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의환향의 이중근 회장

 

 

얼마 전 부영그룹의 이중근 회장이 고향 순천 사람들에게 무려 1400억이란 거액을 나누어주었다. 고향을 떠나지 않고 지켜줘서 고맙다는 인사였다. 좋은 일이다.

 

이 회장을 2016년 무렵에 만나서 운세 상담을 해준 적이 있다. 을지로 롯데호텔 안의 일식집에서였다. 만나서 생년월일시를 듣고 운세를 판단해보니 2009 己丑(기축)년이 입춘 바닥이었다. 그러니 향후 몇 년간 고생 좀 하겠구나 싶었다.

 

앞으로 좀 어떻겠오, 내 운세가? 하고 물어보시는데 약간 난처해진 나는 그간 일도 많이 하셨는데 이젠 좀 쉬시지요, 하고 애매하게 답을 했다.

 

나 호호당이 성공한 기업가를 만나게 되면 그 사람의 운세 상담보다도 그간 어떻게 해서 돈을 벌고 성공할 수 있었는지 등에 대해 물어볼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즐거움을 느낀다.

 

자신의 성공 스토리에 대해 흥미를 갖고 들어주고 또 질문도 해가다 보면 당사자 역시 신이 나는 법, 이 회장님은 내 질문에 잠시 과거로 되돌아가서 자랑스러웠던 과거 일들과 성공 사례들을 들려주었다. 부영 아파트가 촌스럽다고 악평이 많지만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변하는 대목, 스스로를 난 촌놈이야 그러면 뭐 어때서? 하는 대목에선 절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그 분의 무공담을 들으면서 속으로 이 분은 나름 剛斷(강단)도 있고 俠氣(협기)도 있는 분이네 싶었다. 그랬으니 집을 짓는 건설업, 나름 험한 데가 있는 업종에서 무너지지 않고 성공할 수 있었으리라 싶었다.

 

자리를 마치고 일어나면서 나는 이미 큰 功(공)을 이루었으니 앞으론 부디 조심하시고 조금 쉬어간다는 마음으로 일에 임하시기 바랍니다, 건강도 신경 쓰시고요, 하는 당부의 말을 드렸다.

 

아니나 다를까? 그 이후 얼마 안 가서 구속되는 일이 생겼고 2021년이 되어서야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나름 훌륭한 일을 많이 하신 기업가로서의 이 회장님

 

 

만나본 이후 나 호호당은 이중근 회장은 사업적으로 비판도 많이 받았고 그 바람에 獄苦(옥고)도 치르긴 했으나 훌륭한 대목이 있는 기업인으로 평가해왔다. 무엇보다도 학자들을 동원해서 일제36년의 역사, 그리고 해방 이후의 역사 또 6.25 전쟁에 대한 소중한 1차 사료들을 수집 정리토록 해서 방대한 책으로 엮어냈다는 점이다.

 

사실 그 분을 만나게 된 동기도 그 책들을 한 질 얻었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식사 자리에서 좋은 책을 엮으셨으니 얻었으면 한다고 솔직하게 얘기를 하니 그 자리에서 즉각 비서를 통해 책 한 질을 택배로 보내주었다.

 

그렇기에 이번에 고향 사람들에게 거액을 나누어주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역시 이 분은 멋이 있는 분이네 하고 찬탄을 했다. 아울러 이제 스스로의 삶을 정리하고 계신다는 판단도 들었다. 올해 나이가 82세이니 이제 首丘初心(수구초심), 여우가 죽을 때가 되면 제가 살던 굴이 있는 언덕 쪽으로 머리를 둔다고 하니 그런 심정이 아닐까 싶다.

 

그간 상담일을 해오면서 적지 않은 기업가와 부자들을 만나 보았다. 그 중에는 이른바 재벌이라 불리는 사람들도 있고 또 상당한 규모의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이어받은 부자들도 많다.

 

 

창업주와 그 2-3세의 차이점 

 

 

그들을 만나보면서 느낀 대표적인 인상은 바닥에서 일어나서 기업을 키워낸 창업주와 이어받은 사람은 달라도 많이 다르다는 점이었다.

 

창업주들은 대부분 돈에 대해 어떤 외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동시에 겸손한 면모와 내적 자신감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발버둥을 치다보니 운 좋게 성공할 수 있었다는 생각에서 오는 겸손함, 그러면서도 장차 힘든 상황이 닥칠 경우 어떻게든 잘 대응해갈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자신감이 그것이다.

