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방송에 나갔으니
어제 비오는 월요일 오후 여의도 KBS에 가서 라디오 프로그램 녹음을 하고 왔다. 1라디오의 “강원국의 지금 이 사람”이란 코너였다. 얼마 전 출간한 “산다는 것 그리고 잘 산다는 것”이란 책을 담당 PD께서 어떻게 읽어보시고 연락해오셨다.
강원국? 많이 들어본 이름이라서 아들 녀석에게 혹시 알고 있니? 하고 물었더니 “전에 얘기했잖아, 내가 엄청 좋아하는 분이야” 하는 것이었다. 그랬다, 강원국 작가는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문을 썼던 분이니 얼마나 달필이겠는가, 그런데 우리 아들이 존경하는 이유를 알고 보면 뜻밖이다.
아들은 과민성 대장 증세가 있어 쉽게 외출을 하지 못 한다. 아들이 직장에 들어가지 못했던 큰 이유 중에 하나이다. 본인인들 얼마나 좌절이 컸겠는가. 그런데 강원국 작가님 역시 같은 증세로 고생이 많았는데 그럼에도 대통령 연설문 작가로서 대통령의 평양 방문 당시에도 함께 다녀왔다. 그런 사연을 알게 된 아들은 아, 나도 충분히 사회생활도 하고 일도 할 수 있겠구나 하고 용기를 주신 분이란 것이다. 아들에게 고마운 분이라면 내게도 고마운 사람.
이번의 책은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운명 상담을 해오는 과정에서 듣고 배우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인생살이에 대한 나 호호당의 생각을 담고 있다.
강 작가님과의 초반 대담은 자연스럽게 운명이란 것에 대한 질문 그리고 그에 대한 나 호호당의 대답을 중심으로 이어졌다. 궁금한 것이 많으셨는지 이틀 분량으로 녹음했다.
운명이란 것이 정말 있는 건가요? 하는 자연스런 물음에서 시작해서 과연 있다면 그건 어떤 건가요? 등등 나 호호당의 입장에선 너무나도 원론적이고 기본적인 내용에 대해 많이 물어보셨다.
처음엔 많이 당혹스러웠지만
그런데 재미난 점은 그런 질문들이 나 호호당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나 호호당의 경우 2000년 초반 인터넷이 등장하고 위키피디아, 구글 등과 접하면서 10만 명 이상의 실제 살았거나 살고 있는 사람들의 운명을 그들의 프로필과 대조하면서 연구했고 얼굴을 마주 보는 대면 상담만 해도 미처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다시 말해서 나 호호당에게 운명이란 것은 허공중에 산소가 있는 것과 같다.
작가님의 질문은 내 귀에 마치 선생님, 허공 속에 산소란 것이 있는 걸까요? 있다면 그건 어떤 걸까요? 하고 물어보는 것과 같았으니 당황할 수밖에.
이에 대해 나는 마치 이런 대답을 하는 느낌이었다. 우리가 숨이란 것을 쉬잖아요? 그 속에 산소란 것이 들어오고 이산화탄소란 것을 뱉어냅니다. 그러면 그 산소가 심장을 통해 온 몸에 공급되고 등등, 이런 설명을 하는 것과 같았다.
줄여 말하면 나로선 너무나도 당연한 것에 대한 과연 있는 것이냐고 물어오고 있었다. 그러니 그 질문은 처음엔 말문이 열리지 않을 정도로 대단히 신선한 질문이었다. 이에 순간 머리를 굴렸다.
물이란 것이 수소 원자 2개와 산소 원자 1개로 이루어졌다는 거 다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그건 과학자들이 알아내고 학교에서 배우기에 그렇다 여길 뿐 일반의 우리가 그 원소들을 실재 볼 수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 운명이란 것 역시 적어도 제게 있어선 그런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나름 열심히 성실하게 답변을 했다.
그러면서 속으론 웃음이 나왔다. 야, 대단하다, 이런 질문도 받게 되는구나, 거 참 간만에 원초적이고 섹시한 질문이네! 했다.
한 편으론 이런 만남과 대화야말로 거의 다른 행성에 사는 생명체 간의 遭遇(조우), 또는 encounter 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지구인 말하길 “우리 지구에선 말이야, 해가 24시간마다 한 번 떠서 지곤 해.”
타행성 생명체 말하길, “아 거 참 신기하네! 우리는 해가 84000 시간에 한 번 뜨고 져, 야 너희들은 그게 번거롭진 않니? 떴다 하면 지고 졌다 하면 뜨고 야, 거 힘들겠다야.”
여기에 만일 또 다른 행성의 생명체가 끼어들어서 “야, 도대체 해란 게 뭐니? 우리는 늘 깜깜해, 혹시 해란 것이 아주 큰 별이라면 우리의 경우 너무 멀어서 아예 보이지도 않아. 희미해 늘.”
상식을 가진 사람과 아직은 비상식인 사람간의 대화
그랬다. 하지만 강원국 작가님의 질문이 실은 정상적 즉 노멀(normal)한 것이고 나 호호당의 생각이 실은 대단히 이례적이고 비상식적인 것이란 사실이다. 아직 우리 사회, 아니 적어도 문명화된 어떤 사회든 운명이란 것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원국 작가님은 로마 가톨릭 교황이었고 나는 그래도 지구가 돈다고 주절대는 갈릴레이 갈릴레오의 입장이란 생각도 들었다.
