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올림픽, 1984년 이래 최악의 성적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우리는 금메달 6개 포함 19개의 메달을 땄다. 그리고 이번 2020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 6개와 총 20개의 획득했다. 같은 메달 수이지만 당시엔 종합순위 10위였고 이번엔 16위였다. 최악의 성적이다. (메달 수는 거의 같지만 신규 종목이 늘어난 까닭이다.)

 

최악의 성적이라 말하는 것은 우리가 1984년 이후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던 것은 단 한 번밖에 없었다. 1997년 말 외환위기의 여파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12위를 했었다. 그것을 제외하면 늘 10위 안에 들었다. 그렇기에 이번의 16위는 최악이다.

 

 

36년만에 기세가 꺾인 대한민국

 

 

더 중요한 점은 1984년으로부터 36년-실제론 37년-만의 일이란 점이다.

 

세상 만물은 36년이 지나면 反轉(반전)의 흐름이 오는데 이번 올림픽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60년 순환을 하나의 원운동으로 보면 30년이 흐르면 반대 위치에 가게 된다. 그리고 그 반전이 구체화되는 것은 36년이다. 이로서 우리의 국운이 꺾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겨우 스포츠 따윌 가지고 그렇게 볼 수 있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올림픽과 같은 글로벌 행사야말로 그 나라의 국운, 운세 흐름을 정확하게 반영하기 때문이다.

 

세상 흐름이 36년이 경과할 무렵에 반전이 구체화되는 것은 비단 이번 일만이 아니다. 그간 블로그를 통해 무수히 알려드린 바 있다.

 

비근한 예로 우리가 일제에게 강제 합병을 당한 것이 1910년이었는데 36년이 채 안 되는 1945년에 우리는 해방을 맞이했다. 이런 예는 역사 속에서 무수히 볼 수 있으며 나라만이 아니라 기업의 흐름이나 개인의 인생사에서도 너무나 쉽게 확인해 볼 수 있다.

 

 

언어가 타락한 시대

 

 

언론이나 미디어들은 우리의 부진에 대해 애써 변명하거나 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식으로 묻어 버리려 하고 있다.

어떤 언론의 기사를 보니 메달 수는 적었어도 젊은 세대들은 경기를 즐겼고 팬들 또한 여기에 환호했다고 쓰고 있었다. 실로 어처구니가 없다.

 

올림픽 경기 역시 경쟁이고 싸움이다. 오랜 기간의 훈련을 거쳐 국가 대표로 선발이 되고 각국의 쟁쟁한 선수들과 맞서 겨루는 올림픽 무대는 평생 한 번 또는 두 번 정도 있을 수 있는 선수 인생에 있어 가장 큰 무대이고 동시에 싸움터이다. 그러니 그걸 어떻게 즐길 수 있을까?

 

여자배구의 글로벌 천재인 김연경 선수가 브라질이나 세르비아, 터키와 같은 강팀과 시합을 치르면서 즐겼다고 보는가? 온갖 악이란 악을 다 써가면서 혼신을 다해 싸웠을 뿐이다. 그리고 그 결과 예상보다 좋은 성적을 거뒀기 때문에 선수들은 물론이고 팬들도 환호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경기를 즐긴다는 표현에 대해 심하게 얘기하면 그건 출전한 선수들에 대한 모독이나 다름이 없다. 죽기 살기로 싸우는데 그걸 즐긴다고 하니.

 

김훈 작가의 말이 생각난다, 이 시대는 언어가 타락한 시대라고. 정말 그런 것 같다. 동감이다. 즐긴다는 말의 의미마저 도무지 무슨 뜻인지 모를 정도가 되었으니 말이다. 패배를 받아들인다는 뜻? 아니면 안 되면 말고 하는 마음가짐? 도대체 모르겠다. 스마트폰으로 게임 한 판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패배를 아프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다. 패배를 뼈에 새기는 자만이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미국 선수들이 간혹 게임을 즐긴다는 식의 표현을 한다. 반은 맞고 반은 僞善(위선)이다. 미국 선수의 경우 올림픽 국가대표로서 출전했다는 것만으로도 선수 생활을 하든 다른 일을 하든 관계없이 대단한 경력으로 인정이 된다. 그러니 반은 맞는 말이다.

 

그런데 왜 반만 맞는다고 하는가 하면 미국 역시 假飾(가식)과 僞善(위선)으로 가득한 나라이기에 이왕 진 거 차라리 즐겼다고 말하는 것이 일종의 미국적 매너이자 멘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특정 스포츠 선수가 올림픽에서 성적을 얻지 못하고 또 스스로 실망한 나머지 다른 길을 찾을 것 같으면 그야말로 인생이 피곤하고 고달파진다. 우리 사회는 한 발 발을 들였으면 죽으나 사나 그 길 또는 그 바닥에서 비비고 들러붙어야 간신히 먹고 살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긴 어둠의 가시밭길을 걸어갈 것이니 

 

나 호호당은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 대한민국의 기세가 꺾였음을 확인했다.

