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잡기가 참으로 어려운 현 시점
현 정권 들어 한일 관계가 다시 복원되고 그로서 한미일 삼각체제 또한 정상화되고 있다. 당연히 중국과의 관계는 소원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의 경쟁 구도 속에서 균형을 잡기란 참으로 어렵다.
미국은 문재인 정권 당시 주한 미국 대사를 16개월간이나 공석으로 둠으로써 불만을 표시했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 이후에야 현 골드버그 대사가 취임했다. 반대로 주한 중국 대사인 싱하밍 씨는 힘들게 직무를 수행하고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2000년대 초반 싱하밍 씨와 몇 번 식사를 함께 한 적도 있는데 북한과 우리나라를 오가면서 경력을 쌓은 싱하밍 씨는 전문 외교관이자 품위도 갖춘 양반이란 느낌을 받았다. 당시 나는 북한의 친인척과 브로커를 통해 연락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있었기에 싱하밍 씨에게 그게 어떨지 지 물어보았더니 손사래를 치면서 절대 하지 말라는 충고를 해주었다. 그럴 경우 북한에 있는 친인척이 곤경에 처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한일 관계에 대해 전망해보면
이 대목에서 한일관계에 대한 전망을 얘기해본다.
먼저 乙巳(을사)년이 분기점이라 보면 되겠다.
1905년 을사년에 조선왕국은 사실상 일본의 보호국이 되었고 그 이후 합병의 비운을 겪었으니 을사보호조약이 그것이다. 우리가 약하다 보니 맺게 된 불평등한 관계였다.
1965년 을사년에 당시 소련과 진영싸움을 펼치던 미국의 강력한 주선으로 한일관계가 정상화되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달러가 한 푼이라도 아쉬운 시점이었기에 관계 정상화를 통해 받은 배상금으로 경제발전의 초석을 놓았고 그로부터 우리 경제는 날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내후년이 乙巳(을사)년인데 그때로서 한일관계가 완전 정상화되지 않을까 하는 전망을 해본다. 이제야말로 대등하고 공평한 좋은 관계로 발전해가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가져본다.
우리와 일본의 관계는 乙巳(을사)년으로서 발전하기 시작하고 30년이 흘러 乙亥(을해)년이 되면 다시 좀 시들해지는 순환 주기를 갖고 있다.
일본 경제를 살피는 일은 우리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니
일본 경제를 지켜보노라면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물론 우리와 일본은 많은 차이가 있지만 서구권 사람들이나 제3자의 눈에는 차이보다는 유사점이 더 많을 것이라 여기기에 그렇다.
최근 우리 경제가 무역적자에도 불구하고 경상수지는 흑자인 형태를 보이고 있다는 점, 인구감소가 진행 중이란 점, 잠재성장률이 극도로 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이 1990년 거품 붕괴 이후 대응해간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힌트를 주고 있다.
사실 우리 사회의 일반인들은 일본 경제가 그저 “잃어버린 30년”을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일본은 이제 아무런 탄력도 대응 능력도 없이 그저 답보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의 생각이지만 실제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단적인 예로 한 때 존립이 의문시되던 ‘소니’가 다시 살아났으며 관광 수입도 코로나 기간을 제외하면 날로 늘어나고 있다.
사실 글로벌 경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기본적으로 침체기에 들어갔다. 몇 년 사이 미국이 돈을 엄청 찍어내었다가 인플레이션을 잡느라 허둥대고 있지만 기본에 있어 저성장 추세가 전 세계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금융 위기 이후 등장한 “뉴 노멀”이란 표현은 여전히 유효한 상태라 하겠다.
이에 일본 역시 1980년대의 황금기를 재현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당시가 비정상적이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특히 지금이 인구 감소의 시대란 점을 감안하면 그렇다.
그렇기에 과거 30년간 일본이 겪은 상황들과 대응과정들을 살펴보는 것은 장차 우리의 경제 운영에도 많은 도움이 되리라 여긴다.
부디 우리와 일본 두 나라가 과거의 감정을 풀고 상호 협조해가면서 발전해가는 세월이 어서 왔으면 하는 마음이다.
