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콘이 가면 그 시대도 함께 간다

 

 

대학로의 상징이던 김민기가 세상을 떠났다. 그 며칠 전에는 트로트의 현철이 갔고 부채도사 장두석도 떠났다. 그런가 하면 1960년대 당시 국내에 홍콩 무협영화 붐을 일으킨 여배우 정페이페이도 며칠 전 떠났다.

 

오전 필라테스 시간, 1대1 지도해주는 젊은 여성 원장님에게 “김민기가 갔어요,” 라고 했더니 누군지 모르는 눈치였다. 그래서 “잘 모르시는구나, 김민기” 했더니 약간 계면쩍은 웃음과 함께 “처음 들었어요” 하는 것이었다. 숙녀의 나이를 물어보긴 그렇고 해서 그냥 넘어갔다.

 

그렇다, 김민기나 현철, 장두석, 정페이페이, 최근 우리 젊은 세대들에겐 모두 낯선 이름일 수 있겠다. 저들 모두 올드 세대, 베이비붐 세대와 86세대의 아이콘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인구의 과반을 차지하는 올드 세대가 세상을 떠나고 나면 저들 또한 그저 역사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올드 아이콘의 消失(소실).

 

 

아이콘들의 운명 순환

 

 

저들 중에서 김민기와 현철의 운명순환을 槪括(개괄)해본다.

 

먼저 김민기. 양력 1951년 3월 31일이다. 辛卯(신묘)년 辛卯(신묘)월 庚午(경오)일이다. 그간의 프로필을 보면 2010 庚寅(경인)년이 입춘 바닥이었다.

 

위암으로 사망했는데 추정컨대 위암이 생긴 것은 6년 전인 2018 戊戌(무술)년이 아니었나 싶다. 지난 6월 庚午(경오)월경에는 사실상 가망이 없어졌고 그 후 한 달 여를 버티다가 7월 21일 丙戌(병술)일, 일진 상으로 60일 사이클의 바닥일인 목요일 庚寅(경인)일 되기 나흘 전에 세상을 떠났다.

 

1980 庚申(경신)년이 기의 절정인 立秋(입추)였다. 이에 그의 전성기는 1991년 학전 소극장을 열었을 때부터 대략 10년,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가지고 해외 순회공연을 했던 2001년까지의 세월이었다.

 

그리고 김민기의 운세가 바닥에 도달한 2010년 이후 공연시장의 중심이 대극장 뮤지컬로 바뀌면서 대학로 소극장은 위축되었고 적자 상태로 변해갔다.

 

그가 우리 문화 예술은 물론이고 사회 전체적으로 끼친 엄청난 영향력에 대해선 굳이 얘기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나 호호당은 1971년 고등학교 1학년 시절 김민기의 아침이슬이 담긴 LP 판을 우연히 샀고 그 이후 줄곧 팬이었다.)

 

다음으로 현철. 1942년 음력 6월 17일, 壬午(임오)년 丁未(정미)월 癸未(계미)일이다.

 

운세순환을 보면 1973 癸丑(계축)년이 立秋(입추)였고 2003 癸未(계미)년이 입춘 바닥이었다.

 

연예인이나 가수의 경우 워낙 경쟁이 치열한 탓에 이른바 빛을 보는 시기가 훨씬 늦다. 탁월한 천재라거나 시대의 흐름이 받쳐주지 않는 한 입추를 지나고 다시 7-10년 정도는 되어야 빛을 보고 각광을 받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다.

 

현철의 경우도 마찬가지, 1966년에 데뷔하였으나 그냥 반응이 없었고 입추인 1973년으로부터 무려 10년 뒤인 1983년, 그러니까 한로의 운에 “사랑은 나비인가봐”를 히트시키면서 전성기를 열었다. 데뷔로부터 17년이 지난 뒤의 일이었으니 그간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나.

 

(참고로 얘기하면 최근 인기 절정을 달리는 가수 임영웅도 입추는 2007년인데 2017년, 무려 10년이 지난 한로의 운에 미스터 트롯을 통해 인정을 받고 대성공을 했다. 이처럼 연예인의 경우 빛을 보는 시기가 늦을 때가 많다.)

