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과 궁금한 것을 삶의 재미로 삼아서



지금 시각은 2018년 12월 27일 새벽 1시 18분. 며칠 동안 하나의 주제에 꽂혀서 골몰하느라 글이나 그림에 손을 댈 시간이 없었다. 끈기가 있는 편도 아니요 집요한 것과는 전혀 거리가 멀지만 이상하게도 뭔가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파헤친다. 


궁리해 봐도 모르겠으면 일단 머릿속 창고에 넣어둔다. 그러다가 다시 어떤 계기에 단서를 발견하면 또 다시 궁리해본다. 


이런 말을 누군가에게 말하면 ‘탐구형 성격’이란 말을 듣게 되겠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호기심이 가는 것, 그래서 궁리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성격이라 하겠다. 


궁금한 것, 호기심이 가는 대상을 나 호호당은 在庫(재고)라 부른다. 궁금한 것을 풀어가는 것, 이는 삶의 활력이자 즐거움이기에 다 소비해서 재고가 바닥이 나면 낭패감을 느끼고 울적해진다. 그 바람에 재고가 거의 소진되었다 싶으면 이제 곧 울적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또는 위기감을 느낀다. 그러다보니 소비하는 만큼 재고를 채워 넣어야 한다는 강박감도 가지고 있다. 


쌀독에 쌀이 떨어지면 굶어야 하듯이 내게 있어 궁금한 안건이나 주제란 바로 식량이다. 밥을 먹으면 힘이 나고 굶으면 힘이 빠지듯 궁리할 대상은 내게 밥과도 같다. 



뱀파이어 형 인간(?)



30대의 어느 날엔 내가 마치 뱀파이어나 드라큐라와도 같은 유형의 인간이라 여긴 적도 있었다. 여느 보통의 식량만 있으면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점에서 말이다. 


몸매가 좋고 용모가 뛰어난 여성들 중엔 멋쟁이가 많다. 멋을 부리느라 보통의 여성들보다 더 자주 옷을 사 입고 바꿔 입는다. 경제 여건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치장하는 데 돈과 시간을 쓴다. 


예전엔 그런 멋쟁이 여성을 보면 그냥 사치하는 성격이라 여겼다. 그런데 살면서 생각해보니 그 멋쟁이 여성이나 호기심을 소비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나 호호당이나 본질에 있어선 전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 여성은 멋을 소비하는 것이고 나 호호당은 긍금증을 소비하고 있을 뿐이다. 차이가 있다면 멋쟁이 여성은 나보다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그러니 실은 내가 더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身分財(신분재)에 대해선 아예 흥취가 없으니



궁금한 것을 궁리하는 것이 삶의 재미이자 활력소인 탓에 과시성 소비에 대해 나는 거의 관심이 없다. 과시성 소비의 대상을 어떤 경제학자는 身分財(신분재)란 용어로 표현하기도 한다. 


(신분재에 대해 조금 얘기하면 타인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소요되는 재화를 말한다. 예를 들면 모피코트라든가 롤렉스 시계, 유명 골프장 회원권, 명품 가방, 페라리와 같은 스포츠카.)


사람이란 사람 사이, 즉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신분재야말로 대다수 사람들의 삶에 있어 엄청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궁리하는 것을 제2의 식량으로 삼아 살아가는 약간의 별종에 속하는 나 호호당의 경우 신분재 방면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이나 흥취가 없다. 그런 면에선 이른바 가성비 쪽이라 하겠지만 실은 가성비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다. 


돈 없는 젊은이들이나 이른바 서민 계층의 사람들은 ‘가성비’를 중시한다. 價格(가격) 대비 性能(성능)의 비율 말이다. 


먹거리 중에 패스트푸드나 인스턴트 식품이야말로 가성비 甲(갑)이다. 맛도 좋고 영양도 부족하지 않으면서 값도 저렴하다. 하지만 신분재란 측면에서 보면 그야말로 꽝이다. 그러니 패스트푸드에 대해 무척 비판적인 사람들도 많은데 그중에는 은근히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느라 그런 사람도 꽤 되는 것 같다. 시간과 돈을 들여 식사를 한다? 그건 이미 서민이 아닌 셈이다. 


(그러니 재작년인가 구의역에서 젊은 정비원이 안타깝게 사망한 사건을 사람들은 ‘구의역 컵라면 청년’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 얼마나 압도적인 표현인가 말이다.)


