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가 유행이라 하던데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선 退社(퇴사)란 말이 꽤나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 일본의 한 여성 작가가 쓴 책 ‘퇴사하겠습니다’가 살기 팍팍한 우리 젊은이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준 모양이다.
직장은 생존과 생활을 위한 투쟁의 장이니 스트레스가 많을 수밖에 없고, 이에 사표를 쓰고 직장을 그만 두는 퇴사는 그 자체로서 속을 후련하게 풀어주는 행위가 되니 憧憬(동경)하는 마음이 커질 수밖에 없다.
대기업에 들어가 잘 다니고 있었고 그만 둘 특별한 이유도 딱히 없었지만 그냥 이건 내 길이 아니다 싶어 미련 없이 퇴사했습니다. 이런 퇴사의 변을 접하면 정말이지 아우라가 넘친다.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이 소원인 마당에 거길 그만 두었다는 것이고, 잘린 것이 아니라 그냥 그만 두었다는 말도 그렇다. 게다가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용기 있게 그만 두었다는 말은 더더욱 멋이 있다. 멋지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다수의 젊은 직장인들에게 있어 퇴사는 막연한 꿈이나 동경에 지나지 않는다. 현실 감각이 있는 젊은이라면 그렇다.
나 호호당 역시 퇴사하고픈 마음에 공감을 표명하면서
나 호호당은 퇴사를 동경하는 젊은이들의 생각에 대해 십분 공감한다. 왜냐면 나 호호당 역시도 그런 젊은이였기 때문이다. 서른아홉 젊은 나이에 새로운 인생을 찾아 그런대로 잘 다니던 은행을 그만 두었던 나 호호당이다.
직장을 그만 둔 때가 1993년이었고 39세였다. 올 해 2018년으로서 64세가 되었으니 벌써 어언 25년 전의 일이다. 5년만 지나면 30년 전의 일이 된다.
맡은 일만 그런대로 하고 있으면 매월 어김없이 25일엔 월급이 입금되었다. 저축 같은 건 전혀 하지 않았다, 다음 달 25일이면 또 다시 돈이 입금되는데 무슨 저축? 하는 생각으로 지냈던 시절이 두고두고 그립다.
젖과 꿀이 흐르던 시절에서 매달 돈을 창조해내어야 하는 시절로
직장을 그만 둔 뒤 나는 매달 필요한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돈을 번다는 느낌이 아니라 매달 필요한 돈을 만들어내는 느낌, 버는 것이 아니라 창조해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오늘날까지 25년간 살아왔다.
그 기간 동안 매달 필요한 돈을 어김없이 창조해낼 수 있었겠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때론 꾸어서 쓰기도 하고 때론 줄여서 쓰기도 했다. 그랬다가 나중에 꾼 돈을 갚느라 죽을 고생을 하기도 했다. 빌린 돈이나 대출을 처음부터 떼어먹을 배짱이 없다면 돈이란 것은 아예 빌리거나 대출받는 게 아니란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니 매달 일정한 날에 꼬박꼬박 계좌에 돈이 입금되던 시절, 그 시절이야말로 하늘에서 단비가 내리고 꿀이 내리던 시절로 추억되었다. 안정된 월급쟁이 팔자야말로 정말로 전생에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한 사람에만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영화 ‘쇼생크 탈출’을 다시 보고는
몇 년 전 밤에 텔레비전을 통해 쇼생크 탈출을 보았다. 물론 전에 봤던 영화이다. 모건 프리드먼이 팀 로빈스와 함께 정작 감옥을 탈출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팀 로빈스더러 혼자 가라고, 나는 그냥 여기에 있겠다고 말하던 장면에서 울컥 했다.
