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쓰마, 일본학자들도 모르는 지명

 

 

일본 동남단 규슈의 가장 아래쪽에 가고시마현이 있다. 이 땅의 옛 명칭은 사쓰마, 한자론 薩摩(살마)였다. 그런데 왜 그런 명칭이 붙었는지에 대해선 일본인들도 모른다. 다만 그렇게 이름이 처음 등장한 시점은 5세기 무렵부터라고 되어 있다.

 

사쓰마, 현대한자어 소리론 살마,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바다 건너 일본의 오래된 지명이니 뭐 알아야 하나? 싶기도 하다.

 

그런데 일본사람들도 모르는 이 ‘사쓰마’란 명칭은 우리말을 포함해서 저 멀리 몽골과 만주를 포함하는 동북아시아 일대의 언어에서 왔기에 오늘 이렇게 얘기를 해본다. 우리말의 뿌리와 먼 흔적들을 찾아서 나서보자는 얘기이다.

 

 

시라무렌이란 강이 북쪽 멀리 아득한 곳에 있으니 

 

 

사쓰마란 명칭의 뜻을 알기 위해 먼저 북쪽 아득히 멀리 오늘날 중국에 속한 내몽골 자치구에 가본다.

 

그곳에 큰 강이 하나 흘러간다. 강의 이름은 시라무렌이다. 때론 사르모론이라고도 한다. (중국어 표기로 발음하면 시라무룬) 이 강은 내몽골의 북서쪽에서 발원해서 동남쪽으로 흘러 랴오허(遼河,요하)와 합류한 다음 보하이만(발해만)으로 들어가고 결국 서해 바다가 된다.

 

지명들이 나오니 머리가 복잡할 수도 있겠지만 약간 참으면서 따라오시길.

 

시라무렌이란 이름의 뜻은 명확하게 알려져 있다. 빛나는 물이다.

 

‘시라’란 말은 빛난다, 희다, 밝다, 이런 뜻이다. 시라무렌이란 이름에 대해 옛 중국인들은 潢水(황수)라고 적고 있다. 潢(황)은 누를 黃(황)에 물 水(수)를 왼쪽에 붙인 글자다.

 

그런데 흔히 누를 黃(황)이 노랗다는 정도로 알고 있지만 그건 정확한 뜻이 아니다. 저녁놀의 놀처럼 환하게 빛난다는 뜻이다. 노랗다와 놀은 뿌리가 같은 말이다.

 

중국 북방의 黃河(황하)가 흙탕물이라서 누런 강이라 하는게 아니고, 환하고 빛나게 흘러가는 강이란 뜻에서 붙여진 명칭인 것과 같다. 이에 중국인들은 시라무렌에 대해 중국의 황하와 구분 짓기 위해 물 水(수)변을 붙여서 潢水(황수)라고 표기했다.

 

그러니 시라는 빛난다, 환하다, 희다란 뜻이고 무렌은 물, 즉 강이 된다.

 

시라무렌은 희게 빛나는 물이자 강인 것이다.

 

 

청천강 역시도 같은 이름이어서 

 

 

이제 북한에 있는 청천강이란 이름에 대해 살펴볼 차례이다.

 

맑은 淸(청)에 내 川(천)이다. 물이 맑으니 희고 빛날 것이다. 청천강의 옛 이름은 薩水(살수였다. 저 유명한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의 30만 대군을 수장시킨 살수대첩의 그 강 이름이다.

 

왜 薩(살)이란 명칭을 붙였을까? 하고 생각해보면 살이란 발음은 ‘사르’라고 할 수도 있으니 이는 앞에서 소개한 ‘시라’무렌 혹은 ‘사르’모론과 같다, 청천강의 원 이름 역시 시라무렌이었던 것이다. 맑고 희게 빛나는 강이다. 그렇기에 나중에 맑을 淸(청)을 붙여서 淸川(청천)강이 되었다.

 

(지명은 한 번 이름이 정해지면 집요하게 원래의 뜻이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지명의 보수성이라 언어학자들은 표현한다.)

 

따라서 시라무렌이란 이름은 일종의 보통 명사라 하겠다.

