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고생이다.

 

(오늘 글은 수필이다.)

 

사는 게 왜 어려운가? 그 근본 이유를 최근 며칠 사이 곰곰이 생각해 보았더니 성가시고 귀찮은 일들이 끊임없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런 일들이 꼭 어떤 중대사인 것도 아니지만 아무튼 부단히 생겨난다. 그래서 사는 게 힘들고 고단하다.

 

최근 집을 이사했다. 그러다 보니 처리할 일들이 제법 있었다. (그 와중에 은행에 가서 순번표를 뽑고 착하게 순서를 기다려서 재난지원금도 받았다.) 이사하다 보니 가구도 장만해야 했다.

 

 

가구 하나 집으로 들이는 것도 성가심이 따른다. 

 

 

가구가 집으로 들어오는 일도 그냥 쑥 들어오는 것이 아니었으니 이로부터 얘기를 시작해보자.

 

현관 벨이 울리는 순간 우리 집 강아지들이 맹렬하게 현관 쪽으로 내달리면서 시끄럽게 짖어대기 시작했다. 이에 아내는 부랴부랴 현관으로 달려가서 잠시 기다리세요! 를 힘차게 외쳐야 했고 나는 강아지 두 마리를 몰아서 안방으로 넣어야 했다. 하지만 강아지들은 한사코 나를 피해서 현관 쪽으로 달려가고자 하니 야단을 치면서 안방으로 가두어야 했다. 안방에서 강아지들은 계속 짖어대고 나는 시끄러! 조용히 안 해! 하고 겁박을 해야 했다.

 

배달원이 가구를 놓고 나간 뒤 개들을 풀어주었는데 그 사이에 허리가 약간 삐끗해 있었다. 급하게 일어나느라 생긴 일. 저 망할 놈의 개새끼들! 하고 야단을 쳐보지만 사실 욕도 아닌 것이 개더러 개라고 하는 것이고 내가 기르는 자식들이니 새끼가 맞다, 그럴 때마다 뭐 좀 박력 있는 욕설이 없을까 생각하게 된다.

 

 

때론 비겁할 때도 있는 법

 

 

이런 식으로 근 보름 이상에 걸쳐 집을 정리했는데 딱 한 가지 문제가 남아있었다. 바로 에어컨 설치였다. 그래서 아내더러 야, 전화 좀 하지 그랬어 하고 핀잔을 주었지만 실은 이건 약간 비겁한 짓이었다. 여름이 가까운 터라 사실 나 역시 에어컨 설치야말로 이사하자마자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이란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아내를 독촉한 것은 일종의 면피 행위였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최근 며칠 사이 기온이 부쩍 올랐다. 폭염주의보! 아이고, 이거 큰일이다 싶어서 늦게나마 서비스 센터로 전화를 했지만 들려오는 응답이라곤 ‘지금 상담이 밀려서 통화할 때까지 57분 20초가 걸리겠습니다!’ 하는 절망적인 멘트였다.

 

저 로봇 놈의 말을 해석하면 ‘야! 이 고객님아, 좋은 말로 할 때 전화 따윈 하지 마, 이런 말이 아닌가!’. 좌절은 당연한 일, 이러니 산다는 게 힘든 일이네! 하고 장탄식을 했다. (이 대목이 바로 오늘의 글을 쓰게 한 동기였다.)

 

 

대소사 모두 성가시니 살기가 힘들지. 

 

 

산다는 게 정말 쉽지가 않다. 이런 소소한 일도 성가셔 죽을 지경인데 인생길에 이런 잡일들만 사람을 귀찮게 하는 것 또한 절대 아니다.

 

작년에 진작 치과를 갔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못 가고 있다. 나이가 60대 중반에 들어서니 해마다 임플란트 같은 큰 공사를 최소한 하나 이상 하게 된다. 가려면 날을 잡아야 한다, 세상에 어느 누구가 이빨에 문제가 있다고 그 다음 날 자주 찾는 식당 들르듯이 쓱-하고 찾아가겠는가 말이다.

 

그러니 일단은 다음 주 정도에 가야지 하고 마음을 먹어 보지만 그 다음 주가 되면 다른 약속이 생기고 일이 생겨서 도저히 갈 틈이 나지 않는다. 실은 그 다음 다음 주엔 비교적 한가했건만 그럼에도 치과에 가지 않았다. 시간이 나면 결심이 서질 않고 결심하면 이상하게 시간이 나지 않는 게 치과 가는 일이다. 이런 식으로 해를 넘기고 있다.