돈 없는 젊은이라도 사회활동을 통해 소득이 늘어나면 서서히 신분재를 장만하기 시작한다. 형편에 맞게 좋은 만년필을 한 자루 마련한다거나 브랜드가 있는 남방셔츠를 한 장 마련한다거나 하는 것이 그것이다. 



물건에 대한 예의, 사람에 대한 예의 



관련해서 얘기하면 얼마 전 겨울이 시작될 무렵 우연히 빈폴 매장에 들어갔는데 남성 캐주얼 셔츠가 무려 50만원을 웃도는 물건이 있는 것을 보고 깜작 놀라서 나도 모르게 도망쳐 나왔다. 내가 가끔 사 입는 3만원 짜리 유니클로 캐주얼 셔츠가 무려 17-18벌에 해당되는 가격이었으니 질겁할 만도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돈이 아깝다는 얘기도 아니다. 유니클로 정도의 셔츠면 그런대로 훌륭한 물건인데 그런 좋은 물건이 빈폴의 셔츠 한 장과 무려 17대1의 교환비가 나온다는 것은 돈을 떠나서 물건에 대한 예의가 아니란 생각을 한다. 


다시 말해서 나 호호당은 물건을 아낄 뿐이지 돈 자체를 아끼진 않는다. 그게 그거 아니냐 하면 할 말도 없지만 그렇다.

 

어려서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그럼에도 늘 부모님들로부터 모든 물건은 아껴야 한다는 말을 들었던 까닭인 것도 같다. 지금도 집안에서 치약의 마지막 부분은 내가 짜서 쓴다. 아들이나 아내는 치약이 잘 나오지 않으면 바로 교체한다.

 

가격, 즉 상품의 가격은 상품의 가치를 반영해야만 옳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현실 세상은 우월한 신분을 자랑하고픈 사람들의 심리로 인해 품질은 50% 좋은 반면 가격은 17배나 되는 세상인 것이다. 


거기에 희소성이 곁들여지면 가격은 무한대로 치솟기도 한다. 그것이 정말 필요한 가를 떠나서 말이다. 물론 아무리 비싸더라도 사겠다는 사람들이 경쟁을 할 것 같으면 뭐라 할 말은 없다. 


사람의 수입이나 소득도 때론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류현진 선수가 활약하는 다저스의 명투수 클레이튼 커쇼의 경우 2018년 연봉은 3,400만 달러였고 소화한 이닝(inning)은 161 이닝이었다. 


1 이닝 당 21만 달러란 계산이 나온다. 한 이닝에 던진 평균 투구 수가 13개 정도라고 하면 공 한 번 던지면 15,000 달러, 우리 돈으로 1700만원이 된다는 얘기이다. 


야구공 한 번 세게 잡고 휙 하고 뿌리면 1700만원, 참 요상한 세상이다. 


그렇지만 소득세도 많이 나아고 매니저에게도 돈을 떼어주어야 할 것이니 실제 손에 쥐는 금액은 훨씬 적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납득해보기로 한다. 


그런가 하면 2017년도 미국 상장 대기업 CEO 평균 연봉이 1,150만 달러란 뉴스도 읽은 적이 있다. 모든 것에 관여해야 하는 관계로 사실상 365일 내내 신경을 쓴다 치고 하루에 3만 달러 정도 받는 셈이다. (하기야 우리나라 삼성전자 사장님들의 연봉도 그에 못하지 않은 모양이다.)


물론 야구선수이든 대기업 CEO 이든 모두가 그야말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올라온 사람들이고 능력을 검증받은 사람들이니 그렇긴 하지만 좀 지나친 것 같기도 하다. 


그렇긴 하지만 연봉 100억을 받는 사람의 가치가 연봉 3천만원을 받는 사람에 비해 300배나 된다는 점에 대해선 실로 동의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무슨 이념이 있는 좌파도 아니다, 그냥 세상 흐름에 대충 순응할 뿐이다. 


돈 얘기는 그만 하기로 하자. 말머리를 돌려본다. 



노인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이 나이에



연말이고 며칠 지나면 우리 식 나이로 예순하고도 다섯이 된다. 재작년부터인가 들기 시작한 생각 중에 하나, 60 중반이면 노인인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나 호호당은 이제 노인 축에 드는 것일까 아니면 아직 좀 남은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었다. 


