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 평생의 취미

 

 

나 호호당은 어린 시절부터 늘 공상놀이에 빠져 놀았다. 그렇다고 또래 친구들과의 놀이를 싫어하진 않았으나 혼자 방구석에 기대어 별별 공상을 하면서 노는 게 사실 가장 즐거웠다.

 

확실하게 기억한다, 초등학교 4학년 가을 무렵의 일이다. 시험 시간에 한 문제가 나를 아차차! 하게 만들었다. 분명 그 전날 공부하면서 참고서에서 슬쩍 본 기억이 나는데 답을 쓸 순 없었다. 후회가 순간 밀려왔다, 그걸 좀 더 봤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

 

1955년생인 나 호호당은 중학교 입시가 있던 시절이라 늘 수시로 시험을 치르면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회초리에 맞는 건 늘 있는 일상의 생활이었다. 특히 4학년이 되면 일주일에 한 번씩 시험을 보곤 했다. 정말 빡-센 시절이었다.

 

당시 내가 속한 4학년 4반은 88명이었다. 내가 반장이라 잘 기억하고 있다. 4학년이 되자 중학교 진학할 아이들과 그럴 형편이 되지 않는 아이들로 자연스럽게 나뉘었다, 그렇다고 뚜렷하게 구분하진 않았다.

 

차이점은 중학교 진학할 아이들은 관리대상이어서 시험을 본 뒤 틀린 문제 숫자만큼 종아리나 손바닥을 회초리로 맞아야 했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맞지 않았다. 30개 틀리면 30대를 맞던 시절이었다. 반에서 늘 1등이던 나는 두세 대 맞곤 했다. 그러니 앞의 후회가 공연한 것이 아니었다. 한 문제에 매 한 대, 좋은 일이 아니었다.

 

 

시간 스톱 神功(신공)

 

 

며칠 뒤 공상에 빠졌다. 주제는 시간 정지.

 

시험을 보는 데 시간 스톱! 하면 시간이 정지한다. 나는 그 시간에 평소처럼 활동할 수 있지만 다른 이들은 멈춰버린다. 모든 것이 스톱이다. 나만 움직일 수 있게 된다. 그게 시간 스톱이었다.

 

그러면 풀 수 없는 문항에 대해 참고서를 끄집어내어 답을 알아낸 다음 참고서를 집어넣는다. 그런 다음 시간 고(go)! 한다. 시험은 만점일 수밖에 없다.

 

이 학생은 평소 모든 학생의 모범으로서 시험은 늘 만점을 받으니 참으로 훌륭한 학생입니다. 이에 특별한 표창장을 수여합니다. 나는 단상에 올라있고 교장선생님은 흥겨운 목소리로 내게 상장과 부상으로 뭔가 준다. 그러면 선생님들 포함해서 모두가 박수 짝짝! 난 턱을 괴고 이런 공상을 하면서 즐거워했다.

 

그런데 며칠 지나자 생각이 바뀌었다. 공부를 잘 하라는 것은 훗날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장 들어가서 많은 월급 받으면서 편히 살기 위함이란 것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그래본들 앞의 과정 싹 다 뺄 것 같으면 결국 돈을 많이 벌기 위함이란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자 나만의 신통력인 시간스톱을 달리 쓰면 되겠구나 싶었다. 돈이 필요하면 그때 가서 시간스톱! 걸어놓고 은행에 간다, 금고에서 돈 다발을 몇 개 들고 나오면 되지 뭐! 싶은 것이었다. 들고 나와서 한 동안 흥청망청 쓰다가 떨어지면 다시 시간스톱을 걸면 되네, 이렇게 생각이 미치자 시험 따윈 전혀 의미가 없어졌다, 모르는 문항이 나온다고 해서 그때 참고서를 뒤질 일이 아니란 깨달음을 얻었다. 공부 잘 할 필요가 없어졌다.

 

언제든지 돈을 가져올 수 있게 되자 이제 남은 건 그냥 노는 일밖에 없어졌다. 내가 좋아하는 책이나 보고 공상 실컷 하고 그렇게 지내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좀 더 지나자 재미가 없어졌다. 뭔가 열심히 해야 할 일이 없어지자 인생이 그야말로 허무해졌다. 초등학교 4학년, 겨우 아홉 살의 나이에. 그래서 이러다간 절로 들어갈 일만 남으리라 싶어서 뭔가 좀 교정이 필요했다. 가령 평생 살면서 시간스톱을 열 번만 걸 수 있다는 식으로.