교토 여행
5월 15일부터 4박5일의 여정으로 일본 교토를 다녀왔다.
교토, 한자로는 京都(경도)이니 서울, 즉 수도란 뜻이다. 일본의 역사를 통해 교토야말로 794년부터 1868년까지 무려 1,074년씩이나 수도였던 古都(고도)이다. 그렇기에 교토는 문화 유적이 엄청나게 많고 잘 보존되어 있다. 그래서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당초 가게 된 것이 관광이 아니라 어떤 인연으로 해서 세 장소에 참배하고자 갔다. 허리가 불편하지 않았다면 좀 더 많은 곳을 찾았겠으나 말이다.
최우선 목적지는 산주산겐도, 한자로 三十三間堂(삼십산간당)이었다. 가운데의 커다란 관세음보살을 本尊(본존)으로 해서 그 좌우에 1000 분의 날씬한 관세음보살 立像(입상)이 모셔져있고 더해서 바람신과 번개신, 28部衆(부중)의 입상들, 그야말로 엄청난 판테온이자 萬神展(만신전)이었다. 일본 불교 예술의 최고봉이라 하기에 전혀 무리가 없었다.
다음으로 백제 성왕을 主神(주신)으로 모신 히라노 신사, 즉 平野神社(평야신사)였다. 벚꽃 피는 철에는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지만 초여름의 경내는 그저 한적하고 조용했다.
마지막 행선지는 이끼와 잔디로 꾸며진 정교한 정원에 시원한 대나무 숲을 두른 정갈하고 아담한 사찰 기오지, 祇王寺(기왕사)였다.
호텔은 교토역에서 불과 300 미터, 아주 가까운 곳에 잡았기에 편하게 다닐 수 있었다.
하루에 한 곳을 다녔으니 시간이 넉넉했다. 하루에 서너 차례 온천을 했다. 그리곤 교토 역내의 상가들과 백화점, 호텔 근처의 가게와 사람들을 구경했다. 참으로 한가롭고 편안한 여행이었다.
교토, 역사의 古都(고도)인 까닭에 볼거리가 차고 넘치는 곳이지만 몸이 성하지 않아서 장차 시간을 두고 여러 차례 찾아가볼 생각이다.
일본, 여행하기에 참으로 매력이 많은 나라이다. 친절한 응대와 좋은 온천, 맛있는 음식, 아름다운 경관, 오래된 건축물들과 멋진 정원의 나라 일본이다.
단비 넉넉히 내렸으니 좋은데
돌아오는 날 교토는 비가 내렸는데 최근 며칠 사이 우리에게도 넉넉한 비가 내렸다. 참으로 단비였다. 4월 하순에 비가 내리긴 했으나 남쪽 지방은 해갈이 되지 않았는데 이번 비야말로 適時(적시)의 단비였다.
“자연순환운명학”을 개괄하는 책을 쓰고 있는데 때론 이 일이 따분하다. 왜 그럴까? 하고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체력 부족이 아닌가 싶다. 이석증으로 인해 어질어질하고 허리 문제로 해서 운동량이 떨어지다 보니 기초 체력이 많이 약해진 것이다.
예전엔 돈은 없어도 몸뚱이만큼은 온전한 내 것이란 여겼는데 이젠 이마저도 그렇지 않다면 이 세상 무엇이 내 것일 수 있으랴! 하는 생각도 든다. 五蘊(오온)이 모두 緣起(연기)에 의해 생겼다가 없어질 뿐이니 헛된 마음 내려놓으라고 하는 반야심경의 구절들을 받아들일 때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절대포기를 통해 절대자유를 얻겠다는 반야심경의 구절구절들은 참으로 이성적이면서도 전혀 즐겁지가 않다. 깡그리 비워, 그러면 무서울 게 없어, 하지만 욕망이야말로 삶의 힘이지 않은가? 그런데 그런 욕망을 다 비우라고 하니 날더러 어쩌란 말인가 싶다.
오고 가는 거래에서 조금치라도 남는 맛이 있어야 할 게 아닌가. 이에 절로 나오는 푸념인 즉 에라, 모를세라 그저 주어지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마음 편히 살다가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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