바깥에 나가면 자유가 있겠지만 여기에 남아있으면 안정된 감옥 생활을 할 수 있으니 나로선 더 편하다는 모건 프리드먼의 말이었다. 그 대사를 들으면서 격하게 공감했다. 그래 나라도 저 입장이라면 모건 프리드먼의 선택을 따를 것 같아, 자유로운 바깥세상은 너무 힘들거든,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다시 생각이 났다, 39세의 나였다면 모건 프리드먼의 말에 병신! 이란 말을 했을 것 같은데 50이 넘은 나는 모건 프리드먼의 말에 공감하고 있었으니 세월의 차이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 다시 묻게 되었다, 어느 놈이 진짜 나일까? 하는 물음.
분방한 성격으로 태어났고 어려서 유복하게 자랐다. 명문 고등학교와 나름 명문 대학을 나와 그런대로 괜찮은 직장에서 일했지만 나로선 불만이었다. 구속받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출근하고 퇴근하는 삶은 마치 노예와도 같아서 엄청 싫었다.
자유의 공간은 야생의 삶, 동물의 왕국이었다.
그래서 멋지게 퇴사하고 자유를 택했더니 그 공간은 신나게 꿈을 펼칠 수 있는 기대했던 공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野生(야생)의 장, 동물의 왕국이었다. 먹거나 먹히거나 둘 중에 하나인 거친 세상이었다.
먹이사슬에 있어 포식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마침내 알게 되었다. 하지만 포식자라 해도 역시 수시로 굶어야 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동물의 왕국을 보면 며칠 굶은 어미 표범이 새끼들을 먹이기 위해 내비치는 간절한 눈빛을 마주하게 된다.
동물의 왕국에선 먹고 생식하는 것 이상의 더 좋은 세상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먹을 수 있고 짝을 지어 새끼를 낳을 수만 있다면 또 그 새끼들을 일정 기간 부양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1993년 퇴사를 하고 몇 년이 지나니 가세는 기울대로 기울었다. (참고로 얘기하면 나 호호당은 1997년이 60년 운세 순환에 있어 입춘 바닥이었다.)
무일푼 신세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사실
순 자산이 마이너스 3천만원인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그 역시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무렵 친하게 지내던 한 선배가 직장을 그만 두고 사업 길에 나섰다가 도저히 갚을 수 없는 거액의 빚을 떠안게 되자 그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있었다.
장례식장의 영정 앞에서 나 호호당은 체면 불구하고 목을 놓아 펑펑 대성통곡을 했다. 울고 나서 알았다, 무일푼인 상태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것을. 제로는 벌어서 모으기만 하면 즉각 플러스가 되지만 마이너스는 열심히 벌어서 빚을 다 갚아야만 비로소 제로가 된다는 단순한 사실이 뼈에 사무쳤다.
대략 2년 정도의 세월 동안 아내가 조심스럽게 건네던 말, ‘여보 이번 달 생활비 좀 줄 수 있어?’ 하는 그 나지막하고 풀기 없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여러 가지로 답을 했었다. 응, 조금 기다려봐, 또는 글쎄, 아무튼 알았어, 이번 달엔 어려울 것 같아, 당신이 좀 구해보지 그래 등등의 답을 하곤 했다.
그런 순간마다 내가 미쳤지, 왜 별 이유도 없이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었을까? 하는 후회에 젖어들곤 했다. 젖과 꿀이 흐르던 그 곳을 내가 스스로 왜 떠났을까 하는 自歎(자탄)의 세월이었다.
고생의 세월을 보내면서 깨닫게 된 것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나 호호당의 형편도 많이 좋아졌다. 여전히 매달 돈을 창조해내어야 하지만 그럼에도 예전에 비하면 엄청 편해졌다. 그러다보니 그간 세월 속에서 알게 된 것, 몸속으로 녹아든 것에 대해 얘기를 좀 해본다.
이런 얘기들이다.
나이를 먹은 탓인지 아니면 고생을 좀 해봐서 그런지 지금은 먹고 사는 것을 넘어서는 어떤 세계를 꿈꾸지 않는다. 그냥 지금이 내 삶의 전성기라 여긴다.
