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 진리회 교주 처형

 

 

1995년 3월에 발생했던 도쿄 지하철 살인가스 사건, 출근길의 도쿄 지하철 5개 차량에 맹독 가스를 뿌린 결과 13명을 숨지게 하고 6천명 이상을 평생 후유증에 시달리게 만든 엄청난 테러였다. 그 주범인 邪敎(사교) 옴 진리교의 교주였던 ‘아사하라 쇼코’가 오늘 7월 6일 아침에 처형되었다. 가담자 6명도 함께 처형되었다.

 

점심 무렵 뉴스를 듣고 나서 아, 그래 그 미친 놈, 인상도 더럽게 생긴 놈이 아직도 살아있었다니, 이제야 처형이라, 일본의 행정도 어지간히 느리구나 싶었다. (일본은 사형제도가 있는 나라이다.)

 

 

아사하라 쇼코의 사주와 운세 분석

 

 

그 사악한 놈의 사주가 궁금해졌고 이에 알아보았다.

 

아사하라 쇼코, 생년월일은 1955년 3월 2일이고 생시는 알려져 있지 않다. 생시를 모르니 정확한 성격 분석은 어렵다. 그러나 그간의 경력이 알려져 있으니 운세 흐름 정도는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다.

 

乙未(을미)년 戊寅(무인)월 壬戌(임술)일이다. 3월 2일 초봄에 태어난 壬水(임수)이니 환타지가 꽤나 강한 자로서 사주 구성 상 충동적이고 격한 데가 있는 자임을 말해준다.

 

운세 순환을 보면 1962년과 2022년이 立春(입춘) 바닥이고 1992년이 기의 절정인 立秋(입추)였다.

 

1955년에 태어났으니 운세가 한창 기울 때 태어났다. 선천성 녹내장으로 왼쪽 눈은 볼 수가 없고 오른 쪽 눈은 시력 1.0 정도였다고 한다.

입증된 바는 없지만 부친이 실명한 것은 수은 중독으로 인한 ‘미나마타 병’ 때문인 것 같고 그로 인해 큰 형 역시 맹인이었던 것을 보면 아사하라 역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이 된다.

 

먼저 간단하게 그의 운명 사계절부터 알아보자.

 

1955-1962: 운명의 겨울

1962-1977: 운명의 봄

1977-1992: 운명의 여름

1992-2007: 운명의 가을

2007-2022: 운명의 겨울

 

 

비뚤어진 심성과 종교의 잘못된 만남

 

 

아사하라의 경우를 보면 장애를 안고 태어나 청년기까지 풀리는 일이라곤 하나 없던 불우한 젊은이였다. 그러다가 1977년 운세 흐름이 여름으로 접어들 무렵 도가의 신선술과 인도의 요가 그리고 불교 등을 통해 정신적 만족을 얻었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결국 과대망상이 발동한 나머지 동양의 여러 종교와 철학을 자기 멋대로 종합해낸 결과 새로운 邪敎(사교)를 창시하게 되었다.

 

이에 1987년 아사하라의 운세가 한창 뻗어가던 小暑(소서)의 운, 한 해로 치면 7월 초와 같은 때에 ‘옴 진리회’라는 사교단체를 정식으로 발족시켰다.

 

 

악인도 운을 만나면 상황이 좋아지는 법이니

 

 

이처럼 악인이나 미친놈도 운을 만나면 상황이 좋아지고 발전하는 법, 교세도 날로 커져갔다. 여름철이 되면 논의 벼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농사에 해가 되는 잡풀도 함께 무성해지는 이치라 보면 된다.

 

이후 아사하라는 활발히 포교활동을 전개했고 달라이 라마를 만난 것을 자신의 포교활동에 최대한 활용하는 마케팅 능력도 보여주었다. (물론 얼마 안 가서 아사하라가 이상한 또라이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티벳 불교의 일본 주재 대표는 옴 진리회와의 관계를 일체 단절했다.)

 

교세가 성장하자 급기야 일본 국회의원인 중의원 선거에도 출마했던 아사하라는 선거에서 참패한 뒤 썩은 세상을 청소할 필요가 있다면서 무장투쟁노선을 천명했다.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켜서 썩은 세상을 싹 쓸어버리고 자신은 정화된 맑은 세상을 다스리는 법황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늘 대량의 LSD을 투약하며 지냈던 아사하라는 40-50명 정도의 젊은 여성 신도들로 이루어진 하렘(harem)을 만들어 놓고 즐겼다. 아사하라 본인은 ‘최종의 해탈자’인 까닭에 얼마든지 복수의 여성신도들과 즐겨도 관계가 없다, 젊은 여성들과의 성행위는 그들을 보다 높은 차원으로 인도하기 위한 최종 해탈자로서의 의무라는 것이 그의 논리였다.