 

현철의 경우 마지막 피날레는 입추로부터 15년 뒤, 1998년 立冬(입동)의 운에 가서 “사랑의 이름표”란 곡을 부르면서였다. 그 해 여론 설문조사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가수’ 부분 선호도 1위를 기록하면서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그 이후 여전히 인기 많은 가수였으나 2003년 입춘 바닥을 지나 2007년 공연 중에 크게 부상을 당했고 그 이후로 뇌경색과 경추 디스크로 건강 면에서 고생의 연속이었다. 올 해 세상을 떠났으니 그간 무려 17년간 힘든 나날을 보낸 것이다. 무명가수의 고초가 17년, 크게 부상당한 후 몸 고생 17년의 현철이다. 적지 않은 세월 동안 사람들의 애환을 그 특유의 목소리로 위로해주면서 절정의 세월을 보낸 현철이었건만 알고 보면 저리도 딱하다.

 

장두석씨는 2006 丙戌(병술)년이 입춘 바닥이었다. 그가 부채도사란 개그 코너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준 것은 1991년 무렵이었으니 운세가 마지막 빛을 발하던 立冬(입동)의 시점이었다. 그 이후 인기가 식어들고 또 당뇨가 심해지면서 명상과 같은 정신수양 쪽에 몰두하기도 했지만 끝내 당뇨합병증을 넘어서지 못했다. 66년을 세상에 머물다 갔으니 조금은 짧은 삶이었다.

 

홍콩의 액션 여배우 정페이페이,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전혀 알지 못할 것이다. 굳이 소개하자면 1968년 수입되어 개봉된 “심야의 결투”에서 ‘금제비’란 이름의 여자협객으로 등장했다. 사실 영화의 원제목이 金燕子(금연자) 즉 금제비였다. 옛 얘기지만 나 호호당과 같은 베이비붐 세대에겐 굉장한 인기스타였는데 그런 그녀가 수년 전부터 파킨슨병으로 해서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우리 모두 연결되어 있는 하나이기에 

 

 

이쯤에서 오늘의 얘기를 정리해보자.

 

우리는 각자 개체이고 개인인 것이 분명하지만 달리 보면 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를 연결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나 개인은 ‘나’이기도 하지만 ‘우리’이기도 하다는 얘기이다.

 

그렇기에 저렇게 떠나가고 있는 올드 세대의 아이콘들은 올드 세대가 죽어가고 소실되는 하나의 상징이라 하겠다.

 

우리 각자는 그저 각자이고 사실 아무 것도 아니다. 하지만 주변의 누군가에 있어서는 엄청나게 소중하고 사랑스런 존재가 된다. 사실 별 것도 아닌 우리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하고 사랑스럽고 그리운 존재가 된다는 거, 이 대목이야말로 삶과 존재의 엄청난 신비라는 생각을 늘 한다.

 

 

잘 가시오, 당신들을 전송합니다.

 

 

김민기, 현철, 장두석, 정페이페이, 잘 가시오, 그리울 거요.

 

오늘 글은 죽음을 다루고 있는 터라, 특히 나 호호당의 마음이 무거운 터라 쓰면서도 망설였다. 올리지 말까? 하는 고민. 하지만 저들을 기꺼이 전송해야지 하는 생각에 힘을 내어 올려본다. 그런데 묘하게도 오늘 7월 25일은 나 호호당의 생일이다.

 

그런대로 몸이 좋아져서 8월에는 사무실을 열고 상담도 재개할 예정이다. 강좌도 시작할 것이고. 곧 공지 올릴 것이다.

'자연순환운명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증시 긴급 알림  (0) 2024.08.05
덧없는 삶이긴 해도  (0) 2024.07.28
좋았던 시절  (0) 2024.07.22
저출산,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가?  (0) 2024.07.19
2032년, 대한민국의 개혁이 시작되는 때  (0) 2024.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