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 지난 우리 國運(국운)
나라의 운이 본격 겨울로 접어들었다. 60년에 걸쳐 순환하는 운의 흐름을 한 해에 비견해볼 것 같으면 작년 2017년은 해마다 12월 20일 경에 맞이하는 冬至(동지)와 같다.
대개 동지가 지나면 겨울 추위가 본격화된다. 이에 내년 2019년부터는 동장군이 본격 찾아올 것이다. 추위가 상징하는 것은 열에너지가 없다는 뜻이니, 이는 현재 우리 사회의 성장 에너지가 사실 상 고갈되었음을 뜻한다.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정책을 통해 사라져가는 성장 에너지를 어떻게 해서든 되살려보자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이번 글은 거창한 담론을 늘어놓자는 것이 아니라 그냥 2018년 오늘의 모습, 특히 먹고 사는 모습에 대해 그냥 평이한 어투로 얘기하고자 한다. 먹고 사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중한 것이니 말이다.
서울의 보통 근로자 가구가 저축만으로 보통의 아파트를 마련하긴 불가능
서울에 사는 보통 직장인의 경우 대출 없이 그냥 저축만으로는 평생을 살아도 주택이나 아파트를 마련할 수 없다. 異論(이론)이 있을 수 있겠지만 크게 틀린 얘기는 아닐 것이다.
이 대목에서 소득대비 집값을 나타내는 PIR 이란 지표도 있지만 그냥 단순하게 얘기해본다.
서울에 사는 일반 근로자 가구의 평균 연간 소득은 6천만원 정도 된다고 한다. 부부가 같이 벌면 그 정도가 될 것이다. 서울의 33평 아파트 시세는 평균이 6억4천이고 강남구는 평균이 12억 8천이라 한다.
따라서 서울 근로자 가구의 경우 소득을 몽땅 저축한다 했을 때 33평 아파트를 마련하려면 10년이 조금 더 걸릴 것이다. (강남구에 내 집을 장만하는 것은 일단 포기하기로 하자.)
하지만 저축이란 것이 아무리 독하게 한다 해도 소득의 1/3 정도면 한껏이다. 연간 6천을 번다고 할 때 2천을 저축할 수 있다면 그게 최대치란 얘기이다.
따라서 2천씩 저축해갈 경우 평균 6억4천하는 서울의 33평형 아파트를 장만하려면 32년이 걸린다. 그냥 불가능하다고 봐야 하겠다.
대출을 받지 않을 수 없는데
따라서 집을 사려면 대출이 필수. 일단 15년간 연간 2천씩 저축하면 3억이 될 것이고 이에 나머지 3억4천은 금리 3.5%에 20년 만기 원리금 균등상환 방식의 주택담보대출을 받는다고 하자. 서른에 취업했다면 마흔 중반이 되겠다.
대출을 받고 원리금 균등상환을 하게 되면 월평균 180만원, 연간 2,160만원 정도를 갚아야 한다. 그간에 연간 2천만 정도 저축을 해왔던 것을 생각하면 그냥 그런 식으로 향후 20년간 계속 저축해간다고 보면 되겠다.
이제 집이 생겼으니 전세금 마련이나 월세를 낼 필요가 없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다만 재산세가 있긴 하다.
따라서 15년간 저축하고 대출을 받아 다시 20년간 갚아야 하니 전체 기간은 35년이 되어야 서울의 평균 아파트 한 채를 온전히 마련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지분 100%의 아파트 말이다.
그 사이에 급여가 오르겠지만 그보다는 어느 시점에서 외벌이가 될 가능성은 더 크다고 하겠다. 또 직장에서 35년씩이나 충실히 잘 다닌다는 것이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취업을 30세에 했다고 할 경우 65세까지 근무해야 한다는 얘기가 되니 말이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은 공직이나 공기업이 아닌 이상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의 얘기는 대충 그렇다는 것이고 지금 시행되는 신 DTI(총부채상환비율)와 총체적상환능력비율(DSR)에 따라 실제 상황은 또 달라질 것이다.
불투명한 미래를 사는 대한민국
만기가 20년 또는 30년에 이르는 주택담보대출이 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차주의 소득이 그 기간 동안 안정적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공직이 아닌 이상 우리 사회의 직업 불안정성은 대단히 높은 편이다, 그러니 그게 가능한 얘기인지부터 의문이다.
서울시민권자와 서울시민 그리고 類似(유사) 서울시민
서울에 살면서 자신과 가족이 살 집을 마련한 자, 즉 주택이나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한 자를 일러 나 호호당은 서울 시민권이 있는 자, 줄여서 ‘서울 시민권자’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서울 시민권자의 상당수는 거액의 빚을 지고 있다는 점도 있다.
나 호호당은 전월세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서울 시민권자’가 아니라 그냥 ‘서울 시민’이다. B급 서울시민인 셈이지만 그래도 서울 안에 살고 있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젊은 부부들은 깨끗하고 편리한 주거환경에 더 비중을 두다보니 서울 근처에 집을 마련한 뒤 서울로 출퇴근을 한다. B급 서울시민이 되느니 서울까지의 출퇴근에 3시간 이상 걸릴지라도 그 길을 택한 것이다. 물론 교통비는 장난이 아닐 것이다.
주택 문제로 결혼을 포기해버린 젊은이들
그런데 저처럼 애쓰는 젊은 부부들도 있지만 최근 아직 결혼하지 않은 젊은이들은 아예 결혼 자체를 포기해버린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결혼을 하면 같이 벌이를 하면서 집도 마련해야 하고 육아나 양육도 해야 하며 서울 변두리로 나가 힘들게 출퇴근을 해야 하니 그게 너무 힘들어서 그 모든 것의 출발점인 결혼 자체를 기피하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이다.