 

 

부여의 백마강 역시 같은 이름이어서 

 

 

그렇기에 시라무렌은 우리 남한에도 있다. 충청도의 부여, 백제의 마지막 왕도였던 그곳을 끼고 흐르는 강은 이름이 白馬(백마)강인데 실은 이 이름 역시 동일한 뜻이다. 白(백)은 희다는 뜻이니 시라와 같고 무렌이 마로 발음되어 말 馬(마)를 붙인 것이다.

 

옛날 백제가 망했을 때 일본은 백제 부흥을 위해 거국적으로 병력을 모아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와 당나라 군대와의 결전에서 패했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의 천황이 서거하자 태자는 즉위식을 뒤로 물릴 정도로 전력을 다한 백제부흥 전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왜 무슨 이유로 당시 바다 건너 일본이 총력을 다해 백제를 부흥시키려 했을까?

 

실은 여기에 한일 고대사의 모든 비밀이 다 숨겨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으로 그렇다.

 

 

백제의 멸망이 일본을 등장시켰으니

 

 

잠시 주제에서 비켜가는 얘기지만 좀 하면 이렇다.

 

일본은 백제가 고구려의 남하에 대비하기 위해 옮겨놓은 일종의 分國(분국)이었던 까닭이다. 이에 백제 부흥이 실패로 돌아간 뒤에야 일본이란 나라가 본격 등장했다.

 

백제가 멸망한 것은 668년이다. 그러자 일본의 덴무 천황은 스스로를 ‘天皇(천황)’'이라 하고 나라 이름을 ‘일본(日本)’이라 정했다. 그 이전까진 천황이라 칭호도 일본이란 국호도 없었다. 이는 한반도에 있던 本國(본국) 백제가 망했기에 그 뒤를 계승하고자 정식으로 自立(자립) 또는 獨立(독립)한 것이다. 더불어 그런 큰 의미를 담은 것이 686년에 만들어진 朱鳥(주조)란 연호이다. 주조, 붉은 새, 결국 태양새이자 백제의 상징이다.

 

백제가 망한 것과 일본이 등장한 것이 비슷한 시기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란 얘기이다. 

 

일본은 따라서 백제인들이 중심이 되고 여기에 그 이전에 도래해온 가야, 그리고 신라와 고구려 사람들이 세운 나라인 것이다.

 

다시 돌아가자.

 

앞에서 소개한 백강 전투에서의 백강은 바로 백마강과 동일 명칭이다. 백마가 희게 빛나는 물, 즉 강이니 바로 백강이다. 백마가 바로 백강이다.

 

 

사쓰마 역시 같은 이름인 것이니 

 

 

우리와 일본의 말을 비교해볼 때 가령 우리말의 물에서 받침소리 리을이 일본에 가선 ‘쓰’나 ‘즈’로 변한 경우가 대단히 흔하다는 점이다. 물이 미즈로 변한 것 역시 리을이 지읒으로 바뀐 현상이다. 우리말과 일본말을 비교해보면 흔하게 나타난다.

 

앞에서 ‘시라’ 또는 ‘사르’란 말 역시 같다. 리을이 일본에서 시옷이나 지읒으로 변할 것이다. 따라서 시라나 사르는 일본에 가서 시즈나 사쓰로 변한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러면 이제 일본의 사쓰마로 가보자. 한자론 薩摩(살마). 이 말은 사실 시라무렌 혹은 사르모론과 같다. 사르가 사쓰로 변했고 마는 그냥 붙어있다. 그래서 사쓰마인 것이다.

 

사쓰마의 뒷소리 ‘마’가 ‘미즈’로 변하지 않고 그냥 붙어있다는 것은 이 지명이 만들어진 때가 대단히 오래 전임을 말해준다. 대단히 오래 전의 일이라 일본사람들도 그 뜻을 잘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알고 보면 힌트가 여전히 남아있다. 일본 규슈의 옛 사쓰마 지역에 가면 ‘사쓰마센다이’란 도시가 있다. 한자로 薩摩川内市(살마천내시)이다. 이 도시의 가운데를 흘러가는 강의 이름은 그냥 川内川, 일본말로 센다이이다.

 

무슨 놈의 강 이름이 어째서 천안의 천이라 할까? 하면 원래는 薩摩川(살마천)이었고 진짜 오리지널은 薩摩(살마)였기 때문이다. 살마에 다시 川(천)을 붙인 것은 우리말의 ‘역전앞’과 같은 표현이다. 역 앞이 驛前(역전)인데 일반 상민들이 한자를 몰라서 그렇듯이 말이다.