 

그런가 하면 신체 상태, 소위 컨디션이란 게 하루라도 완벽하게 편한 날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허리가 작년엔 디스크가 와서 고생 좀 했다. 이제 그럭저럭 좋아졌는데 그래도 왼쪽 무릎 관절이 좀 그렇거나 아니면 뒷목이 당겨서 경추를 좌우로 꺾어보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소화에 좀 문제가 있거나 또는 장에 가스가 차서 종일 불편할 때도 있다. 그러다가 기관지가 좀 까실까실 통증이 오기도 한다. 또 어디 약간 먼 길이라도 다녀오면 그 뒤로 수일이 지났어도 회복이 시원치 않다.

 

그런 상태에서 간만에 친구로부터 전화라도 받게 되면 이렇다. “어떠니, 잘 지내지?” 하는 안부를 받게 되면 “뭐 그렇지 뭐, 잘 지내고 있어” 하고 답변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과연 내가 잘 지내고 있는 건가? 하고 의문이 생길 때도 많다.

 

 

잠자는 일마저도 성가신  루틴들이 따른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기 위해서도 해야 할 일들이 적지 않다. 잠자리에 필요한 소도구들 때문이다. 얘기하자면 전자침, 가습기에 물 채우기, 마실 물 한 잔과 티슈 박스, 전기로 데워서 몸 아래 받치는 둥근 돌, 넥플릭스를 보기 위한 컴퓨터 패드가 필요하다.

 

전자침은 담배를 피우는 사람인지라 매일 자기 전 몇몇 경혈자리를 자극해주기 위한 것이고 가습기는 나이가 드니 건조한 날씨엔 비강이 건조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자다가 목이 말라서 깰 때도 있으니 물 한 잔 역시 가져와야 하고 간혹 자다가 코를 풀기 위해 티슈도 필요하며 쉽게 잠이 오질 않으니 넷플릭스를 보면서 피로해지길 기다려야 한다. 누워서 패드를 두 손으로 천정을 향해 들고 있으면 금방 팔이 아파오고 그러면 빠져나가기를 하고 그러다가 운이 좋으면 잠에 들게 된다. (잠드는 일도 운이 좋아야 하니 참!)

 

 

몸뚱이 하나 건사하는 것이 제국을 운영하는 것과 같아서

 

 

이 몸뚱이 하나 건사하는 것만 해도 이렇게 어려운 데 거기에 먹고 살기 위해 돈도 벌어야 하고 그 판국에 간간히 지인들도 연락을 해서 관계를 유지해가야 한다, 그러니 이런 모든 것이 실로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 말이다. 성가신 일이 부단히 이어진다.

 

마치 거대한 제국을 운영하고 萬機親覽(만기친람)하는 재상의 느낌이다. (알고 보면 우리 몸 역시 무수한 세포들의 연합체이니 제국과도 같다.)

 

 

유튜브에서 지혜를 얻어보려 했으나 그 역시

 

 

인생이란 참 성가시구나! 하면서 생각을 좀 하는 가운데 유튜브에 들어가보니 우연인지 아니면 찾다보니 눈에 든 것인지 몰라도 미국의 어떤 여성 강사가 ‘5초의 법칙’이란 것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강사의 요지는 이렇다. 성공하려면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데 그게 싫어서 궁리만 할 뿐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탓이다, 따라서 해야 할 일이 있으면 5초 안에 망설이지 말고 즉각 실천에 옮기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할 일이 있으면 머리를 쓰지 말고 생각도 하지 말고 5초 이내에 즉각 행동으로 옮기라는 것이 요지였다. 그래야만 발전할 수 있다는 얘기인데 당연히 맞는 말이고 지당한 논리 같다.

 

하지만 정말 해야 할 일이 있고 그를 즉각 행동에 옮기려고 한다면 아마도 얼마 안 가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말은 옳지만 그게 어디 쉽나! 며칠 하다가 몸살이 나거나 아니면 안 하게 되지 쉽다.

