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 속에서 이글거리던 도깨비불

 

얼마 안 있어 장마철이다, 이맘때면 한 번씩 생각나는 일이 있다. 나 호호당이 젊은 시절 직접 체험한 도깨비불에 관한 추억이다.

 

군복무 시절, 1979년 여름 장마철의 일이다. 굵은 빗줄기가 며칠 연이어 내리는 어느 날 저녁이었다. 갑자기 와-하고 요란한 탄성이 터졌다. 뭐지? 싶어 그쪽을 보니 연병장 저쪽 끝의 부대 경계선 철책 너머 낮은 언덕 위로 커다란 불길 몇 덩어리가 뒹굴고 있었다. 정말이지 비 내리는 어둠 사이로 활활 잘도 타오르고 있었다. 도깨비불이다, 귀신이다, 혼불이다! 하고 동료 사병들이 떠들어대었다.

 

처음 보는 도깨비불, 너무나도 신기했다. 붉은 불덩어리들이 빙글빙글 돌면서 연신 타오르고 있었고 때론 불덩어리가 이동하기도 했다.

 

그러자 의견이 나뉘었다, 귀신불이고 혼불이라는 주장과 이유를 알 순 없지만 자연현상이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나 호호당은 후자 쪽이었다.

 

그러다가 누군가 제안을 했다. 가보면 될 것 아니냐, 가서 확인해보자는 얘기였다. 여러 명이서 가면 뭐가 무섭겠느냐는 얘기가 힘을 얻었다. 그러자 주번 하사가 야, 지원자 없냐? 가서 확인하고 오면 맥주 한 박스 내리겠다, 어떠냐? 하는 것이었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나선 나 호호당

 

 

호기심 천국인 나 호호당은 얼른 손을 들었다. 그랬는데 문제는 정작 같이 가겠다는 지원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이에 주번 하사가 채근을 하자 간신히 한 명이 더 나왔다. 더 이상 지망자는 없었기에 비옷을 걸치고 랜턴,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대검을 허리에 찬 상태에서 철모를 쓰고 막사를 나섰다. 도깨비불이 이글거리는 낮은 야산 쪽으로 다가갔다. 막사에서 야산까지는 대략 1 킬로미터.

 

저녁 8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연병장 끝의 경계초소에 가니 초소를 지키고 있어야 할 경계병이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도깨비불에 질려서 도망을 친 터였다. 근무지 이탈!

 

그쪽엔 원래 통로가 없었으나 개구멍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정작 그곳을 통해 부대 밖으로 나서려 하자 같이 나섰던 동료사병 놈이 싫다면서 따라오질 않는 것이었다. 싫어, 무서워!

 

난처했다, 장대비 내리는 야밤에 언덕을 혼자서 오르자니 겁이 덜컥 났다. 도깨비불이 일렁대는 곳은 애기 무덤 바로 인근이었기에 호기심 때문에 늘 귀신을 만나보고 싶어 안달이었던 나 호호당도 막상 상황이 닥치자 가슴이 쫄깃해왔다.

 

하지만 그래도 이왕 나선 거 가보기로 했다. 오지 않겠다는 동료더러 “여기서 기다려, 혹시 일이 생기면 연락을 취하고,” 그러고 난 뒤 혼자서 비에 흠뻑 젖은 미끄러운 언덕을 올랐다. 한 손엔 랜턴, 한 손에는 대검을 거꾸로 쥐고 스틱 삼아 땅을 찔러 가면서 올랐다. 낑낑대면서.

 

 

다가갈 수록 작아지는 도깨비불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멀리서 보기에 도깨비불들은 직경이 최소한 5미터 정도는 되어 보였는데 정작 다가가면서 불길이 작아지는 것이었다. 철모를 쓰긴 했지만 얼굴은 온통 비에 젖은 상태, 안경알을 연신 손으로 닦아가면서 서서히 다가갔다. 그 순간 정말 겁은 하나도 나지 않고 호기심이 더 기승을 부렸다. 작아지는 도깨비불이라, 이건 니네들이 내 앞에서 쫄고 있다는 거 아니겠어!

 

몇 백 미터 밖에선 직경이 몇 미터나 되던 도깨비불들이 정작 바로 앞에 다가서자 크기가 5 센티도 되지 않는 그리고 활활 타오르던 불길은 간 곳이 없고 그저 창백한 푸른빛의 자그마한 물체에 불과했다.

