운이 사통팔달하게 되니 태평양에서 만주와 러시아, 몽골로 흐를 것이고 동서로도 원활하게 흐를 것이다.
북한은 물론이고 만주와 러시아의 연해주로부터 시베리아에 이르기까지의 광활한 지역이 21세기의 새로운 성장 센터로서 글로벌 경제를 견인하는 새로운 기관차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주역은 바로 우리 대한민국임은 물론이다. 그렇기에 앞에서 어쩌면 올 해로서 대한제국이 태동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표현을 썼다.
至難(지난)한 과업이자 희망찬 挑戰(도전)이 될 것이니
물론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을 새롭게 현대화된 나라로서 재건설하고 재구축하는 과정이 어디 쉬울 까닭이 있겠는가. 우리의 주도로 천문학적인 재정투자와 기업 투자가 있어야 할 것이다.
나 호호당은 그 돈이 최소한 2조 달러는 있어야 할 것이라 본다. 정부의 재정투자가 1조 달러, 민간 기업 투자가 1조 달러는 소요될 것이라 본다. 그렇게 되면 돈이 귀해질 것이니 금리 상승은 물론이고 자금 조달을 위해 전 세계로부터 자금을 조달해야 할 것이라 본다. (물론 미국의 투자은행을 통하는 방식이 되겠지만 말이다.)
금리상승은 우리나라의 자산 구조를 전적으로 바꿔놓게 될 것이다. 고공행진을 이어오던 기존의 자산시장은 조정이 불가피할 것이고 이에 따라 가계부채 문제는 실로 엄청난 도전이자 시련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좀비 기업들은 어쩔 수 없이 정리되거나 아니면 새로운 기회를 붙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복지 지향의 포퓰리즘 정책은 상당 기간 사라질 가능성도 크다.
물론 이 모든 변화는 국민들이 수용 가능한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겠지만 세상은 때론 우리의 예상과 시야를 넘어서는 범위로까지 급속한 변화를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점이다.
분명히 상당 기간 동안 특히 우리 남쪽 사람들은 먼 미래의 희망을 바라보며 한동안 허리띠를 졸라매어야 하는 시기가 올 것이라 본다. 적어도 30년 정도는 그런 세월을 또 다시 겪어야 할 것도 같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오늘의 이런 생각은 다시 강조하는 얘기지만 그저 상상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예측이란 말을 붙일 자격조차 없다는 생각이다. 역사와 미래는 언제나 사람의 상상력과 시야를 초월해서 새롭게 창조되어가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자신 있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우리 모두 많은 인내와 어려움을 감내하고 견뎌내어야 할 것이란 점이다. 아울러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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