 

가슴이 많이 아프다. 비단 이번 성적만을 두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걸어야 할 길고 긴 어둠의 가시밭길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경책의 말을 인용하면 이제부터 우리가 ‘죽음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것임을 알기에 그렇다.

 

물론 사람은 금방 적응한다, 상황이 어려워도 겪다 보면 당연시하게 된다. 하지만 나 호호당은 1955년생이라 그간의 모든 일들을 내 눈으로 지켜봤고 그간의 영광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오늘의 우리는 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좋았던 시절과 지금

 

 

예전엔 서울 인 대학이든 지방 대학이든 대충 학점을 따고 졸업만 하면 그에 맞추어 그럭저럭 직장이란 곳에 취업을 했다. 명문대학 졸업생들은 대기업에, 그렇지 않은 졸업생들은 중견기업이나 또는 중소기업에 입사를 했다. 그러면 결혼을 했고 열심히 돈을 모아서 아파트 청약도 했고 그러다 보면 국민주택 규모인 25평 아파트, 지금으로 치면 85 제곱미터 이하의 아파트에 들어가서 아이들을 낳고 부양했다.

 

대학을 마치지 않았어도 나름 길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다소 힘들긴 했어도 성실하게 살다 보면 그 또한 중년에 이르러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나라 발전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린 세대는 이른바 586 세대들이다. 데모하다가 졸업하면 그냥 대충 취업이 되었고, 외환위기로 인해 앞의 선배들이 죄다 쓸려나가는 바람에 기업의 중추 자리를 차지하고 권력과 호사를 누렸으며 운동권 사람들은 민주화의 공로와 감성적 포퓰리즘을 앞세워 오늘날 우리 정치권력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세상에 무조건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바로 그들의 자녀들 즉 94년을 중심한 세대들은 살벌한 취업경쟁과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면서 삶의 의욕을 잃어가고 있다. (나 호호당은 MZ 세대란 말은 허구라 여기기에 사용하지 않는다.)

 

 

장장 18년에 걸친 고난의 행군 

 

 

각설하고, 이제 우리는 장장 18년에 걸쳐 이어지는 험하고 먼 길의 입구에 섰다. 2021년부터 2039년까지의 세월이다. 그 먼 길의 도중에 앞으로 11년 뒤인 2032년이 되면 실로 앞길이 캄캄하단 것을 모두가 알고 느끼게 될 것이다. 바로 그 때가 우리 국운의 春分(춘분)인 까닭이다.

 

60년 순환에 있어서의 춘분을 한 해라 놓고 보면 3월 22일 경이고 하루라 한다면 새벽 6시 반이다. 밤이 끝나고 아침이 시작되는 시각이다. 이제 멀리서 빛이 비쳐오지만 그간에 어둠만을 겪은 사람들은 아침은 영영 밝지 않을 것이란 절망에 빠진다. (이제 끝이다 하는 절망의 순간이야말로 새 빛이 들어서는 순간이란 점, 묘하지 않은가!)

 

2032년이 되면 현재 우리가 먹을 것을 만들어내는 수출 대기업들이 전반적으로 부진의 늪에 빠져있을 것이다.

 

우리 경제, 먹고 사는 근본은 우리의 수출 대기업들이 전 세계 시장에서 벌어들이는 收入(수입), 달러벌이에 달려있다. 그를 통해 내수가 돌아가고 이에 우리 모두가 먹고 살며 미래를 꿈꾼다.

 

정치가 중요하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정치란 결국 먹을 것을 나누어주는 역할이지 먹을 것을 창출해내진 못한다는 사실이다. 먹을 것을 만들어냄에 있어 정치는 잘 해야 보조 역할에 그친다.

 

올림픽만 해도 그렇다, 예컨대 양궁은 현대자동차, 체조는 포스코가 지속적으로 후원해왔다. 반면에 레슬링의 경우 후원사가 없어지면서 거의 씨가 말라버렸다. 스포츠란 게 일시적인 행사 후원 정도론 결코 성장하거나 유지될 수 없다.

 

그런데 그런 우리 수출 대기업들이 10년 뒤 부진해지면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 행사에서 우리가 성적을 내기란 불가능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면 20위 바깥으로 밀려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올림픽은 우리들의 관심사에서 서서히 멀어져갈 것이다. 성적이 나지 않으면 그렇지 않겠는가.

 

올림픽에서의 성적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게 바로 우리 경제의 활력이고 나아가서 나라 전체의 총체적인 힘을 정확하게 나타내는 ‘바로미터’인 까닭이다.

 

 

장차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감내하고 견뎌야 할 것인지 

 

 

그런데 1984년 이래 36년 만에 대한민국의 기세가 꺾였다. 가슴이 아프다, 다시 기세를 살려내고 도중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어느 선까지 올라서려면 또 다시 멀고 험한 길을 가야 할 것이다. 물론 나 호호당 역시 그 길을 함께 걸어갈 각오를 다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