 

미국의 저 여성 강사는 그걸로 밥을 먹고 살면서 유명 인기 강사가 된 탓에 신이 나서 저처럼 열심히 약을 팔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건 그녀의 비즈니스인 법, 전국을 순회하면서 강연을 하고 있지만 집에 들어서는 순간 손끝 하나 까닥 하기 싫어서 소파에 자빠져 누워있지 않을까 싶다. ‘여보, 저녁은 먹고 들어왔지! 나 힘든 거 알지?’ 하면서.

 

5초의 법칙을 다시 한 번 음미해보면 우리의 뇌는 생존을 위해 하기 싫은 것은 행동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고 진화되어 왔다는 것, 그러나 성공하려면 싫은 일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 뇌의 말을 듣지 말고 무시하라는 것이다. 이는 사실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뇌를 마비시키거나 속일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과도 같다. 솔직히 말도 되질 않는 얘기가 아닌가. 내가 나를 어떻게 속인단 말인가. 어처구니가 없다.

 

5초 강사의 말은 사기극이다! 우리가 뭉개고 있는 것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또 다른 쌈빡한 것이 없나 싶어서 찾아보니 또 미국인이었다. (미국엔 역시 이런 장사, 이른바 자기계발 교육이란 장사가 잘 되긴 하나 보다.)

 

좋은 습관을 만들면 좋다는 것은 이미 책으로 엄청 팔려나간 주제인데 그 친구는 그걸 좀 더 울궈먹는(표준어론 우려먹는) 장사를 하고 있었다. 좋은 습관을 가지면 좋은 줄 모두 알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좋은 습관을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는지를 사람들이 모른다는 것, 그리고 자기 말대로 하면 좋은 습관을 선택해서 가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치의 말로는 습관도 택하고 설계하기 나름이란 얘기인데 그게 글쎄 잘 될까 싶다.

 

5초 강사의 말이나 습관선택이 가능하다는 주장들은 엄청난 세월 속에서 진화해온 우리의 몸과 마음을 너무 만만하게 여긴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란 게 심리학자들이 그간 연구해온 것보다 몇 차원 더 심오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유튜브 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어서

 

 

유튜브에 좋은 내용이 많다고 하지만 실은 그렇지도 않다. 제목이 끌린다?, 그러고 나면 런닝 타임을 확인해보게 된다. 제목은 매력적인데 시간이 15분이라 적혀 있으면 갈등하지 않을 수 없다. 봐? 말어? 하면서.

 

가령 15분짜리를 보노라면 내가 궁금해 하는 내용은 7분 정도 지나야 나온다. 그래서 중간으로 건너뛰면 앞자락의 내용을 모르기에 또 불편하다. 이런 것들에게 몇 번 낚이다 보면 한 동안은 유튜브 보지 않게 된다.

 

(5초 강사, 습관 통제하는 법에 실망한 터라 한동안은 저런 자기계발 장사 근처엔 아예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성가신 것을 보상해주는 무엇이 있기에 우리는 살아간다.  

 

 

그래서 인생은 참 어렵다는 주제에 대해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온다. 너무 성가신 일이 많다는 것, 가짓수가 적어지면 하나하나가 더 힘들어지거나 아니면 소소한 것들이 끊임없이 성가시게 한다.

 

저 성가신 강아지들, 처음부터 강아지를 키운 것이 잘못이었나?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한 것만 해도 벌써 17년이나 되었는데 이걸 다시 원점에서 고민해야 하는가 싶다.

 

생각하다 보니 나름 괜찮은 결론을 얻게 된다. 강아지를 키움으로써 얻는 보상과 지불해야 하는 각종 물적 심적 비용이 그간에 그러니까 17년 동안에 균형을 잡아 왔기에, 나아가서 이윤이 조금은 더 남는 장사였기에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는 결론이다.

 

그래서 이 생각을 바탕으로 좀 더 외연을 확장해보기로 한다.

 

사는 게 힘들긴 하지만 살아가면서 얻는 즐거움 또는 행복과 균형을 잡고 있기에 그리고 약간이라도 남기는 장사인 까닭에 우리 모두 힘들지만 기를 쓰고 살고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이 논리 역시 좀 더 생각하고 따져볼 여지는 있는 것 같으니 일단 잠정 결론이라고 해두자. 사는 건 힘들다 하지만 때론 사는 맛이 날 때도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 우리를 낳아준 부모님들을 원망하고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