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었을 때 위안이 되어준 말

 

 

긴 인생 살다보면 힘든 때를 만나기 마련이고 때론 참으로 아슬아슬한 고비를 간신히 넘길 때도 있다. 나 호호당 역시 예외는 아니었는데 그랬을 때 크게 위안을 받고 도움이 되었던 말이 있다. 일본 전국 시대를 마무리하고 평화의 시대를 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遺訓(유훈)이다.

 

아시는 독자들도 없진 않겠으나 소개해본다.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아서 서두를 필요가 없다. 자유롭지 못함을 항상 곁에 있는 친구로 삼는다면 딱히 부족한 것도 없다. 마음에 욕심이 생기면 곤궁했을 때를 떠올려라. 인내는 무사장구 (無事長久)의 기틀이요 분노는 적이라고 생각하라. 이기는 것만 알고 지는 것을 모르면 그 피해는 너 자신에게 돌아갈 것이다. 너 자신을 탓할 뿐 남을 탓하지 말라. 모자란 것이 지나친 것보다 낫다.”

 

 

흥미로 읽었던 대하소설 "대망"

 

 

나 호호당의 대학 시절인 1970년대 당시 일본 작가가 쓴 대하소설, 무려 26권짜리 초장편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참으로 흥미롭게 읽었다. 친구들도 많이 읽었기에 교정의 잔디밭에서 열띤 토론을 하곤 했다. 당시 국내 번역본의 제목은 大望(대망)이었다. (일본 작가들의 필력은 정말이지 지금도 대단하다.)

 

대학시절의 대하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당시 접했던 무수히 많은 책들 중에 하나에 불과했으나 세월이 흘러 나 호호당의 나이 마흔 중반에 이르러 몰락의 고배를 마시게 되었을 때 어느 날 문득 도쿠가와의 저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다시 찾아서 음미했고 많이 위안을 받고 반성했다.

 

 

다시 생각나서 새겨보니 

 

 

인생길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는 저 말, 달리 표현하면 삶이 苟且(구차)하다는 말이다. 좀스럽게 이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광야를 질주하는 駿馬(준마)가 아니라 조랑말과도 같아서 달리지 말고 서두르지 말라고 한다. 참으로 스케일이나 멋과는 거리가 있다.

 

다음은 한술 더 뜬다. 자유롭지 못한 것이 기본이니 아예 동반자로 여기라고 한다. 다시 또 구차하고 누추하다. 그렇게 살면 크게 부족함을 느낄 것도 없을 것이라 충고하고 있다. 부족함이 日常(일상)이니.

 

노력해서 어느 정도 성취를 하면 사람은 으레 더 큰 것을 바라기 마련인데 그럴 때면 그 욕심에 몸을 맡겨 짓쳐 달리지만 말고 곤궁했을 때를 뒤돌아보면서 몸가짐을 정비하라고 말하고 있다.

 

더불어서 참는 것이야말로 오래오래 탈 없이 갈 수 있는 기틀이라는 말, 뭔가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믿었던 사람이나 그 무엇이 등을 돌리면 사람은 화가 나기 마련인데 오히려 그런 마음을 敵(적)으로 알라는 말에 이르러선 어이가 없다. 믿음을 주었건만 배신을 때린 놈이 나쁜 놈이 아니라 그런 일에 화를 내는 너의 마음이 바로 나쁜 놈인 줄 알라고 하니 거의 기절할 지경이다.

 

사람은 싸울 때마다 이기고 싶어 하고 破竹之勢(파죽지세)를 달려야만 속이 시원할 터인데 그런 거 좋아하고 익숙해지면 결국 너, 망한다! 한 방에 훅- 간다면서 경고하고 있다.

 

잘못된 일은 결국 다 너의 탓이지 남 탓 할 것 없다면서 김을 빼고 있다. 마지막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지나치지 말고 모자라게 살아, 짜식아! 하고 自慢(자만)을 경계하고 있다.

 

그야말로 레프트 잽, 잽 연타에 라이트 스트레이트, 이어서 레프트 훅, 라이트 어퍼컷이다. 결과는 기절이다.

인생 쉽게 살려고 하지 마라, 절대 그렇게는 안 될 끼야! 하는 말이다.

 

 

나 호호당과는 정반대의 도쿠가와 이에야스

 

 

나 호호당의 경우 머리도 좋고 재주도 있는 편이다. 그런데 성급하고 자만하며 특히 생각지 않게 서운하거나 분한 일을 당하면 속이 뒤집혀서 눈에 보이는 게 없는 성격이었다.

 

운세가 바닥에 이르렀어도 그랬었다. 그런데 그 무렵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말은 나 호호당의 마음을 참으로 많이 진정시켜주었으니 그 고마움 이루 표현하기가 어렵다. 물론 저 말을 십분 받아들이진 못했으나 지난 일들을 진지하게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 다시 음미해보니 절반 정도는 받아들인 것 같다. 하지만 성내는 마음 자체를 敵(적)으로 알라는 말은 여전히 쉽지가 않다. 코끝을 손가락으로 만져가면서 음- 참, 거 참, 어렵구나, 한다.

 

어쩌면 저리도 냉정하고 쿨(cool)할 수 있을까? 도쿠가와 이에야스 선생은.

 

분명 저런 마음으로 평생을 살았을 것이다. 공연히 멋을 부리고자 저런 말을 하진 않았을 것으로 확신이 가니 말이다.

사주를 봐도 그렇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삶과 운명

 

 

양력으로 1543년 2월 10일 아침 寅(인)시 생으로 나온다. 사주를 뽑아보면 癸卯(계묘)년 甲寅(갑인)월 壬寅(임인)일 壬寅(임인)시가 된다.