녹음이 끝나갈 무렵엔 또 이런 생각도 들었다. 1971년에 인연이 닿은 이래 호기심이 생겨서 어쩌다보니 지금까지 만 50년 이상 운명이란 것을 연구해오는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을 단 하나의 간단한 질문 즉 운명이란 건 과연 있는 건가요? 하는 물음에 간략하게 답을 해야 하니 내가 당황할 만도 하지, 안 그렇겠어? 하고 스스로에게 얘기해주고 있었다.
녹음을 마치고 내려와 출입증을 반납하고 우산을 들고 로비를 나섰다. 여전히 잔비가 내리고 있었다. 모퉁이를 돌아 건물로 들어갈 때 미리 보아두었던 흡연 장소에 가서 담배 한 대를 꺼내 물었다. 습기 있는 날의 담배는 유난히도 맛이 있다. 폐가 건조해지기 않기 때문이다.
잔비 맞으며 환하게 웃고 고개를 크게 끄덕이다.
한 모금 세게 빨아서 길게 내뱉었다. 흰 연기가 허공중으로 뻗어가다가 금방 바람에 쓸려 흩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환한 미소가 입가에 그려졌다. ‘그래, 저런 질문은 참 좋은 태클이야, 돌직구와도 같이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질문, 그러니 언제든 받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해, 나아가서 더 이해하기 편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해, 그래야 하는 거 아니겠어,’ 하고 다짐 아닌 다짐을 했다.
운이란 열정과 정확하게 같다는 사실, 운이란 것과 노력이란 것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란 사실, 운이 상승 중이란 말은 열정과 노력이 연이어 이어지고 있는 상태란 것, 그 반대도 마찬가지. 운과 노력은 사실 동의어란 사실, 너무나도 당연한 이 이치를 아직 이 세상은 모르고 있다.
각자의 재능은 부모와 조상으로부터 타고난다. 그게 命(명)이다. 유전적 소양이다. 그리고 운이란 열정이고 노력이다. 다만 거기에 강해지고 약해지는 사이클이 존재한다. (달리 말하면 사람은 늘 다른 사람이란 말과 같다.)
50년간의 흥미와 관심 그리고 연구를 통해 운명이란 것을 알고 있는 나 호호당으로선 너무 쉽고 당연하다, 하지만 세상은 그게 당연하지 않다. 인정! I agree!
좋은 시간을 마련해준 모든 이에게 감사 인사
하지만 분명한 한 가지, 살아온 과정과 배경이 다른 사람들 간에 만나서 활달하고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은 참으로 즐겁다는 사실이다. 이에 오늘도 정말 좋은 시간이었네! 하고 감사해했다.
누구에게? 우선은 자리를 만들어주신 PD 님 그리고 강원국 작가님, 책을 출간하자고 제의했고 실행에 옮긴 출판사 사장님, 그리고 아직 열정이란 것을 장착하고 살아가고 있는 내 스스로에게 대해 고마워했다.
(얼굴에 와 닿는 미세한 빗방울의 쾌감이 생각을 잠깐씩 끊어주었다.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우산을 펼치지 않았다.)
늘 느끼고 감탄하기로 내가 가진 것 그리고 독자님들 당신께서 가진 것은 결국 눈앞을 흘러가는 ‘지금’, 눈앞의 나우(now) 그게 전부가 아니겠는가. 눈앞의 시간, 순간이 삶의 전부란 것을 알면 그 순간을 마치 내 것인 양 가질 수 있고 오롯이 쓸 수 있다. 실은 그게 삶의 모든 것이라 여긴다.
대화를 나누면서 많은 것을 느꼈지만 이 정도로 글을 마무리하는 게 좋겠다.
방송국을 찾아가면서 잠시 생각하기로 만나게 될 분들은 필시 운명에 대해 전혀 모르는 분들이겠으나 아예 그런 것은 없다고 단정적이지 않은 것만 해도 고마운 일 아닌가 싶었다.
그러니 뭐라 얘기해야 하지? 싶었다. 그래서 약간의 신뢰와 신빙성을 사전에 만들어 둘 필요가 있으리라 싶어서 강원국 작가님을 만나 인사를 나눈 뒤 스마트폰으로 생년월일시를 물어보고 사주를 잠깐 살폈다.
인생의 중요 대목과 흐름, 향후의 것까지 포함해서 2-3분에 걸쳐 간략하게 짚어드렸더니 무척 신기해하는 눈빛이었다. (타고난 운과 명을 살피는 것은 10초면 충분하다. 그리고 왜 그 분이 과민성 대장 증세가 있는지도 금방 알 수 있었다.)
흥미로운 점 하나 알려드린다. 강원국 작가님은 한국 최고의 필력을 가진 김훈 작가와 운세 흐름이 같다는 사실. 두 분 다 글을 잘 쓰는 분들이다.
(방송은 KBS 1R 라디오를 통해 오는 21-22일 월요일과 화요일 오후 3시 30분부터 "강원국의 지금 이 사람" 코너에서 30분간 송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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