 

아니 이게 뭐냐? 싶었지만 암튼 빛을 내는 조각들을 다섯 개 정도 수거했다. 그리곤 어이가 없네 하는 심정으로 조심해서 언덕을 내려갔다. 공포심은 완전 사라지고 도대체 이게 뭐지? 하는 호기심만 남았다. 여유가 있으니 상당히 미끄러운 언덕이었지만 천천히 조심해서 내려갔다.

 

개구멍을 통해 부대 펜스 안으로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놈이 성큼 나서면서 괜찮냐? 하는 것이었다. 그냥 웃었다. 야 봐라, 이게 도개비불의 정체다, 하면서 보여주었다. 푸른 형광이 나는 작은 조각들이었다.

 

연병장을 가로질러 막사로 들어서자 “와, 무사히 돌아왔다, 그래 도깨비를 만났느냐, 귀신이었냐 아님 무엇이었냐!” 하고 웅성웅성거렸다.

 

주번하사를 비롯해서 다들 보는 앞에서 나는 수거해온 형광 물체들을 내놓았다. 이거더라고요, 이게 멀리서 보면 이글거리는 도깨비불이고 가까이 가니 요렇게 아무 것도 아닌 초라한 조각, 밝은 불빛 아래 자세히 살펴보니 나무껍질에 불과했다.

 

아무튼 그날 밤 장맛비 세게 내리던 날 밤 내무반은 맥주파티가 열렸고 기분 좋게 즐겼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다시 살펴보니 정말 아무 것도 아닌 나무껍질이었다.

 

이것이 왜 그랬을까? 하고 궁리해보니 가설은 이랬다. 인근의 애기무덤에서 흘러나온 뼈의 인 성분이 나무껍질에 붙어서 도깨비불이 되었다는 것이 당시 나의 추론이었다.

 

 

귀신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 충족은 실패했으니 

 

 

그러곤 김이 팍 새는 느낌이었다. 귀신이나 혼이 실재하지 않을까? 하는 나의 기대가 날아갔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동원예비군 훈련 차 강원도 인제의 산에서 야영할 때 마침 또 장맛비가 내렸다. 그리곤 어두컴컴한 건너편 언덕에 도깨비불들이 일렁대기 시작했다. 다들 난리였지만 내가 나섰다, 기다려봐, 내가 가서 도깨비들 체포해올게 하고. 절대 겁먹을 일 아니라고 안심시킨 뒤 몇 명이서 함께 나섰다. 그러곤 30분 뒤에 초라한 형광 물질 몇 개 들고 돌아왔다. 이게 도깨비의 정체다 하고 보여주었다.

 

나 호호당은 귀신에 대해 늘 관심이 많았고 사실 지금도 적지 않다. 귀신이 있다면 죽음 저편의 세상도 있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니 말이다. 죽으면 다 끝, 이런 식의 얘기는 사실 드라이하고 재미가 없다. 그러니 뭔가 초월적인 것을 찾게 된다.

 

그런 까닭에 귀신이나 여타 영적인 것에 대해 관심이 있어왔다. 귀신을 본다는 영매나 무당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고 그들의 주장을 거짓이라 여기지도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섣불리 믿지도 않는다. 다만 초월적인 존재들이 나 호호당의 감각기관 즉 눈이나 귀에는 나타나진 않는다는 사실이다. 수십 년을 살았어도 만나보지 못했으니 앞으로 만날 확률은 거의 없다 하겠다.

 

 

죽으면 모든 게 다 끝, 이런 식의 세상은 너무 드라이하다

 

 

이처럼 죽음 저편의 세계에 대해선 검증하지 못 했다. 하지만 운명이란 것이 과연 있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선 호기심을 백 퍼센트 충족시켰다. 훗날 널리 퍼져서 제도권 학문으로 정립될 지 그거야 모르겠지만 나 호호당의 자연순환운명학은 헛됨이 없다. 훗날 사람들이 깜짝 놀라게 될 것을 생각하면 즐겁다.

 

그런데 영혼이나 귀신, 그러니 천사 나아가서 신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어서 답답하다. 좀 있었으면 한다. 그래야 재미가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