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 동굴에서 나오게 되었으니 

 

 

교보타워 근처의 오피스텔에서 나오기로 했다. 코로나 이후 많은 것이 변하더니 마침내 작업실을 그만 두는 일로 이어졌다.

 

오스피텔은 일렬로 방이 두 개 있는데 현관쪽의 방과 창이 있는 방 사이에 주방 세트와 화장실이 양쪽으로 설치되어 있어 마치 가운데가 오목한 호리병처럼 생겼다. 그간 나는 이곳을 “서초 동굴”이라 불러왔다.

 

왜 동굴이라 했는가? 하면 어느 날 작업실이야말로 내게 있어 도교에서 神仙(신선)들이 산다고 하는 洞天福地(동천복지)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전설의 무릉도원 이야기를 읽어보면 계곡 사이로 길이 나 있어 무심결에 들어갔는데 점점 좁아져서 두려웠지만 인내하고 끝까지 들어갔더니 갑자기 앞이 툭-하고 트이면서 별천지의 낙원이 있더라는 얘기에서 유래한 것이 洞天(동천)이다.

 

2005년 지금의 서초 동굴로 들어갔다. 나 호호당은 1997년이 立春(입춘) 바닥이라 당시 운 흐름은 60년 순환에 있어 많은 것들이 참담하고 초라한 春分(춘분)의 때였다. 건강을 포함해서 모든 면에서 힘들던 시절이었다.

 

운명상담 일을 하고 있었지만 실은 연구였다고 해야 맞는 말이다. 전래의 중국 명리학은 많은 부분에서 미흡한 점이 있고 운세 예측도 잘 맞지 않는다. 그래서 서초 동굴에서 여태껏 알려지지 않은 것이 있을 거란 기대를 가지고 운명학을 원점에서부터 연구하기 시작했다.

 

(미리 말하면 바로 그 알려지지 않은 것이 지금 나 호호당이 강의하고 실제 적용하고 있는 60년 순환을 기초로 하는 자연순환운명학이다.)

 

2000년 초부터 구글이나 위키피디어가 보급되었기에 연구해볼 데이터는 무궁무진했다. 또 그를 바탕으로 상담객의 사연을 들어가면서 추리를 했고 검증을 했다.

 

2007년 초 급기야 60년 순환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포착할 수 있었고 그를 바탕으로 2012년경에는 그것이 확실하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이에 조금 더 검증을 거듭하면서 이론체계를 세웠다. 그리하여 2014년 봄 “자연순환운명학”이란 새로운 운명의 과학이 탄생했다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그렇기에 나 호호당의 자연순환운명학은 바로 서초 동굴 안에서 창안되었다.

 

 

서초 동굴 안에서 상처를 씻어내고 또 많은 것을 얻었으니 

 

 

2005년 서초 동굴 안으로 기어들 갈 적에는 참담한 심정이었으나 참으로 그 속은 별천지였다. 내실의 창밖 밑에 목련이 몇 그루 있는데 봄이면 그야말로 그 優美(우미)하고 밝은 상아빛의 꽃망울을 해마다 어김없이 터뜨려주었다. 한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보내면서 목련은 진정한 내 친구가 되어 주었다.

 

겨울이 되어 목련 잎사귀가 다 시들어 떨어지고 일부는 가지에서 채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는 모습을 바로 눈앞에 내려다보면서 말을 건네곤 했다. 자네 모습이 마치 나 호호당과 같구나, 오피스텔 건물이 오래 되었기에 혹시라도 재건축을 하는 날엔 자네, 목련도 싹둑하고 베어지겠지, 자네들을 남겨 놓을 사람들이 아니잖아, 그러니 부디 그날이 늦게 오기만을 기도하는 수밖에 없잖아, 그래 내가 기도할께! 우린 친구잖아.

 

예전에 반포 주공 3단지는 봄이면 벚꽃으로 유명했다, 그런데 최신의 타워형 아파트로 재개발되면서 그 무수히 많은 묵은 벚나무들이 몰살당했다. 항거할 힘이 없었기에 그 살육의 현장에서 나는 조용히 나무들의 怨靈(원령)을 달래고 좋은 데 가서 다시 태어나라고 빌어준 기억이 난다.

 

서초 동굴은 참으로 내게 있어 세파의 고달픔으로부터 나 호호당을 지켜준 동천복지의 別(별)세상이었다.

 

그 안에서 수묵화에 빠져 지냈고 또 수채화를 그렸다. 밥벌이도 했지만 찾아오는 사람 중에 인연이 닿아서 친구가 되기도 했다. 그 안에서 자연순환운명학을 창안했고 언어학에 관한 많은 연구를 했다. 근처에 강남교보문고가 있어 수시로 들락거리면서 책을 보기도 하고 사서 읽기도 했다. 강남교보문고는 사실상 나 호호당의 서재였다. 작업실은 이미 천 권 넘는 책으로 들어차 있었기에 해마다 백여 권의 책을 샀고 늘 그 정도의 책을 해마다 폐기했다.

 

 

때가 되니 절로 계기가 생겨나고 

 

 

2005년 8월 12일에 들어갔으니 이제 18년이 되어 떠난다. 이 세상은 알게 모르게 15년, 즉 60년 사계절의 한 계절이 지나면 변화의 계기가 생겨나서 다시 2.5년, 즉 시작으로부터 17.5년이 흐르면 변화가 뚜렷해진다.

