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으로서 자네 꽃 피우는 모습, 열 일곱 번째 보는 거지. 2005년 여름에 지금 작업실에 욌으니 말이지. 창을 열고 담배 한 대 피우면서 자네와 참 여러 대화를 나누었지. 시린 겨울에 내 마음 쓸쓸할 때 자네는 내 친구가 되어 주었고 그 이후 비오는 날에도 그리고 자네가 단풍든 낙엽을 떨굴 때도 우린 정말 많은 얘기를 나누었지. 자네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쉰 한 살이었고 지금은 예순하고도 여덟이 되었으니 우리 오랜 친구야 친구, 자네는 그 사이에 키가 많이 자랐는데 나는 그 사이에 많이 늙었다네. 언젠가부터 나는 봄날 꽃피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앞으로 이런 좋은 광경을 몇 번이나 볼까? 하고 세어보기 시작했지. 아마도 스무 번은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지. 연꽃 같은데 나무라고 해서 목련, 훗날 이 생명 다 살고 난뒤 혹여라도 영혼이란 게 있다면 난 자네에게 가서 머물거야. 가장 높은 우듬지 위에 앉아 바람 불면 흔들대면서 오래 머물고 싶다네. 그런데 말이지, 알다시피 이 건물 많이 낡았으니 분명 재개발을 하게 될 거야, 그러면 자네도 사정없이 베어져서 사라지겠지. 그땐 섭섭해하지 말고 우리 함께 손잡고 온 산하를 돌아다니자고. 그러면 되지 않겠니 싶어. 고마워, 목련아. 내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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