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때보다 더 많은 시중 부동자금
작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시중 유동성 또는 부동자금이 1000조를 넘어섰다. 산업은행 경제연구소의 금년 3월 보고서에 의하면 국내 총생산(GDP)대비 시중 부동자금의 비율이 가장 높았던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의 57%보다 더 높은 63%라 한다.
부동 자금 또는 유동성이란 현금을 포함해서 단기금융상품에 머물고 있는 돈을 말한다. 그런데 부동 자금이 많다는 말은 돈이 갈 곳을 찾지 못한다는 것, 즉 투자할 곳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시중 유동성이 글로벌 쇼크 상태였던 2009년의 금융위기 직후보다 더 많다는 것은 우리 경제가 대단히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음을 의미한다. 이에 산은연구소에선 이른바 ‘유동성 함정’을 우려하고 있다.
유동성 함정에 빠져들고 있는 우리 경제
시중에 자금은 많으나 그것이 기업의 투자나 가계 소비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 바로 유동성 함정인데, 이는 우리 경제가 이미 불황 또는 침체로 들어서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렇게 되면 사실 한은이 금리를 더 낮추어서 시중에 자금을 풀어도 효과를 볼 수가 없다. 한은의 통화정책 기능이 극도로 취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은이 반대로 금리를 올리기란 더 어렵다. 금리를 올려서 시중 자금을 흡수해가기 시작하면 쇼크가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중 유동성은 풍부하나 그 돈들이 갈 곳을 찾지 못하는 현상, 이는 경제 침체의 초기 국면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돈도 일을 해야 제 역할을 한다. 돈이 일을 한다는 것은 계속해서 손바뀜을 통해 손에서 손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 결과 투자가 이루어지고 소비가 늘어난다. 그런데 지금 시중에는 엄청나게 많은 돈들이 이자도 몇 푼 되지 않는 단기금융상품, 사실상 돈의 여관방에 틀어 박혀서 빈둥거리고 있다, 어디 갈 데 없나? 하면서 말이다.
앞에서 현재 시중 유동성의 GDP 대비 비율이 2009년 금융위기 때의 57%보다 더 많은 63%라고 했는데 이를 다른 각도에서 봐도 된다.
현재 시중 유동성이 1천조를 넘었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시중 통화량(M2) 2천4백조의 40%에 해당되는 비율이다. 전체 돈 중에서 놀고 있는 돈, 즉 실업자 신세인 돈이 그렇게나 많다는 말이다. (착각하지 마시길, 사람 실업자가 아니라 돈이 그렇다는 말이다.)
자금에 여유가 있는 기업의 경우 마땅한 투자처가 없다는 얘기이고 퇴직금을 받은 은퇴자들 역시 함부로 돈을 굴릴 엄두가 나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부동산 상승, 부동자금들의 필사적인 출구전략
이토록 시중 부동자금이 들끓고 있던 마당이니 작은 핑계거리만 생겨도 즉각 그 쪽으로 돈이 쏠리고 몰려들 판국이었지 않겠는가. 그런데 정부나 서울시장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구도심재생이라든가 여의도 용산 통개발론과 같은 빌미를 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얼마 전부터 부동산 시장엔 ‘똘똘한 한 채’라는 심상치 않은 말이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결국 그 말이 먹혀들었다. 그래 맞는 말이야! 하면서 동조심리가 늘어나더니 시장이 한 방에 훅 하고 움직이고 있다. 주식으로 치면 ‘주식은 역시 블루칩이다’ 하는 것과 같은 어법이다.
게다가 서울 강남의 경우 자사고 폐지로 인해 더더욱 똘똘한 한 채로서 각광을 받은 셈이다. 이에 용산과 여의도 그리고 강남이 합세하면서 부동산 시세가 들먹이기 시작했고 그 바람에 나름 출구를 찾았다 싶은 부동자금들이 덩달아 움직이면서 서울 전역은 물론 일부 경기도 지역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번 부동산 문제는 경기 불황으로 인해 유례가 없을 정도로 누적된 시중의 엄청난 유동성이 필요조건이었다면 여기에 정부와 서울시의 안일한 인식이 계기가 되어 돌연 부동산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디고 봐도 무방하다.
그 바람에 자가 주택이 없는 사람들은 우울해할 것이고 이제라도 집을 사려는 사람은 매물이 없어서 당황스럽고, 대출을 받아볼 까 하는 사람은 대출 규제 때문에 불만이 쌓이고 있다.
너무 성급하고 강력 일변도의 정부 대응책 또한 걱정
그 바람에 정부는 황급히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이번 주 안에 초강력 대책을 발표하겠다는 것이다. 그린벨트 해제라든가 종부세 인상 등등의 내용이 들려오고 있다.
그런데 정부의 신속한 대책 마련 또한 사실 걱정이 된다. 정부의 대책이란 것이 장기적으로 심리적 안정을 도모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면 모를까 당장 부동산 상승세를 꺾어보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 또 다시 연이어 대책을 발표해야 하는 악순환이 염려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부동산 대책이 무려 17 차례나 이어졌음에도 시장의 흐름을 바꿔놓지 못 했던 쓰라린 기억이 다시 되풀이되어서야 되겠는가. 당시 정부는 시장을 이겨보겠다는 생각에 몰두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유롭게 이동하는 돈을 강제로 묶어놓을 순 없는 노릇, 시장을 이겨보겠다는 생각보다는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돈들이 부동산 쪽으로 흘러가는 것이 결코 이롭지 않다는 것, 수익성을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게끔 유도하는 방식이 더 좋지 않겠는가 싶다.
아무튼 현 시점에선 많은 국민들이 우려하고 우울하고 걱정을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한 가지 하고픈 말이 있다.