구애 없이 자유롭게 노니는 逍遙遊(소요유)의 세계를 설파한 莊子(장자)가 제시한 이상향인 無何有之鄕(무하유지향)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여기 내 발밑이란 것을 알고 있는 나 호호당이다. 그러니 이젠 莊子(장자)를 존경하지도 않는다. 당연한 말을 좀 멋있게 풀어놓았을 뿐이라 여긴다.
고생을 좀 해봤더니 삶에 대한 미련도 사실 없어졌다. 사는 게 고생인데 오래 살겠다는 것은 고생을 더 많이 하겠다는 것, 그게 무얼 그리 좋다고 오래 하겠다는 것인가 싶다. 말로는 90까지 살아보겠다고 호언을 가끔 뱉고는 있지만 정확한 내 속내는 그저 때가 되면 사라지게 될 것이란 생각이다.
그러니 스님들이 오랜 참선 끝에 뭔가를 깨달았다는 그 깨달음도 전혀 궁금하지도 부럽지도 않다. 돈을 벌고 창조하는 과정에서 고생해온 내가 어쩌면 더 한 수 위일 수도 있겠다 싶다.
한편으로 고생하는 삶이 바로 좋은 삶이 아니겠나 싶기도 하다. 그러니 고생 좀 더 하면서 오래 살아봐야지 하는 앞의 말과는 상반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긴 하다. 그때그때 생각이 좀 다르다.
또 한 편으론 야생의 공간에서 그간 어쨌거나 25년간이나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온 것은 내 능력만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는 생각도 든다. 여태껏 나를 숨 쉬게 하는 것은 내 알량한 능력만으론 될 순 없는 일 같다는 말이다. 나 호호당은 종교를 가지고 있진 않기에 나를 숨 쉬게 하고 밥을 먹게 해주는 것은 그냥 저 ‘위대한 세상’이란 생각을 한다.
그러니 때가 되어 저 위대한 세상이 ‘야, 호호당 이젠 그만 살아’ 하고 명령해오면 군말 없이 따를 준비도 되어 있다. ‘그간 살려주신 것만 해도 감지덕지하옵니다요’ 하면서 순순히 명령을 따를 생각이다. 다시 얘기하면 내가 살고 죽는 일, 더 풍요롭게 사느냐 아니면 힘들게 사느냐 하는 것은 내 소관이 아니란 얘기이다. 권한 밖의 일에 나설 이유가 없으니 그렇다.
그런 과정에서 우연인지 필연인지 사실 모르겠지만 오랜 세월 속에서 運(운)과 命(명)의 이치를 이젠 알아도 너무 많이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궁금해 하던 것, 호기심을 충분히 충족시켰다는 점에서 나름 만족이다.
어떤 젊은이와의 만남, 그 데자뷔
작년의 일이었다. 괜찮은 직장에서 퇴사를 결심한 한 젊은이가 상담 차 나를 찾아왔던 적이 있다. 내성적이고 지적인 젊은이였다, 꿈도 큰 친구였다, 마치 오랜 세월 저편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팔자를 체크해보니 역시나 이제 고생길을 시작할 참이었다.
그래서 결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얘기해주었지만 그 젊은이는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그래서 ‘고생하게 될 거야, 그런데 자네는 스타일을 보니 내가 걸어온 길과 비슷한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크군!’ 하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군대 가는 젊은이에게 군대에 대해 아무리 얘기해주어도 군대를 알 순 없듯 고생에 대해서 자세하게 얘기해줄 필요는 없겠다 싶었다. 그래서 그냥 고생하게 될 거야 하는 말만 했다. (그 젊은이의 가는 길에 가호가 있기를!)
젊은이가 떠나간 후 혼잣말을 했다. 참 모르겠네, 고생을 안 하고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고생 좀 겪으며 사는 것이 좋은 삶인지, 도무지 그걸 모르겠네. 우리 안의 羊(양)이 좋은지 울타리를 튀어나간 양이 좋은지 그걸 모르겠네.
命(명)이 있고 運(운)이 있을 뿐
그냥 타고난 命(명)이 있고 변해가는 運(운)이 있어 그에 맞추어 살아갈 뿐, 달리 무엇이 있겠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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