 

 

시간 되돌리기 神功(신공)

 

 

궁리는 하다 보면 진화하고 발전하는 법이다. 시간스톱은 열 번만 가능하되 시간 되돌리기, 즉 과거로 돌아가는 힘을 열 번 정도 가지면 어떨까 싶었다.

 

그냥 대충 살다가 이거 망했다 싶으면 잘 생각해서 망하게 되는 시작점으로 되돌아간다, 그래서 망하는 원인부터 아예 하지 않는다, 뭐 이런 식이었다. 가령 언젠가 결혼을 하게 될 터인데 마누라 될 사람이 나중에 보니 영 아니다 싶으면 시간 빽(back)! 해서 그 여자를 처음 만났을 때 바로 퇴짜를 놓는 식 같은 거.

 

그런데 그 또한 문제가 있긴 했다. 처음에 좋아서 살다가 나중에 싫어졌는데 옛날 소설 같은 걸 보니 또 시간이 지나자 그 나쁜 마누라가 엄청 좋은 사람인 것을 알게 된다면 어쩔 것인가? 너무 성급한 판단이 아니겠는가 싶었다.

 

그래서 시간 되돌리기는 버틸 만큼 버텨 보다가 영 아니다, 이건 진짜 아니다 싶은 순간이 오면 그때 빠구! 하는 식으로 써야 되겠네 하고 좀 더 깊은 성찰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시간 스톱은 열 번, 시간 되돌리기는 일생 동안 단 세 번만 가질 수 있으면 적당하고 좋은 인생을 살 수 있겠다는 최종 판단을 내렸다.

 

 

땅속 투시  神功(신공)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공상이 시작되었다. 학교 수업 중에 선생님께서 우리나라는 당파 싸움만 하느라 늘 나쁜 놈들이 해먹기만 했으며 게다가 진짜 아쉬운 것은 귀중한 역사 유물이나 보물들이 파괴되었고 어딘가 땅속에 묻혀 있을 거란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가령 귀한 고려청자들이 어딘가 땅속 어떤 곳에 파묻혀 있을 터인데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1960년대 당시 자동차나 반도체가 없던 시절, 우리가 겨우 자랑할 수 있는 거라곤 고려청자 정도가 전부이던 시절이었다. 외국인들이 우리 고려청자를 보면 뿅-간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능력이 필요했다. 눈을 감으면 또 다른 눈이 떠지는데 그 눈은 땅속을 투시할 수 있는 눈이다. 그러면 소실된 역사 문화 유물들을 뚜뚜뚜-하면서 다 찾아낼 수 있게 된다. 좀 더 기능을 강화할 것 같으면 그냥 그 장소에 가지 않아도 전국을 투시할 수 있게 하자, 그러면 그냥 다 보인다는 식이다.

 

그래서 어느 날 신문에 대서특필된다. 신기한 소년이 무진장 소중한 고려청자 창고, 땅속 20미터에 묻혀있던 보물창고를 찾아내다! 식으로 나온다. 기자들이 물어본다, 학생 어떻게 그걸 알아내었습니까? 아 네 그건요, 어느 날 그냥 보였어요, 거길 파보라고 하는 강렬한 충동이 생겨났어요, 그래서 정부 부서에 신고를 했고 이에 문화재 공무원 아저씨들이 했죠 뭐. 별 거 아닙니다.

 

그런데 좀 말이 되지 않는 것이 어린 내가 거길 파세요 한다고 게으른 공무원 아저씨들이 그 말을 들을 까닭이 없었다. 그래서 고고학과를 가야 하겠구나 생각했다. 공부는 좀 하니까 서울대학 고고학과 정도는 갈 수 있으리라 싶기도 했고 앞에서 얘기한 시간 스톱을 살리면 입시 시험장에서 시간을 스톱시켜 놓고 참고서를 펼쳐놓고 시험을 보면 된다는 생각도 했다. 이왕이면 서울대학교 수석 입학 정도로 할까? 하지만 약간 성가시게 된다.

