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핍이 상실은 아닌 것 같아서 

 

 

2000년대의 10년 동안은 나 호호당에게 그야말로 궁핍의 시대였다. 모든 길이 가로막혔으니 窮(궁)했고 모든 것이 모자랐으니 乏(핍)했다. 중년의 가장이 그랬으니 가족들의 처지야 말할 것도 없다. (덧붙여 말하면 나 호호당은 1997년이 60년 순환에 있어 입춘 바닥이었다.)

 

궁핍했으니 당연히 喪失(상실)의 때였다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잃을 喪(상), 잃을 失(실)을 합친 단어가 상실인데 그 시절에 대한 나 호호당의 기억 또는 추억은 희한하게도 그렇지가 않다. 나름 풍요로웠던 것도 많았기에.

 

따져보면 정말로 많은 것을 잃었던 것이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90년대의 나 호호당은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아파트가 2채, 길동에 한 채가 있었는데 그것만 해도 오늘날 시세로 치면 근 80억 원은 될 것인데 그것을 2000년대 초반에 이르러 다 잃었으니 분명 상실이 컸다. 어디 그 뿐인가, 주식으로도 아파트 몇 채 금액을 벌었었다. 90년대의 나 호호당은 중산층이 아니라 ‘중상층’이었다.

 

처갓집도 재산이 최소한 수천억 대였기에 아내가 받게 될 상속분만 해도 최소한 몇 백억 대는 되리라 추산하고 있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2000년대 중반이 되자 나 자신은 물론이고 그간 은근히 기대했던 처갓집도 함께 몰락해서 기댈 구석이 사라져버렸다. 급여 빵빵하던 직장도 제 발로 나왔으니 탓할 데도 없었다. 그야말로 몰락했었다.

 

건강도 아주 나빠져서 특히 천식이 심해져서 자리에 편히 누울 수도 없었다. 생전 처음으로 아, 이제 오래 살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망했건만 나름 풍요로웠으니 거 참! 

 

 

참으로 많은 것을 잃었던 것이 분명하고도 확실한데 그 시절을 되돌아보면 어렵긴 했으나 한 편으론 묘하게 풍요로웠다는 생각이 자꾸만 드니 이거야말로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어떤 이유에서 나름의 풍요를 느꼈던 것일까? 하면 그 이유는 확실하다. 평생 책 읽기를 좋아했지만 그 시절에 읽은 책, 물론 그 중에는 예전에 읽었던 책도 많지만, 아무튼 그 시절엔 책을 읽노라면 그게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먹듯 다 흡수해버렸다. (역시 공부는 춥고 빈한한 환경에서 잘 되는 법인가 보다.)

 

돈은 없지만 시간은 많아서 산과 들 바다를 찾아다닐 수 있었고 山寺(산사)를 찾아서 하룻밤 묵고 올 때도 많았는데 그 또한 이상하게도 산과 절은 나를 넉넉히 감싸 안아주었다. 사람 없는 조용한 법당에 홀로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노라면 제단 위의 부처님과 두 분의 보살님들께서 은근한 미소를 보내주었다. “다 괜찮아, 다 그럴 때가 있는 거야, 그래 쉬었다 가!” 하고 속삭여주는 것 같았다.

 

때론 부처님 전에 “세상 못 살겠어요” 하고 투정을 부리면 그냥 “짜아식, 아직 뭘 모르는군!”, 하는 표정으로 무심한 듯 은근하셨다.

 

그 무렵 나는 언어에 대한 연구와 지금의 자연순환운명학에 대한 연구에 몰두해있었다. 물론 수시로 드로잉을 하고 또 물감을 가지고 놀았다.

 

건강이 나빴던 탓에 우연히 좋은 한의 선생님을 만나서 치료도 받았고 나중엔 아예 침놓는 법을 배웠고 더불어서 한의학 서적들도 많이 읽었다.

 

생계는 겨우겨우 이어갔지만 2000년대의 10년 동안 나 호호당은 참으로 얻은 것과 즐긴 것이 많았다. 돈은 없었으나 정신은 그간의 세월을 통틀어 가장 생생하고 활발한 시절이었음이 확실하다. 그러니 궁핍의 때가 자동적으로 상실의 시대로 연결되진 않는다는 얘기를 지금 한다.

 

 

궁핍의 때가 한 편으론 전성기였다는 사실

 

 

잃은 것도 많았지만 채운 것도 많았으니 나 호호당에게 있어 2000년대의 10년은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재물은 궁핍과 상실, 정신은 그야말로 최고의 황금기이자 전성시절이었다.

 

무엇보다도 그 시절을 통해 나 호호당은 해가 뜨고 지는 이 세상이 엄청나게 아름답다는 것을 戰慄(전율)할 정도로 깨달았다. 흰 구름 먹구름 생겨났다가 어느덧 바람이 양떼 몰듯이 데려가는 푸른 하늘이야말로 지금까지도 내가 벅차게 살아갈 수 있는 감동의 원천이자 밑천이다. (나 호호당의 수채화 중에는 푸른 하늘을 주제로 하는 것이 많다.)

