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풀린 궁금증
텔레비전의 다큐 프로를 보다가 오랜 의문이 하나 풀렸다. 몇 년 전 남자 속내의인 팬티가 한 장에 몇 만원씩 한다는 사실, 또 그런 팬티를 즐겨 입는 젊은이들이 꽤나 흔하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올드 세대인 나로선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내 경우 작년에 돌아가신 어머님이 아마도 6-7년 전쯤에 동대문 시장에서 트라이 사각트렁크 천 팬티를 예닐곱 장 사오셨는데 지금까지도 그걸 입고 있다. 어머님께선 이거 좋은 거야 하셨는데 과연 그 말씀대로 착용감이 좋아서 편히 입고 다닌다. 닳고 달아서 아주 부드럽다. 나달나달.
문화적 충격
그런 내게 있어 한 장에 몇 만원씩이나 하는 고가의 팬티가 흔치 않게 팔려나간다는 것은 정말이지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나 호호당의 가치관 자체가 뿌리에서부터 흔들리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처음 그런 사실을 알았을 때 “돈이 썩어 문드러졌군!”, 이게 나의 첫 반응이었다. 그 다음 뱉은 말이 “야, 대한민국 많이 컸다 컸어, 예전엔 강냉이도 배불리 못 먹던 대한민국이 말이지!”, 하는 소리였다.
다소 격했던 모양이다. 문화적인 충격을 받고 당황한 나머지 憤慨(분개)했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그런 고가의 팬티가 그냥 속내의가 아니라 일종의 고급 패션물이 되었다는 것을.
범인의 정체
그런데 어젯밤 다큐, ‘1980년대의 미국’이란 프로를 통해 남자 팬티를 패션물로 만든 작자가 미국의 캘빈 클라인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근육질의 섹시한 젊은 청년이 눈부신 태양 아래 하얀 팬티를 입고 벽에 기대어 있는 광고사진이었다. (다큐 설명에 의하면 육상선수이던 그 남자는 그 바람에 최고 인기 모델이 되었다고 한다.)
캘빈 클라인은 연이어 당시의 인기 여배우 브룩 쉴즈를 모델로 해서 패션 브랜드 청바지 즉 ‘디자이너 진’ 시장을 창출했다는 내용도 소개되었다. 연이어 캘빈 클라인의 소행은 아니지만 마이클 조던을 통해 농구화 시장을 키운 얘기가 소개되었다.
보면서 “아, 저 놈들이었어, 쟤들이 미국을 철저하게 고도 소비 시장으로 둔갑시켰고 그 바람에 우리까지 그렇게 만든 장본인들이란 말이지” 하고 납득을 했다.
컨슈머리즘
컨슈머리즘, 소비지상주의라고도 번역되는 이 흐름이 1980년대 이후 미국에서 시작되어 전 글로벌 세계를 움직여왔다. 컨슈머리즘은 위키 백과의 정의에 따르면 ‘끊임없이 더 비싼 가격의 재화와 서비스를 취득하도록 북돋는 사회적 경제적 질서’라고 되어있다.
“social and economic order that encourages the acquisition of goods and services in ever-increasing amounts.”
(이 용어가 사회비판적이어서 사업에 해롭다는 판단을 내린 장사꾼들이 다른 이들을 내세워서 전혀 다른 개념, 즉 소비자주권이란 개념으로 재포장해놓는 바람에 이 용어는 헷갈리게 사용된다는 점도 알려드린다.)
그러고 보니 1955년생, 올해 64세나 된 나 호호당은 오늘날 2018년 12월까지 대한민국 안에서 살아왔지만 컨슈머리즘의 영향권 바깥에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자각했다.
다시 말해서 컨슈머리즘의 은택을 입지 않은 내게 있어 팬티란 물건은 한 장에 5천원 정도하면 충분히 좋은 품질의 물건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이고 그저 늘 깨끗하게 세탁해서 입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후배 세대들은 한 장에 몇 만 원 하는 팬티를 돈만 된다면 별 부담 없이 사서 입을 수도 있고 애인으로부터 선물을 받기도 하는 이질적인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같은 시공간, 하지만 다른 문화
같은 시공간, 다른 문화, 이런 생각이 스친다.
캘빈 클라인, 내게 컬쳐 쇼크를 안긴 놈이니 어디 사주나 한 번 봐야지 싶어서 검색해보았다. 내 너를 샅샅이 밝혀보리라, 약간은 악감정이 실린 마음으로 말이다.
1942년 11월 19일이고 생시는 밝혀져 있지 않다. 하기야 뉴욕의 못 사는 동네인 브롱스 출신이니 생시가 밝혀져 있겠는가 싶다. (사실 이런 생각 또한 악감정이 실려 있다.)
느낌 상으론 丙火(병화)였는데 알아보니 역시 그랬다.
壬午(임오)년 辛亥(신해)월 丙子(병자)일. 그간의 경력을 보면 1966년 丙午(병오)년이 60년의 운세 흐름 상 立秋(입추)임을 확인할 수 있다.
