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운명의 길에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관문이 존재한다.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로 시작해본다. 인생과 운명에는 우리들이 모르는 關門(관문)들이 존재한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싫든 좋든 상관없이 거쳐야만 하는 관문들이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운명의 수많은 관문들을 통과하면서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다.

 

운명 속에 존재하는 관문의 수는 모두 스물하고도 네 개. 그 중에서 큰 관문은 8개, 작은 관문은 16개이다.

 

 

관문을 통과할 때마다 우열이 가려진다.

 

 

모든 관문은 일단 통과를 허락한다. 하지만 통과할 때마다 優劣(우열)을 가린다. 그렇기에 24개의 관문을 모두 무사히 우등의 등급을 받으며 통과해가는 사람은 아마도 없다고 본다.

 

 

관문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으레 상처를 입기 마련이다.

 

 

우등이 되거나 열등이 될 확률? 그냥 50대50, 반반이라 하자. 이에 모든 관문을 우등으로 통과할 확률은 16,777,216분의 1에 불과하다.

 

사실상 확률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 긴 인생 살아가면서 반드시 어느 곳에선 스크래치가 난다. 좋게 말해서 스크래치이고 때론 큰 상처를 입기도 한다. 그것도 한 번이나 두 번 정도가 대개의 경우 몇 번의 상처를 입게 된다. 거의 누구나 그렇다. 나 호호당 역시 마찬가지이고.

 

흠이나 하자가 없는 사람 세상에 없다는 말이 있다, 진실로 그렇다. 일제 치하에서 젊은 나이로 옥사한 시인 윤동주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길 바랐지만 그가 만일 오래 살았다면 그것이 과한 바람이란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라 본다.

 

 

운명의 관문은 30개월의 간격을 두고 만나게 된다.

 

 

24개의 관문은 60년의 흐름 속에 존재하기에 관문마다의 간격은 2.5년이고 30개월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모두 30개월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하나의 관문을 통과해가고 있는 셈이다.

 

 

동일한 관문은 없다.

 

 

모든 관문은 같은 것이 없다, 그렇기에 앞서의 관문을 통과할 당시에 얻은 경험이나 지혜는 다음 관문 앞에서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렇기에 모든 관문을 우등의 성적으로 통과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겠다.

 

사람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나라 또한 그렇다. 그렇기에 역사를 살펴보면 제아무리 강대국이라 해도 결국에는 쇠망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2002-2012년 사이의 풍요롭던 시기에 우리 대한민국이 통과했던 관문

 

 

우리나라의 경우 2002년에서 2012년까지의 10년은 대단히 풍요롭고 럭셔리한 시절이었다. 10년의 기간이었으니 그 사이에 4개의 관문을 통과했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잘 통과했던 것일까? 모두 우등의 성적을 받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러지를 못했다. 종전에 없던 풍요와 럭셔리에 도취된 나머지 지나치게 과소비를 하고 말았다. 그 기간 사이에 우리는 1500조 이상에 달하는 엄청난 가계부채를 짊어지고 말았으며 그 바람에 급격한 소비위축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전전긍긍하는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풍요와 럭셔리의 시절이었건만 왜 우리는 그토록 많은 부채를 짊어지게 된 것일까, 어려워서 그랬다면 심정적으로 이해라도 갈 터인데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천만 다행히 글로벌 경제가 급격하게 되살아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가 않을 경우 닥칠 험한 파도를 넘어갈 체력이 있을까를 걱정해야 하는 오늘이 된 것이다.

 

 

모든 관문을 흠이나 상처 없이 잘 통과하는 이는 세상에 거의 없다.

 

 

하고자 하는 말인즉 이처럼 운명의 모든 관문을 우등의 성적을 받으면서 무사히 잘 통과해가는 이는 거의 없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긴 인생 살아온 사람의 얘기를 여유를 가지고 시간을 들여 자세하게 들어볼 것 같으면 그 지나온 이야기가 하도 구구절절해서 책으로 세 권 분량은 된다는 말이 성립하는 것이다. 물론 그 세 권 분량의 이야기는 성공담이라 아니라 겪은 아픔과 辛苦(신고)의 얘기들로 채워질 것이라 본다.

 

 

프로바둑기사의 제명 처분을 보면서

 

 

며칠 전 프로 바둑 기사가 협회로부터 除名(제명)처분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몇 년 전 어느 여성 기사를 성폭행했다는 혐의로 인한 것이었다. 소식을 들은 나는 절로 그거 내 참! 했다.

 

바둑기사들은 대체적으로 사생활이 단순하고 맑은 편이다. 그런데도 미투 운동이 번지면서 이런 일이 생겼으니 어이가 없었다. 그들 역시 인간 세상, 즉 속세를 살고 있는 사람들임을 새삼 확인했다고나 할까.

 

제명당한 기사는 활달한 언변으로 바둑 해설을 잘 했고 그 바람에 인기도 무척 많았다. 프로 바둑 기사치고는 ‘끼’가 좀 많은 타입이었는데 역시 그 ‘끼’가 문제가 된 게 아닌가 싶다. 특히 알파고의 해설로 작년엔 많은 인기를 끌었던 그가 이번 일로 졸지에 저렇게 되었으니 많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궁금해서 그 이의 생년월일을 살펴 사주를 뽑아 보고 나서야 머리를 끄덕이게 되었다. 능히 그럴 만한 운세였기에 그랬다. 수년 전의 일이었지만 최근에 생긴 미투 흐름을 무사히 넘어갈 순 없었던 것이다.

 

장차 대권주자의 한 사람으로서 유망해보이던 안희정 지사 역시 상당히 안타까운 대목이 있다.

 

여성에 비해 적극적인 남성에게 있어 성욕의 문제는 평생을 두고 참으로 다루기 어려운 숙제란 점, 이번 일련의 일들을 지켜보면서 새삼 절감하게 된다.

 

사람은 이처럼 누구나 실수를 할 때가 있는 법이고 누구나 잘못된 생각을 가질 때가 있다.

 

 

세상살이 때론 호기도 부리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니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한 세상 조심만 하는 자세로 살아갈 순 없는 법이다. 때론 호기롭게 크게 걸음을 내딛기도 하고 때론 살얼음판을 기어가듯이 걸을을 떼어놓을 때도 있는 법이다.

 

세월이 좋다 싶을 땐 자랑도 좀 하고 때론 우쭐대기도 하면서 살아야 그게 또한 사는 맛이기도 한 법이다. 존재감을 뽐내며 사는 맛도 느껴봐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둘 필요는 있겠다. 우쭐대는 시간을 가질 적엔 반드시 그에 따른 반대급부도 따르기 마련이란 점 정도는 알아둘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소위 ‘가진 자들의 갑질’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부아를 끓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일만 봐도 갑질 역시 반대급부가 수반된다는 것을 뒤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4개의 관문을 그나마 잘 통과해가는 방법에 대하여

 

 

인생과 운명에는 24개의 관문이 있다. 8개의 큰 관문과 16개의 작은 관문이 있다. 이 많은 관문들을 잘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생각해볼 때도 많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운명의 이치를 알아서 적절히 처신하는 법이고 또 떠오르는 생각으로서 공자님의 말씀이 있다. 공자는 평생 실천할 덕목으로서 용서를 말했다는 사실이다.

 

공자가 용서를 말한 것은 결국 사람은 실수할 때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니 남의 잘못에 대해선 끝까지 미워하진 말고 용서해주고 나의 잘못에 대해선 반성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운명의 24개 관문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스크래치야 좀 나겠지만 그런대로 잘 통과해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