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다구니 투쟁으로서의 30년 전쟁
아주 오래 전 유럽에서의 일이다. 가톨릭교회를 지지하는 나라들과 개신교를 지지하는 나라들 사이에서 장장 30년간에 걸쳐 참혹한 전쟁이 있었다. 1618년에 시작해서 1648년에 끝났기에 흔히 30년 전쟁이라 부르고 있다.
말로는 종교 전쟁이라 하지만 사실 그렇지만도 않았다. 판이 커지자 거의 모든 유럽의 나라들이 개입되면서 밑도 끝도 없이 이어진 악다구니 투쟁이었다.
같은 개신교 국가이던 덴마크와 스웨덴이 반대 진영에 서서 싸웠으며 프랑스 역시 가톨릭 국가였음에도 같은 가톨릭 제국인 신성로마제국과 전쟁을 했다. 종교적 신념보다 서로의 이익이 중요했던 것이다. 한 마디로 ‘아사리판’ 이었다.
지역 영주나 제후들은 가톨릭교회가 가진 방대한 재산을 빼앗기 위해 졸지에 개신교로 전향하기도 했으며 헝가리 왕은 폴란드 땅을 차지하기 위해 당시로선 악마로 치부하던 이슬람의 오스만 제국을 전쟁에 끌어들이기도 했다.
末世(말세)의 전쟁이었으나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 그 전쟁은 종말 전쟁이었다. 세상의 진정한 종말이 다가왔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기존의 모든 도덕과 가치관이 무너졌으며 중세 유럽을 이끌어오던 하느님의 율법과 예수의 가르침도 덩달아 멸시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당시 사람들에겐 실로 끔찍한 사건이었다.
책방에 가면 30년 전쟁을 소개하는 책이 제법 된다. 내 경우 영국 사학자 윌슨이 쓴 “유럽의 비극, 30년 전쟁사”를 아마존을 통해 구입해서 읽었고 번역판으로 베로니카 웨지우드의 “30년 전쟁”을 읽었으며 기타 여러 권의 책을 예전에 읽은 바 있다.
그런데 워낙 일의 경위와 사정이 복잡다단해서 읽다가 포기할 정도였다. 그저 내가 받은 인상이라곤 인간의 탐욕이 실로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누군가 30년 전쟁에 대해 물어올 것 같으면 그냥 온 유럽이 외부의 오스만 제국까지 끌어들여서 싸웠던 이판사판 개판 전쟁이었으니 더 이상 알 것 없다는 식으로 얘기해준다. 묻지마, 복잡해!
전쟁 결과 누군가에겐 구역질나는 합의가 이루어졌으니
어쨌거나 기진맥진해서 끝이 날 수밖에 없었던 전쟁이었다. 절대 승자도 절대 패자도 없었지만 나름 승자와 패자가 나뉘었고 이에 종전협상을 시작했다. 참전 당사국 대표만도 무려 109명이었다. 진통 끝에 조약을 체결했다. 오늘날 독일 서북쪽의 지역인 베스트팔렌의 오스나브뤼크와 뮌스터에서 조약문이 작성 체결되었기에 훗날 역사가들은 베스트팔렌 조약이라 부른다.
조약문은 프랑스어로 작성이 되었는데 그 바람에 프랑스어는 국제외교의 공용어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오늘날 영어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어 프랑스 사람들의 자존심을 긁어놓고 있다.)
길고 긴 조약문이었다. 무려 88개의 조문과 부속 문항들로 이루어져 있다. 원하시면 구글을 통해 검색해볼 수 있다. 구글 만세!
조약을 통해 수많은 영토가 재조정되었고 엄청난 이권들이 거래를 통해 오갔는데 그 중에 중요한 것은 각 나라마다 그 지배자의 선택에 따라 가톨릭인지 개신교인지를 결정할 자유를 갖는다는 점이었다.
