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을 많이 하다보니 생긴 능력

 

평생 공상, 그리고 공상에 개연성을 더 붙인 결과 궁리와 연구, 그리고 그림.

 

(책을 많이 읽긴 했지만 그건 결국 공상을 좀 더 잘 해보려는 의도였을 뿐이다.)

 

공상을 워낙 많이 하다 보니 이상한 능력도 얻게 되었다.

 

굳이 눈을 감지 않아도 눈앞에 천애절벽의 낭떠러지를 만들어낼 수 있고 바다 앞에 서 있을 수 있으며 모래바람 세게 불어오는 타클라마칸 사막의 한 가운데에 서있을 수도 있게 되었다. 요즘 자주 소개되는 가상현실보다 내가 하는 공상 속의 현실이 더 리얼할 것이다. 뻥이 아니다. 연습하다 보면 된다.

 

 

가령 바닷가 백사장을 만들 것 같으면 

 

 

가령 어느 백사장을 만들어보자. 굳이 눈을 감지 않아도 된다. 공상은 눈을 뜬 채 하는 게 더 진짜다. 안면도 해수욕장에 여러 번 다녀왔고 해운대는 물론이고 국내 여러 해변을 가봤다. 미국 플로리다의 어느 비치도 다녀왔으며 프랑스의 도빌 바닷가도 다녀왔으며 영국 콘월의 바닷가도 산책했다. 뿐만 아니라 책이나 잡지, 텔레비전 등을 통해 만났던 그 모든 바닷가도 있다. 그러니 재료는 충분하다, 얼마든지 내 맘대로 꾸며낼 수가 있다.

 

먼저 하늘을 떠올려본다. 흐린 날이냐 맑은 날이냐에 따라 물색이 달라진다. 물의 색깔과 떠다니는 해초의 종류, 그 색깔과 냄새, 희고 검은 형형색색의 조개껍질, 파도의 세기와 높이, 소리, 밀려들었다가 다시 빠져나가는 물살의 흐름과 소리, 모래사장의 모래알 굵기와 형태, 색깔, 모래사장의 길이와 폭, 내 발에 밟히는 감촉, 해변을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 갈매기의 울음소리와 마릿수, 비행하는 모습, 멀리 송림이나 다른 나무들, 한쪽 저 편의 바위와 절벽, 절벽의 돌 색깔, 주름과 층, 바람의 강도와 바람 속에 실린 이런저런 냄새들. 이런 것들로 만들어내면 된다.

 

그리고 시각도 중요하다. 오후 나절로 해도 되고 이른 아침으로 만들어도 된다. 이런 모든 것들, 풍경화를 그리면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구름의 종류와 모습, 햇살의 강도, 빛의 방향은 순광 아니면 역광? 그도 아니면 비스듬히 들어오는 사광? 빛의 입사각도에 따라 생기는 그림자의 길이, 기온과 공기 중의 수분 등등 여러 재료들을 마음대로 혼합해서 지우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고 택하기도 한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무수히 많은 생각들과 요소들, 즉 상상의 재료들이 내 눈앞을 스쳐간다. 온몸의 감각기관들과 그 기억들, 불교적으로 眼耳鼻舌身意(안이비설신의)의 六根(육근)를 총 동원하면 얼마든지 리얼하게 구성해낼 수 있다.

 

 

공상과 현실은 사실 별 차이가 없다. 

 

 

우리의 뇌는 일정한 순간 오로지 한 가지 일만 처리한다. 다만 아주 짧은 순간이라 해도 순차적으로 아주 많은 것들을 처리하고 있기에 우리는 우리가 늘 종합적으로 느끼고 감수한다고 착각할 뿐이다. (물론 우리가 전혀 의식하지 않아도 절로 알아서 우리 몸의 일들을 처리해주는 기가 막히게 정교한 자율신경계가 있어서 우리가 정상적으로 살 수 있긴 하다.) 그러니 바닷가를 머릿속으로 구성하는 것도 한 가지 요소들을 빠른 시간 안에 순차적으로 만들어 가면 된다. 공상과 현실은 전혀 차이가 없다. 정말이다.