 

이제 좀 정리를 해보자.

 

 

모두 동북아시아 공통조어의 갈래

 

 

시라무렌 혹은 사르모론은 몽골말로 알려져 있다. 시라 또는 사르가 희고 빛난다는 뜻이라 했다. 그런데 사실 이 말은 우리말속에도 뜻이 약간 변했을 뿐 고스란히 남아있다.

 

새벽이란 말을 보자. 원형은 새밝이다. (박혁거세의 ‘박’이 밝인 것과 같다.) 뜻은 새롭게 밝아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원래 새나 시, 또는 실까지 포함해서 희다는 뜻이었다. 이에 새벽은 ‘희게 밝아오는’ 것인데 나중에 새란 말이 새롭다(new)는 뜻으로 정착되면서 새로운 밝음, 새벽이 되었다.

 

참고로 덧붙이면 일본에서 우리 삼국시대의 新羅(신라)를 ‘시라기’라고 하는 것 역시 시라, 사르 등과 같은 소리가 일본에 그냥 남아있기에 그런 것임을 밝혀둔다. 신라의 원 명칭이 사로, 한자로 斯盧였으며 서라벌 역시 ‘서라’에 마을을 뜻하는 ‘벌’이 붙은 것이다. 시라, 서라, 사로, 모두 같은 소리이다.

 

그렇기에 시라무렌 혹은 사르모론이 몽골말이라 하지만 사실 우리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일본말 역시 동일하다.

 

그렇기에 이렇게 된다. 시라무렌 혹은 사르모론은 薩水(살수) 즉 청천강이고 백마강이며 백강이다. 그리고 일본으로 건너가서 사쓰마가 되었다. 말을 글로 바꿀 수 있는 字母(자모) 즉 낱자가 없어서 한자의 음을 빌렸 표기했을 뿐 모두 원래 비슷한 소리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라무렌에 대해 좀 더 얘기해본다. 시라무렌강이란 표현은 물 즉 江(강)이란 말 뒤에 또 江(강)을 붙인 격이니 웃긴다.

 

 

중국이 억지 동북공정을 하는 이유

 

 

시라무렌은 동북아시아, 몽골과 만주 일대에 걸쳐 유목민들에게 있어 대단한 쟁탈의 요지였다. 중국이 억지투성이의 동북 공정을 진행하는 이유 역시 이른바 紅山(홍산)문명 때문이다. 그런데 홍산문명의 발원지가 바로 시라무렌 일대란 사실이다. 홍산문명은 황하 문명보다 수천 년을 앞선 문명이기에 중국이 억지로 무리해가면서 중국 역사 속으로 집어넣으려고 하는 것이다.

 

말갈이나 선비, 거란, 여진, 그리고 단군조선, 부여와 고구려 등을 포함한 모든 동북아시아 만주 일대의 나라들이 기본적으로 시라무렌 일대의 신화와 전설을 공유하고 있다.

 

일례로 동명성왕의 어머니인 柳花(유화)부인의 유화란 버들꽃 즉 버드나무의 꽃을 뜻하는데 버들은 물가 식물로서 지금도 시라무렌 일대의 대표적인 수종이다. 일반적으로 유화부인이 노닐던 장소가 압록강으로 되어 있지만 실은 시라무렌이었다. (그리고 시라무렌은 이름만 달리 할 뿐 북만주 일대에 몇 개나 된다.)

 

나 호호당이 보기에 시라무렌이 흘러서 합치는 랴오허의 서쪽 지역은 좀 더 유목을 위주로 했고 동쪽은 농경을 더 많이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 민족은 랴오허 동쪽의 갈래인 것으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혈통이나 언어에 있어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진 않다.

 

 

기록으로 남겨두는 까닭  

 

 

이것으로서 물 즉 강이란 말에 얽혀있는 동북아시아 말의 흔적들을 살펴보았다. 약간 복잡하고 어렵게 느낄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우리말의 먼 흔적들을 찾아보는 이런 글이 언젠가 우리말의 뿌리를 찾아감에 있어서 관련 학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도 같아서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