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절은 없고 좋았던 시절만 있는 것 같다.

 

 

웰빙이란 말이 유행하던 시절

 

 

2000년대 중반 무렵 ‘웰빙’이란 말이 유행하던 시절, 그냥 막 사는 게 아니라 좀 더 질, 즉 퀄리티 있는 삶으로 가보자던 그 시절이 돌이켜보면 우리 경제의 황금기였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었지만 마침내 극복해냈고 그 이후 가계 대출을 통한 통화량 증가는 아파트와 증시를 상승시켜 자산효과(Wealth effect)를 창출했다. 부자가 된 느낌에 젖어 소비가 늘었고 그에 따라 다시 투자가 늘어나면서 나름 선순환을 보였다.

 

어지간하면 무거운 명품 가죽 가방 하나 정도는 가지게 되었고 해외여행도 고급화되었으며 박세리 붐 이후 골프는 대중화되어갔다. 자녀들에 대한 스펙쌓기, 어학연수 등의 교육 투자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낡은 주택단지는 재개발, 기존의 복도식 아파트는 재건축을 통해 타워형 럭셔리 아파트로 변해갔다.

 

당시 크게 흥행을 한 영화제목으로서 2005년의 “달콤한 인생”, 2007년의 “우아한 세계”가 있었는데 영화 내용을 떠나서 당시 보통의 중산층은 그런 삶을 꿈 꿀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양극화의 그늘이 짙어지고 있었지만 말이다.)

 

 

환율이 우리 경제 사정을 말해준다

 

 

우리 경제가 어떤가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단 하나의 지표를 꼽는다면 그건 원달러 환율이다.

 

환율이 1200원 아래면 경제가 그래도 괜찮은 것이고 그 이상이면 어려워지는 것이며 1350원 이상이 되면 그야말로 죽을 맛이 된다. (현재 1390원 대이니 진짜 어렵다.)

 

환율이 내려가면 생필품의 가격이 내려가고 그로 인해 일반 가계의 가처분 소득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 반대로 고환율은 일부 부유층을 제외한 전 국민을 가난하게 만든다.

 

이에 그간 환율의 변동 추이를 돌이켜보면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2-2007년 사이 저환율이었으며 2008년 미국 금융위기로 순간적으로 환율이 급등했다가 2009년 하반기부터 급락해서 그런대로 대략 12년 간 1200원 밑에서 이어오다가 2022년 미국이 급격하게 금리를 올리면서부터 다시 환율이 치솟은 상태이다.

 

 

2009년 이후 풍요의 시대는 사라졌다

 

 

하지만 웰빙 즉 풍요의 분위기는 그렇게 오래 가지 못했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분위기가 나빠진 것이 컸다.

미국 금융위기는 당시 우리나라의 중국 수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빠른 시일 안에 극복되었다. 하지만 기업들 특히 대기업들은 그 무렵부터 긴장의 끈을 풀지 않고 외형성장보다는 수익성을 더 중시하기 시작했다. 이에 상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공채 중단 등 많은 면에서 고용시장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러자 당장 급해진 것은 사회에 진출하려는 젊은이들이었다.

 

이에 청년실업이 늘어나더니 2011년 3포세대란 말이 등장했고 2014년부터 청년취업시장이 크게 위축되면서 2015년부터 N포세대란 말이 일반화되었다.

 

젊은 층은 현실을 자각하고 직업적 안정성을 중시하게 되면서 한때 공무원 붐이 일었다. (이에 노량진 학원들이 떼돈을 벌었다.) 하지만 그 또한 잠시였다. 공무원 사회의 경직성과 민원처리, 저임금 등으로 공무원 붐은 급격히 식어버렸다. 9급 공채시험 경쟁률이 인기가 뜨겁던 2011년에 비해 1/4로 줄었다.

 

그러자 온라인 쇼핑몰 창업 붐이 일었고 또 유튜버 붐이 일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그게 절대 쉽지 않다. 그 또한 “레드 오션”이다.

 

 

대졸 백수가 최고치라고 하니 

 

 

오늘 아침 뉴스에 보니 대졸 학력 이상의 비경제활동인구가 405만명을 넘어 1999년 통계집계 이후 상반기 기준 역대 최고란 내용이 있다.

 

역대 최고라 하니 걱정이지만 내용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구직에 나서는 35세 미만의 청년들 숫자 자체가 줄고 있어서 예전 같으면 취업 에 나름 여유가 있어야 하건만 일자리 공급 자체가 더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 당시 청년창업을 강조하면서 한때 바람을 잡았던 것이 결국 별 성과를 보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기성층 또한 초조 불안

 

 

그런가 하면 40-50대의 기성층은 어떨까? 하면 그 또한 당연한 얘기지만 그리 좋지가 않다. 몇 년 전부터 이른바 미국 증시에 투자하는 서학개미들 중에는 물론 20-30대도 있지만 언제 직장을 그만 두어야 할 지 모르는 불안감과 초조감을 가진 기성층의 비중도 상당하다.

 

2019년 영화 “기생충”이 대박을 쳤고 2021년에는 “오징어게임”이 또 그랬다.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액면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말이다. 현 시국과 상황이 어렵다, 죽겠다 하지만 이 또한 나중에 더 어려워지면 지금의 세월 또한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어, 하고 그리워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런 약간 불길한 예감이 든다.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그런데 나 호호당이 그런 거 다 떠나서 가장 두려워하는 바는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결혼하지 않거나 짝이 없이 혼자 사는 젊은 세대들이 나중에 겪게 될 엄청난 외로움의 문제이다.

 

건강할 땐 괜찮다, 돈벌이가 되면 또한 괜찮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능력 떨어지고 병들었을 때 누가 그들을 붙들어줄 수 있을까? 누군가 곁에 있어서 병시중을 들어주는 것과 혼자 아무 소리도 못하고 끙끙 아픈 것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그런데 그런 힘든 경우가 앞으로 10년 후면 만연할 것 같으니 정말 걱정이 태산이다.

 

 

대한민국을 병문안해야 할 것 같아서 

 

 

이제 대한민국이 그다지 건강하지가 않다. 글을 통해서라도 아픔을 쓰다듬고 위로해주는 얘기를 많이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물론 운명에 관한 얘기도 여전히 이어가겠지만 말이다.

 

학전의 김민기가 어젯밤 죽었다. 한 시대가 훅-하고 지나간다. 그와 함께 한 세월은 분명 좋았던 시절이었다. 哀悼(애도)의 마음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