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했던 나 호호당의 삶

 

  

인터넷 매체인 “프레시안”에 칼럼을 쓰면서 시작된 글쓰기였다. 2001년 10월의 일이니 근 22년이 흘렀다. 운명학에 관한 글을 위주로 역사 문화 국제정세 등등 다양한 방면에 걸쳐 글을 써왔다.

 

2009년 4월부터 독립 블로그를 시작했고 2018년 3월말부터는 티스토리에 별도의 코너를 시작했다. (그 이전 프레시안에 올린 365편의 글은 독립 블로그의 “김태규 명리학”이란 코너에 올려져있다.)

 

프레시안에 올린 글과 독립 블로그와 티스토리에 올린 글을 합치면 대략 3000 편에 달한다. 200자 원고지로 환산하면 대략 75,000 매 분량이고 이를 책으로 엮을 경우 45권은 족히 될 것이다. 스스로도 놀랍다.

 

참 잘도 오랫동안 많이도 썼다. 하지만 여전히 쓰고픈 내용이 많다. 다만 나이가 들어 기력이 달리는 것도 있고 일반 독자를 상대로 하기에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기가 어려워서 늘 아쉽다.

 

그래서 동영상을 만들면 좀 낫지 않을까 싶어 시작했는데 그 역시 그렇다. 당초 분량에 구애받지 않고 할 작정이었는데 주변의 조언에 따라 15분짜리 영상을 만들다 보니 그 역시 깊이가 부족하다. 마치 홍보 동영상과도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최근 들어 제작을 멈추고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보고 있다.

 

그래서 우선 “자연순환운명학”의 이론에 관한 총괄적인 책을 하나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 게 우선이란 생각이 들었고 이에 원고를 쓰고 있다.

 

책을 쓰다 보니 최근엔 그림도 잘 그리지 못한다. 드로잉과 수채화야말로 큰 즐거움인데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산다는 게 다 그렇다, 이걸 좀 하려면 저게 걸리고 저것에 신경을 쓰면 이게 부족해진다. 특히 최근 2년간 불교 공부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또 주식투자기법을 연구하는 데에도 엄청난 집중과 시간을 쏟았다.

 

그러고 보니 참 분주한 나 호호당의 삶이다.

 

 

길을 가면서 노래하네

 

 

좋아하는 중국 노래 중에 邊走邊唱(변주변창)이란 영화의 주제곡이 있다. 그 노랫말 중에 “愛情邊走邊唱(애정변주변창), 唱不完一段地久天長(창불완일단지구천장)”이란 대목이 있다.

 

길을 가면서 노래하길 좋아하네, 크고 오래된 세상이라 내 노래 또한 끝나질 않네, 이런 뜻이다.

 

길을 간다는 것은 유람 다니는 게 아니라 밥벌이를 하면서 간다는 뜻이고 밥만 벌어먹을 순 없으니 스스로의 감흥을 노래로 부른다, 그런데 그 노래 또한 내 속에 묵은 사연과 새로운 인연이 많아서 끝날 날이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될 것이다. 22년간 글을 써오면서 가지게 된 나 호호당의 생각 또는 所懷(소회)와 닮은 듯도 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 호호당의 삶 또한 고단했고 분주했고 힘들었고 또 즐거웠다. 30대 후반 안정된 직장을 떠나 野人(야인)의 삶을 시작한 까닭은 분명했고 지금도 분명하다.

 

혹시나 훗날 죽을 때가 되었을 때 내 맘껏 살아보지 않은 게 후회될 것 같아서, 그게 이유였다. 행복하게 사는 것은 내 목표가 아니었다, 그저 후회가 없는 삶을 살다 가는 게 내 목표였고 지금도 그렇다.

 

곧 만 68세가 된다. 내년이면 세는 나이로 70이다. 그러니 내 삶은 끝을 향해 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수명 자체에 대해선 하등의 미련이 없다, 하지만 의욕은 여전히 차고 넘친다. 힘이 닿는 한 내 마음 가고픈 데까지 가볼 작정이다. 언제 쉬냐고 묻는다면 죽은 다음에 쉴 것이라 답하겠다. 죽음이야말로 진정한 휴식일 것이니.

 

생명이란 세포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유기체인데 이 조직이란 게 많이 쓰다 보면 망가지고 결국 사멸한다는 것을 최근 들어 새삼 몸서리치게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매 10년 단위로 노화가 와서 체력이 떨어지고 특히 60대 중반이 되니 여기저기 고장이 나기 시작했다. 아내가 모는 차가 아반테인데 10년 정도 되니 달리는 도중에 엔진이 힘겨워한다, 여기저기 스프링도 좀 문제가 생긴 것 같은 것이 꼭 나 호호당의 몸과 같다는 생각이다. 그러니 나 호호당은 노후화된 이 몸에 더 이상 미련을 갖지 않는다. 그렇다고 사이보그 시대가 내 살아생전에 올 것 같지도 않고 말이다.

