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낮 여수 엑스포역에 내리니 마침 내리기 시작한 비는 시간이 갈수록 굵어졌다.

 

이번에 가보고자 했던 곳은 여수의 중심에 잇는 고소대 언덕길의 카페 빠삐용이었다. 예전에 한 번 들렀는데 인상이 남아서 다시 찾아갔다. 화가가 하는 곳인데 멋진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특히 물고기를 그린 작품들이 기가 막히다. 카페 2층으로 오르면 넓은 유리창에 바깥 테라스로 나갈 수 있어 구경하기 참으로 좋다. 그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여수 옛 항구의 모습이 절경이다. 바로 아래로 수산시장이 있고 항구 앞에 이순신 장군이 배를 만들었다는 아담한 장군도가 보인다. 좀 더 떨어진 돌산대교 너머로 보이는 남해 바다가 참으로 낭만적이다.

 

저녁 시간 지인의 돌산 별장으로 들어가서 데크의 테이블에서 풍성한 저녁식사를 즐기는 데 비바람 적당히 들이쳐서 분위기는 더욱 좋았다.

 

소맥을 곁들여 통영 멍게와 참돔 숙회, 갑오징어 등을 먼저 먹은 뒤 큼직한 꽃게 찜을 본격적으로 먹었다. 자정이 되자 데크 위 차양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는 지칠 줄 모르는 타악기였고 강약 조절로 불어오는 바람은 천연의 퉁소가 되어 정취를 더했다.

 

새벽 2시 무렵 주인 부부와 몇몇 지인들이 시내로 돌아가니 남은 이는 함께 내려간 두 사람, 좀 더 얘기를 나누다가 새벽녘 잠에 들었다. 풍우는 밤새 그치지 않았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도 여전했다. 집 앞에 내려다보이는 가막만이 온통 술렁대고 있었다.

 

턴테이블에 음반을 올려놓고 창을 열어젖히고 믹스커피를 마시면서 담배를 즐겼다. 바깥의 희부연 비바람이 실내로 습기를 마구 몰아넣었지만 보일러를 가동하고 있던 터라 무척이나 쾌적했다.

 

탁 트인 거실에 앉아 빗발이 천천히 물위를 걸어가고 있는 바다를 보면서 커피와 담배를 실컷 즐기다가 점심 무렵이 되니 출출해졌다. 이에 갑오징어를 넣은 라면을 끓여서 요기를 했다.

 

한가롭다 보니 담배갑에 인쇄된 것들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한쪽 면엔 폐암, 반대편엔 형편없이 망가진 허파 사진과 금연 상담 전화번호가 인쇄되어 있었다. 오늘의 담배는 폐암이구나, 하지만 50년간 즐겨온 담배인데 뭘 어쩌라고!

 

흡연이 제한되면서 나 호호당의 삶은 크게 변화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엔 거의 가질 않는다. 해외여행도 비행시간이 3시간 이상 되는 곳은 아예 엄두가 나질 않는다. 영화관도 가질 않고 고층 호텔이나 식당 같은 곳 역시 마찬가지, 마치 해녀가 크게 숨을 들이쉰 후 잠수하듯이 나 또한 큰 매장 같은 곳에 들어가면 최대한 빨리 빠져나온다. 최근엔 성소수자란 말이 유행인데 나 역시 담배 때문에 사회적 소수자가 되었다.

 

하지만 여수 돌산의 바닷가 별장은 술 마시고 담배를 즐기기에 최고의 장소, 자연의 바람 속에 담배 연기를 실어 보내면서 한껏 맘껏 놀고 쉴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부쩍 여수 돌산은 풀 빌라와 호텔, 대형 카페들이 마구 들어섰다. 서울에서 젊은 연인들이 들이닥친다. 여수 밤바다, 그저 그렇다는 생각을 하지만 유행과 대세는 정말 대단한 것이다. 2012년 KTX가 들어오고 여수 엑스포 이후 줄곧 그렇다. 전국이 불황이지만 여수는 그 어느 때보다도 호황이다. 초호황이다.