젊은 남성의 경우 결혼할 것 같으면 서울 변두리에 나가 살면서 독한 마음으로 저축을 해야 하니 사실상 삶을 즐길 여유가 없다. 여성의 경우 출산과 육아 그리고 직장을 동시에 감당하기가 너무나도 벅차다.
특히 여성의 경우 미혼 시절엔 용모를 가꾸느라 적지 않은 돈을 쓰는 탓에 직장에 다닌다 해도 결혼 전에 착실히 저축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냥 해외여행 같은 거 많이 다닌다. 집은 남편 될 사람이 당연히 마련하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사실 최근 우리나라의 출산율 저하는 결혼한 뒤에 아기를 낳지 않는 것보다도 결혼 자체를 하지 않는 바람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서구와는 다른 이유에서 욜로(YOLO)
이에 최근 젊은이들은 그냥 연애만 하며 즐기고 지내려는 경향이 강하다. 뿐만 아니라 최근 우리 사회에도 욜로(YOLO) 바람이 제법 강하게 불고 있다. 하지만 사실 우리나라 욜로는 서구의 욜로와는 내용이 많이 다르다.
서구의 경우 놀다가도 다시 취업할 수도 있지만 우리 사회의 경우 일정한 연령대를 넘기면 사실상 취업이 불가능해진다. 그냥 무직자로 지내야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반면 가령 미국의 경우 대도시만 아니라면 집값도 저렴하고 생활비도 저렴하기에 그냥 태어난 고장에서 적당히 벌면서 살아갈 수 있다.
가령 예를 들면 애플의 스티브 잡스의 경우 취업한 뒤에도 무려 7개월 짜리 인도순례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직장에 다닌 것 역시 2년도 되지 않았고 애플을 창립했다. 벤처를 해보다가 실패하면 다시 직장에 들어가면 그만인 까닭이었다. 우리의 경우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최근 우리 젊은이들 사이에서의 욜로는 그 내용을 보면 열심히 살아봐야 큰 미래가 없다, 따라서 지금 내게 혼자서 즐길 돈이 있다면 저축하지 않고 즐기겠다는 식이다. 이에 나는 우리 젊은이들의 욜로를 보면 ‘절망에 바탕을 둔 욜로’라는 생각을 한다. 딱한 마음이다.
어느 젊은이로부터 들은 얘기인 즉 연수 3천에 1년에 한 번 해외여행 다녀올 수 있으면 럭셔리 인생이란 것이었다. 들어보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결혼을 하지 않고 그냥 부모님 집에 얹혀서 살고 또 직장 다니면서 버는 3천의 돈은 약간만 저축하고 모두 소비한다는 심산이다. 가령 50만원 저축하고 남는 200만원으로 소비를 즐긴다는 계산이다.
사실 그 정도면 충분히 럭셔리하다고 인정할 수 있다. 요즘 젊은이들의 상당수가 사실상 무직 또는 알바로 지내고 있다. 취준생은 겉포장인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니 그들에게 연수 3천에 미혼으로 지내면서 즐기는 삶이 어떤 면에서 럭셔리라고 충분히 인정해줄 수 있다는 말이다.
유교적 풍토의 부정적 영향
또 어떤 젊은이, 알바로 가끔 용돈 벌이를 하면서 지내는 한 젊은 여성의 말도 인상이 깊었다. 알바 역시 연령 제한이 있어서 커피집이나 식당에서 알바로 일하는 것도 나이가 서른에 가까워지면 알바 자리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식당이나 커피집 매니저의 나이는 스물일곱인데 서른 난 처녀가 알바로 일하려면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얘길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문화적으로 나이 어린 사람이 나이든 사람을 아래 직원으로 일을 시키기가 피차간에 어려운 점이 있다. 유교적 풍토 때문이다. 그 바람에 젊은이들이 대학을 마친 후 또는 대학원을 마친 후 바로 취업하지 못하고 조금 세월을 보낼 것 같으면 취업은 사실상 어려워진다. (유교적 전통이 강한 일본도 그렇다는 말을 듣긴 했다.)
꿈을 꿀 수 없는 우리 젊은이들
그런가 하면 몇 년 전부터 재산이 다소 있는 중상층 이상의 부모를 둔 젊은 남성들 중에는 힘든 사회생활을 피해 셰프의 길을 지망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그 바람에 툭 하면 듣게 되는 얘기가 있으니 바로 프랑스 요리 학교인 르 코르동 블루이다. 지원자가 적지 않아서 그런지 프랑스까지 갈 것 없이 그냥 한국 지사도 있고 국내 분교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물론 요리사의 길을 가겠다는 것 자체를 비판적으로 본다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고생하지 않고 유복하게 자란 젊은 친구가 일류 요리학교를 나온다고 해서 미래가 보장되는 것은 전혀 아니란 얘기를 하고 있다.
이처럼 최근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은 미래에 대한 큰 꿈을 꾸지 않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큰 꿈을 꿀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출구가 막혀버린 것이다.
그런대로 있는 집의 젊은이들은 적당히 즐기면서 살 생각을 하는 것 같고, 보통의 젊은이들은 그런대로 벌어서 즐기자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없는 집 젊은이들은 당장 벌어야 하기에 갖은 갑질을 감내하면서 고생을 할 뿐 미래에 대한 꿈을 꿀 수 없는 현실이다.
오늘은 국운의 겨울을 보내고 있는 젊은이들을 위주로 얘기했는데, 다음 글에선 치킨 집 사장님 얘기로부터 이야기를 이어갈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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