 

 

존존하는 모든 것은 운의 리듬을 탄다는 것 

 

 

이쯤에서 운명의 대해 약간 얘기해본다.

 

한 순환 주기인 60년은 5년씩 12개의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사람만이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다 그렇다. 예를 들어본다.

 

 

크레디드 스위스의 파산과 창립자 에셔의 운세

 

 

얼마 전 전통의 크레디트 스위스 은행이 파산해서 스위스의 UBS에게 흡수되었다.

 

먼저 얘기할 것은 사람이 만든 것은 그 만든 이의 운세와 맥을 같이 한다는 점이다. 1856년에 설립된 크레디트 스위스를 만든 이는 알프레드 에셔란 훌륭한 인물이었는데 그의 운세는 1859년이 입추였다. 따라서 1856년이든 1859년이든 어느 쪽으로 봐도 흐름을 짐작하기에 별 무리가 없다.

 

이에 1859년 입추였던 알프레드 에셔의 운세로 보면 120년이 흘러 1979년이 최성기였고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미국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에 이르러 크레디트 스위스의 운세는 사실상 마무리되었다. 올 해 2023년에 문패를 내렸지만 사실상 2009년에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기에 크레디트 스위스의 경우 액면 그대로 계산하면 1856년부터 2023년까지 167년간 존속했지만 실은 120년 더하기 30년 해서 150년간 존재했던 은행이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창설자인 알프레드 에셔는 1882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운세는 사후에도 이어져왔다는 점이다.

 

좀 더 내막을 살펴보면 크레디트 스위스가 망하게 된 근본 배경은 창립자 에셔의 운세가 입추였던 1859년으로부터 120년이 지나간 1979년에 크레디트 스위스가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인 “퍼스트 보스턴”을 인수했다는 점이다.

 

“퍼스트 보스턴”을 인수한 것이 당초 기대에 미치진 못했으나 본사인 크레디트 스위스는 여전히 높은 수익을 보였기에 별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결국 이게 문제가 되었으니 패망에 이르는 첫 걸음이었다.

 

1979년 인수로부터 30년이 흘러 패착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2008년의 미국 금융위기로 인해 모든 것이 흔들렸고 끝내 처참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패망의 단초는 1979년 당시 승승장구하던 시절에 이미 싹트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눈에서 보면 또 다른 내막이 있으니 유태계 금융인들이 장악하고 있는 미국 시장으로 진출한 것 자체가 패착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은 가도 운세는 이어진다

 

 

다시 돌아와서 얘기한다.

 

태어난 시점에 정해진 어떤 이의 운세는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 운의 박자와 리듬을 그대로 타고 간다. 참으로 묘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더 묘한 것이 있으니 어떤 집안의 운세 흐름이다. 남녀가 만나 자녀를 낳고 또 그 자녀가 배우자를 만나 또 자녀를 낳는다. 그랬을 경우 당연히 주된 맥 主脈(주맥)의 흐름이 이어져간다. 물론 그 사이에 만난 배우자들의 흐름도 여기에 영향을 미친다.

 

쉽게 설명하자면 삼성 그룹을 세운 이는 이병철 회장이다. 따라서 그 양반의 운세 흐름이 삼성가의 主脈(주맥)이다. 마치 風水(풍수)와도 같다. 그런데 살펴보면 그 배우자와 자녀, 손주들의 흐름 또한 이병철 회장의 운세 흐름과 밀접한 연관 때론 정반대의 흐름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나 호호당은 이 신기롭고 흥미로운 운세의 흐름, 집안의 흐름을 예전에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사람들, 무려 수천에 달하는 사람들의 운세를 검토하고 연구해본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조선 왕조를 세운 이성계의 흐름으로부터 수대에 걸쳐 연구하기도 하고 미국 부호인 록펠러 가문의 흐름을 연구해보면서 하나의 맥락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현대 사회는 자기 자신 즉 個我(개아)가 전부란 생각이 일반적이지만 나 호호당이 보기엔 전혀 그렇지 않다. 비유하자면 그저 한강의 앞 물결과 뒷 물결이어서 실은 단락을 짓기가 어렵고 그저 하나의 연속된 흐름이란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어떤 삶을 살든 균형만 맞추면 다 좋아서

 

 

우리 모두 길을 가면서 즉 경제활동을 해가면서 여흥도 살려야 하니 노래를 부른다. 한 순환 주기인 60년 속에 담긴 12개의 프로그램을 통해 감흥이 생긴다, 그러면 노래한다.

 

어떤 삶을 살든 길 가는 것과 노래하는 것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삶은 그야말로 邊走邊唱(변주변창)이 아닐까 싶다. 위대한 삶이냐 거창한 삶이냐 그런 스케일의 문제는 나이 마흔이 되면 구애받지 않는 게 마음 편하다.

 

나 호호당은 다음 주 일본 교토에 일이 있어서 다녀온다. 일이기도 하고 여흥이기도 하다. 다시 한 번 邊走邊唱(변주변창), 길을 가면서 노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