 

 

도쿄 지하철 독가스 테러, 과대망상이 부른 참극

 

 

아사하라는 종말 전쟁을 일으켜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떠들었고 그러다가 마침내 실행에 옮긴 대형 사건이 1995년 3월 20일의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사건이었다.

 

사린(sarin)은 독극물인 시안화물보다 100배 이상 독성이 강한 물질로서 액체나 기체 상태로 존재한다. 중추신경계 특히 시신경을 마비시키며 계속 되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극독 물질이다. (아트로핀 주사, 군대 다녀온 남자라면 기억이 날 것이다. 바로 이 주사가 사린 가스 중독에 대한 응급 처치약이다.)

 

대형 독가스 테러를 일으킨 아사하라는 사건 즉시 여러 가담자들과 함께 신속하게 체포되었지만 일부는 2012년이 되어서야 모두 검거되었다.

사형수는 모두 13명인데 이번에 아사하라를 포함해서 7명이 교수형으로 집행당했고 아직 6명이 남아있다.

 

 

사형 집행이 20년 이상 지연된 이유

 

 

그런데 일본 정부는 사형 제도가 유효한 데 왜 그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던 것일까? 하는 것이 꽤나 궁금했다. 이에 나무위키에 실린 글을 보니 제법 나름의 이유가 있어 보인다.

 

이유가 나름 흥미롭다. 아사하라의 사형을 빨리 집행하면 나머지 신도들에게 있어 그는 순교자가 될 것이고 사형장소는 聖地(성지)가 되어버릴 것이니 그럴 바엔 살려둬서 욕보이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란 판단 때문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사형집행 전까지도 옴진리교 신도들이 구치소 주변을 맴돌고 있었을 정도라고 하니 말이 된다. 게다가 아사하라의 사형이 집행될 것 같은 기미가 있을 때마다 또 다른 신도가 자수를 해서 사형 집행을 미루는 식으로 20년 넘게 집행을 질질 끌어왔는데 이제 더 이상 범행 가담자가 없다는 판단 끝에 이번에 집행을 했다는 것이다.

 

선천성 장애로 태어나 세상과 사회에 적대감을 품은 한 젊은이가 종교의 신비함에 빠져들었고 그러다가 제 멋대로 이상한 종교를 만들어내었다. 운이 따르다 보니 열심히 포교를 한 결과 적지 않은 신도들이 생겨났고 그로서 자신의 왕국을 세웠다.

 

마약에 빠져 현실감각을 상실한 아사하라는 마침내 자신의 미친 망상을 실천에 옮겼고 그로서 대형 테러 사건의 장본인이 되었다.

 

 

악의 씨앗이 뿌려지면 악의 열매를 맺게 되니

 

 

도쿄 지하철 테러는 그의 운세가 한창이던 시절에 발생했다. 1962년이 입춘 바닥이었으니 1992년이 입추였고 그 3년 뒤인 1995년의 일이었으니 한 해로 치면 8월 하순, 즉 處暑(처서) 무렵과 같다.

 

처서는 벼꽃이 피고 그로서 쌀알이 매달리는 때, 따라서 아사하라라는 독성 잡초가 때가 되어 꽃을 피워 올리고 그로서 악의 열매를 매달기 시작했던 때가 바로 1995년 3월의 도쿄 지하철 사린 테러 사건이었던 셈이다.

 

2022년이 아사하라에게 있어 또 한 번의 입춘 바닥이 되는데, 결국 그 4년 전인 올 해 사형 집행을 당했다. 인간 세상은 언제나 이런 미친 또라이가 있기 마련이고 또 그런 미친놈의 말이 귀에 솔깃한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아사하라의 사주와 그간의 일들을 살펴보면서 떠오른 사람이 있다. 중국 청나라 말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켜 수천만의 목숨을 앗아갔던 신흥종교의 교주 홍수전과 유사한 케이스란 생각이 든다. 물론 스케일은 다르지만 사건의 본질은 동일하다.

 

홍수전 역시 과거에 낙방하고 암울한 시절 계시를 받아 신흥 종교 운동을 일으켰던 것이고 아사하라 역시 마찬가지. 다만 태평천국의 난은 중국 내부의 모순이 첨예한 때였기에 보다 대형 사고로 비화되었을 뿐이다.

 

 

일본의 국운이 기울 때 터진 사건, 과연 우연이었을까?

 

 

도쿄 지하철 사린 가스 테러는 공교롭게도 일본이 경제 거품 붕괴로 사회 전체가 암울한 때 일어났다. 게다가 사건 발생 두 달 전엔 고베 대지진이 발생했으니 당시 일본의 국운은 2005년 입춘 바닥을 향해 한창 속도가 기울고 있던 때였다. 나라의 운이 기울면 이런 이상한 사고가 빈발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