 

기자들이 수석 입학 했으니 인터뷰를 하자고 할 것이고 그러면 학생, 수석 축하해요, 그런데 왜 법대나 의대를 지망하지 않고 고고학과를 했지요? 그러면 나는 나라의 명예와 발전을 위해 우리나라도 고고학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하고 답한다. 그러면 기자들이 더 감격해서 천재 수석 학생, 부와 명예를 버리고 학문의 길을 택하다! 이런 식의 기사 제목을 달겠구나 생각하니 그냥 히죽해죽 웃음이 났다.

 

그런 다음에 서울대 고고학과 마치고 문화재청에 들어가 실무자로 일하면서 평생 동안 수 백 여 곳의 귀중한 유물과 궁궐터를 발견한다. 위대한 고고학자로 살다 간다. 그 또한 나쁘진 않다. 아마 나에 대한 책도 훗날 나오겠지? 흠, 그거 뭐 나쁘지 않아, 이런 생각을 하며 또 공상을 이어갔다.

 

정말이지 이런 식으로 평생 공상을 하며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다.

 

 

개연성이 있어야 공상도 재미가 있어서

 

 

그런데 중학교 갈 무렵엔 공상만이 아니라 좀 더 정교한 조건들이 붙기 시작했다. 그냥 순수하게 무진장의 무한한 능력에 관한 공상이 아니라 좀 더 실천 가능하고 구현 가능한 공상 쪽으로 옮겨갔다. 리얼한 뭔가가 있어야 좀 더 흥미롭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최근 하는 말로 ‘개연성’이 필요했다.

 

 

언어에 대한 궁금증, 평생의 취미

 

 

중학교 2학년 초, 어느 날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주제를 하나 발견했으니 그건 ‘언어 발생’에 관한 것이었다. 처음에 떠오른 것은 ‘바람’이란 단어였다. 왜 바람이라 할까? 하는 궁금증이 출발이었다.

 

며칠 궁리해보니 바람이란 단어는 ‘불다’란 단어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바람이 분다, 바람 불다 등등, 바람이란 단어의 자음은 비읍과 리을이고 불다 역시 비읍과 리을이다. 바람에서 마지막 받침 미음은 명사를 만들기 위함이고 ‘불다’에서 -다는 종결 어미이다. 따라서 같다.

 

중학교 시절이니 영어 단어와도 비교했다. 영어로 바람은 wind, 그렇다면 영국에선 왜 바람이라 하지 않고 ‘윈드’란 발음으로 정해졌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잘 생각해보니 유사점이 있었다. 그래서 언어학에 관한 책을 한 권 샀고 그러다 보니 또 사게 되었다. 부산 보수동 책방 골목에서 샀는데 사장님이 넌 중학생이 어떻게 이런 책을 사니? 하고 물으셨고 나는 그냥 궁금해서요, 하고 말꼬리를 흐렸다. 나 호호당은 얼마 전 글로 썼듯이 보수동 책방 골목의 아이였다.

 

영어 선생님에게도 물어보았지만 넌 단어 외우기도 바쁠 터인데 그런 건 왜 묻니? 하고 뜬금없다는 표정으로 답변을 해주지 않으셨다. 그래서 결국 내가 궁금해 하는 모든 것은 독학이 유일한 길이란 결심만 굳히게 되었다. 그 이후로 모든 것이 평생 독학이고 외로운 연구였다. 자연순환운명학 역시 그 결과물 중에 하나이다.

 

또 한 가지는 우리말 바람이 일본에서 뭐라 하며 중국에선 뭐라 발음할까? 독일은 영국과 비슷하다고 하니 된 셈이고 아프리카나 동남아에선 뭐라고 하는지 궁금해졌다. 그 바람에 나 호호당은 삼십대 시절 거의 70여개의 언어와 단어에 대해 사전과 문법책을 찾아서 혼자 연구하고 궁리하기도 했다. 아마추어 언어학자였다.

 

글이 길어졌다. 아무래도 한 번 더 써야 하겠다. 추운 겨울날 이런 글 나쁘지 않다고 여긴다. 독자님들도 재밌어 하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