그런데 오늘 뉴스를 보니 우리나라 50대 이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노인의 나이는 68.5세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아직 노인은 아니란 말이 되는데 중요한 점은 50대 이상 사람들의 생각이란 것이다. 30대나 40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일까? 그 또한 궁금하다. 그러니 내 생각으론 準(준)노인 정도가 된 게 아닐까 싶다. 



즐거운 삶을 위한 在庫(재고)관리



처음에 시작했던 주제로 마무리하자. 궁금증을 在庫(재고)로 해서 살아간다는 얘기 말이다. 이에 끊임없이 호기심 가는 것을 발굴하려고 애를 쓴다. 궁금하지 않으면 사는 재미가 없으니. 


역사에 대한 지식, 언어에 대한 나만의 연구, 그리고 나 호호당이 세계 최초로 발견해낸 자연순환운명의 이치, 그런 것들은 사실 나 호호당이 호기심 때문에 궁금한 것들을 즐기는 과정에서 얻어진 것들이다. 일종의 副産物(부산물)이인 것이다. 


궁금한 주제나 안건이 있으면 어딜 가나 지루하지가 않다. 머릿속 창고에서 끄집어내어 다시 음미하거나 검토하고 있으면 금방 시간이 간다. 버스를 타거나 또는 지하철을 타서 눈앞에 흥미로운 경치가 없으면 눈을 뜬 채로 머릿속 궁리 마당으로 들어가 버리면 그만이다. 



재고관리에 생겨난 약간의 트러블


런데 최근 몇 년 사이 문제가 좀 생기고 있다. 


최근 근세 초기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였던 베네치아의 역사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 미국의 토마스 매든이란 학자가 2012년에 낸 책이다. 제목은 “Venice: A New History”이다. 난 이미 베네치아의 역사에 관해 여러 권의 책을 읽었다. 


그런데 이제 이런 의문부호가 떠오른다. 내가 베네치아 학을 전공하는 사람도 아니요, 얻은 지식을 종합해서 어디에 가서 강의할 것도 아니며 뿐만 아니라 주변에 베네치아에 관해 얘기를 들려줄 사람도 없다. 


게다가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마당,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앞으로 잘 살아본 들 사실 이십년 좌우인 사람이 우리 역사도 아니요 유럽 전체 역사도 아니며 세계사도 아닌 局地(국지)적인 역사에 대해 왜 나는 호기심을 느끼고 궁금증을 갖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다. 


비단 베네치아만이 아니다. 그냥 하나의 예일 뿐이다. 물론 나는 그 이유를 알고는 있다. 내게 있어 사실 베네치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즐겁게 살기 위한 방편, 즉 소비해야 할 궁금증의 대상으로서 베네치아일 뿐인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제 이런 따위의 궁금증은 점점 흥미롭지가 않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머릿속 창고에서 정작 재고가 떨어지면 큰일이다. 그렇기에 좀 더 섹시한 궁금증을 발굴해내어야 한다는 불안감 내지는 강박감이 들고 있다. 



그저 고맙기만 한 자연순환운명학



이런 점에서 천만다행인 것은 자연순환운명학이다. 


운명의 이치에 대해 흥미를 느낀 것이 47년 전이다. 그러다가 뭔가 미처 발견되지 않은 것이 있다는 가정 아래 연구를 시작한 것이 36년 전이다. 이에 마침내 자연순환의 이치를 이론적으로 정립한 것이 6년 전이다. 그 이후로도 끊임없이 궁리하면서 6년을 보냈다. 


참 잘도 궁금해 하고 실로 오랫동안 가지고 놀면서 즐거웠다. 하지만 아직 살아갈 날 또한 적지 않으니 여전히 아껴가면서 흥미를 잃지 않고 좋은 재고의 하나로서 유지해야 한다는 다짐을 해본다. 운명의 이치에 관한 내 연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궁금한 것들이 많이 남아있다. 적어도 그렇다고 스스로를 위무하고 힘을 내어본다. 


생각하면서 글을 쓰느라 시간이 많이 흘렀다. 글을 마친 현재 시각은 오전 5시 46분, 4시간 38분 동안 즐겼다. 이제 오탈자를 찾아서 정정할 참이다. 날씨를 보니 영하 10도, 체감은 영하 14도. 아파트가 좋긴 하다, 작년에 새로 설치한 보일러 때문에 약간 덥다 싶으니. 


연말이 되면 궁리하기에 딱 좋다. 그러니 재고를 아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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