오늘날 이른바 현대 세속국가에서 당연히 인정되는 종교의 자유는 이로부터 시작되었던 셈이다. 물론 당시에는 각 나라의 군주나 지배자가 종교를 결정하는 것이지 일반 백성들에게 그런 권리와 자유가 없었다.
그 바람에 일반 시민이나 백성들은 종교 때문에 다른 나라로 망명을 가거나 탈출하는 일이 러시를 이룰 정도였고 특히 고급 기술자들의 이주나 이민으로 인해 유럽의 산업지형이 바뀔 정도였다.
민주화는 당하는 것이지 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최근 우리 젊은이들은 민주화 되었다, 민주화 당했다는 재미난 표현을 쓰곤 하는데 그 말은 참으로 정곡을 찌르고 있다. 민주화란 것은 어쩔 수 없이 당하는 것이지 자발적으로 되지 않는다. 유럽 역시 그 이후 민권이란 것이 생겨났으니 그 역시 민주화당한 셈이다.
아무튼 참혹한 30년 전쟁의 결과 조약이 체결되었고 각 나라의 종교는 각국 지배자의 선택에 따라 정해지게 되었는데 당시 종교 지도자들 특히 로마 가톨릭 교회로선 도저히 눈 뜨고 봐 줄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절대에서 상대로의 이행
1648년에 체결된 베스트팔렌 조약은 그 이후 세월이 갈수록 심대하고도 폭 넓은 영향력을 미쳤는데 그 중 가장 큰 것으로 이 세상에 이른바 절대, 영어로 absolute 란 것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들이 아직도 흔히 사용하는 단어인 진실이라든가 진리와 같은 것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선 그 바람에 ‘실체적 진실’이란 희한한 용어를 쓰고 있다. 들을 때마다 웃게 된다.)
眞實(진실) 혹은 眞理(진리), 영어로는 true 또는 truth 가 된다. 과거에 이런 단어는 종교적 절대권위의 차원에서 사용되던 말이다. 그런데 개신교적 가르침도 옳고 가톨릭의 그것도 옳다면 둘은 서로 상대적인 위치로 격하될 수밖에 없다.
엄청난 희생과 비용을 치르게 했던 유럽의 30년 전쟁이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이제 절대적인 것이 사라지고 상대적인 시대로 변했다는 점이었다.
절대적 진리가 인정받지 못 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은 이제 소위 正答(정답)도 없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오늘날 정답이란 시험을 칠 때 출제자가 정해놓은 답이 정답인 것이지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다.
삶에 정답이 없다고 한다면 각자는 각자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전까지는 교회의 가르침이 정답이었으니 실천하긴 어려워도 그냥 믿으면서 곧이곧대로 살기만 하면 모두 죽어서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젠 모든 것이 애매해져서 잿빛으로 변해가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된 1648년이었던 것이다. 기존의 전통적 사고방식으로 본다면 그야말로 말세가 왔고 불신의 지옥문이 열린 셈이었다.
민주화와 과학혁명은 相對主義(상대주의)의 시대에 등장했다.
하지만 상대적 가치의 시대가 열리면서 민권의 시대 즉 민주주의와 과학적 사고방식이 길을 열었다.
민주주의의 의사결정 방식은 결국 다수결이다. 그 이전에 나름 충분히 토의를 거치고 또 입장이 다른 사람들의 주장을 들어본 후에 유권자들이 투표를 한다. 그러면 임시적이고 상대적이긴 하지만 방향이 정해지고 결정이 난다.
노골적으로 말해서 이른바 개나 소나 한 표로서의 가치는 동등한 것이 바로 민주적 의사결정 방식이다. 또 그 결정이 정답이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배운 자나 못 배운 자 아무런 관계가 없고 연륜이 쌓인 자나 새파란 철부지나 상관이 없다, 그저 일정 연령이 되어 투표권만 있으면 되는 세상이다.