 

반면 이어받은 이들, 흔히 2세 그리고 특히 3세의 경우 그저 운이 좋기를 바랄 뿐 겸손이나 자신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스스로 성취한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때론 불안감도 엿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으레 이슬람의 역사가인 “이븐 할둔”이 쓴 “역사서설”, 아랍어로 “무깟디마” 속의 글들이 상기되곤 했다.

 

 

田野(전야) 문명과 都會(도회) 문명의 차이

 

 

이븐 할둔은 문명을 田野(전야)의 문명과 都會(도회)의 문명으로 구분하면서 그것이 되풀이된다고 말하고 있다. 전야 문명이란 간단히 말해서 척박한 들판의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문명이고 도회문명이란 문자 그대로 오늘날 대도시의 그것이다.

 

척박한 들판에서 일어나고 강해져서 세력을 이룬 사람들은 오늘날의 경우 창업주와 비슷한 데가 있고 상속을 받은 2세나 3세는 도회문명의 그것과 유사하다.

 

창업주들은 대부분 자신의 부와 기반을 이어갈 2세나 자녀들의 태도에 대해 불만이 많다. 한마디로 돈 귀한 줄 모르고 열심히 하는 자세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3세의 경우엔 대단히 귀여워하고 사랑하면서도 그들의 장래에 대해선 우려하고 있었다.

 

그럴 경우 “고생을 안 해봤잖아요, 부모 잘 만났으니 그럴 수가 없지 않습니까?” 하고 위로의 말을 건넬 때가 많다.

 

최근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을 대하노라면 우리나라도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나 호호당이나 그 이전 세대들은 들판의 감각이 있었다면 최근 젊은이들은 그런 감각이 없다. 사치하게 살 지 못하는 것에 대한 좌절감이 더 크다.

 

그렇지만 젊은이들을 비판하고픈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소비와 사치가 기본인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니 그렇다.

 

앞에서 소개한 이중근 회장도 자녀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사업이 얼마나 어렵고 때론 돈 한 푼이 얼마나 소중한 지에 대해 모른다면서 내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이에 나는 그냥 웃었다. ‘그거야 다 그런 거죠 뭘!’ 하고 속으로 답했다.

 

缺乏(결핍)이 常數(상수)인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과 나름 풍요가 상수인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이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우리 대한민국은 그간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왔기에 더 이상 田野(전야)적 감각의 나라가 아니다. 그러니 그 속의 젊은 세대에게 들판의 감각을 요구하거나 주입시키긴 실로 어렵다.

 

이븐 할둔 말하길 도회문명은 때가 되면 어차피 기울 수밖에 없다고 한다. 결속감도 약하고 시련을 통해 단련되지 않았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나 호호당이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근거 있는 노파심

 

 

현재 우리 경제의 기반은 척박한 환경 즉 田野(전야) 속의 사람들이 일구었는데 지금의 도회적 환경 속의 젊은이들이 계속해서 이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갈 수 있겠는가? 하는 걱정이다.

 

물론 아직은 1세의 태도를 어느 정도 흡수한 2세들이 경영하고 있기에 여전히 탄력이 살아있긴 하다. 하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주역이 될 때가 되면 결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의구심이다. 이런 생각은 나이가 든 나 호호당의 老婆心(노파심)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터무니없는 우려만도 아닐 것이다.

 

우리 경제는 여전히 수출에 기반을 두고 있다. 자체 내부의 시장만으론 결코 현 수준의 경제를 유지할 수가 없다는 근원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일본이 약해졌네, 도무지 희망이 없네, 등등 말이 많지만 일본의 현 기술력을 감안할 때 자체 내수 시장만으로도 어느 정도 충분히 유지가 가능하다. 수출입 비중이 우리보다 훨씬 적기 때문에 조금 더 가난해진다고 해서 그런대로 굴러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게 어렵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의 1세대들은 산업을 일구었고 2세대들은 신기술의 습득과 발전 게다가 특히 문화 산업 방면, 영화라든가 공연 예술 등을 통해 세계적으로 “한류 붐”을 일으켰다. 그렇다면 3세라 할 수 있는 젊은이들, 지금 한창 주역으로 발돋움해가고 있는 그들이 또 다른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분명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있다

 

 

내년 2024년이 우리 국운의 새로운 立春(입춘) 바닥이자 시작이다. 그러니 전해 생각하지 못했던 도전과 과제들이 우리 앞길에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과연 그게 어떤 문제일까? 를 놓고 무수히 생각해보았지만 이젠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60년 국운을 맞이하여 金蟬脫殼(금선탈각) 즉 금빛 매미가 허물을 벗고 새롭게 등장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