 

풀 빌라, 성수기엔 하룻밤에 돈 백 훌쩍 넘는 곳을 2박3일로 놀러오는 젊은이들, 왔다 가면 3백만 원 정도는 가볍게 깨진다. 고액 연봉의 정규직 일자리는 드물 것이니 1년 내내 돈을 모아서 한 방에 쓰고 간다. 왜 그렇게 하는지 여러 사정과 이유가 있겠지만 세대가 다르니 관심을 두지 않는다.

 

아무튼 여수는 목하 호황, 초호황이다. 2012년을 기점으로 호황이 시작되었으니 내년 2024년이 절정일 것이고 18년 뒤인 2030년이면 심한 조정 국면이 닥칠 수도 있겠다. 특히 2027년이면 서울에서 통영까지 2시간 40분이면 갈 수 있는 KTX가 개통된다고 하니 큰 변수가 될 것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신기한 것이 이명박 전 대통령은 물의 신, 즉 河伯(하백)이 아니었나 싶다. 청계천 정비, 4대강 정비, 여수 해양 엑스포 모두 물과 관련이 있으니 말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 이후 박근혜와 문재인 정권 당시에는 降水(강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여수의 지인들은 내려갈 때마다 서울에서 손님이 왔으니 저들 생각에 좋은 곳으로 안내하고 싶어 한다. 그 마음 정말 고맙지만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은 돌산 별장에서 바흐 음악 크게 틀어놓고 라면 끓여먹으면서 보내는 한가로움이다. 다만 이번엔 탁 트인 남해 바다가 보이는 향일암에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비가 너무 심해서 포기했다.

 

하지만 바람 불고 비 내리는 바람에 이번 여수행은 그야말로 최고의 휴식이었다, 서늘하고 습한 바람 듬뿍 쏘이고 왔으니 말이다. 마음속으론 늘 서늘하고 습한 스코틀랜드를 한 번 가봤으면 하지만 장시간 참아야 하는 담배 문제로 해서 결국 가보지 못할 것 같다.

 

금요일 오후 그냥 집에만 있지 말자고 해서 여수 시내로 나갔다. 그다지 내키지 않고 그저 숨어있고 싶은 생각에 문득 “히든 베이”라고 하는 여수의 럭셔리 호텔이 생각났다. 그곳에서 차를 한 잔 마신 뒤 시내 중심가로 돌아와 옛날 풍의 경양식 집을 찾아가서 생선가스를 먹었다.

 

輕洋食(경양식)이란 일본이 과거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서양식 간이 스테이크를 말한다. 커틀릿이 가스가 되었으니 돈가스 비후가스 등이 그것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비싼 음식이었는데 오늘날엔 전국적으로 거의 사라졌다. 걸쭉한 스프와 함께 살짝 데워진 모닝빵이 나오고 샐러드가 아니라 일본식 ‘사라다’가 나온다. 그 뒤에 메인과 함께 접시에 얹힌 밥이 조금 나오고 마지막으로 음료수를 한 잔 준다. 예전에 종로2가 YMCA 회관 그릴에서 팔던 경양식은 추억의 맛이다.

 

비오는 여수 거리에서 고풍의 경양식을 즐긴 다음 산책을 했다. 여수를 그간 열 번도 더 갔었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여수 도심의 번화가를 구경했다. 여수 사람들은 절대 그곳을 안내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저들에겐 전혀 볼 것도 없는 거리인 것이고 나에겐 흥미로운 장소인 것이다.

 

걷다 보니 원형을 살려 복원한 옛 “조선식산은행” 건물을 만났다. 조선식산은행은 일제 치하에서 조선의 중앙은행 역할을 맡았던 은행이다. 오늘날 한국산업은행의 前身(전신)이 바로 조선식산은행이었으니 한 때 은행에서 근무했던 내겐 나름의 감회가 들었다.

 

계속 비는 거세게 내렸고 늦은 시각 돌산 별장으로 돌아와 간단히 씻고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비가 그쳐있었다.

 

세찬 비바람에 살이 꺾인 우산을 버리고 기차를 탔는데 용산에 도착하니 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약간 후회하면서 흡연장까지 후다닥 뛰어가서 몇 모금 담배를 빨고 나서 택시를 탔다. 반포대교가 차량으로 붐비고 있었다, 그냥 익숙한 서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