이번 상승은 예전 상승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번 부동산 상승이 예전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과거의 부동산 상승은 어쨌거나 우리 경제의 활력이 아직 살아있을 때에 나타난 일종의 가수요 현상이었다면 이번 상승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당시와는 달리 돈의 기대수익률이 지극히 떨어진 시점에서 그나마 부동산 투자가 조금은 더 좋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부동산 시세 상승이란 점이다.
그렇기에 이번 상승은 전국적인 시세 상승과는 거리가 멀다. 서울 강남과 여의도 용산을 중심으로 해서 생겨난 부동자금의 유입이 기세를 타면서 서울시 전역으로 번지고 있을 뿐이다. 서울 전역으로 퍼질 수 있는 요인으론 역시 여전히 정부의 구도심재생 사업에 대한 기대 때문이라 본다.
그렇기에 지금의 서울 부동산 시세 상승은 최근 기세가 워낙 강하다보니 강렬한 인상을 주고 있을 뿐, 장차의 경제 성장이나 활황에 대한 기대 수요 혹은 가수요가 아니란 점이다.
‘똘똘한 한 채’란 말에 담긴 의미를 새겨볼 것 같으면
‘똘똘한 한 채’란 말부터가 그렇다. 전체적으로 여기저기 아무 집이나 돈이 되는 것이 아니란 얘기가 아닌가. 혹시 경제가 어려워져도 부동산 시세가 여간해선 잘 내리지 않을 수 있는 지역의 한 채, 여차해도 부채를 감당할 여력이 있는 강남과 같은 부촌 지역의 집 한 채에 대한 투자가 안전하고 동시에 수익성도 바라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담고 있다.
따라서 ‘똘똘한 한 채’라는 말부터가 무차별적인 상승과는 거리가 있다. 증시에 비유하면 블루칩을 사라는 것이기도 하고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불황이 닥치더라도 주가가 크게 내리지 않을 ‘경기방어주’를 사라는 주문과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에겐 눈앞의 일이 걱정되고 불만이겠지만 냉정히 보면 이번 상승이 전국적인 부동산 가격 상승이 아니란 얘기이다. 우리 경제의 현 여건, 경제침체를 걱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국적인 부동산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하기 때문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얘기하고자 한다.
결국 부동자금의 잘못된 일탈로 마무리될 공산
우리 경제의 현 여건 상 전국적인 부동산 상승으로 이어지긴 어렵다고 할 때 이번 서울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부동산 상승세는 갈 곳 없이 여관방에서 빈둥거리며 놀고 있는 부동자금들의 잘못된 선택지로 귀결될 가능성이 아주 농후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유동성 함정에 빠져들고 있는 우리 경제 상황에서 누적된 부동자금의 일부가 펼치고 있는 마지막 ‘불꽃놀이’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불꽃놀이, 10월 여의도와 한강 공원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불꽃놀이 축제마당이 아니라 유동성 함정에서 벗어나려는 부동자금들의 마지막 분출일 수도 있다는 애기이다.
다른 선진국 부동산 상승과의 차이점
미국의 양적완화로 인해 거의 모든 나라들이 돈을 엄청나게 풀었다. 지금 글로벌 전체적으로 부동자금이 넘쳐나고 있고 그 바람에 전 세계 주요도시들의 부동산 가격도 많이 올랐다. 특히 차이나머니의 유입이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도 오를 것이란 생각 또는 기대심리도 없진 않겠지만 그들과 우리는 차이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미국이나 영국 유럽 등지의 나라들은 경제가 그런대로 호황 또는 호조인데 반하여 우리 경제는 침체로 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이제 정리한다.
장기 저금리와 유동성 함정으로 인한 잘못된 탈출구
지금의 서울 지역 부동산 상승은 그 원인이 결국은 장기에 걸쳐 지속되고 있는 저금리 기조와 경제 활력의 상실에서 비롯된 유동성 함정에 있다고 본다. 이에 놀고 있는 돈들이 많다 보니 이번에 어쩌다가 부동산 쪽으로 출구를 찾아 돈이 몰리고 쏠리고 있는 현상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생각이다.
그렇기에 정부 역시 너무 급작스럽고 강한 대응책으로 시장과 싸우기보다는 한 걸음 물러서서 심리를 진정시킬 수 있는 대책을 내놓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금리인상은 당장의 해답으로선 너무 위험하다.
일부에선 금리인상이 해답이란 지적도 있지만 안 그래도 어려운 우리 상황에서 성급한 금리인상은 큰 충격과 쇼크를 불어올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을 기하는 것이 일단은 더 나을 것으로 여겨진다.
경제 침체로 들어서는 국면에서
기업들의 94%가 우리 경제가 침체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한다. 절대 다수가 그렇게 여기고 있으니 틀린 생각이 아닐 것이다.
이처럼 경제가 침체로 들어설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가운데 부동산 상승이 지속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솔직히 얼마나 되겠는가 말이다. 늦어도 내년 봄이면 전반적인 경제 침체와 더불어 부동산 시장 또한 그렇게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부동산에서 계속 답을 찾는 것은 한계가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부동산 때문에 가계부채가 오늘날 1500조가 되었고 그 바람에 소비여력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또 부동산이 오른다? 부동자금이 많다 보니 일부가 일탈한 정도일 뿐, 지속적인 수익성을 기대할 수 없는 이상 대세를 이루긴 어렵다는 얘기이다. 부동자금이란 놈들이 너무 오래 놀다 보니 잠시 일탈한 것이고 역시 시간이 흐르면 제 정신을 찾기 마련이니 그렇다.
짧지 않은 글이었다. 이 글이 아무쪼록 지금의 현상에 너무 초조해하거나 불안해하지 말고 생각을 진정시키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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