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손님-물론 한 장 사겠다는-이 온다고 해서 약간 불편한 몸을 차에 싣고 우면동에서 길동으로 달렸다. 올 해는 이래저래 몸 고생이 많다. 5월엔 구례 곡성을 다녀와서 위장탈로 고생 꽤나 했고 이번엔 또 다른 이유로 고생이다. 찾아보니 영동1교, 다리를 건너는데 서쪽 하늘을 보고 그만 깜빡 죽었다. 이야! 이 멋진 세상에 내가 살아 있다니 호강이로다 호강! 하면서 얼른 셔터를 눌렀다. 이미지는 전혀 보정도 하지 않았다, 약간 트리밍만 했을 뿐인데 쥑인다. 켘. (잠시 죽음)
그러더니 저녁이 왔다. 멀리 관악산 위로 놀이 타고 있다. 자세히 보면 오른 쪽 산등성 위로 가느다란 선도 하나 보인다. 비행기이다. 늘 추리해본다, 저건 아마도 영종공항 도착이겠지... 한낮의 그 빛나던 구름들이 저렇게 변한단 말이지, 그래도 역시 황홀한 마음, 몸 고생 돈 고생 마음 고생하며 꾸역 이어가는 이 삶, 버티게 하는 것들은 저런 것들이란 말이지, 끄덕한다. 11월 12일의 낮과 저녁이 내 눈앞을 스쳐간다. 우리가 가진 전부는 언젠나 눈앞의 현재일 뿐 남길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지 않겠는가. 나이가 먹건 말건 몸이 아프건 말건 그런 것은 됐다 치고 눈앞의 영원한 현재를 누려야지.
그런데 돌아오는 택시에서 기사 양반의 실수로 생각지 않게 손가락 부상을 입었네, 이런! 피가 제법 흥건하게 흘러나와서 약국에 가서 응급처리했다. 지금은 오른 손 중지로만 타이핑을 하고 있다. 오늘이 60일 순환에서 48일째 되는 날이라 집을 나설 때 조심해야지 했는데 이런 일을 겪는다. 기사분이 내 눈치를 엄청 보길래 "이봐요, 아저씨, 혹시나 연락할 일 없으니" 하고 안심시켰다. 생각하기로 '내가 말이오 세상을 등쳐먹으면 먹었지 일흔이 넘은 당신을 후릴 생각은 아예 없답니다. 저 멋진 하늘과 빛을 훔치고 즐기기도 바쁜데 말이오', 했다.
그림 한 장을 팔았고 멋진 하늘과 빛도 즐겼으니 좋은데 엄지손가락 부상으로 피를 보았으니 오늘은 좋은 날인가 아닌가? 황홀했지만 재수는 없는 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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