겨울 丙火(병화)이니 디자인이나 패션 쪽에 대단한 재능과 열정을 타고 났음을 대번에 알 수 있다. 세심하고 치밀한 성격 또한 엿보인다.
태어난 날이 불의 날, 즉 丙火(병화)나 丁火(정화)인 사람은 미술이나 영상, 광고, 컨설팅 등등 이런 방면의 일에 다소의 차이야 있을지언정 소질이 있다.
가령 애플 교의 교주였던 스티브 잡스 역시 丙火(병화)로서 프리젠테이션의 달인이자 홍보의 마술사였다는 사실. 아울러 丁火(정화)인 나 호호당 역시 그림에 약간의 재능이 있기에 매일 그림을 올리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캘빈의 역사를 위키와 구글을 통해 살펴보니 1968 戊申(무신)년에 자신의 이름을 따서 ‘캘빈 클라인 유한회사’를 설립했다. 운세 흐름에 있어 벼꽃이 피고 쌀알을 맺는 處暑(처서)의 운이었다.
그 이후 자유로운 섹스의 시대가 왔음을 감지한 그는 과감하게 광고에 팬티만 입은 벗은 남성의 몸을 보여주었고 그로서 패션 팬티 붐을 만들었다. 그 이전엔 남자가 알몸을 보여주는 그런 광고는 전혀 없었다고 한다. 다큐의 나레이터 말인 즉 캘빈은 결국 섹스를 팔았다고 했는데 맞는 말이다.
캘빈 클라인, 이 양반 돈을 억수로 번 것 같지만 실은 실패한 사업도 제법 되는 바람에 2002년엔 회사를 팔아 넘겼다. 인수한 회사는 여러 의류 브랜드를 거느린 PHV 란 회사라고 한다. 캘빈의 운세는 1996년이 입춘 바닥이었으니 결국 열정이 식은 나머지 그랬을 것으로 본다.
미국이 만든 자본주의는 결국 소비를 조장하고 창출하는데 그 특징이 있음을 여실히 실감하게 된다. 그 바람에 소비자 신용이란 이름으로 카드를 손에 쥐어주고 계속해서 소비를 통해 빚을 지게 만든다. 그러다가 불황이나 경제 위기가 오면 화가 나서 월가를 점령하자, 폭파하자면서 데모나 하는 게 고작이다.
물론 나 호호당은 자본주의에 대해 큰 반감을 가지고 있진 않다. 결국 그 역시 사람들의 욕망을 가장 잘 충족시켜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미국에 대해서도 아무런 반감이 없다, 그저 별로 좋아하지 않을 뿐이고 아무리 그래도 우리보단 나은 나라이고 사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다만 미국이 안겨준 컨슈머리즘, 소비주의에 대해선 꽤나 불편함을 느낀다.
예로서 최근엔 나 역시 운동화를 즐겨 신는다. 구두를 거의 신지 않는다. 편해서 그렇다. 그런데 비싼 운동화는 결코 사지 않는다, 오래 신을 수 있는 신발도 아닌 것을 값비싸게 줄 이유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운동화도 종류가 많다는 사실이다. 캔버스란 것도 있고 스니커즈란 물건도 있다. 운동화를 수십 켤레 장만해두고 기분에 따라 필요에 따라 바꿔 신는 젊은이들도 많다는 것이다. 나로선 그런 얘기가 그저 정신 사나운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쩝, 솔직히 말해서 내 경우 한 켤레 사서 떨어질 때까지 신는데 말이다.
이에 드는 생각은 어쩌다보니 1955년생 호호당은 시대와 많이 동 떨어진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하다. 그저 호기심이 많아서 책벌레, 특히 과거에 관한 얘기들만 모은 역사책이나 주로 읽으면서 살아오다 보니 시대를 놓쳐버린 것 같은 생각도 든다.
나 호호당이 궁색하지 않은 이유
하지만 한편으로 나 호호당이 비교적 편하게 살아가는 이유도 이제 정확히 알 수 있다.
사실 나 호호당은 전혀 궁색하지 않은데 이는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담뱃값과 점심값, 책값, 그림 종이 값 등을 제외하면 소비하고픈 물건이 별로 없으니 궁색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걸치는 옷 역시 추위를 막아주고 편하면 그만이란 생각이다.
이는 결국 나 호호당이 美製(미제) 컨슈머리즘과 거리를 두고 살고 있다는 말이 된다. 미국이 만들어놓은 소비지상의 글로벌 질서에 미처 편입되지 않은 탓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로마 제국으로서의 미국이다. 그러니 나 호호당은 어쩌면 제국의 변경 혹은 애매한 시골 마을에서 살고 있는 어정쩡한 야만인 취급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캘빈 클라인, 당신을 이제 용서해준다. 너 역시 먹고 살려고 갖은 발악을 하다 보니 그랬을 뿐이지 달리 특별한 이유야 있었을 것 같진 않으니 말이다. 니나 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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