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의 시 한 편 

 

 

해마다 동지가 되고 성탄절이 오면 으레 생각나는 시가 있다. 외우고 있진 않기에 다시 찾아서 음미해보곤 한다. “의사 지바고”를 써서 노벨 문학상을 받은 러시아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남겼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아버지가 화가였고 어머니가 피아니스트였기에 그야말로 감성 풍부한 문인이었다.

 

시 제목은 "Unique Days". 그런데 시의 내용을 보면 제목부터 우리말로 옮기기가 정말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시라고 하는 문학 장르는 번역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늘 한다.)

 

Unique Days (독특한 날들)

 

How I remember solstice days

Through many winters long completed!

Each unrepeatable, unique,

And each one countless times repeated.

 

그간 많은 겨울을 지내오면서

동지 때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매 동지마다 같은 동지는 없고 저마다 독특한데

그러면서도 그런 동지들이 무수히 반복되더군.

 

Of all these days, these only days,

When one rejoiced in the impression

That time had stopped, there grew in years

An unforgettable succession.

 

지나온 모든 날들 중에서도 오로지 이 날들만큼은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아서 잠시 기뻐하기도 하지만

세월이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야

어떻게 망각할 수 있겠어

 

Each one of them I can evoke.

The year is to midwinter moving,

The roofs are dripping, roads are soaked,

And on the ice the sun is brooding.

 

그 동지들을 하나하나 떠올릴 수 있지

한 해가 동지를 향할 무렵

처마에선 물이 떨어지고 길은 젖었으며 

태양은 얼음 위에서 음울하지

 

Then lovers hastily are drawn

To one another, vague and dreaming,

And in the heat, upon a tree

The sweating nesting-box is steaming.

 

그러면 연인들은 황급히 서로에게 끌려

몽롱한 꿈을 꾸고

나무 위 젖은 새둥지 상자에선

더운 김이 피어오르지

 

And sleepy clock-hands laze away

The clockface wearily ascending.

Eternal, endless is the day,

And the embrace is never-ending.

 

그리고 졸린 시계바늘은 느릿느릿

힘없이 시계판 위로 올라가지

날은 영원하고 끝이 없으며

연인들의 포옹 또한 끝이 없지

 

그가 만년에 동지를 보내던 겨울 별장의 모습과 노년의 모습부터 위키피디아에서 다운 받아 올려본다. 소개한 시 역시 만년에 썼다. 

 

 

 

며칠 동안 힘들게 어렵사리 억지로 번역해보았다. 독자님들에게 나 호호당이 感受(감수)한 느낌과 생각을 조금이나마 잘 전달하고픈 마음에서.

 

다르면서도 반복되는 것, 자연순환의 철학

 

특히 첫 부분에서 눈길을 끈 대목은 매번 동지는 다 다르고 독특하다는 사실, 그러면서도 그 동지들이 무수히 반복된다는 사실.

 

유니크하면서도 무수히 반복된다는 얼핏 생각하기에 모순된 표현 같지만 이 대목이야말로 십 수 년 전 처음 읽는 순간부터 단박에 나 호호당의 구미를 당긴 대목이다. 나 호호당의 자연순환에 대한 철학과 정확하게 동일했기 때문이다.

 

되돌아오지만 그 반복이 동일하지는 않다는 얘기. 사랑의 테마는 늘 동일하지만 모든 사랑이 다 특별한 것과 같은 얘기. 사랑해, 하는 말은 동일하지만 들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다른 것처럼.

 

그러면서 시인은 동지의 날들을 떠올려본다, 긴 겨울밤 모든 사물이 정적에 잠겨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동지의 날들, 짧은 낮으론 무기력한 해가 얼음 위에서 우울해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들.

 

그러면서도 따뜻한 실내에서 긴 잠 긴 꿈을 꾸는 연인들은 더더욱 서로에게 끌려서 포옹하고 사랑하고, 새둥지에선 새들이 더운 김을 피워 올리는 동지의 날들.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가지만 순간은 영원하고 끝이 없다는 사실

 

 

벽시계의 바늘이 밑의 6시에서 위의 12시까지 힘들게 절벽을 타듯이 오르는 그 동지의 날은 그 순간 영원하고 끝이 없기에 연인들의 포옹 또한 끝이 없다고 시인은 노래하고 있다.

 

 

힘들었던 2024 갑진년

 

 

오늘은 12월 27일, 동지를 지난 지 엿새, 여전히 동지란 느낌 속에서 지내고 있다. 항암 주사를 맞은 아내가 성탄절에 퇴원해서 집에서 지내고 있다. 체력이 어서 살아날 수 있도록 운동을 독려하고 또 잘 먹도록 애쓰고 있다.

 

돌이켜보면 2024년 甲辰(갑진)년은 나 호호당과 가족들에게 있어 참 어려운 한 해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견딜 땐 견디면서 힘차게 앞을 향해 걸어가야지 하는 마음 변함없다.

 

연말까지 4일이나 남았으니 그 사이 또 글을 올리겠지만 오늘 이 글은 2024년을 함께 호흡해준 독자님들에게 올리는 송년 인사로 받아주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