 

공상은 현실에서 해낼 수 없는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다. 가령 우주 끝으로 가보자 하고 마음먹는 순간 우주의 끝에 도달한다. 빛의 속도보다 빠른 게 없다고 하지만 공상은 그런 제약이 없다. (물론 우주의 그 끝을 본 사람이 없으니 그곳이 어떨지 모른다, 각자 상상하기 나름이다.)

 

공상 속에선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아이들이 보자기 하나 덮어쓰고 배트맨이 되기도 하고 우주를 지키는 용사가 될 수도 있다.

 

 

현실은 재미가 없어서 

 

 

공상은 물론 虛構(허구)이다. 그런데 허구면 어떤가? 꼭 리얼, 요즘말로 ‘레알’이어야만 하는가. 재미있으면 되는 일이다.

아줌마들이 달콤한 환타지 멜로 드라마에 빠져서 앓이를 하는 것, 그게 허구인 줄 몰라서 그렇겠는가? 허구 역시 그 나름의 한 세계인 것이다.

 

오히려 현실 레알의 세계는 주로 재미가 없다. (물론 재미없는 공상은 하지 않으면 된다.)

 

가령 독자께서 평소 벼르고 벼르던 먼 나라 관광지로 떠난다고 해보자. 좋다, 베트남의 하롱베이라고 해두자. 하롱베이를 만날 때까지 공항에서부터 수속 받고 비행기 타느라 고생하고 현지 비행장에서 다시 입국 수속을 밟고 그런 다음 얼굴 모르는 가이드를 만나서 버스를 타고 간다. 시간 많이 걸리고 피곤하다. 하롱베이에 간다는 기대감 하나로 버티면서 간다.

 

이처럼 현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은 의미도 없고 별 재미도 없다. 하지만 공상에선 하롱베이로 직행한다. 즉각 바다 한 가운데 크루즈를 타고 놀 수 있다.

 

공상이 더 좋지 않은가!

 

하롱베이 가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연출해내느냐? 할 것 같으면 독자가 이미 그 비슷한 곳을 가본 경험만 있다면 나머지는 세계테마기행 같은 영상 프로그램을 유튜브 들어가서 살펴본 뒤에 거기에 생각을 입히면 바로 하롱베이가 된다. 익숙해지면 그렇게 어렵지도 않다.

 

그런 까닭에 나 호호당에게 있어 호텔 델루나 속의 장만월은 허구의 세계 속에서 실존하고 있다. 귀엽고 앙증스러우며 앙칼진 장만월을 엄청 좋아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지은이란 배우이자 아이유란 가수를 만나고픈 생각은 별로 없다. 내겐 이지은보다 장만월이 더 레알이다.

 

 

쓸데없는 욕심들도 사라졌으니 

 

 

공상을 많이 하고 잘 하다 보니 또 다른 의도치 않은 효과도 있기에 그 얘기를 좀 해본다.

 

예전에 어쩌다가 庭園(정원)이란 것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런저런 국내외의 여러 정원들을 구경하다가 흥취가 생겼다. 그래서 나만의 정원을 가꾸어보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대지 1000 평 정도의 정원 아니면 10만평의 정원 등등 이런저런 구상을 많이 했다. 그 바람에 정원 만드는 방법에 관한 책도 많이 사서 읽고 연구도 했으며 설계도 했다.

 

그런데 한 15년 전의 일이다. 덕수궁 정원을 산책할 때의 일이다. 이 정도의 정원이면 나쁘진 않아, 그런데 이게 만일 내 소유라 한다면 어떻게 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골치가 아파졌다. 재산세도 만만치 않을 것이며 서울 한 복판에 저런 엄청난 땅을 개인의 사유물로 하고 있으니 사람들로부터 비난도 받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관리 또한 장난이 아니다, 엄청난 비용이 들 것이다. 돈 들고 욕 박 터지게 먹고 신경 쓰일 것이니 이건 할 짓이 아니구나 싶었다.