정답주의자의 관점에서 보면 이거야말로 개판 5분전인 것이고 식견과 경험이 많은 자의 관점에서 이거야말로 엉망진창인 세상이 오늘날의 세상이다. 그렇기에 1대1의 입장이 되면 어떤 말과 주장을 해도 그건 “님 생각이시구요!” 하면 그만인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 준 과학을 보면 상대적 세계가 꼭 나쁜 것만도 아니다. 과학의 정신은 절대 진리를 부정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과학적 정신은 기본적으로 회의, 즉 의심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갈릴레이의 지동설 그리고 데카르트의 회의적 방법론이 과학의 모태인 것이다.
이에 가설을 세우고 검증과 실험을 통해 어느 수준 이상 오류가 없으면 과학적 법칙이 된다. 과학적 법칙은 그것이 틀렸다는 새로운 증거나 결과가 나올 때까지만 유효하다. 상대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민주주의나 과학 모두 상대적 세계의 산물이란 얘기이다.
우리는 아직 절대적이면서 상대적인 시대에 머물고 있다.
이제 슬슬 나 호호당이 오늘 이 글을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을 꺼낼 때가 되었다. 왜 갑자기 독자들에게 낯설 수 있는 17세기 유럽의 전쟁 얘기를 끄집어내어야 했을까 하는 점이다. 그리고 그건 결국 우리에 대해 얘기하기 위함이다.
1950년대의 폐허에서 일어선 우리 대한민국이다. 겉으론 분명히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있지만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도 실로 많고 다양하다. 그리고 그 문제점들에 대해 살펴보다 보면 우리가 아직 상대적 세계의 가치관을 우리 것으로 소화해내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근대화를 이끌어낸 유럽이 1648년부터 이미 절대적 세계에서 상대적 세계로 이행을 시작한 것에 비하면 그 차이는 실로 엄청나다. 그러니 우리에게 그런 문제점이 있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우리는 여전히 절대와 상대가 함께 공존하는 헷갈리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근대화, 영어로 Modernization 이란 단어가 있다. 이게 뭔가 하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국 상대적 세계로 넘어오면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반대로 말해서 우리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 또한 근대화의 근저에 놓인 상대적 세계에 대한 인식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점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본다.
근대화는 합리화와 통하는 말이다. 그런데 합리화란 기존의 생각과 방식에서 벗어나 원점에서 바라보고 생각하기 시작할 때 가능해진다. 이미 주어져 있는 정답이 아니라 그간에 정답이던 것이 틀릴 수도 있겠다는 의심을 할 때 비로소 좀 더 나은 방식을 찾는 과정 즉 합리화가 시작된다.
그런 면에서 비록 우리가 근대화를 해오긴 왔지만 그건 겉에 걸친 외투이고 속으론 미처 체화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화된 우리 사회의 이념 갈등이 그간에 생산적 결과를 가져오기 보다는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고 내가 옳다는 주장만을 되풀이해온 결과 오늘에 이르러 소위 ‘진영논리’만 남았을 뿐이고 아군이 아니면 적이라는 살벌한 생각만 가득한 현실이 되고 말았다. 우리 정치는 이제 거의 파산 직전에 와있는 셈이다.
이런 문제는 비단 정치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교육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나아가서 이런 문제는 비단 우리 대한민국만의 문제 또한 아니다. 일본도 그렇고 중국 또한 그렇다. 동북아시아의 유교적 전통이 새롭게 혁신되지 않은 바탕 위에 근대화가 진행되어 왔기에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고 본다.
2024년이면 우리 국운의 입춘 바닥이자 새로운 시작이다. 그로서 다시 2084년에 이르는 60년에 걸친 국운 제3기가 시작될 것이다. 어쩌면 국운 제3기가 끝나갈 무렵 정도가 되면 어느 정도 상대적 세계로의 전환이 구체화되어 있지 않을까 전망해본다.
오늘은 다소 무거운 주제였고 나름 최대한 줄였지만 글 분량도 적지 않다. 하지만 언젠가 이런 얘기를 한 번은 해보고 싶었다. 독자들의 양해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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