 

2월 10일이면 여전히 겨울이나 마찬가지인데 그 때 태어난 물, 즉 壬水(임수)이니 그 성정이 얼마나 차갑고 냉철하겠는가! 아울러 甲寅(갑인)월이니 서두르지 않고 남이 뭐라고 하건 말건 자신의 목표만을 바라보면서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앞의 저 말이 빈말이 아닌 것이다.

 

그에 비하면 나 호호당은 7월 25일, 한창 뜨거운 大暑(대서) 다음 날 새벽에 태어난 불, 즉 丁火(정화)이니 본질에 있어 엄청난 火力(화력)과 속도를 지닌 熱血漢(열혈한), 뜨거운 피를 가진 사내이다. (새침하다는 평을 많이 들었지만 그건 그야말로 거죽만 그럴 뿐이다.) 그러니 도쿠가와 선생의 저 말이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일을 해가고 인생을 살아가기엔 더 나을 거란 생각이 든다.

 

1493년에서 무려 백년 이상 이어진 일본 내부의 처절한 투쟁, 즉 센코쿠 지다이, 한자로 戰國時代(전국시대)를 마무리하고 에도 막부를 창설함으로써 그 이후 미국의 페리 제독에 의해 開港(개항)을 할 때까지 무려 260년간 평화의 시대를 만들어낸 영웅으로서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이다.

 

잠시 이 양반의 운세 순환을 알아본다. 입추는 壬寅(임인)이고 입춘 바닥은 壬申(임신)년이 된다. 그러니 태어난 1543년 2월은 立秋(입추) 다음 해였다. 시골 호족 武將(무장)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평생 戰場(전장)을 돌아다녔다.

 

신중하고 용감한 그는 나름 꾸준히 세력을 확장해갔지만 마침내 나이 30세, 입춘 바닥의 해인 1573년 1월, 壬申(임신)년에 이르러 당시의 막강한 세력이던 ‘다케다 신겐’에게 무참한 패배를 당했다.

 

사실상 끝장이 났던 도쿠가와였는데 상대방인 다케다 신겐이 불과 넉 달 뒤 陣中(진중)에서 급사하면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타고난 팔자를 넘어선 天運(천운)이 따랐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고 어려선 볼모로 잡혀 있었고 장성해서는 평생 누군가의 부하이거나 신하였던 그에게 운이 따르기 시작한 것은 바로 小滿(소만), 즉 입춘 바닥으로부터 18년이 흐른 1590년이었다.

 

천하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그를 견제한답시고 당시로선 중앙이던 교토로부터 머나 먼 변방인 간토 지역(오늘날의 도쿄 일대)으로 쫓아내었는데 그게 그에겐 엄청난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2년 뒤 1592년 壬辰(임진)년에 느닷없이 조선을 침공했는데 그 역시 행운이었다. 임진년은 도쿠가와에게 있어 입춘으로부터 20년이 흐른 망종의 때였으니 생각하기로 바로 그 무렵부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雄志(웅지)를 품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잘 하면 내가 천하를 차지할 수 있지 않겠어! 하고 말이다.

 

임진왜란을 통해 도요토미는 자신의 병력을 다 소실했고 반면 도쿠가와는 거의 피해가 없이 온전하게 병력을 지킬 수 있었다. 그 바람에 도요토미는 도쿠가와를 더더욱 함부로 대할 수가 없게 되었다.

 

하지만 별명이 너구리였던 도쿠가와는 자신의 속내를 전혀 드러내지 않고 더욱 은인자중하면서 세력을 키웠다. 도요토미가 죽고 임진년에 시작된 7년 전쟁이 끝나자 도쿠가와는 사실상 가장 막강한 세력이 되어 있었다.

 

이에 1600년 庚子(경자)년, 도요토미의 부하가 이끄는 세력과 거하게 한 판을 떠서 일거에 천하를 거머쥐게 되었으니 이 때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운은 그야말로 運氣(운기)가 하늘을 찌르던 때인 大暑(대서)의 때였다.

 

그리고 1603년 입추 다음 해에 천황으로부터 쇼군으로 임명됨으로써 大權(대권)을 거머쥐었으며 그 이후 도요토미의 아들과 가신 세력들을 정벌한 뒤 자신의 본거지인 에도 지방에 幕府(막부), 즉 사실상의 政府(정부)를 설치했으니 그게 바로 오늘날의 도쿄가 된다.

 

일찌감치 아들에게 쇼군 자리를 물려줌으로써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운세가 立冬(입동) 직전인 1616년, 만 72세 5개월의 삶을 一期(일기)로 해서 세상을 떠났으니 그로서 험악한 戰亂(전란)의 시대를 마침내 끝내고 길고 긴 평화의 시대를 열었다.

 

삶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으니 서두르지 말라는 그의 말은 문자 그대로 그의 일생이었다. 큰 꿈을 품었다면 화내지 말고 성내지 말고 능력을 자랑하지도 말고 부족하다고 불평하지도 말고 묵묵히 길을 가라는 게 그가 남긴 말이다.

 

 

세월은 변했으나 여전히 새길 만 얘기들

 

 

오늘날은 分秒(분초)를 다투는 세상이다. 하지만 본질은 여전히 변함이 없을 것이니 한 번 잘 음미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최근엔 보다 깊은 연구에 몰두하느라 글을 올리지 못했다. 이제 우수가 눈앞이니 동면을 끝내고 동굴에서 다시 바깥으로 나와야 하겠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