 

그런데 내 것이 아니지만 입장료 몇 푼만 내면 언제든지 오면 된다. 그렇다면 그게 더 좋다 싶었다. 다른 사람들이 들락거린다? 그게 뭐 어때서. 호젓하게 혼자 놀고 싶다? 머릿속으로 사람들을 지워버리면 되는 일, 아무 문제가 없지 않은가. 그때 깨달았다. 굳이 가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가진다는 것은 그에 따른 즐거움과 쾌락이 물론 있다, 동시에 지불해야 할 것들도 많다. 덕수궁 정원? 그냥 내 꺼라 생각하고 언제든지 오면 되는 일. 내 것이니 쓰레기 같은 거 버릴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게 훨씬 낫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을 하늘의 달, 그게 임자가 있고 소유주가 있는가, 그런 것 따지지 않아도 능히 風流(풍류)할 수 있지 않은가. 숲속의 솔바람 소리 역시 마찬가지. 듣고자 하면 당장 지금 내 귀에 그 소리 들려온다. 그 소리가 어떤지 알기에 들어봤기에 듣고자 하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들을 수 있다.

 

어지간한 욕구는 상상으로 거의 다 카버가 된다. 그간 살아오면서 겪었던 충동이나 욕구 들을 거의 다 경험해보았으니 이젠 그냥 불러내어 재구성하면 된다, 더 환상적으로. 그러니 굳이 또 다시 현실에서 해보겠다고 나설 필요도 사실 없다.

 

그러다 보니 욕심들이 왕창 사라졌다. 그냥 그럭저럭 먹고 살면 충분하다. 한 가지 욕심이 있다면 언젠가 죽을 터인데 그 전에 고생 좀 적게 했으면 하는 것이다. 물론 어떻게 될지 그거야 모르는 일. 그냥 착하게 살면 혹시?

 

 

흥미진진하고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상상하다 보니 

 

 

공상을 주제로 얘기를 늘어놓다 보니 끝이 없다. 대충 줄여야 하겠기에 한 가지만 얘기한다.

 

재미있는 장편 역사소설이나 반지의 제왕과 같은 환타지 소설, 셜록 홈즈나 아가사 크리스티, 일본의 요괴를 소재로 하는 ‘항설백물어’ 등을 읽다 보면 그냥 열나게 진도가 나간다. 그런데 문제는 그 재미난 이야기가 끝이 난다는 점이다. 그러면 갑자기 헛헛해진다. 이에 늘 공상한다, 흥미진진하지만 끝이 나지 않는 그런 소설이나 이야기 책 없을까? 하고.

 

흥미진진하면서도 끝나지 않는 이야기, 즉 네버 앤딩 스토리!

 

한 때 아예 내가 써볼 까 하는 생각도 정말 많이 했다. 쓰다 보면 아무래도 궁리를 많이 하게 될 것이고 원고의 진도도 느릴 것이며 도중에 고통도 따를 것이며 그만 두고픈 마음도 들겠지만 붙들고 놓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과정 자체가 어쩌면 네버 앤딩 스토리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도중에 작가인 내가 죽을 것이니 그거야말로 네버 앤딩이 아닐까?

 

하지만 결국 소설 만들기 작업에 착수하진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알게 된 것이 있으니 우리 모두의 삶 자체가 각자에게 있어 네버 앤딩 스토리란 사실이다. 죽는 날까지 이어지니 그건 그 사람의 네버 앤딩 스토리로서 손색이 없다.

 

물론 각자의 이야기를 남이 보거나 들으면 별로 또는 전혀 재미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게 뭐 중요한가, 스스로 재미만 있으면 되지.

 

내일이 동지, 그러니 동짓달 긴긴 밤엔 이런 얘기가 어쩌면 더 어울릴 것도 같다. 호호당의 공상 놀이는 끊임없이 이어져간다.

 

(주식기법 강좌를 올렸다. 긴 말 하기 싫어서 안내문을 간단하게 했다. 감히 자신하지만 이런 기술 세상에 없다는 점만  알려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