 

그러니 그 무렵의 나 호호당은 도대체 잃었던 것일까 얻었던 것일까? 도무지 得失(득실)을 따질 수가 없다. 시간 날 때 생각 날 때 그 득실의 항목들을 따져보고 적어도 보지만 아직도 명료하게 계산서가 나오지 않는다. 밸런스 시트가 나오질 않으니 손익계산서는 당연히 뽑지 못한다. 그런데 심정적으론 그 시절에 나는 남는 장사를 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난처한 호호당의 심정

 

 

그러니 이 대목에서 난감해진다. 난처해진다.

 

나 호호당은 사람의 운명을 얘기해주는 것을 업으로 하고 있어서 그렇다.

 

1955년생인 나 호호당의 경우 42세가 되던 1997년부터 15년간 즉 2012년 57세가 되기까지의 세월은 60년 순환에 있어 봄의 계절이었다. 글을 통해서 봄은 참으로 힘든 기간이란 이야기를 자주 한다.

 

그런 사람이 내 스스로 겪은 봄의 세월은 꼭 상실의 계절이 아니었다고 느끼고 있으니 그게 난처하다는 얘기이다.

 

돈으로만 치면 그야말로 ‘폭망’의 시절이었다. 그런데 정신의 관점에서 보면 大得(대득) 또는 대박의 시절이었으니 이를 어쩐다!

 

 

삶은 어차피 남는 장사 같아서

 

 

솔직한 심정으로 말하면 1997년부터 2012년에 이르는 이른바 봄의 시절 동안 나 호호당은 인생 본전은 다 뽑았고 그 뒤론 지속적으로 남기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들고 있으니 모순 같기도 하다.

 

내게서 자연순환운명학을 배운 이들이 이젠 정말 많다. 그 중에는 폭망한 사람들도 상당히 된다. 배운 뒤로도 잊지 않고 가끔 찾아온다. 힘들 땐 생각이 나는가 보다. 아무튼 반갑다. 어떤 이는 오래 전의 수강료를 아직도 치르지 못하고 있어 죄송하다는 표정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그럴수록 더욱 반갑게 맞이해준다, 잊지 않고 찾아와주니 진심으로 고마운 일.

 

그럴 때 나는 날을 세우고 그 사람의 얼굴과 몸짓을 바라본다. 본다기보다는 온 몸으로 감지한다. 이 사람 이제 살아나고 있구나, 봄의 세월 궁핍의 세월, 한 10년을 지내고 있으니 수척하고 빈한해 보이지만 이제 군더더기란 모두 사라졌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이 가고 나면 아, 저 모습 아름답네! 하면서 혼자 탄식을 하기도 한다.

 

상담하다 보면 운세가 한창 내리막을 타고 있는 사람의 경우 스스로도 장차 어려워질 것 같은 예감에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는 표정을 짓기도 한다. 잠시 생각한다, 당신은 어려워질 거라고 말해주어야 하는지 아니면 달리 뭐라 얘기해야 하는지 망설여진다.

 

정작 운세가 바닥을 치고 그로서 많은 것을 잃고 나면 그것으로 끝이겠구나 하고 근심하고 걱정하는 것은 누구나의 심정이겠으나 정작 그렇게 되면 생각보다 꼭 나쁜 것만은 아니란 것을 납득시키기란 정말 어렵다.

 

60년 순환에 있어 운명의 봄 15년은 기존의 많은 것을 잃고 버리고 폐기하가는 때이자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때란 사실을 기존의 것이 삶의 전부인 줄로만 여기고 있는 사람에게 어떻게 무슨 수로 설명하고 납득시킬 수 있으랴!

 

함부로 그렇다고 말하긴 그렇지만 우리나라 정도의 잘 사는 나라, 적어도 배를 주리지 않고 찬 곳에서 자지 않는 정도의 나라에서라면 삶이란 괜찮은 것이라 여긴다.

 

 

우리의 삶은 가끔 리셋이 필요해! 

 

 

그를 떠나서 우리들은 삶을 너무 무서워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얼마 전 글에서 인간은 불만의 동물이라 말했는데 우리가 행복이라고 믿고 있는 상태 즉 삶을 ‘만족의 연속’으로만 채워가려면 그게 너무나도 힘들다.

 

그러니 이따금씩 그야말로 리셋(Reset)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우고 새로 시작, 그런데 그러기 위해선 기존에 가진 것들을 긴 인생 살아가면서 한 번 정도는 다 버리고 치우는 것이 실은 더 좋은 것 같다.

 

다 버리고 새롭게 만들어서 채워나가다 보면 성취감은 물론이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삶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는 점이 있다. 비우면 또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나면 현재 중하다고 믿고 있는 것들은 그다지 필요하지가 않고 정말로 우리가 애지중지할 것은 따로 있다는 얘기이다.

 

그저께가 立春(입춘)이었다. 한 해가 새롭게 시작되었다. 작년의 것들 중에 많은 것들이 이미 사라졌다. 그러니 올 한 해를 즐겁게 살아가려면 우리들도 작년의 묵은 것 중에서 버릴 것은 없는지 찾아서 청소하는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겠다.

 

60년의 운명 순환에 있어 입춘은 바닥이자 리셋이며 새로운 시작점이다. 그처럼 또 새 해가 시작하고 있으니 리셋을 하고 나서 힘차게 살아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