 

변화의 계기는 두 가지였다. 돌이켜보면 그렇다. 하나는 2020년 초 코로나19의 대유행이었다. 그 바람에 상담 일이 대폭 줄었다. 또 하나는 2020년 5월 동작동에서 지금 살고 있는 우면동으로 이사를 한 일이 그것이다. 상담이나 특별한 일이 없으면 작업실에 나가는 일이 적어졌고 백신을 맞은 이후 이석증이 생겨서 택시를 타야 했는데 한동안 택시 대란으로 작업실 나가는 일이 부담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사로 인해 공간적 여유가 생기자 집안에 畵室(화실)을 마련하고 컴퓨터를 놓고 또 서가를 놓고 책도 많이 가져오다 보니 더더욱 작업실 나갈 일이 없어졌다. 몸이 아니라 영혼의 거주지가 우면동 집안으로 들어왔음을 어느 날 문득 알게 되었다. 작업실에 그림 도구가 있고 책이 있었으니 내 영혼의 거주지는 서초 동굴이었는데 그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은근슬쩍 영혼의 이사를 한 셈이었다.

 

올 초부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작업실을 뺄까 말까. 작업실이 있어야 될 이유는 상담 일 그리고 작업실에 천여 권의 책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책들을 집으로 들여놓을 공간은 절대부족하다.

 

그런데 상담은 웹켐으로 해도 되고 영상통화로 해도 가능하다. 굳이 작업실이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남는 것은 오로지 하나, 책이었다. 몇 달을 두고 숙고를 거듭했다.

 

 

책을 버리겠다는 결심이 가장 어려웠지만 

 

 

작업실에 있는 천여 권의 책 중에 절반 이상은 절판되었거나 또는 예전에 중국이나 타이완을 드나들 때 입수한 책이다. 영문 원서도 많다. 하지만 사실상 책 보관용 공간으로 한 달에 임대료 관리비 등등 포함해서 백만 원 이상을 쓴다는 게 아무래도 이치에 맞질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며칠 전 결단을 내렸다. 귀한 책이고 다시 구하기도 어렵지만 대거 폐기하자는 생각. 어차피 언젠가는 저 책들과 이별해야 하지 않는가!

 

최근 들어 나이가 들고 건강에도 이상이 좀 생기다 보니 늘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곧 68세가 되니 장차 길어야 20년을 이 세상에 존재할 뿐이다. 그러니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 나 호호당은 생각이 많다.

 

저마다의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 호호당의 경우 중환자실에서 산소마스크를 쓰고 링거로 영양분을 공급받다가 마감하는 죽음을 단연코 거부한다. 때가 되었다 싶으면 穀氣(곡기)를 끊어서 편안하게 삶을 마감할 작정이다. (그럴 경우 행정처리가 좀 불편하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니 어차피 책들과도 이별을 해야 할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전혀 생각이 없었으나 이젠 삶을 마감할 준비도 해놓아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구하기 힘든 책이지만 그렇다고 일반인들이 즐겨볼 책들도 아니다. 그러니 폐기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넓은 세상과 시간에 관한 지식의 세계를 탐닉할 이유도 그다지 없는 것 같다.

 

이렇게 정리를 하자 더 이상 작업실을 유지할 이유도 사실상 없다.

 

 

道士下山(도사하산)

 

 

작업실에서 나오게 되면 그 전날 나름의 祭(제)를 올려야지 싶다. 무려 18년, 인생의 거의 1/4 이상의 기간 동안 내 영혼은 서초 동굴에 머물렀으니 당연한 일이 아닌가. 건물과 작업실의 터주 어르신에게 정중하게 고개 숙여 작별을 고할 생각이다. 그간 고마웠다고, 너무 고마웠다고 인사를 드릴 생각이다.

 

60년 순환에 있어 춘분의 때에 들어가 18년, 내년이면 나 호호당의 운세는 한창 뜨거운 大暑(대서)의 운이 된다. 지치고 약해져서 찾아들어간 동굴이었는데 그 동굴은 그간 나를 참으로 알뜰하게 돌봐주었으니 그야말로 기대 밖이었다. 잘난 맛에 엄벙덤벙 대충 살다가 다친 상처들, 內傷(내상)도 말끔히 가셨다. 그간에 몸은 조금 늙었으나 정신은 더 없이 건강해졌다.

이제 동굴을 나와 진정으로 下山(하산)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道士下山(도사하산)이란 제목의 중국 영화가 생각난다. 성장 스토리인데 코믹과 액션을 버무린 철학 영화였다. 이제 洞天(동천)을 나와 산을 내려가야지 싶다. 나이 50에 들어가서 68세가 되어 산을 내려가니 너무 늦은 감도 있지만 아무튼.

 

 

이제 練丹(연단)이 끝났으니 

 

 

이 세상 속에서의 삶, 불교 용어로 器世間(기세간)의 삶은 참으로 경이롭다. 다만 그것들이 너무나도 교묘하게 얽히고설켜 있어서 좀처럼 그 경이로움을 감지하기 어려울 뿐이다.

 

돌이켜보면 나 호호당의 앞날이 가장 어둡다 느꼈을 때 서초 동굴 안으로 기어 들어갔지만 실은 바로 그 순간이야말로 커다란 전환점이었다.

 

또 훗날 이 때를 되돌아보면 서초 동굴 안에서의 세월이야말로 물질적으로야 힘든 고비가 많았으나 그럼에도 나 호호당의 정신이 가장 광휘를 발하던 시절로 다시 한 번 기억될 것 같다. 그때야말로 전성기였다고 말이다. 나 호호당은 서초 동굴에서 마법의 돌 또는 현자의 돌, 엘릭서(Elixer), 도가의 仙藥(선약)인 丹(단)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나간다, 그리고 나가자.

 

(알림: 작업실을 나오는 때는 빠르면 7월 중순, 늦어도 8월 중순이 될 것이니 그 전에 상담 약속을 잡으신 분은 그냥 작업실로 오시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